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범인은 스티븐이다.

2009.02.05 20:0102.05

10월 7일 수요일. 하늘은 맑았다. 나는 가만히 뒹굴 거리며. 아니, 이건 말이 안 되지. 그냥 침대에서 뒹굴 거리며, 오늘은 뭘 할까, 하고 고민하다가 밖으로 나갔다.
그냥 돌아다니다가 집으로 왔다. 현관문을 열고 있으려니, 옆집 아줌마, 이름은 모르겠다. 내가 사교성이 없는 것이 아니……지도 않지만, 그게 무슨 문제가 될까. 어쨌든 그 아줌마가 사교성이 없다. 그러고 보니 처음 이사 왔을 때 이름을 들은 것 같기도 한데?
어쨌든 그 아줌마. 아니, 아줌마라 하기에는 좀 어린 나이지, 이제 30대에 접어들려나? 어쨌든 그녀는 뭐랄까? 다크하다. 그러니까, 폐쇄적이다. 들은 바로는 딸이 죽었다나? 강간당한 후 살해당했다고 들었다. 마침 내가 이사 오고 얼마 후였지.
쓸데없이 말이 길었군. 하여튼 그 아줌마가 내게 다가오더니,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명함크기의 종이었다. 뭐라고 쓰여 있는 듯 했지만, 그녀의 손가락에 가려져 보이지는 않았다.
“…….”
“…….”    
그녀도 침묵하고, 나도 침묵했다. 나는 손을 내밀어 그것을 받았다. 그녀의 손가락에 가려져 있던 글씨가 들어났다.
‘뒷면을 보면 죽는다.’
나는 종이를 뒤집었다. 반사적인 행도이었다. 그러니까, 내가 죽음에 이르게 되는 불가피한 과정, 뒷면은 백지였다.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봤을 때, 그녀는 식칼을 들어올리고  있는 중이었다. 검붉은 빛깔을 띠고 있어 불길한 느낌이 드는 식칼이었다. 아무래도 내 머리에 그걸 꽂으려는 의도인 듯 했다. 그러나 공격은 그녀가 먼저 시작했으나, 그녀는 공격이 목표물에 도달하는 거리, 리치가 길었다. 직선보다 빠른 곡선은 있을 수 없다. 나는 손을 쫙 펴 그녀의 목적을 찔렀다. 깊게 파고드는 느낌이 있었다. 그대로 목을 꿰뚫어버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어서 나는, 식칼을 떨어뜨린 채 목을 부여잡고 뒤로 물러서는 그녀의 관자놀이를 손등으로 후려쳤다. 그녀는 휘청거리더니, 마치 던져진 짚단이 땅에 닿는 것 같이 풀썩 쓰러졌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다가, 뒤돌아서서 식칼을 주워들고 다시 그녀에게 다가갔다.
“사커킥.”
전심전력의 사커킥이 그녀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다른 것도 해볼까 했지만, 죽을까 싶어 그만두었다. 물을 말이 있었다. 그녀의 멱살을 틀어쥐며 나는 그녀의 눈을 직시했다. 극도의 긴장감 때문에 입술이 말라 있었다. 나는 입술을 핥고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 그녀에게 물었다.
“바닥이 보이지 않는 깊은 악의를 본 것 같군 그래. 대체 무슨 목적으로 이런 시답잖은 장난을 친 거지? 응?”
그녀와 나는 나이차가 별로 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더 많다.
“내……딸, 내 딸을 돌려줘, 이 살인마 자식아!”
“아따, 시방. 내가 죽인 게 아니라고 했잖아.”
그녀는 믿지 않는 눈치였다.
“스티븐이 죽였어.”
그녀는 믿지 않는 눈치였다.
“음, 헬로, 마이 네임 이즈 스티븐.”
그녀의 눈에 일순 동요의 빛이 들어났다. 내 착각인데, 그녀는 믿는 눈치였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내 착각이다. 실제론 더욱 불신감을 표하고 있었다. 어쨌든 내 착각이지만 나는 흥이 돋아서 말을 이었다.
“요, 걸. 오, 와이 소 시리어스? 음, 할 말이 없군. 아임 파인 땡큐. 바이바이.”
나는 그녀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했다.
나는 그녀의 귓가에 조용히 속삭였다.
“사실 난 고자야. 음, 너무 늦은 것 같군. 이런 말을 하기엔.”

***

막 시체를 집안에다 끌어오는데, 집안에서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졌다. 정확히는 거실. 식칼을 들고 거실로 갔다. 나는 나 자신에게 말했다. 조심해라, 인간이 아닌 것이 거실에 있는 것 같다.
야옹.
하고 우는 고양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거실에서.
“휴.”
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가, 나는 한숨을 주워 담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양이가 내 집에 침입할 수 있는 이유 세 가지가 떠올랐다.
1. 사람과 같이 들어왔다.
2. 사람과 같이 들어왔다.
3. 사람과 같이 들어왔다.
뭐야, 일치하잖아, 하고 생각하고 있을 때, 내 어깨를 건드리는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왼 쪽 어깨를 건드리는 손길, 손길이라. 나는 직감적으로 그것이 인간이라 느꼈다. 누가 내 집에 있는가. 수 만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1. 강도
2. 강도
3. 강도
4. 강도
.....
99999. 강도
100000. 강도
여섯 가지 판단이 단 하나로 귀결된다. 판단이 말한다. 내 뒤의 존재는 강도라고. 뒤돌아서서 칼을 휘두르는 서투른 짓은 하지 않는다. 나는 그대로 칼을 역수로 쥐고(참고로 난 왼손잡이다), 내 겨드랑이 사이로 찔러 넣었다. 나는 기합을 지르며 그대로 밀어붙였다. 덜컥, 걸리는 느낌과, 쿵, 하는 소리로 벽에 닿았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칼날을 더 깊이 쑤셔 넣으며 칼을 비틀었다. 잘 비틀어지지 않았다. 나는 칼을 뽑고는 확인사살을 하듯 다시 찔렀다. 뽑고, 다시 찔렀다. 뽑고, 다시 찔렀다. 뽑고, 다시 찔렀다…….
죽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이번에는 정확히 심장을 노려 찔렀다.
죽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이번에는 뇌를 후벼 파기 위해 눈을 찌르려는데, 문득 죽이고 있던 사람이 익숙한 얼굴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니, 자네는 스티븐이 아닌가. 어쩐지 덩치가 크더라니. 서양인은 확실히 동양인에 비해 덩치가 크지. 그나저나 왜 왔나? 카타나를 들고서 말이야. 아, 음, 죽었군.”
참고로 말하지만, 괴테가 이르기를 감각은 속이지 않는다, 판단이 속일 뿐이다. 라고 말했다.

***

어째서인지 경찰들은 금방 달려왔다. 누군가가 내가 밖에서 아줌마를 죽이던 관경을 봤던가, 아니면 죽은 아줌마가 신고했으리라. 어쨌든 시간적 여유는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죽은 아줌마의 집이 내가 사는 곳 바로 옆이었기 때문에 경찰들이 내 집을 수색했고, 그들에 의해 제대로 숨기지 못한 시체 두 구가 발견되었다.
“제가 연쇄살인범이긴 합니다만, 강간범은 아닙니다. 제 살의가 비록 남녀를 차별하지는 않지만, 노소는 구별하죠. 그리고 저한텐 소아기호증 같은 건 없단 말입니다. 5살짜리 여자애에겐 관심이 없어요.
“지금 그게 나보고 믿으라고 하는 소리냐? 니가 옆집 가족 다 죽였잖아! 그나마 핵가족형태라 세 명이 죽은 것에 그쳤지만, 이건 사회에 감사해야겠군.”
“헐, 이라고 밖에 제 심정을 표현할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는군요. 그게 경찰이 할말인가요. 그리고 애초에 경찰이 잘 했으면 세 명까지 갈 필요는 없었을 것 아닙니까.”
“야 이 새끼야, 그게 살인범이 할 말이냐? 그리고 아무리 그래도 5살짜리는 좀 아니지. 시방, 그게 어른이 할 짓이야?”
“제기랄, 그러니까 강간범은 스티븐이라니까요.”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스티븐이라고?”
“네, 옆집 스티븐이요.”
“네 말은 그러니까 아비가 제 딸을 강간한다고? 야 이 새끼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아나, 진짜 이거 참 못 믿으시네요. 증거도 있어요. 제 집 잘 들쑤셔보면 그때 찍은 사진도 있을 겁니다. 제가 현장이 있었다니까요. 그리고 잘 생각해보세요. 스티븐이 왜 저희 집에 있었겠습니까?”
“니가 딴 데서 죽이고 끌고 왔겠지.”
“아, 진짜 말이 안 통하네. 그니까 스티븐 그 새끼가 칼 들고 찾아왔다고요. 우리 집에. 이게 다 증거를 말살하기 위한 아주 간악하고 비열한 행동 아닙니까? 정말 인간이란 잔인한 족속입니다. 의심도 많아요.”
“시방, 그게 말이 되냐?”
“사실 저 고자에요. 성욕을 풀기위해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이후 나는 연쇄살인범으로 징역형을 받은 후 교도소에 들어갔다. 역시 죄인은 처벌받는가보다. 설마 현세에서 벌을 받았는데 내세에서까지 벌을 받아야 하는 건 아니겠지? 만약 그렇다면, 그건 좀 안타까운데. 뭐, 모르니까. 그냥 아무래도 상관없겠지.
댓글 2
  • No Profile
    라퓨탄 09.02.06 02:41 댓글 수정 삭제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제목 입력을 잘못한 게 아닌가요? [범인은..] 이라고 해야할 것 같은데요..
  • No Profile
    선반 09.02.09 16:01 댓글 수정 삭제
    로그인이 안 되서, 이제서야 겨우 고쳤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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