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이 일은 아마 나에게 있어서 많은 습관을 가져다 준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6학년 2학기 때에 나는 아빠와 함께 미국으로 여행을 끝마치고 돌아왔다. 다시 다니고 있던 오치초등학교에 돌아오니 나는 이미 스타가 되어 있었다. 물론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지만 아무래도 미국에서의 식습관이 그다지 좋지 않았던지 몸은 이미 8자로 불어나 있어서 스타가 된 후 열기가 식는 건 금방이었다. 그 당시에는 사람들의 눈이 너무나도 신경 쓰였기에 뒤뚱뒤뚱 걸을 때마다 뒤에서 웃는 그들의 웃음소리란 나에게 있어서 두들겨 맞는 샌드백 같은 기분이었다.
미국에서 있었을 때 나는 달리 아이들과 말을 나눌 수가 없어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어떻게든 인터넷을 한다든지 미국 정통 카운터 스트라이크를 한다든지, 아니면 대체로 농구를 가끔씩 했다. 중학교 1학년 때, 나는 농구의 재미를 찾아 공부를 제대로 못할망정 농구선수라도 될까 결심을 하였다. 농구 덕분에 초등학교 때부터 계속 이루어져 왔던 왕따생활은 약간 나아졌고, 농구 친구들도 사귀게 되었다. 그리고 농구에 재미를 찾고, 열정적으로 농구를 해서 그런지 살이 금세 빠지고 키가 무럭무럭 컸다.
그리고 많은 친구들과의 교류와, 농구인들과의 접촉,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이 일이 일어났었던 일은 중학교 2학년 때, 한참 농구에 미쳐있었을 한 여름밤의 이야기다.


슈욱-
농구공이 그물을 맞고 스윽-하고 지나갈 때의 소리다. 다만, 이번에는 골대 안에 들어간 게 아니라 그물만 맞았다. 친구들과의 1:1에서 항상 이기는 나일 터, 혼자 할 때만큼 슛이 안 들어가는 때는 내 컨디션이 좋지 않거나 아니면 실력 때문이 대부분이다. 어쩔 때는 골밑슛도 들어가지 않는데 3점 슛이 연속으로 6번이나 들어갈 때를 보면 난 농구를 실력으로 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농구 코트 2개가 세로로 이어져 있어서 슛을 쏘고 ‘에어볼’이 나올 때는 재빨리 공을 잡지 않으면 반대편 코트에 실례가 가기 마련이다. 그물이 지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실망하기 전에 나는 재빨리 공을 따라가서 잡았다.

후우-

의미없는 한숨..같은 건 아마 없을려나. 약 한두 시간 가량 쉬지 않고 농구를 해댔으니 힘든 게 당연하다. 그런데 내가 이번에 쉰 한숨은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빨개져서 쉰 한숨이 아니다.
부모님과 싸웠다. 평균점수 49점이라는 경악할 점수를 얻고 ‘과연 너는 인생을 살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토론하다가 ‘되도 않는 농구는 하지 말고 공부나 해라’라고 말씀하신 것에 충격을 받아서 농구공을 갖고 뛰쳐나왔다.
상처를 받았다. 마음 깊숙이 과연 내가 공부를 하지 않고 농구를 한 게 잘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형용할 수 없는 가슴의 조이고 또 조이는 이유를 모르는 끔찍한 고통.
머리가 하얗다. 농구를 해서 몸 안의 혈관 안에 끊임없이 흐르는 피가 머리에 몰리는 느낌과, 깊이 생각할 수 없는 아이큐 낮은 나의 머리를 보고 절규하는 목소리를 남기고.
공을 잡고 잠시 농구공 위에 앉아있던 나는 휴식시간을 마치고 다시 농구에 전념하기로 했다. 잊을 수 없다면 다른 것에라도 몰두하면, 다른 한 가지에 몰두하면 잠시 꿈을 꿀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한 손으로 농구공을 잡고 백보드에 농구공을 세게 던졌다.
백보드에 맞지 않고 반대편에 농구하고 있는 사람들한테 농구공이 날아갔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잡으러 달려들지 않았다. 내가 전력을 다한 농구공보다 더 빠른 새가 보였다. 어두컴컴한 여름밤에 빛나는 새들이 날아가고 있는 장면에 내 눈은 몰두하고 있었다.
매혹하는 듯한, 눈부시지 않지만 한정된 범위 안에서 빛나는 8마리 정도 되는 새는 어두컴컴한 밤을 밝힐 만큼 밝지 못했지만, 아름답게 은빛을 내는 달과 버금갈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렇다고 해서 새는 아니었다. 새 모형의 무언가가 내 오른쪽 눈의 시야 끝에서부터 왼쪽 눈의 시야 끝까지 가는 건 2초도 안 걸렸다. 지구상에서 인간이 만든 제트기도 그렇게 빠른 건 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산의 형상을 그리며 날아가는 UFO는 농구하는 사람들의 모든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들었고 시끄러웠던 동네를 한순간에 조용하게 만들었다. 우리의 눈은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았고, 그저 조용히 아득히 내리는 소리 없는 눈과 같이 새는 날았다.
1분 동안의 빠른 고공비행을 마친 후 농구장 주위를 한바퀴 돌더니 아파트에 우두커니 섰다. 그리고 이번에는 햇빛처럼 눈부신 빛을 내뿜는 어떤 발광체가 천천히 내려왔다. 그리고 그 발광체가 눈에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눈이 뜨여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무엇 하나 밝지도 않은 밤하늘을 아득히 바라보고 있었다. 우주에 흐르는 은하수같이 날던 빛나는 새들의 고공비행도, 그들이 아파트 아래에 내려준 눈부신 발광체도, 농구하고 있던 모든 사람들도 없었다. 농구장에 우두커니 서있는 무언가에 홀딱 빠진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키큰 사람인 나 혼자밖에 없었다.
그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아파트를 향해 달렸다.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아무것도 찾지 못한 건 아니다.
농구하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 아파트에서 나오고 있었다.

“에이- 없잖아. 괜히 내 몸만 고생했네.”

“그러게 말이지.”

농구장에 서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다. 나는 아까 천천히 내려온 발광체가 떨어진 곳에 달려갔다. 아무것도 없었지만 나는 혹시나 해서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담벽과 하늘과 자동차 아래와 하수구와 내 앞뒤오른쪽왼쪽 전부 다.
하지만 그나마 건진 건 똥 냄새가 그윽히 나는 100원짜리 동전 달랑 하나.

“..뭐지?”

난생 처음 본 아름다운 UFO를 바라보아서 황홀하고도, 내 생에 가장 불미스러운 날인 그 한 여름 밤의 꿈은 이렇게 지나갔다.





아마 이 때부터 나는 무의식적으로 하늘을 바라본다는 말을 많이 들었을 것이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말이다. 체육시간에는 농구를 해서 어떻게든 이긴 후 ‘승리’라는 쟁취감을 얻는 대신 큰 피로를 갖는 것보다, 그저 하얀 솜사탕만 둥둥 떠다니는 푸르든 검은 하늘이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다운 그 UFO를 다시 보는 것이 나의 소원이자 꿈이 되었다.

“경훈아- 농구하자!”

“아? 오늘은 피곤하니까 좀 잘게. 수업 끝나면 알려줘.”

아-는 내 말버릇이다. 왠지 모르게 ‘어?’보다 더 편하게 느껴진다.

“칫, 오늘도 환상 속에 사로잡히는군. 맘대로 해라. 다음에 하자.”

내 말을 부모님이 믿지 않건 간에 상관없다. 푸르고 푸른 하늘에 약속한 듯이 언젠가 나타날 빛나는 새가 나타날 때까지 아마 난 하늘을 보는 습관을 고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 여름밤에 어쩌면 거기에 모인 사람 중 농구장에 있었던 사람이 아닌 사람도 있는 듯한 기억이 든다. 뭐,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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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의지해서 써보았습니다. 그녀와 개의 생활 다음으로 습작이네요..; 잘 봐주세요.
참고로, 실화입니다.
댓글 1
  • No Profile
    라퓨탄 09.02.11 00:08 댓글 수정 삭제
    잘 읽었습니다. 괜히 실버호크라는 만화가 생각나네요. ^^;;
    근데 실화라니. 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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