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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강철의 왈츠 12

2009.05.15 14:3205.15

커티스는 감칠맛나게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퀴즐랜드 군과 싸운 것을 그의 입으로 듣다 보니 어느새 산채에 도착해 있었다. 마침 점심 때가 다 되어서 그런지 점심 짓는 연기가 여기저기서 올라오고 있었다.

“아, 전투가 끝나고 그로우 녀석이 얼마나 길길이 날뛰는지, 수정의 계시회 나으리들 때문에 바로 뒤에 따라붙을 수 없었다고 설명하느라 죽는 줄 알았소.”

커티스의 말이 끝나자 카널드가 브란틴을 돌아보았다.

“브레이브 밴디트는 숲 속에 마을을 만들어서 가족들을 다 거기서 살게 하고 있지. 따라서 하나의 지부는 하나의 마을이고 그것이 보안과 사기에 영향을 준다.”
“그런 것 같습니다.”

뛰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브란틴이 답했다. 귀족과 기사가 커티스와 같이 오는 모습이 신기한지 아이들이 일행을 기웃거렸다.

“귀족들이 싫어서 도망쳐 온 자들이 많지만 지저벨 가문이라는 한 집안에 정보나 재정 등 중요기능이 집결되어 있지. 지저벨 가가 딴 마음을 먹으면 그대로 붕괴하는 구조야. 나라면 시스템을 그렇게 구성하지는 않았을거다.”
“그 말, 그대로 루비나 더블릿 앞에서 해보쇼.”

브란틴과 카널드의 문답을 듣고 있던 커티스가 끼어들었다.

“나도 물론 현 루비와 더블릿은 믿고 있지. 하지만 앞으로는 어찌될지 모르는 거 아니냐?”
“지저벨 가문은 그런 게 아뇨. 오히려 지저벨 가 아니었음 우리가 150년 넘게 남아있었을 것 같소? 외부인에게서 그런 말은 별로 듣고 싶지 않소.”
“기분이 상했다면 미안하군.”

카널드가 커티스에게 사과했다. 커티스는 한 건물의 문을 열었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으시오.”

브란틴과 카널드는 안으로 들어갔다. 카널드가 자리에 앉자, 브란틴은 그 뒤에 시립했다. 그 때 문이 열리며 한 소녀가 들어왔다. 그 소녀는 뛰어오느라 숨이 거칠고 뺨이 발그레한 상태였다. 소녀는 카널드를 보자 미소지었다.

“카버넌트 백작은 주군을 팔았다네. 카버넌트 백작의 주군은 비명에 갔어. 그의 주군을 죽인 건 숲 속의 용감한 사나이들. 카버넌트 백작은 주군을 잃었네.”

음정과 박자가 맞지 않는 노래를 부르며 소녀는 카널드의 뒤를 빙빙 돌았다.

“카버넌트 백작은 주군을 팔았지만 콘월 백작(황태자)은 주군을 팔지 않았는걸.”

카널드가 미소 지으며 소녀를 들어올렸다. 소녀의 오른손이 기괴할 정도로 큰 것이 브란틴의 눈에 들어왔다.

“많이 컸구나.”
“응, 콘월 백작은 어른이 다 됐네. 멋진 사내가 다 됐는걸.”
“요 녀석, 그런 말투를 쓰기엔 십 년은 이르다. 소니아”

소녀가 입을 삐죽거렸다.

“소니아 아니야. 소니아는 사라졌어. 여기 있는 건 B.B.야.”

카널드는 소녀를 내려놓았다.

“이제 소니아라고 부르면 안 돼. 나는 B.B거든.”

B.B.가 탁자의 중앙에 있는 의자에 가 앉았다. 땅에 닿지 않는 다리를 앞뒤로 흔들면서 B.B.는 카널드를 바라보았다.

“이야기는 들었어. 쫄다구들에게 잡혀서 올라왔다고. B.B.는 섭섭해. 여기까지 왔으면서 B.B.얼굴도 보지 않고 가려고 했어?”
“소류를 통해 들었다. 나보고 오지랖이 넓다고 했다면서?”
“그런 것도 말했어? 소류, 이 나쁜 자식. 다음엔 꼭 오른손으로 악수할 거야.”
“오른손으로 악수를? 소류가 여기 잘 안 오려고 하는 이유를 알겠군.”
“설마 콘월 백작도 그거 때문에 여기 안 오려고 한 거야?”
“아냐 아냐. 아직 브란틴에게 너희들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어. 그것뿐이야.”

카널드는 손사래를 쳤다. B.B.는 브란틴을 올려보았다.

“이 사람이 이번에 거둔 수호기사야? 이 사람도 연석에 들어오겠데? 공화주의자가 된 거야?”
“뭐 대충 그런 셈이지.”

그 때 문이 열리면서 외팔이 거한이 불혹을 넘긴 듯한 은발 기사와 젊은 청년과 함께 들어왔다.

“B.B. 회의 중에 갑자기 사라지면……”

외팔이 거한이 B.B.에게 말하며 뒤에 섰다. 젊은 청년은 은발 기사 뒤에 시립했다. 그 뒤를 이어 쌍둥이 자매와 커티스, 단발머리의 여성이 들어왔다.

“매튜어 에스프란차?”

카널드가 단발머리의 여성을 보자 일어섰다.

“여기는 어떤 일이야. 아, 연락책인가?”
“예. 연락책이에요. 교수님 연구실에서 뵙고 한참 만에 뵙네요. 그 동안 안녕하셨는지요? 콘월 백작님.”

매튜어는 짧게 인사하고 자리에 앉았다. B.B.는 자리에서 일어나 브란틴에게 한 명씩 소개하기 시작했다. 인사가 끝나자 모두 자리에 앉거나 뒤에 시립했다.

“모두 살아있는 것을 보니 즐겁군.”

카널드가 입을 열었다.

“콘월 백작께서 신경 써주신 덕분이죠. 정보 감사했습니다.”

더블릿이 카널드에게 목례를 했다.

“원래 여기 올라올 생각은 아니었는데…… 이렇게 되었으니 내가 전달을 할게. 이번에 수도로 올라가게 된 이유가 황제가 캐서린 윈드퍼스를 만나기 위해 가는 길에 동행하기 위해서거든.”
“동방제일미!”

B.B.가 나지막이 탄성을 질렀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서 황제는 크로우 백작령으로 갈 생각이야. 에이린은 이번 기회에 흩어져 있는 각 국의 ‘연석’ 멤버들이 만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말하더군. 에이린은 그걸 얘기하기 위해 크로우령으로 떠났어. 이것은 좋은 기회니 B.B.도 참석하는 것이 좋을 거야.”
“응. 알았어. 알려줘서 고마워. 그럼 다음에 만나는 건 크로우 백작령이 되겠네.”
“그렇지.”


수도에 다가갈수록 캐서린 윈드퍼스를 만나보기 위해 수도로 향하는 귀족들과 마주치는 일이 잦아졌다. 카널드는 카버넌트 백작을 버리고 황태자로 돌아갔다. 술을 얼굴에 붓고 입을 헹구며, 여성을 보자마자 덮치는 식으로 여행을 하기 시작했다. 브란틴은 카널드가 여성에게 뛰쳐나갈 때마다 적절하게 그를 붙잡았다. 그러나 딸이나 아내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나서는 귀족은 많았고 때때로 브란틴은 그들과 결투까지 벌여야 했다.
산채를 떠난 직후 브란틴은 카널드에게 B.B.의 오른손에 대해 물었었다. 카널드는 그것이 이능(異能)이라는 것을 시인했다.

“내 검은 눈과는 달리 그 손은 진짜다. ‘부정의 손’이라는 특상급의 저주가 붙은 물건이지.”

그 말에 브란틴이 흠칫했다. 부정의 손은 닿는 모든 것을 가루로 만들어버리는 이능의 이름이었다. 카널드가 B.B.를 안아 올릴 때 그 손이 조금이라도 닿았더라면……
그의 표정을 본 카널드가 크게 웃었다.

“걱정도 심하군. 잭의 오른손을 날려버린 이후로 그녀가 의도치 않은 물건을 그 손으로 만진 적은 한 번도 없어. 그것은 그녀 신체 일부분이야. 어린 아이 말고 자기 몸도 못 다루는 사람이 있겠나?”

브란틴은 B.B.의 뒤를 이어 들어온 외팔이 거한의 얼굴을 떠올렸다.

“B.B.가 친부모에게 버려진 후 잭이 키우다시피 했거든. 소중한 사람을 없애버릴 뻔했던 걸 그녀는 잊지 않아.”

검은 백조의 홀에 들어서자 황실에서 파견한 새 집사가 그들을 맞이했다. 술이 떡이 된 연기를 선보인 카널드는 방문을 닫았다. 브란틴도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선 채 호흡을 가다듬었다. 브란틴 최대의 연기를 선보일 때가 다가온 것이다.
수도에 가까이 가자 카널드는 자신의 계획에 대해 브란틴에게 설명했었다.

“소류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사우스빌 가문이 운영하는 페스트 요양원의 시설은 매우 형편없는 모양이다. 거의 다 죽어가는 환자들이 모이는 곳이라서 그런지 다 거지같다고 하더군. 그런데 딱 하나 이불만은 귀족들이 주문하는 그런 걸 사용하는 모양이다. 만약 환자가 이불을 더럽히면 개같이 맞는다는군.”

그 말을 듣자 브란틴은 숨을 죽였다.

“즉 페스트의 저주를 받은 이불이 사우스빌 공작가의 새로운 독약인 셈이지. 어쩐지 메리는 이불을 빠는 하녀더라니. 비록 페스트 저항을 마법으로 높여놨지만 그런 이불 덮으면서 생활하고 싶지는 않다. 도착하자마자 태워버릴 셈이야. 하지만 일부러 이불만 태우면 눈에 확 들어올 테니 가구 전체를 불지를 셈이다. 너는 잠시 뒤에 들어와 불길 속에서 취한 채 널부러진 날 데리고 나오는 역이다.”
“맡겨 두십시오.”

오랜만에 보는 가구들 중에서 브란틴은 이불을 바라보았다. 설마 이 이불도? 하지만 이 이불은 귀족들이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약간 찜찜하긴 하지만 페스트에 대한 저항을 높여놨으니 크게 영향은 없을 것이다. 원체 병에 걸리는 몸이 아니기도 했고…… 시간이 되었다 생각하자 브란틴은 방 밖으로 나왔다. 태자의 방에서 연기가 나오고 있었다.
브란틴은 다가가 문을 거칠게 두드렸다. “전하.” 대답이 없다. 주변을 돌아다니던 하인들도 그 때서야 연기를 발견하고 호들갑을 떨기 시작한다. 이 정도면 되었겠지. 브란틴은 문을 발로 걷어차 부숴버렸다. 카널드는 방 안 한가운데에 쓰러져 있었다. 카펫에 불이 옮겨 붙으면서 매캐한 연기가 스물스물 올라오기 시작했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황태자를 들쳐 엎고 브란틴은 밖으로 나왔다. 하인들이 물양동이를 들고 방 안에 물을 끼얹고 있었다. 집 밖으로 나온 브란틴은 황태자의 겉옷을 뜯어내고 숨을 살폈다. 술냄새가 확 올라오는 것 이외는 이상이 없었다. 당연하겠지. 브란틴은 화색을 지으려고 노력했다. 하녀와 집사가 태자의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 몰려왔다. 브란틴은 고개를 들었다.

“전하는 괜찮으시오.”


며칠 뒤 브란틴이 검을 휘두르고 있을 때 새 집사가 다가왔다. 그는 카널드를 어려워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일은 브란틴에게 상의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십니까?”
“체스웍스 경. 지금 사우스빌 공작가의 집사가 왔습니다.”

검을 휘두르던 손이 정지했다.

“사우스빌 공작께선 이번에 검은 백조의 홀에서 일어난 화재사건에 매우 안타까운 심정을 표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저택에서 일어난 불행에 지원하기 위해 재구입에 필요한 가구 일체를 기부하시겠단 소망을 피력하셨다고 합니다.”

브란틴은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거절한다고 전해주십시오.”

자신의 마음이 드러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브란틴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집사는 고개를 가우뚱거렸다.

“위대한 장인 미카엘 엠브로치의 최신작을 제공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의 가구는 저희 ‘검은 백조의 홀’의 품격을 높여줄 텐데……”
“어차피 손님이 찾아올 일 없는 전하의 침실에 예술품을 놓아봐야 소용이 없습니다. 뜻만 고맙게 받겠다고 전해주십시오.”

브란틴은 더 이상 말을 주고받기 싫다는 듯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가상의 대적이라도 상대하듯 사납게 휘두르는 검에 집사는 더 이상 근처에 있지 못하고 몸을 돌렸다.

“검이 흐트러졌군요. 틈이 많이 보입니다. 평정을 지키세요.”

검을 한참 휘두르던 브란틴은 옆에서 들려온 지적에 고개를 돌렸다. 겨우살이풀이 그려져 있는 문장이 박힌 기사의 서코트를 입은 붉은 머리의 여성이 검을 차고 브란틴을 쳐다보고 있었다.

“스트라우스 경”

브란틴은 검을 멈췄다.

“황제 폐하의 크로우 백작령 방문에 대해 협의하기 위해 온 사신단에 끼어서 왔어요. 전하께 이번에 연석의 멤버들도 따로 회합을 가지게 됐다고 전해주세요.”

모니카는 몸을 돌렸다. 브란틴은 일별하고 다시 검을 손에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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