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가장 단아한 결과를 선택했다.
불타오르는 책들로 이루어진 도서관.
혼란과 질서를 모두 포함하는 세계의 표상.
텅빈 열람실에서 <그>와 <나>는 마주보고 있다.
#
그의 오른 팔에는 <소녀>의 머리가 들려있었다.
그 머리에서 <그>의 음성이 들려온다.
나는 단지 너에 대한 <금지>일뿐.
<그>의 입에선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제 내것을 돌려줘"
내 오른팔이 금이 가기 시작했다. 오른쪽이가 나에게서
떨어져 나가더니 <그>를 향해 꿈틀거리며 기어갔다.
곧 그것은 <그>의 비어있는 왼쪽어깨에 결합했다.
나는 그것이 남긴 핏자국, <나>와 <그>사이를 잇고
있는 검붉은 흔적을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
#
유감스럽게도 지금은 내가 승리하는 장면이다.
<그>가 <열렸다>
그를 이루고 있는 모든 것들. 내가 격렬히 미워하는 단어들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그 안에서 흘러가고 있었다.
그것들을 모두 읽는다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이젠 나도 알고 있다.
나는 단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다. 곧 내가 찾던
단어가 나타났다. 과거에서 시작하여 미래로 사라지는
그것을 향해 나는 손을 뻗었다. 맹인이 점자를 더듬듯,
나의 혀는 그 이름을 음소에서부터 철저하게 핥아냈다.
손을 들어 내 입술을 훔쳤다. 아슬하게 걸려있던 다른 단어들이
모두 떨어져나갔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저것은 가식적인 체념이다.
나 또한 그에 걸맞는 무의미한 분노를 담아,
<그>의 이름을 부른다.
아니 <나>의 이름을 부른다.
<우리>는 파괴되었다.
#
사랑과 증오를 담아, 두 세계는 나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다.
내가 승리했기 때문이다. 그는 무너져내렸다. 그를 이루고
있는 것에서 나의 이름을 발견하는 일은 어찌보면 예정된
것이었다. 나의 세계는 복원되기 시작했다.
우선적으로 그의 흔적을 지우면서.
그 결과 나는 지금 우리집 화장실의 변기를 붙들고
그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문밖에서는 식구들이
언제나처럼 나를 재촉한다. 거기서 나와!
지금은 내가 승리한 후의 장면이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변기를 들여다본다. 그 물위에 떠있는
단어들을 본다. 그것은 나의 이름으로 오염되어 있다.
문득 <소녀>를 생각했다. 결국 나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지 못했다. 결코 정확할 수 없을 단어들이
어떤 얼굴을 만들어내려고 애를쓰며 엉겨붙고 있다.
나는 그 얼룩을 보았다. 그리고 물을 내렸다.
아무렴 어떤가. 그래, 그 단어뭉치들이 무엇을 닮았든,
닮지 않았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녀는 더 아래에 있다.
마침.
후기_
이런저런 얘기를 할 수 있겠지만
공정하게 평하자면
이 이야기는 단지 단어들의 나열에 불과하다.
우리는 가장 단아한 결과를 선택했다.
불타오르는 책들로 이루어진 도서관.
혼란과 질서를 모두 포함하는 세계의 표상.
텅빈 열람실에서 <그>와 <나>는 마주보고 있다.
#
그의 오른 팔에는 <소녀>의 머리가 들려있었다.
그 머리에서 <그>의 음성이 들려온다.
나는 단지 너에 대한 <금지>일뿐.
<그>의 입에선 <소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제 내것을 돌려줘"
내 오른팔이 금이 가기 시작했다. 오른쪽이가 나에게서
떨어져 나가더니 <그>를 향해 꿈틀거리며 기어갔다.
곧 그것은 <그>의 비어있는 왼쪽어깨에 결합했다.
나는 그것이 남긴 핏자국, <나>와 <그>사이를 잇고
있는 검붉은 흔적을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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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감스럽게도 지금은 내가 승리하는 장면이다.
<그>가 <열렸다>
그를 이루고 있는 모든 것들. 내가 격렬히 미워하는 단어들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그 안에서 흘러가고 있었다.
그것들을 모두 읽는다는 것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이젠 나도 알고 있다.
나는 단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다. 곧 내가 찾던
단어가 나타났다. 과거에서 시작하여 미래로 사라지는
그것을 향해 나는 손을 뻗었다. 맹인이 점자를 더듬듯,
나의 혀는 그 이름을 음소에서부터 철저하게 핥아냈다.
손을 들어 내 입술을 훔쳤다. 아슬하게 걸려있던 다른 단어들이
모두 떨어져나갔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저것은 가식적인 체념이다.
나 또한 그에 걸맞는 무의미한 분노를 담아,
<그>의 이름을 부른다.
아니 <나>의 이름을 부른다.
<우리>는 파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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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증오를 담아, 두 세계는 나에게 경의를 표하고 있다.
내가 승리했기 때문이다. 그는 무너져내렸다. 그를 이루고
있는 것에서 나의 이름을 발견하는 일은 어찌보면 예정된
것이었다. 나의 세계는 복원되기 시작했다.
우선적으로 그의 흔적을 지우면서.
그 결과 나는 지금 우리집 화장실의 변기를 붙들고
그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문밖에서는 식구들이
언제나처럼 나를 재촉한다. 거기서 나와!
지금은 내가 승리한 후의 장면이기 때문이다.
나는 다시 변기를 들여다본다. 그 물위에 떠있는
단어들을 본다. 그것은 나의 이름으로 오염되어 있다.
문득 <소녀>를 생각했다. 결국 나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지 못했다. 결코 정확할 수 없을 단어들이
어떤 얼굴을 만들어내려고 애를쓰며 엉겨붙고 있다.
나는 그 얼룩을 보았다. 그리고 물을 내렸다.
아무렴 어떤가. 그래, 그 단어뭉치들이 무엇을 닮았든,
닮지 않았든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녀는 더 아래에 있다.
마침.
후기_
이런저런 얘기를 할 수 있겠지만
공정하게 평하자면
이 이야기는 단지 단어들의 나열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