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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천지개벽... 38

2009.02.27 01:1402.27


38.

아담과 일행은 화성에 불시착하고, 오징어 외계인들의 약점을 찾아낸 후, 화성에서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긋지긋한 시간이었지만 레이로부터 전해들은 전황에서 점점 구조될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암스트롱 기지와 접촉한 지 한 달만에 지구로부터 셔틀이 도착했다. 당시 셔틀의 기장은 인류의 영웅들을 모시러 왔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위성중계로 진급신고를 가졌다. 모두가 2계급 특진이었다.
아담은 외계인 침입 8개월만에 소령에서 준장이 됐고, 종현과 레이놀드도 대령으로 진급했다. 벅시와 안나, 제임스 스콧은 모두 소령으로 진급했다. 민간인인 바랭과 위니, 호세는 그저 우주연합사령부의 감사패를 받았다. 그래도 우주연합사령부의 의전용 셔틀의 특실에 타는 영광을 누렸다.
그리고 다시 한 달이 지났다. 위니와 호세는 셔틀에서 귀빈 대접을 받고 있었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아담과 그의 동료들이 서서히 시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담의 팔에는 두 개의 링거가 꽂혀있었다. 화성을 떠나오면서부터 시작된 방사능 치료를 위해서였다. 아담만이 아니었다. 타이탄을 떠나온 모두의 팔에는 두 개씩 링거가 꽂혀있었다. 위니와 호세는 세균감염을 막기 위해 아담과 일행이 있는 무균실에는 접근할 수 없었다.
아담은 링거대를 끌고 창으로 다가가 어두운 우주를 바라보았다. 셔틀답게 조망을 중심으로 설계된 기체는 곳곳에 커다란 창문이 있었다. 창 밖에는 다시는 보지 못할 줄 알았던 지구와 달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햇빛을 등진 지구는 둥근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어둠을 밝히는 도시의 불빛이었다.
처음 화성에 도착했을 때만해도 이렇게 아름다운 지구를 다시 볼 수 있을 거라고는 기대하지 못했다. 사실 셔틀에 오를 때까지 과연 지구로 갈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외계인들을 몰아냈다고는 하지만 피해를 복구할 여력이 남아있을지, 그리고 자신들을 구하러 올 수 있을지 아담으로선 초조하게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너무 아름다워요."
안나가 제임스의 품에서 눈물을 흘리며 지구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나 안나는 눈물조차 마음대로 흘리지 못했다. 조심스럽게 거즈로 눈물을 닦아야했다.
"10분 후에 우주정거장에 도착한답니다."
벅시가 인터폰으로 도착예정시간을 확인하고 창가로 다가서며 말했다.
"우주정거장으로?"
종현이 뜻밖이라는 듯 물었다.
모두들 곧 지구의 가족들을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부풀었다.
"바로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겠군."
바랭이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초조한 듯 다리를 떨며 손톱을 씹고 있었다.
"전, 지구에 가족이 없는데요."
제임스의 말에 종현이 야릇한 미소를 말했다.
"그건 걱정하지마. 우리 아버지가 그리스에 별장이 있지. 그곳을 빌려줄게. 자네들은 거기서 지중해나 보면서 늦은 신혼여행이나 하라고."
제임스와 안나가 쓰디쓴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아담은 과연 그들이 그리스에서 지중해를 볼 수 있을지 두려웠다. 그건 종현도 마찬가지였다. 이젠 감출 수도 없게 울긋불긋해진 그들의 피부와 머리 속이 환히 보이는 머리카락을 보며 위로의 말 대신 그저 인사치레로 한 말이었다. 아담은 조심스럽게 입술을 깨물었다. 상처가 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아주 조심스럽게 깨물었다.
그러면서 아담은 아내와 딸아이를 다시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물론 셔틀에서 아내와 통화를 했지만 지구의 상황이 좋지 않아 통화도 오래할 수 없었다. 겨우 아이의 건강이 안 좋다는 얘기만 들었을 뿐, 아이와는 통화도 하지 못했다.
"가족이 와 있으면 좋겠는데."
아담의 말에 손등에 거즈를 얹은 종현의 팔이 아담의 어깨를 잡아 흔들며 말했다.
"우주정거장에서 뭐가 좋다고 가족을 봐. 난 지구에서 가족을 볼 거야. 환영식만 끝나면 곧장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구로 내려갈 거야."
"난 송아지 한 마리를 통째로 잡아먹을 거야. 외계인들이 그놈들은 고스란히 남겨놨을 테니까. 없다고 빼지는 못하겠지."
의자에 앉아있던 레이놀드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 역시 몸을 떨고 있었다.
"난 오징어만 아니면 뭐든 상관없어."
바랭의 말에 모두가 화기애애하게 웃었다.
아마도 화성을 떠나온 후 처음 그렇게 웃는 듯했다. 그러나 입가에 미소를 짓기에는 힘들었다. 피부근육이 서서히 마비되고 있었다.

우주정거장에서 그들을 기다린 건 가족도 송아지 요리도 아닌 무균복을 입은 의료진이었다.
"이게 뭐야?"
그나마 상태가 양호한 벅시가 객실로 들어서는 의료진의 앞을 가로막으며 물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우주정거장의 의무사관 노바 샤를로스입니다. 여러분을 안전하게 모시기 위해 이렇게 왔습니다."
"안전하게? 무슨 소리요?"
종현이 다가와 따지듯 물었다.
"여러분은 이미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방사능에 오염됐습니다. 그래서 무균실에서 격리 수용이 필요합니다."
"젠장."
바랭은 빠지는 머리카락을 감추려는 듯 이리저리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방사능에 오염된 게 무슨 상관이요. 이게 전염병은 아니잖소. 지구에 가서 치료하면 돼요. 난 지구로 돌아가겠소. 어차피 난 민간인이니까 당신들 지시를 따를 필요는 없잖소."
바랭은 낮은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그리고 강한 인상을 심어주려는 듯 입술을 굳게 다물었다.
"바랭씨죠?"
샤를로스가 차트에서 바랭의 사진과 이름을 확인하고 물었다.
"그렇소."
"바랭씨 물론, 민간인이시죠. 하지만 지구로 돌아가는 건 곤란합니다. 이미 지구 전역에 계엄령이 선포됐죠. 아무리 민간인이라도 이제 모두 군의 지시에 따라야합니다. 그러니 바랭씨도 여기 남으셔야 합니다."
"우리의 건강을 염려해서라면 그 명령에 따르겠소. 그런데 가족은 만날 수 있는 거요?"
아담이 링거대를 의지해 다가오며 물었다.
그는 군인으로서 강한 모습을 보이기 위해 입술을 꽉 다물었다.
샤를로스는 아담의 어깨에 반짝이는 준장 계급을 확인하고 잠시 머뭇거렸다. 그리고 마른침을 삼키더니 긴장한 듯 헛기침을 하고는 더듬더듬 말했다.
"아, 그게, 아, 특별히 원하신다면 모셔드릴 수 있겠지만, 그게, 제가 감히 결정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닙니다. 게, 게다가 지금은 모두 재건에 전념하는 상황이라……"
"그만해, 아담. 이 사람 진땀 흘리다 죽겠어."
반가운 목소리였다. 화성에서 보낸 한 달 동안 친구가 돼준 레이의 목소리였다.
아담은 반가운 마음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녀 역시 무균복을 입고 있었다. 아담은 실망한 눈으로 레이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무균복 위로 선명한 준장 계급장이 보였다. 그녀 역시 준장으로 진급해있었다. 아담과 교신해 오징어 외계인들의 약점을 지구에 알려준 것에 대한 공이 아니라 책임 때문이었다. 그건 아담이 외계인의 1차 침입 때 소령을 달았던 것처럼 책임질 장성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사람들도 여러분의 안전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이러는 거예요."
"하지만, 우린 오랫동안 가족들을 못 만났어."
아담은 양보하지 않았다.
"알고 있어, 모두 그 점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 하지만, 지금 상황은 그럴 상황이 아니야."
"그럴 상황이 아니라니, 무슨 소리지?"
아담의 표정이 굳어졌다.
레이는 그런 아담을 안심시키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건 아담이 나설 필요도 없는 일이야, 너무 신경 쓰지마."
"그래, 그 신경 쓸 필요 없는 일이 뭐지?"
아담이 계속 따지고 들자 레이는 살짝 샤를로스를 돌아보았다. 샤를로스는 황급히 객실을 나섰다.
"이건, 아직 극비사항이지만, 그리 대단한 일은 아니야."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레이는 방 안의 사람들을 둘러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또 다른 외계인이 나타났어."
"뭐라고?"
레이의 말에 놀란 종현이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물었다.
방 안에 있던 모두가 경악했다.
"정말 우리 인류는 저주받았어."
바랭이 머리를 쥐어짜며 말했다.
"물론 그것만으로 여러분을 붙잡아두려는 건 아니에요. 그저 잠시 가족을 이곳으로 모셔오긴 좀 곤란해졌다는 얘기를 하기 위해서 말해두는 겁니다."
"이번엔 얼마나 많지?"
아담이 물었다.
"많든 적든 이제 놈들의 약점을 알고 있으니 걱정은 없어. 하지만 놈들의 숫자가 궁금하다면 말해주지. 고작 한 대 뿐이야."
레이는 여유 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작 한 대라고?"
"그래, 우리가 생각하기엔 낙오한 소형항모 같아."
"낙오한 소형항모라."
아담은 고개를 떨구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나 레이가 아담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그만해, 아담. 이번엔 우리에게 맡겨. 놈이 핵이든 생화학무기든 뭐에든 버틸 수 있다고 해도 이제 우리에겐 도마뱀 똥이 있으니까."
"도마뱀 똥?"
종현이 황당하다는 듯 바라보며 물었다.
"그래, 도마뱀 똥. 그게 녀석들의 코를 완전히 마비시켰지. 그 도마뱀 똥을 오렌지에 희석시켜 뿌리면 놈들은 한 시간 정도 후각이 마비돼. 그럼 우리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지."
"겨우 찾은 게 도마뱀 똥이라니 기가 막히는군."
바랭이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럼 지구에는 지금 도마뱀 똥 가루가 공기 중에 날아다닌단 말이요?"
"네, 물론 좀 그렇죠? 위생상으로도 좀 불결해 보이고. 그래서 지금은 더 좋은 걸 찾고 있어요. 간단히 화학적으로 만들 수 있는 거라든가. 아니면 향기가 좋은 걸로 말이죠. 하여튼, 여러분은 여기서 편히 지내도록 하세요."
레이가 다시 아담의 어깨를 다독이며 말했다.
"물론 나도 레이가 잘 하리라 믿네. 하지만, 우리는 가족들의 안전을 궁금해, 통화를 했지만 정확히 상황을 알 수는 없잖아, 자네가 좀 그들을 돌봐 줄 수 있겠나?"
"물론이지. 그 정도는 충분히 하고 있어. 각 국에서 자네들 가족들을 모두 인류를 구한 영웅의 가족으로 대우하고 있으니까. 국빈급으로 대우를 해주고 있지. 그러니 걱정말고 치료부터 받도록 해. 그래야 하루라도 빨리 가족들을 만나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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