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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천지개벽... 43

2009.03.06 00:2603.06


43.

지애는 불현듯 눈을 떴다.
등뒤에서 비춰진 불빛이 눈앞에 그림자를 만들었다. 지애 자신의 그림자였다. 조금 섬뜩했지만 벌써 보름째 출근전쟁에 퇴근전쟁을 치르며 유치원을 병원을 오가는 생활에 피곤한 상태라 다시 스르르 눈이 감겼다.
'내일은 꼭 휴직계를 내야겠어.'
"어, 엄마."
지애는 잠결에 들리는 루시아의 목소리에 그저 낮은 신음소리로 대답했다.
"엄마, 나 아파."
지애는 꿈이라고 생각했다.
"엄마, 엄마."
지애는 번쩍 눈을 떴다.
급히 몸을 일으켰다. 고개를 돌려 침대 위에서 자고 있을 루시아를 바라보았다. 자고 있어야할 루시아가 침대 끝에서 빤히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루시아, 왜 그래, 많이 아파?"
루시아는 말없이 손바닥을 펴 보였다.
검은 피였다.
놀란 지애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루시아, 잠깐만, 잠깐만 기다려."
지애는 급히 병실을 빠져나가며 소리쳤다.
"간호사, 간호사."

루시아는 도로를 달리는 기분이었다. 천장의 등이 그렇게 보였다. 지금 어지럽게 느껴지는 건 그저 길을 빙빙 돌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루시아, 괜찮니? 루시아."
엄마의 목소리가 아득히 멀리서 들려왔다. 너무 멀어서 고개를 돌려도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아빠, 아빠. 아빠 왔어?"
루시아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애는 대답하지 않았다. 거짓말을 해야할지 말아야할지 그저 혼란스러웠다.
"루시아 엄마, 여기 있어."
그게 지애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죠? 신약을 투여한지 이틀 밖에 안됐잖아요. 근데……"
지애가 고개를 들어 간호사들을 향해 물었지만 침대를 미는 어느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지애는 자신의 잘못된 선택으로 하나뿐인 루시아가 행여 안전성이 보장되지 않은 신약의 첫 희생자가 되는 건 아닌지 두려웠다.
"이제 보호자분은 대기실에서 기다려주세요."
수술실 앞에 다다르자 간호사가 지애를 막아서며 말했다.
그러나 지애는 간호사의 말에도 루시아의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
"저희를 믿고, 대기실에서 기다리세요. 어서요."
간호사는 다급히 지애의 손을 잡아 루시아의 손에서 떼어냈다.
수술실 안으로 사라지는 루시아를 보며 지애는 마치 거대한 괴물이 딸을 잡아먹는 것처럼 느꼈다. 그리고 아무 일 없다는 듯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
가슴이 답답했다. 환자의 의지가 약하다는 의사의 말이 생각났다. 루시아가 무슨 생각을 할지 두려웠다. 남편은 또다시 전화도 없었다. 지애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직이 기도하듯 속삭였다.
"피터, 난 지금 당신이 너무 보고 싶어요. 당신은 지금 어디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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