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학교건물 뒤편 시멘트벽돌 담벼락에 유령빌라지의 입구가 나있었다. 세상에나! 보고서도 믿을 수 없었다. 입구는 참기름을 발라놓은 듯 번드르르한 기와지붕과 소나무기둥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속은 밤하늘처럼 캄캄했다. 하지만 아주 좁고 낮고 작았다. 꼭 개구멍 같았다.

   “이렇게 좁은 곳을 들어갈 수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몸이 쪼그라드는 것만 같았다.

   “아냐. 유령빌라지 입구는 몸에 맞게 줄었다 늘어났다가 가능해.” 용희가 설명했다.

   그런데 입구에서 한 여자가 밖으로 나왔다. 끝단이 다 갈가리 찢어지고 해진 누리끼리한 드레스를 입고 나무젓가락 같이 생긴 볼품없는 비녀로 쪽을 졌는데, 얼굴 전체가 푸르스름했고 턱은 각이 졌고, 눈은 댕그란데다 그 주위가 움푹 들어갔고, 콧대 뼈가 앙상하게 튀어나와있고 입술은 바싹 말라붙어 살짝만 스쳐도 낙엽처럼 바스라질것 같았다. 여자가 나를 가만히 응시하더니 갑자기 눈알을 뒤집으며 뭐라 뭐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꽤 소름이 끼치는 모습이었다. 여자의 푸르스름한 눈동자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녀는 우리가 있는 쪽으로 스르르 날아왔다. 그녀가 병구와 용희를 번갈아가며 물었다. 눈동자가 보통 속도보다 빠르게 움직였다.

   얘들아. 저 여자애 꼭 우리 보고 있는 것 같지 않니?”

   용희가 대답했다. “맞아요. 볼 수 있어요.”

   여자는 숨이 곧 넘어갈 듯 입을 벌리곤 내 곁에 다가왔다. 가까이서 보니 눈두덩에 꼭 시금치를 올려놓은 듯 시퍼렜다.

   “잡귀신도 없는데?” 여자가 용희와 날 휙휙 번갈아보며 물었다.

   “쟤 들을 수도 있어요.” 용희가 말했다.

   여자는 또 한 번 실성한 듯 눈을 뒤집었다.

   “맙소사! 그게 정말이니? 내 이름은 반실성이란다.”

   반실성이 반 씨라는 성을 강조한 다음 실성이란 이름을 말하는 바람에 용희의 웃음보가 터졌다. 병구도 웃음을 꾹 참으려 애를 썼다. 그녀는 그의 웃음에 아랑곳 않고 마치 구연동화를 읽는 듯 가식적인 목소리로 물었다. “이름이 뭐니?”

   이리안이에요.”

   “어머! 이름도 특이하네?”

   용희는 그녀의 말에 눈물을 훔치며 깔깔거리고 웃었다. 반실성은 그러든지 말든지 흡족한 표정으로 날 위아래로 훑어보며 주위를 빙그르르 돌았다. 그런데 좀 전부터 병구의 표정이 심상치 않게 변했다. 그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나는 흠칫 놀라며 뒤로 물러섰는데 그가 반실성에게 대뜸 날 선 어조로 물었다. “뭐하는 거죠?”

   반실성은 거의 다 빠져 몇 가닥 남지 않은 둥그런 눈썹을 치켜뜨며 귓구멍에 새끼손톱을 집어넣고 빙글빙글 돌리며 딱딱거렸다. “넌 뭔데 끼어드니? 절로 가봐. 나는 얘한테만 관심이 있거든.” 그녀는 손가락에 묻은 귀지를 후후 털고서 내게 씩 미소지어보였다.

   무슨 수작이에요!”병구가 바락 고함쳤다.

  반실성이 미간을 찌푸렸다. “어디서 시꺼먼 콩자반 같은 게 소릴 질러!”

   “아줌마 같은 유령 뻔해!”

   그 말에 반실성이 내 눈길을 슬금슬금 피하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무슨 말이야?” 내가 물었다.

   병구가 흥분하여 콧구멍까지 벌렁벌렁 거리며 대답했다. “너한테 빙의하려고 수작부리는 거야. 어둠을 피할 수 있는 장소 중 살아있는 사람의 몸이 제일이니까! 빙의령들은 아주 비겁하고 더러운 족속들이야!” 병구는 화가 나서 손을 바들바들 떨었고 붉게 달아올라있었다.

   빙의령이 뭐야?” 내가 물었다.

   용희가 설명했다. “살아있는 사람의 영혼을 밀어내고 죽은 영혼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게 빙의야. 빙의가 되고나면 육신은 살아있지만 자신의 영혼은 점점 죽어가. 빈껍데기에 불과해진다고. 빙의령은 어둠이랑 다를 바가 없어. 아주 못된 것들이지.” 그가 소리쳤다. “어디 당신이 대답해 보시지!”

   반실성은 콧방귀를 뿍뿍 뀌다가 반문했다. “너희들도 알잖아. 빙의가 어디 쉬운 거니? 하루아침에 되는 거냐고?”

   “그러니까 친해지려고 수작부리는 거잖아!”

   나는 병구가 과민반응을 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반실성의 음침한 표정을 보면 그럴 수 있겠단 생각도 들었다.

   반실성이 입술을 삐죽거리다 말했다. “빙의가 탐나는 몸이긴 하지만…….” 그녀가 내 몸을 뚫어지듯 쳐다보았다.

   “것 봐!” 병구가 모든 속셈을 다 밝혀냈다는 듯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하지만!” 반실성이 상을 찌푸리며 그보다 더 큰 소리로 외쳤다.

   모두가 그녀에게 집중했다.

   “내 예언 때문이야.” 반실성이 나직이 말했다. 그래도 그녀의 목소리는 괴상했다.

   “예언요?” 내가 물었다.

   반실성이 고개를 살짝 쳐들고서 답했다. “오래전부터 난 예언을 했어. 좀 전에 널 보자마자 입에서 예언이 터져 나왔지. 이건 나도 주체할 수 없는 능력이야. 내 의지로 하는 게 아니니까!”

   “예언을 할 수 있으면서 그렇게 일찍 죽었어요?” 용희가 못미더운 어조로 물었다. 그의 얼굴에 웃음기가 싹 가셨다.

   “안타깝게도 나에 대한 예언은 할 수가 없어. 아까도 말했잖니. 내 의지로 하는 게 아니라고. 덧붙여 설명하자면 내 예언은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어. 99.9퍼센트가 아니라 100퍼센트지. 노스트라다무스도 내 예언에 비하면 아주 하찮은 실력이야. 그 노인네 1999년에 종말이 올 거라고 했잖아? 멍청한 노인네지. 그 노인네는 제 똥이 언제 나올까도 못 맞출 노인네야.” 반실성이 콧방귀를 뀌었는데 콧물이 쭉 튀어나왔다. 그녀가 다시 코를 들이마시며 푸르스름한 눈동자로 우릴 번갈아보았다.

   예언의 내용이 궁금했다. 저렇게 자신만만한 걸 보니 수작을 부리는 건 아닌 것 같았다. 반실성이 게슴츠레 눈을 뜨고서 날 보았다.

   “어때? 궁금하니?” 거래를 협상할 때 구미가 당기냐는 듯한 어조로 물었다.

   “가르쳐주면요?” 내가 물었다.

   “내가 따라다니는 걸 허락하기만 하면 돼.” 아주 간단하다는 느낌으로 답했다.

   “안 돼!” 병구가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

   “단지 따라다니는 것뿐인데? 아니면 그냥 알고 지내는 건? 그냥 알고 지내는 것뿐인데? 그 정도도 안 되니?” 그녀가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 나오는 미친 토끼 같은 표정으로 물었다.

   나는 병구의 눈치를 살폈다. 용희도 병구를 뚫어져라 보았다. 병구가 그녀를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만약에 우릴 속인다면 그 땐 어둠의 아가리 속으로 아줌말 밀어 넣어버릴 거예요.”

   반실성이 가소로워했다. “오호호! 무서워라.”

   내가 말했다. “말해보세요.” 병구에게 속삭였다. “진정해. 빙의 따위 되지 않을 테니까!”

   반실성이 목청을 가다듬더니 듣기 거북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하얀 것 중 하얀 것은 흰 눈이라네,

  하지만 흰 눈은 도화지를 부러워한다네.

  흰 눈 위엔 연필심은 소용없으니까.

  까만 연필은 너의 마음을 대변한다네.

  조물주는 너에게 도화지랑 연필을 선물하셨네.

  그려보면 모든 걸 알게 되리라!

 

   음정 따위는 다 무시한 노래였다. 만약 그녀의 노래를 오선지 위에 그린다면 음표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다가 질겁하여 휙 나가버릴 것 같은 음정이었다. 반실성의 열창이 끝나고 모두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뭘 더 기대하느냐는 표정으로 우릴 번갈아보았다.

   끝이야.” 그녀가 제 어깨를 들썩이며 말했다.

   “뭐라고요?” 병구가 소리를 바락 질렀다.

   반실성이 인중과 턱에 잔뜩 힘을 주고서 맞받아쳤다. “쪼그만 게! 자꾸 소릴 지르고 난리야!”

   병구가 고갤 저으며 내게 말했다. “빙의하려는 수작이야. 저런 유령은 절대…….”

   반실성이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꼭 내 예언이 아니라도 나랑 같이 다니면 너희에게 이익이 될 거야. 유령빌라지 N115에 있는 유령들은 내가 거의 다 아니까. 이 빌라지는 규모가 꽤 크다고.”

   하늘은 어느새 어둑어둑해졌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저녁 여덟시 정각에 학교경비원이 순찰을 돌고는 정문을 걸어 잠갔다. 내가 말했다. “그렇다면 늦었어. 곧 이쪽으로 경비아저씨가 올 거야. 지금 집으로 돌아가야 해. 여기서 얼쩡거리면 아저씨가 날 혼낼 거야. 그의 눈엔 너희들이 안 보일 테니까.”

   모두가 다른 심정으로 날 실망스럽게 바라보았다.

   내일 아침 일찍 오는 거야. 그리고…….” 내가 말꼬리를 흐리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부르고 싶은 데로 부르렴.”

   용희가 히죽거렸다. 반실성의 이름이 아직도 적응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나는 최대한 무뚝뚝한 어조로 말했다. “반실성 씨는 내일 여기서 만나요.”

   반실성은 조금 더 친근한 칭호를 기대했던 모양이었는지 입 가장자리를 늘어뜨리며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병구는 여전히 그녀를 못마땅하게 노려보았고, 용희는 아쉬운 듯 유령빌라지 입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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