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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강철의 왈츠 18

2009.05.31 15:0205.31

그 날, 차넬그라드 성의 경비병들은 오전부터 기적을 목격하고 있었다. 예전에 평야였던 곳에 갑자기 산이 생기고 그 산이 다가오는 것이 기적이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다가오는 산을 구경하기 위해 성의 주민들과 경비병, 심지어 성주 차넬스크 백작마저 올라와서 구경할 지경이었다.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정찰을 보낸 척후들이 돌아오는 소리였다. 성병들의 시야에 말 한기와 그 위에 올라탄 척후의 모습이 들어왔다. 성병들이 비명을 질렀다. 척후의 한쪽 어깨가 완전히 함몰된 것이었다. 성벽까지 다가온 척후가 비명을 참으며 보고를 했다.

“거인입니다!”

한 마디를 뱉은 척후는 그대로 고꾸라졌다. 그 말을 들은 성병들이 다시 산을 바라보았다. 그 말을 듣고 산을 바라보니 사람처럼 생긴 것도 같았다.

“거인? 그란투스? 말도 안돼.”

이 지역에는 예부터 거인 그란투스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었다. 산인줄 알고 잘못 올라갔다가 거인이 이동하는 바람에 길을 잃고 헤맸다는 약초 캐는 사람의 이야기나 사냥꾼의 이야기, 거인이 밭을 밟는 바람에 농사를 망친 천석꾼 이야기 등이 전설처럼 전해 내려왔었다. 하지만,

“이븐 나이트 숲의 공방전 이후 새로운 이야기는 전혀 없었는데?”

수도가 갑자기 나타난 언데드에 점령됐다는 이야기와 함께 성을 향해 다가오는 거인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 지 혼란스러운 차넬스크 백작의 시야 가득히 거인의 허리가 다가왔다.
산이 주저앉았다. 병사들은 성벽에 거대한 눈이 출연해 자신들을 살펴보는 것을 깨달았다. 거대한 푸른 눈동자는 천천히 깜빡였다.

“그란투스가 돌아왔다~~~~~!”

천둥을 치는 듯한 소리가 들리자 성병들은 모두 귀를 막았다. 그와 동시에 그란투스가 벌떡 일어났다.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한 건 그 다음이었다. 하늘을 바라본 성병들은 거대한 망치가 성벽 위로 날아오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급속히 커져갔다.
쾅!
성벽이 망치질 한 번에 부서져 내렸다. 그 근처에 있던 성병들의 비명소리가 성 안에 메아리쳤다. 다가오는 산을 구경하기 위해 몰린 성병들은 제대로 피하지도 못했다.
그란투스는 벽을 무너트린 상대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망치에 다리나 팔을 깔린 성병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차넬스크 백작은 자신이 오줌을 지리고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는 채 주저앉았다.

“으핫핫핫핫”        

그란투스의 목소리와는 다른 성량의 목소리들이 들려오면서 망치와 연결된 그란투스의 팔을 타고 일단의 괴물들이 내려왔다. 다들 인간과는 2~3배 정도 큰 초록색과 살색 피부의 거인들이었다.

“트롤이다!”
“오우거다!”
“사이클롭스다!”

비명을 지르며 혼란에 빠진 병사들 사이로 괴물들이 각자의 무기로 인사를 시작했다. 이승과의 단절을 전하는 인사였다.


그들을 지휘하는 건 머리가 9개 달린 트롤이었다. 트롤은 4개의 팔을 가지고 있었는데 2개의 팔은 뼈가 없는지 흐물거렸다. 그 흐물거리는 손으로 트롤은 배에 찬 행낭에서 끊임없이 먹을 것을 꺼내 7개의 머리에 넣고 있었다.

“음 이 맛은 커트루드의 포도로군. 시큼한 게 제대로 익지도 않은 걸 땄구먼. 이 맛은 겨울초의 꿀로 만든 케이크인데. 오 케이크에 커트루드의 포도를 토핑해도 맛있을 것 같군. 본국으로 돌아가면 실험해봐야지. 야, 거기 자식아! 니 놈 게 그 작은 구멍에 들어갈 것 같아! 싸움 중에 한 눈 파는 놈은 이렇게 된다.”

먹을 것을 꺼내지 않는 다른 두 손에 들고 있던 거대한 곡도가 휘둘러졌다. 마을 처녀를 잡고 강제로 다리를 벌리던 오우거 하나가 얼굴을 부여잡고 비명을 질렀다.

“전투가 끝나면 불을 지르던 보석을 모으건 뭐를 해도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전투 중엔 전투에만 집중해라. 얼마 안 되면 끝나잖아. 그것도 못 기다리냐! 아, 이 맛은 매운 고추냉이 파이로군. 가끔씩 이런 맛도 느껴져야 재미가 있지. 어, 거기 뭐야.”

9두 트롤은 자기의 부하가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 사이클롭스를 쓰러트린 것은 하늘로 솟은 랜스가 그려진 문장을 가진 기사였다.

“야, 이 자식아. 이런 간단한 임무에서 전사자가 발생하다니. 이게 무슨 망신이야. 도대체.”

9두 트롤의 위협적인 칼질을 흘리며 기사가 자세를 잡았다.

“내 이름은 에리야 ‘서’ 몰로도프. 그대의 이름은 무엇이냐?”
“니가 그 몰로도프냐. 그럼 사망자가 발생해도 어쩔 수 없군. 어쩐지 내 칼질을 쉽게 피하더라니…… 나도 방심할 수 없겠는걸.”
“내 이름이 너희 괴물에게까지 알려져 있나?”
“아, 주의해야 할 녀석들은 따로 보고받긴 했지. 설마 이런 성에 있을 줄을 몰랐지만. 난 아쉴락 케즈우드. 마족 거인여단의 여단장이다.”

아쉴락 케즈우드는 그 때까지 말을 하지도, 먹을 것을 먹지도 않고 있던 가장자리의 두 얼굴의 입을 벌렸다. 여지까지 먹을 것을 꺼내던 흐물거리는 두 손을 입 안에 넣은 케즈우드는 무언가를 꺼냈다. 공중에서 피가 일직선으로 방울져 흘러내렸다.

“그건 검이냐?”

그 때 7개의 머리가 저마다 중구난방으로 떠들기 시작했다. 워낙 중구난방이라 알아듣기는 쉽지 않았지만 그 내용은 공통적으로 투명한 검에 대한 이야기였다. 아쉴락 케즈우드가 다시 두 곡도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에리야는 곡도를 피해 안으로 파고들려 했다. 그 때 흐물거리는 두 손이 채찍처럼 휘둘러지며 에리야를 공격했다. 검의 간격을 잴 수 없어 에리야는 최대한 바깥으로 물러나야 했다.

“그 팔은 뭐냐? 뼈가 없는 것 같은데.”

7개의 머리가 말문을 닫았다. 갑자기 조용해지자 에리야는 귀에 이명이 들리는 것 같아 얼굴을 찌푸렸다. 그 때 아쉴락 케즈우드의 가운데 머리가 입을 열었다.

“신기하냐? 크큭. 트롤의 재생력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생 팔을 잡아 뜯어 만든 팔이다. 이래봬도 이렇게만들기까지 매우 지루하고 고통스러웠다고. 내 자랑거리지.”

기가 질린 에리야가 인상을 지푸렸다. 아쉴락 케즈우드가 다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때때로 흐느적거리는 팔이 멀리 돌아서 에리야의 배후를 위협했다. ‘늘어나기까지 하는거냐!’ 에리야는 아쉴락 케즈우드의 간격 안으로 도저히 파고들 수 없었고 보이지 않는 검을 피하느라 움직임은 점점 커져갔다. 지친 에리야가 돌에 발을 채여 비틀거렸을 때 승부가 결정되었다.
투명한 검이 에리야의 체인메일을 뚫고 나왔다. 검은 보이지 않고 피만이 일직선으로 방울져 흩날렸다. 에리야가 입에서 피를 뿜었다. 아쉴락 케즈우드는 발을 들어 에리야에게서 검을 뽑았다.

“아, 이 자식들. 내가 안 본다고 그새 한 눈 팔기 시작했네. 싸움 중에는 싸움에만 신경 쓰라고 그랬어? 안 그랬어?”

투명한 검을 다시 안 쓰는 가장자리 얼굴의 입 안에 넣어두며 아쉴락 케즈우드가 호통을 쳤다.


토이제 평야에 노을이 지고 있었다. 곳곳에서 모인 까마귀들은 갑작스런 성찬에 포식을 하고 있었다. 인기척을 느낀 까마귀 무리가 날개를 퍼덕거리며 날아올랐다. 한 기사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여기는?”

주위를 둘러보던 사내는 갑자기 목을 만졌다. 목이 꺾이던 생생한 느낌이 되살아난 것이다. 하지만 뼈에 이상이 생긴 것 같지는 않았다. 사내는 자신의 몸을 살펴보았다. 심장이 뛰고 있지 않았다.

“부정한 것이 되었군. 나는 언데드인 거야. 무슨 미련이 남아서……”

사내는 털썩 주저앉았다. 사내는 근처에 떨어진 부러진 칼을 집어들었다.

“언데드로 살 수는 없다.”

사내는 칼을 목에 겨누고 힘껏 내리쳤다. 칼이 부러져 멀리 날아갔다.

“일반적인 무기로는 피해도 입지 않는 건가? 이대로 태양을 기다릴 수밖에 없겠군. 태양이 이 부정한 몸을 끝장내 주겠지.”

사내는 몸을 대자로 뻗어 땅에 누웠다. 그 때 이질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연적인 언데드라, 신기한 일이군. 그것도 데스나이트라니. 요즘 같은 마법의 황혼기에 드문 일이야. 심봤다고 해야 하나? 이거 여기서 내 힘을 크게 늘리게 되겠군.”

갑작스런 목소리에 사내는 고개를 돌렸다. 로브를 뒤집어 쓴 자들이 서 있었다. 그 중앙에 한 사내가 앞으로 돌출해서 나와 있었다. 사내가 로브를 벗었다. 희갈색 피부에 긴 귀를 가진 호리호리한 사내가 죽은 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크엘프!”

죽은 사내는 벌떡 일어났다.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칼은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여기 시체들을 언데드로 만드는 것이 내 일인데, 우선 자네를 지배하는 것부터 시작해야겠군. 내 이름은 레바테아 ‘옴’ 스코넬레차. 너를 지배할 마법사의 이름이다.”
“그렇게 호락호락 성공하지는 못할거다! 사령술사!”

죽은 사내는 부러진 창을 하나 집어 들어 레바테아를 향해 찔러갔다. 레바테아는 가볍게 창을 피했다.

“미련으로 인해 스스로 일어난 껍질아. 나는 강력한 힘의 근원일지니. 네 미련을 달성하기 위해 강력한 힘에 귀의하거라. 나는 레바테아 스코넬레차. 강력한 힘의 근원이니라.”

레바테아는 연달아 찔러오는 창을 피하거나 지팡이로 흘렸다. 지팡이 끝에 검은 기운이 충분히 모이자 레바테아는 사내에게 지팡이를 갔다 댔다. 사내는 한쪽 무릎을 꿇었다.

“네 이름은?”

레바테아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드미트리 ‘서’ 가가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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