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장편 [Midium] (1)

2009.06.04 21:2606.04



온 백성이 이 광경을 보고 땅에 엎드려서 부르짖었다.

"야훼께서 하느님이십니다. 야훼께서 하느님이십니다."

엘리야가 백성들에게 소리쳤다.

"바알의 예언자들을 하나도 놓치지말고 모조리 사로 잡으시오."

엘리야는 백성들이 사로 잡아 온 그 예언자들을 키손 개울로 끌고 가 거기에서 죽였다.



                                                                       [열왕기상 18:40]

                                                       (숱한 거짓 중 몇 안되는 진실)









1.

서영은 거스름돈도 받지 않고 택시에서 내렸다. 그리고 단거리 육상 선수처럼 전력을 다해 병원 정문으로 달려갔다.

‘언니가 다쳤어! 여기 충북대학 병원이야. 빨리 좀 와줘!’

다급한 형부의 전화를 받은 지, 벌써 20분. 경황이 없어서 어디가 얼마나 다쳤는지 물어보진 못 했지만, 울먹임에 가까운 형부의 목소리로 보아 심각한 게 분명했다.

서영은 커다란 유리문을 부숴버릴 듯이 밀고 들어간 뒤 응급실 쪽으로 내달렸다. 그리고 카운터에 앉아있는 날카로운 인상의 접수 계원에게 소리쳤다.

“이진영. 이진영이요!”

그러자 접수계원이 한쪽 눈썹을 치켜들며 서영을 올려 보았다. 둥그런 검은 뿔테 안경 위로 보이는 그녀의 눈빛에는 ‘이건 또 뭐야?’ 라는 귀찮은 기색이 역력했다.

“이진영 씨? 아가씨가 이진영이라는 거예요, 아니면 이진영이라는 환자를 찾아달라는 거예요?”

“당연히 환자를 찾아달라는 거죠! 그걸 꼭 물어봐야 아세요?”

서영은 자신도 모르게 울컥 고함을 내질렀다. 그러자 계원이 흥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신인가요? 그걸 어떻게 알아요. 제발 좀 용건은 분명히 말씀해주세요. 흠. 기다려 봐요. 검색해 볼테니깐.”

뭐 이런 여자가 다 있어? 불친절로 중무장한 것 같은 계원을 내려 보는 서영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아무래도 이 병원에선 직원들의 예절 교육보다 콧대를 높여주는데 더 많은 돈을 투자하는 모양이었다.

그 때 어디선가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처제. 여기야, 여기!”

형부였다. 그는 카운터 오른편, 이동식 침대가 두 줄로 나열되어 있는 응급 대시길 맨 끄트머리에 서 있었는데, 30대 중반이라고는 믿기지 않게 개구쟁이 같이 환한 미소를 띠운 채 손을 흔들고 있었다. 아니, 마치 구세주를 만난 어린 양의 감격스러운 웃음을 보이고 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서영은 ‘저럴 걸 왜 내게 물어본 거예요?’라는 불만 가득한 표정의 계원을 남겨둔 채 형부에게로 뛰어 갔다. 그리고 그의 옆 침대 위로 반듯이 누워있는 언니를 발견했다. 언니는 다행히도 옆통수에 난 작은 생채기를 제외한다면, 외관상으론 심각한 부상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낯빛이 파리해진 것이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닌 듯 했다.

“왔니?”

“언니! 형부, 우리 언니 어떻게 된 거예요? 어디가 다친 거예요?”

기운이 쪽 빠진 목소리로 말하는 언니를 보며, 성영은 왈칵 눈물이 쏟아지려는 걸 애써 참으며 물었다.

“자전거 뒷자리에 타고 가다가 떨어졌어. 그 때 머리부터 떨어져서 기절했던 거야. 왜 충북대 후문에서 사범대로 가는 내리막길 있잖아. 경사도 급하고, 과속 방지턱에 걸려서 자전거가 심하게 흔들렸거든.”

형부가 대답했다. 그리고 죄책감에 괴로워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다 내 잘 못이지. 그 놈에 방지 턱을 피해갔어야 했는데.”

그러자 언니가 누운 채로 고개를 살짝 저었다.

“그게 왜 당신 잘못이야. 내가 뒤에서 자길 꼭 붙잡고 있었으면 이렇게까지 다치진 않았을 텐데……. 그나저나 오랜만에 간 나들이였는데, 나 때문에 다 망쳐서 어떻게 해. 미안해, 여보.”

둘의 대화를 듣던 서영은 아침에 한껏 들뜬 얼굴로 소풍 준비를 하던 두 사람을 떠올렸다.

오늘은 5월 1일. ‘근로자의 날’이라 회사에 안 나가도 됐던 언니네는 아침부터 수선을 떨며 김밥이며 샌드위치를 나들이용 바구니에 담았다. 충북대학 캠퍼스로 소풍을 간다는 것이었다. 이 학교의 캠퍼스는 전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만큼 넓은데다가 곳곳에 잔디밭이며 꽃들이 즐비해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각광 받는 곳이었다. 게다가 언니네와 서영 식구가 사는 집에서 자전거로 30분 거리인 곳이니, 소풍가기에 더 할 나위없는 장소라 할 수 있겠다.

서영은 쉬고 싶기도 하고 어린애들처럼 신나하는 두 사람이 오붓한 시간을 갖게 하려고 따라 나서지 않았고, 둘은 자전거 하나에 몸을 실어 집을 나섰던 것이다. 그런데 나간 지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이 꼴이 됐으니…기대에 찼던 두 사람의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겠다 싶었다.

“그런데 치료는 한 거야? 의사가 뭐래? 어디 이상은 없대?”

  서영이 기억을 접으며 언니에게 물었다. 그러자 형부가 인상을 일그러뜨리며 대신 대답했다.

“여긴 글러먹었어. 여기 도착해서 받은 거라곤 CT촬영 밖에 없다고. 벌써 1시간이 지났는데 말이야. 별로 큰 병이 아닌 사람도 여기 왔다간, 기다리다가 지쳐서 골로 갈 거 같다니깐.”

그리고는 숨을 크게 들이 쉬더니 맞은편의 다른 환자를 돌보고 있는 뚱뚱한 간호사에게 꽥 소릴 질렀다.

“이봐요! 우린 언제 봐줄 겁니까? 하다못해 머리에 붕대라도 감아줘야 될 거 아닙니까!”

하지만 그 간호사는 돌아보지도 않고 무신경조로 대꾸할 뿐이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아직 CT 결과가 안 나왔다고 말씀드렸는데도 자꾸 보채시네.”

“그러면 여기 머리에 난 상처라도 꿰매줘야 될 거 아닙니까!”

형부가 언니의 옆통수에 난 작은 상처를 가리키며 신경질적으로 받아쳤다.

“꿰맬 정도로 깊은 상처가 아니래두요. 좀 있다가 소독해드릴 테니까 기다리세요, 쫌!”

결국 형부는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짓다가 어깨를 으쓱이며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봤지? 계속 저 소리뿐이라니깐. 한 글자도 안 틀리고 똑같이.”

서영도 이해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계원과 간호사가 저리 무신경하니 의사라고 특별히 다르진 않을 거라 예상됐다. 보나마나 느긋하게 CT 결과를 기다리며 어디선가 예쁘장한 간호사와 노닥거리고 있을 거다.

“제길. 내가 병원비 내나 봐라. 여기 의사랑 간호사들 몽땅 근무태만으로 고소할거야.”

형부가 투덜거렸다. 하지만 형부가 결코 그러지 못할 위인이란 걸 서영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정말 병원비를 낼 생각이 없다면, 왜 자신에게 지갑을 가져다 달라고 전활 했겠는가.

서영은 소심한 형부를 측은한 눈길로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언니도 같은 생각에서였는지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 형부의 손을 잡고 토닥였다.

“너무 화내지마, 여보. 가벼운 뇌진탕이라는데 뭘. 이제 거의 다 난 거 같아. 너무 세게 부딪혔는지 아직도 머리가 띵하긴 하지만.”

“가볍다고 해도 뇌진탕이었단 말이야, 뇌진탕! 까딱하면 홀애비 될 뻔했는데, 저 사람들은 나 몰라라 하고 있으니깐 열받지 안 받아? 정말이지 난 자기가 죽는 줄 알았다구.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줄 알았어.”

형부는 마치 응석받이 어린애라도 되는 양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 모습에 서영은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고, 언니는 그런 동생을 웃는 낯으로 살짝 흘겨본 뒤 장난스럽게 대꾸했다.

“으이구, 그러셨어요? 우리 여보가 날 이렇게 끔찍이 생각하는 줄 몰랐네-”

“무슨 소리야. 내가 자길 얼마나 사랑하는데! 내 목숨보다도 더 사랑한다구!”

“그래, 그래. 울 여보 마음은 내가 잘 알지요. 사실 나도 아까 자전거에서 떨어지는 그 짧은 순간에도, 무서운 거보다 내가 죽으면 울 여보가 얼마나 슬퍼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 걱정하게 미안해 여보. 그리고 사랑해.”

이렇게 말하는 언니의 눈가에도 어느새 이슬이 맺혔다. 그 순간, 서영은 이건 또 무슨 시츄에이션인가, 하고 당황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한쪽 눈썹을 꿈틀 거렸다. 이다음에 어떤 상황이 연출될지 깨달은 것이다. 연애할 때부터 결혼한 지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지속되는 둘의 닭살 행각이, 주변에 있던 사람이 민망해 자리를 뜨게 만드는 풍기문란의 현장이 눈앞에서 펼쳐지기 일보직전이었던 것이다.

“진영아.”

“성일 씨”

아니나 다를까, 서로의 눈을 느끼하게 마주보던 두 사람의 입에서 6.70년대 멜로 영화에서나 들어봤을 법한 버터 음성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것을 신호로 둘의 입술이 포개지더니 웬만한 에로 영화에서도 감히 흉내 못 낼 끈적한 딥키스로 바뀌었다.

‘아픈 사람 맞아? 아예 모텔을 잡지 그래.’

서영은 홍당무처럼 뻘개진 얼굴에 일명 썩소를 그으며 고개를 홱 돌렸다. 그리고 되도록 둘과 무관한 사람처럼 보이려고 옆으로 몇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응급실의 다른 사람들은 언니 부부의 애정행각에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간호사들은 여전히 무표정 혹은 짜증난 얼굴로 돌아다녔고, 간간히 보이는 의사들도 마치 유령처럼 멍한 표정으로 왔다갔다 했다. 하느님은 이들에게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능력을 주는 대신 무기력감과 스트레스도 함께 안겨주신 것 같았다.

‘여기가 응급실이야, 정신병원이야?’

서영은 이렇게 생각하며 피식 조소를 흘렸다. 그리고 아직도 서로에게 열렬히 키스세례를 퍼붓고 있는 언니네를 피해 시선을 다른 환자들에게로 돌렸다.

그나마 환자들은 이곳이 응급실이라는 것을 확고히 입증하고 있었다. 맞은 편에 누워 있는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남자아이는 자신의 피로 붉게 물든 붕대를 다리에 감고 있었고, 그 옆 침대에는 노숙자같은 허름한 행색의 노인이 눈을 감은 채 나지막한 신음을 내뱉고 있었다. 연신 배를 쓸어내리는 것으로 보아 상한 음식을 먹은 모양이었다. 그 밖에도 머리며 다리, 팔 등 가지각색의 부상을 입은 환자들과 그 가족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영이 눈을 돌린 곳은 언니의 바로 옆 침대였다.

‘패싸움이라도 벌인 건가?’

옆 침대의 환자는 이제 갓 스무 살을 넘겼음직한 어린 나이의 청년이었는데, 온 몸에 크고 작은 상처가 있어 그 위로 거즈와 붕대가 덕지덕지 감겨 있었다. 옷가지도 여러 군데 찢겨져, 옷이라기 보단 헝겊조각을 입고 있다는 게 나을 법했다. 그나마 환자가 젊고 꽤 반반한 얼굴이라 그런지 거지나 노숙자처럼 보이진 않았다. 확실히 조각 같은 외모는 아니더라도 은근히 호감 가는 얼굴인 것이, 노숙자라기보단 제비질하다가 사모님 남편한테 걸려 흠씬 두들겨 맞았을 거 같은, 약간은 우스운 상상을 일게 했다.

‘왜 통속극에서 자주 나오잖아, 그런 얘기’

서영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며 싱긋 미소 지었다.

그런데 그때, 청년이 번쩍 눈을 떴다. 마치 납량특집에서 시체가 눈을 뜨는 장면처럼 느껴져, 서영은 헉하고 헛바람을 들이키고 말았다.

“어라? 학생 눈 떴네? 이제 정신이 들어?”

형부와 입씨름을 하던 뚱뚱한 간호사가 언니 쪽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그녀가 밀고 오는 의료 선반에는 거즈와 소독약, 붕대, 의료용 가위 같은 것들이 너저분하게 올려 있었다. 드디어 언니를 치료해줄 모양이다.

하지만 청년은 대꾸 없이 상반신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듯 싶더니, 갑자기 고개를 홱 쳐들어 정면을 응시했다. 간호사는 ‘저 놈은 또 왜 저래?’ 라고 말하듯 어깨를 으쓱인 뒤 언니 부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아직도 키스 중이던 둘을 헛기침 한 방으로 떼어 놓은 후, 멋쩍어하는 형부를 무시한 채 언니의 상처를 소독해주었다.

그 때, 청년이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소리쳤다.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다.

“뭐야, 또 그 놈들이랑 싸우겠다는 거야? 너 미쳤냐?”

갑작스런 외침에 서영은 물론이고 응급실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의 이목이 그에게로 쏠렸다. 그러나 청년은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허공을 향해 윽박질렀다.

“제기랄! 날 좀 내버려둬. 내가 왜 거길 가야되는 건데? 갈 테면 너 혼자가!”

“조용히 좀 해줄래, 학생?”

보다 못한 간호사가 주의를 주었다. 하지만 청년은 누그러뜨려질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그의 눈은 거의 광기에 가까운 분노를 담고 있었다.

“그러니까 왜 나한테 왔냐고! 제발 꺼져, 이 악마야!”

남자의 발악은 점점 심해지고 외침은 절규에 가까워졌다. 결국 지나가던 의사 한명이 그를 진정시키려고 다가갔지만, 청년은 그의 손을 거세게 뿌리쳤다. 그러자 의사는 언니를 치료하던 간호사에게 청년의 왼팔을 붙잡게 하고, 다른 간호사들에겐 진정제를 가져오라고 소리쳤다. 서영은 만성피로의 안개가 짙게 깔려있던 이곳이 이렇게 재빠른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데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1초 후, 그 놀라움은 당혹감으로 변해버렸다. 청년이 놀라운 힘으로 두 의료진의 저지를 뿌리친 뒤 검지로 그녀를 가리켰기 때문이다.

“그래, 차라리 저 여자한테 가! 쭉쭉빵빵한 게 맛있게 생겼네. 딱 네가 좋아하는 타입이잖아. 그러니까 저 여자한테 가고, 난 제발 좀 놔줘!”

서영은 청년의 목소리에서 간절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가 내뱉은 말의 의미가 너무나도 불쾌해 딱히 신경쓰진 않았다. 그녀는 단지 ‘뭐 저런 미친놈이 다 있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그녀의 생각은 형부의 입을 통해 내뱉어졌다.

“이봐, 학생. 말이 지나치잖아! 미치려면 곱게 미치던가.”

형부가 인상을 구기며 주의를 주었다. 평소 소심하고 어리숙한 형부로선 대단한 용기를 낸 것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서영은 형부에게 감사의 말을 전할 수 없었다. 청년의 다음 행동이 너무 충격적이어서 차마 입을 떼지 못 했기 때문이다.

청년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뚱뚱한 간호사를 밀쳐버렸다. 그리고 그녀가 가져 온 가위를 집어 들고는 서영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번개처럼 빠른 동작이라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었다. 일순간 주위의 모든 사람들의 낯빛이 사색이 되었다. 사방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서영의 두뇌도 비상 경보음을 울렸다. 하지만 두려움에 얼어붙은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위험하다. 선영의 눈길이 청년의 얼굴과 그의 손에 쥐어진 가위를 빠르게 훑었다. 심장이 터져버릴 듯한 공포가 엄습했다.

하지만 청년이 노린 사람은 그녀가 아니었다. 그는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는 그 아래로 훤히 들어난 자신의 목에 가위를 갖다 댔다. 그리고 미친 듯이 소리치던 조금 전과는 달리,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침울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그래. 이 방법 밖에 없단 말이지?……좋아. 그럼 어쩔 수 없지.”

서영의 눈이 청년의 충혈된 눈과 마주쳤다. 그의 눈에선 두려움 때문인지, 슬픔 때문인지 모를 눈물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살을 파고드는, 날카롭고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청년이 가위로 자신의 목을 찌른 것이다. 어찌나 힘껏 찔렀는지 가위는 그대로 목을 뚫고 들어가 손잡이 일부만이 밖으로 돌출되었다. 그리고 벌어진 틈새로 시뻘건 피가 꾸역꾸역 흘러 나왔다.

서영은 비명조차 지를 수 없었다. 그저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균형을 잃고 앞으로 고꾸라진 청년의 머리가 어깨에 와 닿자, 그대로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녀는 그렇게 한참동안 충격과 공포에 휩싸여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그 후에 일어난 일에 대한 기억은 모두 선명하지 않았다. 마치 뿌연 안개에 가려진 듯 흐릿하기만 했다. 다만 한 가지, 아수라장이 된 응급실에서 서영은 괴이한 광경을 목격한 것 같았다.

의료진이 뒤늦게 다가와, 그녀에게서 청년을 떼어내 수술실로 급히 실고 갈 때, 전엔 보이지 않던 외국인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그도 흐릿한 기억과 마찬가지로 마치 신기루처럼 희미한 형상이었는데, 이상하게도 그의 얼굴만은 비 내린 뒤 하늘처럼 선명하게 보였다. 그리고 더 이상한 것은 그 외국인이, 실려 가는 청년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 눈물이 자살하기 전 청년이 흘린 것과 너무도 비슷한 느낌인지라, 서영은 섬뜩한 기분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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