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곰인형.

2009.02.24 00:3602.24




나는 그럭저럭 평범한 대한민국 청년이다.
그리고 어떤 우라질 년을 족치러 가는 중이다. 왜냐고? 그 예기는 하자면 길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그년이 나의 이 더러운 성질을 알면서도 임신을 했니 어쩌니 하며 나지도 않은 애새끼를 핑계로 나를 엿먹인다는 것이다.
사랑? 그저 좋을대로 데리고 잠이나 잤을뿐이다. 빨아먹을 단물이 좀 남았다면 그까짓 말 한마디 쯤이야 간단하지. 막말로 계약을 했나 지가 나랑 결혼을 했나? 앞길 창창한 이십대 청춘에 그것도 대한민국 사나이가, 한창때 기집년들 좀 후릴수도 있고 더러 실수도 할 수 있는거다. 좋은게 좋은거다. 그래서 지우라고 돈까지 쥐어보내지 않았느냔 말이다.
사실, 나도 그년이 지금 어디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막연한 추측만으로 옮긴 발걸음이 어느새 집 문앞까지 닿았을 뿐.
예전에 그년과 내가 잠시 살았던 그년 소유의 반 지하방이다. 고리가 헛돈다. 문이 열려있다.
드드드득.. 희미한 미싱소리가 문틈을 타고 흘렀다. 나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자신만만하게 문을 열어젓혔다. 쾅!
미싱도는 소리가 멎었다. 그년이 놀라서 나를 쳐다봤고 나도 그년을 쳐다봤다. 그년의 옆에는 언제나처럼 봉제인형이 수북하게도 쌓였다. 하나 박는데 삼십원인가, 아마 그럴거다. 나는 그년을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그년의 눈동자는 고요했다.
내가 원하는 겁에질린 눈빛도, 표정도 없다. 마치 인형같이 반질한 검은 눈동자가 나를 비난하듯 올려다 보고 있다. 그 눈을 꺾어버리고 싶었다. 나는 미친듯이 밟고 차고, 그리고 그년의 밥줄인 미싱기계를 철저히 박살냈다. 내게 거스르면 어떤꼴을 당하게 되는지 톡톡히 보여줄 것이다. 마침내 내 발길질이 깔끔하게 봉제된 인형들에게 향하자, 그년은 그제서야 내게 정신없이 매달렸다.
하지만 소용없다. 니년이 감히 나를 엿먹이고도 살아남길 바랐나.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리고 그것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힘이 좀더 들어가서, 그리고 그년은 미싱다이에 머리를 세게 찍힌후 그대로 꼬꾸라졌다.
예전에는 좀 봐 줄만했던 몸매. 그 몸이 종잇장마냥 널브러졌다.
예전에는 좀 봐 줄만했던 얼굴. 그 얼굴이 더운피를 쏟았다.
예전에는 좀 봐 줄만했던 눈동자.
그년의 눈동자가 허여멀건하게 홉뜨였다. 그리고 순간 드는 생각은 '이거 정말?' 또는 '이거 혹시?' 였다.
널부러진 손이 잔 경련을 일며 내 발치 쪽으로 향했다. 그러더니, 푹 꺾여버렸다.
그래……그래 진정하자. 이건 내 잘못이 아니다. 어디 내가 사람을 죽일만큼 악한이었던가? 나는 그 정도의 쓰레기는 아니다.
그러므로 이건 모두 저 망할년이 자초한거다. 저 병신같은 꼬락서니 좀 보소. 좀 밀쳤기로서니, 몸이 무슨 두부인가?
이래서 기집년들은 안된다니까.
나는 그년의 손이 향하던 발치를 물끄러미 내려다 보았다. 딱 발바닥 크기만한 봉제인형이 발에 밟혀있다. 이건 또 뭐가 그리 좋았는지 아예 리본까지 달았다. 다른 인형들과 마찬가지로, 이놈도 곰인형이다.
나는 가만히 그 인형을 집어들었다. 확실히 다른인형들과는 뭔가 달랐다. 이제 보니 바느질도 더 꼼꼼하게 신경을 많이 썼던 모양새다.
그것을 그냥 물끄러미 쳐다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열어보자. 그년이 무슨 보물이라도 숨겼는지 알게 뭔가. 혹시 그동안 모아놓은 돈이 조금 있을지도 모른다.
퍼뜩 떠오르는 돈이라는 수식어에, 나는 미친듯이 인형의 배를 후벼파기 시작했다. 더럽게 피를 질질 흘리는 그년의 시체따윈 안중에도 없다. 어디 산속에라도 가져다 파묻어버리면 되겠지.

낡고 닳아빠진 헝겊인형의 속에는
말라 비틀어진, 작은 손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고담이라고 합니다.
처음 올리는 단편글이 이 모양이라 못내 죄송스럽네요;
댓글 2
  • No Profile
    라퓨탄 09.02.24 01:36 댓글 수정 삭제
    잘 읽었습니다. 끔찍한 이야기군요.

    좋을대로, 어느새, 바랐나, 홉뜨였다, 쓰레기 정도는 교정을 해주셔야할 것 같습니다.
  • No Profile
    고담 09.02.24 03:37 댓글 수정 삭제
    부끄러운 실수입니다. 오타지적 감사드려요.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수
공지 2024년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공고 mirror 2024.02.26 1
공지 단편 ★(필독) 독자단편우수작 심사방식 변경 공지★5 mirror 2015.12.18 1
공지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 (3기 심사단 선정)4 mirror 2009.07.01 3
1297 단편 사랑 레이 2009.03.08 0
1296 단편 테러리스트 세이지 2009.03.07 0
1295 단편 緩步 2009.03.05 0
1294 단편 거울속의 거울속의 거울속의...1 緩步 2009.03.04 0
1293 단편 덩크슛1 모리스 2009.03.04 0
1292 단편 기억변기의 편지 모리스 2009.03.04 0
1291 단편 약속의 대가1 Peter 2009.03.02 0
1290 단편 [단편습작] 하늘의 어머니 xent 2009.03.01 0
1289 단편 [퍼옴] 개를 기다리며1 르혼 2009.02.27 0
1288 단편 말하는 화초2 초극성 2009.02.26 0
1287 단편 죽음과 소녀1 룽게 2009.02.24 0
단편 곰인형.2 고담 2009.02.24 0
1285 단편 여우 노래2 whoi 2009.02.18 0
1284 단편 행복 과자2 레이 2009.02.14 0
1283 단편 그림자들 2009.02.13 0
1282 단편 우주 생태계 니그라토 2009.02.08 0
1281 단편 초승달 두 개.3 라퓨탄 2009.02.06 0
1280 단편 범인은 스티븐이다.2 선반 2009.02.05 0
1279 단편 에덴 광산의 어머니1 김몽 2009.02.05 0
1278 단편 왕자와 공주, 그리고 마녀가 나오는 이야기3 270 2009.02.04 0
Prev 1 ... 78 79 80 81 82 83 84 85 86 87 ... 147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