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학원가에 바람이 불 때

2009.01.12 14:3601.12

  1.
  
  “저, 선생님?”
  
  아이들은 없었다.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사라져간다. 그 소리를 대신해 비가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지광준은 엉덩이에 손을 털었다. 분필가루가 묻어났다.
  
  “아, 미정아. 무슨 일이니?”
  
  “뭐 좀, 여쭤보려고요.” 미정은 뒷짐 진 손을 꼼지락거리며 바닥을 보았다. “저기, 애들한테 들었는데요. 선생님.”
  
  미정은 말을 멈추었다. 망설였다.
  
  단정한 단발 커트, 화장기 없는 얼굴, 요새 아이들답지 않은 모습이다. 어설프게 화장한 아이들에게는 없는 고상함이 있었다.
  
  투명하고 흰 피부 위로 표정이 불안했다.
  
  고개를 들었다. 지광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선생님께서 상담을 잘 해주신다고 들었어요.”
  
  지광준은 팔짱을 끼고 천장을 보았다. 지광준은 숨을 크게 들이 쉬었다 내쉬었다. 시간이 잘려나간 것처럼, 둘은 아무 말도 없었다. 말을 꺼내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잠깐 따라올래?” 지광준이 말했다.
  
  지광준은 참고서를 챙겨 옆구리에 끼고 밖으로 나갔다. 미정은 따라 나갔다.
  
  둘은 복도 끝에 있는 자판기에 멈추어 섰다. 형광등이 끔벅거리는 탓에 어두웠다.
  
  “내가 이 조명 좀 바꾸자고 몇 번을 말했는데, 아직도 이러니…. 돈을 아끼는 것도 좋지만 애들 눈 나빠지면 어쩌려고 이러나…. 우리 형이 어릴 때부터 어두운 곳에서 책을 봐서 눈이 되게 안 좋거든.”
  
  미정은 희미하게 웃었다.
  
  “뭐…마실래?”
  
  “저, 블랙커피요.”
  
  “블랙? 괜찮겠어?”
  
  미정은 고개를 희미하게 끄덕였다.
  
  자판기에서 삐익 하는 소리가 났다. 지광준은 커피를 꺼내 들어 건넸다. 아이는 두 손으로 컵을 받았다. 입김을 살짝 불며 식기를 기다렸다.
  
  미정이 입은 교복은 단정하고 규율을 어긴 곳이 없었다. 립글로스도 바르지 않은 입술로 잔을 가져갔다.
  
  “자, 이제 무슨 일인지 자세히 말해줄래, 미정아?”
  
  “저기, 제 친구가요. 돈을 뺏기고 많이 맞는 것 같아요.”

  
  미니 버스 안은 비어 있었다. 아이들을 내려주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래서, ‘또’ 내가 해결해 달라는 거냐?” 지상준은 핸들을 꺾었다.
  
  “젠장, 이 동네는 사람은 얼마 없는 촌인 주제에 왜 이리 넓으냐? 왜 아파트 단지 옆에 러브호텔이 늘어서 있는 거야? 애들 상대로 장사하려는 거야 뭐야?”
  
  12시가 넘은 도로에 차는 보이지 않았다. 가로등의 오렌지 빛 혀가 핥은 탓인지, 비가 내린 흔적인지, 바닥은 아직 검은 회색으로 축축했다.
  
  “에이, 왜 이렇게 춥냐. 요새.” 지상준이 코를 훌쩍였다. 왼손을 뻗어 창문을 닫았다. 차 안은 오일냄새가 풍겼다. 공기가 답답하게 웅크렸다.
  
  “형은 환절기만 되면 그러더라. 덩치에 안 어울리게 허약하다니까.”
  
  “그래, 아부지가 그래서 나보고 ‘뻥때’라고 하시잖냐. 덩치만 크지 허당이라고. 어쨌든 무슨 일인지 조금 더 설명해봐.”
  
  “원천중 2학년 이대영. 작은 키. 내향적인 성격. 검은 피부. 잘 안 씻고 냄새가 나. 성적은 중하. 집은 좀 잘 사는 것 같더라고. 아버지가 수의사래. 부모가 별로 신경을 안 쓴다고 하더라고. 별거 중이래. 어머니가 이상한 종교에 빠졌다나봐. 아버지랑 같이 산데.”
  
  “엄청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이거지?”
  
  “응. 부탁한 미정이는 이대영 옆집에 사는데, 어릴 때부터 교류가 있고, 동생처럼 생각한다는 거야.”
  
  “남자가 병신 같으면 여자는 동정하게 마련이지. 나쁜 남자를 고쳐주고 싶다는 콤플렉스 같은 거지.”
  
  “심리학 강의는 그만 해. 휴학한 주제에 뭘 아는 척이야?”
  
  “그 애도 우리 학원 다니나?”
  
  “이대영? 다른 학원을 다니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 자세히는 모른데.”
  
  “자세히 모른다고? 친하다면서?”
  
  “학교가 달라져서 얼굴을 보기 힘든 데 다가, 성격이 어두워져서 동네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고.”
  
  “보수는?”
  
  “소개팅. 22살, 대학생. 미정이가 교회에서 만난 언니래. 덩치 크고 듬직한 사람 취향이라는데? What'd you say?”
  
  “I'm on my way. 오랜 만에 몸이나 좀 풀어야지.”
  
  
  2.
  
  “여, 상준아. 여긴 무슨 일이냐?”
  
  “박기우, 잘 있었냐? 좀 볼 일이 있어서. 너 혹시 이대영이라고 아냐? 너 네 학원 다닌다던데. 원천중 2학년. 남자. 키 작고 마르고 까만 애.”
  
  “아, 걔? 내가 담임이었어.”
  
  “담임? 요새 학원서도 담임 있냐?”
  
  “부모들이 원하니까.”
  
  “요새도 다녀?”
  
  “학원 그만 뒀어. 근데 걔는 왜?”
  
  “좀 부탁을 받은 게 있어서.”
  
  “너 아직도 애들 문제에 껴들고 그러냐?”
  
  “어쩌냐? 동생이 부탁하는데.”
  
  “야, 애들 문제는 애들이 해결하게 놔두어야지. 애들 싸움에 어른이 껴 봐라. 추하다.”
  
  “닥쳐 임마, 넌 임마 군대도 안 같다 와서 그래 남들보다 좀 일찍 돈 벌구 하면 남한테 쓸 줄도 알고 그래야지 임마. 맨날 명품이나 쳐 사고 말이야. 됬고, 걔 아는 애는 없냐? 뭣 좀 물어보고 싶어서 말이야.”
  
  “별로 친구가 없는 것 같더라고. 원천중 2학년에 누가 있더라…, 김 선생님! 원천중 2학년 누가 있죠? 남자 중에?”
  
  지상준은 불려온 학생을 데리고 옥상으로 갔다. 그는 옥상 가드레일에 기대고 섰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고 '삼디다스'라고 쓰인 슬리퍼를 발가락으로 흔들며 말했다. 중학생 치고는 체격이 좋았다. 이름은 이한우였다.
  
  “대영이요? 그 새낀 왜요?”
  
  “좀 볼일이 있어서. 걔가 애들한테 왕따 당한다면서? 삥도 뜯기고, 심부름도 하고.”
  
  “그 새낀 좆밥이잖아요. 존나 냄새 나는 데다가 찌질하게 구석에 처 박혀서 판타지나 처 읽고 공부도 못하고 싸움도 못하고, 병신쓰레기 새끼.”
  
  이한우는 담배를 꺼냈다.
  
  “근데 아저씨, 불 있어요?”
  
  “난 담배 안 피운다. 씹할 놈아. 주머니에서 손 빼 이 새끼야. “네가 아무리 허세를 부려 봐라, 그래 봤자 중2다, 이 새끼야. 너 씹할 개념은 어따 팔아먹었냐? 니 눈엔 엉아가 니 좆밥으로 보이냐? 너 집에 부모가 돈 좀 있고 덩치 좀 크다고 애들 싸대기 좀 올리고 다녔나 본데, 엉아는 중학교 고등학교 다닐 때 왕따에 돌림 빵 좆나 당해서 그런 새끼들이 제일 싫거든? 오늘 엉아가 너 이 개 좆밥 새끼, 너한테 함 똥물 튀겨볼까? 너가 대신 좆 빠져 볼래? 오늘?”
  
  이한우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지상준은 정강이를 찼다. 이한우가 비명을 질렀다. 욕지기를 하며 멱살을 잡아 빗당겨치기를 했다. 일으켰다. 이한우의 무릎이 떨렸다. 울먹이는 얼굴이 되었다.
  
  “이제 이대영이에 대해 아는 거 다 쏟아 놔 봐. 그 다음엔 담배 끊고 공부하고 부모 말 잘 들어 이 새끼야. 어설프게 흉내 내봤자 좆 밖에 안 돼는 거야. 알았냐?”
  
  고개를 끄덕일 때 마다 이한우의 얼굴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울지 마 임마. 울면 말이 안들리잖아.”
  
  이한우가 억지로 울음을 참느라 숨을 급히 들이켰다. 지상준은 한숨을 쉬었다.
  
  이대영에 대해 이한우가 아는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지상준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박기우가 기다리고 있었다.
  
  “야, 지상준. 애 겁주면 어떻게 해 임마.”
  
  “바른 길로 인도하느라 겁 좀 줬다. 그럼 안돼냐?”
  
  “야, 나한테 똥물 튀기면 난 어쩌라고 그러냐.”
  
  “똥물 튀기더라도 애 바로 잡아야지. 선생이잖아.”
  
  “나는 제 성적 올리는 것 까지만 책임이지 제 생활까지 관리할 책임은 없다.”
  
  “…박기우, 너 언제부터 담배 폈냐?”
  
  “저런 새끼 때문에 속 썩어서 그렇다.”
  
  “…간다. 미안하다.”
  
  
  주말의 태양이 내리쬔다. 따듯한 공기는 스펀지처럼 아파트 단지를 채웠다. 가로수들이 가지를 흔든다. 사람들은 지나친다. 가로수들이 가지를 흔든다. 옷이 부대끼는 소리가 난다. 자장가를 부른다. 벤치들이 웅크리고 존다.
  
  잠을 자던 벤치가 비명을 질렀다. 엄청난 무게에 등을 짓눌렸다.
  
  지상준은 다리를 꼬았다. 허벅지가 두꺼워 오른쪽 발목을 왼쪽 무릎 위에 올려놓기만 한 정도였다. 다리 위로 팔꿈치를 얹었다. 삼각김밥과 다이어트 콜라였다. 그 옆에 지광준이 앉았다. 지광준은 스니커즈와 코카콜라였다.
  
  “왠일이야? 다이어트 콜라 같은 걸 마시고 있어?”
  
  “좀 줄여야 하지 않겠냐. 체중.”
  
  “그건 그렇지. 아무리 팔 굵다고 자랑하면 뭐해, 살에 묻혀서 잘 안 보이는데. 뭐 좀 알아냈어?”
  
  지상준은 조사한 내용을 설명했다.
  
  “형이 말하는 그거지? 자기의 욕구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아들이나 애완동물을 인형처럼 꾸미거나 하는 거 말이야.”
  
  지상준은 다이어트 콜라를 들이켰다. 얼굴을 잠시 찡그리느라 곧바로 입을 열지 못했다. 지광준도 자신의 코카콜라를 들이켰다.
  
  “그래. 그 욕구불만이 아들이나 애완동물에 전염되고 말지. 남편하고 사이가 안 좋다보니 아들에게 집착했던 것 같애. 광준아, 왜 너 친구 중에도 그런 놈 있지 않았냐? 안종수. 그 놈처럼 병신 되는 거야. 노이로제로 짜증만 부리거나, 자기 망상에 취해서 병신이 되는 거야. 그러다 엄마가 종교에 미치고, 아버지는 엄마 품에서 자란 아들이 부담스러웠겠지.”
  
  지상준이 트림을 하고 난 뒤 삼각 김밥을 깨물었다. 마요네즈 냄새가 풍겼다.
  
  “일단 이 놈들에게서 돈을 뺏는 녀석들이 누구인지 알아내는 것이 먼저겠지?”
  
  “그건 간단하지. 일진이니 하는 애 들 일 거 아냐. 어르신들이 잘 모르는데, 원래 일진이라는 건 구분이 애매한 인간관계 집합이거든.  명확하게 이대영이랑 연관되어 있는 건지를 알아야 돼. 파벌이 다른 애들 족치다 문제 생길 수 도 있으니까. 학원에 다니는 애들한테 일진이 누구인지 물어보는 것으로는 뭔가 찝찝해.” 지상준은 손에 남은 삼각 김밥을 털어 넣고 다이어트 콜라로 넘겼다.
  
  “어떻게 하려고 그래?”
  
  “애들이 요새도 우유 마시나?”
  
  지광준은 한숨을 쉬었다. 핸드폰을 꺼내 어딘 가로 전화를 하더니, 잘 부탁한다는 인사로 끊었다.
  
  “길은 알고 있지?”
  
  
  3.
  
  원천중학교로 향하는 길은 뱀처럼 구불거렸다. 그 위를 달리는 트럭은 몇 번을 경적을 울리고 핸들을 좌우로 꺾고 가끔은 급제동과 완만한 제동을 반복했다.
  
  교문은 열려 있었다. 급경사를 트럭이 신음을 내며 올랐다. 등짐이 너무 무거운 탓이었는지도 모른다.
  
  트럭 옆구리에 젖소가 바보 같이 웃고 있다. 우유 당번들이 모였다. 바보 같이 웃고 있었다.
  
  학부모들은 지역의 우유 판매 대리점과 계약을 해, 아이들의 성장에 도움을 준다고 믿으며, 우유를 매일 마시게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자신들이 준 유전자를 뛰어넘는 신장의 성장을 얻을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이다. 아쉽지만, 키라는 것은 대부분 유전자가 결정한다.  돌연변이라는 변수가 있지만 이것도 유전자 차원의 문제다. 우유에 들어 있는 칼슘으로는 유전자에 영향을 줄 수 없다. 엄밀한 과학적 사실이다. 그러나 사립학교의 재정과 우유 대리점의 재정에는 큰 영향을 준다. 이 또한 엄밀한 사회학적 사실이다. 아마.
  
  지상준은 그들에게서 이대영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그들이 좋아할만한 게임이나 연예인, 스포츠에 대한 잡담을 섞어서였다. 지상준과 지광준 형제는 군인가족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 덕분에 여러 곳을 이사 다녔다. 처음 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에는 익숙했다.
  
  아이들의 대답은 기존의 정보와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우유 통을 정리하고 있는 그를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체육 교사스러운 복장을 한 남자였다.
  
  천박해 보이는 얼굴에 천박해 보이는 복장으로 미루어 볼 때 천박한 행동이나 천박해 보이는 말을 하는 사람이일 것이라고 지상준은 중얼거렸다.
  
  “김운권이는 어디 갔나? 넌 뭐냐?” 지상준의 예상대로였다.
  
  체육교사는 당구대의 뒷부분을 분리해서 만든 몽둥이로 목 언저리를 두들기고 있었다.
  
  그는 짝퉁 메이커 츄리닝, 진퉁 메이커 선글라스, 발가락 양말, 지압용 돌기가 있는 슬리퍼라는 전형적이다 못해 상투적인 차림새였다. 그가 가래를 끌어 올리더니 바닥에 뱉었다. 우유팩에서 흘러나온 우유에 젖은 땅 위로 떨어진 누런 가래가 떨어졌다. 그의 피부처럼 번들거렸다.
  
  “넌 누구냐니까?”
  
  “안녕하세요?” 지상준이 말했다. 비굴하게 보이는 웃음을 짓고 있었다. “김운권씨 대신 온 사람입니다.”
  
  “대신?”
  
  “예.”
  
  “난 그런 소리 못 들었는데? 내가 우유 담당인데 말이야.”
  
  “어제 전화로 알렸다고 하던데요. 몸이 안 좋다고 해서 제가 대신 왔는데요.”
  
  “…” 그는 눈을 한바퀴 굴리면서 가래 끓는 소리를 냈다.
  
  “잠깐 좀 따라오지?”
  
  체육교사가 고갯짓을 하며 말했다. 그의 코 아래에 허연 자국이 말라붙어 있었다. 인중에 찬 콧물이 말라붙은 화석 같았다.
  
  지상준은 그의 뒤를 따랐다. 팔자걸음을 걷던 그는 가끔씩 학생들에게 들어가라고 소리를 치고 땀을 훔쳐내어 바닥으로 털었다.
  
  몽둥이를 든 양손이 뒷짐을 쥐고 있었다. 지상준은 그의 손가락이 신경질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몽둥이가 위 아래로 꿈틀거렸다.
  
  둘은 점차 으슥한 곳으로 향했다. 체육교사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지상준은 오른손 목장갑을 벗고 청바지 뒷주머니에서 브래스 너클을 꺼냈다.
  
  두께2cm 쇠판에 지름 4cm정도 되는 구멍을 4개 뚫고, 손바닥으로 잡기 좋게 손잡이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네 개의 동그란 구멍 밑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는 형태다.
  
  그 위로 목장갑을 다시 꼈다. 브래스 너클이 너무 커 부자연스럽게 보여, 뒷짐을 쥐어 감추었다.
  
  체육교사가 뒤를 돌아보았다.
  
  “뭐야?”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어디로 가는 거죠?”
  
  “체육창고에 우유박스 안 가져간 것들이 있거든. 우유 상한 냄새가 나서 말이야. 그걸 좀 회수해 가 줘. 내일 모레 장학사가 오거든.”
  
  “아, 예.”
  
  체육창고는 조명이 없어 어두웠다.
  
  뜀틀, 각종 공들이 담긴 상자, 샅바 뭉치, 삽이 3 자루 있었다.
  
  바닥에 파란색 바톤이 굴러다녔다. 그 바톤을 체육교사가 걷어찼다.
  
  “우유 상자는 어디 있죠?” 지상준이 말했다.
  
  대답 대신 큐대가 날아왔다. 지상준은 고개를 숙였다. 큐대가 삽을 걸어두는 쇠 구조물에 부딪혔다. 깡. 공이 울렸다. 뜀틀 뒤에 숨어있던 학생들이 튀어나와 동시에 덤볐다.
  
  숫자는 체육교사를 포함해서 4명이었다. 중학생 3에 중년 1. 나쁘지 않은 구성이다.
  
  발이, 주먹이, 큐대가, 삽이 날아들었다. 삽과 큐대를 피하다 배와 주먹에 맞았다. 삽을 들고 있는 키 작은 녀석의 턱에 왼손을 던졌다. 뇌가 흔들린 녀석은 무릎이 헐거워진 G.I.죠 인형처럼 쓰러졌다. 빈 옆구리에 주먹이 박혔다. 지상준이 주먹 방향으로 훅을 던졌다. 턱이 완전히 돌아갔다. 브래스 너클로 당구 큐대를 막았다. 왼손으로 머리카락을 움켜줬다. 비명을 지르는 놈을 던졌다. 당구 큐대가 지상준의 목을 노리고 찔러 들어왔다. 지상준이 왼 팔을 들어 막았다. 팔이 긁혔다. 지상준의 잇새 사이로 억눌린 비명이 새어나왔다. 브래스 너클이 체육교사의 턱을 때렸다.
  
  체육교사 가 눈을 떴을 때 학생들은 샅바에 묶여 있었다. 입에는 재갈이 물려 있었다.
  
  “너 이 새끼. 너 정체가 뭐야!”
  
  “당신이야 말로 정체가 뭐야? 왜 애새끼랑 당신이 날 공격하는 거야? 당신이 독단적으로 한 행동이야, 아니면 학교에서 시킨거야? 내가 보기엔 위에서 시킨 것 같은데?”
  
  “…“
  
  “이대영이 알지?”
  
  “너 이 새끼, 이대영이를 니가 어떻게 알아?”
  
  “이대영이 정체가 뭐야? 이대영이를 괴롭히던 녀석들이 몇 명 정신과에 다니는 것도 확인했어. 그 새끼 진짜 그냥 찐따 새끼야, 아니면 뭐가 있는 거야? 그리고 당신은 왜 나선 거야? 응?”
  
  “…“
  
  “모두 대답을 안 하시겠다. 좋아. 요즘 철분이 조금 부족하신 거 같은데, 쇠 맛을 좀 보면 생각이 바뀌겠지. 난 원래 체육교사를 안좋아해.”
  
  지상준은 천천히 브래스 너클을 꺼냈다. 맛을 음미하는 것 브래스 너클이 반사하는 빛을 바라보았다.
  
  체육교사는 도망치려고 움직였다. 그는 움직일 수 없었다. 샅바로 온 몸이 묶여 있었다. 몸을 움츠리거나 하는 식으로 저항할 수 없도록 양 손목과 발목이 당구 큐대에 묶여 있었다.
  
  빛이 번쩍이더니 둔탁한 소리로 변했다.
  
  체육교사가 몸을 떨며 흰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지상준은 그가 하는 말을 핸드폰에 녹음했다.
  
  체육창고의 문이 열렸다. 밝은 빛이 쏟아졌다.
  체육교사는 눈을 감았다. 그가 눈을 떴을 때 지상준의 모습은 없었다. 지상준을 잡으러 온 행정실 직원들은  그를 잡기에는 너무 작았다.
  
  지상준은 트럭을 김운권에게 돌려주고 지광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형. 무슨 일이야?”
  
  “야. 이거 문제가 좀 심각해졌어.”
  
  “무슨 소리야?”
  
  
  4.
  학생 들이 밤이 깊어진 골목에 있었다. 서로 욕을 하거나 들고 온 무기를 점검하는 모습이었다.
  
  “그 새끼를 확실하게 조져버려.”
  
  “하지만, 그 새끼 존나 크다던데…“
  
  “병신아. 아무리 지가 커도 우린 열 두 명이야.”
  
  “맞아! 자전거 체인 한방이면 씨발 그냥 울고 봐달라고 빌걸?”
  
  “그리고 진욱이 형이랑 친구 분들도 오실거야.”
  
  체격이 큰 학생 3명이 나타났다. 그들은 운동부 소속인 듯 학생 치고는 꽤 좋은 체격을 하고 있었다.담배를 물고 있었고 손에 목도를 들고 있었다.
  
  “오셨습니까!”
  
  “야, 씨발! 뭔데 그러냐? 바빠 죽겠는데.”
  
  “진욱이 형, 대영이가 이번 일만 도와주시면 '그거' 많이 드린다고 …“
  
  “야! 떳다! 저 새끼야!“ 이한우였다. 여전히 삼디다스라고 쓰인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
  
  지상준은 학원의 현관을 나와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저 새끼야? 존나 큰데?”
  
  “저희 중학교 삽자루도 존내 맞았데요.”
  
  “삽자루가?”
  
  “야. 이빨 그만 까. 준비해.”
  
  그들은 골목을 빠져 나와 학원 통근버스로 쓰이는 마이크로 버스 뒤로 모였다. 주차장은 한산했다. 그들은 무기를 겨누고 준비했다.
  
  지상준이 나타났다. 그는 다이어트 콜라를 마시며 마이크로 버스로 향했다.
  
  고함소리와 함께 학생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목검과 체인, 쌍절곤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지상준은 머리로 날아드는 목검을 피했다. 뒷 주머니에서 3단 봉을 꺼냈다. 봉이 펴지는 것과 동시에 목검을 든 진욱이 쓰러졌다. 목에는 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지상준은 진욱의 관자놀이를 걷어 찼다.
  
  놀란 학생들이 잠시 뒤로 물러섰다.
  
  지상준은 두 주먹을 눈높이까지 올리고 가드를 굳혔다. 오른 손에 브래스 너클을 끼고 있었다.
  
  “씨발 비겁하게 찡을 끼고 있잖아! 저 새끼!”
  
  “비겁은 새꺄, 어린놈들이 약 빠는 게 더 비겁한 거지. 병신들. 야, 이대영이가 니들 진짜 짱이지? 안 걸리려고 일부러 병신 짓 하고 다니는 거 다 알아 임마. 니들 이대영이가 준 약이 뭔진 아냐? 그거 임마 케타민이라는 거야. 고양이 마취제야.  그거 먹다 걸리면 니들 바로 소년원 가는겨. 이대영이는 내가 벌써 잡았다. 삽자루인가 하는 그 체육 선생은 짭새가 벌써 잡아갔어. 코 밑에가 케타민 빠느라 허옇더만. 니들한테 약이나 돈 줄 사람은 이제 없다. 그러니까 앞으로 공부 열심히 한다고 약속하고 조용히 집으로 돌아가서 발 닦고 이 닦고 자라. 응?”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머뭇거리는 것이다. 아무리 허세를 부려도 아직은 청소년이다.
  
  “꺼지라고 임마! 10시 지나면 청소년은 집에 처 들어가서 발 딲고 똥 싸고 자는 겨 이 새끼들아!”
  
  그들은 사라졌다. 지상준은 쓰러진 진욱의 꼬리뼈를 차서 깨웠다.
  
  “집에 가 임마.”
  
  진욱은 사라졌다.
  
  
  5.
  
  “정말, 고맙습니다. 덕분에 대영이가 더 이상 나쁜 짓을 안하게 되었어요.”
  
  “아니, 아니, 뭘 이런 걸 가지고.”
  
  “형 말을 정리하면, 이대영이 학교에서 짱이 될려고 약을 이용했다는 거네?”
  
  “그래. 아부지가 자기 신경 안 쓰니까, 그 사이에 약품 창고에서 약 빼돌린 거지. 지 아부지가 가끔씩 빠는 거 보고. 짱 먹고 싶은데 힘은 없고, 돈도 없으니까 그거 말고 있나? 일단은 좋은 거 있다고 애들한테 접근해서 중독 시키고 나중에는 자기 말 무조건 듣게 만든 거지. 그 엄마라는 사람, 정신이 이상하다고 했잖아. 그거 그 아부지라는 놈이 불륜하느라 마누라 병신 만들려고 일부러 약 멕인 거래.”
  
  “그런데 그 선생님은 어떻게 된 거야?”
  
  “잡았겠지. 현장을. 근데 욕심나고 궁금도 하고 해서 자기도 해 본 거지. 그러다 교감이랑 그 삽자룬가 하는 원성중 체육 선생하고 몇 명이 중독 된 거지. 약 타고 싶으면 이대영이 말을 들어야 할 거 아냐.”
  
  
  “어떻게 되먹으려고 이러지?”
  
  “그러게 말이다. 이대영이가 원성중만 잡은 게 아니라 다른 곳도 잡았더라고. 그 한운가 하는 새끼도 사실은 꼬붕 인거지. 그 진욱인가 하는 새끼 있잖아. 고등학교 유도부. 그 새끼 뒤에 조폭이 엮여 있다는 말도 있다는데, 그거야 경찰 아저씨 들이 알아서 하시겠지. 그건 그렇고, 미정이 학생. 그 소개팅 말인데.”
  
  “아, 그거요. 죄송하지만 좀 힘들 거 같아요.”
  
  미정은 희미하게 웃었다.
  
  “왜!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야!”
  
  “그 언니, 원천중학교 체육선생님 딸이거든요.” <사건파일 이대영 終劇>
==========================================
연작 단편이나 장편의 아이디어를 살려 본
파일럿 필름 성격의 초고 입니다.
허술하고 엉망이지만 한번 올려봅니다.
오사와 아리마사의 <아르바이트 아이(탐정)>시리즈를
의식해서 써 본 가벼운 하드보일드 입니다.

2009-01-12 수정본입니다.
댓글 3
  • No Profile
    청람 09.01.22 21:19 댓글 수정 삭제
    제가 찌들었나봅니다. 가벼운 하드보일드... 가볍다는 단서가 붙었어도 전혀 하드하지 않았어요. ^^;; 서술이 조금 아쉽습니다. 분위기 파악이 다소 힘들었어요.
  • No Profile
    손지상 09.01.24 15:36 댓글 수정 삭제
    여기서 제가 말한 하드보일드는 하드보일드 문체로 쓰려 했다는 의미랍니다. ^^ 장르의 기호가 하드보일드하다는 의미는 아니었어요.

  • No Profile
    손지상 09.01.24 15:37 댓글 수정 삭제
    저는 위의 DOSKHARAAS의 본명입니다. ^^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수
공지 2024년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공고 mirror 2024.02.26 1
공지 단편 ★(필독) 독자단편우수작 심사방식 변경 공지★5 mirror 2015.12.18 1
공지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 (3기 심사단 선정)4 mirror 2009.07.01 3
1257 단편 심하의 이방인1 Mothman 2009.01.10 0
1256 단편 기다림 그와 그녀 2009.01.10 0
1255 단편 십합일인사(十合一人死)1 유지훈 2009.01.09 0
1254 단편 하늘바다인어2 그린이 2009.01.07 0
1253 단편 [입김] 신사적 2009.01.05 0
1252 단편 흰나비 관 큐라소 2009.01.03 0
1251 단편 Nothing2 토니오몬티 2009.01.03 0
1250 단편 차이니즈 와이너리5 김몽 2009.01.01 0
1249 단편 하이로드 레스토랑14 이상훈 2008.12.31 0
1248 단편 3차원 진화3 유진 2008.12.30 0
1247 단편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1 누혜 2008.12.30 0
1246 단편 선물 상자 속 아이1 [混沌]Chaos 2008.12.30 0
1245 단편 2007 피노키오 오디세이(2007: Pinocchio Odyssey) 조약돌 2008.12.29 0
1244 단편 혈액형 살인 사건 조약돌 2008.12.26 0
1243 단편 여왕 폐하 대작전 Mothman 2008.12.25 0
1242 단편 크리스마스 환상(수정) 세이지 2008.12.25 0
1241 단편 내일 MWimp 2008.12.24 0
1240 단편 덴버 스르기탄! 아이피스 2008.12.24 0
1239 단편 [굿바이] 신사적 2008.12.24 0
1238 단편 폐허속의 그들 Peter 2008.12.22 0
Prev 1 ... 80 81 82 83 84 85 86 87 88 89 ... 147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