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끝도 없이 펼쳐진 하얀 설원 위에서 눈을 떴다. 위로는 하얀색에 가까운 푸른 하늘이 있었지만 그 어디에도 태양은 없었다. 하지만 여름의 화창한 대낮보다도 더 밝고 환했다. 어디서부터 빛이 뿜어져 나오는 거지?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람은커녕 개미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티끌조차 찾아볼 수 없었는데, 어쩌면 내 존재가 티끌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계속해서 걸었다. 그렇게 걸어도 난 여전히 끝도 없는 설원 한복판에 서있었다. 설마 죽은 건가? 덜컥 겁이 났다. 나는 무작정 달렸다. 그런데 내가 지나온 길 위로 시꺼먼 무언가가 따라오고 있었다. 내가 멈추면 그 것도 멈췄는데, 꼭 어둠 같았다. 나는 이리저리 도망치며 숨을 곳을 찾았지만 그 어디에도 그럴 만한 곳은 없었다. 나는 더 빨리 달렸다. 다리가 뭉치고 온몸이 땀으로 축축하게 젖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고 속에서 비릿한 피 냄새가 올라왔다.

   그런데 갑자기 알 수 없는 엄청난 힘이 나를 붙드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나는 하늘 위로 솟구쳤다. 마치 인형 뽑기 오락기계 속의 인형처럼 말이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나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나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의 까마득한 높이에 다다랐다.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설원이 한 눈에 내려다보였는데(그렇게 올라왔는데도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 위에 어둠에 잡아먹히고 있는 병구아버지의 고통스런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별안간 병구아버지가 날 잡으려 손을 뻗었고 그 동시에 나는 추락했다.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할 때 허공을 가르며 느끼게 되는 그 엄청난 공기와 아찔한 느낌에 나는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바닥과 내 머리가 쿵 소리를 내고 부딪치려는 그 순간!

   -! 나는 숨을 몰아 내쉬며 벌떡 일어나 앉았다. 꿈이었다. 온몸이 식은땀 범벅이었고 허벅지와 종아리에 난 상처가 쓰라렸다. 나는 다시 한 번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오른발 바로 아래에 병구가 앉아있었다. 눈곱으로 뻑뻑해진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았다. 병구가 맞았다.

   “병구야!”

   보름 만이었다. 그의 얼굴이 초췌하게 보였다. 유령도 그렇게 눈이 퉁퉁 부을 수 있을 줄이야.

   병구가 대끔 물었다. “무슨 꿈을 꿨는데? 악몽이었어?”

   “너 그 동안 어디에 있었니?”내가 질책하듯 물었다.

   “어딘지는 나도 몰라. 아파트 벽 속에 숨어 있었어. 유령들은 종종 그러고 있어. 그들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손등으로 훔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 괜찮니?” 내가 물었다.

   “괜찮을 리 없잖아.” 그가 날카롭게 대꾸했다.

   나는 뭐라고 위로해야할 지 막막했다. 그가 화제를 돌렸다. “무슨 꿈을 꾼 거야? 힘들어 하던데…….” 아침햇살이 방안으로 가득 퍼져들었다.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별 꿈 아니야.”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곤 시선을 돌렸다. 나는 곁눈질로 그를 살폈다.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아버지 일은 유감이야.”

   그는 고개를 끄덕끄덕 했다. 또 침묵이 맴돌았다. 일이 분 후 병구가 침묵을 깼다. “편지는 어쨌어?”

   “보관하고 있어.”  나는 책상 서랍을 가리켰다.

   “그거 버려.” 그는 내가 가리킨 곳은 보지도 않은 채 창으로 들어오는 햇볕만 응시하고서 덤덤하게 말했다.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 아버지를 구할 방법은 없을까?”

   “구한다고?” 그가 언짢은 듯 반문하곤 코웃음을 쳤다.

   그를 언짢게 할 의도로 물었던 건 아니었기에 조금은 속상했다.

   “제기랄! 그럴 방법은 없어. 아버지는 절대…….”

   그는 어금니 쪽에 붙어있는 근육이 불룩 설 정도로 이를 꽉 깨물었다. 눈물이든 콧물이든 뭐든 참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그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바락바락 화를 내었다. “어둠에 잡아먹혔다가 돌아온 영혼은 한 명도 없어! 지금쯤 그 더러운 내장이 소화를 다 시켰을 거야! 빌어먹을! 어둠은 그만큼 무서운 존재라고!”

   병구는 울분을 참지 못하고 소리죽여 울었다. 그는 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는지 벽속으로 들어갔다. 통곡이 훌쩍임으로, 훌쩍임이 다시 통곡으로 변하는 과정은 아침부터 밤까지 이어졌다.

   나는 전혀 잘 수 없었다. 하지만 병구가 너무나도 가여웠다.

   “그러다 너 정말 죽겠어.” 나는 침대에 누운 채 벽을 보고서 말했다.

   벽 속에서 그가 말했다. “난 이미 죽었어.” 기운이 다 빠진 목소리였는데 흐느낌이 차츰 줄어들고 약간 코웃음 소리가 났다. 내 말이 웃겼던 모양이었다.

   갑자기 그가 벽에서 나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달처럼 둥그런 가로등 불빛을 응시했다. 얼마동안 그렇게 있다가 비장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복수하고 말 거야!”

   그 커다랗고 날카로운 이빨로 마치 돼지다리를 게걸스럽게 뜯어먹듯 영혼을 먹어치우는 그 끔찍한 괴물에게 복수할 방법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 광경을 본 내가 비명을 지르지 않고 오줌을 지리지 않은 게 대단할 정도였으니까.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떻게? 방법은 있어?”

병구가 활활 타는 듯한 눈으로 날 보며 말했다. “찾아낼 거야.” 결의에 찬 모습이었다. 그가 이어 말했다. “고마워.”

   나는 얼떨떨하게 반문했다. “내가 뭘?”

   그가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네가 없었다면 곧장 심판을 받았을 거야. 그런데 네가 날 볼 수 있다는 게 큰 힘이 되었어. 우리 산장에 놀러와 줘서 고마워. 그리고 정말…… 모든 게 다 해결되면 그 때 널 보러올게.”

   작별의 말이었다. 예상치 못했던 병구의 말에 나는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버렸다.

   “오래 걸릴 거야. 복수하려면. 어쩌면 100년은 여기에 더 머물러야할 지도 몰라.......” 그가 말을 잇지 못하고 망설였다. 창 밖에서 자동차가 빵- 하고 경적을 울리며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와 동시에 병구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널 알아서 다행이야.”

   그는 내가 못 들었을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나는 똑똑히 들었다.

   “잘 지내.” 그가 코 아래를 검지로 쓱쓱 문지르며 말했고 모습을 감췄다.

   갑자기 병구와 작별하려니 가슴이 찡 해졌다. 지금 병구와 작별하면 난 영영 그를 보지 못할 것만 같았다.

   병구야!”

   모습을 감추었던 병구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창으로 막 나가려던 참이었다. 나는 서랍에서 편지를 꺼내 그에게 보였다. 그리고 말했다.   “이 편지를 적을 때부터 나도 네 일에 발을 들여놓은 거야. 나도 어둠을 없애는데 도울게. 널 도울게!”

   병구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턱에 맺혔다가 똑 떨어지는 눈물이 반짝거리며 하늘 위로 날아갔다. 그가 코를 닦으며 마치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씩 웃었다.

   우리는 밤이 새도록 이야기를 나눴다. 죽은 동물들에게도 혼이 있는데 말을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에 오랫동안 머무르지 않는다고 했다. 이유는 그들이 인간보다 본능에 충실하기 때문이라 했다. 여러 들짐승들이 저한테 말을 많이 걸었다고 했는데, 그 중에 병구는 처음 본 산토끼가 제일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했다. 산토끼 한 마리가 죽은 자신을 보고는 자기인 줄 모르고 구애를 했다고 했다. ‘! 아가씨. 그렇게 처량하게 누워있지만 말고 날 좀 봐요.’ 병구는 토끼 목소리를 흉내 냈는데 아주 촐싹거리는 허풍쟁이가 굵직한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하는 그런 목소리였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많다는 말은 정말 사실이었다.

   문득 병구아버지가 왜 병구처럼 또렷하게 보이지 않았던 건지 궁금해졌다. 내가 진지하게 물었다. “너희 아빤 너처럼 그렇게 또렷하게 보이지 않고 희미하던데 그건 왜 그런 거야?”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유령들은 그래. 불안정한 기류 같은 상태지. 나도 그랬어. 마치 아지랑이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었지.”

   어느 순간부터 피곤이 몰려왔다. 벌써 새벽 5시였다. 창문으로 어슴푸레 여명이 비쳐들었다. 신문배달부가 오토바이를 멈춰 세우고 신문을 던지는 소리가 들렸다. 병구가 하품을 하는 모습에 다행이란 생각을 하다가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잠이 들었다.

   해가 중천에 떴을 무렵 나는 기지개를 켜고 일어났다. 병구는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려 천장으로 솟아올랐다가 짓궂은 미소를 보이며 아래로 내려왔다. 그의 두 뺨이 증발하는 눈물로 반짝였다.

   목말라. 물 마셔야겠다.”

   나는 잘못 들은 건가 싶어 물었다. “물을 마신다고?”

   병구가 손가락으로 뭔가를 그리더니 후, 하고 불었다. 그러자 물이 가득 찬 컵이 허공에 나타났다.

   “유령은 실체가 없는 존재긴 하지만 똑같이 고통을 느끼고 기쁨을 느끼고 배고픔을 느끼고 갈증을 느껴. 이 물도 살아있는 사람들에겐 적용되지 않는 거지만 우리 같은 유령에겐 통하지. 이렇게 내가 원하는 것을 그리고 기운을 불어넣으면 나타나.”

   병구가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가 조금 더 경쾌한 목소리로 덧붙여 설명했다. “…… 어렸을 때 스케치북에 좋아하는 거 아무 거나 그려서 가위로 오리고 보면 이게 진짜였음 얼마나 좋을까, 하고 그런 생각 많이 하잖아? 난 어렸을 때 경찰차보면서 많이 그랬거든.”

   난 팔찌.”

   병구가 뭔가를 또 그리곤 입을 모아 후 하고 불었다. 그러자 진주빛깔과 에메랄드빛깔의 아주 작은 조약돌모양의 보석을 꿴 팔찌가 허공에 둥둥 떠다녔다. 병구가 팔찌를 내 손목에 채워주었지만 여지없이 통과해버렸다. 병구가 톡 건드리자 팔찌가 사라졌다. 나는 아쉬워하며 팔찌가 사라진 손목만 만져댔다. 병구가 빈 컵을 발아래에 두고 밟았다. 그러자 컵이 팡 하는 아주 작은 소리를 내면서 사라졌다.

   다른 유령이 만든 건 이렇게 쉽게 사라지게 하긴 힘들어. 각자의 혼을 불어넣었기 때문이지. 그러니까 다른 유령이 만든 건 쉽게 없앨 수 없단 말이야. 음식은 좀 달라. 음식은 먹을 수 있는 거니까. 음식을 만들 땐 그 음식에 들어가는 재료를 다 생각해서 만들지. 나는 잘 못 만들어. 기껏 만들어봐야 계란후라이정도?”

   그럼 컵을 먹어서 없앨 순 있니?”

   병구가 콧방귀를 뀌며 대답했다. “컵을 먹는다고? 물론 먹을 순 있겠지. 하지만 그게 무슨 맛이겠어? 그건 살아있는 사람이 플라스틱 컵을 녹여서 먹는 거라 똑같다고 생각하면 돼. 한마디로 못 먹는다는 말이야. 그건 그렇고…….”

   그건 그렇고?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를 바라보았다.

   “유령들이 모여 있는 동네가 있어. 유령빌라지라고 해. 거기서 어둠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지도 몰라. ……넌 유령을 볼 수 있으니까 거기에다 내가 만든 것도 다 볼 수 있으니까 분명 그 동네도 볼 수 있을 거야.”

   유령들이 모여 있는 동네라니! 머릿속에 팍 떠오르는 그림은 공동묘지였다. 나는 머리를 흔들며 방금 떠오른 그 그림을 지웠다. 이 세상 어느 누가 유령들이 모여지내는 동네를 볼 수 있을까. 나는 어둠에 관한 정보를 얻기 위해 간다고 하는 건데도 흥분되는 마음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그가 말끝을 흘렸다.

   “하지만?”

   나도 거긴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어. 줄곧 아버지 곁에 있었으니까.” 병구가 우울하게 말했다.

   “그럼, 넌 어떻게 그걸 아는 거야?”

   “유령친구가 한 명 있어.”

   “유령친구?”

   “. 죽었을 때 나이가 너랑 똑같을 거야. 떠돌아다니고 있어. 세계에 있는 모든 유령빌라지에 다 가보는 게 목표래. 다 이룰 때까지 심판을 미루고 있어.”

   어떻게 만났는데?”

   “천둥 피하려다 산장에 들어왔대.”

   “천둥?”

   “그래. 천둥소리 엄청나잖아.”

   바깥에서 계란장수가 확성기에 대고 계란을 판다고 외쳤다. 그가 계란장수를 따라했다. “우리도 천둥소리에 놀라. 듣는데 문제없는 거 알잖아. 저 계란장수 소리도 들려. 계란 사세요. 계란. 싱싱한 계란, 굵은 계란 굵고 싱싱한…….”

   그래. 다 들을 수 있는 거 알아.”

   내가 나무라자 병구가 피식 웃고는 이어 말했다. “그 친구를 부를 생각이야. 나하곤 비교도 안 되게 유령빌라지에 대해 잘 아니까 말이야. 나 혼자서 유령빌라지를 찾으라고 하면 못 찾아. 지도나 약도 없이 한 번도 안 가본 곳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잖아?”

   그가 동의해달라는 듯 미간을 치켜뜨고 날 바라보았다.

   “길은 물으면 되잖아. 다른 유령들한테.”

   “맞아. 하지만…… 그 친구가 필요하기도 해. 그가 있으면 더 큰 힘이 될 테니까.”

   “그 친구를 찾는 게 더 어려운 일 아니야?”

   병구가 그 말을 할 줄 짐작했다는 냥 활짝 웃곤 답했다. “맞아. 그냥 찾으라면 절대 못 찾지. 그런데 놀랍겠지만 우린 찾을 수 있어.”

   그가 또 내 표정을 살폈다.

   “뜸들이지 말고 설명해봐.”

   “전화번호는 같은 번호가 있을 수 없잖아?”

   “그래. 고유번호지.”

   “우리한테도 그런 고유번호 같은 게 있어. 보면 좀 놀랄 걸?”

   그가 그렇게 말하곤 오른쪽 발목을 보여주었다. 발등과 발목이 만나는 지점에 아주 작은 일곱 개의 금빛숫자가 문신처럼 찍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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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으니까 이런 게 생기더라. 우리 짐작엔 심판대기 순번인 것 같아. 아무튼 서로의 고유번호를 기억하면 만날 수 있어.”

   그가 전화기를 만들었다. 우체통처럼 붉은 전화기였다. 버튼을 누르는 전화기가 아니라 구멍이 뚫린 둥근 판에다 손가락을 넣고 빙빙 돌리는 옛날전화기였다. 병구가 1이 찍힌 구멍에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1915218

   나는 몸통을 분리시키는 마술을 보는 것보다 가슴이 더 팔딱팔딱 뛰었다.

   “이렇게 걸면 그쪽에서도 전화기를 만들어. 받기 싫으면 전화를 안 만들면 되고.” 그가 수화기를 귀에 가져다대며 말했다.

   “전화벨 소리는?”

   “번호가 찍힌 부위가 막 진동해. 꽤 간지러워.”

   나는 딸깍하는 소리에 몸을 곧추세우고 집중했다. 전화가 걸린 모양이었다.

   “지금 어디야?”병구가 물었다.

   나는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잘 들리진 않았지만 남자 목소리였다. 병구가 수화기 너머의 친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병구가 수화기를 막고 내게 말했다. “오클라호마에서 열 시간 전에 출발해서 지금은 태평양바다 위래.”

   오클라호마? 태평양바다 위?!

   병구는 다시 친구와 통화했다. “여기로 와줘.”

   무슨 대답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병구가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응, , 하고 대답했다. 그리곤 다시 말을 이었다. “오면 다 설명할게. 그래. 있다 보자.”

   그가 전화를 끊었다.

   내가 윙윙 달려드는 벌처럼 물었다. “거기서 여기까지 날아와? 태평양을 지나서?”

   “아니. 그렇게 먼 거리면 유령들도 사람들이 타는 비행기를 타고 다녀. 한마디로 무임승차지. 예전엔 날아다녔어. 물론 사람들이 걷고 말을 탔던 것보단 빨랐겠지만. 순간이동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진 않아. 여기까지 오는데 두 시간 정도는 더 걸릴 거래. 기다리자.”

   물론.”

   똑똑. 노크소리에 병구가 벽 속으로 휙 숨었고, 나는 책상에 앉아 반쯤 읽다만 노인과 바다를 후딱 집어 들었다. 그리고 중간 부분을 휙 펼치고서 네, 하고 대답했다.

   엄마가 사과랑 딸기 한 접시와 무선전화기를 가지고 방으로 들어왔다. “책 읽고 있었니?”

   “.”

   “잠깐 시간 좀 내줄래? 너랑 상의할게 있어서 말이야…….”

   나는 책을 덮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가 침대에 앉았다.

   “말씀하세요.”

   엄마가 걱정스런 눈길로 날 바라보았다. “사실…… 네 건강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계속 미뤘는데, 네 학업문제 때문에…… 엄마랑 아빠랑 고민을 하고 있단다. 이제 눈이 다시보이니 고등학교 입학 준비를 차근차근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검정고시로 중학교과정까지 패스한 다음에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방법도 있거든.”

   난 공부를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학교에 가고 싶지 않은 건 아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경청했다.

   “무슨 생각이 있으면 언제든지 엄마한테 말하렴. 줄곧 말했었지만 네가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마.”

   “. 그럴게요.”

   엄마가 쟁반을 내려놓고 나가려다 무선전화기를 책상 위에 두면서 말했다. “아참! 네 친구가 전화했었단다. 너 씻고 있을 때 전화 왔었어.”

   “누군데요?”

   엄마가 앞치마 주머니에서 메모지를 꺼냈다. “마여임이라고 말하면 알 거라는 구나. 여기 전화번호.”

   메모지에 전화번호와 마여임이란 이름이 적혀있었다. 정말 반가웠다. 사고 이후 단 한 번도 그녀의 소식을 들은 적이 없었다. 엄마가 밖으로 나가고, 나는 전화를 걸었다. 버튼을 하나씩 누를 때마다 심장박동수가 올라갔다. 신호음이 다섯 번 정도 울리고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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