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고양이는 하늘양을 꿈꾼다
1
내가 밤고양이를 처음 만난 건 오랜만의 도심지 사냥을 마친 후, 혼자 돌아온 동굴 앞에서 였다. 그는 회색 비가 쏟아지는 입구 근처에 죽은 듯이 축 늘어져 있었다. 나는 처음엔 변종 벌레 같은 거라고 생각했었지만(일반적인 고양이들과는 달리 겨우 팔목 정도의 크기였다.) 가까이서 보니 얼굴 생김새나 수염도, 크기만 작았지 고양이가 맞았다. 아주 새까만 몸이 숨을 내쉬며 아주 조금씩 움직였다.
곧바로 죽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고양이들은 위험한 생물이었으니까. 주로 폐허 그림자 속에 숨어있는 그들은 날카로운 노란색 눈을 번뜩이며, 사람 하나 정도는 순식간에 찢어놓는 위험한 사냥감이었다.
이 녀석은 몸집이 작으니 아직 새끼거나 무리에서 버려진 변종일테지만, 위험한 건 마찬가지였다. 나는 다가가서 창을 목에다 대고 밀어 넣으려 했다. 그런데,
“안돼, 미르샤……. 도망가…….”
하고 고양이가 중얼거렸다.
분명 인간의 말이었다. 나는 이내 환청이라고 생각했지만, 한 번 멈춘 손은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눈썹을 찌푸린 채 잠시 고민하다 창을 거두었다. 이 정도 크기면 내가 먼저 당할 일은 없을 것 같았으니까……. 이런 고양이는 처음이니, 한 번 지켜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의 몸을 챙겨서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밤고양이는 두 시간 쯤 후에 깨어났다. 모닥불 근처에 던져 놓았던 몸이 움찔, 하더니 천천히 움직였다. 나는 잠시 졸고 있던 터라 화들짝 깨어나 옆에 둔 창을 집어 들었다.
그는 눈을 반쯤 뜨고서 나를 바라보았다. 그건 보통 고양이와는 달리 자신의 털처럼 새까만 눈이었다.
“……인간?”
그가 말하는 순간 화들짝 놀랐다. 빗속에서 들은 게 환청이 아니었다니……. 아니, 솔직히 미심쩍기는 했었다. 밤고양이는 인상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제기랄, 그대로 폭파당한 건가. 행성이 그 지경이 됐는데도 추격해오다니, 끔찍한 에슬란 놈들.”
고양이는 비틀거리며 일어나려다 풀썩 쓰러졌다. 다시 움직여보려던 그는 잘 안되는 지 한숨을 푹 내쉬고서 지친 눈으로 날 올려다 보았다.
“이봐, 인간……. 날 좀 일으켜 주지 않겠어?.”
그러나 난 눈을 치켜뜬 채 아직 창을 겨누고 있었다. 하지만 고양이는 차분하게 나를 바라볼 뿐, 기다란 꼬리만 살짝 들었다 내리면서 그림자를 만들어 냈다.
나는 한참 후에야 함정이 아니라고 판단하고서 조심스레 다가가 몸을 밀어준 후 물러났다. 고양이는 비틀거리며 물러나 벽에 기대어 앉았다. 꼭 사람 같은 자세였다. 밖은 빗소리만 잔잔하게 들리는 가운데, 고양이는 나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너는……. 인간들 중엔 예쁜 편이겠구나. 그렇지? 보라색 눈이라니. 마치 성운을 보는 것 같군.”
당연히 말하는 고양이가 훨씬 신기한 일인데도 그는 그렇게 말했다. 그 즈음 되자 나도 그가 먼저 공격할 거란 생각이 들진 않았지만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고 있었다.
그는 조금 쌔근거리며 나를 응시하다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게 경계하지 않아도 돼. 내가 걸친 것 중에 굴러가는 건 통역장치 정도 밖에 없는 것 같거든……. 아냐, 잠깐. 이거 제대로 굴러가고 있나? 인간, 지금 내 말을 이해할 수 있어?”
나는 신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런 나를 빤히 보았다.
“너, 말을 못하니?”
다시 한 번 살짝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렇군……. 아무튼, 당신은 그렇게까지 잔인해 보이진 않는 걸?”
고양이는 늘어진 채 씨익 웃어보였다.
사실 나는 그 때 이미 고양이의 얼굴로 그런 표정들을 보는 게 재밌어졌지만, 겉으론 내색 하지 않았다. 그 때 그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그러자 그는 앞발을 들어 자신의 배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나는 웃겨 창을 떨어트릴 뻔했다.)
“봐. 지금도 당신이 여길 찌르면 끝나잖아. 아무 것도 안줘도 끝날 거고……. 무엇보다 당신이 쓰러진 날 여기로 데려온 거잖아? ‘밤고양이’들은 은혜를 입은 상대를 잊지 않아."
그런데 그렇게 말한 그는 자신이 말한 내용 때문에 생각에 잠기는 듯 했다.
"아니지…….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과거에는 그랬어…….”
밤고양이는 새까만 눈이 흐려지며 내가 아닌 누군가를 응시했다.
"용서해줘."
어딘지 비어버린 것 같은 그 눈을 한참동안 지켜본 나는, 천천히 창을 내려놓았다.
그날 밤 어느 정도 기운을 차린 밤고양이는 내게 사정을 설명해 주었다.
그는 하늘 너머 먼 별에서 왔는데 행성에서 거대한 전쟁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땅 전체를 불태우는 거대한 폭발 속에서 간신히 도망쳐 나오는데 성공했지만, 추격은 끈질겼고 그는 간신히 '지구'로 떨어졌다고 했다. ……나로선 도무지 무슨 뜻인 지 알 수 없었지만 그냥 가만히 들어 주었다.
밤고양이는 자신의 털을 핥으며 말했다.
“사실 이런다고 별 희망은 없어. 그래, 어쩌면 누군가 내가 마지막으로 보낸 구조신호를 받았을지도 모르지. 찾는데는 아마 몇 달. 아니, 어쩌면 몇 년 정도 걸리겠지만.”
그는 태평스레 말하다 쿨럭이며 인상을 찌푸렸다.
“이 곳 대기에는 익숙해지지 않는군. ‘호흡장치’가 반 쯤 박살이 났으니……. 아마 오래는 못 견디겠지. 젠장, 박하잎이 땡기는 구만.”
호흡장치, 우주선, 가족, 전쟁. 그가 쓰는 말 중엔 모르는 단어가 많았지만 나도 사정은 대충 이해할 수 있었다. ‘밤고양이들은 전투에서 졌고, 그는 무리에서 낙오되었다.’ 하지만 그럼 큰 일이 아닌가 해서 다시 한 번 물어보자 밤고양이는 태연하게 대답했다. "며칠 있다 동료들과 만나게 될 것이다. 그 때까지만 신세를 지겠다."라고. 나는 조금 헷갈렸지만 이후의 태도를 볼 때 별 문제는 없는 거라고 판단했다.
밤고양이는 다양한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준 육포를 씹어댔는데, 나는 그가 그 '말린 고양이 고기'를 먹을 때마다 기분이 이상해졌다. 정작 그는 아무렇지 않았지만 말이다.
“‘고양이’가 주식이라니 확실히 독특하네. 확실히 다른 곳에서도 2m가 넘는 덩치의 고양이들을 본 적이 있어. 그래도 이런 척박한 행성에서도 고양이가 살아남는 건 무척 고무적인 일이야……. 하지만, 나를 걱정하진 마렴. ‘고양이’들이 우리와 닮긴 했지만 사실 염색체는 나팔꽃과 당신만큼이나 다르거든.”
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그 후에 밤고양이는 나와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많은 걸 물어보았다. 얘기를 들은 그는 '밤고양이들'과 인간은 닮은 구석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자기는 외계의 흔적들을 연구하는데, 드물게 그런 종족들을 발견한다고 했다.
“사실 문명의 흐름은 어디든 비슷하게 반복되기 마련이지. 시간이 흐르면 이곳의 '인간'들도 알게 될 거야. 그 끝은……항상 똑같아.”
밤고양이가 했던 일이라는 ‘연구’는 꼬치꼬치 캐묻는 것과 비슷한 모양이었다. 평소의 나였다면 귀찮아서 자리를 피했겠지만, 그의 질문에 대답하는 일은 별로 나쁘지 않았다. 어쨌든 말하는 고양이는 신기했고, 그의 어휘나 목소리의 울림은 듣기 좋았으니까.
마침내 내가 살아 온 이야기까지 전하고 나자 그는 씨익 웃으며 이렇게 평했다.
“아하, 그러니까……. 당신은 다른 사람들의 규칙을 싫다는 거군? 그러다 보니 너무 날카로워 진거고.”
나는 생각해 보다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날카롭다’는 건 잘 만든 뼈칼에다 쓰는 표현이라 인간에겐 어울리지 않았지만 뜻은 대충 이해했다.
무리의 사람들은 사냥하는 것, 먹는 것, 서로를 차지하는 것 외에 다른 것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가 나이가 찼는데도 남자에게 안기지 않는 거나,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는 일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엄마가 살아있을 땐 좀 괜찮았지만 결국 이 백일 쯤 지나 무리에서 떨어져 나왔다.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 스스로가 난폭해 져서 문제였다.
“그렇군……. 당신은 특히 ‘나’와 비슷한 걸? 같은 행성에 태어났더라면, 당신도 훌륭한 우주 히피가 될 수 있었을거야.”
그러더니 밤고양이는 자신이 말한 ‘히피’라는 표현이 재밌다며 웃기 시작했다. 야옹, 야옹 하고 우는 그 독특한 소리는 무척이나 즐겁게 들려서 어느샌가 나도 따라 웃게 되었다.
2
다음 날 날이 맑아지자 나는 그를 데리고 무리의 사냥터를 보여주러 갔다. 오래 전부터 ‘도심지’라고 불리는 곳. 다만 위험하니 좀 가까이서 내려다 보이는 절벽으로 갔다.
온통 무너진 돌무더기들과 뾰족하게 솟은 기둥들이 보였다. 그 뒤엔 항상 그늘이 졌는데 그곳에서는 역겨운 악취가 사라지지 않았다.
그 도심지에서 고양이들은 썩은 물을 핥으며 살았다. 그들은 그 물을 병적으로 좋아하는 것 같았다.
불쾌한 곳이었지만 달리 먹을 것이 없었기에, 우리는 목숨을 걸고 그들을 사냥해야 했다. 다른 곳은 모래뿐이고 인간과 변종 벌레들 외엔 아무것도 살지 않았으니까. 밤고양이는 내 옆에서 새까만 시선으로 도심지를 내려다 보더니 신음을 뱉었다.
“이건…….”
그는 다소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얼마 뒷걸음치더니 헛구역질을 시작했다. 나는 영문을 몰라 쪼그려 앉아 그의 등을 조금씩 매만져 주었다. 그는 한참 후에야 헐떡거리는 채로 입을 열었다. 그의 표정은 무척 지쳐 보였다.
“너희가 먹는 고양이들은 내가 아는 고양이들과도 다른 존재였구나. 그래……. 너희는 이미 한 번 그랬던 거로군. 자기를 갉아먹는 줄도 모르고 펑, 터져버린 거였어. 얼마 전 우리가 망쳐버린 것처럼……. 우리도, 어쩌면 저렇게 변해버리겠지.”
그는 나의 보라색 눈을 올려다 보았다.
“너, 저기 사는 놈들을 먹지 말아. 저것들 몸 속엔 오염된 것들이 많아. 안 좋은 게 몸에 쌓일거야
……. 아마 당신의 눈도 부작용 중 하나였겠지. 예쁘지만, 장애가 아니었던 건 우연일 뿐이야.”
하지만 나는 그의 말을 지킬 수는 없었다. 고양이 고기에 어느 정도 독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무리'는 고양이를 먹지 않고선 살아남을 수 없었다.
새로 태어나는 사람들 중엔 얼굴이 일그러져 있거나, 손발 없이 태어나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그들을 살리면서 식량을 구하기엔 도심지가 아닌 다른 곳은 너무 황폐했다.
내가 설명하는 동안 가만히 내 입모양을 보고 있던 밤고양이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조심해…….” 하고 말하긴 했지만 그 목소리엔 이미 어떤 체념이 들어있었다.
그의 표현 대로라면 ‘지는 별을 보고 있을 때의 마음’ 이라고 했다.
아무튼 그런 일이 있긴 했지만, 저녁에 동굴로 돌아와 내가 고양이 육포를 건네자 그는 또 아무렇지 않게 받았다. 내게 고맙다고 말한 후에 얼마 동안 육포를 노려보더니, 맛있게 먹어치웠다.
3
그와 함께 한 이틀 동안 나는 그가 무리의 장로들보다도 많은 것을 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물론 그가 말하는 ‘별에서 왔다.’ 는 등의 말들은 곧이 곧대로 믿을 수 없었지만. 아무튼 그가 여느 인간보다 똑똑한 특별한 고양이이라는 건 틀림없어 보였다.
그래서 세 번째 날 -그러니까 밤에 그가 자신의 별으로 돌아간 날에- 나는 오랫동안 지니고 있던 보물을 그에게 보여주기로 했다. 예전에 비웃음을 산적 있어서 망설여지긴 했지만, 왠지 밤고양이는 그러지 않을 것 같았으니까.
그 날 아침부터 밤고양이는 좀 지쳐 보였지만, 그래도 내 보물 ‘가죽’을 보더니 반가운 듯 웃었다.
“어, 양 그림이네?”
나는 ‘양?’하고 나는 그의 발음을 따라해보았다. 다시 한 번 가죽을 가리키자 밤고양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 그려진 건 양이라는 동물이야. 내가 기분 좋을 때 내는 소리처럼 ‘메에에, 메에에’ 하고 울어. (따라했다. ‘메에에.’) 태평한 생물들이지. 그렇지만, 이제 이 양들은 없을거야. 이런 환경에선 절대 살아남을 수 없으니까.”
하지만 나는 빙긋 웃고서 그에게 따라 오라는 시선을 건넷다. 나는 천천히 동굴 밖으로 걸어나오는 그를 보며 파란 하늘을 가리켰다.
“아하……?”
밤고양이 역시 나를 따라 웃었다. 역시 내가 맞았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영혼이라고 했지만, 나는 오래전 부터 알고 있었다. 맑은 날 하늘에 움직이는 건 수많은 '양'들이었다. 멀리서, 아주 여유롭게. 그들은 우리를 내려다보았고 이 세상과는 전혀 다른 곳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었다. '메에에, 메에에' 하고.
이제 나는 그들이 어떻게 우는 지도 알게 되었다. 뭉그런 생김새와 무척 어울리는 소리였다.
가만히 보고 있자 밤고양이는 내 옆으로 걸어와 앉았다. 그래서 우리는 그대로 함께 앉아서 한동안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한참 후에 밤고양이가 말했다.
“하늘 양이라……. 무척이나 좋은걸? 너희 인간들은 세상을 잃었지만 다시 꿈꿀 줄 알게 되었구나. 무척이나 반갑고, 부러운 일이야.”
나는 그가 말한 ‘꿈’이란 단어 역시 처음 드는 말이어서 그의 등을 살짝 두드려 물어보았다.
“어. 꿈은 진짜 바라는 걸 이뤄내는 힘이야. 그 순간까지 머물면서 널 살게 해주지. 당신이 그 ‘양 그림’을 간직하고 있던 것처럼. 하늘을 보며 웃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야.”
그는 고개를 살짝 기울여 나를 비스듬히 올려다보았다.
“그래. 양은 분명 있을 거야. 저 하늘뿐만 아니라 당신의 꿈 속에 있지. 그걸 믿을 수 있는 당신이라면, 그래……. 이런 곳에서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을 거야. 마지막까지.”
다시 알 수 없는 소리였지만 나는 어쩐지 기분이 좋아졌다. 양들을 올려다보며 빙그레 미소 지었다.
4
“이리로 와 줘.”
그날 밤 밤고양이는 둥굴 앞으로 나를 불러, 멀리 보이는 별 하나. 유독 초록색으로 반짝이는 별을 가리키며 그 곳이 자신의 동굴이라고 일러 주었다.
“갑작스럽지만 오늘로 작별이야. 나는, 저 별로 돌아갈테니까. 음, 하나 남은 '섬광탄'을 쓸 건데 당신은 무슨 뜻인지 모를테지. 그래도 이걸 보면 당신도 내가 별으로 돌아갔다고 될 걸?”
밤고양이는 부드럽게 웃더니 내게 얼굴을 내밀어 보라고 했다. 몸을 굽히자, 밤고양이는 자신의 자그마한 머리를 내 빰에 부드럽게 비볐다. 그 보들보들한 털의 감촉은 무척 기분 좋았다. 떼고나니 그 역시 기쁜 얼굴이었다. 조금 부끄러워 하는 것 같긴 했지만.
‘섬광탄’이 뭐냐는 내 물음에 그는 ‘우주선’처럼 자신이 타고 날아갈 물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전에 ‘우주선’이 별 사이를 헤엄치게 해주는 뗏목 같은 거라고 설명해 줬었는데……. 사실 나는 우주선이 뭔지도 잘 몰랐다. 아무튼 밤고양이가 그 '섬광탄'을 타고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건 이해할 수 있었다.
밤고양이는 마지막으로 떠나기 전에 내게 이렇게 말했다.
“가끔씩 말이야. 당신이 양을 꿈꾸는 것처럼 나를 꿈꿔줘. 밤고양이들을 말야. 아마 그건 나와 다른 동족들을 오랫동안 살아갈 거야. 그러다보면 아마 당신은, 언젠가 나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몰라.”
밤고양이는 작별의 표시로 앞발을 흔들고서, 새까만 어둠 속을 향해 걸어나갔다. 마지막으로 보이던 쭉 뻗은 꼬리는 가볍게 흔들거리더니 사라져버렸다.
그가 떠나 혼자 남은 나는 어쩐지 살짝 서글픈 기분도 들고, 조금 걱정도 되었지만 이내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되었다. 먼 어둠 속에서 조용히 가느다란 불이 솟아올랐던 것이다.
그 초록색 불꽃은 밤고양이가 짚어주었던 별을 향해 아주 빠르고 아름답게 날아갔다.
나는 그 긴 선을 보면서 그의 섬광탄이 뗏목 보다는 번개를 닮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긴, 땅과 별 사이를 오고 가려면 그 정도는 빨리 할 것이었다. 나도 데려가주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나는 결국 이 곳에 속한 사람이니까. 단념은 빨랐다.
아무튼 그게 나와 밤고양이의 이별이었고 그 후로 다시는 만날 수 없었다.
5.
지금까지가 나와 밤고양이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의 전부다. 특별할 것도 없는 일들이고 그 후로도 고양이 사냥은 계속 되었다. 노력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그래도 요즘은 옛날보다는 좀 지내기 나아졌다는 생각이 든다. 밤고양이가 알려 준 '그림’ 덕분이었다.
밤 고양이는 떠나는 마지막 날에 내게 물과 흙으로 그림을 그리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처음에야 나는 또 괴짜 취급을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이젠 무리 전체가 그림을 그리는 일을 좋아하게 되었다.
그 덕에 나는 새로 친해진 사람도 생겼고 지금은 어떻게 무리에 돌아와 함께 살고 있다. 밤고양이도 자신의 동족들에게 돌아갔겠지. 새로운 싸움이 없다면 좋을텐데. 같은 동족들과 싸운다는 건 언제나 슬픈 일이니까.
나는 밤고양이는 고작 며칠 함께 지냈을 뿐이지만, 사실 나는 지금도 그가 무리의 어떤 사람들보다 가깝게 느껴지곤 한다. 그를 떠올리느라 밤에도 가끔 하늘을 올려다 보는 버릇이 생겼다. 하늘에 양들이 사는 것처럼 이제 나는 별 끝에 '밤고양이'가 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그에 대한 기억에서 한 가지 달라진 점은, 나는 점차 그를 설명할 때 밤고양이라는 말 보다 ‘별고양이’라는 말을 좋아하게 되었다. 분명 그는 온통 새까맣지만 어쩐지 그를 떠올리면 반짝반짝 빛이 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밤고양이들은 모두 꿈을 꾸는 방법을 잃었다지만-그 꿈이란 건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내가 만난 그는 자신도 모르는 새 그 방법을 익힌 것이 틀림없었다. 그가 하늘양을 보며 지었던 미소를 떠올리면 확신할 수 있었다.
그건 살아있는 하늘 양처럼 내가 말해줄 때까지 그가 모를만한 일. 그러니 언젠가 그를 다시 만나면 이렇게 말해 주어야 겠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별고양이는 하늘양을 꿈꾸고 있다고.
메일: cksgusdla@naver.com
하늘/양 이란 주제를 받았었는데 K.딕의 소설이 떠오르더라구요.
관계를 꼬아볼까 해서 시작했는데, 적다보니 내용은 전혀 달라져 버렸지만...
하지만 제목에는 흔적이 남게되었습니다.
이제 웹진에 자주 들리고 싶어(그래봤자 조용한 감상이겠지만요...), 생각난 김에 올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