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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꿈의 해석

2008.04.23 17:1204.23

꿈의 해석...

나는 언젠가부터 나의 꿈을 조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건 오래 전 내가 유체 이탈을 경험하고 꿈이 데자뷰 되면서 스스로 꿈을 의식하게 되면서 부터였다. 그 후 나는 스스로의 힘으로 나의 꿈을 조정할 수 있게 되었고 악몽 속에서도 나는 천하무적이 되어 그 속에서 영웅이 될 수 있었다. 그야말로 꿈속은 나의 놀이터였고 나만의 또 다른 세상이었다.

오늘도 나는 꿈속을 헤맨다.

붉은 비단에 황금의 봉황 자수가 어지러이 수놓아진 중국 황실의 겉옷이 풀어 헤친 긴 머리와 함께 푸른 하늘로 휘날리고 있다. 마치 피가 하늘로 솟구쳐 오르듯 붉은 옷자락이 내 눈 앞에서 아른거린다. 오늘의 꿈은 중국 황실이 배경인가? 하며 주위를 둘러 본 나는 갑자기 가슴 한 끝이 아려온다. 눈앞의 앙상한 나무에 한 남자가 묶인 채 들리지 않는 언어로 나를 향해 울부짖고 있다. 저 남자와 나는 사랑했던 사이였나? 왜 이리 마음이 아픈 걸까? 남자가 묶여진 앙상한 나무와 내가 서있는 주위로 수많은 중국병사들이 둘러 서 있었다. 그제야 나는 내가 서있는 이 장소에서 불리한 입장에 놓인 것을 깨닫는다. 주위의 병사들은 하나 같이 무언가 외치고 있었고 저 앞의 높은 성 위에서는 황금색의 용포를 휘날리며 누군가 내려다보고 있다. 아마도 왕이겠지 생각하는 순간 그의 슬픈 얼굴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다.

어째서 짐을... 나를 배신하고 그를 택한 것이냐...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이라면
그 누구라도 가질 수 없도록 부셔버리고 말리라...  

섬뜩한 그의 생각이 내 머릿속을 후비고 지나갔다. 이대로 이 장소에 있다가는 나는 곧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떡하지? 어떠해야만 이 장소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까? 나는 스스로 절박한 마음이 들었고 눈에서 갑작스럽게 눈물이 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소리로 소리를 질러댔다. 솔직히 꿈속에서는 소리가 없다. 단지 모습과 감정만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을 뿐, 나는 그 흩어진 것들을 모아 내 마음대로의 세계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나는 소리 나지 나는 비명을 질러댔고 어딘 선가 돌풍이 불어 닥쳤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병사들이 하늘로 날아오르고 성이 부서져 그 파편이 하늘로 사라졌다. 왕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고 세상은 하얗게 마치 백지처럼 변해 버렸다. 그 위에 붉은 비단 옷을 입은 나와 앙상한 나무에 묶인 남자만이 붉은 점과 까만 점처럼 남아있었다. 나는 남자에게 걸어갔다. 남자는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나는 묶인 그를 풀어 주고 뺨을 두드렸다. 그가 눈을 떴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내 얼굴을 보고 주위를 둘러본다. 그 남자가 내게 뭐라고 말하려는 순간 어디선가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돌아갈 시간이다. 나의 의식은 순식간에 돌아와 꿈에서 깨어나고 머리맡의 핸드폰을 열어보니 새벽 5시다. 그리고 그 옆에서 키우는 고양이 달이가 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다. 나는 고양이 머리를 한번 쓰다듬고는 다시 누워버렸다. 아직 출근 준비를 하기에는 이른 시간이다. 누운 채로 나는 방금 꾼 꿈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몽환속에서...

출근 시간이 되었고 나는 집을 나선다. 이렇게 생생한 꿈을 꾼 날에는 아침부터 머릿속이 몽롱하다. 집에서 내가 일하는 사무실 까지는 걸어서 10분 거리이다. 그 10분간 나는 간밤에 꾼 꿈에 대해 기억하려고 애쓴다. 보통의 가벼운 꿈들은 잠에서 깨는 것과 동시에 그 잔상들이 공중으로 흩어져 버린다. 방금 꾼 꿈이라도 기억 속에 남아 있지 않고 기억하려고 애써 볼수록 머릿속만 더욱더 혼란스러워 진다. 하지만 이렇게 강력하게 잔상이 남는 꿈들은 나름대로 해석해 보거나 그 꿈에 대해 생각 해 볼 수 있다. 그리고 현실 속에서 간밤에 꿨던 꿈속으로의 여행이 가능해 진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나는 하루 종일 몽롱한 의식 속에 있어야 했기에 그저 생각만 해 본다. 꿈속에서 만났던 남자,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까? 뭔가 내게 말하려고 했던 거 같았는데...일을 하다가도 하루 종일 꿈에 대해 생각해 본다.

오늘 밤에도 그를 만날 수 있을까?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나는 고양이의 밥을 챙겨 주고 책을 읽던 중 또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나는 깊은 잠을 잔적이 거의 없다. 보통 선잠이라 불리는 수면을 취하며 작은 소리나 움직임에도 잠에서 깨어나곤 한다. 어찌 보면 예민한 성격처럼 보일 수 있으나 단지 내 수면 신경만 예민한 것 같다. 실제 나의 성격은 무심하고 둔하기 짝이 없으니...이러다 보니 서른이 넘은 나이에도 애인하나 없는 것이다. 물론 20대 때에는 남자를 사귀어 본 경험이 있으나 나의 무심한 성격을 견디지 못하고 다들 나를 떠나갔다. 게다가 고양이를 좋아하는 오타쿠 같은 성격의 여자인지라 취양이 맞는 남자를 찾기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나의 꿈에 등장하는 남자들은 모두 꽃미남인가? 이날 밤 나는 꿈속에서 어제의 남자를 만나기를 고대 했지만 나의 꿈에 나타나지 않았고 나는 발정 난 암고양이 달이 때문에 밤새 자다 깨다를 반복해야만 했다. 아침의 그 몽롱함은 마치 마약을 한 것 같은 효과를 주어 급기야 수전증까지 동반되었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커피 두 잔을 연거푸 마셔대고 책상에 앉아 일하는 장면을 슬로우로 돌린 듯 천천히 작업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나는 점심을 먹고 의자에 앉아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입을 벌리고 30분간 달콤 쌉싸래한 수면을 취할 수 있었다. 그 와중에도 기억나지 않는 꿈을 꾸었고 덕분에 벌린 입을 중간 중간 다물 수 있었다. 사무실의 누군가 보지 않았길 바라며...결국 요 나흘간은 달이의 발정으로 밤새 잠을 설쳐 제대로 된 꿈을 꿀 수 없었다. 나는 꿈꾸기를 즐겨 한다. 무엇이든 내가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를 위한, 나에 의한, 나만의 세상...
어쩌면 나는 꿈에 중독 된 것일지도 모른다.

달이의 발정이 끝나고 나는 다시 꿈을 꾸기 시작하였다. 나는 잠이 들었고 의식을 차려보니 나는 밑으로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고소공포증이 있었던 나는 놀이 기구는 커녕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조차 손에 땀이 배어나올 정도이다. 이런 내가 밑도 끝도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심장은 멈출 것만 같았고 이 상태로 바닥까지 떨어지다가는 도중에 심장에 쇼크가 올 것 같았다. 나는 토할 것만 같은 기분을 억누르며 꿈에서 깨어나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하지만 나는 계속 밑으로 추락해 갈 뿐이었다. 어릴 적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꿈을 꾸면 키가 큰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이미 키 클 나이는 지났는데 왜 이런 꿈을 꾸는거지? 라는 생각과 함께 이건 꿈이라고 인식을 하자 갑자기 모든 고소공포증이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는 떨어지고 있다는 공포가 강해서 꿈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어도 거기서 벗어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떨어지고 있던 나는 순식간에 공중으로 몸이 붕 하고 날아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밑을 내려다보자 한강 다리의 불빛들이 강을 따라 이어졌고 남산타워 그 아래로 집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아름다운 불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계속해서 위로 올라갔고 겨우 꿈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점점 꿈에 먹혀가는 나...

나는 매일 밤마다 꿈을 꾸었고 어떤 때는 꿈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 잠에서 깼을 때조차도 몽롱한 상태였다. 내가 꾸는 꿈은 언제나 내가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졌고 내가 생각하는 대로 깨어났다. 그리고 어느 날 다시 꿈속에서 그 남자를 보게 되었다. 지난 꿈속에서 내게 무언가 말을 하려던 그 남자 그 때 내가 그를 구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려던 거였을 까? 어떤 말을 했을 지 언제나 궁금해 했고 그 남자를 생각하며 잠들었지만 좀처럼 그를 만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그를 꿈에서 다시 봤을 때는 무척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와 나는 어느 한 도시에 서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길목에서 그는 내게 걸어오지만 우리의 사이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급기야 그는 뛰기 시작했고 뭔가 내가 소리치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런 그에게 나도 다가가려 애써 보지만 발이 땅에 붙었는지 떨어지질 않는다. 그가 내게 뭔가 말을 하는데 들리지 않고 답답한 마음에 나는 큰소리로 외쳤다.

뭐라구요?

“방금 뭐라고 했어?”
동생이 내 방에서 헤어드라이기어를 꺼내려다 말고 나를 유심히 바라본다. 내가 그렇게 큰소리로 말했던가? 나는 뒷머리를 긁적이며 잠꼬대 한 거라며 우물거렸다. 출근 하는 동안 꿈이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나는 사무실로 가던 중 지난 밤 꿈이 데자뷰 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챈다. 주위를 둘러보니 출근하는 많은 사람들이 각자 길을 가고 있었고 나는 순간 그 남자를 눈으로 좆는다. 하지만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그는 보이지 않고 그 상황은 그렇게 지나가버렸다.

데자뷰란? 같은 상황이 반복되어 일어나는 현상

나는 종종 내가 꾼 꿈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을 느낀다. 왜 느낀다고 이야기 하냐면 데자뷰 되는 상황은 내가 미처 깨닫기도 전에 지나가 버린다. 나는 단지 그 찰나를 느낄 뿐이다. 꿈속 어디선가 봤던 풍경, 언젠가 내가 말한 적이 있는 이야기들...이것들은 현실 속에서 되풀이 되지만 나는 언제나 그 상황이 끝나고서야 내가 꾼 꿈이 데자뷰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꿈이 현실이 되는 건지,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꿈으로 미리 보이는 건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그리고 내가 지금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꿈속에서 두 번이나 만났던 그 남자... 그를 다시 만나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나를 지배하고 있다. 왠지 그 남자가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궁금한 것을 떠나서 꼭 알아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남자와의 세 번째 만남

꿈과 현실 속에서 방화하던 때에 그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이번에는 꿈이 아닌 현실 속에서다. 그를 꿈속에서 만났던 게 언제쯤 이였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았고 그의 얼굴조차 가물가물 해질 쯤 그를 길에서 만나게 되었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마주침이었다. 나는 출근하고 있었고 길을 건너기 위해 신호를 기다리 던 중 건너편에 서있는 그를 볼 수 있었다. 나는 순간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착각을 할 정도였다. 그는 신호를 기다리며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나는 그와 눈이 마주치길 기대하며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순간 그와 눈이 마주쳤다. 나와 눈이 마주친 그는 당황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건 나만의 생각인가? 파란불이 켜졌다.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그는 나의 눈을 피하며 나를 애써 외면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우리 만난 적 있죠? 기억해요?”



내 곁을 빠르게 지나가며 속삭이는 그로부터 들은 말은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이곳에서 달아나야 해. 그리고 더 이상 꿈을 꾸지 마.”

그리고 그는 쫒기 듯 사람들 사이로 사라져 갔다. 잠시 나는 그곳에 서서 그가 한말을 다시 생각해 봐야 했다. 어디로 달아나라는 거지? 더 이상 꿈을 꾸지 말라니? 우리가 지난 날 꿈속에서 만났던 것을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그와 아침에 마주 친 일을 생각하느라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였다. 퇴근하고 집에 오는 길에도 내 머리 속은 그의 생각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잠드는 순간까지도 그가 한 말이 내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악몽

뿌연 안개 속을 걸어가던 나는 앞에서 빨간 불빛을 보았고 그 불빛을 좇아 걷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아침에 그 남자를 만났던 건널목에 서게 되었다. 빨간 불빛은 신호등의 불빛이었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고 순간 신호가 파란색으로 바뀌었다. 나도 모르게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그리고 안개 속에서 그가 건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에게 말을 걸어보려 했지만 그는 나를 보지 못했고 앞만 응시 한 채 길을 건너고 있었다. 그 전의 꿈들과 달랐다. 나는 꿈의 안개 속을 헤매고 있었다. 여긴 어디지? 어떻게 해야 이곳에서 벗어 날 수 있는 거지? 나는 꿈을 꾸면서 처음으로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다. 이곳이 어디인지, 내가 무얼 하고 있는지, 어떻게 해야만 하는지 전혀 생각할 수 없었다. 나는 무작정 걸었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고 안개는 계속 되었다. 문득 아침에 만난 그가 해준 말이 떠올랐다. 무엇으로부터 달아나라는 거지? 그리고 더 이상 꿈을 꾸지 말라니? 지금 나는 꿈을 깨고 싶어도 어떡해야 할지 생각할 수 없었고 답답한 마음에 소리를 질러 봤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허공에 손을 뻗어 봤지만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다. 그리고 다리조차 움직이지 않았다. 안개 속에 갇혀 버린 것이다. 너무나도 답답하고 무서운 마음에 순간 내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어, 누가 나 좀 꺼내줘!!! 나는 절실한 마음으로 누군가 도와주길 원했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갑자기 숨이 막혀왔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대로 그 자리에 쓰러진 나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한참 뒤 뭔가 부드러운 것이 내 볼을 스쳤다. 나는 살며시 눈을 떴다. 내 눈 옆으로 길게 난 눈물자국이 느껴졌고 고양이 달이가 그 눈물을 핥고 있었다. 휴우~ 꿈에서 깨어났구나...나는 달이에게 고맙다는 인사로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낮은 소리로 가르랑 거리는 달이는 기분 좋은 듯 두 눈을 지그시 감는다. 정신을 차린 내게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이게 바로 가위에 눌렸다고 하는 그것인가? 악몽을 꾼 듯 한 이 기분은 그 동안 꿈을 자유로이 꿔왔던 내게 꿈꾸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어 버렸다.

꿈과 현실의 경계

그가 내게 남긴 그 한마디는 일주일 내내 나를 괴롭혔고 안개 속을 헤매던 꿈 때문에 꿈꾸는 것이 두려워진 나는 계속 불면증에 시달려야 했다. 그리고 깜박 잠이 들려는 찰나에 어디선가 환청이 들려왔다. 때문에 나는 계속 잠이 들 수 없었다. 내 귀가 이상한 건지 내 머리가 이상해지고 있는 건지, 잠을 못자서 그런 것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너무나도 선명히 들려오는 환청...환청... 그리고 계속 쏟아져 오는 잠과 무거워 지는 눈꺼풀...급기야 길을 가던 중 쇼윈도에서 헛것까지 보는 등 나의 불면증에 대한 후유증은 점점 커져만 갔다. 나의 눈은 이제 핏발이 서기 시작했고, 얼굴은 점점 창백해져 갔다. 나는 직장 일을 쉬고 집에서 쉬기로 했다. 하지만 이것도 거의 소용이 없었다. 일단 잠을 자야 하는데 잠들지 못한지 한 달이나 되어간다. 내가 왜 이러는 걸까? 그리고 귓가에서는 깨어있으라는 환청이, 거울 속에서는 사람의 형상을 한 그림자가 소리치고 있으니 내가 점점 미쳐 가나보다. 병원을 찾을까 생각했지만 그건 내가 미쳐가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었기에 그 곳은 마지막 보루로 남겨두기로 했다. 고민 끝에 약국에 가서 수면제를 사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약국에서는 초췌하고 생기 없는 눈을 하고 있는 내게 병원의 처방전을 가져 오라며 약을 주지 않았다. 내가 자살이라고 하려는 것처럼 보이는 걸까? 나는 식음을 전폐하고 그저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다.

잠이 들길 기다리며...

오랜만의 꿈속이다. 드디어 내가 잠이 든 것이다. 얕은 의식의 꿈속에서 나는 그 남자와 함께 있었다. 우리는 마치 연인인 듯 다정하게 이야기 하고 있었다. 나는 너무나도 행복한 감정에 휩싸여 있었고 그와 이렇게 다정히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처음 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이 그리운 느낌은 그를 처음 꿈에서 만났을 때의 그 아련한 감정을 떠오르게 해 주었고 언젠가 이렇게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 듯 한 느낌은 내가 언제가 겪었던 상황이 다시 데자뷰 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미래에 일어 날 일을 꿈에서 보고 있는 건가? 하지만 그걸 고민하기 보다는 이 꿈을 좀 더 오래 꾸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이 꿈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그의 머리 위로 불어오는 돌풍에 그의 몸이 하늘로 떠오르고 있었다. 가지 말라고 소리쳐 봤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고 그는 그대로 하늘로 올라가며 내게 뭔가 말하고 있었다. 그의 말은 들리지 않았지만 내 마음에 전해 졌다.

“어서 와. 모두 기다리고 있어.”

순간 눈이 번쩍 떠졌다. 그와 나는 사랑했었고 그와는 만날 수 없는 곳으로 와버렸다. 나는 일어나서 한참을 울었다. 가슴이 아팠다. 그와 나는 꿈속에서 만나기 훨씬 이전부터 알고 있었고, 현실에서 우린 연인이었다. 하지만 뭔가 더 생각이 날 것 같은데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의 조각들이 내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떠다니고 있었고 나는 그 조각들을 맞춰야 했다. 그래야 그를 모두 기억해 낼 수 있어. 아니 기억해 내야만 한다. 그것만이 그를 꿈이 아닌 현실에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방법은 하나 뿐이야.

나는 찬물에 세수를 했다. 내 정신은 맑았다. 나는 기억을 더듬었고 그와 함께 했던 한 장소를 떠올렸다. 그리고 집을 나섰다. 내가 일하던 사무실이 있는 건물을 지나 지하철역을 향해 뛰었다. 하지만 지하철역이 있어야 할 곳에 역은 없었다. 이상했다. 사람들에게 물어 봐도 모두 한 방향만을 가르쳐 주었고 나는 그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결국 내가 도착한 곳은 우리 집 앞이었다. 어떻게 된 일이지?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나는 다시 사무실 쪽으로 뛰어갔다. 사무실을 지나서 지하철이 있는 방향으로 계속 뛰었다. 하지만 내가 도달한 곳은 우리 집 앞이었다. 뭔가 잘못 되고 있었다. 나의 불면증 후유증이 계속 되고 있는 건가? 나는 너무나도 당황스러웠고 어찌할 바를 몰라 멍청하게 서있었다. 순간 환청이 들려왔고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계속해서 그 소리를 따라갔다. 내가 미친 건가? 순간 내 자신을 의심했다. 그리고 나는 건널목에 서있었다. 빨간불이었다. 나는 신호가 바뀌길 기다렸다. 하지만 환청은 계속 되었고 내게 길을 건너라고 부축이고 있었다. 하지만 도로의 양옆으로 차들이 무서운 속도로 지나가고 있었다. 나는 어떡해야 좋을지 망설였다. 이대로 길을 건넌다는 것은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그렇다고 이곳에서 계속 방황하고 있을 순 없었다. 그가 지켜주고 있다는 생각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그리고 나는 차 속으로 뛰어들었다.

현실 속에서...

어디선가 음악소리가 울려온다. 핸드폰에 저장해 놓았던 알람이 울리나 보다. 눈을 뜬 나는 몇 시 인지 살핀다. 아침 6시... 고양이 달이가 내 곁에서 가르랑거린다. 머릿속이 몽롱하다. 밤 새 기나 긴 꿈을 꾼 듯하다. 기억나지 않는 기나 긴 꿈... 전화에는 부재중 전화가 수십 통 들어와 있었다. 어찌 된 일인지 내가 받을 수 있는 시간에도 부재중 전화가 잔뜩 와있다. 친구, 회사, 가족으로부터 온 수십 통의 전화와 잔뜩 와있는 문자들은 모두 나의 안부를 묻고 있었다. 나의 상태에 대해 기억나지 않는 부분을 더듬어 가 보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달이의 밥그릇에는 사료가 지나치게 많이 담겨져 있었고 나의 책상에는 어지러이 약병들이 널려있었다. 비틀거리며 일어난 나는 약병을 집어 들었고 순간 삶에서 즐거움 찾지 못한 채 고독한 시간을 보내던 내가 결심했던 일이 떠올랐다. 하지만 내가 결심했던 일은 내가 잠에서 깨어나면서 실패했고 나는 다시 살아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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