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장편 천지개벽... 33

2009.02.22 00:3702.22


33.

화성의 평균기온은 영상 17℃내외였지만 하늘을 가린 울창한 나무는 열대의 활엽수였다. 그렇다고 이상할 건 없었다. 이제 우주에는 더 대단한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앞장선 종현이 고개를 들어 나무 위를 살폈다. 의례 이런 장면에서 을씨년스럽게 들리는 원숭이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아담 역시 뭔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주위를 경계하며 나아갔다. 숲 끝에 도착했을 때 멀리 보이는 철제우리의 녹슨 문이 낡은 경첩소리를 내며 삐꺽거렸다. 낮은 언덕 중간에 위치한 천장이 없는 낮은 우리였다. 그 앞에는 연못이 있었는데 아마도 연못에 사는 작은 동물들을 가둬놓는 곳 같았다. 그 뒤로 언덕처럼 생긴 동물원 건물이 보였다. 아담은 건물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때 갑자기 우리 안에서 장작을 패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아담은 걸음을 멈추고 총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벅시와 함께 조심스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연못의 수면이 간간이 파문을 일으키긴 했지만 주위는 고요했다. 그래서 더욱 철퍼덕 소리가 을씨년스럽게 들렸다. 아담은 철퍼덕거리는 소리가 딱딱하지 않은 어떤 물체를 바닥이나 벽에 집어던져 내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불안했다. 그리고 어디선가 들기름 같은 냄새가 바람을 타고 날아왔다. 들기름 냄새에 바랭이 토악질을 해댔다.
벅시는 우리의 철창 옆에 기대어 잠시 숨을 고르더니 재빨리 고개를 빼 안을 살짝 살펴본 후 다시 숨을 고르며 자신이 본 사물에 대해 기억을 더듬었다. 그리고 뭔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다시 우리 안을 들여다보더니 놀란 얼굴로 곧장 물러섰다.
"이런, 우웩."
벅시가 토악질을 해댔다.
"뭐야?"
숲 끝에서 다급히 묻는 레이놀드에게 벅시는 손을 들어 우리 안을 가리키며 말했다.
"악어가, 빌어먹을. 그 놈이 사람을 잡아먹고 있어요. 우웩."
벅시의 말에 아담이 다가가 우리 안을 살폈다.
벅시의 말대로 악어가 무언가를 물고 몸을 비틀어 뜯어내고는 턱을 크게 벌려 삼키고 있었다. 철퍼덕거리는 소리는 악어가 먹이를 바닥에 내팽개치고 흔들어 벽에 던지면서 나는 소리였다. 아담은 눈살을 찌푸렸다. 속이 울렁거리며 토할 것 같았다. 그러나 놀란 눈을 쉽게 떼지 못했다. 그리고 이내 뭔가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악어가 삼키는 먹이에서 피가 아닌 노란 체액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늘진 우리 안을 비춘 노란 전등 때문에 피가 그렇게 보이는 거라 생각했지만 피비린내도 나지 않았다. 흘러내리는 체액에서는 피비린내 대신 진한 들기름 냄새가 났다.
"이것 좀 봐."
아담이 종현을 불렀다.
종현은 얼굴을 찡그렸다. 우리 앞까지 다가왔지만 시체를 먹는 악어를 보고 싶지는 않았다.
그때 노란 액체가 냇물을 이루며 우리 밖으로 흘러나왔다. 그건 피처럼 진했지만 피는 아니었다.
"이건 사람이 아니야. 피를 봐. 전혀, 이런 피를 가진 동물이 있었나?! 아무래도, ……외계인 같아."
아담의 말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악어는 갑자기 나타난 사람들을 경계하듯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시 강한 턱으로 먹이를 뜯기 시작했다.
아담은 천천히 먹이를 살폈다. 악어가 물어뜯는 먹이는 인간의 몸에 오징어 같이 빨판이 달린 여러 개의 다리와 역시 빨판이 달린 굵고 긴 팔을 가지고 있었다.
"저게 외계인의 정체라고? 하지만 왠지 오징어를 닮았는데, 아까 그 상점에서 본 오징어 말이야."
종현이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말했다.
"외계인이 아니라면 오징어가 맞겠지. 하지만 피를 봐. 피가 노랗고 비린내 대신 들기름 냄새가 나잖아."
아담의 지적에 종현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글쎄, 모르겠어. 원래 내가 아는 오징어는 투명한 피를 갖고 있는데. 좀 다르긴 하지만……"
"냄새도 이랬어?"
"아니. 아닌 것 같아. 근데 좀 이상하긴 해. 하지만, 어떻게 악어가 외계인을 먹게 된 거지? 그러니까 외계인들이 동료의 시신을 아무렇게나 내버려두고 갔다는 건가?"
"우리와 문화가 다른 생명체일 수도 있지."
"어쨌든 이 놈들이 외계인이라면 놈을 조사할 필요가 있어. 아무래도 아까 그 상점으로 돌아가……"
아담이 말하며 돌아서는 순간 갑자기 안나의 품에 있던 폴리가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안나의 품을 빠져나가더니 연못가에 서서 건너편을 향해 짖기 시작했다.
아담은 연못을 돌아보며 문득 이 연못이 악어들을 키우는 연못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젠장, 빨리 위로 올라가, 어서."
아담이 언덕 위로 뛰어 오르며 소리쳤다.
아담은 당장이라도 악어가 자신의 발목을 물지 않을까 두려웠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으르렁거리던 폴리는 우리 안의 악어 옆으로 다가가 작은 몸을 떨기 시작했다. 이어 아담을 더욱 놀라게 한 건 악어의 날카로운 이빨이 아니라 꽝하는 굉음과 함께 날아든 레이저였다. 언덕의 돌과 흙이 사방으로 튀었다.
"뭐지?"
생각지 못한 공격에 아담이 놀라 고개를 돌렸다.
연못 건너편에서 오징어처럼 생긴 외계인 4명이 연못을 돌아 다가오고 있었다. 흐늘거리는 팔에는 분명 총처럼 생긴 무기가 들려있었다.
종현이 소리쳤다.
"저, 저것 좀 봐. 저게 외계인이야!"
"역겹군."
벅시가 총을 들어 응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총에 맞은 외계인은 잠시 몸을 비틀더니 이내 몸을 곧추세우고 다가왔다.
"이런 젠장, 총이 통하지 않아."
벅시가 탄창을 교환하며 소리쳤다.
그때였다. 연못에서 어슬렁어슬렁 기어나온 악어 한 마리가 외계인을 강한 턱으로 덥석 물더니 좌우로 흔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외계인들이 잠시 당황한 듯 머뭇거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외계인들은 악어를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 연못을 따라 아담 일행을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악어에 물린 외계인은 연못 속으로 끌려 들어가면서도 비명이나 어떤 괴성도 지르지 않았다. 심지어 다른 외계인들은 그런 동료를 구하려 들지도 않았다.
"저게 어떻게 된 거지?"
종현이 다가와 물었다.
"모르겠어."
아담은 잠시 연못을 바라보고는 외계인에게 응사하며 대답했다.
레이놀드와 벅시, 제임스도 탄창을 교환하며 외계인을 향해 연신 총을 쏘았다. 그러나 외계인은 충격에 몸을 비틀거릴 뿐 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 다가왔다. 마치 방탄복이라도 입고 있는 듯했다.
레이저빔이 아담의 옆에 떨어졌다. 아담과 종현은 언덕 위로 뒷걸음질치며 응사했다. 다행히 외계인의 레이저빔은 레이놀드의 소총처럼 빠르게 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언덕 위로 피해요."
벅시와 제임스, 안나가 먼저 언덕을 넘었고 그 위에서 엄호사격을 시작했다. 그 틈에 아담과 레이놀드가 돌아서서 언덕을 넘었다. 그리고 다시 몸을 돌렸을 땐 어느새 다시 나타난 악어 떼가 외계인들을 붙잡고 연못 속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외계인들은 마치 악어가 보이지 않는 듯 아담 일행을 향해 레이저를 쏠 뿐, 자신의 다리를 물고 끌어당기는 악어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그 모습을 아담과 일행은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도대체 왜 악어는 공격하지 않는 거죠?"
안나가 물었다.
"글쎄."
종현이 말했다.
"악어 같은 파충류는 냉혈동물인데 어쩌면 냉혈동물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아담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하지만, 악어가 다리를 물었어. 고통도 느낄 수 없다는 게 말이 돼? 감각이 없이 어떻게……"
아담은 감각이 없는 동물이 문명을 이룩한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다시 고개를 들어 연못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연못에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작은 파문만을 남긴 뒤였다. 그리고 그 파문도 서서히 사그라지고 있었다. 이제 악어도 외계인도 보이지 않았다.
[왈왈.]
폴리가 다시 안나의 품으로 돌아왔다. 아담은 폴리가 악어의 옆으로 피하던 모습을 떠올리며 말했다.
"아무래도 외계인의 눈엔 악어가 보이지 않거나, 악어가 놈들의 천적일지도 모르겠어."
"악어가 천적이라…… 흥, 그럼 동물군단을 만들어야겠군."
바랭이 빈정거리며 말했다.
[어흥.]
"캬악."
갑자기 동물원 건물 안에서 사자의 포효소리에 이어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생존자가 있나봐요."
제임스가 소리쳤다.
일제히 건물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출입문은 이미 산산이 부서져 있었다.
"어디 있소?"
제일 먼저 들어선 벅시가 소리쳐 물었다.
"도와줘요. 여기예요. 캬악."
목소리는 계단 위층에서 들렸다.
벅시가 앞장서 올라갔다. 이어 아담은 만약을 위해 바랭과 레이놀드에게 출입구와 아래층을 감시토록 지시하고 벅시를 쫓아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아담이 계단을 한참 올라갈 때 연이어 총성이 울렸다. 그리고 막 계단을 다 오르는 순간 붉은 피가 계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래, 이거야.'
아담은 생각했다.
피는 이렇게 붉어야했다. 아담은 흘러내리는 피를 피해 조심스럽게 계단을 올랐다. 그러다 토악질을 해댔다. 피비린내 때문이었다. 참을 수가 없었다. 속이 타들어가고 바늘로 찌르는 듯했다. 아담은 불안했다. 고작 피비린내에 이렇게 가슴이 답답하다니. 자신 역시 방사능에 오염돼 서서히 증상이 나타나는 듯했다.
"괜찮으십니까?"
벅시가 물었다.
아담은 벽에 기대며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안나와 제임스가 계단을 올라왔다.
"괜찮으십니까?"
제임스가 물었다. 아담은 먼저 가라고 손을 휘저었다. 언뜻 고개를 들었을 때 안나의 불안한 시선이 느껴졌다.
"괜찮아요, 이제 안심해요."
벅시가 쓰러져있는 여자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팔을 잡고 일으켰다.
그녀는 몹시 놀란 표정으로 벅시의 부축을 받으며 일어섰다. 그녀의 앞에는 한 마리 호랑이가 붉은 피를 흘리며 헐떡거리고 있었다.
"많이 놀랬나요?"
벅시의 물음에 그녀는 이마에 손을 얹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뇨. 이제 이 정도는 놀랄 일도 아니죠."
그녀는 천천히 숨을 몰아쉬며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그리고 힘겹게 숨을 몰아쉬는 호랑이에게 다가가 목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미안해, 샤샤. 내가 잘못했어. ……고마웠어, 샤샤."
그녀는 마치 마지막 인사라도 하는 듯 호랑이의 목을 부둥켜안았다.
"젠장, 뭐가 고맙다는 거죠?"
벅시가 황당하다는 듯 물었다.
"날 살려줬으니까요."
그녀는 차분하게 말했다.
"뭐요? 살려준 건 나요."
벅시는 어이없어하며 두 팔을 휘둘렀다.
"아니, 그렇게 친하면서 왜 비명을 지른 거요?"
제임스가 물었다.
"갑자기 제 앞에 나타나서 놀랬던 것뿐이에요."
"여기 직원이오?"
아담은 호랑이의 마지막을 기다리지 못하고 그녀가 입고 있는 상의의 동물원 마크를 가리키며 물었다.
"네."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이 뭐죠?"
"위니, 위니 블론스키."
"다른 생존자가 더 있소?"
아담의 물음에 위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래 호세 발데라스라고 이곳 수의사가 있어요."


댓글 0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수
공지 2024년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공고 mirror 2024.02.26 1
공지 단편 ★(필독) 독자단편우수작 심사방식 변경 공지★5 mirror 2015.12.18 1
공지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 (3기 심사단 선정)4 mirror 2009.07.01 3
297 장편 천지개벽... 34 라퓨탄 2009.02.23 0
장편 천지개벽... 33 라퓨탄 2009.02.22 0
295 장편 천지개벽... 32 라퓨탄 2009.02.21 0
294 장편 천지개벽... 31 라퓨탄 2009.02.20 0
293 장편 천지개벽... 30 라퓨탄 2009.02.19 0
292 장편 천지개벽... 29 라퓨탄 2009.02.19 0
291 장편 천지개벽... 28 라퓨탄 2009.02.18 0
290 장편 천지개벽... 27 라퓨탄 2009.02.18 0
289 장편 천지개벽... 26 라퓨탄 2009.02.17 0
288 장편 천지개벽... 25 라퓨탄 2009.02.17 0
287 장편 천지개벽... 24 라퓨탄 2009.02.16 0
286 장편 천지개벽... 23 라퓨탄 2009.02.15 0
285 장편 천지개벽... 22 라퓨탄 2009.02.14 0
284 장편 천지개벽... 21 라퓨탄 2009.02.13 0
283 장편 천지개벽... 20 라퓨탄 2009.02.13 0
282 장편 천지개벽... 19 라퓨탄 2009.02.12 0
281 장편 천지개벽... 18 라퓨탄 2009.02.12 0
280 장편 천지개벽... 17 라퓨탄 2009.02.11 0
279 장편 천지개벽... 16 라퓨탄 2009.02.10 0
278 장편 천지개벽... 15 라퓨탄 2009.02.1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