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장편 네크로포비아 _ 4

2014.05.23 19:5805.23

문득 호기심이 솟았다.

“그럼 아까 그 사람은 어떻죠?”

“그놈은 사람이 아냐. 그냥 고양이지. 모든 것을 안다고 자랑하고 다니는 시건방진 축생일 뿐이라오. 그 녀석도 점잖은 떨지만 결국 다른 고양이들처럼 쓰레기통을 뒤지고 썩은 생선을 탐낸다오. 그렇게 신경 쓸 필요 없소. 녀석은 그냥 허풍선이야.”

모르겠다. 해골의 말도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일주일. 일주일 후면 나는 이곳의 주민이 된다. 벌써 두 시간이 지났다. 아니, 두 시간이 더 지났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내 수명을 짧아져만 가고 있었다. 나보고 어떡하라고? 길은 짜증나게도 길게 이어져 있었다. 맙소사. 저게 뭐야. 저런 길을 나보고 가라고? 이 높은 구두는 저런 가파른 길을 내려가도록 만들어 진 것이 아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편한 옷을 입었다. 무슨 멍청한 소리야. 출근하는데 편안한 옷이라니. 치마가 너무 달라붙잖아.

짜증나. 짜증나서 미쳐버리겠어.

아무것도 준비 된 게 없잖아. 아무것도 하기 싫어. 그냥 죽고 싶어.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여기에서 머릴 처박고 죽고 싶어. 숨을 참아볼까. 그래 차라리 숨을 참으면 심장이 멈출까?

“아가씨. 뭐하는 거요?”

해골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다음 순간이었다. 그가 다급히 내 어깨에 손을 올려놓았다. 나는 뜨거운 물을 뒤집어쓴 고양이처럼 몸을 바르르 떨었다.

“손 치워요!! 으아아악!!”

짜증을 부렸다. 이를 갈고 주변에 집어던질 것을 찾았다. 아무것도 없다. 망할 짜증을 부릴 상대도 없다. 바락바락 악을 쓰며 일어났다.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야! 불쏘시개가 올라간다! 아가씨, 불쏘시개가 도망가고 있단 말이오!”

“... 싫어요!! 닥쳐요!!”

“아가씨!!”

다 싫어!! 다 싫단 말이야!!

으르르릉... 으르르릉..!!

하늘에서 돌연 천둥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하늘에 떠다니던 거대한 생선이 구름 위쪽으로 치솟아 오르는 것이 보였다. 마치 무엇인가로부터 도망치는 것 같았다. 정신이 퍼뜩 들었다. 옆에서 해골이 아직도 내 어깨를 흔들고 있었다.

“뭐예요.. 무슨 일이죠!?”

다급히 물었다. 해골이 아래턱을 달달 떨고 있었다.

“불쏘시개... 저 커다란 물고기의 이름이오. 녀석이 도망치고 있소. 이 세상에 불쏘시개를 도망치게 할 만한 존재는 단 하나밖에 없지. 그 놈이 냄새를 맡은 거야. 생자의 광기에서 풍기는 검붉은 냄새를 맡아버린거지. 아가씨. 답해보시오. 거기에서 그대로 죽고 싶소? 아니면 살고 싶소?”

우르르르릉...!

하늘 전체가 심상치 않게 울렸다. 번쩍, 하고 하늘 한 구석에서 무언가 불덩어리 같은 것이 빛났다.

“놈이 눈을 떴어. 이봐요.”

으르르르르...!

쫘악. 하늘의 어둠이 펼쳐졌다. 선명한 푸른색. 사냥개의 날카로운 이빨이 하늘 한 구석을 밝히고 있었다. 맙소사. 그저 또 다른 하늘의 저편이라고 생각했던 저것은 거대한 사냥개의 머리였다. 두 눈동자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개가 입을 쫘악 벌렸다. 검붉은 빛깔의 침덩어리가 땅에 비처럼 떨어졌다.

“일어나요! 살고 싶으면 달려야해!”

“싫어요!! 여긴 모두 정 반대 아닌가요? 차라리 죽어버리는게 나아! 이런 세계에서 계속 머무느니 차라리 죽을래! 아니, 여기서 죽으면 이 꿈을 깰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차라리 그렇다고 해 줘요. 그만 날 버리고 모두 떠나버리란 말이얏!!”

“겔겔겔...”

해골이 느닷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아래턱을 이상한 각도로 기울였다. 아마도, 저것은 빙그레 미소 짓는 것.

“그렇게는 못하지.”

그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그 여윈 어깨 뒤로 사냥개의 이빨이 덮쳐오는 것이 보였다. 무서운 현실감이었다. 광기의 폭풍 같은 숨소리가 바로 옆에 와서 닿았다. 거친 숨결은 마치 질풍 같았다.

휘이이이이잉-!

머리카락을 흩날리다 못해 머릴 때어놓을 듯 한 강풍이 몰아쳤다. 바람 속에서 목이 터져라고 비명을 질렀지만 나 자신의 귀에도 들리지 않았다. 간신히 뜬 두 눈에 해골의 모습이 비쳤다. 양 팔을 들어올리고, 모든 위협에서 나를 지키려는 듯한. 하지만 한없이 약하고 서글픈 모습. 누군가의 모습이 잠시 동안 겹쳐 지나갔다. 누구인지 전혀 기억이 나지는 않았다.

[비켜.]

하늘을 울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는 못하지.”

해골이 맞받아쳤다.

[내가 깨물 수 없는 것은 없다. 나는 모든 것을 깨물어놓지.]

“그렇다 쳐도 넌 내 등 뒤에 있는 사랑스러운 생물을 물어뜯을 순 없어.”

쩌억 하고 어둠이 벌어졌다. 검붉은 동굴과도 같은 사냥개의 거대한 목구멍이 보였다. 아니, 보이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비명을 질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비명 지르는 게 전부다. 나는 무력하니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으니까. 해골이 양 팔을 들어 올려 자기 두개골을 붙잡았다.

으득-.

나는 그가 자기 머리를 몸에서 때어내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다음 순간, 그가 때어낸 것을 나를 향해 휙 집어 던졌다.

“뭐예요. 으아아악!!”

“어서 좀 뛰어요!! 내 몸을 다 씹어 먹을 때까지 시간은 좀 있을 거요! 놈은 미식가라서 입 안에 한꺼번에 두 음식을 밀어 넣지는 않아! 그리고 내 몸은 생각보다 단단하거든!”

파삭! 해골의 몸뚱아리가 날카로운 이빨 아래에서 조각조각이 나는 소리가 들렸다.

“제발, 제발 달려요. 어서. 살아날 방법은 그것뿐이오. 이 묘지를 벗어나요! 조금만 달리면 되.”

“싫어요.. 싫어!!! 그냥 난 이대로 죽을 거야!!”

 

“제발 부탁이오. 나도 저 망할 무덤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말할 머리마저 잃어버리고 싶지는 않아. 앉아서 투정부리고 우는 건 할 만큼 했잖소!? 일어나요. 일어나 아가씨!!”

해골의 텅 빈 눈구멍에 불길이 일었다. 아니, 그런 것을 본 것 같았다. 겁이 났다. 왠지 눈앞에 다가온 저 거대한 사냥개의 이빨보다 이 해골의 두 불길이 더욱 무섭게 느껴졌다. 다리에 힘이 들어갔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과거가 있지 않습니까? 살아 날 수 있을 법 한 일을 무엇이든지 하십시오. 시간이 없어요. 바쁘지 않나요?‘

 

‘바빠, 바빠, 항상 바쁘다구!’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마음이 바빠졌다.

째깍, 째깍.

머릿속에 시계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두 다리에 갑자기 힘이 들어왔다. 일어나고 싶지 않은데,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집어던져버린 구두가 아쉬웠다. 나는 전력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다. 팔을 달리기 선수처럼 굽히고, 두 다리를 공중으로 띄웠다. 가슴에는 딱딱한 해골을 꽉 끌어안았다. 이 순간, 머릿속에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아니 치솟아 올랐다.

주변 풍경들이 쏜살같이 지나쳐간다. 단지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저 무시무시한 사냥개로부터, 그리고 죽음의 운명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 그리고 나는 지금 날아올라서 구름 주변에 둥둥 떠 있었다.

“우와우-. 훌륭한데! 아가씨!”

해골이 무어라고 고함을 질러 댔다. 뒤를 돌아보았다. 사냥개가 입을 쩌억 벌렸다 닫으며 해골의 몸을 가루로 만들고 있었다. 씹는데 한참은 걸릴 것 같았다. 날카로운 눈동자가 내 뒤통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모공이 곤두섰다. 하지만 그런 섬뜩함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맙소사. 왜 아직까지 의문을 갖지 않았지? 내가 날아오를 수 있을 턱이 없다. 이만큼 뛰어오른다는 것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리고 떠 있을 수도 없다. 일단 앞뒤를 내버려두고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든 올라왔다는 생각만 가정하면.

떨어진다.

생각하기가 무섭게 몸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뛰어오를 때와 마찬가지의 무시무시한 속도로 바닥에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아니, 생각을 오래할 수도...

“꺄아아아악!!!”

심지어 길게 비명을 지를 시간조차도.. 바닥으로 쑤욱 빨려드는 듯 한 아찔하고 기묘한 감각이 밀려왔다. 화살처럼 가까운 하늘이 멀어져간다. 눈이 억지로 감겼다.

콰앙!!

온 몸에 격통이 밀려왔다. 가냘픈 의식이 순식간에 끊어져버렸다.

2_ 사나운 나라

째깍, 째깍, 달리는 토끼의 꿈을 꾸었다. 이건 꿈이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쫓아 오는 시계를 따라서 하얀 토끼가 발이 보이지 않게 내달리고 있었다. 토끼는 지치지도 않는 것 같았다. 시계는 원래 빙빙 도는 것이 일이라서 그렇다고 쳐도 토끼가 저토록 오래 달려도 지치지 않는 것은 이상하다. 자세히 바라보니 토끼의 등에도 다리가 두 쌍 달려있었다. 맙소사. 토끼는 다리가 지칠 때 마다 몸을 뒤집어서 달리고 있는 것 같았다. 퍼뜩, 토끼가 몸을 뒤집었다. 나도 화들짝 놀라 두 눈을 떴다.

시야가 붉게 물들어 있다. 온 몸에 통증이 느껴졌다. 두 다리가 등 뒤로 꺾여 있었다.

“아아아악!!”

비명을 질렀다. 비명이 저절로 나올 만큼 아팠다. 아프고 아파서 눈을 다시 감았다. 다시 눈을 떠도 아픈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육체적 고통보다 나를 더 아프게 하는 것은 내가 아직도 이 미친 세계에 남아있다는 사실이었다. 이 만큼 했으면 꿈에서 깰 때도 됐는데. 머리 언저리에 해골바가지가 나동그라져 있는 것이 보였다. 두 팔이 그나마 자유로웠다. 간신히 팔을 들어 툭툭 건드려 보았다.

“쉭... 쉭... 드르렁...”

자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 판국에 잠이 오다니. 나는 아파서 죽겠는데. 다리가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이런 각도로 다리가 꺾여서야 뼈가 무사하리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갑자기 두려워졌다. 몸이 차가웠다. 간신히 힘을 짜내어 고함을 질렀다.

“누구... 누구 없어요!”

이대로 가면 정말 죽는다. 진득한 통증에 눈을 감고 잠을 청할 수도 없었다. 죽음이 발목을 잡아채고 있는 것 같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죽겠다고 웅크리고 있었는데. 이제는 웅크릴 수조차 없어. 눈을 감았다. 꾹 감아도 새어나오는 것은 신음성과 고통 뿐.

“사람... 살려요!! 사람 살리라구요!!”

부르짖었다. 간신히 들고 있던 상체가 널브러졌다. 그러고 보니 가슴도 아프다. 목이 뒤틀리지 않은 게 다행이다. 바닥에 머리를 대고 있었다.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차가운 땅바닥이었다. 볼이 같이 얼어붙어서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다.

“나를 부른 거야? 아니면 내가 너를 부른 거야?”

쉰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쉰 정도가 아니다. 녹슨 파이프 관을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도 저것 보다는 청명하게 들릴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간신히 상체를 들어 눈앞을 보았다.

“제발, 구해주세요!”

“뭣, 구해달라고? 무엇을 구하란 말이야? 행복? 돈? 이 처량한 길을 구원으로 이끌어줄 이정표? 아니면 당신이 날 구하겠다는 말이야?”

허리가 구부정한 아저씨가 엉뚱한 말을 하고 있었다. 얼굴은 온통 하얗게 분을 칠하고, 한쪽 입술만 올라간 이지러진 미소를 짓고 있다. 머리가 세 개... 아니 어깨 옆에 머리가 두 개 더 있는데... 아마 인형의 머리이던가... 혹은 다른 사람의.. 머리...

머리가 잘려있어.

그 얼굴에는 눈 대신 인형의 눈이 박혀 있었다. 인형 눈과 사람 눈을 구별하는데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냥 사람 얼굴에 눈이 박혀있을 법한 곳에 커다란 단추가 매달려 있다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 할 것이다. 조금만 더 관찰해보면 다른 이상한 점들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한쪽 입술 끝은 바늘과 실로 꿰매놓은 것 같다. 이지러진 미소의 정체는 바로 저것이었다.

“살려 주세요.. 제발..”

이상한 것에게 목숨을 구걸한다는 것은 기분 나쁜 일이었다. 하지만 이 끔찍한 고통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무엇이라도 좋았다. 나는 더듬거리며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살려 달라? 나 아니라 여왕이 와도 할 수 없는 일이지. 그런데 무엇을 살려 달란 말이야? 당신의 목숨? 중요한 말이 빠져 있으니 짐작이 가지 않지만 이 근처에 살아있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살려달라는 말을 내게 한담? 무엇을 어떻게 살리란 말이야? 아니, 애초에.”

그는 한쪽 입술을 올리며 웃었다.

“당신이 나와 어떤 관계가 있기에 나에게 살려 달라 어쩐 다를 말하지? 나의 세계에선 말이야. 당신 따위 원래 존재도 하지 않았어. 내 단춧구멍만한 눈에 보이지 않는 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거든. 오-. 이런. 하하. 단춧구멍이라... 단춧구멍. 으하하하. 이건 정말 우습군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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