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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천지개벽... 35

2009.02.24 01:3702.24


35.

아담은 어두운 계단을 내려갔다. 그 뒤로 레이놀드와 안나, 제임스가 뒤따라 내려왔다. 적색 경광등 불빛이 어두운 복도를 비추고 있었다. 아담은 그 불빛에 의존해 복도의 끝을 바라보았다. 커다란 문으로 막힌 복도 끝에는 카드인식기가 붉은 LED등을 켜고 복도를 밝히고 있었다. 아담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 작동하는군. ……내 카드가 인식이 되야 할텐데."
아담은 목에 걸린 자신의 ID카드를 꺼내 단말기에 꽂았다. 그리고 자신의 암호를 입력한 뒤 당시 화성의 직책을 떠올리고 음성인식을 시도했다.
"제 3 이주도시 작전참모 아담 바이블린."
잠시 깜빡이던 붉은 등이 꺼지고 단말기의 녹색 LED가 켜지면서 기계음이 흘러나왔다.
"어서 오십시오."
공기가 빠지는 소리가 들리며 문이 스르르 위로 들렸다.
"으악."
놀란 안나가 비명을 질렀다.
문이 반쯤 들리는 순간 갑자기 검은 물체가 밖으로 쓰러졌다.
들기름 냄새가 진동했다. 외계인의 시체였다. 시체는 한두 구가 아니었다. 수십 구의 외계인 시체가 문 앞에 모여있었다.
"젠장, 여기도 당했군."
아담이 숨을 참으며 나직이 말했다.
이번에는 토악질을 하지 않았다. 속이 진정된 것 같았지만 방사능 오염의 다음 단계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피할 수 없었다.
레이놀드가 다가가 시체를 살폈다. 이상하게도 특별한 외상은 없었다.
"왜 여기에 모여있었을까요?"
"기지 안에서 밖으로 탈출을 시도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제임스가 벽에 난사된 레이저의 흔적을 가리키며 말했다. 온통 검게 그을린 벽은 분명 레이저의 흔적이었다.
"혹시 안에 사자가 있진 않을까요?"
안나가 두려운 듯 말했다.
"그렇더라도 두려워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만약 배가 고팠다면 벌써 이 녀석들을 먹어치웠겠지."
제임스가 앞장을 서며 말했다.
뒤이어 아담이 안나와 나란히 앞으로 걸어갔다. 복도는 어두웠지만 군데군데 비상등이 앞을 비추고 있었다. 복도의 끝에는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타났다. 계단 위에서 내려다보자 넓은 공간 아래로 많은 책상과 구석구석에 작은 방들이 보였다. 그리고 중앙에는 작은 돔이 하얀빛을 내뿜고 있었다.
"저긴 뭐죠?"
안나가 돔을 가리키며 물었다.
"제 4도시가 건설된 이곳은 원래 커다란 크레이터였지. 그리고 저건 그 크레이터 위에 이주도시가 건설되기 전까지 화성에 떨어진 유성을 연구하기 위해 만들어진 돔이오."
"처음 듣는 얘기군요."
"나도 이곳에 와보기 전엔 몰랐던 일이오."
아담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저기 좀 봐요."
제임스가 가리킨 곳을 보자 여기저기 쓰러진 외계인의 시체가 보였다. 마치 이곳에서 대단한 회합이라도 한 듯 보였다. 아담은 소름이 끼쳤다. 예전에 이곳에 왔을 때 함께 작업했던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곳 지하기지에 상주하던 인원만 500명이 넘었다. 그런 그들이 이제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없어졌다. 그리고 오직 외계인의 시체만이 남았다.
텅텅텅, 철제 계단을 내려오자 그 소리가 적막한 공간에 메아리 되어 울렸다. 레이놀드는 자신의 몸무게를 버틸지 불안한 얼굴로 계단 위에 남아 있다가 다른 일행이 모두 바닥에 내려서자 그때서야 난간을 잡고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아담이 계단을 내려서자 어둠 속에서 날카로운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담과 제임스가 동시에 고양이를 향해 전등을 비췄다. 갈색털의 얼룩무늬 고양이었다. 고양이는 외계인의 시체에 얼굴을 파묻고 시쳬를 뜯고 있었다. 아담은 그 고양이가 이곳 부사령관의 고양이라는 걸 기억해냈다.
"이리 온 고양아."
안나가 손바닥을 치며 고양이를 불렀다.
"이름은 나비요."
아담은 고양이의 이름을 기억해내고 말했다.
아담이 쪼그려 앉아 손을 내밀자 나비는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고 앙칼진 울음소리를 내더니 천천히 아담의 다리사이로 다가와 몸을 비비기 시작했다. 아담은 나비를 안아들었다.
얼굴에 묻은 들기름 같은 외계인의 피가 길게 늘어지며 떨어졌다. 어떻게 보이든 피는 피였다. 아담은 잠시 얼굴을 찡그리더니 곁에 선 제임스에게 나비를 넘겼다.
"잘 챙기게. 이게 우리 최고의 무기일지도 모르니까."
레이놀드가 다가와 장난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네? 오, 이런."
제임스가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고양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들기름 같은 외계인의 피로 얼굴이 범벅이었다.
그때 낮은 잡음에 이어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 아무도 없어요? 여긴 고요의 바다, 암스트롱 기지. 누구든 응답해요. 젠장, 누구든 응답 좀 해.
그건 레이의 목소리였다. 돔 안에서 들리는 소리였다.
아담은 재빨리 돔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레이?"
그러나 레이의 목소리는 단지 위성통신 장비를 통해 흘러나온 목소리였다.
아담은 서둘러 마이크를 집어들고 말했다.
"여기, 화성 제 4 이주도시, 나는 아담 바이블린 중령이다, 레이, 레이 맞나?"
- 여긴 고요의 바다, 암스트롱 기지. 누구든 응답하시오. 젠장. 여기는 고요의 바다 암스트롱 기지 들리면 응답하라.
"레이, 내 말 안 들려?"
"진정하세요. 이곳 신호가 암스트롱에 도달하려면 최소한 3분은 걸려요."
레이놀드가 다가와 아담의 어깨를 붙잡고 말했다.
레이놀드의 설명에 아담이 급한 마음에 주파수를 돌리려던 손을 멈추고 한숨을 내쉬고 기다렸다.
그러자 잠시 후, 레이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 이런 아담. 살아있었군. 잘 됐어. 정말 잘 됐어. 젠장, ……정말 미안해. 우리도 자네의 구조신호를 들었지만, 우린 응답하고 싶었지만 상부의 지시였어. 절대 외부 회선에 응답하지 말라더군. 그래서 어쩔 수 없었어. 상부의 지시였어. 정말 미안해.
레이의 목소리는 거의 울먹이고 있었다.
"레이, 진정해. 우린 무사해, 하지만 타이탄은 전멸했네. 기지는 핵폭발로 완파됐고, 유로파의 갈릴레이 기지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네. 난 종현과 레이놀드 소령, 벅시 중위와 호이겐스 기지의 생존자들과 타이탄을 탈출했네. 그리고 지금은 화성에 도착했어. 그런데 달은 어떻게 된 건가? 지구는? 외계인들은 어디까지 갔지?"
아담은 3분의 긴 간격을 기다릴 수 없어 여러 가지 질문을 했다.
- 젠장, 그 벌을 그대로 받았지.
"무슨 소리야?"
대답 없을 레이를 향해 아담이 물었다.
- 오늘 새벽에 완전히 놈들에게 당했어, 그러니까 8시간 전이야. 지금 놈들은 지구를 향하고 있어. 우린 그 모습을 빤히 보면서도 젠장. ……우린 대패했어. 게다가 기지 상황도 좋지 않아, 산소공급장치도 8%밖에 작동하지 않고, 이대로라면 한 달 이상 버틸 수 없을 것 같아. 어쩌면 그게 나을 수도 있겠지. 젠장, 지금 막 놈들이 지구 대기권으로 진입했어. 우린 속수무책이었어. 이번엔 핵도 소용없었어, 생화학무기도 소용없었고. 도무지 놈들을 어떻게 상대해야할 지 모르겠어. 이건 끝이야. 이건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레이는 자포자기한 상태처럼 들렸다.
"레이, 아직 실망하긴 일러, 우린 여기 화성에서 놈들의 시체를 발견했어. 우리가 놈들의 시체를 발견했어. 그 시체를 조사하면 놈들의 약점을 알아낼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놈들은 젠장, 어처구니없는 소리 같지만 놈들은 사람이나 원숭이가 아니면 알아보질 못해 그러니까 굶주린 사자나 악어를 풀어놓으면 동물들이 그 놈들을 잡아먹을 수 있어."
방책이라고 말하는 아담 자신도 어이가 없었지만 지금으로선 가장 최선의 방법이었다.
- 놈들의 시체를? …… 악어가? 사자와 악어를 풀어놓으라고? 아담, 제정신이야?
"그래, 미친 소리 같지만 지금으로선 그게 최선이야. 내 말을 믿어. 그게 지금으로선 최선이야. 명심하게 어떻게든 지구와 연락을 해서, 우선 최선의 방법은 그것뿐이라고 전해."
- 정말 미쳤군. 지금은 22세기야, 야생동물로는 우리 인류를 구할 수 없어. 그리고 놈들을 검투사처럼 콜로세움에 가둘 수도 없다고. 도대체 어떻게 그런 방법을 쓸 생각을 했지?
"레이! 핵도 생화학무기도 소용없다면 더 강한 무기가 있나? 강한 무기가 통하지 않는다면 가장 약한 무기를 써볼 수도 있잖아. 이건 우선 임시방편이지만 여기 화성에 그 방법으로 아직 살아남은 생존자가 있어. 그러니까 야수들을 이용해서 어떻게든 버텨보라고 전해."
- 좋아, 자네를 믿고 설득은 해보겠지만, 그들이 내 말을 따를 거라는 보장은 없어,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자료를 부탁해.
"좋아, 레이. 곧 자료를 보내도록 하지. 그리고 놈들을 해부해서 약점을 알아보도록 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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