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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천지개벽... 37

2009.02.26 01:1402.26


37.

부검을 마친 호세는 벽에 기대어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사인은 알아냈소?"
아담이 진찰실로 들어서며 물었다.
수술용 침대 위에는 토막 난 오징어 외계인이 축 늘어져 있었다. 바닥엔 노란 액체가 입구까지 흥건했다.
"사인? 사인이라고 했어요? 젠장. 이 빌어먹을 놈은 어디서 찾은 거죠?"
호세가 책장을 뒤지며 물었다.
"지하기지에서 찾았소. 이 놈 말고 다른 놈들도 있었는데 대충 백 마리 정도 될 거요."
"그리고 아무 것도 없었나요?"
아담은 호세의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니까 다른 생명체나, 하다못해 먹다 남은 빵이라도 없었냐는 말이에요."
"지하에 비상식량은 그대로 있더군요."
호세의 질문에 레이놀드가 대답했다.
"그리고 우리 최강의 무기가 있었죠."
제임스가 나비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게 놈의 사인과 관련이 있소?"
호세는 책장에서 숨겨둔 술병을 꺼내 벌컥벌컥 들이켰다.
아담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이제 말할 기분이 좀 드오?"
"젠장, 이건, 이건 미친 짓이야."
호세는 다시 술을 들이켰다.
"답답하게 굴지말고 어서 말해봐요."
레이놀드가 술병을 뺐으려고 손을 뻗으며 말했다.
그러나 호세는 레이놀드의 손을 뿌리치며 다시 벌컥벌컥 들이키더니 거친 숨을 몰아쉬고 아담을 보며 말했다.
"놈들은 굶어죽은 거예요. 굶어죽었다고, 그게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아담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게 무슨 소리요?"
레이놀드가 물었다.
"빌어먹을, 놈들은 처음부터 우리를 잡아먹기 위해 온 거예요. 알겠어요? 우릴 먹어서 배를 채우려고 왔단 말이에요. 당신들도 봤죠?! 놈들은 다른 건 관심도 없어요. 개, 돼지, 소, 이런 게 아니라 단지 우리 인간을 잡아먹기 위해 왔단 말이에요."
"인간을 잡아먹으러 왔다고?"
종현이 놀라 물었다.
"그래요. 아까도 말했지만 놈들은 영장류만 먹죠. 그런데 그 지하기지에는 영장류가 없었겠죠. 왜, 다 먹고 없었던 거요. 그 기지에 있던 사람들을 다 잡아먹고 더 이상 먹을 게 없었던 거죠. 그래서 놈들은 굶어죽은 거예요. 알겠어요?"
호세의 말에 모두들 잠시 충격에 빠져 한동안 서로를 바라보았다.
아담이 침착하게 물었다.
"좋소, 그럼 이제 놈들의 약점은 뭔지 말해봐요."
"약점? 흥, 알게 뭐예요. 젠장, 놈들을 그렇게 죽이고 싶어요?"
호세가 진찰실에 들어선 아담과 레이놀드 등을 하나하나 쳐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술을 벌꺽벌꺽 들이키더니 흘러내리는 술을 소매로 닦으며 말했다.
"젠장, 좋아요, 그럼 당신도 깨끗이 죽어버려요. 그럼 놈들도 그냥 굶어죽을 테니까. 알겠어요? 틀렸어, 젠장. 이건 우리를 살육하기 위해 존재하는 빌어먹을 놈들이란 말예요."
"그럼 박사님 말은 먹이피라미드에서 가장 상위였던 우리 위에 또 다른 놈이 나타났다 이 말인가요?"
안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안나가 먹이피라미드를 얘기하자 호세는 예전에 배운 생물학 시간이 떠올랐다. 지긋지긋한 수업이었지만 그걸 생각하는 것만으로 뒤죽박죽으로 꼬이고 두려움에 혼미하던 머릿속이 한층 가벼워졌다. 호세는 한숨을 내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렇게 보면 되겠죠. 젠장. 웃기지 않아요? 이런 생물은 나도 처음이에요. 어차피 사람이나 고양이나 단백질 덩어리일 뿐인데 놈들은 사람만을 잡아먹어요. 이건 거의 우리 인류에 대한 복수예요. 이건 완전히 우주가 인류를 멸종시키기 위해 탄생시킨 존재죠."
"하지만, 녀석을 죽일 순 있겠죠?"
호세는 고개를 저었다.
"생명학적인 관점으로 말한다면 심장이 멈추거나 뇌사상태가 된다면 죽었다고 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그 자세한 방법은 지금 여기서는 알 수 없어요. 세포배양을 해서 좀 더 세포조직을 연구해보던가, 그렇지 않고선 여기서 알 수 있는 건 없어요."
"그렇게 복잡한 건 필요 없소. 우리가 알고 싶은 건 어떻게 놈의 심장을 멈추게 할 수 있느냐는 것뿐이오."
아담의 물음에 호세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놈을 죽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길이 20cm의 주사바늘에 코끼리용 마취제 20ml를 심장 3cm 이내에 주입하면 가능하겠죠. 그것도 놈의 예민한 근육이 휘감기지 않도록 천천히 꽂아야해요. 하지만, 놈의 심장에 바늘을 갖다대는 것조차 쉽지 않아요. 앞은 반구형태의 강철같은 가슴뼈로 막혀있어요. 척추는 활처럼 넓게 펼쳐져 있죠. 결국 바늘을 꽂으려면 놈의 목을 비틀어서 부러뜨린 다음 등뒤에서 천천히 꽂아야 놈의 심장에 마취제를 주입할 수 있어요."
호세의 말에 위니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건 너무 비현실적이잖아요. 총처럼 간단한 걸 생각해봐요. 그냥 마취총은 어때요? 100ml쯤 넣어서 쏘면 효과가 없을까요?"
위니의 간절한 표정에도 호세는 다시 고개를 저었다.
"이 녀석들은 상상을 초월해 엄청난 근육을 가지고 있어. 온몸이 다 근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야. 그러니 근육만 마비시키는데 필요한 량만 최소한 200ml는 들 거야."
"현실적으로 가능한 다른 방법은 없소?"
아담이 물었다.
"지금까지 봐선 그런 건 없어요. 빌어먹을 녀석은 외피가 두꺼운데다 조직이 치밀해서 총알이 안의 근육까지 파고 들 수도 없어요. 놈을 해부할 때 피하지방층에서만 총알이 7개나 나왔어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7발 모두 근육조직에도 미치지 못했어요. 게다가 내장은 극히 적어요. 그만큼 내장을 파괴해 놈을 죽이기도 어렵다는 거죠. 게다가 뇌도 다른 오징어보다 크지도 않고 위도 덩치에 비해 작고, 추측하건대 놈은 계속 작은 위가 소화를 해야 체격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결국 먹고, 먹고 또 먹어야 해요. 쉬지 않고 말이에요. 빌어먹을."
호세는 현기증을 느끼고 책상에 걸터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박사 말은 놈은 인간 같은 영장류만을 잡아먹는다는 건데."
종현은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상하잖소. 우리와 같은 외계생명체가 또 있다면 몰라도 지난 수백 년 동안 우리가 그렇게 찾았어도 우리와 같은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았소. 설령 있었다해도 놈들이 그 생명체를 잡아먹고 이 태양계로 올 때까지 이 녀석들이 어떻게 버틸 수 있었죠?"
"그건 내 소관이 아니에요. 내가 이 빌어먹을 녀석들을 창조한 건 아니잖아요. 빌어먹을, 도시 밖에 추락한 놈들의 항모가 있잖아요, 거기에 다른 우주에서 잡아놓은 인간의 고기라도 있었겠죠."
"대충 약점이라도 알 수 없소?"
아담의 물음에 호세는 코웃음치며 말했다.
"약점? 지금까지 내 말을 뭐로 들었어요?, 놈들은 약점이 없어요."
"어떻게든 놈들의 약점을 알아내야 해요."
레이놀드가 답답한 듯 말했다.
"답답한 사람들, 말했잖아요. 놈들이 총에도 끄떡없고 핵공격에도 살아남았다면 우리로선 놈들을 죽일 수 있는 무기는 없어요. 우리가 악어처럼 강한 턱이 없는 한 끝이라고요. 1대 1로는 불가능해요."
"1대 1이 안되면 1대 100이라도 해서 싸워 이겨야죠."
안나가 비명을 지르듯 말했다.
그러나 호세는 여전히 냉소적이었다.
"미치겠군. 당신들 말대로 그래야겠지만 도대체 내 말은 뭐로 듣는 겁니까? 총을 수백 발을 쏴도 놈은 쓰러지지 않아요. 몽둥이로 수천 대를 때려도 쓰러지지 않고, 유일한 방법은 악어나 사자처럼 강한 턱으로 근육을 물어 뜯어내는 것뿐이라고요. 아니면 뱀처럼 꽁꽁 놈을 주여 질식시켜야겠죠. 하지만 그럴 무기가 우리에게 있나요? 결국 놈을 죽이고 싶으면 이곳 화성처럼 인간이 없어야 해요. 알겠어요? 우리가 사라져야 놈들도 사라진단 말입니다."
"잠깐, 이것 좀 보세요."
외계인의 시체를 살피던 위니가 해부한 외계인의 내장에서 작고 동그란 물체를 끄집어내며 말했다.
"이거 혹시 눈인가요?"
"응."
호세가 대답했다.
"그런데 눈이 너무 작고 근육조식에 가려져 있어요."
"거의 퇴화가 된 거지."
호세는 아무렇지 않은 듯 심드렁히 말했다.
"결국 이 오징어들은 우리를 눈으로 볼 수 없다는 거군요?"
아담이 물었다.
호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눈은 거의 퇴화됐죠. 바로 눈앞에 있어야 볼 수 있어요. 여기까지 어떻게 비행해 왔는진 모르겠지만 우선은 놈들은 눈보다는 청각과 후각이 월등히 발달했어요."
"청각과 후각?"
"네, 청각과 후각. 냄새로 인간을 골라내죠. 그쪽 신경다발을 봐선 저 고양이나 개만큼 발달한 것 같더군요. 아마 수 킬로미터 밖에 있는 인간의 냄새도 다 맡을 거예요. 게다가 귀는 박쥐처럼 생겨서 아마 초음파는 물론이고 웬만한 주파수의 라디오도 들릴 거고요."
"어때요?"
위니가 아담을 보며 물었다.
"뭐가 말이오?"
아담이 되물었다.
"이게 놈들을 죽일 수 있는 약점은 아니지만 우리에겐 기회가 될 수도 있죠."
"기회?"
아담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말인지 자세히 말해봐요."
그때 종현이 알았다는 듯 다가와 말했다.
"그렇군. 놈들은 후각이 발달했지만 여기 동물원에 숨어있던 당신들은 찾지 못했지."
"그래요. 그건 여기에 우리 냄새보다 다른 동물들의 냄새가 더 많이 나기 때문이죠. 아니면 놈들이 싫어하는 냄새가 이곳에 있거나."
"그래서? 자네는 놈들이 싫어하는 동물의 냄새를 향수로 만들어 뿌리고 다니자는 건가?"
호세가 빈정거리듯 말하다가 번쩍 눈을 떴다.
"그렇군."
"그래요, 그럼 최소한 놈들은 인간을 공격하지 못할 거예요."
위니의 말에 레이놀드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그때 빌어먹을 녀석들을 매달아놓고 샌드백처럼 두드리면 되겠군."
"어쩌면 인간을 못 찾고 굶어죽겠죠."
벅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린 그저 녀석들을 무시하면 돼요."
위니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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