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장편 천지개벽... 40

2009.03.03 01:5303.03


40.

철저히 통제된 회견장에 십여 대의 무인카메라가 움직이고 있었다. 모두 스카이포트를 관리하는 군에서 배치한 카메라로 방송과 언론사들은 오로지 기자만 참석하고 있었다.
스카이포트에 마련된 작은 기자회견장에는 30명의 선택받은 기자들이 말쑥한 검은색 정장차림으로 앉아있었다. 그 모습을 아담과 종현이 군의 장성들과 함께 나란히 앉아 지켜보고 있었다.
"마치 정보국 요원들 같군. 콜록콜록."
종현의 우스갯소리에 기자회견장의 한쪽을 가득 메운 우주연합사령부의 장성들과 각 국의 대표들이 낮게 웃었다.
"그런데 왜 우리를 초대한 걸까?"
"글쎄."
종현의 물음에 아담은 심드렁한 얼굴로 말했다.
아담은 자꾸 따끔거리는 피부와 붉은 색 반점이 가시지 않은 눈 때문에 이 자리에 있는 것조차 짜증이 났다. 특히 선글라스를 썼는데도 너무 환한 조명 때문에 계속 눈물이 흘러 마치 자식을 잃어 과부처럼 연신 눈물을 닦아내야 했다.
"설마, 우리를 한 자리에 모아놓고 다 잡아먹으려는 건 아니겠지?"
"네 말대로 설마군."
종현은 가슴에 통증을 느끼며 어색하게 웃었다.
그때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턱시도를 입은 사내가 당당하게 배를 내밀고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섰다.
"모두 일어나 '리팜부톨 달란' 경을 환영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담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당당하게 보이기 위해서였다.
사내의 짧은 소개가 끝나고 기자회견장으로 들어선 외계인은 화성에서 본 오징어 외계인들과 비슷한 듯했지만 뭔가 달랐다. 단순히 하얀색 옷을 입었다는 것만이 아니었다. 키는 2m정도로 비슷했지만 그들보다 거의 3배 더 큰 머리, 그리고 소매 끝에 나온 팔은 8개의 다리처럼 8개의 손가락이 마치 바람에 흔들리듯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담을 놀라게 만든 건 그의 입에서 유창한 영어가 흘러나왔다는 것이다. 그는 거의 원어민에 가까웠다. 의사소통이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던 호세의 말과는 전혀 달랐다.
아담은 당시 그 외계인의 구강구조가 과연 인간의 말을 구사할 수 있는 구조였는지 궁금했지만, 외계인의 구강구조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니 보지도 않았다.
마이크 앞에 선 외계인은 자신을 [뉴론]의 대사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태양계에서 3,000광년 떨어진 루시아에서 왔다고 말했다. 3,000광년이라니 아담은 새빨간 거짓말이라고 생각했다.
'3,000년 동안 뭘 먹고 지구로 찾아왔단 말인가.'
"기분이 어떠십니까? 지난번 외계인의 침입을 막아낼 때, 당시 암스트롱의 참모사령으로 외계인을 몰살시키는데 1등 공신인 이즈미 레이 준장과 지금은 나란히 서 계신대요."
기자의 물음에 아담은 외계인의 곁에 선 레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문득 배신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얼굴에 핀 미소가 가증스러웠다.
기자의 첫 번째 질문에 달란은 고개를 돌려 레이를 잠시 쳐다보더니 다시 뒤에 앉아있는 아담과 종현을 바라보았다. 그 모습은 분명 눈으로 보는 듯했다. 그리고 마치 너희들이 우리에게 어떻게 했는지 다 기억하고 있다는 듯했다. 이어 뒤에 앉아 기자회견을 바라보고 있는 다른 장성들도 마치 하나하나 기억해 두려는 듯 천천히 바라보았다.
아담은 소름이 끼쳤다. 당장이라도 자신을 덮칠 것 같았다. 아담은 현기증을 느꼈다. 잠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뜨면서 천천히 달란을 바라보았다. 알 수 없는 적대감에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럴수록 눈물만 흘렀다.
"저 녀석들은 더워도 모자를 못 벗는데."
뒤에서 누군가 우스갯소리를 했다.
종현이 피식 웃고는 다시 콜록콜록 기침을 해댔다. 그 모습이 모니터에 잡혔다. 세계에, 아니 우주에 그 모습이 방영된 것이다.
"괜찮아?"
아담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 전혀, 빌어먹을. 치료를 시작한 지 두 달이나 지났는데, 갈수록 상태가 나빠지는 것 같아. 자넨 안 그래?"
종현이 불안한 눈으로 물었다.
"그건 나중에 얘기하고 우선 똑바로 앉아, 기자회견이 아직 안 끝났어."
아담이 종현을 부축하며 바로 앉혔다.
"그건 과거의 일입니다. 더구나 우린 그들을 우리의 종족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들은 신의 뜻을 거스른 자들일 뿐입니다."
달란은 담담한 어조로 첫 번째 질문에 대답했다.
"신의 뜻을 거스르다니 그게 무슨 뜻입니까?"
기자의 질문이 이어졌다.
"신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건 평화입니다. 전 그 평화를 알리기 위해 왔습니다. 루시아계의 평화. 그게 진정한 신의 뜻입니다."
달란은 마치 고결한 종교인처럼 고개를 들었다. 앞에선 조명이 비취고 있었다. 그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는 아담은 그가 마치 후광을 지닌 듯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아담을 분노케 했다.
세계평화, 우주평화를 외치다니, 놈은 그저 뚱뚱한 오징어 외계인일 뿐이다. 아담은 토할 것 같았다. 간신히 마른침을 삼켜 참아냈다.
"하지만, 우리 지구는 달란 대사께서도 아시겠지만 수천 만 명이 죽었고, 천문학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과연 평화라는 말만으로 평화가 올 수 있을까요?"
"우리는 이 우주에서 인간이 신의 뜻에 따라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공존을 모색할 생각입니다. 즉, 우리의 지식을 여러분과 공유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여러분이 알고 싶어하는 이 우주의 진실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진실이 아마도 우리를 평화로 이끌어 주리라 믿습니다."
"공존이라면 곧 더 많은 외계인이 이곳 태양계로 온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닙니다. 더 이상 우리는 여러분과 접촉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게 여러분도 원하는 일이리라 믿습니다."
"우리에게 알려주실 우주의 진실은 무엇입니까?"
"그건 우주탄생의 신비입니다. 그리고 여러분과 제가 모두 이 거대한 우주에선 미미한 존재라는 겁니다.  이 자리에서는 여기까지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음 기자의 질문이 이어졌다.
"잘 모르시겠지만 우주연합을 거부하는 반우주연합전선에서는 이번 외계인의 침입을 인류의 무분별한 우주개발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주장에 대해 달란씨는 어떤 의견을 가지고 계신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저는 태양계의 인류가 아니기 때문에 그들의 주장을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저는 모든 오해와 질투, 대립은 곧 우주탄생의 근원을 알게 된다면 자연히 해소될 거라 믿습니다."
"그 말씀은 우주탄생의 진실을 모르기 때문에 인류가 오해와 대립하고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건 꼭 종교적인 말씀 같은데요. 달란씨가 오신 루시아에서 달란씨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전 그저 진리를 얘기하는 자일뿐입니다."
"우리가 말하는 종교와 같은 겁니까?"
"여러분의 종교와 일맥상통한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군요."
종현이 달란의 대답에 코웃음치며 속삭였다.
"이거, 자기가 무슨 예수라도 되는 줄 아는군. 저 녀석 혹시 사기꾼 아닐까."
"예수는 인육을 먹진 않았어."
아담은 그동안 보아온 외계인의 모습과 조금 다른 달란의 태도에 경계하며 말했다.
기자회견이 끝나자 기념사진촬영이 이어졌다.
각 국의 대표들과 고위 장성들은 조금이라도 달란의 곁에 가까이 서려고 서로를 견제했다. 그들은 달란이 가져온 우주탄생의 진실이 자국에 더 많이 전달될 수 있길 바라고 있었다.
아담은 그런 정치인들과 장성들의 모습에 화가 치밀었다.
아무리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고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세상이지만 그건 인간들 사이에서나 일어나는 일이지 잘 알지도 못하는 외계생명체에게까지 적용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더욱이 그들은 단지 적이 아니라 인류를 잡아먹으러 왔던 존재가 아니었던가. 더구나 레이는 각 국 대표들의 자리를 하나하나 지정해주며 마치 아무 것도 모르는 듯 행세했다.
아담은 자리에서 일어나 종현을 부축해 기자회견장을 나섰다.
아담이 기자회견장의 문을 나서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각 국 대표들의 보좌관들이 임시로 설치된 전화기를 들고 바삐 지구에 있는 연락소와 통화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중 누군가는 주식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담."
"응?"
"우리가 집에 전화한 지 얼마나 됐지?"
"글쎄, 두 달은 넘은 것 같군."
"연락을 해보고 싶은데."
종현의 말에 아담은 불안해졌다.
스카이포트에서 그들은 가족과의 연락이 철저히 제한되고 있었다. 레이는 지구의 통신시설 파괴를 그 이유라고 했지만 지금 복도의 풍경은 전혀 그래 보이지 않았다.
아담과 종현은 통화하는 사람들의 차림새를 살폈다.
뻔뻔한 정치인들이나 기자라면 절대 자신들에게 전화기를 양보할 생각은 없을 테고, 기자회견 때문에 통화도 길어질 터였다. 아담과 종현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빈자리나 계급으로 몰아세울 만한 병사를 찾았다. 다행히 빈자리가 보였다. 그건 마치 신의 뜻처럼 보였다. 바삐 움직이고 분주한 가운데 유독 그 전화부스만 비어있었다.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듯했다. 아담과 종현의 눈에만 보이는 천사의 모습인 듯했다. 축복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세상에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금일 기자회견 중계에 따른 회선부족으로 이 전화기의 회선을 차단합니다.]
"젠장."
아담이 전화기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꽝하는 소리가 제법 크게 들렸다.
"나야, ……잘 있었어?"
옆 전화부스의 사내가 그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글쎄. 약이 낫지 않을까? ……"
아담과 종현이 그와 눈이 마주쳤다.
사내는 아담과 종현의 울긋불긋한 얼굴에 놀라고 이내 그들의 계급장에 놀랬다.
"…… 어, 미안해, 끊어야겠어. 미안해, 사랑해. ……준장님, 이 전화를 쓰시죠."
"고, 고맙네. ……피터, 기억하지."
아담은 그 사내의 명찰을 보고 말했다.
"아, 감사합니다."
피터라 불린 사내는 마치 아담의 보좌관처럼 한 발 물러나 뒤에 섰다.
"자네가 먼저 해."
아담이 종현에게 수화기를 넘기며 말했다.
"그러죠, 준장님."
아담은 피식 웃었다.
종현이 ID카드를 투입구에 넣자 전화기의 액정화면 위로 카드에 저장된 번호가 떴다. 종현은 집이라고 쓰인 번호를 눌렀다.
"워워,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대령님."
아담이 고개를 돌렸을 땐 이미 무균복을 입은 노바 샤를로스와 그의 의료진이 아담과 종현을 둘러싼 후였다. 도대체 어디 갔다가 이제 나타나서 이런 호들갑들을 떠는지 모를 일이다.
"됐어, 빌어먹을. 죽을 때 죽더라도 가족들 목소리는 듣고 죽겠어, 젠장."
그러나 샤를로스는 수화기를 잡은 종현의 손에 소독용 스프레이를 뿌리며 잡아 비틀어서 수화기를 빼앗았다. 종현은 그들을 뿌리치며 소리쳤다.
"젠장, 미친놈들. 다 죽어버려. 네놈들은 다 죽을 거야. 알아? 평화 좋아하시네. 놈은 너희를 식량으로 쓰려고 온 거야, 멍청이들아. 속으면 안 돼."
아담은 의료진에게 사지를 붙잡혀 끌려가는 종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가시죠, 준장님."
아담은 천천히 샤를로스를 돌아보았다.
예전 셔틀에서 자신을 보고 잔뜩 긴장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설마, 준장님까지 체통 없이 굴진 않으시겠죠."
샤를로스가 아담의 겨드랑이로 손을 집어넣으며 말했다.
아담은 샤를로스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어금니를 힘껏 깨물고는 당당히 걸어갔다.


댓글 0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수
공지 2024년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공고 mirror 2024.02.26 1
공지 단편 ★(필독) 독자단편우수작 심사방식 변경 공지★5 mirror 2015.12.18 1
공지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 (3기 심사단 선정)4 mirror 2009.07.01 3
317 장편 강철의 왈츠 5 미친고양이 2009.05.04 0
316 장편 강철의 왈츠 4 미친고양이 2009.05.03 0
315 장편 강철의 왈츠 3 미친고양이 2009.05.01 0
314 장편 강철의 왈츠 2 미친고양이 2009.04.30 0
313 장편 강철의 왈츠 미친고양이 2009.04.29 0
312 장편 천지개벽... 47 - 완결 라퓨탄 2009.03.10 0
311 장편 천지개벽... 46 - ③ 라퓨탄 2009.03.09 0
310 장편 천지개벽... 46 - ② 라퓨탄 2009.03.09 0
309 장편 천지개벽... 46 - ① 라퓨탄 2009.03.09 0
308 장편 천지개벽... 45 라퓨탄 2009.03.08 0
307 장편 천지개벽... 44 라퓨탄 2009.03.07 0
306 장편 천지개벽... 43 라퓨탄 2009.03.06 0
305 장편 천지개벽... 42 라퓨탄 2009.03.05 0
304 장편 천지개벽... 41 라퓨탄 2009.03.04 0
장편 천지개벽... 40 라퓨탄 2009.03.03 0
302 장편 천지개벽... 39 라퓨탄 2009.02.28 0
301 장편 천지개벽... 38 라퓨탄 2009.02.27 0
300 장편 천지개벽... 37 라퓨탄 2009.02.26 0
299 장편 천지개벽... 36 라퓨탄 2009.02.25 0
298 장편 천지개벽... 35 라퓨탄 2009.02.24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