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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덩크슛

2009.03.04 01:0103.04

S가 한 골 더 넣었다. 관중들의 환호성이 점점 커진다.
그는 센터다. 센터중에서도 큰 키인 222cm의 신장을 갖추고 있고, 거기에 센터로서는 생각하기 힘든 가드 수준의 3점슛 실력도 장착하고 있다. 그는 지금 또다른 거인 센터 야오밍과의 맞대결에서도 공격에서나 수비에서나 확실한 승리를 거뒀다. S는 40점 12리바운드 5블락을 기록하여 11점을 득점하고, S의 엄청난 공격을 막지 못 해 결국 6반칙 퇴장당한 야오밍에게 확실한 판정승을 거뒀다. 경기가 끝나고 자신의 팀이 지자 야오밍이 고개를 푹 숙인채 힘없이 걸어나가고 있다. 그것을 S는 득의에 찬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렇게 야오밍을 보고 있을 때, 갑자기 휴대폰으로 전화가 온다.
“뭐해?”
S의 여자친구다.
“응? 게임...”
“매일 하는게 넌 게임 밖에 없구나. 이제 관두자. 질렸어”
“뭐? 무슨 소리야, 너?”
“어디서 오타쿠 같은 녀석을 사귀어 줬더니, 매일 하는 짓이라곤 그 놈의 게임 밖에 없으니. 너한테는 도저히 미래가 안 보인다. 이젠 헤어지자.”
“야, 갑자기 왜?”
“갑자기는, 두 달이면 많이 봐줬지. 다신 연락하지마. 오타쿠 새끼야.”
“야!”
휴대폰이 끊어진다. S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휴대폰을 보고 있다.
S는 휴대폰을 물끄러미 보고 있다가 정신을 차린 듯 다시 컴퓨터 모니터를 본다. 농구 게임 속에서는 아직도 센터 S가 야오밍이 힘없이 나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S는 자신이 하는 농구게임 속에서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한 가상 선수를 만들었고, 그는 NBA리그에서 뛰고 있다. 드래프트 1라운드 1순위로 뽑혔고, 지금은 T팀 소속으로 올해 신인상을 수상했고 올스타 주전멤버와 NBA 퍼스트팀에 선정되었다. 또한 T팀은 그가 데뷔하고 나서, 전년에는 21승을 올렸던 팀이 올해는 무려 56승을 올렸다. 이런 결과는 충분히 그의 천재성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그는 지금 NBA 선수 중 최고의 주목을 받고 있다. 벌써부터 T팀은 이제 2년후면 자유계약 선수가 되는 S의 연봉 문제를 고심 중이고(전문가들은 T팀이 S를 잡기 위해서는 1년에 1500만 달러 정도는 줘야 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는 중이다), 많은 스포츠 회사들은 그와 스폰서쉽 계약을 맺기 위해 로비 중이다.
T팀이 경기를 할 때마다 관중석은 S의 별명인 Dr.S가 쓰여진 피켓, 플래카드들로 가득찬다. S가 감각적인 페이셜 덩크를 성공시킬 때마다 관중들은 일제히 S의 이름을 연호한다. 경기장 밖에서도 그는 몹시 빛나고 있다. S는 굉장히 잘 생겼고, 그 때문에 여자 팬들도 수없이 많다. 경기장 밖을 나가는 순간 S는 수백명의 여자 팬들에게 휩싸인다. 싸인해 달라는, 혹은 안아 달라는. 그런 여자 팬들을 향해 S는 늘 사랑의 총질을 한다. 이 사랑의 총질은 S의 일종의 트레이드마크다. 이 사랑의 총질을 하는 CF도 많이 찍었다.
게임 속의 S는 그렇다.
현실속의 S의 인생은 쉽지 않다. 그는 게임 속의 S가 가진 재능이란 걸 갖추지 못했다. 그는 현실에서도 한동안 동네 농구를 좀 했지만, 곧 끝났다. S가 속한 팀이 늘 엄청난 점수차로 지자 같이 농구하던 사람들이 그를 피해 다니기 때문이었다. 큰 점수차로 질 수 밖에 없는 것이 S는 제대로 된 드리블도 불가능하다. 슛은 늘 에어볼이다. 이런 그에게 덩크는 정말 게임이나 꿈에서만 할 수 있는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다. 늘 한번 해보고는 싶었지만 할 수 없기에 컴퓨터에서 풀고 있다.
그렇다고 농구만 못 하는 것도 아니기에 S는 쉽게 비춰지는 존재다. 자기가 봐도 잘 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 아무것도 잘하지 못하는 녀석은 으레 학교 아이들의 표적이 된다. 어떤 것이든 하나는 잘해야 된다는 시대가 낳은 희생양. S는 그랬다. S는 어떤 것도 능하지 못 했다. 그나마 자신이 착하다고 자부하는 녀석들은 안타까움 실린 목소리로 도대체 넌 잘하는 게 뭐냐 라는 푸념 식의 말들을 S에게 던졌고, 착하기를 포기한 녀석들은 수많은 조롱과 욕지거리들, 구타를 “One more facial!"처럼 집어던졌다.
S는 한때 그런 상황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건 그가 사회를 지나치게 낙관했을 뿐임을 뼈저리게 가르쳐주었다. 세상에 대해 좀더 나아지려는 노력을 한다면 사람들도 으레 인정해주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결과로 드러나지 않을 때, 사람들은 그가 노력은 별로 하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해버린다. S에게는 그런 일들이 늘 닥쳐왔다. 심지어는 그가 공부라도 하고 있으면, 그거 해서 뭐 되겠느냐는 비웃음을 던졌다. S의 인생은 그렇게 이어져 왔다. 거의 삶을 자포자기해서 이젠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여자친구를 겨우 만났다. 두 달 전에 이런 인생에서 벗어나보자는 의지로 얻은 여자친구다. 그런데 결국 결과는 이렇다. 당황스러워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는다. 그러나 곧 그는 그것을 잊기로 한다. 이런 자신을 인정하는 것보다는 다시 스포츠 스타 S에게 돌아가는 것을 선택한다.
이제 곧 게임이 시작 되려고 한다. 로딩이 거의 끝나간다. 그는 손가락을 푼다. D키는 슛, W키는 레이업,  E키는 덩크다. 자 이제 또 한번 스포츠스타 S의 인생을 시작하자... 이제 곧 장내 아나운서가 선수들을 소개할 것이다. 같은 팀의 또 다른 올스타 선수인 C와는 선수 소개 순서 때문에 가벼운 다툼이 있었지만, S는 C에게 마지막을 양보했다. 제일 마지막에 불리는 것이 가장 스타임을 증명하는 자리인 것이 둘의 가벼운 다툼을 불러왔지만, S는 속으로는 분명 이렇지 않아도 내가 스타인건 확실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미 사람들의 관심이 C보단 S에 쏠려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S가 들어오기 전에 주목 받았던 C여서 이에 어느 정도 불편한 심기는 있었지만. 여전히 C 역시 S와 비견되는 인기 스타이며 올 시즌에는 20득점에 10리바운드라는 좋은 활약도 했고, 무엇보다 S와 C가 함께라면 T팀이 앞으로 10년 정도는 우승후보임을 알기에 C도 S와 잘 지내려고 노력한다.
지금 5명의 주전선수 소개에서 S는 네 번째로 불릴 것이다. 먼저 포인트 가드가 불리고, 조금 큰 환호소리, 그리고 슈팅 가드 역시 비슷한 환호소리, 세 번째 스몰 포워드도 비슷하고, 드디어 센터인 S가 나오고, 엄청난 환호 소리가...
순간 컴퓨터 모니터가 갑자기 픽 꺼진다. 화면이 급격하게 좁아지더니 사라지고 보이는 건 검은 화면.  
정전이다.
S는 순간 평정심을 잃는다. 컴퓨터가 꺼지자마자 빈 모니터에는 자신의 얼굴이 비친다. S는 자신의 얼굴을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의 얼굴은 몹시도 우울하다. 텔레비전에서 아키하바라의 뚱보 오타쿠들이 등장 할 때 S는 그 얼굴들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텔레비전 건너편에 있는 거울을 보면 거기에도 비슷한 얼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얼굴이 지금 까만 모니터에 비치고, 그 얼굴이 싫어 S는 고개를 돌린다. 자신의 집이 보인다. 햇빛도 제대로 안 들어오는 3평도 안 될 좁은 이 곳이 마구 어질러져 있다. 먹다 남긴 컵라면이 국물조차 버려지지 않은 채로 방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고, 여기저기 편의점에서 사먹은 샌드위치 찌꺼기, 과자 봉지들이 즐비하다. 그 어질러져 있는 거실의 모습이 자신의 모습 같아서 그는 점점 견딜 수가 없게 된다. S는 완전히 평정심을 잃고 무엇이든 두들겨 댈 것을 찾는다. 가장 가까이 있는 컴퓨터를 두들겨댄다. 왜 이런 때 정전이 되느냐고 짜증을 낸다. 욕지거리를 마구 내뿜는다. 그러나 컴퓨터가 대답할 수 있을 리 없고, S는 대답 없는 컴퓨터가 짜증이 난다.
그는 컴퓨터를 집어 던졌다. 벽에 컴퓨터 본체가 부딪히고 둔탁한 소리를 내면서 본체 겉과 속이 처참하게 분리 된다. 본체가 그 채로 바닥에 떨어지고 마더보드 판이 부셔진다. 컴퓨터가 죽는다.
그리고 컴퓨터가 죽고 나서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전기가 들어왔다.
꺼졌던 형광등, 뭔가가 돌아가고 있던 전자레인지 다들 드라마틱하게 소리를 내며 다시 움직인다.
S는 한 번 더 자신이 이성을 잃을 차례임을 직감했다.
그래서 그는 한 번 더 이성을 잃고 미친 사람처럼 여기저기를 뛰며 주먹질을 해댔다. 그 중에는 거울도 있었고 컵도 있었다. S는 그런 식으로 집에 있는 것들을 다 부수고, 망가뜨려 버렸다. 심지어 철로 된 물건들은 온 힘을 다해 꾸겨 버렸다. 물론 자신도 분명 다음에는 내가 크게 후회 하리라고 생각했겠지만, 그의 광기는 이제 시작이었을 뿐이다. 아직 내가 망가뜨릴 존재는 많다고 S는 생각해버린 것이다.
그래서 S는 급하게 옷을 챙겨 입었다. S는 순간 뭐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자신은 그 강을 건너버린 듯한 느낌이었다. 일상과 비일상을 나누는 강 말이다. 약간의 수영으로 건너갈 수 있는 강. 그리고 S는 지금 자신이 그 곳을 건넜고, 그러므로 거리낄 것은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집에서 나와 거리로 가기 위해 택시를 잡았다. 택시 기사는 여기저기에 주름살이 진 60대 정도의 초라한 인상을 가진 남자다. 택시 기사의 전라도 억양이 S의 귀에는 거슬린다.
“젊은이, 어디까지 가는가?”
“XX거리요.”
택시는 곧 XX거리 한가운데에 도착 한다. 펑 뚫린 거리. 이 도시의 번화가다. 수많은 불빛들이 보인다. 미치기 좋은 곳이라고 S는 생각했다.
“다 왔어.”
그는 택시비를 내지 않았다. 당연한 것이다. 나는 일상의 인물이 아닌걸, S는 생각했다. 그는 그냥 택시에서 내렸다. 택시 기사는 분명 “돈을 주셔야...” 라고 했으나 그는 그냥 내렸다. 거리에는 사람이 무척 많았다. 그러나 그는 내렸고, 택시 기사도 따라 내렸다.
“이 새끼가 어딜 튀어!”
그러나 S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냥 걸어간다. 알게 뭔가. 자신은 돈을 내는 일상의 인간이 아니다.
“야 이 새끼야, 얼른 돈 안 내?”
택시 기사는 분노하며 택시를 돌아 S를 잡는다. S는 택시 기사가 자신의 옷 주름을 잡자, 스포츠 스타 S의 기억을 떠올린다. 게임 속의 S는 수많은 수비수들의 마크를 뚫고 덩크를 한다. 지금은 그런 상황이다. 택시 기사 복장을 한 60대의 수비수가 거친 수비를 하는 중이다. 거친 수비를 하는 수비수들은 흔히 상대방의 유니폼을 붙잡곤 하니깐. 거기다가 이 수비수는 S에게 트래쉬 토킹을 하는 중이다. “Mother Fucker! You can't dunk on me!(이 새끼야, 넌 내 위로 덩크 못 해)" S는 자신이 어떻게 대응해 줘야할지 알고 있다. 그는 주먹을 택시 기사의 얼굴에 내리 꽂는다. “Facial Dunk!" S는 분명 그렇게 외쳤다. 택시 기사의 코가 부러지고, 그는 얼굴을 감싸 쥐면서 쓰러진다.
“저 새끼가 쳤어... 자식 같은 놈이, 나가 니 엄마보다도 나이가 많을낀디, 이 새끼야. 악.”
S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택시 기사를 발로 계속 밟으면서 소리 친다.
“S 선수, 지금 승리의 포효를 외치고 있습니다!”
거리의 모든 사람들이 S를 혐오스럽거나 두려워하는 눈으로 쳐다본다. 이 상황에 연루되고 싶지 않은 이들은 재빨리 도망쳐버리고, 그나마 자신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우선 경찰에 신고를 한다. 그러는 동안에도 S를 직접 말리려는 사람이 별로 없다. S는 이에 더더욱 의기양양 하여, 택시 기사를 좀 더 세게 짓밟는다. 이러다간 택시기사가 죽으리라는 건 명약관화 해보이고, 결국 두리번거리다가 한 명이 어이없어 하는 표정을 지으며 나선다. 그가 소리친다.
“야 이 새끼야, 그만 두지 못해? 어디 아버지뻘의 분에게.”
S가 짓밟기를 멈추고 뒤돌아본다. 용기 있게 달려온 이 사내는 그런 표정은 처음 봤을 것이다. 강을 건너버린 표정. 그건 정상인들의 입장에서 화가 나기보다는 무섭다. 이 사내도 그런 느낌이라서 순감 움칫했다. 그러나 군중 속에 섞여 있는 그의 여자 친구는 간신히 사귄, 그것도 자신이 꽤나 운동 잘하고 남자답다고 해서 사귄 여자다. 이런 여자 앞에서 그는 물러설 수는 없다. 그래서 그는 우선 버틴다.
“이 새끼야. 네가 그런 표정 지으면 내가 무서워서 떨기라도 할 것 같냐?”
S가 이 사내와 대치하는 동안 택시 기사는 간신히 기운을 내서 뒤로 기어 물러난다. 그때서야 사람들이 여러 명 다가가서 조심조심 택시 기사를 S에게서 떼어 놓는다. 택시 기사의 얼굴은 심하게 부어서 알아보기 힘들 지경이다. 몇몇 사람이 그러는 동안, 나머지는 S와 용기 있는 사내가 서로 노려보는 것을 지켜본다. 누구는 벌써 휴대폰 동영상 같은 걸 녹화하고 있다.
S는 그냥 다가온다. 겉보기에 S는 뚱보 오타쿠 같은 생김새가 별 것 아닌 것처럼 느끼게 하지만 지금 S는 너무도 무심한 눈빛을 하고 있기에 이 사내는 S가 질린다. 이런 종류의 표정은 처음이다. 이 녀석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S가 그 틈을 타서 빠르게 달려 오더니, 사내의 사타구니를 발로 힘차게 친다. 그곳에 느껴지는 심각한 통증으로 사내는 오묘한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다. 그리고 S가 한 번 더 외친다.
“바스켓 카운트, 원 프리드로우!”
그리고 S는 승리의 포즈를 한번더 취한다. 쓰러진 사내를 향해 총을 쏘는 시늉을 하는 것이다. 구경하는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고 S에게는 그것이 관중의 함성으로 들린다. 잠시 그는 바스켓 카운트의 감동을 만끽하고 있다가 여전히 사타구니쪽을 잡고 신음하는 사내의 머리를 발로 냅다 걷어찬다. 사내는 쓰러지면서 생각한다. 아마도 이게 프리드로우 대신인 모양이라고.
이 쯤 되자 사람들은 질렸고 아무도 함부로 나서지 않는다. 다들 원을 이루고 있지만 그냥 보고 있을 뿐이다. 너무 무서워져서 적당히 빠져 나가는 사람들도 있다. S는 쓰러진 사내를 앞에 두고 그냥 혼자서 뭐라고 중얼거린다. 가끔 몸짓도 한다. 혼자서 다른 덩크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가끔 소리 지른다.
“윈드밀 덩크!”
그럴 때면 사내는 한대씩 더 얻어맞는다. 사내가 거의 다 죽어가게 되자, 사람들이 가까스로 나서서 S를 제지하려고 든다.
하지만 S는 그렇게 녹록한 사람은 아니다. 사람들은 섣불리 S곁에 왔다가 그가 집에서부터 가지고 온 식칼에 배를 베이거나, 아니면 손가락이 잘리는 피해를 입는다. 사람들이 피가 솟구치는 배를 붙잡거나, 아니면 잘린 손가락 부위를 붙잡으면서 비명을 지른다. S는 얘기한다.
“이런 농구 경기에 칼은 안 쓰는데, 조심해야겠네.”
S가 웃는다. 그는 그 채로 서있다. 사람들이 쓰러지려고 하고 있고. 몇몇 사람들이 급하게 119에 전화를 한다. 더 이상 S에게 다가가려는 이는 없다. 그 채로 어느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바뀐다. 6~70년대 어떤 가수가 부른 구수한 트로트다. 그러나 이 노래가 S에게는 다른 노래로 들린다. <We are the Champion>. 스포츠 스타로서의 자신의 상황을 잘 반영해주고 있는 노래라고 S는 생각한다. 그는 가만히 서 있다. 가끔 그는 음악의 리듬을 타는 듯 손을 가볍게 흔든다. 마치 1점차 지고 있는 상황에서 버저비터를 성공시키고 감동하고 있는 선수 같다. 보컬이 나오는 부분에서는 그도 같이 부른다. 그는 노래도 잘 부르지 못한다. 온갖 삑사리로 사람들의 귀를 질리게 하지만, 그는 계속 노래를 부른다.
“위 아 더 챔피언, 마이 프렌드. 앤 위 윌 키 폰 파이팅 틸 디 엔드~”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다른 사람들이 같이 불러 줄 것이라는 생각 같은 걸 하는 것 같다. 사람들은 트로트 노래가 흘러나오는 도중 태연하게 <We are the Champion>을 부르고 있는 그를 보고 질려서 한두명씩 이곳을 떠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S는 이렇게 생각한다. 아마도 사람들이 1점차로 승리한 T팀의 경기에 기분이 좋아져서 돌아가는 거라고.
여전히 택시 기사와 용기있던 사내와 그리고 칼에 베인 몇몇 사람들은 S 근처에서 신음 하고 있다. 무척 아프다. 택시 기사는 곧 죽어갈 것처럼 숨을 헐떡여댄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S는 생각한다. 그들은 나의 동료다. 너무 기뻐서 지금 여기에 쭈그리고 앉아 감동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자신도 기쁘다. 이래서 S는 농구를 좋아한다. 옛날부터 그랬다. 아버지가 S에게 농구공을 보여주던 그때부터 말이야. 그는 ESPN 인터뷰에서 얘기했다. 기자가 물었다.
“이건 늘 묻는 질문이지만 말입니다. 언제 농구를 좋아하게 되었습니까?”
“그거요... 늘 하는 대답일까 모르겠네요(웃음). 저희 아버지가 제게 농구공을 처음 보여준 게 제가 7살 때쯤 되었을 거예요. 지금도 그 순간을 잊지 못 합니다. 어린 녀석이 뭔가 운명 같은걸 느꼈나 봐요. 그때부터였겠죠.”
“그렇습니까? 왠지 멋진데요. 다른 주제로 넘어가 볼까요. 늘 생각하지만 당신의 농구 능력은 경이로운데요. 3점슛에다 스펙터클한 덩크를 터뜨리는 센터라. 이런 센터는 지금까지 흔치 않은데요. 그런 실력은 어떻게 갖춰진 겁니까?”
“전 중학교 때 학교에서 스몰 포워드를 봤습니다(기자 놀란다). 아 역시 믿기 힘드시겠지만, 그래서 그땐 3점슛이 오히려 주 연습 대상이고, 그래서 손에 3점슛이 붙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땐 점프력도 좀 되서 고등학생 정도 되면 좀 더 멋진 덩크도 가능하겠다고 생각했죠. 그땐 아직 보통 덩크만 하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고등학생이 되면서 갑자기 키가 급격히 크기 시작했습니다. 참 그 순간은 놀라워요. 중학교 졸업할 때가 키가 189cm였는데, 고등학교 졸업할 때 키는 벌써 219cm가 되어 있었죠. 대학교 2학년 때까지 마치니까 키가 약간 더 커서 222cm가 되고, 그대로 nba에 들어온 겁니다.”
“굉장한 행운이네요.”
“그렇죠, 저도 늘 제 삶에 감사합니다.”
...(중략)
“그럼 마지막으로 그 승리의 포즈 한번 취해 주세요. 벌써부터 그 포즈가 나올때마다, 토론토 관객석은 난리가 나는데요. 한번 보여 주세요.”
“예, 그럼.”
난 그런 녀석이다. 이런 기쁨 때문에 농구를 좋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기쁨 속에서...

경찰 하나가 오고 있다.
S는 여전히 손가락으로 총질을 해대고 있다. 사람들은 쓰러진채 신음하고 있다. S는 경찰을 본다. 이성의 강을 넘어버린 그 순간에도 어떻게 경찰만은 기억했을까. S는 여전히 신기해한다. 경찰이 가까워진다.
“이 자식아! 얼른 무기 버리고 항복해.”  
S는 구경하던 사람들을 뚫고 달린다.
혼비백산 하여 흩어지는 사람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소곤소곤 대고 있는 것을 듣는다.
“저런 사람도 여자친구라는 게 있을까?”
“글쎄...”

여자친구.
S는 깨닫는다. 자신이 여자친구에 대해 잊고 있었음을.
그는 방금 경기에서 1점차로 승리했다. 이 기쁨을 자신의 여자친구와 함께 누려야만 한다.
경찰에게 쫓기던 그는 행선지를 바꾸기로 한다. 여자친구의 집으로. 뒤를 돌아보니 경찰은 계속 그를 쫓아오고 있다. 성가시다. 저 녀석을 따돌려야 한다. S는 멈춘다. 그리고 생각한다. 난 스포츠스타 S다. 저 녀석은 또 다른 수비수일 뿐이다. 난 지금 수비수의 마크가 두려워 도망가고 있다. 이건 계집얘들이나 할 짓이다. S는 등을 돌려 경찰에게 다가간다. 경찰은 당황한다. 그러나 그는 경찰이기에 그런 기색을 애써 숨기고 S에게 소리 지른다.
“무기를 버려라!”
S는 그 말에도 멈추지 않는다. 그는 식칼을 들고 태연히 그에게 달려간다. 경찰은 점점 두려워진다. 그는 이제 초짜다. 파출소에 비번이 자신 밖에 없었음이 참 원망스럽다. S가 점점 가까워지자 당황한 그는 그때서야 허리춤에 있는 총을 꺼내 장전한다. 그리고 쏘려고 했으나 너무 늦었다. 가까워진 S가 이미 경찰을 식칼로 찔렀다. 경찰은 칼에 찔린 고통으로 힘없이 쓰러진다. S는 소리친다.
“One more great Facial Dunk(또 하나의 굉장한 페이셜 덩크)!"
쓰러진 경찰이 손에 총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자, S는 여자친구를 위한 좋은 이벤트가 떠오른다.

“누구세요?”
“나야. 문 열어.”
“야, 너. 연락하지 말라고 했잖아.”
“일단 열어봐. 중요한 일이야.”
S의 여자친구가 내키지 않지만 우선 문을 연다. 그리고 그녀는 한손에는 피가 굳어있는 식칼, 한손에는 총을 들고 있는 S의 모습을 본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면서 뒷걸음질친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S에게는 T팀의 1점차 승리에 기뻐 지르는 비명으로 느껴진다.
“그래. 오늘 우리 팀이 이겼어.”
“살려줘요! 누구 없어요? 살려줘요!”
“그래서 널 위해 특별한 걸 준비했어.”
“S야, 이러지마. 난, 난, 다시 사귈 수도 있어. 그냥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생겨서 한 말이야. 응? 제발.”
“자, 잘 봐 너만을 위한 사랑의 총질이야. 특별히 너를 위해 소품도 준비 했어. 진짜 총같지?”
“제발, 이러지 마세요. 제가 잘못했어요. 제발요.”
“자, 그럼 간다. 너만을 위한 제스처!”
탕.
그 소리가 현실속의 S를 깨운다. 그는 자신의 손에 들린 총과 식칼을 본다. 그리고 자신의 눈앞에서 눈알을 부라리며 쓰러져 있는 자신의 여자친구를 본다. 그녀의 가슴에서 피가 줄줄 흐르고 있다. S는 그때서야 깨닫는다. 내가 죽였다. 내가 여자친구를 죽였다. 자신의 칼에 묻은 피도 본다. 내가 또 누군가를 죽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내가. 견딜 수 없어서 그는 괴성을 지르며 그곳을 뛰쳐나온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다. 어디로 가면 좋을지. 어디론가 숨고 있다. 세상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갈 곳은 자신의 집 밖에 없다.

마구 어질러져 있다. 아까 나갔을 때와 같은 모습. 여전히 컴퓨터는 분해 된 채 나뒹굴고 있다. 그는 도망칠 곳이 없다. S는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그 게임이라도 한번 더하고 죽을 수 있을까. 그 게임만 꾸준히 했다면 10년 정도 스포츠 스타 S의 활약을 볼 수 있을 텐데. 하지만 지금은 컴퓨터는 나뒹굴고 있다. 다시는 켜지지 않으리라.
탕탕.
닫힌 그의 문에 누군가가 노크를 한다.
“경찰입니다. S씨 안에 계십니까?”
S는 생각한다.
“당신이 안에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왔습니다. 얼른 문을 여세요.”
그는 이제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음을 알았다. 더 이상 현실속의 S는 도망 갈 곳이 없다. 그러나 분명 스포츠 스타 S에게는 도망갈 곳이 있을 것이다. 그는 한번 더 스포츠스타 S의 삶을 생각한다. 난 스포츠 스타 S다, 난 스포츠 스타 S다.

스포츠 스타 S는 드디어 보았다.
창문 밖에는 분명 골대가 있다.
난 저기에 덩크를 할 것이다.
지금은 속공 상황이고 수비수들이 뒤에서 나를 쫓고 있다.
그러나 나의 스피드는 저들보다 빠르다.
S는 창문 밖으로, 그의 눈에만 보이는 그 골대를 향해 뛰어 내린다.
그리고는 손을 뻗어 그 골대에 매달리려고 한다.
그 채로 그는 바닥에 떨어지고 머리가 깨져 버린다.
그러나 흐릿해져가는 의식 속에서 S는 ESPN 아나운서의 흥분된 목소리를 듣는다.
“Dr.S! He makes spectacular dunk! It is the first dunk in his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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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덩크슛1 모리스 2009.03.04 0
1292 단편 기억변기의 편지 모리스 2009.03.04 0
1291 단편 약속의 대가1 Peter 2009.03.02 0
1290 단편 [단편습작] 하늘의 어머니 xent 2009.03.01 0
1289 단편 [퍼옴] 개를 기다리며1 르혼 2009.02.27 0
1288 단편 말하는 화초2 초극성 2009.02.26 0
1287 단편 죽음과 소녀1 룽게 2009.02.24 0
1286 단편 곰인형.2 고담 2009.02.24 0
1285 단편 여우 노래2 whoi 2009.02.18 0
1284 단편 행복 과자2 레이 2009.02.14 0
1283 단편 그림자들 2009.02.13 0
1282 단편 우주 생태계 니그라토 2009.02.08 0
1281 단편 초승달 두 개.3 라퓨탄 2009.02.06 0
1280 단편 범인은 스티븐이다.2 선반 2009.02.05 0
1279 단편 에덴 광산의 어머니1 김몽 2009.02.05 0
1278 단편 왕자와 공주, 그리고 마녀가 나오는 이야기3 270 2009.02.04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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