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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천지개벽... 24

2009.02.16 01:2102.16


24.

핵을 장착하지 않은 유로파 갈릴레이 기지의 방위군은 타이탄의 궤도에서 급유를 하며, 외계인의 후미를 치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아담은 위성의 레이더를 통해서만 전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워커 대령이 이끄는 방위군은 이제 막 토성의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면 거대한 핵폭발이 일어나 방사능이 전우주를 향해 퍼져나갈 것이다. 그 양은 지난 1차 침입 때 일어났던 폭발과는 비교도 안될 엄청난 양이다. 그 전에 전투기들은 토성의 대기권 안으로 피하거나 토성을 돌아 나와야한다.
아담과 종현 등 관제실에 모인 사람들은 초조한 얼굴로 시계와 모니터를 번갈아 바라보며 침묵 속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시계는 20분을 지나 22분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젠장, 미치게 만드는군."
종현이 기다림에 지친 듯 이마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 미안하군.
워커 대령이었다.
워커의 목소리와 함께 관제실의 침묵은 환호로 바뀌었다. 그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승리를 확신하는 듯 보였다.
뒤이어 출격했던 전투기들이 하나둘 교신을 시도하면서 레이더 영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수가 늘어날수록 지켜보는 이들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 막 30을 채우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저 멀리 토성의 지평선이 흔들렸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갈릴레이, 여기는 호이겐스, 1차 작전 성공, 다음 작전으로 전환하라."
- 라져.
그와 동시에 반대편에서 대기하던 유로파의 방위군이 토성의 북극을 지나 토성을 돌아나갔다. 핵공격으로 약해진, 돌아서지 않는 외계인 함대의 후미를 치기 위해서였다.
막 유로파의 방위군이 토성의 북극으로 사라지자, 토성을 지나온 외계인 함대의 모습이 하나둘 나타났다. 그러나 아담의 기대와는 달리 그들은 토성을 곧장 지나치지 않고 토성을 끼고 돌아들기 시작했다.
종현은 모니터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타나는 점이 아닌 원들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런, 젠장."
- 무슨 일인가?
워커 대령이 물었다.
"놈들이 토성을 돌아 이쪽으로 오고 있어요."
기지 내에 레이더와 연동되는 경계경보가 울렸다.
"젠장, 놈들이 온다. 대공포로 가야해."
누군가 소리치자 모여있던 조종사들이 일사불란하게 흩어졌다.
레이놀드가 놀라 물었다.
"분명 놈들은 회향하지 않는다고 했잖습니까? 도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나도 모르겠어. 놈들은 분명……"
아담도 뜻밖의 사태에 놀라 머뭇거렸다.
"빌어먹을, 그때 그 놈들이 아닐지도 모르지. 14분 30초 후면 놈들이 타이탄의 대기로 들어온다. ……어쩌면 말이야, 우리가 괜한 벌집을 건드린 걸지도 몰라."
종현이 레이더를 체크하고 다시 아담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 목소리에는 조금의 원망이 서려있었다.
그러나 일은 이미 벌어졌다. 종현도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종현은 아담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모니터를 향해 돌아앉으며 말했다.
"워커 대령이 1분 정도 먼저 대기권에 진입할 수 있겠어."
"아니, 이번 놈들도 우리를 먼저 공격했어. 해왕성의 우리 관측위성들을 모두 파괴했다고."
아담은 종현의 뒤에 대고 변명하듯 말했다.
- 우리에게 맡기시오.
무전을 통해 워커 대령의 단호한 목소리가 들렸다.
"하, 하지만, 접근 중인 놈들은 자그마치 5,000대입니다."
아담이 자살행위라고 생각했다.
- ……
"워커 대령, 들려요? 놈들은 5,000대라고요."
- 50,000대라도 상관없소. 어차피 호이겐스가 당하면 우리도 끝이오.
워커의 말이 옳았다.
그러나, 30기의 전투기로 5,000대를 상대한다는 건 산술적으로는 불가능했다. 전투기의 무장을 따져보더라도 1기가 100기 이상을 상대할 순 없었다.
아담은 이마를 짚고 작전장교답게 어떻게 해야 아군의 피해를 줄이고 적의 피해를 극대화할 수 있는지 생각했다.
"좋아요, 워커 대령. 그럼 놈들이 대기권에 진입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대기권에 진입할 땐 어차피 놈들도 속수무책일 테니까요. 그 방법밖에 없어요. 먼저 대기권 안에서 놈들을 기다리는 것뿐입니다. 종현?"
"놈들은 타이탄 좌표 36 / 37으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 워커 대령, 놈들의 진입좌표는 36 / 37. 현재속도를 유지하면 놈들이 대기권으로 진입하기 전에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딱 맞아떨어지겠군."
아담과 종현은 서로를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오랜 친구인 만큼 급박한 순간 손발이 잘 맞았다.
"웃고 있을 때가 아니오. 놈들을 막을 자신이 없으면 당장 여기를 떠나는 게 좋을 거요."
바랭이 두려운 듯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요?"
"저기 대기관리시스템은 하나의 거대한 댐이지, 저게 파괴되면 시스템 안에 저장돼있는 물들이 모두 이곳으로 쏟아져들 거요."
"젠장."
댐이라는 말만으로도 충분한 대답이었다. 그러나 바랭은 한마디 덧붙였다.
"게다가 남은 핵탄두도 저곳 지하에 있어서, 만약 지하벙커가 파괴되기라도 하면 끝장이오."
설상가상이었다. 아담은 어이없어하며 물었다.
"아니, 남은 걸 모두 같이 뒀단 말입니까?"
"그렇소. 그래야 지킬 곳이 줄어드니까."
"젠장, 왜 그걸 이제 말하는 거요?"
레이놀드가 답답하다는 듯 바랭을 향해 소리쳤다.
"당신들이 뭘 알고 싶어하지도 않았잖소."
"다른 사람들은 알고 있소?"
"그래서 이미 나가 있잖소."
바랭이 가리킨 창문을 내다보자 관제실에 모여있던 20여 명의 조종사들이 위장막을 거둬내고 대공포대를 작동시키고 있었다. 포대는 대기관리시스템 주위에 촘촘히 모여있었다. 아담조차 지난 일주일동안 기지에 있었으면서도 미처 보지 못했던 시설이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소용없는 짓이오."
레이놀드가 말했다.
"하지만, 지난번에는 버텨냈소."
바랭이 말했다.
"지난번에는 이곳을 지키는 전투기가 500대나 있었을 때잖소. 결정을 해야합니다. 어차피 여기 있어봤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잖습니까."
그때 기지 위로 워커 대령이 이끄는 방위군의 전투기가 무리를 지어 동쪽 하늘로 날아갔다.
그 모습에 시선을 옮겼던 아담이 다시 레이놀드를 마주 바라보았다.
레이놀드가 당당하게 말했다.
"여기에 배수진을 쳐서 저들을 막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면 여기에 있겠소."
- 레이놀드 소령의 말이 맞소, 아담. 퇴각할 대비는 해야하오. 가만히 죽음을 기다릴 순 없소.
무전을 통해 워커 대령이 말했다.
입술을 깨물며 망설이던 아담이 결심하고 말했다.
"젠장, 좋아요. 준비를 서둘러요. 하지만, 우리만 갈 순 없소."
"자리는 많습니다."
레이놀드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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