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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두들기던 분량들을 모두 지우고 한 번에 올립니다.
이 이야기의 1장의 끝이긴 한데, 분량이 꽤 될 듯 합니다. 스크롤 압박이 대단하겠네요.





  Adelra-in
스스로가 절실함을 느낀다는 것은 아마도.

13 번째 폴리스는 다른 거대 폴리스에 비해선 시골 마을이라고 밖에 못 부르겠다, 그래도 폴리스는 폴리스. 유령과 요괴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가호 내린 흰색 돌로 성벽을 쌓았다.

“거기 외부인 양반. 저희 폴리스가 작다고 그냥 들어가려 하시다니 섭섭하군요. 그래도 폴리스는 폴리스. 신분증과 그것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을 보여주세요.”

가호 받은 창과 투구를 쓴 경비병이 다가와 말했다. 그의 말에 후드를 눌러쓴 청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쪽의 폴리스를 무시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저는 위대한 오베루스 시장의 첫 번째 폴리스도 마음대로 오갈 수 있는 권한이 있어요. 정부의 서명과 큼지막한 도장이 찍혀있는 것이 있거든요.”

청년은 그렇게 말하며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그것은 신분증이 들은 일반 여권과 다를 바가 없어보였지만 거기엔 아델라인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경비병은 깜짝 놀라 그것을 받아 펼쳐보니 과연 정부의 서명과 도장이 찍혀 있었다.

“어이쿠, 높으신 분인 줄은 몰랐습니다. 원래는 이렇게 일일이 검사하진 않았지요. 그런데 얼마 전에 일어난 끔찍한 사건 때문에⋯. 아이고, 이럴게 아니라 어서 들어가십시오.”
“괜찮아요. 다만, 저와 제 아들은 오랜 여행으로 지쳐있습니다.” 청년은 그렇게 말하며 왼편에 있는 조그만 아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13 번째 폴리스는 오래간만인지라 강철 멧돼지 여관이 아직도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러나 32년 동안 폴리스에 살아온 이 경비병은 아쉽게도 강철이란 위엄 있는 이름을 앞에 내세운 여관은 한번도 보지 못했다.

“에? 저희 폴리스에는 그런 여관이 없는뎁쇼?”
“아, 그렇군요. 아마 다른 폴리스하고 헷갈렸나 봅니다. 그렇다면 좋은 여관을 알려주십시오. 질 좋은 포도주를 마실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어요. 음식 솜씨가 좋다면 더할 나위 없고요.”
  
경비병은 그렇다면 바람 깃털 여관으로 가보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곳 주인은 친절할 뿐만 아니라 음식 솜씨도 뛰어나다는 것이었다. 청년은 경비병에게 1 페르크를 쥐어주곤 자신의 아들과 함께 바람 깃털 여관으로 향했다.

주인은 경비병의 말대로 푸짐한 인상의 소유자였다. 주인은 때 마침 방이 하나 남았다면서 그곳으로 이들을 안내했다. 방안은 관료가 와서 지낼 수 있을 정도로 호화스러웠지만 청년은 개의치 않은 듯 했다.

그동안 잠자코 청년을 뒤따르던 소년은 단 둘이 남아서야 입을 열었다.

“여기 폴리스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상이 환한걸요.”

바람이 새는 듯한, 잔뜩 쉰 그 목소리는 지옥에서 올라온 악귀의 것만큼이나 끔찍했다. 그렇지만 청년은 익숙한 듯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이었다.

“그렇지. 일주일이나 보내야하지만 썩 나쁘진 않을 것 같다.”

둘은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는 식당으로 내려갔다. 주인에게 기름진 음식을 몇 개 주문하곤 롱파뉴산 포도주가 있느냐고 물었다. 주인은 다섯 병 밖에 없다고 말했고 청년은 그 중 세 개를 가져오라고 했다. 창밖을 보니 벌써 밤이었다.

“오늘은 푹 쉬도록 하고 내일 광장에 나가보도록 하자. 들어오면서 봤는데 이곳의 광장은 활기찬데 반해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았으니까. 함께 연주하고 내가 노랠 부르면 마을 아낙들이 주머니에 남은 몇 페르크라도 꺼내 쥐어 주겠지! 주인장, 포도주를! 이 테이블엔 포도주를 먼저 주시오!”

주인이 포도주병을 잔 하나와 함께 내놓았다.

“아니지, 아니야. 여기 내 아들은 이래봬도 포도주를 굉장히 잘 마시거든! 잔을 하나 더 가져오게.”

청년의 말에 가만히 있던 소년은 히죽 웃었다. 잔이 하나 더 나오고, 둘은 건배했다. 경비병의 말대로 주인의 음식 솜씨는 으뜸이었다. 소년은 특히 거위구이와 칠면조 요리에 반한 것 같았다. 부자는 배부른 배를 잡고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다음날 아침. 소년은 일찌감치 일어났다. 미리 꺼내둔. 훌륭해 보이는 류트를 안고, 현을 퉁기면서 조이고 풀고를 반복하며 몇 번이나 조율했지만 소리가 썩 좋지 않았다. 부스스한 머리로 일어난 청년은 자신의 짐에서 바이올린을 꺼냈다.

그것도 훌륭해 보이는 것이었다. 도시의 관료들과 귀족들도 쉽게 구할 수 없는 명품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청년은 그것을 꺼내놓고는 늘어지게 기지개를 폈다.

“어젠 너무 오래간만에 기름진 음식을 먹어선지, 오늘은 싱싱한 채소류를 먹고 싶은 걸. 내려가서 주인장이 있다면 오늘은 육류가 들어가지 않은 싱싱하고 부드러운 것들로 아침을 차려달라고 하고 오겠니. 없다면 재료를 가져와 이곳에서 간단히 해결하고.”

소년은 금방 다녀왔다. 주인은 채소를 이용한 훌륭한 요리법을 몇 가지 알고 있다고 했다. 썩 괜찮은 아침식사를 한 둘은 악기를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때 막 테이블을 닦고 있던 주인이 그걸 보니 표정을 굳히며.

“나리, 왜 악기를 들고 계십니까?”
“아, 모르셨나보군요. 저희는 폴리스를 순례하는 음유시인입니다.”

음유시인이라는 말에 주인의 얼굴은 창백해졌다.

“나리, 이곳 사람들은 음유시인을 그렇게 좋게 보지 않습니다요.”
“아니? 그게 무슨 소립니까?”
“말 그대로입죠. 13 번째 폴리스는 음유시인을 그다지 환영하지 않아요. 며칠 전 성당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건 때문에 사람들은 음유시인이라는 말만 들으면 진저리를 칩죠! 음유시인들이 유령을 부린다면서요. 그 때문에 성당도 폐쇄됐는걸요?!”

소년은 멀뚱한 눈으로 청년을 봤다. 청년은 하하하 웃더니.

“그건 잘못된 생각이요. 주인장. 음유시인이 유령을 부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오. 그런데, 그 성당에서 일어났다는 끔찍한 사건이 무어요?”

청년은 경비병이 지나가는 말로 했던 말을 잊지 않고 있었다. 주인장은 주저하는 기색을 보였다. 청년은 주머니에서 은화 하나를 꺼냈다. 주인은 손가락에서 현란하게 춤추는 은화에서 시선을 때지 못하며,

“신부님이 외부인한텐 말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주인장은 겁이 많은 사내였다. 청년은 인상을 찌푸리며 주머니에서 은화 하나를 더 꺼냈다.

“괜찮아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말하도록 합죠. 신부님의 말로는 저희 폴리스의 신의 방패에 문제가 내렸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가호내린 성벽에 말이죠. 지금도 그런 것이 있는데 성물을 이용해서 많이 나아졌다고 합니다. 그 끔찍한 사건이란 건.”

그때 누군가가 여관으로 들어왔다. 그는 시청의 관료들만 입는 깨끗한 제복을 입고 있었다. 주인장은 깜짝 놀라 손으로 입을 막았다. 청년은 이 푸짐한 인상의 겁 많은 주인장이 마음에 안 들기 시작했다.

허리를 당당히 편 채 가게 안을 훑어보는 그의 눈은 권위로 가득 차 있었다.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그는 베릭쿠 계의 혼혈로 보였다. 잘 다듬은 수염을 기르고 있었는데 소년은 그것을 한번 만져봤으면 하고 생각했다.

“아이쿠, 나리 어쩐 일로 저희 가게에 오셨습니까요.”
“어제 이곳에 왔다는 이방인을 만나러 왔소.”
“그 분들이라면 여기 계신 분들입죠.”

그러면서 스리슬금 자리를 피한다. 움직일 때 마다 물결치는 주인장의 살을 보며 청년은 중얼거렸다. “돼지 새끼.” 그리고 웃는 얼굴로 사내를 맞았다.

“아델라인을 위하여. 안녕하시오. 관리 양반.”
“아델라인을 위하여. 안녕하시오. 이방인. 그런데, 이럴 수가! 당신들은 음유시인이었군?”

놀란 표정을 짓던 그는 자신이 무례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는 사과하며 자신은 시청에서 일하는 하워드라고 밝혔다. 청년은 그의 정중한 사과를 받아들였다.

“괜찮아요. 관리양반. 그런데 어쩐 일로 나를 찾으시는 겁니까?”
“아, 어제 하급 관리가 귀족이 우리 도시에 방문했다고 말했기 때문이오.”

청년은 하워드가 종을 부리지 않고 직접 찾아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쉽게도, 우리는 귀족이 아니오. 힘든 걸음을 했는데 안타깝게 됐군요.”
“아니오. 덕분에 나는 선량한 음유시인 두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게 됐으니까. 두 사람은 분명 공연을 하러 가려던 참이었겠죠?”

부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악기를 숨기도록 하시오. 13 번째 폴리스의 시민들은 음유시인들을 환영하지 않소이다.”

청년은 벌써 두 번째 듣는 소리에 짜증나는 것을 참으며 말했다.

“도대체 어째서 음유시인들을 환영하지 않는다는 말이오? 마을 광장에 마련된 훌륭한 자리들은? 그것들은 분명 음유시인들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 놓은 것으로 보이는데? 거기에다 오래전에 내가 이곳을 방문했을 땐 사람들은 음유시인을 진심으로 환영했었단 말이오.”

청년의 말에 하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오. 하지만 우리들은 이 무지한 시민들을 깨우쳐줄 방법을 모르오. 이들은 음유시인들이 유령을 부린다고 믿고 있소. 거기에다 몇 달 전 어느 음유시인이 우리 도시를 방문한 이후로 위대한 방패가 상처를 입었소. - 그대의 눈은 지혜로 반짝이니 나의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리라 믿으오. 그것이 그 음유시인과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침 그 날은 보름이었단 말이오.”

보름이란 말에 소년은 놀란 표정으로 청년을 보았다. 청년의 얼굴도 소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음유시인 양반. 우선 자리를 옮기도록 하지요. 창밖으로 그대들이 악기를 들고 있는 것을 본 몇 사람이 있소. 아, 눈이 마주쳤군. 저들의 무시무시한 표정을 보시오. 아무래도 그대들의 방도 안전할 것 같지는 않군. 짐을 싸시오. 시청으로 안내하겠소.”


***Adelra-in***


시청은 폴리스 내의 언덕에 있었다. 하워드는 둘을 방으로 안내했다. 폴리스를 방문하는 귀족들을 위한 방으로 은은한 조명에 어울리는 장식들로 꾸며진 방이었다. 하워드는 이 음유시인 부자가 귀족인 줄 알고 이 방으로 안내하려 했었지만, 이들이 귀족이 아니어도 상관없는 것 같았다. 그때 어느 관리하나가 하워드에게 달려왔다. 청 내에서. 그것도 외부인 앞에서 예의를 지키지 않아 이를 혼내주려던 하워드는 그의 말에 창백한 얼굴이 되었다.

“이곳에서 쉬도록 하시오. 급한 일이 생겨 일을 보고 오리다.”
“하워드. 관리양반. 잠깐만 기다려요. 우리를 이렇게 내버려두고 어딜 가려고 합니까?”
“금방 돌아오겠소. 필요한 것이 있으면 벨을 누르도록 하시오.”

그는 급히 복도를 빠져나갔다. 둘은 하워드를 기다리는 동안 편히 쉬기로 결정했다. 벨을 눌러 하인을 부르고, 티타임을 가지려 한다고 말했다. 하인의 이름은 죠셉이었다. 죠셉은 쿠키와 비스킷 그리고 홍차를 가지고 왔다.

청년이 나가려는 죠셉을 불러 세웠다.  

“잠깐만 이리로 와보겠어. 자네에게 묻고 싶은 게 있어서 그런데.”
“무엇이든지 말씀하세요. 제가 아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든 대답하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청의 사정이 좋지 않은지라 일이 산더미만큼 늘어났어요. 그러니까, 지금 저는 매우 바쁜 몸이란 말이죠.”

그 죠셉의 말에 청년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네를 오래 잡아 두진 않을 거야. 하지만 자네에게 이 관청의 일이 매우 중요하듯 나에게도 중요한 일이 있다네. 나는 역마살 낀 폴리스의 순례자일 뿐이지만 독실한 신자이기도 하네. 오래간만에 폴리스에 들린지라 나는 신부님의 지혜로운 조언을, 그리고 하느님께 기도를 올리려 성당에 찾아갔네. 그런데….”
“들어갈 수 없었겠죠?” 죠셉의 뻔하다는 말에
“그렇지! 나 같은 방문자뿐만 아니라 시민들도 들어갈 수 없는 것 같더군!”
청년은 정말 화난 사람처럼 씩씩거리며 말했다. 소년은 아버지가 언제부터 독실한 신자였는지에 대하여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하인이 말했다.

“저는 하느님을 믿지만 성당에 나가는 몸은 아니죠. 하지만 이것만은 알고 있죠. 그곳에서 어느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고 그 뒤부터 저렇게 됐다는 거예요.”
“끔찍한 사건이라니!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성당이 문을 걸어 잠글 정도지?”
“살인이요. 성스러운 성당에서, 그것도 어린 아이가 세 명이나 죽었죠. 저도 정확한 건 모르는데 사람들 말로는 유령이 벌인 소행이라나 봐요. 도련님도 조심하셔야 할 겁니다.”
“아이 세 명이?”
청년이 깜짝 놀라 물었다. 소년은 아이 세 명이 죽었다는 말에 표정을 굳혔다.
“그렇죠.”

청년은 죠셉에게 몇 페르크의 돈을 쥐어줬다. 그는 자신을 인사하며 나갔다. 청년은 생각을 정리해봤다. 13 번째 폴리스의 시민들은 음유시인을 환영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것은 성당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건, 세 아이의 죽음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았다.
음유시인이 마지막으로 방문한 건 그리 오래된 건 아닌 것 같다. 문제는 여기에서다.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음유시인이 이 도시를 떠난 뒤 위대한 방패가 커다란 상처를 입었고, 때마침 그 날은 보름, 보름이라고 했다. 짚이는 바가 없지는 않았다. 청년은 소년에게 물었다.

“넌 어떻게 생각하니?”

소년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곳은 벽으로부터 그리 멀지도 않고 말이야.”
“유령을 의심하는 거예요?”

소년의 말에 청년은 불편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유령일 수 없어요.”

청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유령일 수 없다. 유령은 어린 아이를 죽일 수 없다. 게다가 보름달에 벽에서 도망친 유령이 있더라도.

“만약 그렇다면 놈들이 진작 냄새를 맡았겠죠.”

소년은 그렇게 말하며 창밖을 바라봤다. 꿈틀거리는 먹구름이 하늘에 낮게 깔렸다. 아침 까지만 해도 환했었는데, 청년은 소년이 말한 이들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첫 번째 아들의 추종자리라. 거무튀튀한 로브를 걸치고 무거운 후드를 뒤집어 쓴 이들은 유령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나타난다.

“어쩔 수 없지. 하워드가 오길 기다리는 수밖에.”

하워드는 그로부터 몇 시간 뒤에 나타났다. 그의 수염은 축 늘어져 있었는데, 그의 수염만큼이나 그는 힘이 없어보였다. 청년은 이 훌륭해 보이는 관리가 이렇게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관리양반. 어딜 다녀오는 겁니까?”
“미안하게 됐소. 음유시인 양반. 지금 나는 매우 피로하오.”  

청년은 음료수를 따라 그에게 권했다. 그는 그것을 한 번에 들이켰다. 황소 같은 목을 가진 덩치 큰 관리에게 그 컵은 너무 볼품없어 보였다. 그는 몇 잔을 연거푸 마시고 나서야 한결 나아진 표정을 지었다.

“고맙소. 음유시인 양반. 그대는 훌륭한 신사요. 당신에게 이런 무례를 저질러야 한다니 나 자신이 부끄럽기 그지없소. …짐을 싸주시오. 그리고 내일 중으로 폴리스를 떠나도록 하시오. 추방이라고 생각해도 좋소. 이건 내가 내린 결정이 아니오. 관리들 모두가 합의한 끝에 결정한 내용이며, 이 모든 것은 그대들을 위한 것이오.”

“추방이라니!” 청년이 말했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군! 하워드. 관리양반 나는 당신네 관리들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도대체 모르겠군요. 우리는 이곳에서 상당한 지출을 했어요. 그리고 다시 순례를 하기 위해선 돈을 벌어야하죠. 우리는 광장에서 연주할 의무가 있지만 이곳 사람들은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면서 반나절 동안 이곳에 우릴 이곳에 놔둔 건 바로 당신이란 말입니다! 우린 어제 이곳에 도착했고 아무 죄도 짓지 않았어요! 게다가 추방을 당함으로써 떨어지게 될 우리들의 명예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청의 관리들이 나와 내 아들을 폴리스 밖으로 추방할 권리는 어디에도 없다는 걸 알아둬야 할 거요!”

그의 말은 분명 일리가 있었다. 번개가 쳤다. 비가 내리면서 창문을 두들겼다. 틱, 티틱! 하워드도 그렇게 생각했기에 청년이 관리들을 들먹거려도 조금도 화나지 않았다. 그는 최대한 위엄 있어 보이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다음 폴리스까지 여비는 내 주머니에서 내어 드리겠소. 그리고 나는 당신의 말에 어떠한 반박도 할 수 없다는 걸 알아두길 바라오. 하지만 한 가지 알아둘 것이 있소. 우리는 그대들을 위해 이와 같은 결정을 내렸을 뿐, 어떤 감정도 개입되지 않았다는 걸 말이오.”

그것은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청년은,

“좋소. 내일 중으로 폴리스를 떠나도록 하겠소. -물론, 당신네들이 추방하는 것이 아닌 우리가 스스로 나가는 것이란 걸 알아둬야 할 거요. 하지만 나가기 전에 이유라도 알고 싶소. 하워드 관리양반. 당신이 분명히 그렇게 말했지요. 우리를 위해 이와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도대체 무엇이 우리에게 해가 된단 말이오? 또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당당하던 당신을 그렇게 만든 건 도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게다가 나는 이 도시가 음유시인을 환영하지 못하는 이유를 아직 듣지 못했어요.”

청년의 말은 조리 있었다. 처음 만날 때부터 청년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던 하워드는 그의 말에 사실을 털어놓을까 말까를 놓고 갈등하는 것 같았다. 소년은 비스킷을 먹으며 둘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워드가 말했다.

“좋소. 하지만 내가 말하는 것은 우리 폴리스의 명예와 직결되는 문제요. 내 이것만 말하리다. 나는 지금 한 사건 현장을 다녀오는 길이오. 그것은 일어나서도 안 되며 일어날 수도 없는 일이 벌어져 있었지.”

하워드는 입이 탔는지 음료수를 따라 들이켰다. 소년은 자신 몫의 음료수까지 그가 다 마시자 인상을 찌푸렸다. 청년은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한 사람이 죽어있었소. 그의 몸은 여섯 조각으로 찢겨져 있었지. 그런 시체는 며칠 전에도 본 적이 있소. 성당에서였지. 죽은 자를 우리가 알아 볼 수 있었던 건 그가 허리춤에 매고 다니던 칼 때문이었지. 그는 며칠 전 우리 도시를 찾아온 자였소. 처음 그가 왔을 때는 이 이 일이 곧 해결되리라는 생각에 우리는 마음을 놓을 수 있었는데. 그런데. 그가. 그가….”

번쩍 이는가 싶더니 천둥소리가 귀를 때린다. 소년은 유리잔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방은 어느새 어두워져 있었다. 청년은 램프 불을 키웠다. 방이 환해졌다. 하워드는 입을 우물거리다 한숨 쉬 듯 말을 이었다.

“…첫 번째 아들의 추종자가 살해당했소.”  

유리잔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Adelra-in***



빗소리가 거세다. 창밖은 램프 빛에 더욱 어둡게 보였다. 소년은 창밖을 보고 있었다. 이따금 치는 번개에 비춰지는 도시는 숨죽인 듯 고요했다. 하워드가 말했다.

“…주민들은 진실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소. 그러나 그들은 무지하오. 게다가 이곳은 커다란 도시만큼이나 사람들이 교육의 혜택을 많이 받을 수도 없소. 모두 당신들에게 뒤집어씌울게 뻔하오. 유령을 부리는 음유시인이 나타나서 폴리스가 이렇게 됐다면서 말이오. 그리고 무엇보다. 첫 번째 아들의 추종자가 살해당했소.”

이렇게 말하는 하워드의 표정은 매우 피로해 보였다.

“주민들은 당신네, 음유시인 양반들이 마을에 와서 일어난 일이라 굳게 믿을게 뻔하고, 그렇게 되면 당신네들을 맞아준 우리는…. 이제 우리의 입장을 아시겠소?”

청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12 명의 아이가 죽었다고요?”
“그렇소. 모든 건 마지막으로 폴리스에 머물렀던 음유시인이 떠난 직후에 일어난 일이오.”
“하지만 이해가 안 가는군요.” 청년은 석연치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이들이 12명이나 죽을 때까지 첫 번째 아들의 추종자가 오지 않았습니까?”
“그렇소.”
“그러면 이번에 죽은 추종자는?”
“…어쨌든.” 하워드는 대답하지 않고 몸을 일으켰다.
“내일 중으로 도시를 나가주시기 바라오.”
“잠깐만, 이 모든 게 유령의 소행-유령이란 말이 나오자 소년은 인상을 찌푸렸다.-이라면, 위대한 방패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우린 더 위험해지는 것 아닙니까?”
“당신네 음유시인 양반들은 노래가 있지 않소?”

청년은 말문이 막혔다. 창을 때리는 빗소리가 더욱 두드러지고, 번갯불이 하늘을 갈랐다. 짙은 그림자에 가렸던 도시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때 소년은 보았다. 하워드는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내일 도시를 떠나기 전 내 집무실에 들리도록 하시오. 우리 폴리스의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 참 아쉽군요. 좋은 밤 되길 바라오.”
“잠깐만.”

순간 하워드는 깜짝 놀라 소년을 보았다. 그는 이런 끔찍한 목소리는 난생 처음 듣는 표정이었다. 청년은 웬만해선 말을 잘 않는 소년이 다급히 말하자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음을 짐작했다.

“유령이라고 했어요?”
“뭐? 뭐가 말이냐?”

하워드의 말에 소년이 말했다.

“유령이 어린 아이를 죽였다고요?”
“그렇다. 유령이 어린 아이를 죽였지. 그 누구도 인간을 그렇게 찢어낼 수 없어. 그것은 무엇보다도 날카로운 손톱을 가진 유령들만이.”
소년은 하워드의 말을 끊었다.
“아니, 유령은 아이를 죽이지 못해요! 설사 사람을 죽였더라도 찢기는 게 아니라 토막 났을걸요.  아주 깨끗하게. 그리고 그만한 힘을 가진 것은 세상에 얼마든지 많아요. 가령 이쪽으로 다가오는.”

무시무시한 바람이 창을 흔들어댔다. 청년은 눈을 가늘게 떴다. 하워드는 마른침을 삼켰다.

“요괴라면 유령보다 힘이 배는 더 쌔죠.”
“요괴라고?!”

하워드가 소리쳤다. 그러나 그 소리는 창문이 깨지며 방안을 몰아치는 빗소리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소년은 청년의 등 뒤로 숨었다. 청년은 허리춤에 걸린 두 자루의 칼을 뽑았다. 하워드는 권총에 탄창을 확인했다. 하워드가 말했다.

“창문이 깨졌군. 비상벨을 울려야겠어.”
“이 방에서 나가선 안돼!”

청년이 외쳤다. 그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경련도 일어나는 것 같았다. 양 손에 쥔 두 자루의 검을 으스러져라 쥐고 있는 청년은 심호흡 하듯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쉬었다.

“찌그러질 것만 같군. 엄청난 위압감이오. 하워드 당신도 느껴지지 않나요? 놈은 우리를 주시하고 있어요. 아직 당신의 눈엔 보이진 않을 겁니다만, 그는 우리를 지켜보고 있어요. 조금이라도 이상한 행동을 하거나 이 방을 나가려 하면 좇아가 찢어놓을 생각이에요. 저에게는 훤히 보이죠.”

청년은 그렇게 말하다 자루로 관자놀이를 거칠게 문질렀다.

“제길, 머리가 아프군.”
“그럼 어쩌란 말이오?”
“총을 겨누세요. 피부가 흰 걸 보니 아직 어린 녀석이요. 생전의 기억이 남아있겠죠. 그렇다면 죽음의 공포도 아직 잊지 않았을 거요. 죽음의 공포는 무엇보다도 강렬하니까. 그래요. 아니, 거기에서 조금 왼쪽으로. 좋아요. 거기에서 조금 위로 겨누세요. 예, 바로 그곳입니다. 번개가 치길 기다리세요. 그리고 녀석이 보이면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기세요. 탄환이 얼마나 있지요?”
“모두 합치면 24발이오.”
“두 발을 연속으로 쏠 수 있나요?”

그때 번개가 쳤다. 타타탕!

“여섯 발까지 가능하오.”
“맞췄습니까?!”
“그건 모르겠소. 그것보다. 사람들이 총소리를 들었겠군. 곧 가호 받은 창과 방패로 무장한 병사들이 이곳으로 달려올 것이오. 그전에. 헙!”

탕! 또다시 총성이 울리고 청년은 급히 창 밖을 보았다. 흰 피부에 붉은 손톱을 길게 기른 무시무시한 놈이 창으로 곧장 날아오고 있었다. 타탕! 연달아 총성이 두 번 울렸다. 요괴는 길게 비명을 지르면서 청 건물과 충돌했다.

쾅! 벽이 무너지며 비바람이 몰아쳤다. 탄환을 다 쓴 하워드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뒷걸음질 쳤다. 그때 청년이 앞으로 뛰어나갔다. 투캉! 카가가가각!!! 거대한 쇳덩이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고 연이어 뭔가 긁히는 소리가 머리 속을 헤집어놓았다. 청년은 두 자루의 칼만으로 요괴의 손톱을 막아낸 것이다!  

요괴의 팔 하나를 묶은 청년은 민첩하게 요괴의 뒤 쪽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요괴는 청년에게도 하워드에게도 관심이 없었다. 요괴의 거대한 아가리가 길쭉하게 찢어졌다. 소년은 그 모습이 끔찍하다고 생각했다. 요괴가 팔을 소년에게 뻗었다.

“이 노옴!”

어느새 장전을 끝낸 하워드가 방아쇠를 당겼다. 타타타타타탕!

“정말 여섯 발 연속으로 쏘잖아!”
 
그러면서 청년은 칼을 크게 휘둘렀다. 청년이 들고 있는 두 자루의 칼은 신비한 힘이라도 깃들어진 듯 칼이 잘 들지 않는 요괴의 피부를 두부 베듯 베어내고 있었다. 순식간에 온 몸에 상처를 입은 요괴는 비명을 내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끔찍한 소리였다.

“내 아들을 노리고 있어요!”
“나도 알고 있소! 빌어먹을, 왜 이것들은 안 오는 거야!”

철컥! 어느새 장전을 끝낸 하워드는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 탕탕탕! 그러자 요괴는 어깨를 움켜쥐며 뒤로 물러섰다. 하워드는 다시 두 발을 날렸다. 요괴는 다가서질 못하고 씩씩거리며 청년과 하워드를 보았다.

“미숙한 놈이에요! 거기에다 어리기까지 하죠. 요괴라곤 하지만 이런 놈에게 첫 번째 아들의 추종자가 죽었다니 믿어지지 않는군요!!”

청년은 그렇게 외쳤다. 하워드도 그 말에 공감했다 쾅! 문이 열리며 사람들이 들어왔다. 모두 빛나는 투구와 갑옷을, 창과 방패를 든 사람들이었다. 가호 받은 무구를 가진 사람들이다!

“저기 요괴가 있다!”

하워드가 외쳤고 무구를 가진 사람들을 그대로 창을 앞세워 요괴에게 달려들었다. 요괴는 비명을 지르며 시청에서 도망쳤다. 곧장 추격했지만 비 내리는 그림자 속에 요괴는 찾을 수 없었다.


***Adelra-in***


창을 때리는 기세로 보아 비는 쉬이 그칠 것 같지 않았다. 시청 주위로는 가호 받은 무구의 병사들이 순찰을 돌았다. 새 방으로 옮기고 소년은 곧장 잠들었다. 램프 불이 은은한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하워드와 청년이 앉았다.
청년이 말했다.

“내 예상이 맞아 떨어졌다고 해야 할까요?”
“무엇이 말이오?”
“우선은 유령이 아니었다는 점. 그리고 하워드. 노래는 우리를 지켜주지 못할 듯 하군요. 음유시인과 유령. 요괴 사이에는 비밀의 표식이 있어요. 그건 일반 사람들은 알아볼 수 없는 것이지요. 오늘 우리를 습격한 그 어린 요괴 놈은 다짜고짜 덤비기만 했지. 표식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도 알려하지 않았어요.”

청년은 그렇게 말하면서 창 밖으로 시선을 옮겼다. 컴컴한 너머에서 빗방울들이 무리지어 회오리치는 게 언뜻 보였다.

“녀석이 여전히 제 아들을 목표로 두고 있다면, 우린 폴리스를 나가더라도 안전하지 못합니다. 분명 어린 녀석이라. 우리 둘만으로 충분히 견제할 수 있었지만 저 혼자서는 제 아무리 어린 요괴라 해도 당해낼 자신이 없어요.”

하워드는 긍정했다.

“청에서는 우리를 내보내지 않을 거리라 믿습니다. 청은 우리 여행자의 안전을 돌볼 의무가 있다는 걸 잘 아니까요. 하워드. 관리양반.”

하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청에서는 여러분의 안전을 돌볼 거요. 그 점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말도록 하시오. 음유시인 양반.”
“하지만.” 청년은 그렇게 말하며 칼을 뽑았다. “나는 남에게 손만 벌리는 무책임한 사람이 아니지요. 설사 놈이 타킷을 바꾸었더라도 녀석의 목표는 아이라는 건 변함이 없어요. 녀석은 내 아들을 노렸지요. 나는 이 빚은 갚아줄 생각입니다. 그런데, 하워드. 관리양반은 저 요괴가 어떻게 이 도시에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하워드는 청년의 말에 어리둥절했다.

“그 만월의 밤에 이 도시를 떠난 음유시인과의 관계는 모르겠지만, 저 요괴는 이번 만월의 밤에 이 도시에 들어왔을 거예요. 위대한 방패의 부재 때문이죠. 왜 하필 이곳에 들어왔는지에 대해서는 나도 모르지만 말이에요.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위대한 방패가 이제는 녀석을 이 도시 안에 잡아두고 있어요.”
“위대한 방패가?”
“방패는 쌍방향으로 작용해요. 밖에선 요괴에게 대해-유령에게도-그것은 매우 훌륭한 방패이지만, 그것이 반대의 경우엔 그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감옥이 되기도 해요. 그리고.”

그때 조셉이 들어왔다. 방금 전의 싸움에 간접적으로 나마 영향을 받은 그는 잠이 번쩍 깬 모양이지만, 눈은 여전히 피곤해 보였다. 그는 홍차와 쿠키를 들고 있었다. 하워드는 방으로 들어오기 전 마실 것을 준비하라 일렀다며 청년에게 말했다. 그는 차와 쿠키를 두고는 인사하며 나갔다.

“놀랍게도 놈은 혼자가 아니에요.”
“요괴가 또 있다는 소리요?!” 청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요괴나 유령이 아니라 흑 마술을 부리는 사악한 마술사를 말하는 겁니다.”

흑마술사라는 말에 하워드는 어지러워했다.

“지금 흑마술사라 했소?”

하워드의 기대와 달리 청년은 너무 쉽게 대답했다.

“예, 그리고 저 어린 녀석은 최근에 요괴가 된 이에요. 그렇게 때문에 음유시인의 표식을 못 알아본 거죠. 사실 저 벽에서는 요괴와 유령이 나름의 사회를 형성하고 있어요. 그들을 이루는 것은 그저 영혼이 아닌, 근본적인 생전의 기억의 껍질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에요. 그러면서 그들은 동시에 새로운 신참에게 교육을 하죠. 예. 맞아요. 음유시인의 표식 같은 것 말이에요.”

청년은 목이 탔다. 홍차를 따라 마신 그는 싫은 표정을 지었다.

“기왕이면 시원한 것을 가져올 것이지! …어쨌든 놈은 벽은 구경도 못 해본 녀석이에요. 유령이나 요괴는 된 이는 자연스레 은룡의 속박에 의해 벽으로 강제로 끌려가게 된다는 건 알고 계시지요?”

하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은 그러지 않았어요. 흑마술사가 의도적으로 요괴를 만든 사람일게 뻔하기 때문이죠.” 하워드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도대체 어째서 흑마법사가 개입된다는 거요?!”

청년은 웃었다.

“오늘 녀석에게서 풍기던 그 기운. 시커멓고 사악한 기운 말이에요. 그 흑마술사는 나를 얕잡아 본 게 분명해요. 대놓고 자신의 기운을 드러냈기 때문이죠. -그건 좋지 않은 흑마술의 일종으로 요괴를 조종할 수 있는 마술이에요.- 나는 덕분에 놈을 훤히 알 수 있었지만 머리가 깨지는 줄 알았지요.”

하워드는 청년이 칼자루로 관자놀이를 거칠게 문지르던 모습을 떠올렸다.

“여기서 유추해볼 수 있는 건. 흑마술사는 아이들을 이용해 뭔가 무서운 일을 벌이고 있을 거라는 거예요. 아마 첫 번째 아들의 추종자는 요괴 보다는 그 흑마술사에게 죽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하워드. 관리양반.”  
      

***Adelra-in***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하늘은 여전히 잿빛이었다. 꿈틀거리는 먹구름은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기세다. 청년은 하워드에게 첫 번째 아들의 추종자의 사체를 보고 싶다고 말했다. 하워드는 청년을 공동묘지로 안내했다. 소년은 시청에 남겨둔 채였다. 같이 행동하기 보단 가호 받은 무구의 병사들이 지키는 시청 안에 있는 것이 훨씬 안전했다. 공동묘지엔 경찰들이 사람들의 접근을 철저히 막고 있었다. 사람들은 음유시인이 마을에 오게 되면서 뭔가 일어났다면서 수군거렸다. 경찰들은 하워드를 보자 경례했고 하워드는 가볍게 목례했다. 청년은 하워드가 말한 입 가벼운 무덤지기 제피 영감의 오두막을 안타깝게 쳐다봤다. 그는 어제부터 그곳에 격리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마을에 자신이 본 것을 자랑인양 떠벌리고 다닐 거요.”

그러다 둘은 가호 받은 무구의 병사 둘이 지키는 곳에 도착했다. 그곳은 공동묘지 가장 외곽이었는데 작은 숲이 있었다. 숲의 나무들은 대부분 이상이 없었지만 단 두 그루의 나무만이 쓰러져 있었다. 바닥에는 핏덩이가 가득했다. 청년은 곧장 주위를 훑기 시작했다. 쓰러진 두 그루의 나무부터 바닥에 가득한 핏덩이. 그리고 찢겨져 형체조차 알아 볼 수 없는 첫 번째 아들의 추종자의 사체도. 하워드는 청년이 하는 양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한참이 지나고 청년이 다가와 말했다.

“이곳에서 요괴와 첫 번째 아들의 추종자가 처음 만났어요. 그리고 충돌했는데, 결과야 뻔하지요. 요괴는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힘에 그대로 나가떨어졌지요. 그 결과물이 저 저 나무들이죠. 주위에 몇 개 남아있는 녀석의 털을 보고 알았죠. 그리고 그 뒤에 첫 번째 아들의 추종자는 죽었어요.”
“그게 무슨 소리요?”
“말 그대로. 첫 번째 아들의 추종자는 죽어버렸어요. 그러니까. 바로 이 자리에서 말이죠. 바로 이 자리에서 첫 번째 아들의 추종자가 요괴를 날려버렸는데, 그 직후에 죽어버린 거예요. 이 피가 흩어진 방향을 잘 보세요. 그 뒤로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바로 여기에서 흑마술사의 마술에 첫 번째 아들의 추종자는 꼼짝도 못하게 되고, 그 뒤 요괴가 다가와 그를 한번에 찢어버린 겁니다. 그런데…”

“어째서 첫 번째 아들의 추종자의 목이 보이지 않는 겁니까?”
                                          

***Adelra-in***

선황 아델라인 폐하 곁에는.

잠에서 깬 소년은 청년을 찾았다. 넓은 방에는 소년뿐이었다. 소년은 창가로 다가갔다. 밖은 밤처럼 어두웠다. 창문은 너무 높은 곳에 있어 의자를 끌어와야 열 수 있을 것 같았다. 의자를 끌어와 창문을 열었다. 그러나 금방 닫아야 할 판이다. 순간 번쩍하더니 뒤따르듯 하늘이 으르렁 거렸기 때문이다. 곧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Adelra-in***

여섯 분의 훌륭하신 왕자님이 계셨지요.

청년은 하워드가 권한 파이프를 거절하지 않았다. 소년은 파이프 연기를 싫어했다. 오래간만에 파이프 맛을 본 청년은 후 하고 연기 섞인 숨을 내쉬었다. 하워드의 표정은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가호 받은 무구의 병사들이 철통 같이 지키는 그곳에서 첫 번째 아들의 추종자의 목을 가져가다니!”
“그렇다는 말은 처음부터 없었다는 건 아니라는 말이군요. 하워드. 관리양반.”

청년의 물음에 하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청년은 턱을 쓰다듬었다. 면도 생각이 간절했다.  

“어쩔 수 없군요. 뭔가 석연찮지만 너무 앞서 생각하면 뒤를 된통 당하는 수가 있으니까. 하워드. 관리양반. 하수도의 지도를 보고 싶군요. 지금 바로요. 그리고 성당의 신부님을 만나볼 수 있을까요? 아무 시간대라도 좋습니다.”

하워드는 고개를 저었다.

“음유시인 양반. 하수도의 지도는 가져올 수 있소. 하지만 신부님을 만나는 건 불가능 할 듯싶소. 그 분은 교황 성하의 부름을 받아 교황청으로 떠나셨기 때문이오.”

청년은 하워드의 말에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아니 성하가 일개 신부를 호출했단 말씀인가요?”
“그렇소. 하지만 그 분의 시골 폴리스의 작은 성당의 신부일 뿐이지만 보통 양반은 아니라는 것만은 확실하오. 내가 10 년 전에 이곳 폴리스에 그 분을 뵈었을 때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조금도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오. 마을 시민 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존 영감의 말로는 자신이 조막만한 아이일 적에도 신부님은 그 모습 그대로였다고 하니! 사람들은 선황 아델라인 시대 때부터 산 은룡의 후예의 피 섞인 이라고 하는데 자세한 건 알 수 없지.”

청년은 하워드의 말에 창 밖을 보았다. 빗줄기는 점점 굵어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요. 하워드. 관리양반. 하수도 지도를”

하워드는 말단 관리를 시켜 지도를 가져오게 했다. 하워드의 집무실에는 커다란 테이블이 있었는데. 말단 관리가 가져온 먼지 가득한 그 지도는 테이블을 모두 차지할 정도로 컸다. 청년은 붕 뜬 먼지를 헤치며 기침했다.

“이거 몇 년 동안 펼치지 않은 겁니까?”
“쿨럭, 나도 잘 모르겠소. 그런데 이 지도는 왜 가지고 오라고 한거요?”

청년은 하워드의 말에 대답하지 못하고 한참을 기침을 했다. 겨우 가슴을 진정 시킨 간신히 대답할 수 있었다.

“요괴는 분명 하수도에 있을테니까요. 하워드. 관리 시험을 볼 때 말이죠. 하수도에 관한 문제가 있지 않던가요?”

하워드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수도에 관한 문제는 조금도 본 적이 없었소. 그런데 음유시인 양반이 관리 시험 문제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는 거요?”

청년은 내려놨던 파이프를 입에 물을 뿐 대답하지 않았다.

“가호 받은 성벽이 위대한 방패를 펼치는 데 분명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이 하수도입니다. 하워드 지금 제가 하는 건 이 지도에 아무런 손상을 주는 것이 아니니 걱정하지 마세요.”

청년은 그렇게 말하더니 품에서 잉크통과 깃털 펜을 꺼냈다. 그는 펜에 잉크를 가득 묻혀서는 거침없이 지도에 선을 긋기 시작했다! 하워드는 깜짝 놀라 청년을 보았지만 청년이 걱정하지 말라기에 아무 말도 않고 지켜봤다. 하워드가 이해할 수 없는 선을 하수도를 따라 계속 그리는 작업을 하며 청년이 말했다.

“이 잉크는 특별한 마술을 사용해 만든 잉크입니다. 이 깃털 펜도 마찬가지지요. 다른 잉크보다 더욱더 진하고 선명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지울 수 있는 겁니다. 자 다됐습니다! 하워드. 관리양반. 이게 무엇인 것 같습니까?”

하워드는 청년이 하수도를 따라 그린 선을 보고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건!”

놀랍게도 하수도의 지도엔 거대한 마술진이 그려져 있었다.  

“하워드 관리양반. 위대한 방패를 만들기 위해선 철저한 기초 공사가 필요해요. 이 거대한 마술진이 없다면 위대한 방패를 만드는 건 불가능하지요.”

하워드는 청년을 의심스럽게 쳐다보면서 말했다.

“음유시인 양반. 당신은 나도 알지 못하는 사실을 알고 있소. 당신의 정체는 도대체 무어요?”
청년은 바로 대답했다.

“폴리스를 순례하는 역마살 낀 음유시인 이지요. 하워드. 관리양반.”
  

***Adelra-in***

  그리고….

기분 나쁜 먹구름이다. 라고 소년은 생각했다. 이 구름은 남쪽 먼 바다에서 몰려온 것으로 벽에 막혀 어머니 대지 남쪽에 오래 비가 내리는 때가 있는데, 지금이 그 때인 듯싶었다. 류트의 현이 자꾸 손가락에 걸려서 소년은 인상을 찌푸렸다. 유령의 서글픈 흐느낌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Adelra-in***


“그런데 음유시인 양반?! 음유시인 양반이 가진 칼들은 보통 칼이 아닌 모양이오?!”

빗소리가 너무 커서 소리를 질러야 겨우 들릴 판이다. 더군다나 청년은 무거운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어 잘 안 들렸을 텐데, 금방 대답했다. 그들 뒤로는 28 명의 가호 받은 무구의 병사들이 뒤따르고 있었다.

“보통 칼은 아니지요! 바위의 자식들이 칼을 만들고! 은룡의 후예들이 날을 벼린 것이니까요!”

그 말을 듣고 하워드는 매우 놀란 듯 보였다. 바위의 자식들은 저 깊고 어두운 지하 깊숙한 곳 그들의 도시에서 다시는 나오지 않았으며, 은룡의 후예들은 대륙에서 몸을 감췄기 때문이다. 일행은 세 갈래로 나뉘어졌다. 하수도로 들어가는 입구는 세 개가 있었다. 청년은 10 명씩 세 개 조로 나뉘어 하수도 중앙 광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하워드는 반대하지 않았다.

청년과 하워드는 여덟 명의 가호 받은 무구의 병사들과 함께 움직였는데, 그들은 하수도를 들어가는 것을 굉장히 꺼려하는 것 같았다. 오랫동안 관리 되지 않은 하수도는 냄새가 지독했고, 너무 어두웠다. 아무리 용감한 사람이라도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어둠은 꺼려지기 마련이었다. 청년은 출발하기 직전 각 조의 조장을 불러다 막대기 하나씩을 맡기며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걱정하지 말아요. 내가 주는 이 막대기를 하수도에 들어가는 즉시 각자 벽에 강하게 치세요. 단단하니까 부서지진 않을 겁니다. 그것은 온갖 그림자를 쫓아내는 도구지요. 중요한 것이니까 잃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을 가지고 있으면 요괴도 함부로 다가오지 못할 거예요.”

과연 청년의 신비한 막대기는 효과가 있었다. 충격을 주는 순간 환히 빛나기 시작한 그것덕분에 하수도로 들어서 두려운 기색을 보이는 일행에게 안도감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 빛이 닿아 순식간에 흩어지는 그림자는 무리지어 움직이는 새카만 벌레 때 같았다.

“흑마술사가 분명 무슨 수를 부린 모양이군요. 우리를 바라보는 눈이 보입니다. 저기 통로가 보이는군요.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나요? 너무 커서 이제는 말이 잘 들리지 않을 겁니다. 경계하세요. 이 신비한 막대기가 분명 유령이나 요괴를 쫓아내는 효력이 있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요! 모두 가도록 합시다!”

콰콰콰콰콰. 하수도는 자신의 임무를 잘 수행하고 있었다. 거대한 수로는 계속 내리는 빗물을 끊임없이 어디론가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 소리가 너무 커서 하워드는 청년에게 아무리 소리 쳐도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하워드는 청년을 잡가 귀에 대고 소리쳤다.

“이 길로 가는 게 확실한거요!!”

청년은 말없이 따라 오라고 손짓했다. 그러다 청년은 뭔가를 발견한 듯 한 참을 앞을 응시하다가 뭐라 소리쳤다. 그리고 한참을 가만히 서 있었고, 다시 소리쳤다. 그러나 그 소리는 물 쏟아지는 소리에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다 청년이 갑자기 멈추라고 손짓했다. 여덟 명의 가호 받은 무구의 병사와 하워드는 청년을 주목했다. 청년은 신비한 막대기를 하워드에게 맡기곤 두 자루의 칼을 뽑아들었다. 그 어두운 빛깔의 칼날은 신비한 막대기의 빛을 빨아들이는 듯 했다. 청년은 하워드의 귀에 대고 소리쳤다.

“경계하세요! 아니 먼저 가셔도 됩니다! 나는 놈을 쫓아야 해요!”

그렇게 말한 청년은 주저 없이 하수도 깊은 곳으로 몸을 날렸다. 짙은 그림자는 청년을 순식간에 삼켜버렸다. 하워드도 가호 받은 무구의 병사들도 깜짝 놀라 청년을 따랐지만 청년을 찾을 수는 없었다.


***Adelra-in***


아름다운 공주님이 계셨습니다.


신비한 막대는 하수도 중앙에 가까워질수록 그 빛이 점점 더 강렬해졌다. 하워드는 청년의 말을 기억했다. 사악한 마술의 힘이 강하면 신비한 막대는 그 힘을 억제하기 위해 더 많은 힘을 소비하게 될 것이라고. 깊은 하수도 그림자 너머에서 목숨을 잃은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하워드는 인상을 찌푸렸다.

청년의 호박 빛 눈동자가 어둠 속에서 훤히 빛났다. 하워드와 소년과 대화할 때 볼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의 홍채는 세로로 길게 찢어진 채였고, 그 덕분에 매우 섬뜩해 보였다. 양손에 쥔 두 자루의 칼은 그림자도 빨아들이는 듯 했다. 두 자루의 칼이 낮게 울었다. 청년은 한 줌의 빛도 없는 하수도 안에서 바람과 같이 움직였다. 그 엄청난 물소리 속에서 청년은 목표물의 발자국 소리를 똑똑히 듣고 있었다. 그는 거침없이 내달렸고, 몇 번 그것의 위치를 놓치더라도 이내 흔적을 찾아 추적을 다시 했다.

청년이 걸치고 있는 로브는 몽땅 젖어 무거웠지만 청년은 그것을 벗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니 저 멀리 빛이 드는 통로가 보였다. 놀랍게도 물줄기는 잔잔했으며 주위는 호젓했다.

청년은 눈을 가늘게 뜨며 로브를 벗었다. 물을 잔뜩 머금어 물방울을 뚝뚝 떨어뜨리는 로브를 들고 청년은 몸을 날렸다. 떨어지는 물방울의 간격이 점점 멀어지고 빛이 순식간에 다가왔다. 청년은 빛 속으로 뛰어들었다.

“크롸롸롸!”

끔찍한 울음소리와 함께 날카로운 손톱이 청년을 덮쳤다. 청년은 재빨랐다. 뛰어드는 순간 청년은 몸을 회전하며 로브를 흩뿌렸고 그것은 요괴의 손톱을 옭아맸다. 요괴는 청년까지 통째로 날리려 팔을 젖혔지만 청년은 망토를 쥔 손을 그대로 놓아버렸다. 요괴의 몸이 크게 드러났고, 청년은 그 안으로 파고들었다.

청년의 두 자루의 칼은 과연 신비한 능력을 가진 듯싶었다. 그것을 휘두르는 청년도 만만치 않았다. 불과 십여 초 사이에 스물여덟 개의 기다란 상처가 요괴의 몸에 남았다. 요괴는 그 끔찍한 울음소리를 내며 청년을 그대로 후려치려했다. 그럴 수 없었다. 요괴는 쿵 하는 소리를 내며 주저앉았고 자기 스스로도 이해되지 않는 듯 기이한 표정을 지었다. 청년이 칼에 맺힌 피를 뿌리며 소리쳤다.

“사악한 흑마술사의 더러운 종복! 너 더러운 피를 가진 짐승이 감히 이 몸에 상처 주려했단 말인가! 말해라! 너를 이렇게 만든 사악한 흑마술사가 어디 있는지!”

그 위엄스런 모습은 하워드와 소년의 앞에서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의 표정은 엄숙했으며, 그는 어느 누구보다 당당해 보였다. 요괴는 벌벌 떨며 뒤로 기어가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요괴의 몸은 빳빳하게 굳어 있었다. 칼의 힘이었다. 청년이 소리쳤다.

“말해라!”

청년의 호통에 요괴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저 두려운 눈으로 청년을 응시하고 있을 뿐. 그 우묵하고 커다란 눈동자는 동정심을 일으키는 것이었지만 그것이 향하고 있는 곳은 청년이 아니었다. 청년은 깜짝 놀라 뒤돌아섰다.

그곳에는 검은 로브에 후드를 깊게 눌러쓴 흑마술사가 자신의 키보다 커다란 떡갈나무 지팡이를 들고 서 있었다. 청년은 눈을 가늘게 뜨고 흑마술사를 응시했다.

“음유시인이여, 그만 화를 푸십시오.”

그 낮은 목소리는 힘이 없었다. 청년은 코웃음 쳤다.

“네 놈이었군! 이 더러운 기억의 껍질 덩어리의 눈을 통해 내 아들을 노린 놈이?”

청년은 요괴를 가리키며 흑마술사에게 말했다. 흑마술사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후드를 깊게 눌러써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청년은 으르렁거리며 칼을 흑마술사에게 겨눴다. 요괴의 피를 머금은 묵빛의 칼날은 검은 아지랑이를 피워 올리고 있었다. 그제야 청년은 하수도의 중앙을 살폈다. 중앙에서 빛이 드는 이유는 촛불이 켜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나같이 고급스러워 보이는 초였고, 촛대에 꼽혀 있었다. 촛대들은 광장 중앙에 일정한 형태를 그리며 놓여 있었다. 그것을 살피다 청년은 인상을 찌푸렸다. 사람의 피로 그렸을 것이 분명한 거대한 마술진이 그곳에 펼쳐져 있었다. 각 방위에는 작은 두개골들이 놓여 있었는데 그것들은 모두 열 두개였다.

청년은 이를 갈았다. 그 두개골들은 누가 보아도 어린 아이의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게다가 중앙에 한 사내의 얼굴은 청년도 익히 하는 이의 것이었다. 첫 번째 아들의 추종자. 요티엘의 것이었다. 그의 어렸을 적 모습이 갑자기 스쳐지나갔다. 청년은 분노하며 소리쳤다.

“이 참혹한 마술진으로 무슨 일을 벌이려는 거냐!”

흑마술사는 대답 않고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러자 지팡이에서 매서운 바람이 생겨나 청년에게 몰아쳐갔다. 쉬쉬식 하는 바람소리가 매우 위협적이었다. 청년은 깜짝 놀라 몸을 날려 바람을 피했다. 중앙의 한 구석에 채채챙! 하는 불꽃이 튀며 돌에 무수한 상처가 돋았다. 청년은 얼굴이 하얘져서는 흑마술사를 쳐다봤다. 하지만 흑마술사의 모습은 온데 간데 사라지고 난 뒤였다. 청년은 으르렁거리며 칼을 고쳐 쥐었다. 요괴는 덜덜 떨면서 청년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허공에서 낮은 흑마술사의 목소리가 들린 것은. 청년은 그 목소리를 쫓으려 했지만 그 소리는 하수도의 천장에서. 바닥에서. 그 모든 곳에서 들려왔다. 청년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 목소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청년은 다급해졌다. 요괴는 몸이 완전히 굳어 손가락 까딱 못하는 듯 바닥에 가만히 누워있었다. 청년은 흑마술사 찾기를 포기하고 마술진으로 몸을 날렸다. 그가 벌이는 이 사악한 마술을 중지 시켜야했다. 순간.

파파파파파파팟! 촛대의 촛불들이 꺼지며 하수도 중앙에 깊은 그림자가 덮였다. 청년은 욕지거리를 뱉었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어둠에도 밝은 청년의 눈이 새카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년의 감은 매우 뛰어나서 그는 금방 마술진이 있는 방향을 찾고는 그리로 달렸다.

눈이 어둠에 차차 익숙해지고, 청년은 마술진 앞에 서있는 흑마술사를 보았다. 그의 후드 속은 깊은 어둠으로 가득했다. 청년은 칼을 내질렀다. 흑마술사는 훌쩍 뛰어올랐다. 그의 몸은 거짓말처럼 하늘로 날아올랐고. 청년이 휘두른 옅은 칼바람에 종잇장처럼 뒤로 밀려났다. 그 중에도 흑마술사는 쉬지 않고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 어린 두개골의 주인에게는 미안하나 일단은 흑마술을 중지시키는 것이 먼저였다. 청년은 두개골을 발로 찼다. 휘잉!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찼으나, 어둠에 익숙해진 청년의 눈에 분명 발이 두개골에 닿는 것을 보았으나 정작 발에는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청년은 깜짝 놀라 자신의 발을 보았다. 잿빛 아지랑이-청년은 분명히 그것이 잿빛일거라고 생각했다.-가 허공으로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곧 아이의 얼굴의 모양을 하며 허공을 떠다녔고, 그 입은 끊임없이 저주를 그리고 비명을 토해내고 있었다. 뒤따르듯 11 개의 두개골이 잿빛 아지랑이를 풍기며 저주와 비명을 토해내곤 흩어져 버렸다.

청년은 망연하게 그 모습을 쳐다보다. 흑마술사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마술진 밖으로 물러선 흑마술사의 후드 속은 여전히 깊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표정을 알 수 없었다. 그는 떡갈나무 지팡이를 첫 번째 아들의 추종자 요티엘의 얼굴에 겨누고 있었다. 흑마술사가 말했다.

“무슨 일을 벌이려 하냐고 물으셨습니까?”

그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청년은 으르렁거리며 몸을 날렸다. 그의 검은 칼 두 자루는 곧장 그림자를 가르며 흑마술사의 정수리와 오른팔로 날아들었다. 흑마술사가 낮게 웅얼거렸다. 터엉! 두터운 무언가가 부딪치는 소리가 나며 청년의 칼이 허공과 맞부딪쳤다. 하지만 청년의 칼은 보통 칼이 아니었다. 청년의 칼은 튕겨나지 않고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을 일그러뜨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세상이 곧 물에 비치는 것처럼 일렁거리자 되자 청년은 뭔가 잘못 됐다고 느꼈다. 청년은 깜짝 놀라 마술진을 쳐다보았다. 피로 그려진 마술진이 희미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 중앙에는 요티엘의 머리가 있었다.

“안돼!”

청년은 칼을 거두려 했다. 그러나 그것은 허공에 묶여 움직여지지 않았다. 청년을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이 감싸고 있었다! 흑마술사가 뚜벅뚜벅 걸어와 청년 옆에 섰다. 그럼에도 청년은 아무런 행동을 취할 수 없었다. 흑마술사가 그런 청년의 귓가에 나직이 속삭였다.

“네 아들놈에게 복수하기 위해서야.”
“이 노오오오옴!”

청년의 눈을 부릅뜨며 팔을 휘둘렀다. 쫘자자자작 하는 금이 가는 소리와 함께 청년의 팔 하나가 자유로워졌다. 청년은 그대로 칼을 흑마술사에게 휘둘렀다. 그러나 흑마술사가 훨씬 빨랐다.

딱! 흑마술사가 손가락을 튕기자 폭발이 일어났다. 청년의 칼은 허공으로 튕겨 올랐고, 흑마술사가 곧장 떡갈나무 지팡이를 휘둘렀다. 엄청난 바람이 불어왔다. 그것은 너무나도 손쉽게 청년을 들어올렸고, 벽으로 날려버렸다. 청년은 아무런 저항도 할 수 없었다. 콰앙! 벽에 금이 갈 정도로 세게 벽에 부딪친 청년은 그 충격에 정신을 잃었다.


***Adelra-in***


비가 멈췄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시간이 멈췄다는 게 옳았다. 빗방울들이 허공에 걸려 있었고, 사람들도 시간과 함께 그대로 굳어있었다. 멈춰버린 시간 속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소년뿐이었다. 소년의 눈에 두려움이 떠올랐다. 그때 소년은 무언가를 발견했다. 폴리스의 중앙에서 치솟는 붉은 빛 무리. 그것이 마술진을 그리며 하늘로 떠오르고 있었다. 깜짝 놀라 다가가 자세히 보니 그 가운데 작은 그림자가 보였다. 사람이었다.

그는 커다란 떡갈나무 지팡이를 들고 있었고, 온 몸을 커다란 검은 로브로 가리고 있었다. 소년은 그가 누군지 단번에 알아챘다. 흑마술사가 고개를 돌렸다. 뒤집어쓴 후드 안에는 끝없는 어둠이 있었다. 소년은 그것과 눈이 마주쳤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가 미소 지었다고 느꼈다. 그리고 변화가 생겼다.

마술진이 흩어저 비처럼 내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커다란 원을 그리며 도시 전체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것이 다가올수록 거대한 소리가 느긋하게 소년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매질이 없음에도 그 소리는 분명하게 소년의 귀에 닿았다.

아이들의 울음과 비명소리!

소년은 귀를 움켜쥐며 쓰러졌다. 그 절망에 찬 이들의 목소리는 소년으로선 견디기 힘든것이었다. 소년은 눈물 흘리며 몸을 뒤틀었지만 소용없었다. 귀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소년은 결국 견디지 못하고 정신을 잃었다.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Adelra-in***


아버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청년은 고개를 들었다. 한 아이가 있었다. 검은 머리에 여기저기 찢어진 옷을 입고 있는 아이였다. 청년은 다가가며 나의 아들! 나의 아들! 이라고 외쳤다. 하지만 아이는 바로 앞에서 흩어져 사라져 버렸다.

아버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청년은 고개를 돌렸다. 한 아이가 있었다. 검은 머리에 여기저기 찢어진 옷을 입고 있는 아이였다. 아이의 왼쪽 눈이 텅 비어있었다. 그곳에서는 끊임없이 피가 흐르고 있었다. 청년이 다가가며 나의 아들! 나의 아들! 이라고 외쳤다. 하지만 아이는 바로 앞에서 흩어져 사라져 버렸다.

아버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청년은 고개를 돌렸다. 한 아이가 있었다. 검은 머리에 여기저기 찢어진 옷을 입고 있는 아이였다. 아이의 양쪽 눈은 텅 비어있었다. 그곳에서 흐르는 피가 옷을 적셔 빨갛게 만들고 있었다. 청년이 다가가며 나의 아들! 나의 아들! 이라고 외쳤다. 하지만 아이는 바로 앞에서 흩어져 사라져 버렸다.

아버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청년은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아이가 보였다. 텅 빈 눈으로 아이가 피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유령이 보여요. 아버지. 유령이 보여요. 아버지. 청년이 눈물을 흘리며 외쳤다. 오! 나의 아들! 나의 아들! 청년은 아이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아이는 흩어져 사라져 버렸다. 청년은 주저앉았다. 자신은 너무나도 무력했다.

폐하. 저 멀리 한 중년의 사내가 보였다. 검은 띠로 눈을 가리고 있었고, 검은 로브에 후드까지 걸치고 있었다. 청년은 커다란 강철 왕좌에 앉아 있었다. 아, 잠시 졸은 모양이었다. 청년은 웃는 얼굴로 중년의 사내를 맞았다.

“어서 오라. 나의 첫 번째 아들이여.”


***Adelra-in***


청년은 눈을 떴다. 어두웠다. 한 줌의 빛도 없이 무거운 그림자가 가득 가라앉아 있는 곳. 청년은 이곳이 어딘지 혼란스러웠다. 그러다 요괴의 낮은 울음소리를 듣고는 이곳이 하수도의 중앙이라는 것을 기억해냈다. 자신은 흑마술사의 마술에 의해 호되게 내팽개쳐졌고, 정신을 잃었다는 것 역시.

청년은 몸을 일으켰다. 무시무시한 두통이 몰려왔다. 청년은 부들부들 떨면서 고통이 가실 때 까지 가만히 있었다. 금간 벽에 몸을 기대고 숨을 몇 번 몰아쉰 그는 주위를 둘러봤다. 요괴는 쓰러진 채 손가락도 까딱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역한 유황냄새에 청년은 인상을 찌푸렸다. 쓰러진 촛대들. 그리고 뿌옇게 재가 되어 일어난 마술진이 보였다. 흑마술사의 마술을 막지 못했다.

청년은 기었다. 검은 아지랑이를 피우면서 낮게 울고 있는 칼을 집었다. 몸을 일으켰다. 다리에 힘이 없었다. 칼을 허리춤에 꽂아 넣고 느린 걸음으로 마술진으로 다가갔다. 유황냄새 풍기는, 재가 되어 일어난 마술진은 마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증거였다. 옅은 손바람에도 흩어질 것 같은 그 마술진을 청년은 차근차근 살펴보았다. 12개의 두개골 아래 놓였던 문자들을 하나하나 기억하고, 마지막으로 중앙에 첫 번째 아들의 추종자의 얼굴이 있던 곳의…. 청년은 잠시 생각을 멈췄다. 그리고 자신이 꾼 꿈의 아련함에 몸을 떨었다.


***Adelra-in***


요괴는 눈물 흘릴 수 없다. 청년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청년은 하워드에게 파이프를 달라고 했다. 파이프를 입에 문 청년은 익숙하게 담배를 풀어 불을 붙였다. 사람들은 눈물 흘리는 요괴에게 저주의 말을 쏟아냈다. 가호 받은 무구의 병사들은 커다란 수레에 요괴를 실은 채 길을 걷고 있었다. 청년이 하워드에게 물었다.

“눈물 흘리는 요괴를 본 적이 있습니까? 하워드. 관리양반?”
“지금 보고 있소.”

청년과 하워드는 걸었다. 청년이 말했다.

“힘든 전투였습니다. 하워드. 관리양반.”
“당신은 우리의 영웅이요. 우리 폴리스가 몇 달 동안 알지 못한 살인자의 정체를 알아냈으며, 비록 어린 요괴라지만 많은 상처를 입으며 요괴를 혼자서 제압했으니 말이오!”
“그런데 폴리스에 정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청년의 물음에 하워드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사람들을 가리켰다. 그들은 요괴와 함께 걸어오면서 많은 시민들에게 도시에 특별한 무언가가 일어났는지 물어보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했다. 청년은 의심스러워했고 하워드는 안심했다. 그때 왠 사람이 급하게 다가왔다. 죠셉이었다. 죠셉은 수레에 실려 가는 요괴를 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청년은 굳은 표정으로 그를 맞았다. 죠셉이 말했다.

“귀족 나리 큰일 났습니다.”
청년은 말하라 했다.
“도련님이 정신을 잃고 쓰러졌습니다요!”

하워드도 청년도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청년은 요괴를 바라보았다. 요괴는 끊임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청년은 시청으로 달렸다. 요괴를 향한 사람들의 저주의 말들이 귓가를 스쳤다. 시청 안은 조용했다. 청년은 곧장 방으로 올라갔다. 소년은 침대에 누워있었고 곁에는 의사로 보이는 사람이 있었다. 청년이 다급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떻습니까? 의사 양반?”
“귀에서 피가 났어요. 다행히 고막은 터지지 않았군요. 왜 갑자기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충분히 휴식을 취하면 괜찮을 겁니다. 잠이 오는 풀의 즙을 짠 차를 마시게 했어요. 지금은 편안한 상태니 걱정 안하셔도 될겁니다.”

귀에서 피가 났다는 말에 청년은 괴이한 표정을 지었다. 의사가 일어섰고 청년은 인사했다. 의사가 나간 뒤 청년은 소년에게 다가가 머리를 쓸어주었다. 얼마 뒤 하워드가 들어왔다. 그가 말하길 요괴는 3 교대의 가호 받는 무구의 병사들에게 감시 받게 되었고, 사람들은 요괴의 화형을 요구했다고 한다. 흑마술사의 행방은 묘연했으나, 직접적으로 아이들을 살해한 요괴가 잡혀 이 폴리스의 고위 관료는 안심하는 듯 보였다.

“흑마술사는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잖소?”
“하지만 나는 조사해야합니다. 그리고 하워드 관리양반. 나는 아직 폴리스 나와 나의 아들에게 추방 결정을 내렸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어요. 게다가 저 요괴는 내가 잡았어요. 아무리 폴리스 내에서 일어난 끔찍한 사건의 주범이라 하더라도 놈을 내가 잡은 이상 그것을 한번이라도 조사할 권리가 내게 있지 않겠습니까?”

하워드는 납득했다. 청년은 하워드에게 흑마술사와 만난 것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하워드는 얼마 뒤 방을 나갔다. 창밖으로 비가 내렸다. 밤이 다가오고 있었다. 청년은 곤히 자는 소년의 머리를 쓸어줬다. 그리고 흑마술사가 한 말을 되뇌었다. 네 아들에게 복사하기 위해서야. 네 아들에게 복수하기 위해서야. 눈이 침침했다. 청년은 죠셉에게 진한 블랙커피와 간단한 요기거리를 가져와 줄 것을 부탁했다. 커피로 피곤을 달래고 샌드위치를 집어먹으며 청년은 생각했다.

흑마술사의 마술은 성공했다. 청년은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폴리스에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수도를 빠져나와서 청년이 가장 먼저 확인한 것은 위대한 방패의 존재 여부였다. 위대한 방패는 건제했다. 아니다. 청년은 고개를 저었다. 방패도 중요하지만 흑마술사는 어째서 자신을 죽이지 않았을가? 그리고 어째서 요괴를 데려가지 않은 걸까? 청년은 머리가 혼란스러워 욕지거리를 씹어뱉었다. 푹신한 소파에 몸을 묻고 있던 청년은 곧 잠들었다.

잠시 주춤하는가 싶더니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창밖은 이제 완전한 밤 그림자에 덮여 있었다. 어두컴컴한 방. 얼마 지나지 않아 소년이 깨어났다. 소년은 지금이 밤이라는 것에 놀랐다. 램프 불을 켰다. 그리고 청년이 방 안에 있다는 것에 안도했고 침대가 아닌 소파에서 자는 것을 보곤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소년은 청년에게 다가갔다. 맞은 편 소파에 앉아 남은 샌드위치를 집어들은 소년은 잠꼬대 하는 자신의 아버지를 보며 웃었다.

번개가 쳤다. 위태롭게 깜빡이는 램프 불처럼 방 안의 그림자를 스치듯 걷어낸 번개는 곧 무시무시한 천둥소리를 끌어왔다. 꽈르르릉. 아이들의 절규어린 울부짖음. 소년은 두려운 표정을 지었다. 비처럼 내리는 붉은 마술진과 멈춰진 세계. 흑마술사의 미소와 아이들의 울부짖음. 소년은 눈물을 흘렸다. 천둥소리에 청년이 잠에서 깼다. 소년이 눈을 훔치며 말했다.

“잘 주무셨어요?”

그 끔찍한 목소리! 흔들리는 램프 불에 비치는 소년의 얼굴은 어두워 보였다. 청년은 미소 지었다. 그는 소년의 목소리p 익숙했다.

“네가 자는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니?”
“흑마술사를 봤어요.”

소년의 말에 청년은 두려운 표정을 지었다. 흑마술사가 자신에게 한 말을 기억했기 때문이다. 소년은 청년을 기다리던 중 도시에 일어난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멈춰진 시간. 고정된 빗방울. 모든 사람들이 멈춰있었지만 자신만은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말에 청년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창 밖 마을 중앙에서 커다란 붉은 마술진과 비처럼 흩어지는 것. 그리고 흑마술사를 이야기 할 때 마다 청년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그리고 아이들의 울부짖음이 다가왔어요. 원을 그리며 점점 넓게. 점점 커졌죠. 그 소리는 보이는 소리였어요, 그것이 다가오는 동안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죠. 나를 덮쳤고 순간이지만 그들의 공포와 절규와 한숨 그 밖의 모든 절망적인 소리를 들었어요. 그것들은 나의 머리에서 끊임없이 메아리쳤고 나는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어요. 그 뒤 정신을 잃었죠.”

청년은 흑마술사의 마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몰랐다. 그 소리는 소년에게만 영향을 준 듯 했다. 청년은 나름대로 흑마술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오늘과 같은 마술은 듣도 보도 못한 것이었다. 청년은 생각하기를 관뒀다. 흑마술사의 말이 걸렸지만 자신의 아들이 현재 안전하다는 것에 그는 감사했다. 청년이 말했다.

“요괴를 붙잡았다.”
“그 피부가 하얀 어린 녀석을?”
“그래. 눈물을 흘리는 녀석이었지. 도시 사람들은 그 요괴를 화형하길 원하고 있다. 그들의 분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녀석의 껍질을 벗겨낼 생각이다. 말했다 싶이 녀석은 눈물을 흘렸으니까.”

청년의 말에 소년은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날 날이 밝아지자마자 청년은 소년을 데리고 하워드의 집무실로 향했다. 노크를 했다. 들어오라는 말에 안으로 들어갔다. 하워드는 괴물 같은 책상에 앉아 있었다. 밀린 업무를 보던 중인 모양인 듯 보고 잇던 서류철들을 내려놓으며 그가 몸을 일으켰다.

“아들이 건강한 것 같아 다행이오.”

하워드는 말하며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소년은 싫지 않은 기색이었다. 하워드는 둘에게 소파를 권하고 차를 들겠냐고 물었다. 청년은 거절했다. 청년은 바로 본론을 꺼냈다. 오늘 하루 동안 요괴를 조사하겠다고, 그 작업에는 소년도 함께할 것임을. 하워드는 고민했다. 곧 그가 말했다.

“음유시인 양반 조건이 있소.”
“무엇이든 말씀하십시오. 하워드. 관리양반.”
“참관인을 같이 보내겠소. 비록 음유시인 양반이 놈을 사로잡는데 큰 기여를 했지만 놈은 12명의 아이를 난도질해 죽인 지독한 살인마라는 것은 변하지 않으니까 말이요! 우리 폴리스의 관료는 그 창백한 놈과 관련된 ldf이라면 어디든 함께 해야 한다는 걸 음유시인 양반은 잘 알아둬야 할 것이오!”

청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소년은 하워드의 천둥 같은 목소리에 주눅든 것 같이 보였다. 창밖의 하늘은 빛을 많이 되찾은 모습이었다. 하워드는 오래간만의 햇빛을 즐기다가 몸을 일으켰다. 하워드가 물었다.

“뭔가 더 할 말이 있소?”
“이런 말 드리기 미안합니다. 하워드 관리양반.”

하워드는 의아한 표정으로 청년을 보았다. 청년이 바로 말했다.

“굳이 참관인을 붙인다면 하워드 관리양반이 함게 해주셨으면 합니다.”
“특별한 이유라도 있소?”

청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워드는 잠시 생각하다 몸을 일으켰다. 그는 일단 걷자고 했다. 소년은 청년 곁에 바짝 붙어 걸었다. 요괴를 가둔 감옥은 시청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었다. 하워드는 감옥으로 향하면서 청년에게 다시 물었다.

“무엇 때문에 그렇소? 음유시인 양반?”
“어제 내가 눈물 흘리는 요괴를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하워드. 관리양반.”

하워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놈은 눈물을 흘렸어요. 놈은 요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워드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말이요? 음유시인 양반? 음유시인 양반이 더 잘 알 것 아니오?! 사람을 단숨에 찢어발길 수 있는 그 무시무시한 힘은? 놈은 저 우악스런 힘과 내 몸뚱이만한 손바닥으로 12명의 아이들을 찢어발겼소! 그리고 첫 번째 아들의 추종자를 죽였지! 그런데도 놈이 요괴가 아니라고 할 거요? 말해보시오! 음유시인 양반!”

청년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놈이 요괴가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어요. 하워드. 관리양반. 그리고 잊어서는 안됩니다. 아이들을 살해한 건 요괴가 분명하지만 그 요괴를 수족처럼 부린 것은 흑마술사라는 것을. 도착했군요.”

청년의 말에 소년은 감옥을 보았다. 감옥이라고는 하나 그럴 듯한 외관을 한 깨끗한 건물이었다. 다른 점이라면 굉장히 커다란 문을 가지고 있다는 점과 무장 경찰이 하루 3 교대로 24 시간 감시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하워드와 청년을 요괴에게 안내한 것은 경찰이 아닌 가호 받은 무구의 병사들이었다.

"요괴와 유령을 그나마 상대할 수 있는 건 이들 뿐이니 당연한 것 아니겠소?“

감옥 내부는 넓었고 청결했다. 경찰 몇 명이 보였다. 요괴가 있는 동안에는 소수의 경찰만이 남고 모두 가호 받은 무구의 병사들로 교체되었다. 하워드는 그들의 경례를 넘기며 요괴를 가두어 둔 곳으로 청년과 소년을 안내했다. 그곳은 지하실이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요괴가 걸어가도 될 만큼 넓고 높았다.

그곳에는 가호 받은 무구의 병사가 요괴에게 창을 겨눈 채 석상처럼 서있었다. 요괴의 팔 다리는 가호 받은 창에 꿰뚫려 벽에 고정되어 있었다. 요괴의 눈은 초점 없이 흐리멍덩했다. 그 끔찍한 모습에 소년은 인상을 찌푸렸다. 청년이 말했다.

“부탁합니다. 하워드. 가호 받은 무구의 병사들을 물러주세요.”

하워드는 병사들을 물렀다. 그리고 자신이 부르기 전 까지는 아무도 이곳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청년은 감사해했다. 하워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청년이 말했다.

“이 녀석은 흑마술에 의해 강제적으로 요괴가 됐어요. 그 뒤에 어떤 마술을 썼는지는 모르지만 그로 인해 녀석은 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죠. 게다가 놈은 눈물을 흘렸어요. 요괴는 눈물을 흘릴 수 없습니다. 유령이 아이를 죽일 수 없는 것과 같이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예. 이 요괴에겐 아직 인간이 남아있습니다. 제 예상으론 놈은 흑마술사와 모종의 계약을 맺은 거 같습니다. 저는 그것을 확인하려는 겁니다. 하워드. 관리양반. 그게 사실이라면 이 요괴 역시 피해자이니까요!”

청년은 그렇게 말하며 두 자루의 칼을 뽑았다. 소년이 품에서 류트를 꺼냈다. 요괴가 고개를 들었다. 요괴의 우묵하고 커다란 눈이 소년과 마주쳤다. 12명의 아이를 죽인 괴물의 눈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맑고 깨끗하다. 그 안에서 소년은 가라앉은 감정들을 발견했다. 청년이 눈을 감았고 소년이 류트를 퉁겼다.


***Adelra-in***


그 멜로디는 무어라고 할까. 아름다운 소리였다. 몇 가닥의 현으로 이런 멜로디가 탄생할 수 있는 것에. 깊은 곳에서부터 샘솟는 이 벅찬 감동에 요괴는 눈물 흘리고 있었다. 청년의 두 자루의 칼에서 검은 아지랑이가 피어올랐다. 그것은 점점 더 진해졌고 그 여운이 길게 남았다. 청년이 눈을 떴다. 청년의 눈동자는 예전 하수도의 그것과 같이 길게 찢어진 홍채를 가진. 짐승의 눈을 하고 있었다. 청년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청년의 춤은 아리아족의 춤과 비슷해 보였다. 동작 하나하나가 그렇게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가 없었다.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 없었다. 소년의 고사리 같은 손에서 만들어지는 멜로디와 그 춤은 잘 어울려 하워드는 커다란 감동을 느꼈다. 그런데 하워드는 청년이 단순히 춤만 추고 있다는 게 아니란 걸 알았다. 칼에서 피어오른 검은 아지랑이가 어떤 모습을 띄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커다란 원안의 수사학적 도형의 집합이었으며 수많은 단어의 나열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뚜렷해지는 그 모습을 보며 하워드는 왠지 모를 두려움을 느꼈다. 이것은 마술인가? 마술이라면 흑마술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확실히 청년은 단순한 음유시인이라고 보기에는 알고 있는 것이 너무 많았다. 자신도 모르고 있던 위대한 방패의 근원을 알고 있지 않았는가!

그때 소년의 연주가 끝났고 청년의 춤도 끝났다. 청년의 앞에는 검은색의 마술진이 펼쳐져 있었다. 그것은 꿈틀거렸으며 금방이라도 흩어질 것 같았지만 허공에 그대로 걸려 있었다. 하워드는 청년에게 지금 무슨 일을 벌이는 거라 물으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청년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하워드는 청년의 목소리를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분명 남자의 목소리였으나 여성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목소리가 이렇게 바뀔 수 있다니! 하지만 하워드가 놀란 점은 청년의 목소리가 아닌 청년이 사용하고 있는 신비한 말 때문이었다.

하워드는 이 신비한 효력을 가진 말을 오베루스 시장의 견습 관리 시절에 들은 적이 있었다. 갑작스런 출동 명령에 경찰들과 함께 현장에 급파되었을 때였다. 유령의 목소리가 들린다면서 끊임없이 비명 지르는 어린 아이의 입에서 쏟아졌던 언어였다. 분위기는 달랐지만 분명 같은 언어였다. 악마가 속삭이는 듯 조용하고 나직하게 울리는 그 목소리는. 목소리가 아니라 하나의 악기의 소리같이 들린다. 그것이 소년의 연주와 섞여 묘한 소리를 낸다. 청년이 사용하고 사용하는 언어는 밤과 눈 마주친 이들의 말이었다.


***Adelra-in***


청년의 노래에 마술진이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하워드는 그 괴기스러운 모습에 표정을 일그러졌다. 꿈틀거리는 마술진은 천천히 요괴에게 다가가더니 엉겨 붙기 시작한 것이다! 요괴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청년의 노래는 계속됐다. 엉겨 붙은 마술진은 처음에는 꿈틀거리며 요괴의 몸을 옮기다 온전히 모습을 되찾았다. 마술진은 요괴의 배꼽을 중심으로 커다랗게 펼쳐져 있었다. 청년의 노래가 끝났다.


***Adelra-in***


“음유시인 양반. 당신은 밤과 눈 마주친 이요?”

하워드의 물음에 청년은 고개를 저었다.

“우연한 기회를 얻어 그들의 언어를 배울 수 있게 된 사람입니다.”
“그들의 언어는 오직 그들의 것으로 그들만이 말하고 사용할 수 있다고 알고 있소.”

청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오직 그들만의 언어이며 배울 수 없는 언어지요. 하지만 누구나 배울 수 있는 언어이기도 합니다. 아니 이미 알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겠군요. 우리는 태어나기 이전부터 이 언어를 알고 있으니 말입니다.”

청년은 그렇게 말하며 요괴에게 시선을 돌렸다. 요괴는 매우 편안해 보였다. 소년은 멍하니 그런 요괴를 쳐다보고 있었다. 흰 피부에 새겨진 검은 마술진은 잘 어울려 보였다. 하워드가 물었다.

“그런데 음유시인 양반이 펼쳐 놓은 저것은 흑마술이요?”
“아닙니다. 하워드. 관리양반.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그것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나는 마술에 대해서는 잘 아는 사람이지만 마술을 직접 부릴 줄은 몰라요. 저것은. 그러니까 작은 제단을 만든 거라고 보는 것이 옳겠습니다.”

하워드는 매우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 말은 마치 음유시인 양반이 영혼 장례를 한다는 듯이 들리오.”
“맞습니다. 하워드. 관리양반. 나는 영혼 장례를 시도하고 있어요.”

청년의 말에 하워드가 버럭 소리쳤다.

“분명 방금 전에 음유시인 양반은 밤과 눈 마주친 이가 아니라고 하지 않았소! 영혼 장례는 오직 밤과 눈 마주친 이들! 그러니까 첫 번째 아들과 그의 추종자들만이 가능한 것으로 나는 알고 있소!”

소년이 두려운 얼굴로 하워드를 쳐다보았다.

“음유시인 양반. 당신의 정체가 도대체 무어요? 나는 당신이 평범한 음유시인으로는 생각할 수 없소. 사라진 바위의 자식들과 은룡의 후예들이 벼린 두 자루의 칼을 가진 음유시인이라니! 흑마술사의 마술을 꿰뚫어보고 폴리스의 위대한 가호 받은 방패의 비밀을 알고 있는 음유시인이라니! 게다가 이제는 영혼을 장례하여 어머니께 보내려하는 음유시인 이라니!!”

청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워드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영혼 장례를 하면 유령과 요괴는 가이아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알고 있소. 음유시인 양반은 이 요괴를 그대로 가이아의 품으로 되돌려 보내기 위해 나를 참관인을 한거요?”

하워드의 물음에 청년이 볼을 긁적였다.

“에,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하워드. 관리양반. 나는 이놈의 껍데기만 벗길 생각이거든요. 그러니 잠자코 보고 계시지요.”

청년은 그렇게 말하더니 칼을 뽑아들었다. 피어오르던 검은 아지랑이는 칼날 안에 갈무리된 것 같았다. 청년이 요괴에게 다가갔다. 요괴가 고개를 들었다. 그 커다랗고 우묵한 눈동자가 청년의 호박빛 눈동자와 마주쳤다. 소년은 가만히 둘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요괴는 가만히 청년의 눈을 바라볼 뿐이었다. 소년이 마른침을 삼켰다. 하워드는 불안하게 청년을 쳐다보았다. 그의 오른손은 허리춤의 총을 단단히 쥐고 있었다. 언제든지 뽑아들 수 있도록. 청년이 요괴에게 칼을 겨눴다. 포인트는 요괴의 배꼽을 가리키고 있었다. 청년이 요괴에게 다가갔고 칼로 요괴의 배를 찔렀다.

“끄어어어어어어어어어!!”
“음유시인 양반!”

하워드가 외쳤고 요괴가 비명을 질렀다. 그 천둥 같은 소리라니! 건물이 흔들리는 것만 같다. 요괴의 비명에 가호 받은 무구의 병사들이 창을 앞세워 내려왔다. 하지만 그들을 반기는 건 발광하는 요괴가 아니었다. 하워드는 부들부들 떨며 청년을 지켜보았다. 요괴의 몸에 엉겨 붙은 마술진이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청년이 칼로 요괴의 배꼽. 마술진의 정중앙을 찌르면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마술진이 빛날수록 요괴가 더 크게 비명을 질렀고 이윽고 요괴의 몸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균열이 가더니 그 안에서 빛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 빛이 너무나도 밝아 청년의 모습은 일찌감치 보이지 않게 되었다. 백열(白熱)된 세계. 그리고 엄청난 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지하실에서, 그것도 요괴의 몸으로부터 뿜어지는 바람이었다. 하워드가 소리쳤다.

“뭣들 하느냐! 음유시인 양반을 구해라!”

하지만 가호 받은 병사들은 앞으로 전진 할 수 없었다. 그 엄청난 바람도 바람이었지만 너무나도 밝은 빛 때문에 방향을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워드가 걸쭉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소년은 그 엄청난 빛과 바람이 몰아침에도 아무렇지 않은 듯 요괴가 있는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빛이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바람도 멎기 시작했다. 청년의 목소리가 언뜻 들렸다. 바람이 멎어감에 따라 그 소리는 점점 크게 들렸다. 그것은 욕지거리였다. 젠장! 젠장! 젠장! 의원을 당장 의원을 불러! 청년은 벽에 박힌 가호 받은 창을 뽑아내고 있었다. 창은 우악스런 요괴의 팔을 꿰뚫고 있지 않았다. 거기엔…. 하워드가 청년을 부르며 다가갔다. 가호 받은 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너무 밝은 빛에 시야가 흐릿하다. 청년이 보였다. 청년은 남은 가호 받은 창 하나를 뽑아낸 참이었다. 그곳에 요괴는 어디에도 없었다.

“음유시인 양반!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요! 요괴는 어디로 간 거요?!”
“하워드! 어서 이 자를 옮기도록 해요! 의원을! 의원을 부르란 말입니다!”

그렇게 외치는 청년은 벌거벗은 젊은 사내를 안고 있었다.

“그 자가…? 뭐하고 있는 거냐! 당장 옮기고 의원을 불러라!”

하워드가 상황을 파악하고는 가호 받은 무구의 병사들에게 외쳤다. 가호 받은 무구의 병사들이 사내를 안고 급히 밖으로 나갔다. 지하 석실에는 하워드와 청년 그리고 소년만이 남게 되었다. 청년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하워드가 청년에게 다가와 물었다.

“저 자가 정말 그 요괴인거요?! 음유시인 양반? 그런 거요?”

청년이 말하지 않았다. 하워드가 청년을 붙잡고 소리쳤다.  

“대답을 해보시오!” 하워드의 호통에 청년이 담담히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하워드. 관리양반. 그래요. 방금 그 사람이 요괴입니다. 제기랄.”

청년이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에는 고통스러움이 역력했다. 소년의 눈은 깊게 가라앉아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요괴가 있던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청년은 말하기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청년이 말했다. 그리고 하워드는 절망스런 표정을 지었다.

“…흑마술사는 살아있는 인간을 요괴로 만들었던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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