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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천지개벽... 05

2009.02.02 00:5802.02

5.

머리 위로 물방울이 떨어지고 있다.
아담은 초기 우주식민지로 건설하려 했지만 달과 화성의 빠른 개발로 인해 이제는 지구와 외계기지 간의 항구 역할을 하게 된 정지궤도의 스카이포트에 머물고 있었다. 스카이포트는 계획이 바뀌면서 그 크기가 초기 설계보다 작아졌지만 직경이 1.800m에 폭은 200m가 넘고, 3개의 고리형태로 만들어진 3층 구조의 거대한 우주구조물이었다.
아담처럼 달의 암스트롱 기지로 가야하는 방위군은 달의 중력에 맞추어진 스카이포트의 3층에서 달의 중력에 적응하고 있었다.
스카이포트의 가장 바깥의 1층은 1분에 1회전을 하며 지구의 중력에 만들어내고 있었고, 그 위 2, 3층은 각기 다른 각속도로 회전하면서 화성과 달의 인공중력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우주엘리베이터와 연결된 중심부는 무중력 상태였는데 이는 무중력 상태를 이용한 실험과 산업시설을 위한 구역이었다. 우주엘리베이터의 끝에는 거대한 물탱크와 떠돌이 유성이 가진 자원을 모두 토해낼 때까지 붙들려 매여있었다.
아담은 스카이포트를 떠나 제 3 지구방위군 사령부가 있는 암스트롱 기지를 향해 날아가는 셔틀을 타기 위해 마지막으로 샤워를 하고 있다. 물을 아껴야하는 달 기지에서 샤워를 한다는 건 령관급 이상에서는 가능한 일이었지만, 일반 병사들과의 위화감을 줄이기 위해 사령관조차도 샤워를 하지 않았다. 물수건과 칼바람처럼 차가운 살균가스가 전부였다. 아담은 볼을 때리는 물방울을 느낌을 기억하기 위해 잠시 눈을 감았다.
그러나 강한 수압에 의해 쏟아지는 물방울은 이미 지구에서 느낄 수 있는 그 물방울이 아니었다.
문득 파티장에서 마지막으로 본 가족의 얼굴이, 정확히는 눈빛이 떠올랐다.
'젠장, 전화는 해줬겠지. 지금쯤 집으로 돌아갔겠지.'
비상소집으로 작별인사도 없이 곧장 우주엘리베이터를 타고 스카이포트로 올라왔다.
스카이포트에서 가족들에게 전화라도 하고 싶었지만 스카이포트의 상황은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이미 스카이포트의 군사구역 내에는 타이탄의 통신두절에 대한 소문이 퍼져있었다. 승강장에 내려설 때부터 아담과 종현은 기지의 사병들이 나누는 소문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게다가 소문은 이미 꼬리에 꼬리를 물고 커져있었다. 고급정보에 접근하지 못하는 사병들이 만든 소문이라 신뢰할 순 없었지만 대부분의 소문은 호이겐스 기지가 외계인의 침략을 받았다느니, 대기생성기가 폭발해 모두 죽었다느니, 보관 중이던 핵무기가 폭발했다느니 하는 하나같이 듣기 거북한 소문뿐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기지 내 떠도는 소문이 모두 헛소문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됐지만 그땐 너무나 터무니없는 얘기라 그저 전투에 굶주린 병사들의 헛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혹 민간인구역까지 헛소문이 퍼져 괜한 동요가 일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러나 작전회의실에서 목성의 위성인 유로파의 갈릴레이 기지에서 보내온 타이탄의 위성사진을 보는 순간 아담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스카이포트에 머무는 민간인들의 동요를 먼저 걱정해야했지만 그보다 먼저 자신이 두려움에 떨었다. 그리고 어쩌면 민간인들도 빨리 알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갈릴레이 기지에서 보내온 위성사진에는 인류가 그토록 찾아 헤맸지만 찾을 수 없었던 외계의 흔적이 너무나 명확하게 찍혀있었다. 그러나 그 모습은 결코 타이탄의 오렌지색 대기처럼 아름답지 않았다.
타이탄 대기는 질소와 메탄, 에탄이 혼합된 원시지구의 형태였다. 그 대기는 타이탄을 오렌지색의 예쁜 사탕처럼 보이게 했다. 물론 그 오렌지색 대기에 둘러싸여 타이탄의 전체를 볼 수는 없었지만 타이탄을 개척하기 위해 설치된 대기생성기가 고압의 이산화탄소와 산소를 뿜어내면서 호이겐스 기지 일대에 고기압을 형성해 관측위성으로 기지 주변의 모습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나?"
위성으로 연결된 지구방위군 사령관 조나단 케리가 작전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에게 물었다. 선뜩 대답하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대형 스크린의 반쪽에는 파괴된 호이겐스 기지의 모습과 타이탄을 둘러싼 정체불명의 비행물체 사진이 나란히 펼쳐져 있었다. 종현이 하기 싫은 말을 억지로 하는 듯 이마를 어루만지며 아담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드디어 우주전쟁인가?"
그리고 종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담 역시 한숨이 나왔지만 종현의 한숨에 묻혀버렸다.
위스본드 작전참모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직까지 판단을 내리긴 어렵습니다만 대비할 수밖에 없겠군요."
"그게 우리의 일이지."
케리 사령관이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갈릴레이 기지에선 다른 소식이 없었습니까?"
"호이겐스 기지에서 보낸 미세한 전파를 판독하고 있다더군. 지금쯤 갈릴레이에선 판독이 끝났을 수도 있지. 하지만, 핵폭발로 노이즈가 심해 판독에 애를 먹고 있는 모양이야."
"핵이요?"
아담이 놀라 되물었다.
케리 사령관이 말했다.
"위성이 모두 통신 두절된 게 모두 타이탄의 대기권 밖에서 터진 핵폭발 때문이었네."
"하지만 핵은 UN의 허가가……"
"극비사항이지만 갑자기 나타난 혜성이 타이탄의 기지로 떨어질 수도 있는 상황을 대비해 50메가 톤급의 핵탄두 20기는 그곳 기지사령관의 재량에 따라 사용할 수 있네."
과거 지구로 날아드는 혜성을 파괴하기 위해 지구의 핵무기들을 우주로 옮긴 이후로, 각 국의 지도자들은 우주의 핵미사일이 자신들을 위협할 수 없도록 폐기하길 바랬지만 만약을 대비해야한다는 핵 강국의 반발로 전진기지인 타이탄의 호이겐스 기지로, 그 수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모든 핵탄두를 옮겨두고 있었다.
"그럼 다른 핵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현재 위성사진으로는 기지 근처에서 핵이 터진 것 같진 않네. 하지만, 지하에 저장된 핵탄두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속단할 수 없지."
케리 사령관의 말에 위스본드가 덧붙였다.
"호이겐스 기지의 상황이 파악되지 않았네. 갈릴레이 기지에서 수신된 전파가 호이겐스에서 송출된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 내용은 알 수 없어. 정보국의 전문가들이 판독중이야."
아담은 살며시 입술을 깨물며 타이탄의 기지사령관에 대한 소문을 생각해봤다.
그는 국가에 대한 충성심은 높지만 괴팍한 성격으로 그의 상관들은 그를 람보에 비유하며 자기 밑에 두기를 꺼려했다. 아담 자신도 동기들을 통해 그의 소문을 듣고 그리 호감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그리고 전세계가 머리를 맞대어 지구로 접근하던 혜성을 파괴한 뒤, 모두가 화합의 길을 선택한 평화의 시대에 전쟁영웅은 필요 없었다. 그저 조용히 사라져야 할 사내였다. 그러다 문득 지금 상황은 그런 개인감정에 흔들릴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고개를 흔들어 잡념을 쫓아냈다. 타이탄에서 지구까지 위성사진이 전해지는데는 전파의 속도로도 최소한 90분이 걸렸다. 그만큼 타이탄에서 전해지는 정보는 과거의 정보였고, 그만큼 시간에 쫓기고 있었다. 게다가 그들이 과연 얼마나 빠른 속도로 지구를 향해 오는지 알 수 없었다.
잠시 수심에 잠겨있던 아담을 다시 깨우건 위스본드였다.
"모두에게 미안하지만 지금부터 보안 1급 상황으로 전환하겠네."
위스본드의 말에 여기저기 탄성이 흘러나왔다. 아담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작별인사도 못하고 헤어진 가족에게 연락하고 싶었다. 그러나 1급 보안상황에서는 스카이포트 내 민간인구역으로의 이동도 금지되고, 은연중에 있을 수 있는 비밀누설을 막기 위해 외부로의 사적인 연락도 모두 금지된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우주엘리베이터에서는 분해된 전투기들이 끝없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만큼 외계인들은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는 반증이다. 추가된 정보에 의하면 그들의 속도는 시속 740,000km였다. 게다가 불행하게도 지금 토성과 목성은 물론이고 화성과 지구가 거의 일직선에 가까울 정도로 근접해 있었다. 이 속도라면 이제 일주일 안에 목성에 도착할 터였다. 유로파의 갈릴레이 기지에서는 외계인과 접촉하기 위해 무인탐사선을 띄웠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 결과가 전해질 때까지 UN에서는 보도통제를 결정했다. 다시 종말의 혼란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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