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에레핀데의 부름

2009.01.15 22:3101.15

그 누구도 쉽게 견뎌내지 못하는 눈 폭풍에 사냥꾼들은 몸을 떨며 피난처를 구축하고 있었다.
몰아치는 회색 바람 너머로 그들이 목표로 하는 산이 흐릿하게 드러나 있었다.
기괴하게 몰아닥치는 바람 소리 너머로 전혀 이질적인 소음이 들려오자 술로 몸을 달래며 휴식을 취하던 한 사냥꾼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땀과 침으로 얼어붙은 입 가리개로 다시 입을 막았다.
설원 너머로 그 어떤 짐승에게서도 들어보지 못한 울부짖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사냥꾼들 대부분이 긴장한 눈초리로 각자의 무기를 꽉 쥐었다.
그리고 거대한 무언가가 나타났다. 거대한 그림자는 미동조차 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그들 앞을 압도했으며 또한 군림했다.
그 누구도 감히 움직일 수 없었으며 어떠한 행동조차 시도하지 못했다.
흐릿한 공기 너머로 붉게 빛나는 두 눈이 모든 것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공기가 진동하고 있었다. 바람과는 차원이 다른 무언가가 공기를 뒤흔들며 모든 자연의 흐름을 엉망으로 하고 있었다.
푸른 섬광이 번쩍였고 이내 그것은 사라졌다.
유일한 목격자들은 갑작스러운 섬광에 휩쓸린 충격으로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 석상처럼 굳어 있었다.


카네리스 백작은 문득 느껴지는 불유쾌한 감각에 몸서리를 치며 잠에서 깨어났다.
뭔가 불안한 공기가 침실 안을 가득 채운 것을 알아차린 그는 조심스레 잠자리 옆에 항상 놔두는 장검을 붙잡았다.
흡사 화살을 쏘기 직전에 느껴지는 긴장감이 백작으로 하여금 공연한 죽음의 공상과 공포를 생각나게 하고 있었다.
카네리스 백작은 칼을 빼들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고함을 내질렀다.

“네 이놈!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들어왔느냐! 정체를 밝혀....”

백작은 경악에 찬 얼굴로 눈앞에 서있는, 아니 공중에 두둥실 떠있는 푸른 무언가, 인간을 흉내 냈지만 결단코 인간의 형상이 아닌 끔찍한 형태의 무언가에서 시선조차 떼지 못했다.
몸뚱아리는 골격과 실낱같은 액체가 뒤엉킨 채 선명한 청색으로 발광하고 있었다.
그나마 형상을 유지하고 있는 얼굴 부분은 이 존재가 남성임을, 조각처럼 잘생긴 미남일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었으나 그조차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고통과 분노, 절망에 찬 눈동자가 소용돌이치면서 그것은 입을 한 가득 벌리고 울부짖고 있었다.
처음 보는 그 광경에 백작이 손을 떨며 칼을 떨어뜨린 순간 그것은 잔상조차 남기지 않고 눈앞에서 사라져버렸다.
백작은 결국 속 안에 든 것을 토해내고 말았다.


달빛으로 충만한 밤하늘 아래 위풍당당할 정도로 기골이 장대하고 품격 있는 장신의 여성이 멍하다고 할 수 있는 눈동자와 얼굴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순수한 금빛보다 더욱더 아름다운 찰랑이는 장발의 금발이 달빛에 반사되고 있었으며 짙은 어둠 속에서 그녀의 백색 피부는 선명하게 그 빛을 발하고 있었다.
엘프와 인간의 가장 큰 신체적 차이점이라 할 수 있는 긴 귀가 아래위로 움직이면서 엘프 여성은 환한 미소를 지었다.
곧 그녀 바로 앞 허공으로 반투명한 현상이 나타나더니 이내 보다 선명한 형태의 입체적 존재가 나타났다.
그녀처럼 아름다운 얼굴 부분만 빼면 그 무어라 정의하기 어려운 형상의 존재였다.

“오, 위대한 바람의 정령이시여. 이렇게 저희 종족과 또 다시 영광스러운 연락을 행해주시다니!”

바람의 정령, 에레핀데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주변을 진동시키는 바람의 권능으로 그녀의 의사를 표시했다.

-우리들이 총애하는 숲의 딸들 중 하나여. 나는 달이 완벽하게 갇힌 물의 감옥을 원한다. 어서 그 곳으로 나를 안내하도록 하여라-

히에리넨은 조심스럽게 경의의 동작을 취한 후 서둘러 그녀가 알고 있는 가장 맑은 연못으로 향했다.
에레핀데는 휘몰아치는 반투명한 바람의 머리카락 한 가운데서 석상과 같은 미소로 따라 갈 뿐이었다.

“도착했사옵니다. 만족하십니까?”

-이 정도면 충분하다. 자, 이제 내가 보여주는 것을 놓칠 생각은 하지 마라. 엘프족만이 아닌 우리들이 향유하는 모든 세계의 운명이 걸린 문제이니-

거울과도 같은 맑음을 자랑하던 연못의 수면이 점차 탁해지더니 이내 어떠한 영상을 나타내고 있었다.

-우리들이 처음으로 목격한 것은 케르니안 산맥의 영원한 겨울 한 구석에서 그 근원을 알 수 없는 거대한 마나의 폭발이 일어났고 우리가 급히 그 곳으로 달려갔을 때 유일하게 볼 수 있었던 것은 푸른 섬광의 잔상과 그 너머의 알 수 없는 존재였다-

히에리넨은 흥미롭게 연못이 비추어내는 광경을 보고 있었다.
점차 그 빛을 잃으며 사라져가는 푸른 섬광 너머로 붉게 빛나는 두 눈과 그림자가 언뜻 비쳐지다 빛과 함께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그리고 연못은 이제 새롭게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마신이 침범하지 않은 대지들 중 하나인 케르디아 왕국의 어느 영지에서 두 번째 목격을 할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이번에는 처음처럼 갑작스러운 폭발적 현상이 아닌 점차 일어나려하는 매우 이질적 전조가 나타났다. 그 덕에 우리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볼 수 있었고.-

푸른빛으로 발광하는 무언가가 비명과 고함이 뒤섞인 소음을 울부짖고 있었다. 뼈대와 알 수 없는 끈적이는 액체들, 그리고 간신히 정상적이라 볼 수 있는 얼굴 부분이 남아 있는 너무나 끔찍한 형태였다.
그녀는 놀라 자기도 모르게 충격을 먹고는 비틀거렸다.

-그리고 이내 사라져버렸지. 이 두 번째 목격 후 우리 정령들은 이 기묘한 사건과 현재 대륙 자체를 뒤흔들고 있는 마신의 강림을 연결 지어 생각해보았단다. 마신의 부하들이 점령한 지역은 우리들이 상상조차 하지 못한 광경을 보여주는 지옥이 되어버렸고 그 곳에서 쫓겨난 인간, 국가, 종족 등등 모든 것들은 현재 마신이 강림하지 않은 지역으로 도망쳐 그 지역의 종족, 인간들과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사실상 이 대륙이 미증유의 위기에 처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 않느냐? 그 하이엘프들조차도 마신에게서 도망쳐 다른 엘프들과 합세했을 정도이니. 자, 그렇다면 왜 주신 하이데스와 그의 하위 신들은 이 일에 나서지 않는 것인가? 우리는 의문을 품었고 그 의문에 대한 답이 이 두 사건이라는 결론을 내렸지. 그리고 우리는 에레니쉬 숲의 한 구석에서 발견할 수 있었단다-

연못은 세밀하게 조각된 갑옷을 비추고 있었다. 비록 힘없이 땅에 널브러져 있긴 했지만 이름 높은 드워프 장인이라도 쉽게 못해낼 정확도와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으며 모두를 압도하는 위압감을 물씬 풍기고 있었다.

“어머나!”

그녀는 얼굴보호대에 새겨진 연속된 수직선과 귀 부분에 돋아난 대칭된 뿔, 그리고 붉은 유리와 같은 날카로운 두 눈을 살펴보며 탄성을 내질렀다.

“정말 멋진 갑옷이군요. 하지만 저건 그냥 갑옷이 아닌가요?”

-갑옷! 저것을 갑옷이라 불러도 되는지 모르겠구나. 물론 넒은 의미의 갑옷에는 들어가겠지만 저것은 우리가 생각조차 못하는 강력한 초월적 무구이다. 이 대륙에 존재하는 그 어떠한 위대한 마법사라도 그 어느 위대한 드워프들, 아니 드워프 종족 모두가 달려들어도 만들 수 없는 강철의 하인!-

그녀의 눈은 경이로움으로 가득 찼다. 갑옷의 가슴에 해당하는 부분이 천천히 열리면서 아주 작은 생물이 튀어나온 것이다.
지금은 전승으로나마 그 흔적을 남길 뿐인 멸망한 소인 종족이 연상되었지만 그 생물은 인간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저 선명한 테디스 해의 색을 훔쳐 온 듯한 머리 빛깔과 역시 하늘의 청명함을 눈에 담고 있는 푸른 눈동자가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놀랍군요! 소인임에도 불구하고 인간 최초의 황제 레오폴드 1세의 외모와 비견되는 조각과도 같은 아름다움과 남성성을 조화롭게 간직하고 있어요! 저 소인은 미의 여신님에게 매일매일 축복이라도 받은 것 같군요!”

-우리들의 사랑스러운 엘프의 딸아. 저 청과 흑의 강철 갑옷 주변의 나무와 숲을 자세히 살펴 보거라. 저 존재는 인간의 외피를 닮긴 했지만 결코 소인도, 평범한 인간도, 하물며 이 대륙에 알려진 그 어느 종족과 공통된 존재가 아니다-

히에리넨은 간신히 모든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평범한 갑옷이라 생각했던 것이 아주 거대한 무엇-거인족의 갑옷을 보긴 했지만 저렇게 정교하고 온 몸을 나타내지는 않았다-이었다. 마법사들이 골렘이라 분류하는 무기질적 인공 존재들도 저렇게 무지막지하게 크지는 않았으며 세밀하게 생기지도 않았다.

“그럴 수가! 하지만 저건 본 적이 없는 존재에요! 금속과 대장장이의 신인 헤트티어스님의 작품인가요?”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저 물건에는 신적인 힘은 절대 감지되지 않았단다. 머리부터 발까지 15미터나 되는 저 거대한 존재. 그리고 저 안에서 나온 신장 185의 남성형 존재는 대체 무언이란 말인가? 우리는 곰곰이, 또 곰곰이 고민을 했다-

그녀는 숨을 죽인 채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는 분명 신의 사자, 아니 저 주신과 하위 신들의 의지가 형상화된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을!-

“아아!”

그녀는 두 손을 맞잡고 경탄했다. 너무나 영광스러웠다. 이러한 사실을 그녀가 처음으로 선택받아 듣게 되다니!

-자, 우리들의 아름다운 딸아. 이제 내가 너에게 온 이유를 알겠느냐?-

“죄송하지만, 여전히 모르겠습니다.”

-너는 저 신들의 용사에게 달려가야 된다. 달려가서 마신과의 싸움, 그리고 빛의 승리라는 원대한 결말을 위해 도와주어야 된다!“

“아아! 에레핀데님!”

그녀는 두 눈에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었다. 이러한 과분한 영광의 과업을 받을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제가 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아니, 너는 반드시 용사를 보조하고 또 도와주어야 한다. 지금 저 용사는 갑작스러운 감정적 소용돌이에 고통스러워하고 있으며 정신적으로도 정상적이지 않다-

연못이 비추는 그 존재는 머리를 부여잡은 채 비틀거리며 걸어 나가다 구토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안타까운 얼굴로 신음성을 발했다.

“저 용사의 이름은, 아니 제가 불러야 할, 그리고 만인이 우러러 외칠 명칭은 무엇입니까?”

-우리도 모른다. 다만...다만....-

에레핀데는 인간의 두 눈에 해당하는 것을 감은 채 중얼거리다 탄성을 질렀다.

-아! 지금 저 용사가 계속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리는구나. 안...안...아, 그는 계속해서 안트라스는 이름을 중얼거리고 있어!-

그녀는 에레핀데의 흥분한 얼굴을 보고는 상당히 놀란 표정으로 응시했다. 정령이 이렇게 감정을 선명히 나타내다니.

-자, 이제 더 이상 그를 관찰할 수가 없구나. 우리들은 대륙 곳곳으로 퍼져나가야 되느니라. 이 유일한 희망을, 마신에게서 우리를 구원할 유일한 신의 기사의 존재와 그 이름을 널리 알려야 되니 말이다-

히에리넨은 고개를 숙였다.

“저에게 이런 막중한 책임과 영광된 임무를 친히 내려주신 것에 감사를 드리옵니다.”

-더 이상 말할 시간이 없구나. 우리들의 딸아. 가거라! 용사가, 안트라스가 있는 곳으로 어서 가거라!“

“안트라스!”

히에리넨의 아름다운 입술이 움직였다. 그녀의 눈동자는 뜨거운 희망과 열망으로 가득 차 오르고 있었다.
그녀는 달빛 저편으로 점차 투명해지는 에레핀데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에레핀데가 어둠 속으로 완전히 그 모습을 감추자 그녀는 자신의 마을로 달려갔다.
투명한 연못은 밤하늘을 비추고 있었다.
댓글 1
  • No Profile
    청람 09.01.22 21:23 댓글 수정 삭제
    몇몇 문장이 지나치게 깁니다. 호흡이 힘들어지는 부분이 있어요. 그리고 내용 파악이 쉽진 않네요. 첫부분에 작품 속으로 빨아들이는 부분은 다소 인상적입니다.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수
공지 2024년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공고 mirror 2024.02.26 1
공지 단편 ★(필독) 독자단편우수작 심사방식 변경 공지★5 mirror 2015.12.18 1
공지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 (3기 심사단 선정)4 mirror 2009.07.01 3
1257 단편 심하의 이방인1 Mothman 2009.01.10 0
1256 단편 기다림 그와 그녀 2009.01.10 0
1255 단편 십합일인사(十合一人死)1 유지훈 2009.01.09 0
1254 단편 하늘바다인어2 그린이 2009.01.07 0
1253 단편 [입김] 신사적 2009.01.05 0
1252 단편 흰나비 관 큐라소 2009.01.03 0
1251 단편 Nothing2 토니오몬티 2009.01.03 0
1250 단편 차이니즈 와이너리5 김몽 2009.01.01 0
1249 단편 하이로드 레스토랑14 이상훈 2008.12.31 0
1248 단편 3차원 진화3 유진 2008.12.30 0
1247 단편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1 누혜 2008.12.30 0
1246 단편 선물 상자 속 아이1 [混沌]Chaos 2008.12.30 0
1245 단편 2007 피노키오 오디세이(2007: Pinocchio Odyssey) 조약돌 2008.12.29 0
1244 단편 혈액형 살인 사건 조약돌 2008.12.26 0
1243 단편 여왕 폐하 대작전 Mothman 2008.12.25 0
1242 단편 크리스마스 환상(수정) 세이지 2008.12.25 0
1241 단편 내일 MWimp 2008.12.24 0
1240 단편 덴버 스르기탄! 아이피스 2008.12.24 0
1239 단편 [굿바이] 신사적 2008.12.24 0
1238 단편 폐허속의 그들 Peter 2008.12.22 0
Prev 1 ... 80 81 82 83 84 85 86 87 88 89 ... 147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