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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강철의 왈츠 7

2009.05.07 17:2405.07


‘춤추는 검’
모니카의 검이 춤을 추고 있었다. 검만 흑요석 검이 아니었군. 제대로 된 대지엘프의 검술인데. 브란틴은 칼로 방어하려는 생각을 포기했다. 춤추는 검은 칼끼리 부딪치는 것을 최대한 회피하고 그 힘을 역이용해서 상대의 급소를 노린다. 브란틴은 모니카의 찌르기 중 치명적인 것을 피하면서 파고들려 했다. 하지만 모니카는 쉽게 파고들 틈을 주지 않았다.

“’춤추는 검’을 상대하는 법은 어디서 배웠지?”

싸우는 것을 뒤에서 지켜보던 카널드가 입을 열었다.

“아버님의 영지에 찾아온 대지엘프로부터 배웠습니다.”
“아, 그래. 그 양반. 발이 넓기로 유명한 분이었지? 하지만 이길 순 없을 걸. 네가 그건 더 잘 알 것 아닌가?”

확실히 그랬다. 치명적인 일격은 피하고 있었지만 여기 저기 상처를 입고 있었고 거기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무엇보다 파고들려고만 하면 모니카의 검이 치명적인 급소를 노리고 있었다.

“죽기 전에 어떤 꿍꿍이로 내게 접촉했는지 말해보시지? 왜 황제는 널 내게 보내 혼란스런 신호를 주는지 말이다.”
“폐하께서 보내셔서 온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혼란스런 신호는 무엇을 말하십니까?”
“황제의 계획은 차기 황제의 외척 자리를 노리는 귀족들의 힘을 약화시키는 거지. 그러기 위해서라도 나는 바보로 있어줘야 한다. 그런데 왜 날 보통 사람으로 만들려 하는지 이해가 안 가잖아!”

브란틴은 검을 크게 휘둘렀다. 모니카는 검의 궤적 밖으로 물러났다. 그 틈을 타서 브란틴도 뒤로 물러났다.

“귀족을 약화시키다니 무슨 뜻입니까?”
“황태자가 바보니까 다른 유력 귀족들은 자신들의 외조카가 차기 황제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잖아? 덕택에 서로 반목한 채 무리하다 자멸해가고 있지. 넌 이런 것도 모르나? 정치감각이 없어서 황제의 말로 선택된 거냐?”
“저는 제 의지로 태자 전하의 수호기사를 선택한 것입니다. 누구의 말도 된 적 없습니다!”
“그래? 보통 말들은 자신이 말인지 잘 모르더라고. 하여튼 네게서 황제의 의중이나 계획을 캐낼 수 없겠군. 모니카! 끝내버려.”
“잠깐만요.”

산 아랫쪽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달려나가려던 모니카가 멈칫거렸다. 카널드도 팔짱을 끼고 기다리기 시작했다. 잠시 뒤 세레나가 에이린을 업고 달려왔다. 달려오는 모습을 바라본 브란틴이 입술을 깨물었다. 한 사람을 업고 있음에도 무게 중심이 아래에 잡힌 굉장히 안정된 자세. 왜 진작 이들을 알아보지 못한 것일까? 이들은 하녀가 아니다. 어느새 무덤까지 올라온 세레나가 에이린을 내려놓았다. 달려온 건 세레나였는데 정작 내려온 에이린이 숨을 헐떡거렸다.
잠시 숨을 추스린 에이린이 입을 열었다.

“소류씨로부터의 전언이에요. ‘서’ 브란틴. 길을 비켜주시겠어요?”
“당신들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출혈로 인해 발생한 현기증을 억누르면서 브란틴은 말을 이었다.

“당신들은 왜 하녀로 일하면서 전하 근처에 있는 겁니까?”
“그걸 다 이야기하자면 오랜 시간이 걸릴 거에요. 우선은 일을 마무리 짓고 당신의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 우선일 듯 하네요. 우리에겐 시간이 그리 많지 않거든요.”
“에이린. 시간이 없다니 무슨 소리지?”
“세븐 할”

카널드의 질문에 가만히 있던 세레나가 대답했다.

“뭐? 세븐 할? 그 녀석들은 퀴즐랜드 대공이 움직여야 움직이는 게 아니었어?”
“퀴즐랜드 대공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대공의 군대는 지금 잭슨 성으로 출발했어요. 잭슨 성에서 일박을 한 후 내일 미드콘월 숲으로 들어갈 거에요.”
“뭐? 그 자식 지금 준비도 다 안 된 처지에 뭔 짓을 하는 거야! 용병 지휘관이니 하는 경험 많은 양반들이 안 말렸대?”
“기습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지점을 습격하는 거라고 막무가내였다고 합니다.”
“등신, 기습을 할 것이었다면 진작에 움직였어야지. 상대에게 계획 다 알려준 지금 시점에서 기습이라고? 덕택에 우리만 곤란해졌군.”

카널드는 인상을 찌푸렸다.

“모니카, 브란틴 지혈해 줘. 그리고 소류의 전언은 브란틴에 관한 것이겠지?”

모니카가 붕대로 브란틴을 지혈하는 동안 에이린이 카널드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했다. 브란틴은 바위에 주저앉아 모니카의 치료를 받고 있었다. 물어보고 싶은 것은 하나 둘이 아니었지만 지금 상태에서는 제대로 된 답변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에이린의 귓속말을 듣고 있던 카널드가 깔깔거렸다.

“그래 그 꼬맹이가 그런 말을 했단 말이지. 알았다.”

카널드는 브란틴이 치료받는 자리로 다가왔다.

“미안하다.”

카널드는 브란틴에게 고개를 숙였다.

“자세한 사정을 설명하고 싶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다. 세븐 할은 ‘알려진 대륙’에서 손꼽히는 암살조직. 원래는 황태자 여름 별장에서 상대하려고 준비 중이었는데 여름 별장으로 가기도 전에 일이 어긋나버렸다. ”
“그 암살조직이 왜 전하를 노리는 것입니까?”
“그야 누군가 돈을 주고 시켰기 때문이지요.”

브란틴의 질문에 에이린이 답했다.

“과연 누가?” 뿌드득 “사우스빌”
“아니면 사우스빌 가문의 움직임으로 보이고 싶어하는 누군가겠죠.”
“이런 말 해서 미안하지만 시간이 없다. 네가 괜찮으면 이동하고 싶은데.”

에이린과 브란틴의 대화에 카널드가 끼어들었다.

“저는 괜찮습니다.”

브란틴은 벌떡 일어났다.

“누님을 보고 가려고 했는데 시간이 없군. 빨리 여름 별장으로 이동하자.”


상처에서 열이 나기 시작했다. 브란틴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카널드, 세레나, 모니카는 각자 말을 타고 있었고 에이린은 모니카의 뒤에 올라타 있었다. 그 때 브란틴에게 카널드가 다가왔다.

“몸은 좀 어떠냐?”
“괜찮습니다.”

오한을 참으며 브란틴은 씩씩하게 대답했다.

“조금만 더 가면 치료를 받을 수 있으니 힘내라.”

그 때 세레나가 말을 멈췄다. 나머지 카널드 일행도 차례차례 말을 멈췄다. 수풀에서 후드를 둘러쓴 사내들이 나오고 있었다. 세레나와 모니카는 말에서 내렸다. 모니카는 검을 뽑았고 세레나는 비도를 손에 쥐었다. 브란틴도 내려오려 했다. 하지만 카널드가 브란틴을 제지했다.

“서 체스웍스, 너까지 나설 필요 없다. 세레나!”

카널드의 말의 세레나가 비도를 뿌렸다. 암살자들은 비도를 흘리거나 받아쳤다. 그 때 세레나가 낮은 자세로 한 암살자에게 빠르게 접근했다. 그 암살자는 세레나의 낮은 자세를 본 후 등을 노리고 위에서부터 반월도를 내려쳤다. 기다렸다는 듯이 세레나의 비도가 암살자가 칼을 든 손을 찔렀다. 암살자는 비명을 참으며 반월도를 마저 내려쳤다.
하지만 잠깐 멈칫한 사이 몸을 더욱 낮춘 세레나가 높은 발차기를 날렸다. 발은 호선을 그리며 암살자의 목을 스쳐갔다. 암살자의 목에서 피가 뿜어나왔다. 무너지는 암살자를 뒤로하고 세레나는 비도를 다시 날렸다.
동료 암살자의 어이없는 빠른 죽음에 당황한 암살자들은 이번 비도에 미처 대처하지 못했다. 두 명이 눈과 목에 비도를 맞고 비틀거렸다. 세레나는 높이 점프해서 남은 암살자들을 노렸다.
남은 암살자들의 시선이 높이 솟은 세레나에 몰렸을 때 모니카가 움직였다. 낮은 자세로 빠르게 암살자들에게 접근한 모니카가 한 명의 배를 갈랐다. 남은 한 명은 모니카의 검을 받아치기 위해 칼을 움직였다. 하지만 춤을 추는 듯한 모니카의 검은 그 칼을 피해 암살자의 심장을 찔렀다. 세레나가 비도를 눈에 맞아 허우적거리는 암살자의 목을 비도로 그으며 착륙했다.
둘은 빠르게 세레나의 비도를 회수하고 말에 다시 올라탔다.

“이제 마주치는 적은 말을 멈추는 법 없이 그냥 돌파한다.”
“예.” “알겠습니다.”

모니카가 앞장을 서서 일행은 다시 출발했다.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숲 저쪽에서 달려오는 암살자무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강행 돌파다!”

그 때 모니카가 고삐를 에이린에게 맡기고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말머리를 살며시 밟더니 앞으로 점프를 했다. 말은 상관하지 않고 계속 달렸다. 점프한 모니카는 암살자들을 향해 날아갔다. 당황한 암살자들 사이로 모니카가 땅을 구르며 착지했다. 그녀가 일어설 때 아킬레스건이 잘린 몇 명의 암살자가 무너졌다. 모니카가 암살자들을 다 처리했을 때는 막 카널드 일행이 암살자들이 있는 지점을 통과할 때였다. 모니카는 에이린이 몰고 있던 말의 고삐를 잡더니 몸을 날려 그 뒤에 탔다.

“모니카! 위험한 짓 하지마라!”
“네.”

카널드의 호통에 모니카가 기쁜 듯 대답했다.

“저기다!”
“쫓아라!”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일행은 뒤를 돌아보았다. 말에 탄 암살자 일행이 쫓아오고 있었다. 암살자들이 달려오는 쪽에서 살라만다 한 마리가 하늘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늘로 꼬리를 남기며 올라간 살라만다는 유체를 흩뿌리면서 정령계로 도망갔다. 불타는 유체가 하늘에서 뿌려졌다.

“제길, 살라만다를 탈출시키다니, 암살자 놈들이 돈도 많은데?”

카널드가 말하며 말을 몰았다. 어느새 숲이 끝나가고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카널드가 소리쳤을 때 숲속에서 화살들이 날아왔다. 말들이 화살을 맞고 쓰러졌다. 모니카가 에이린을 잡고 뒤로 뛰었다. 나머지 사람들도 무너지는 말에서 내려왔다. 그들 주위로 암살자들이 몰려들었다.

“살라만다가 탈출하는 걸 우리 쪽도 봤을 거예요. 그들이 곧 달려올 테니 그 동안 시간을 벌어주세요. 모니카는 저를, 세레나는 전하를 지켜주세요.”

에이린이 지시하자 모니카와 세레나가 일행을 호위하는 자리에 서서 칼을 뽑았다. 브란틴도 칼을 뽑았다.

“수호기사 한 명만 상대하면 끝날 줄 알았는데 예기치 못한 하녀들의 역습이라…… 이거 손해가 장난 아니오. 황태자 나으리.”

후드를 쓴 사람 가운데 하나가 카널드에게 말을 걸었다.

“며칠 더 기다렸다면 더 즐거운 경험을 할 수 있었을 거요.”

황태자가 대꾸했다.

“아니, 천하의 바보 멍청이로 유명한 황태자가 실제로는 발톱을 숨기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충분히 짜릿한 경험이었소. 뭐, 그것도 이젠 끝이지만 말이오.”
“흥, ‘그림자의 성녀’가 지키는 날 쉽게 죽일 수 있을까?”
“그림자의 성녀!”

다가오던 암살자 전원이 순간 뒤로 물러났다.

“물러서지 마라. 그림자의 성녀는 5년 전에 죽었다!”
“누가 죽었다고? 어이 세레나, 너 죽었다는데?”

그 말에 세레나가 비릿하게 웃었다.

“에잇, 저 년이 그림자의 성녀일리 없다! 모두 나가라! 다 죽여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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