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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천지개벽... 09

2009.02.06 01:5602.06


9.

달의 남극 제 3 지구 방위군 사령부, 암스트롱 기지.
"거리 30,000. 속도 120,000km, 속도 급격히 감소하고 있습니다. 현재 70,000km, 좌표 150, 65. 이런 둘로 나누어졌습니다. 젠장, 지구와 우리 기지를 향하고 있습니다."
"흥, 우리도 그냥 지나치진 않을 모양이군. 하지만, 이번엔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을 걸."
관측병의 다급한 목소리에 아담 바이블린은 코웃음을 치며 속삭였다.
그러나 손은 잠시도 쉬지 않고 라이터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담배를 끊겠다고 아내와 딸에게 약속했지만 아직 라이터까지 버리진 못했다. 버릴 수도 없는 라이터였다. 연애할 당시 아내가 준 선물이었기 때문이다.
아담은 굳게 입술을 다물었다. 이제 비극은 여기서 끝내야한다.
이미 완파된 타이탄의 호이겐스 방위군과 화성 이주도시의 방위군이 전송한 전투자료를 통해 아담은 놈들의 약점을 간파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약점에 맞는 작전 또한 모두 완벽하게 짜여져 있었다.
"우리 비행단은?"
아담의 물음에 관측병이 레이더를 확인하며 말했다.
"모두 이륙 대기 중입니다."
"놈들은 지치지도 않나 봐. ……아담, 아니 소령님도 이만 내려가시죠. 어차피 우리 윗분들은 다 지하벙커로 대피했는데, 가서 좀 안심 시켜드려야지요."
관제사령 종현이 아담을 조금은 놀리는 듯한 장난스런 표정으로 돌아보며 말했다.
사관학교의 동기지만 외계인의 침입으로 아담은 소령계급을 먼저 달았다. 그건 그가 이번 전투의 세부전술을 계획했기 때문에 내려진 포상이었지만, 꼭 그것만은 아니라는 걸 종현도 알고 있었다. 만약 대기권 밖에서 외계인을 막지 못한다면 그 책임을 져야할 누군가가 있어야했다. 장성급에서도 그렇고 령관급에서도 각각 한 명씩 책임을 져야했다. 그러나 작전을 세운 아담 바이블린과 스티브 위스본드는 각각 대위와 대령이었다. 이에 사령부의 회색눈빛들은 이 둘을 전시비상사태라는 빌미로 1계급씩 특진시켰다. 오로지 자신들의 자리를 보존하기 위해서 희생양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때문에 아담은 이 전투에서 죽으면 곤란한, 반드시 살아서 책임을 져야할 존재가 되었다. 이런 사정을 종현도 잘 알고 있었다.
아담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됐어, 너까지 놀리는 거야."
"아니, 난 흉측한 놈들 얼굴 때문에 고귀한 어르신 속이 불편해하시진 않을까 걱정이 돼서 그러지. 으어허허허."
종현이 얼굴을 찡그리고 몸을 비틀며 마치 굶주린 좀비 같은 모습을 취해 보였다. 그 모습에 아담은 다시 웃고 말았다.
"걱정해줘서 고맙군. 하지만 괜찮아. 나도 얼마나 대단한 놈들인지 직접 한번보고 싶었으니까."
피식 웃으며 돌아서는 종현을 보던 아담의 입가에 미소가 싸늘하게 식어 사라졌다.
그들이 처음 나타난 건 69일 전이었다. 그들은 토성의 위성인 타이탄의 호이겐스 기지의 방위군 사령부를 순식간에 초토화시켰다.
그 사건은 지구의 우주연합군사령부를 충격에 빠뜨렸다. 타이탄의 호이겐스 기지는 지구의 딥 임펙트를 막은 군사기지로 인류를 지키는 최전선이었으며 당시 인류가 보유한 핵미사일이 모두 보관돼있던 곳이다. 그런 기지가 삽시간에 초토화되어버렸다. 최후의 순간에 우주연합으로부터 허가되지 않은 핵공격까지 시도했지만 그들을 막지 못했다. 막기는커녕 그들을 지연시키지도 못했다. 어쩌면 방사능이 저들에게는 아무런 영향이 없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하여튼 타이탄의 호이겐스 기지를 파괴한 그들은 곳곳의 우주정거장을 파괴하고 곧장 화성을 향했다. 그리고 다시 침입자들은 하루만에, 공식적으로는 18시간만에 화성의 이주도시들을 초토화시켰다. 비록 핵무기는 보유하고 있지 않았지만 외계인과의 전쟁에 대비해 전함과 전투기 등 병력만큼은 지구의 방위군에 버금갈 정도로 보충 받은 화성이었다. 그런 화성이 하루도 버티지 못하자 지구의 국가들은 공황상태에 빠졌다. 그들을 더욱 당황하게 만든 건 백기를 들고 항복을 선언한 민간인들의 이주도시들까지도 폐허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어떤 협상도, 심지어 대화도 불가능했다. 어쩌면 항복이라는 말조차도 모르는 종족일지 모를 일이다.
이에 지구의 10대 군사강국들은 물론 제 3세계의 국가들까지 앞다퉈 연합군을 재편성하고 감춰뒀던 대량살상무기들을 꺼내, 항상 자신들의 머리 위에서 빤히 자신들을 내려도 볼 수 있는, 그래서 무장에 반대했던 달의 암스트롱 기지로 운반했다. 심지어 우주연합을 반대하던 민족주의자들과 반우주연합전선조차 침묵으로 지지를 보냈다. 그리고 확인되지 않은 정보에 의하면 외계인의 대기권 진입에 대비해 수소폭탄까지, 그것도 전 세계가 핵탄두 개발에 매진해 두 달도 안 되는 기간에 25메가 톤급의 핵탄두를 100여 기를 만들어 그 중 50기를 스카이포트로 옮겼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 정도라면 핵미사일로 외계인을 막더라고 달에 있는 암스트롱 기지는 원폭피해를 피할 수 없었다. 게다가 최악의 경우 남은 핵이 지구 대기권에서 폭발한다면 낙진 때문에 인류가 입을 피해는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수준이었다.
결국, 수십 억 인류의 생존은 지구 정부가 핵을 사용하기 전에 어떻게 외계에서 외계인을 막아내느냐에 달려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암스트롱 기지의 대원들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했다.
아담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천천히 내쉬었다. 자신의 한숨이 관제실 요원들에게 어떻게 비춰질지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관제창을 통해 어두운 우주를 바라보았다. 거대한 관제창 위에는 적의 위치가 작은 점으로 표시되어 있다. 그 점 위로 그어진 꺾인 선에는 적의 거리가 표시되고 있었다.
"10,000km."
관측병이 침을 삼키며 소리쳤다.
"얘는 어때?"
종현이 긴장을 풀기 위해 아담의 딸아이의 건강을 물었다.
아담은 암스트롱 기지에 도착해서, 그것도 외계인의 존재가 공식적으로 각 국의 지도자들에게 전해지고 나서야 간신히 가족과 연락할 수 있었다. 그러나 외계인의 침략에 대해선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화성이 침략 당하기 전까지는 여전히 보도통제가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핵이래."
얼마 전, 멈추지 않는 기침 때문에 병원을 찾은 딸아이는 결핵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2년 전에도 결핵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재발이었다. 22세기에 결핵이라니. 아담은 이럴 때 곁에 있어주지 못한 자신을 책망했다.
"저런 …… 젠장, 22세기라도 소용없군. ……의학이 발전할수록 병균도 발전하는 것 같아. 마치 지능이 있는 동물처럼 말이야."
종현의 말에 아담은 피식 웃었다.
병균이 지능이 있다니.
"병균에 지능이 있으면 백신도 지능이 있는 스마트 백신을 만들면 되지."
"구구단도 하는?"
종현의 말에 아담은 다시 웃고는 한술 더 뜨며 말했다.
"미적분도 할 줄 알면 더 좋고."
"그러다 백신이 대학가겠다."
종현의 농담에 아담은 웃고 말았다.
"집에 전화는 해줬어?"
종현이 물었다.
잠시 기억을 더듬던 아담이 말했다.
"보름 전에."
"보름? ……아니, 마지막일지도 모르는데 전화라도 해주지 그랬어."
종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요즘 세상에 결핵으로 죽기야 하겠어."
"그래도 네 집사람이 걱정할텐데. 애도 아프고, 결핵이란 병이 원래 쉽게 낫지 않는 병이잖아. 완치가 안 된다고 하던데. 그냥 잠복한다지?"
아담은 재발이라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자신이 못난 아버지라는 사실을 굳이 밝힐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이번 전투에서 지면 다 죽어."
아담의 단호한 말에 그러잖아도 긴장감에 무거운 침묵이 흐르던 관제실 안은 창문 밖, 진공이 전해진 듯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종현은 머쓱한 듯 어깨를 들썩거리더니 다시 창 너머를 바라보았다. 어두운 우주뿐이었다. 지구에서 보던 별은 보이지 않았다. 관제실의 작은 불빛에 눈이 적응되어 더 어두운 우주 속에 떠있는 별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칠흑 같은 어둠뿐이다.
분위기가 갑자기 어색해지자 아담은 팽팽한 긴장감을 없애기 위해 미소지으며 말했다.
"어차피 전화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줄서 기다리기도 힘들어. 아마 내가 전화할 때쯤이면, 전투가 끝날 걸."
아담의 말에 종현은 씩 웃고 말았다.
"거리 3,000 속도를 5,000으로 줄었습니다."
관측병이 긴장한 얼굴로 침을 삼키며 말했다.
다시 무거운 침묵이 관제실을 내리눌렀다. 긴장감을 없애려던 아담의 농담이 수포로 돌아갔다.
종현이 크게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네 말이 맞는다면 불나방들이 오시는군."
아담은 지구를 내려다보았다. 달은 보름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지구는 그만큼 기울어져 있었다. 어둠에 휩싸인 지구가 어스름하게 보였다. 혹시나 하는 기대에선지 지구는 작은 불빛조차 보이지 않았다. 등화관제가 실시된 탓이다. 그만큼 이번 전투는 지구에서도 분명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날씨가 맑다면 말이다. 문득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 모든 인류의 모습이 머리에 떠올랐다. 새삼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담은 다시 천천히 반대편 어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관제창 위로 작게 찍혀있던 점들이 하나, 둘 번지기 시작하더니 이내 반투명한 원으로 커졌다. 제일 작은 원 하나가 적기 100기를 나타냈다. 그러나 그 작은 원도 이내 사라지고 점점 눈덩이처럼 커져갔다. 외계인의 비행선은 일자진의 형태를 이루고 3개 열로 나뉘어 다가오고 있었다.
"젠장. 1만 대는 족히 넘겠어."
종현은 수염이 까칠한 턱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15분 후면 지구대기권 진입합니다."
관측병이 더는 못 참겠다는 얼굴로 아담을 돌아보았다.
"좋아, 모든 전투기 출격."
아담은 나직이 말했다.
"자네만 믿네."
종현의 말에 아담은 대답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종현은 마이크를 입가로 가져가며 속삭이듯 말했다.
"여기는 플라이트(Flight), 전투비행단, 출격하라!"
관제실의 명령이 떨어지자 달의 그림자 속에서 숨죽이고 있던 전투기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동시에 관제실의 불이 적색으로 바뀌었다. 어둠을 향해 날아가는 전투비행단의 모습의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전투비행단은 최고속도로 반원을 그리며 외계인들의 비행선 뒤로 접근했다. 그리고 외계인들의 꼬리를 문 전투기들은 외계인의 비행선 후미를 향해 로켓을 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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