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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천지개벽... 34

2009.02.23 00:1002.23


34.

건물 지하에 위치한 동물원의 진찰실로 가는 길은 파충류를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지옥으로 가는 고속도로 같은 길이었다.
우선 지하로 내려가는 1층 계단 앞에는 함정을 만들어 제일 먼저 커다란 아나콘다의 입으로 들어가게 만들었고, 그 아래 계단은 악어들이 먹잇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부족하다고 느꼈는지 복도의 중간에는 커다란 보아 뱀이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설마 얘들을 밟고 가야하나요?"
종현이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원하신다면요."
위니는 종현을 밀치고 지나가 벽에 난 환기구를 당겨 열고는 안으로 들어갔다.
아담과 일행은 위니를 따라 환기구를 통해 지하로 내려갔다. 중간, 중간 쉬쉬거리는 소리와 으르렁거리는 야수들의 소리가 들리는 걸로 봐선 환기통 어딘가에도 뱀과 호랑이들을 풀어놓은 듯했다.
"안전한 겁니까?"
아담이 뒤따라 기어가며 물었다.
"물론이죠. 모두 철망으로 막아놔서 이쪽으론 오지 못해요."
앞서서 환기구를 기어가던 위니가 돌아보며 말했다.
"도대체 왜 이렇게 해놓은 겁니까?"
"외계인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려니 이 방법밖에 없었어요."
"확실한 방법이긴 하군요. 근데 아직 멀었소?"
"이제 다 왔어요."
위니의 말에 고개를 들자 위니의 어깨너머로 하얀 불빛이 보였다. 그 불빛을 등지고 초조한 듯 몸을 흔드는 사내의 모습이 보였다.
"위니, 괜찮아? 호랑이소리가 들리던데."
사내는 위니가 환기구를 나서자마자 두 손을 모으고 초조한 표정으로 다가와 말했다.
하지만 위니는 이미 그런 사내의 태도에 진저리가 났는지 억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전 괜찮아요. 근데, 샤샤가 죽었어요."
위니는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래도 자신을 책망하는 듯했다. 그러나 사내는 위니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두 손을 모아 감사기도를 드렸다.
"어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데."
"호세, 정말 내 걱정은 안 해도 되요."
"어떻게 안 할 수 있어? 이 세상에 당신과 나 밖에 없을 수도 몰라. 어머나!"
호세이라 불린 사내는 위니에 이어 환기구를 나오는 아담과 일행을 보고 놀라 자빠질 뻔하다가 간신히 책상을 짚고 섰다.
"호세. 여기 방위군이 왔어요. 이제 당신과 내가 아담과 이브가 될지 모른다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요."
아담에 이어 레이놀드까지 위니를 좇아 환기구를 나오자 호세는 잠시 놀라 물러서더니 다시 위니의 말에 구세주를 만난 듯 벅찬 얼굴로 다가와 레이놀드의 손을 두 손으로 맞잡고 흔들었다.
"어서 오세요. 우리를, 우리를 구하러 온 건가요?"
레이놀드가 미처 대답도 하기 전에 호세가 연이어 물었다.
"셔틀은 어디 있죠? 전 이대로 그냥 가도 돼요."
수의사인 호세 발데라스는 까치집 같은 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는 이미 공포에 질려 정신이 반쯤은 나간 듯 보였다.
아담은 대답대신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작은 전등 뿐이라 조금은 어두웠지만 동물을 넣는 작은 우리가 한 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게 보였다. 그 안은 화성의 도시들처럼 텅 비어있었다. 폐업한 수의사의 진찰실 같았다.
"미안합니다. 우리도 셔틀을 구하고 있소."
레이놀드가 대답했다.
"뭐라고요?"
호세는 자신의 귀가 의심스러운지 레이놀드의 입으로 귀를 바짝 갖다대며 물었다.
"우리도 셔틀을 구하고 있다고요."
"이런 빌어먹을, ……맙소사, 구조대가 아니군. 이런 젠장, 이제 비상전원도 얼마 버티지 못할텐데, 젠장, 놈들이 여길 곧 찾아낼 거야, 어쩌지, 빌어먹을, 그럼 당신들은 뭐죠?"
호세는 실망감에 비틀거리더니 책상을 짚고 버티며 물었다.
"나는 아담 바이블린이라고 합니다. 나와 이 친구들은 암스트롱 기지의 방위군이고 저쪽 친구들은 타이탄 호이겐스 기지의 방위군입니다."
아담이 가볍게 손짓으로 가리키며 대답했다.
"이게 무슨 소리죠. 호이겐스는 그렇다지만 암스트롱 기지는? 설마 암스트롱 기지도 파괴된 건가요? 그럼 우리는 완전히 고립된 거예요? 오, 맙소사."
종현은 이 커다란 화성에 고립되었다는 말을 들으니 왠지 어색하기만 했다.
"그건 우리도 모릅니다. 우리는 그저 타이탄에서 오는 길에 화성에 비상 착륙한 것뿐이오."
"젠장, 것 봐, 위니. 내 말이 맞잖아. 쓸데없이 위험을 감수했어. 이제 여기도 위험해진 거야."
호세가 위니를 책망하듯 바라보며 말했다.
"발데라스 박사님, 사방에 파충류를 풀어놨던데 놈들이 파충류를 싫어합니까?"
아담은 수의사 호세에게 악수를 청하며 물었다.
그는 다짜고짜 물어오는 아담의 질문에 잠시 당황하더니 손을 입으로 가져가 더듬더듬 대답했다.
"그, 그럴지도 모르죠."
아담의 눈이 반짝였다. 호세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그 싫어한다기보다는 아예 관심이 없다는 게 맞는 것 같아요."
호세는 초조한 듯 팔짱을 끼고 입술을 깨물었다.
"관심이 없다고요?"
"그러니까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우선은 파충류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호세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인식을 못한다니 무슨 뜻입니까?"
"그러니까, 말씀드렸듯이 정확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놈들은 인지능력이 무척 떨어져요. 아니, 그러니까, 그게 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니까 자신들이 위험하다는 것도 잘 인식하지 못하고."
"발데라스 박사? 침착해요. 여긴 안전하지 않습니까."
아담이 호세를 진정시키며 말했다.
"아, 예. 휴."
호세는 가슴에 손을 얹고 깊게 한숨을 들이쉬었다.
"그러니까, 후. 그러니까 놈들은 악어가 자신의 동료들을 잡아먹고 있는데도 태연히 악어에게 다가가기도 해요. 마치 장님처럼 악어를 보지 못하는 것 같아요. 소리도 그래요. 우리는 소리를 질러 서로에게 경고하지만 놈들은 그런 것조차 없는 것 같아요. 그저, 그냥, 낑낑거리는 신음소리정도죠. 저들은 의사소통이 전혀 없는 것 같아요. 어쩌면 대기 중에선 말을 못하는 걸지도 모르죠. 어쨌든 우리랑 너무 달라요."
아담은 눈살을 찌푸렸다. 저들이 타고 온 비행선의 규모나 성능으로 봐서는 인간보다 더 우수한 지적생명체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서로 의사소통조차 어려운 존재라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박사님은 그들이 의사소통을 못한다고 생각합니까?"
"그, 그게 가능한지 안 한지는 모르겠어요. 좀 이상하긴 하죠. 아무리 미미한 존재라도 같은 종끼리는 의사전달정도는 가능하니까요, 심지어 개미나 벌 같은 곤충이나, 쥐들도 서로에게 위험을 전할 수 있죠. 그런데 우주선을 타고 은하계를 건너 이곳까지 오는 외계인들이 서로 의사소통도 어렵다는 게, 정말, 말이 안 되는 일이죠. 하지만 지금까지 저와 여기 위니가 본 바로는 그렇게 밖에 볼 수 없어요."
호세는 자신이 말하면서도 스스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그럼 박사님 말씀은 우리가 지금 의사소통도 못하는 놈들한테 공격을 받고 있단 말이오? 그게 말이 돼요? 그럼 어떻게 저들이 일제히 지구로 쳐들어올 수 있었는지 설명할 수 있죠?"
종현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물었다.
"저들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방법으로 의사소통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아담이 물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죠. 당연히 그럴 겁니다. 그래야겠죠. 하지만, 왜 위험을 서로에게 경고하지 않을까요? 그걸 생각해봐요. 만약 내가 저 괴물들한테 잡히면 조용히 있을까요? 아니죠. 절대 안 그럴 거예요. 물론 여러분도 안 그러죠. 비명을 지르고 살려달라고 하겠죠. 하지만, 저들은 안 그래요. 죽음에 무감각해요. 게다가 저들이 어떻게 해서 우리 인류를 동시에 쳐들어왔는지는 모르지만 놈들은 서로를 돕지 않아요."
"그게 그놈들의 문화겠지."
종현이 빈정거리며 말했다.
그러나 위니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하지만, 자신까지 똑같은 위험을 반복한다는 건 단지 그들의 문화가 그렇다기보다 위험을 인지하는 능력이 형편없다는 걸 의미하는 거죠."
"아니면, 정말 파충류가 보이지 않는 건 아닐까요? 그러니까 놈들은 온도로 사물을 인식하는 거죠. 그런데 파충류는 냉혈동물이잖아요."
종현의 말에 레이놀드가 덧붙였다.
"그럼 돼지처럼 진흙 목욕으로 체온을 낮추면 놈들이 우리를 인식하지 못하겠군요."
그러나 호세는 고개를 저었다.
"단순히 그것만은 아니에요. 왜냐면 놈들은 사자도, 건드리지 않아요. 하지만 원숭이는 보이는 족족 죽였어요. 그러니까 사람이나 원숭이, 고릴라 같은 영장류만 골라서 공격해요."
"그리고 그걸 먹죠."
위니가 담담하게 말했다.
"뭐, 뭐라고요? 인간을 먹는다고?"
가만히 듣고 있던 안나가 놀라 물었다.
"그래요. 정확히 말하면 영장류를 먹죠. 그들은 우리를 식량으로 쓰고 있어요."
"그걸 어떻게 아시오?"
아담이 물었다.
"직접 봤으니까요."
"오, 위니."
호세가 다시 긴장하며 입술을 잡아뜯기 시작했다.
"직접 봤다고요?"
레이놀드가 물었다.
위니는 생각만으로도 두려운 듯 가볍게 몸을 떨기 시작했다. 그리고 입술을 말아 물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여기에 왜 사람들의 시체가 없겠어요. ……그들은 단지 고기만 먹는 게 아니에요. 피까지 마시죠. 우리가 물을 마시는 것처럼요. 더 놀라운 건 영장류가 아니면 먹지 않는다는 거예요. 자신들을 죽이더라도요."
"죽이더라도?"
위니는 눈을 감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다시 그때의 악몽이 떠오른 듯 재빨리 눈을 뜨고는 주위의 사람들을 확인했다. 그녀는 그것만으로 충분히 안심이 되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저도 이유는 몰라요. 하지만, 놈들은 영장류가 아니면, 마치 못 보는 것 같아요. 영장류만 보이면 곧장 달려드는데 이상하게 다른 동물들은 다가와 자신의 팔을 물어뜯어도, 심지어 지난번에는 한 외계인이 고릴라를 먹고 있었는데, 사자가 나타나서 그 외계인의 다리를 물어뜯기 시작했죠. 그런데 그 외계인은 잠시 자신의 다리를 보더니 마치 알 수 없다는 듯, 그런 거예요. 마치 내 다리가 지금 아픈데 왜 아픈지 모르겠다는 듯 다리를 살펴보더니 다시 고릴라를 먹더라고요."
위니는 고개를 들어 아담과 레이놀드를 번갈아 바라보며 물었다.
"이상하죠?"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군."
벅시가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보고도 보이지 않는다?!"
아담은 도저히 자신의 상식으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위니의 말에 이마를 어루만지며 되뇌었다.
"그건 인지방법의 차이일 수도 있어요. 인간처럼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촉감이나 냄새, 소리로 사물을 인식하는 거죠. 눈으로 사물을 인식하는 우리와는 다른 거죠. 그리고 사자의 냄새는 위험으로 감지하지 않는 거죠."
호세가 말했다
"하지만, 자신을 먹어치우는 사자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건 도무지 이해할 수 없군요."
레이놀드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게 우리 인류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해결방법이 될 수 있겠죠. 이 사실을 지구에 알렸습니까?"
아담이 호세와 위니를 번갈아 바라보며 물었다.
위니는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연락을 할 수 있겠어요. 밖에는 아직 외계인들이 있어요. 잡히면 산 채로 놈들의 먹이가 되는데."
"밖으로 나갈 필요는 없어요. 이곳 지하 8층에 화성 방위군의 지하시설이 있으니까요."
아담이 담담히 말했다.
"이곳 지하예요?"
위니가 놀라 물었다.
"예전에 화성에서 근무할 때, 이곳의 지하기지와 함께 작업을 한 적이 있죠. 그때 두 번 와본 적이 있소. 무기고나 격납고는 아니고 연구목적의 컴퓨터와 통신장비가 있죠. 그곳이라면 연락이 가능할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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