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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토마토 왕자

2009.02.04 01:0302.04

                                                        토마토 왕자

                                                                                                      이십삼

  시골의 아침, 태양빛은 뜨겁다. 태양을 바라보는 눈은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땀에 젖는다. 눈에 땀이 흘러들어가자 깜빡이는 두 눈에 여전히 빨간 토마토가 보인다. 아무리 눈을 떴다 감아도 사라지지 않는다. 그랬다. 그 거대한 토마토는 아무리 쳐다보아도 사라지지 않았다.

  처음 그 토마토를 발견한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마당 정원에 있는 감나무를 쳐다보던 중이었다. 감과는 다르게 생긴 열매가 눈에 들어왔다. 얼핏 보면 감이랑 구별하기 힘들었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그것은 토마토였다. 그리고 그 괴상한 열매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눈앞에 있다.

  감나무에 매달려있던 토마토는 끝없이 자랐다. 토마토의 바닥 부분이 마당 바닥에 닿을 정도였다. 이렇게 자랄 때까지 왜 가만히 있었냐고 궁금해할만 하지만, 하루 밤사이에 머리통만 했던 토마토가 SUV 자동차만큼 커버렸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김형철씨는 지금 이렇게 어제 하루 밤 사이에 커버린 토마토를 멍하니 바라보던 중이었다.

  “여보, 방송국에 신고해유! 저거면 특종인디!”

  형철씨의 부인이 말했다. 형철씨는 들은 척도 안하고 계속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토마토는 태양만큼 빨갛게 영글었다. 토마토의 껍질에 뿔테 안경을 쓴 형철씨의 얼굴이 비춰 보였다.

  “내가 전화할게, 우리 정말 떼돈 벌었다니깐!”

  형철씨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부인은 생각했다. 저 토마토를 신고하면 분명 꽤나 많은 양의 돈을 받을 테고, 그 돈으로 빚을 갚을 수 있을 것이다.

  부인은 방안으로 들어가 전화기를 붙잡았다. ‘시상에이런일이어딨어유’ 프로그램이 있는 YBS 방송국의 전화는 먹통이었다. 대답 없는 전화기를 보고 부인은 계속 욕지거리를 했다. 인터넷을 할 줄 알았다면 직접 그 프로그램 홈페이지 제보 게시판에 사연을 올렸을 것이다. 대학에 다니는 하나뿐인 딸애가 하숙을 하느라 집에 없었기 때문에 시키지 못하는 게 아쉬웠다. 부인은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발 앞에 떨어질 현금 뭉치를 떠올렸다. 딸애한테 연락할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있었다.

  김형철씨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어느덧 형철씨의 마음은 어렸을 때 들었던 동화를 떠올렸다. 동화의 내용은 희미하게 기억에 남아있었다. 지금처럼 거대한 토마토가 갑자기 마당에 나타난다는 내용이었다. 그 토마토에서는 왕자가 불쑥 나왔고, 집안에 사는 착한 농부에게 소원을 들어준다는 얘기였다. 말없이 토마토를 바라보는 형철씨의 마음은 그 동화를 어머니가 잠자리에서 들려주던 시기로 돌아가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상황에 황당하기는 했지만, 동화속 내용이 실제로 일어날까 부푼 기대를 하는 소년의 마음이었다.

  “어떡한담! 오매, 다른 사람들이 조걸 보면 안 되는데.”

  “여편네야, 안되긴 뭐가 안 돼?”

  형철씨의 눈은 여전히 토마토에 가 있었다.

  “우리가 신고하지 전에 먼저 신고하면, 돈을 못 받잖수!”

  “어허!”

  형철씨의 집은 다른 집들과는 좀 멀리 떨어져있었다. 부인에겐 그게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평소에 이웃들과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는 점도 부인에게는 위안이었다. 부인의 머릿속은 한 시라도 빨리 전화를 걸겠다는 생각으로 뒤죽박죽이 되었다. 흰 쌀밥, 좋은 옷, 딸애한테 보낼 돈, 등록비 등 부인은 그 돈으로 할 일들부터 떠올렸다.

  “아침 좀 먹자.”

  부인은 어떻게 전화 좀 해볼까 하면서도 아침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밥상이 나와도, 밥상 앞에 앉아도 형철씨의 눈은 항상 토마토에 가 있었다. 싸구려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토마토에서 언제 왕자가 나올까하는 기대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다. 밥공기에 밥을 퍼내지만 밥알은 입이 아니라 꾸깃꾸깃한 녹색 셔츠 위로 떨어졌다. 형철씨는 토마토가 꿈틀거렸다고 생각했다. 셔츠에 떨어진 밥풀은 무시한 채 담배 갑을 들고 다시 마당으로 뛰어나갔다.

  이젠 부인의 눈에도 토마토가 움직이는 게 보일 정도로 토마토의 진동이 심해졌다. 부인도 밥숟갈을 상 위로 내려놓았다.

  “오매~ 저, 시방, 저 토마토가 지금 뭐하는겨? 저렇게 뭉개지뿔면 안되는디.”

  “이제 됐어, 조금 있으면 왕자가 나오는겨!”

  형철씨는 자신의 옆에 온 부인을 보고 말했다. 부인은 어떻게 헤야할 지 좀처럼 정하지를 못했다. 이러 저리 왔다갔다 거렸다.

  “아니, 왕자는 무슨 왕자여. 언제까지 옛날얘기만 하는교.”

  토마토 안에서 무언가가 밖으로 나오려는 듯 했다. 길쭉한 것들이 불쑥불쑥 토마토의 거죽을 찢고 나오려고 했다. 형철씨는 손바닥 모양을 보았다고 생각했다.







  기겁하는 부인을 어떻게든 설득하고는 형철씨는 토마토 왕자에게 옷을 입혀주었다. 마치 토마토처럼 빨간 피부에, 과일 껍질 같은 피부였다. 토마토 왕자는 토마토를 뚫고 나오더니 형철씨 앞에서 쓰러졌다. 형철씨는 이제 소원이 이루어지는 일만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했다. 착한 일을 해주어야한다고 말하며 왕자를 집안으로 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부인은 토마토 왕자를 보면서 징그러워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딸아이의 생각이 머리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논 몇 마지기를 구하느냐 쓴 사채도 떠올랐다. 형철씨가 안방에서 토마토 왕자를 돌보는 동안, 부인은 부엌으로 나갔다. 부엌에서 무슨 준비라도 하는 듯 일부러 요란스레 소리를 내면서 전화기로 다가갔다. 다행히 이제는 방송국에서 전화를 받았다. 부인은 지금 당장 와주길 바란다고 속삭였다.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이건 진짜다. 당신들은 특종을 붙잡은 거다. 피디의 입장에서도 당장 며칠 뒤에 방송할 분량이 없어 걱정하던 참이었다. 진짜든, 노망난 아줌마의 제보든 가리지 않고 가기로 마음먹었다.

  “우리는 해꼬지해서는 안되는겨. 왕자는 착한 사람에겐 복을 내린다고.”

  형철씨는 부인에게 말했다. 부인은 물수건을 준비해 안방으로 들어오던 참이었다.

  “암, 그럼요. 근데 이게 정말 ‘토마토 왕자’라고 할 수 있시유?”

  “저 머리털을 보면 모르나? 이 살을 보면 모르나? 초록색 이파리 같은 머리카락에, 빨간 피부면 됐지. 이건 왕자가 맞아. 우린 이제 복덩이를 붙잡은 거야! 우리가 착한 일을 하니까 하늘이 토마토 왕자를 보내주신 거라고.”

  안 그래도 왕자의 뭉툭한 코는 토마토를 떠올리게 했다. 피 대신 과즙이 흐를 것 같았다. 부인은 머릿속으로 얼마쯤 더 기다려야 방송국에서 올까 계산하고 있었다.

  “여보, 만약에 다른 사람이 보면 어쩌지유?”

  “떽! 아무도 우리 집으로 안들여야지! 부정탈라, 왕자는 복을 주실겨. 그러려면 아무나 보아서는 안 돼.”

  “그래도, 왜, 뭐다냐 티비 같은 데 나가고 하면, 돈 좀 벌 수 있지 않을까유?”

  “돈보다 중요한 게 있는겨! 그리고 막말로 우리가 왕자한테 잘해주면 고깟 돈보다 더 많은 복을 주실겨! 혹시라도 다른 데 알릴 생각이랑 말어. 재떨이 좀 거실에서 갖고 들와.”

  형철씨는 담배를 품안에서 꺼내들었다.

  “라이터도!”

  “알았시유!”  

  부인으로선 고민이었다. 남편에게 대들기는 아직도 무서웠다. 신혼부터 맞으며 살아온 지 이십년이 훌쩍 넘었다. 꽃 같던 얼굴은 코끼리 가죽이 돼버렸다. 형철씨의 주먹 다짐질 때문이었다. 여자는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거다, 라고 어렸을 때부터 귀에 나사가 박히도록 들어온 소리 때문에 부인은 불만도 못 느꼈다. 항상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지금만큼은 반항을 하고 싶었다. 단숨에 구질구질한 삶을 확 바꿀 기회였다. 딸애도 원하는 공부를 돈 걱정 없이 할 수가 있게 됐다. 방송국에서 보상금만 받으면 말이다.

  “여보, 오늘은 일 하러 안 나가우?”

  재떨이와 라이터를 갖다 주며 부인이 말했다.

  “왕자가 있잖여. 깰 때까정 있어야지.”

  “이 자리는 내가 지키겠수. 잠깐이라도 다녀오시우.”

  영철씨가 담배 몇 개피를 다 피웠을 때, 부인은 떠밀다시피 하며 영철씨를 밖으로 밀어냈다. 체크무늬 모자까지 씌우고는 문을 닫았다. 조만간 방송국에서 오리라.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남편이 돌아오기 전에 찍어서 가면된다. 부인은 이런 생각에 잠겨있었다. 마당을 서성였다. 대문을 열고 길을 내다보았다. 멀리서 동네 꼬마들만 돌아다니는 게 보였을 뿐, 외지인이나 방송국 차량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점액처럼 부서진 토마토를 보았다. 치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저 흔적들도 보여줘야 하니깐.

  한 시간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부인은 벌써 조급해졌다. 어떡하면 되나, 남편은 언제 올지 모른다. 그 때 부인은 집 안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다. 어버버 하는 소리였다. 놀란 마음에 부인은 유리창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빨간 사람이 안방을 밀어재끼고 기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부인은 남편을 쫓아낸 걸 후회했다. 오금이 저렸다. 눈이 마주친 왕자의 입이 벌려졌지만, 그 안은 토마토 속이랑 다를 바가 없었다,










  영철씨는 논마지기를 대충 훑어보았다, 오늘은 일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얼른이라도 다시 집 안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바로 들어가면 부인이 뭐라 그럴까봐 조금이라도 시간만 때우고 가자, 라는 마음이었다. 어머니가 들려주었던 토마토 왕자를 다시 생각했다. 토마토 왕자는 착한 농부 부부에게는 소원을 들어주었다. 착한 농부 부부는 따도, 따도 곧 바로 열매가 다시 맺히는 토마토 나무를 선물 받았다. 덕분에 그 부부는 돈 걱정, 먹을 걱정 없이 살 수가 있었다.

  반면에 바로 옆집에 살던 맘씨 고약한 잡화상 부부는 저주를 받았다. 잡화상 부부는 토마토 왕자가 옆집에 생기는 걸 보고 욕심이 동했다. 저 빨간 사람을 훔쳐다가 구경거리로 끌고 다니면 돈 좀 벌겠다고 생각했다. 착한 농부 부부가 집을 비운 사이, 잡화상 부부는 빨간 사람을 데리고 달아났다. 하지만 잡화상 부부는 저주를 받아 토마토로 변해버리고 말았다.

  그루터기에 앉아서 이런 저런 생각을 떠올리고 있을 때였다. 영철씨는 멀리서 흙먼지가 날리는 것을 보았다. 검은 색 밴이 집으로 가고 있었다. 밴이 가까이 오자 영철씨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밴이 멀어지자 영철씨는 집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급한 마음이 들어 뜀박질을 했으나 곧 숨이 찼다. 영철씨에게 어머니가 토마토 왕자 얘기를 들려주시면서, 절대로 우리와 좀 다른 사람에게 해코지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했던 것이 떠올랐다.

  대문은 반쯤 열려있었다. YBS 라고 적힌 검은 색 밴은 문 앞에 세워져있었다. 걸어오느냐 가라앉은 숨처럼, 집도 밖에서 보기에는 조용했다. 아내를 큰 소리로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영철씨가 대문을 마저 열자, 아침에 보았던 커다란 토마토를 또 다시 볼 수 있었다. 이번에는 토마토가 다섯 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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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경험! +_+
이렇게 버진을 잃네요. 웃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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