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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슬픈 해피엔딩 : 각성

2009.08.03 03:0608.03

■각성- 희망이 날 죽이고 절망이 날 구원한다
“그만하란 말이야. 이 자식아.”
나네의 눈이 분노로 떨리고 있었다.
“일어났잖아!”
사천사의 눈이 생기로 빛나고 있었다. 이내 사천사가 손가락을 튕겼다. 나네의 배에 돌덩이가 날아가 박혔다.
“이정도 가지고는 어림도 없어.”
사천사가 심드렁하게 덧붙였다. 나네의 몸이 썩은 나무처럼 옆으로 쓰러졌다. 사천사가 쓰러지는 나네의 옷섶을 낚아채며 일으켜 세웠다. 극심한 통증이 밀려오며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사천사가 웃으며 이야기했다.
“봐 분노하니까 되잖아. 좀 더 해보라고 널 지켜보는 눈이 많잖아.”
나네의 등 뒤로 루시드 드리머들의 비명소리가 이어졌다.
“어때 좀 뭔가 울컥 솟아오를 것 같아? 아직도 그대로야? 너 때문에 죄 없는 사람들이 죽어가잖아.”
루시드 드리머들은 이미 전의를 상실하고 있었다. 나네의 등장 이후- 내가 아니면 세상을 구할 수 없다는 싸움의 주체에서 내가 아니더라도, 하는 생각이 지배하는 순간부터 이미 그들은 포식자의 먹이일 뿐이었다.
‘힘아 솟아나라. 제발.’
나네의 주먹 쥔 손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하지만 힘은 솟아나지 않았다. 잔인한 모습은 꿈을 꾸고 있는 전세계 사람들에게 생중계되고 있었다. 그 사람들의 의자가 하나둘 나네에게 달려들었다.
-하나님.
-살려줘.
-나쁜놈.
-뭘하고 있는거야.
-죽어버려.
-뭔가 해봐.
-왜 너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나네를 원망하고 있었다. 나네는 울컥 토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압도적인 전력의 이천사 외에 그와 동급의 천사들이 둘이나 더 지키고 있었다. 싸워보지도 않고 이미 나네는 싸움 이후의 상황을 상상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나네의 입에서 자그마한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호기심 어리던 사천사의 눈이 실망으로 바뀌 것은.
“…주세요.”
“뭐라고? 잘 안 들리는데?”
“살려….”
“안 들린다고!”
“제발…살려 주세요.”
나네가 기침을 하듯 겨우 말하고는 고개를 떨구었다. 이천사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그 모습을 주시했다. 사천사의 얼굴이 악마처럼 일그러졌다.
“그런 나약한 소리가 아니야! 분노하라고 분노!”
사천사가 빠드득 이빨을 물며 목소리를 높였다. 사천사가 손으로 나네의 턱을 잡아 얼굴을 들고 소리쳤다.
“자 그럼 얘기해봐. 세상 사람들이 다 들리는 큰 목소리로 얘기해! 너희들을 구해줄 영웅 따윈, 희망 같은 건 애초에 없었다고, 인간들은 모두 멸망할거라고!”
나네는 축 늘어져 대답이 없었다.
“어서 따라해!”
사천사가 나네의 목을 잡고 흔들며 소리쳤다.
나네의 입술이 달싹였다.
“희망 같은 건…”
“더 크게! 모두 죽는다!”
“희망 같은 건 애초에 없어, 인간들은 모두 멸망할거야!”
나네가 절규하며 탈진한 듯 고개를 꺾었다.
“크크크크”
웃어제끼던 사천사가 나네를 내동댕이 쳤다.
“이놈을 그냥!”
사천사가 발을 들어 쓰러진 나네의 머리를 밟으려고 했다.
“이제 그만해”
이천사가 사천사를 막았다. “왜?”
“이제 죽일 가치가 없어졌다. 더 절망을 느끼게 해야지. 이제 나간다.”
나네는 웃었다. 나네의 귓속으로 들려오던 세상 사람들의 외침이 멈췄다.
“잠깐.”
사천사가 이천사의 어깨를 잡았다.
“왜 또?”
“방금 좋은 여흥이 생겼다.”
사천사가 나네를 향해 의뭉스레 말했다.
“아까 그랬지 사랑하는 사람이 어쩌니?”

그런 때가 있었다.

그대가 굳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도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하던 때가.

그대가 내게 손을 내밀든지 말든지,
나를 아는 척 하든지 말든지

그저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슴 따뜻한 때가.

<그런 때가 있었다> 이정하

축 늘어진 나네의 눈이 감전된 듯 흐리게 떠졌다.
“무슨 소리야…?”
나네의 힘 없는 물음에 사천사가 나네를 향해 빨갛게 웃으며 말했다.
“인류는 구하지 못하더라도 사랑하는 사람 하나 정도는 구해야 하지 않겠어?”
“무슨 소리냐니까!”
나네의 목소리가 격앙되었다. 사천사가 나네의 말을 무시하며 말했다.
“네가 생각한 그대로야. 네가 구하려는 그 여자가 마침 이곳으로 왔어.”
나네의 눈동자가 벌벌 떨리고 있었다.
“이곳으로 왔다니 무슨 소리야?”
“네가 생각하는 그대로야. 응급실로 옮겨진 거 아닌가?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게 없지. 망자나마 다시 재회 시켜주려는 거야.”
이천사가 심기가 불편한 듯 이마를 찡그리다 가늘게 웃었다. 망자들 사이에서 한 여자가 천천히 모습을 드러냈다.
‘막다?’
번개를 맞은 듯 나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쪽으로, 이쪽으로!”
사천사가 장난감을 발견한 어린아이처럼 들떴다. 여자가 나네를 지나 사천사의 옆에 섰다. 분명한 얼굴의 막다였다.
“맞아? 네가 맞는 거야? 죽었어? 아니지? 아니야!”
나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막다를 향해 물었다. 나네의 목소리에도 막다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나네가 벌떡 일어나 사천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사천사가 가볍게 손가락을 튕기자 작은 돌이 총알처럼 나네의 허벅지를 뚫었다. 나네가 한쪽 무릎을 굽히며 무너졌다.
“꽤나 중요한 여자인가 봐.”
“그녀를 놔줘!”
나네가 다시 한 번 달려들었다.
이번엔 돌조각이 나네의 남은 다리를 관통했다. 털썩, 나네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나네가 고개를 들어 애원했다.
“제발….”
사천사가 나네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이 여자는 마지막 보루였지. 네가 혹시라도 네 형 같은 힘이라도 있다면 널 죽이는데 쓰려고 했어. 하지만…넌 그렇지 않은 것 같아. 이제 마지막 남은 희망의 갈갈이 찢기는 모습을 온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거야."
사천사가 언짢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또 우는 거야? 네게도 기회는 있어. 여기는 꿈의 공간이잖아. 힘이 강한 자가 아니라 마음이 강한 자가 이기는 곳이야. 울지 말고 더 분노해 봐.”
“제발….”
나네는 두 손으로 어그적어그적 기어서 막다를 향했다. 사천사가 안되겠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천사가 돌조각을 들어 막다의 머리를 향해 금방이라도 튕길 듯 갖다 댔다.
“안돼!”
나네가 피범벅이 된 두 발로 일어나 쩔뚝쩔뚝 사천사를 향해 달려들었다.
“잘하는데.”
사천사가 득의한 웃음을 지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막다의 머리에서 핏줄기가 튀었다.
막다가 힘없이 쓰러졌다.
막다였다.
붉은 선혈이 막다의 입가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분명히 막다였다.  
나네가 앞으로 쓰러지는 막다를 안았다. 그러나 막다는 나네의 품에 안기기 전에 먼지로 화해 사라졌다. 나네는 먼지가 휘날리는 빈손을 보며 텅 빈 눈으로 혼잣말했다.
“당신이 왜 여기에 있는 거야.”
먹먹한 말이 가슴을 치고 있었다.
“망자가 또 다시 죽으면 천국에도 지옥에도 가지 못하고 영영 먼지가 되어 버린다는 건 알고 있겠지?”
사천사가 비웃으며 등을 돌렸다. 나네의 눈은 돌처럼 굳어 말이 없었다.
“괜찮아, 괜찮아 내가 살려줄 거야. 죽지 않아. 내가 살려줄 거야…”
힘없는 중얼거림만이 주문처럼 이어졌다.


오리가 쑤시고 다니는 호수를 보고 있었지.
오리는 뭉툭한 부리로 호수를 쑤시고 있었지.
호수의 몸속 건더기를 집어삼키고 있었지.
나는 당신 마음을 쑤시고 있었지.
나는 당신 마음 위에 떠 있었지.
꼬리를 흔들며 갈퀴손으로
당신 마음을 긁어내고 있었지.
당신 마음이 너무 깊고 넓게 퍼져
난 가보지 않은 데 더 많고
내 눈은 어두워 보지 못했지.
난 마음 밖으로 나와 볼일을 보고
꼬리를 흔들며 뒤뚱거리며
당신 마음 위에 뜨곤 했었지.
난 당신 마음 위에서 자지 못하고
수많은 갈대 사이에 있었지.
갈대가 흔드는 칼을 보았지.
칼이 꺾이는 걸 보았지.
내 날개는
당신을 떠나는 데만 사용되었지.

<오리> 이윤학

“나 때문에…나 때문에….”  
나네가 멍청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무릎을 꿇은 채 한쪽에 떨어진 총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총구를 입속으로 집어넣었다. 이천사가 나네에게서 총을 빼앗았다.
“그렇게 시시한 결말은 관객들이 좋아하지 않아.”
이천사가 차분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잘 알아둬. 앞으로 나가게 만드는 힘은 희망이 아니라 절망이야. 사랑이 아니라 분노야…죽음도 네겐 사치다.”
나네는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나네의 얼굴은 송장처럼 하얗게 질렸다. 심장이 멈춘 듯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가슴 한구석에 울음이 멍울지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아아!”
울음은 가슴 깊은 곳에서 목줄기를 타고 올라와 고함으로 바뀌었다. 세상을 삼킬듯 표효하는 고함소리가 터져나왔다. 교문 쪽으로 향하고 있던 천사들을 물론 망자들까지 놀라 쳐다봤다. 나네가 허리를 뒤로 젖히며 하늘높이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사천사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그러나 고함은 이내 멈췄고 나네는 빵빵하게 부풀었다 터진 풍선처럼 그대로 앞으로 쓰러졌다.
“김빠지게, 뭐라도 되는 줄 알았네.”
사천사가 입에 걸린 웃음을 구겼다. 나네의 얼굴에서 생기가 사라지며 온몸이 메말라가기 시작했다. 격심한 스트레스 탓인지 검은 머리카락이 노인처럼 하얗게 변해갔다. 이천사가 하늘을 향해 외쳤다.
“잘 보았느냐 지상의 인간들아. 이것이 너희들이 믿은 희망의 모습이며 잠시 후 너희들의 모습이다!”
이천사가 손을 높이 쳐들었고, 망자들의 고함소리가 도시를 쩌렁쩌렁 울렸다.
이천사가 학교정문 앞으로 섰다. 천천히 들어서려는 순간 입구가 블록으로 쌓아놓은 듯 순식간에 아래로 무너져 사라졌다.
이천사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교문을 시작으로 도로와 건물들이 마치 처음부터 블록으로 만들어져 있었다는 듯 순식간에 차르르륵 무너지며 새로운 모습으로 재구성되기 시작했다. 인류의 처음과 끝과 마지막을 보듯 과거와 현실, 그리고 미래까지. 인류 역사의 공간들이 두서없이 만들어졌다가 무너져 내리고 또 만들어졌다. 굉음이 땅을 치며 번개가 일고 오오라가 펼쳐지며 무지개가 떠올랐다.
“뭐야 도대체! 누가 공간을 바꾸고 있는 거야!”
생각을 이을 새도 없이 등 뒤에서 누군가가 이천사의 팔을 잡았다. 이천사는 뱀의 눈을 보듯 아찔한 느낌에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봤다.
나네였다.
이천사가 나네임을 확인하자 공간들의 변이가 순식간에 멈추었다. 불규칙하게 섞여있던 과거와 현제와 미래가 합해 과거도 현제도, 미래도 아닌 그로테스크한 공간이 만들어졌다. 나네가 희게 샌 머리를 아무렇게 흐트러트린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나네가 얼굴을 들어 이천사를 바라보며 느릿하게 말했다.
“어딜 가….”
이천사는 다른 사람이라도 된 듯한 나네의 살기어린 눈빛에 고양이 앞의 쥐처럼 꿈쩍도 할 수 없었다.
“이거, 네…네 짓이야?”
이천사가 더듬거리며 겨우 물었다. 나네가 멍한 눈으로 대답했다.
“몰라.”
“흥 이런 녀석의 짓일 리 있나.”
사천사가 곁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삼천사가 하늘을 둘러보다. 느리게 얘기했다.
“이제…끝내고 간다.”
삼천사가 하늘을 향해 양 주먹을 활짝 폈다. 삼천사의 주위로 우물처럼 검은 기운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루시드 드리머들이 가까스로 혜미를 보호하고 있었지만 이미 제대로 움직이기도 힘들었다. 쥐를 가지고 노는 배부른 고양이처럼 삼천사는 겨우 목숨만 남겨 놓은 채 루시드 드리머들을 데리고 놀고 있었다. 루시드 드리머들은 피할 생각도 없이 그저 지켜만 봤다. 삼천사가 양 주먹을 꾹 쥐었다. 루시드 드리머들이 혜미를 감싸며 질끈 눈을 감았다.
“퍽”
자동차가 터지는 소리가 하늘을 감쌌다. 혜미가 감았던 눈을 가늘게 떴다. 검게 자신들을 감싸던 우물이 사라지고 없었다. 혜미가 고개를 들었다. 하늘에서 망치가 떨어진 듯 삼천사의 멍하게 뜨인 눈 사이가 퍽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렸다. 삼천사의 머리가 몸속으로 푹 꺼지며 배선이 어지럽게 몸 밖으로 튀어나오고 스파크가 튀었다. 충격에 못 이겨 땅속으로 풍꺼진 삼천사의 다리가 휘청 풀렸다. 몸뚱아리는 걸레를 쥐어짜듯 검은 핏줄기를 뿜어냈다. 눈동자가 핑그르르 팔자를 만들며 휘둥그래졌다. 겨우 제자리를 찾은 눈동자가 붉게 빛나며 한쪽을 주시했다. 그곳에는 나네가 서 있었다.
“너인가?”
이천사가 무거운 목소리로 나네를 향해 말했다. 나네는 삼천사를 바라봤다. 상처가 순식간에 재생되고 있었다. 삼천사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쿵, 쿵 나네를 향해 걸어왔다.
“죽인다…죽인다…!”
삼천사가 나네의 앞에서 이빨을 뿌드득 갈며 얘기했다. 이천사가 삼천사를 향해 작게 얘기했다.
“조심해.”
“응?”
사천사가 고개를 갸웃하며 이천사를 쳐다봤다. 이천사가 정색을 하며 말했다.
“조심하라고.”
“뭐라고? 잘…잘 안 들리는데?”
삼천사가 나네를 향해 허리를 굽혀 얼굴을 갖다대며 조소했다.
“잘 안 들리는데? 뭐…뭐라고 하는 거지? 큭큭.”
삼천사가 귀가 안 들린다는 듯 비아냥거리다.
“조심하라고 하는데?”
나네가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나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삼천사의 강철같은 주먹이 번개같이 나네에게 날아들었다. 들고 있던 나네의 손가락이 가볍게 허공을 찔렀다.
“뻥!”
삼천사는 눈앞에서 대포를 맞은 듯 루시드 드리머 위를 날아갔다.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나 있었다. 잘려진 팔 한 짝이 힘없이 땅으로 떨어졌다. 굉음과 함께 빌딩에 박히며 빌딩이 우르르릉 소리를 내며 무너져 내렸다.
“으아아아아아!”
삼천사가 떨어졌던 자리가 펑 소리가 나며 터져나가며 고함이 터져 나왔다. 사제복은 걸레가 된지 오래였다. 사제복 아래로 삼천사의 몸이 드러났다. 삼천사의 몸은 로봇마냥 온갖 검은 기계장치로 만들어져 있었다. 처절하게 망가진 삼천사의 몸 이곳저곳에서 전선들이 나와서 상처를 복구했다. 순식간에 상처가 복구되며 삼천사의 눈이 붉게 빛났다. 삼천사의 몸이 공격을 당한 복어처럼 부풀기 시작했다. 삼천사의 몸집이 건물을 삼킬 듯 부풀어 오르며 등 위로 검은 오오라가 스물스물 올라왔다. 짐승처럼 네발로 땅을 짚고 나네를 향해 금방이라도 달려들듯 으르릉거리고 있었다. 온 몸에서 검은 연기들이 분수처럼 흘러나왔다.
나네가 한 손을 들어 앞으로 내밀었다. 나네의 손등으로 매미 날개 같은 단검이 작게 솟아나왔다. 기러기 아저씨가 들고 싸웠던 검이었다.
“그…그까짓 검 쪼가리. 또 작살주지.”
삼천사가 으르릉 거리다가 나네를 향해 땅을 박차며 내달았다. 동시에 나네의 검도 삼천사를 향해 내리그어졌다. 나네를 향해 달려들던 삼천사의 머리위로 별이 한꺼번에 떨어지듯 번쩍임이 일었다. 삼천사는 그 자리에서 채 벗어나지 못했고 삼천사가 있던 자리로 검에 잘린 구멍이 생겨났다. 마치 검은 빌딩을 지하로 박아놓은 듯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게 파여 있었다. 기러기 아저씨의 검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위력이었다. 크윽, 놀란 이천사가 이빨을 깨물었고 사천사는 멍하니 자신 앞에서 떨어져 있는 삼천사의 팔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사천사의 이마에서 진땀이 흘러내렸다. 사천사가 나네를 향해 억지로 웃으며 입을 땠다.
“그까짓 거.”
나네가 사천사를 향해 한걸음 때었다. 눈 깜박하는 순간 어느새 나네가 사천사 앞으로 뻗어와 있었다. 사천사의 웃음이 한순간에 사그라들며 급하게 뒤로 물러섰다. 순간 나네의 등 뒤로 삼천사의 잘려진 팔이 살아있는 생물처럼 나네를 향해 달려들었다. 나네가 슬쩍 피하며 검으로 팔을 꼬치처럼 꿰었다. 단검 끝으로 검기가 한참이나 솟구쳐 있었다. 꿰어진 손에서 꽥꽥거리는 비명이 울리며 팔에서 삼천사의 머리와 몸이 순식간에 재생되었다. 삼천사가 눈을 빛내며 나네를 덮쳤다.
나네의 손가락이 하늘을 향해 들렸다. 콰과광! 번개 터지는 소리가 들리며 땅이 너덜너덜 뒤집어졌다. 삼천사가 나네를 향해 채 다가오지 못한 채 나네의 검을 잡았다. 입에서는 푸식푸식 김빠지는 소리가 흘러나왔고 온 몸은 고장난 선풍기처럼 덜덜 떨렸다. 붉게 빛나던 눈동자가 전원이 뽑혀진 형광등처럼 깜빡거리다 검게 꺼졌다. 나네가 검을 거두자 꼬치처럼 꿰어져 있던 삼천사가 땅으로 털썩 쓰러졌다. 나네가 삼천사를 지나쳐 사천사를 향해 걸어갔다. 삼천사의 눈이 번쩍 뜨였다. 나네는 개의치 않고 사천사를 향해 걸어갔다. 삼천사는 공격하는 대신 찢어진 철의 날개를 휘적휘적 날개짓하며 하늘 높이 달아났다. 몸에서 떨어진 부서진 파편이 땅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나네가 사천사의 지척까지 다가서는데 하늘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이놈! 박살을 내주마!”
삼천사의 몸이 점차로 크게 부풀어 올랐다. 하늘을 덮어 태양을 가릴 듯 크게 부풀어 올랐다. 나네가 개미새끼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우하하하하 이런 별 따위 모두 박살내주마!”
삼천사의 웃음이 하늘을 메우고 있었다. 이천사의 눈이 커졌다.
‘설마 자폭?’
사천사가 급하게 고함쳤다.
“그만둬!”
삼천사가 광기어린 눈으로 뇌까렸다.
“이제 늦었어. 모두 같이 간다. 시…심판이 조금 빨라진 것 뿐이야!”
나네는 개의치 않는 듯 혼자 중얼거렸다. 갑자기 주변이 어두워졌다. 이천사는 의아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해는 떠 있는데 하늘이 일식처럼 어두워지고 있었다.
“벌써 해…해가 질 때인가?”
삼천사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삼천사가 하늘을 향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가 시작했다. 이천사는 나네가 뒤이어 내뱉는 말을 들으며 치를 떨었다.
“공간을 부리는….”
번개가 치는 소리와 함께 검게 물들었던 공간이 사그리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삼천사는 물론 주변의 공간이 요동치며 한꺼번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하늘의 거대한 공간이 사과를 베어문 것처럼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주변 공간과 땅이 사라진 공간을 채우려 일그러지며 서로의 공간을 빨아들였다. 공간을 메우려고 땅과 건물이 탑처럼 불쑥 사라진 공간을 향해 솟아올랐다.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공간에 삼켜지지 않으려 사람들이 치열하게 몸을 보호하며 아수라장이 되었다. 공간이 모두 메어지며 하늘에서 삼천사의 한쪽 눈 조각이 나네의 발치로 떨어져 내렸다. 삼천사의 검게 죽은 눈에서 붉은 빛이 치직치직 솟아났다 사라졌다. 바람이 가라앉고 태양이 다시 모습을 보여서야 이천사가 말문을 열었다.
“삼천사의 능력까지…카피, 아니 진짜 그 이상인가?”
나네가 이천사를 쳐다보고 있었다. 저벅저벅. 나네가 이천사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이천사는 움직일 수 없었다. 나네가 조용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런 건 내 힘이 아니야.”
나네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도대체 그 끝이 어디란 말인가…’
이천사가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자리에서 털썩 주저앉았다.
나네가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사천사가 있었다.
“어떤 요술을 부렸는지 모르겠는데 꽤나 강해진 모양이군. 하지만 내 창을 당할 수 있을까? 내 창은 최고야 너같이 허약한 몸뚱아리는 한순간에 걸레 조각으로 만들 수 있지.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있게 말하며 이죽거리는 사천사를 향해 나네가 대답 없이 슬쩍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으아아앗!”
사천사는 말하다 말고 날개를 펼쳐 하늘위로 점처럼 작게 보이는 곳까지 순간이동을 하듯 솟아올랐다. 나네가 아무 말 말라는 듯 손가락을 입가에 댔다.
“위험하잖아 이 자식아!”
사천사가 나네를 향해 소리 질렀다. 나네의 입가에 웃음기가 번졌다. 나네가 입을 열었다.
“도망치는 데는 최고가 맞는 모양이군.”
나네의 비아냥 소리에 사천사가 버럭 소리쳤다.
“도망간 게 아니다. 두 걸음 전진을 위한 한걸음 후퇴지.”
나네가 다시 손을 들었다. 사천사가 식은땀을 흘리며 훔치며 나네에게 소리쳤다.
“날 죽여도 소용없어. 별은 이미 이 순간에도 날아오고 있으니까.”
이천사가 하늘을 쳐다봤다. 사천사가 말을 이었다.
“그래 별이야 별. 아까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은 크기야. 그런 별이 수십 개가 이쪽을 향해 날아오고 있어.”
사천사가 자신만만하게 웃었다. 나네가 들었던 손을 거두고는 사천사에게 물었다.
“그게 별을 움직이는 마법인가?”
“그래. 이제 이 나라는 잿더미가 되겠지 아니 지구 전체가 쑥대밭이 될 거야. 어디 도망이라도 쳐보시라고. 나는 이 날개로 네놈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피하면 그만이니까. 별이 떨어지고 폐허가 된 이곳을 관람하는 일만 남았군!”
나네가 손을 들어 무심한 눈으로 손바닥을 쳐다봤다. 사천사가 광오하게 말했다.
“어서 무릎을 꿇고 빌어라. 그러면 별을 하나 정도는 궤도를 수정해 줄 수 있어. 큭큭큭큭.”
사람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불안에 떨기 시작했다.
“도착까지 이제 10초 남았다. 어서 무릎을 꿇어!”
사천사가 소리쳤다. 마냥 손바닥을 내려다보던 나네가 주먹을 꼭 쥐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들어 손가락으로 사천사를 가리켰다. 이어 아무렇지 않게 사천사를 향해 내뱉는 나네의 말이 사천사의 귀에 뺨을 때리듯 들려왔다.
“별을…부리는….”
커다란 충격이 이어졌다. 거인이 발을 구르듯 지축이 흔들거리며 반대편 지구 너머에서 커다란 굉음이 들렸다. 나네를 바라보는 사천사의 눈이 혼이 나간 듯했다.
“별을…너 운석을 움직였나? 움직여서 그걸 맞췄어?”
사천사가 정신없이 중얼거렸다. 나네가 들었던 손가락을 땅으로 슬쩍 내렸다.
우르르르릉-
다시 한 번 지축이 흔들리며 건물이 모래성처럼 무너져 내렸다. 사천사가 경악과 두려움에 질린 눈으로 나네를 향해 중얼거렸다.
“너 지금 나에게 지구를…쏘아 보내고 있는 건가?”
나네가 감정 없는 목소리로 얘기했다.
“어디 우주로라도 도망쳐 봐.”
나네의 허술하게 내뱉는 말이 칼이라도 된 듯 사천사는 그저 몸을 덜덜 떨뿐이었다. 믿을 수 없는 거대한 힘의 차이에 루시드 드리머조차 환호대신 침묵으로 주변을 덮었다. 충격 탓인지 나네의 발밑에 떨어져 있던 삼천사의 눈이 붉게 떠졌다. 삼천사가 라디오 주파수가 맞지 않는 듯 치직 거리는 목소리가 조용한가운데 이어졌다.  
“제 제발 사…살려줘…”
‘파삭’
나네가 삼천사의 머리를 밟으며 차갑게 내뱉었다.
“그러게 최후의 보루는 남겨 뒀어야지.”
쏟아져 내리는 눈이 나네의 어깨를 적셨다. 나네가 물기 머금은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 같이 죽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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