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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네크로포비아 _ 12

2014.05.23 20:1805.23

바스락, 바스락. 몸을 일으켜 세우자 유리가루가 떨어져 내렸다. 바닥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아직 시야가 잔뜩 흐렸다. 흐릿하게 보이는 사물들을 붙잡기 위해서 두 눈을 슥슥 비볐다. 이제야 주위 풍경이 제대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돌아온 것이다. 다급히 주변을 살폈다. 허리 근처에서 해골의 머리가 뒹굴 거리고 있었다.

“돌아왔소? 아가씨? 어떻게 된 거요?”

그 질문에 답해 줄 마음이 들지 않았다. 반가움과 그 반가움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마음이 정면으로 충돌했다. 그냥 조용히 해골을 집어 들어올렸다. 그와 눈을 맞추었다.

“거울 속으로 들어간 지 5분도 안 되었을 거요. 돌아 온 걸 보아하니 사람을 죽이거나 한 것 같지는 않군.”

해골은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아가씨가 그런 일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소. 하지만 이렇게 돌아올 줄은 몰랐는걸.”

“돌아 올 수밖에 없었어요.”

짤막하게 답해 주고는 시선을 피했다. 알 수 없는 부끄러움이 이 해골과 눈을 마주칠 수 없게 만들었다. 해골이 아래턱을 대록대록 굴리며 의아해했지만 더 이상 신경을 쓰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높은 의자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소년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그를 향해 말을 걸었다.

“당신이 한 일이 아니죠?”

소년은 가만히 나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눈동자에는 생기가 없었다. 그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재미없는 결론이야. 이제 당신이 궁금해 하는 것 따위 없을 테니, 나와 있어봐야 시간낭비일 뿐이겠지. 당신은 돌아갈 수 있었어. 하지만 그걸 선택하지는 않았군.”

손아 귀속에서 해골이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아직 궁금한 게 더 있어요.”

소년이 조금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양쪽 어깨를 들어 올린 다음 어깨에 힘을 풀어 의자에 푹 눌러 앉았다. 마치 무엇이라도 물어보라는 것 같았다.

“당신이 진실을 말하는 쌍둥이군요?”

“쓸모없는 질문이군. 하지만 대답하지 않을 이유도 없지.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것은 바로 너의 진실. 저 거북이가 실제로 거북이이건 도마뱀이건, 나는 너희들이 생각하는 주관성을 그대로 투영해서 말해줄 뿐이야. 나는 그저 커다란 거울에 불과하니까.”

슥, 하고 거북이가 내 발치로 다가와 섰다. 깜짝 놀랐다. 있는 줄도 몰랐었는데. 그 거북이가 웬일인지 침착하게 말을 들으려 하고 있었다. 그가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렴. 나는 확실한 거북이요. 이쪽으로 살기로 결심했으니까.”

“하지만 네 딸은 결코 거북이가 될 수 없지. 그녀는 도마뱀으로 살아가기고 결정했으니까. 그리고 토끼와 사랑에 빠졌고 그것이야말로 흠 없는 진실이며 거울에 비친 그대로의 모습.”

거북이는 무언가 생각에 빠진 듯 한 모습이 되었다. 소년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을 이었다.

“이 세상에 모든 자들로부터 통용될 수 있는 진실 같은 것이 존재하다면 나는 아무런 필요가 없어지겠지. 모두에게는 모두의 진실이 있어. 나는 그것을 비추어주는 것일 뿐이야. 마치 이 거울들처럼.”

소년의 주변에 거울이 빙글빙글 돌았다. 해골이 내 손아귀 아래에서 무어라 말하기 시작했다.

“당신 형제한테 간 토끼는 어떻게 되었소?”

나도 궁금하던 참이었다. 거북이도 눈동자를 초롱초롱 빛내며 소년을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동안의 정적이 흘렀다. 소년의 미간에 얼음장 같은 냉기가 떠올랐다.

“말 하는 것 보단 보여 주는 게 좋을 것 같군. 오른쪽 벽을 보도록 해.”

모두의 시선이 우측 벽의 거울로 향하자 소년이 손가락을 딱 튕겼다. 싸악- 하고 거울 전체에 서리가 끼었다가, 한순간에 투명해졌다. 우리는 모두 눈을 때지 못한 체, 거울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다음 순간, 거울에 비치고 있는 것은 우리들의 모습이 아니었다. 우리는 두 귀를 쫙 펼치고 쌍둥이 소년 앞에 선 토끼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가 느릿느릿하고 똑똑한 목소리로 말을 하고 있었다.

“자 진실을 말해줘요. 그녀와 내가 얼마나 뜨겁게 사랑했는지. 그 모든 것들이 진실 되고 충실했음을 증명해줘요.”

거울속의 소년은 한쪽 입술을 들어 올리며 웃었다. 그는 무척이나 하찮은 것을 보는 듯 한 눈빛으로 토끼를 내려다보았다. 우리들은 저 삼월 토끼가 뒷발로 귀를 북북 긁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다음 순간 들려온 싸늘한 목소리는 우리들 모두의 숨을 한순간 멈추게 만들었다.

“무슨 미친 소리예요. 당신이 그 여자를 온 몸으로 깔아뭉갰잖아. 싫다고 하는 걸 억지로 강요하고 따르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협박하고. 불쌍한 거북이 아가씨. 그저 밤을 즐기고 있었을 뿐이었던 귀한 아가씨를 당신이 범하고 더럽혔잖아? 그런 입에서 사랑을 말하다니.”

토끼가 얼어붙은 것처럼 동작을 멈추었다. 그는 무척이나 더듬거렸다.

“그, 그럴 리가. 분명 그 아가씨는 나를 사랑한다고, 우린 서로 사랑해서...”

“웃기는 소리 말아요. 꿈이라도 꾼 것 아닌가요? 당신의 사랑은 거짓이야. 사랑과는 유사한 점이 전혀 없지. 그 더러운 입술에 그런 말을 담지 말아요. 당신의 눈에는 더러운 것만 보이고, 당신의 위장 속에는 온통 더러운 것들 밖에 없지. 그런 당신이.”

하하하, 소년이 미친 듯이 웃었다.

“그 아가씨를 사랑한다고? 이게 웃기는 이야기가 아닌가요?”

“그렇지 않아!”

소년이 인상을 잔뜩 흐렸다.

“그렇지 않다고 부정할 거라면 애초에 나를 찾아온 이유가 뭐죠? 나는 진실만을 말해요. 건너편의 내 거짓말쟁이 형제와는 다르지요. 어차피 속으로 당신이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부정하다니 이해할 수 없군요.”

소년이 빙그레 웃었다. 토끼가 양쪽 귀를 바르르 떨었다.

“이제 어떡할 거죠? 내가 만약 당신이라면 부끄러워서 살 수가 없을 것 같군요. 사랑의 이름으로 그런 되먹지 못한 짓을 저지르다니. 거기에 당신은 그녀에게 애까지 가지게 해 놓고선 그 책임이 무서워서 도망쳤지요. 저라면 말입니다.”

소년이 손가락을 비볐다. 그 끝에서 작은 유리조각이 솟아올랐다. 유리조각이 허공을 천천히 날다가 토끼의 발치에 툭 떨어졌다.

“불쾌한 짓을 저지르고도 감히 세상의 아름다운 것을 본 두 눈을 파버렸겠지요.”

토끼가 온 몸을 바들바들 떨며 유리조각을 쥐었다. 무언가가 탁 막힌 것처럼 가슴이 아파왔다.

안 돼. 하지 마. 제발. 누군가 말려줘.

“지금 뭐 하는 거요! 어서 저 미친 짓거릴 멈추게 해!!”

해골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우리 쪽 소년이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이미 벌어진 일을 보여주고만 있을 뿐. 어차피 시간에 맞았다고 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우리 둘은 서로 참견하지 않으니까.”

“그게 무슨 멍청한...!”

푸욱.

토끼는 기다려 주지 않았다. 그가 기다란 유리조각으로 두 눈알을 파내는 것을 우리는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붉은 피가 사방의 거울에 비치며 분수처럼 뿜어져나갔다. 토기가 밀려왔다. 입가를 움켜쥐고 허리를 숙였다. 더는 보고 싶지 않았다. 토끼가 무시무시한 비명을 질렀다.

하하하하, 소년이 웃고 있었다.

“그렇지, 그렇지요. 그리고 저라면 그녀에게 무시무시한 말을 하고, 수시로 거짓말을 내뱉었던 더러운 입도 그대로 놔둘 것 같지 않군요.”

토끼가 발작하듯 뛰어오르는 소리가 났다. 나는 저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무엇인가가 살을 찢는 소리와 함께 엄청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만. 그만해!! 저놈이 죄를 지었지만 저 정도로...!”

거북이가 발을 동동 굴렀다. 나는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살짝 눈을 떴다. 토끼가 자기 손으로 자신의 입을 찢어버리고 있었다. 길고 긴 비명이 울렸다. 현기증이 치밀었다. 미친 듯이 웃어대던 소년이 입가를 슥 닦고는 피범벅이 되어 쓰러진 토끼에게 말을 건넸다.

“이제 어쩐다. 보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당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딱 한명이 생각나긴 하는데.”

그가 웃으며 턱을 쓰다듬었다.

“당신 같은 반쪽이를 원하는 사람은 없겠죠. 하지만 여왕이라면 당신을 받아줄는지도 모르지. 그녀는 근처에 있는 누군가가 쓸모없는 것을 보거나 이상한 것을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거든. 자. 어서 가버려요. 저는 당신이 필요 없어요. 당신은 아무짝에도 쓸 모 없는 죽은 토끼니까. 내 궁전에는 필요 없다고요.”

휙휙. 소년이 팔을 내저었다. 토끼가 비틀거리며 일어나더니,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 순간 보았다.

그 파인 눈구멍을. 아무것도 없는.

속이 비어서 그 뒤의 검붉은 무엇인가가 그대로 비추는.

볼 끝까지 찢어진 입이 섬뜩하게 미소 짓는.

 

무시무시한 기억이 떠오르고야 말았다. 토끼는 비틀거리며 들어왔던 통로를 향해 돌아서기 시작했다. 나는 무의식중에 거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았다. 다시금 서리가 차 오른 거울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고, 이내 맑아졌지만 저편의 모습이 보이지는 않았다.

“이건... 이건 너무 심하군. 도대체 당신 형제는 어떻게 된 사람이오!”

해골이 커다란 목소리로 외쳤다. 소년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나는 몰라. 우린 그저 스스로 하고 싶은 데로 할 뿐이니까.”

거북이가 안절부절 못하며 내 주변을 배회하고 있었다.

“이걸 바란 게 아니었어, 이런 걸 바란 게 아니었다고. 내 잘못이 아니야. 그래. 이봐. 너!!”

거북이의 손가락이 소년에게로 향했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 진실을 말해! 저놈은 멍청해서 속았을 뿐이야! 내가 저 놈을 저렇게 만든 건 아니라고!”

소년은 거북이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저 거북이를 더 이상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무거운 고통 같은 것이 느껴졌다. 이윽고 소년이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

“네가 토끼를 저렇게 되도록 만든 것은 아니야. 하지만 저 토끼가 멍청해서 죽은 것은 아니지. 그는 고귀하고 명예를 아는 미칠 정도로 열정적인 토끼일 뿐이니까.”

소년은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속았지. 속았을 뿐이야. 진실은 우리의 말 속에 있는 것이 아닐지도 몰라. 어쩌면 우리가 말하는 진실과 거짓은 모두 아무런 의미가 없을지도. 신이라면 알 고 있을 어떠한 진실이 있다고 해도 우리가 그것에 접근할 방법은 절대로 없을 테니까.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어떠한 자그마한 사실들만이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진실.”

거북이가 멍한 얼굴로 소년을 마주 응시했다.

“그 놈을 찾아야겠어. 어디로 갔는지 말해.”

“그 토끼는 귀가 가려운 쪽으로 갔어.”

“내가 그놈 귀를 간지럽힌 것도 아닌데 그렇게 말한다고 알아먹을 것 같은가?”

소년은 마치 대단히 이상한 것을 보는 표정으로 거북이를 내려 보았다. 그는 나지막이 답했다.

“그 토끼를 찾아야겠다면서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겠다는 거야? 우스워. 우스워.”

소년은 하나도 웃지 않는 표정으로 우습다고 말했다. 거북이는 끄응 하고 고개를 숙이며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도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아마도 저 토끼가 갈 수 있는 곳은 하나뿐이다. 그는 쌍둥이 소년의 거짓말에 스스로 눈과 입을 상처 입혔다. 그리고 무시무시한 말들로 토끼를 자해하게 만든 소년은 마지막으로 토끼에게 어디론가로 가라고 말하고 있었지. 나는 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입으로 내뱉었다.

“여왕.”

“여왕이군.”

해골과 이구동성으로 내뱉었다. 아무래도 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었나보다. 나는 해골을 들어 올려 눈높이를 맞추었다.

“같은 것을 생각했네요.”

“바보가 아니라면 모두 같은 것을 생각했을 거요. 아가씨. 그보다 궁금한 것이 있소.”

“뭐죠?”

해골은 나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그렇게 돌아가고 싶어 하던 고향이었는데. 별로 섭섭해 하는 것 같지 않군. 사람을 죽이지 않은 것은 칭찬할 만한 일이지만.”

“당신 때문에요.”

스쳐가듯이 말했다. 해골이 아래턱을 쩍 벌리며 벙찐 얼굴을 하였다. 아니, 표정을 표현할 피부 따위 없으니 실제로 그런 표정을 지은 건 아니었지만 내게는 왠지 그렇게 보였다. 해골이 할 말을 잃은 듯, 멍하게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무래도 무언가 설명을 하지 않고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상황인 것 같았다. 나는 별 수 없이 그간 벌어졌던 일을 설명했다.

“과연. 그랬던 거로군. 아가씨는 스스로 돌아 왔다기 보다는 그 고양이놈과 시계토끼 때문에 여기로 다시 떨어지게 된 걸로 들리는데. 몹쓸 일이오. 물론 아가씨가 반갑지 않다는 건 아니지만.”

사실은 반쯤은 스스로 선택한 거예요. 그렇게 말하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난 이제 어떡하면 좋단 말인가. 단지 외로워서. 혼자인 것을 견디지 못해서 돌아와 버린 정신 나간 세계.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해준 고양이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고.

“하지만 아가씨가 돌아갈 방법이 아주 끊긴 것은 아니오.”

해골이 자랑스럽게 아래턱을 쭈욱 열었다. 흥미가 동했다. 이곳으로 돌아온 일에 심한 후회감이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돌아갈 방법이 있다면 그 길도 확보해 두고 싶었다. 다급히 되물었다.

“다른 방법이 있나요?”

“결자해지라는 말 들어본 적 있소? 오래된 속담이지. 매듭은 묶은 사람이 쉽게 푸는 법이오. 당신을 이곳으로 몰아놓은 놈이 그 시계토끼라면 당신을 돌려보낼 방법도 그 녀석이 알고 있겠지.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내가 시계토끼 그놈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거요.”

“무슨 당연한 소릴 자랑거리 말하듯이 말하고 있나! 이 세상에 시계토끼 그놈에 대해 모르는 자가 어디 있다고.”

거북이가 투덜거렸다. 해골은 그쪽으론 시선도 주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그놈은 여왕이 가장 아끼는 수하요. 보통 여왕은 카드 이외의 것들을 부하로 들일 때 두 두 눈과 입을 사용할 수 없도록 만들어 버리지. 하지만 그 놈에 대한 여왕의 사랑은 유별났어. 두 눈은 역시나 파버렸지만 입만은 말할 수 있도록 내버려 두었거든.”

도대체 어느 나라의 사랑인지는 몰라도 나라면 받고 싶지 않을 것 같다.

“게다가 여왕의 그 알 수 없는 힘을 아주 약간은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준 모양이오. 그 놈에게는 눈, 눈이랄 건 없지만. 여튼 눈이 마주친 상대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소. 알겠지만 강한 힘을 가진 자는 언제나 위험하지. 그리고 그 자가 완전히 미쳐있다면 그 위험도는 배로 증가하는 법.”

아무래도 해골이 말하고 있는 토끼는 날 괴롭혀온 그 토끼가 맞는 것 같았다. 눈이 마주치자마자 온 몸이 말을 듣지 않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조심스레 덧붙였다.

“하지만 그 위험한 토끼가 절 집으로 돌려보내줄 열쇠다. 그 말이지요?”

“시계토끼 놈을 찾을 방법은 없어. 그놈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나 없으니까. 차라리 여왕에게 직접 찾아가는 것이 빠를 걸? 하지만 그런 짓을 했다간 대번에 목이 날아 갈 테지.”

거북이가 중간에 끼어 이죽거렸다. 나는 신경이 좀 날카로워졌다.

“조용히 좀 해요!”

“아가씨나 좀 조용히 해! 난 당신만한 딸이 있어! 그리고 그 딸내미한테 애를 배게 한 놈을 찾아서 그 옆자리에 돌려놓지 않으면 안 된다고! 나는 아주, 아주, 신중해야해. 나는 느릿느릿하지만 확실한 거북이니까!!”

가짜 거북이가 목을 놓으며 외쳤다. 질릴 것 같은 기분에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났다. 손아귀 아래에서 해골이 가만히 말했다.

“요컨대 모든 것을 정리하자면, 거북이 당신과 아가씨. 우리들 모두는 여왕에게 가야만 한다는 거요. 나는 내 나름대로 그녀를 만나야 할 이유가 있지. 그 이유가 무척이나 궁금하겠지만 아직은 말해줄 생각이 없소.”

“별로 궁금하진 않지만.”

해골이 삭막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잠시 손가락을 비비대다가 다시 말했다.

“뭐, 조금 궁금하지만 다음에 듣던가 하죠. 지금은 일단 우리가 어떻게 하면 여왕과 만날 수 있을지가 궁금한데요.”

“궁금한 거라면 무엇이든 대답해 줄 수 있는 자가 바로 근처에 있지 않소?”

우리 셋은 일제히 쌍둥이 소년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소년은 갑작스러운 시선에 뜨끔 놀랐다가, 몹시나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우리 셋의 눈빛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렬해지자 포기한 듯, 한숨을 푹 내쉬더니 말하기 시작했다.

“후우... 곧 날이 밝는다. 여왕이 잠에서 깨어나겠지. 높은 신분의 여자는 화려한 것을 무척이나 좋아하니까 아마도... 큰 무도회를 열지 않을까. 어쩌면 사교계에 진출 하여 인기를 끌 수 있을 정도의 기량을 갖춘 사람이 있다면 여왕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것도 불가능은 아니겠지.”

“사교계?”

내가 되물었지만 아무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다만, 이전의 강렬한 시선이 이제 나에게로 쏟아지고 있을 따름이었다.

“뭐, 뭘 원하는 거예요?”

해골이 나지막이 말했다.

“아무래도 아가씨가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소. 내가 몸만 온전했어도 그깟 무도회쯤이야 구워삶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겠지만 이런 초라한 꼴이어서야.”

“아뇨, 저, 잠시만요! 사교계라뇨 무슨?”

거북이가 발치에서 말했다.

“저 얼굴 가지고는 무리 아니야? 하긴 높으신 분들 춤판이 꼭 잘나신 인물이 필요한 건 아니지. 이봐요 아가씨. 뭐 잘하는 거라도 있어? 춤이라던가, 노래라던가. 하다못해 잔재주라도.”

나는 몹시 당황스러워졌다.

“도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예요! 춤? 노래? 그런 건 몰라요! 갑자기 사교계라뇨. 아니 그보다 왜 모든 책임이 나한테만 돌아가는 거죠? 이건... 이건 불공평하다고요!!”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고 있노라니 거북이와 해골이 무어라고 귓속말을 나누고 있었다.

‘이대론 안 되겠군.’

‘건강하고 명랑한 아가씨지만 이대로라면 여왕 발치에도 가지 못하오.’

“그러니까 안 한다니까요!”

‘내가 딱 괜찮은 사람을 알지. 내 딸을 숙녀로 만들기 위해서 보내려고 했는데, 키가 모자라다고 들여보내주지 않더군. 그 부인이라면 분명 이 왈가닥도 갱생시킬 수 있을 거요.’

‘아하. 그 백작부인을 말하는 거로군. 그 분이라면 아무리 이 가망 없는 아가씨라도...’

안 듣고 있어. 내 말 안 듣고 있어. 완전히 무시당하고 있어.

냅다 손을 뻗어 거북이를 붙잡으려 했다. 놀란 거북이 뒤로 폴짝 뛰어 내 손을 피했다. 짜증이 치밀었다.

“워- 워. 앞으로 사교계의 귀부인이 되어야 할 분이 그렇게 함부로 날뛰면 안 되지. 우리만 따라와. 그럼 천하의 어떤 신사라도 반하지 않고는 못 배길 사교계의 메이퀸으로 만들어 주지.”

“겔겔겔... 몹시 기대가 되는 구료. 팔랑팔랑한 드레스라도 한 벌 장만해야 할 것 같은데. 말 나온 김에 어서어서 진행해야겠소. 아가씨.”

“그러니까...!!”

“겔겔겔겔겔.”

해골이 기분 나쁘게 웃고 있었다. 뭔가 보고 싶다느니 따뜻하다느니 하는 감정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있었다.

“크키키키키키”

가짜 거북이놈도 킬킬거리고 웃고 있다. 맙소사. 고개를 돌리자 쌍둥이 소년마저도 입가를 가리며 웃고 있었다. 맥이 탁 풀리려는 것을 간신히 참고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그러니까!! 안 한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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