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장편 네크로포비아 _ 2

2014.05.22 02:2305.22

“흡-.”

숨을 들이마셨다. 이렇게 배웠다. 두려움에 지지 않는 방법이라 했다. 급히 토기가 일었다. 속이 불편했다. 시체들이 바닥에 툭툭 떨어지고 있었다. 눈을 꼭 감았다. 고개를 숙였다. 이것은 환각이다. 그저 환상. 어리고 약한 마음이 만들어내는 환상. 무엇인가 소리가 들렸다. 두 귀를 틀어막았다. 그러나 여지없기 그것은 들려왔다.

[... 다가왔다.]

듣고 싶지 않아.

[... 그림자가 다가왔다.]

두 귀를 꽉 틀어막았다. 의미 없는 말이었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말에 귀를 기울여서는 안 된다. 의식이 심연으로 가라앉고 합창처럼 들리는 무수한 소리도 천천히 가라앉았다.

 

오후가 되어서야 잠에서 깨었다. 꿈을 꾸지 않았다. 그것이 꿈이 아니었다면 나는 꿈을 꾸지 않은 것이다. 확실히 나는 오랜만에 아무런 꿈을 꾸지 않았다. 사무실은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청소부들이 질린 얼굴로 바닥의 곤충 시체들을 쓸어내고 있었다.

이후로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 바닥의 끔찍한 것들은 죄다 청소부들이 쓸어내 버렸다. 텅 빈 사무실에는 퇴근시간이 다가올 때 까지 더 이상 아무도 오지 않았다. 편집장과 대화한지가 언제였는지 생각도 잘 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대화 같은 것은 필요가 없다. 나는 일을 끝내고 완성된 원고를 그의 이메일로 보내주기만 하면 그만이다. 랩탑을 덮었다. 일을 집에까지 끌어들이기는 싫었다.

또각또각.

높은 구두가 바닥을 울렸다. 버스가 도착하기까지 5분이 남았다. 버스는 이대로 집으로 향한다. 둘러가는 법도 없고, 느리게 도착하는 법도 없다. 정확한 시간. 7시가 되면 아무것도 없는 생의 무대가 직장에서 집으로 바뀐다. 그리고 늦은 저녁을 먹고 잠에 들게 되겠지.

째깍째깍.

저녁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높은 건물을 따라 서서히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했다. 주변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지나다니는 행인은커녕, 지나다니는 차들조차 드물다. 주변 건물들도 모두 불을 꺼버려서 마치 세상에 홀로 내던져 진 듯 한 느낌이 들었다. 고요한 가운데 손목시계 소리만 들려왔다. 가만.

나는 손목시계를 차지 않았다. 시간은 뭘로 봤었지? 핸드폰이 있었다. 핸드폰을 꺼내었다. 6:58. 이제 2분만 기다리면 집으로 가는 버스가 온다.

째깍째깍.

위화감에 고개를 들었다. 이 소리는 뭐람. 호기심이 들었다. 생소한 감각이었다. 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째깍거리는 소리는 여전히 들려오고 있었다. 어디? 어디?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가는 쪽은 높은 언덕이었다. 한번 내려가 버리면 올라가는 길은 결코 수월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나 이 높은 구두를 신고라면 더더욱. 어떻게 한담. 이제 2분만 지나면 버스가 온다. 호기심에 몸을 맡기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그렇다면 가만히, 여기서 그저 가만히.

그림자가 다가온다.

해가 기울면서 높은 건물의 그림자가 정류장을 드리우고 있었다. 문득 겁이 났다.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파란 등불 같은 것을 보았다. 그림자는 마치 살아있는 것 같아서, 피부에 닿으면 끈적하게 달라붙을 것 같았다. 저녁 공기는 이상한 냄새가 났다. 결국

또각또각-.

바삐 발을 움직였다. 언덕의 경사는 급했지만 발을 멈추고 싶지 않았다. 지상에 그림자가 내리고 있었다. 그림자가 내리고 있다기 보다는 이미 밤이다. 얼굴에 닿은 바람은 차가웠다. 홱-. 하고 집으로 향하는 버스가 스쳐 지나갔다. 10분이 지나면 아마 다음 버스가 올 것이다. 정류장으로 돌아갈까? 모험은 그만두는 편이 좋았다.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인다.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짙은 어둠이 내린 정류장은 이제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발밑까지 짙은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래서야 마치, 그림자에 붙잡힌 것 같았다. 서늘한 그림자의 손아귀가 발목을 잡아챌 것 같았다. 언덕 아래에는 등이 켜져있다. 푸른색의 아른한 등불. 일단 불빛이 있는 곳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거기에서 다음 버스를 잡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째깍째깍-.

시계소리가 멈추지 않는다. 신경질 적으로 머리를 흔들었다. 짜증이 났다. 집에 있는 자명종 소리를 박살내버리고 싶은 폭력적 충동이 들었다. 평화가 무너졌다. 괜히 내려온 것이다. 버스는 지나가 버렸다. 이 무슨 바보 같은 노릇일까. 아 제길. 아.

버스가 지나가 버렸잖아!!!

째깍째깍- 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째깍-

짜증나……. 그만좀 해!!

“아, 바빠. 바쁘다. 정말이지. 늦었구만.”

“누구세요?”

고개를 들었다. 어깨가 떨렸다. 이성을 잃고 달려온 틈에 어느새 푸른 불빛이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주변과 전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가로등이었다. 불빛이 허공에 매달려 있다. 저게 제대로 전기로 연결되어 있는 게 맞나하는 의심이 들었다.

“바빠 죽겠는데 말을 걸어. 정말이지... 늦었구만!”

째깍째깍째깍

시계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따라 고개를 숙였다. 집에 있는 자명종 시계와 똑같은 녀석이 정신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초침이 화살처럼 돌아간다. 째깍거리는 소리가 심장소리보다 몇 배는 빠르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주먹에 힘이 절로 들어갔다.

달싹.

시계가 움직였다. 흡-. 숨을 들이마셨다. 시계가 달싹이더니 그 아래에서 하얀 무엇인가가 불쑥 머리를 디밀었다. 토끼다. 티 한 점 없는 하얀 토끼. 파란 가로등아래에서 하늘색으로 물들어 보였다.

“바빠. 어디지. 안보이네.”

토끼입이 달싹거렸다. 현실감이 없었다. 토끼가 말을 한다는 사실이 전혀 놀랍지 않음에 나는 조금 놀랐다. 토끼가 고개를 들었다. 여기서 부터가 놀라웠다.

눈이 있어 마땅할 그 구멍에는 아무것도 없는 어둠뿐이었다. 파란 빛이 어두운 그곳을 비추자 검붉고 칙칙한 무엇인가가 고스란히 보였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저건 죽어있다. 분명 죽어있다. 죽어있음에 분명한데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맙소사. 죽은 것들은 말을 하지 않는다. 당연한 것은 당연한 것이다.

 

죽은 것들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당신도 바빠. 바쁘네. 안보이네 정말.”

눈을 꽉 감았다. 자리에 주저앉지는 않았다. 눈으로 보이는 모든 것을 거부하고 싶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진실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마음 내키는 대로 되지 않았다. 눈꺼풀이 떨렸다. 마치 누군가가 억지로 눈구멍을 벌리는 것처럼 두 눈이 확 열렸다.

“으- 아.”

텅 빈 토끼의 눈구멍이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날선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

“살고 싶으면 내 말을 들어. 대답을 하건 안하건 내버려 두겠어. 하지만 말이야. 히히... 바쁘다고... 너도 나도 지금 몹시 서두르고 있으니까 뛰어. 나는 지금 뛰지 않을 거야. 내 말을 들어. 눈 감지 마.”

눈이 감아지지 않았다. 시계소리가 폭포수처럼 뚫린 귀로 밀려들어왔다. 째깍째깍째깍

“우린 바빠? 그렇지? 시계 돌아가는 것 좀 봐. 아직 살아 있잖아? 뛰어. 다음 등불로 달려 이 불이 꺼져서 그림자가 집어삼키기 전에. 이봐. 이봐.”

토끼가 얼굴을 더 들이밀었다. 텅 빈 눈구멍에서 무언가 끈적한 액체가 떨어지고 있었다.

“날 보라고. 넌 아직 살아 있잖아? 솔직히 난 안 보인다고. 정말 보이질 않아.”

“뭐, 뭐가...”

간신히 입을 벌려 한마디를 토했다. 토끼는 귀를 쫑긋거렸다. 죽은 것의 냄새가 났다.

“네가 살길 말이야. 솔직히 안 보여. 그래도 아직 살아 있잖아? 달려. 바쁘다고 지금. 아주... 그렇게 서있을 수 없을 정도로. 그렇게 서 있다간 정말로 ‘살기에 늦는다’.”

째깍째깍째깍

“저길봐.”

고개가 의지를 거스르며 홱 젖혀졌다. 아팠다. 하지만 아픈 것을 느낄 새도 없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푸른 등불이 깜빡이는 것이 보였다. 주변은 완전한 어둠이었다. 어깨가 덜덜 떨렸다. 두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또다시 고개가 홱 젖혀졌다. 머리 위의 등불이 금방이라도 꺼질 것처럼 깜빡이고 있었다. 다음순간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완전히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으려던 순간, 홱홱 하고 앞으로 다리가 내달리기 시작했다.

“그래 달리라고!! 살아보라고! 바쁘잖아 지금. 바빠. 크케케케케... 항상 너무 바쁘다고!”

뒤를 돌아보았다. 죽은 토끼가 제자리 뛰기를 하며 두 다리를 바둥거리고 있었다. 사지가 부자연스러운 방향으로 꺾여있었다. 줄에 묶인 인형이 서투른 인형사의 주문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나는?

나는 줄에 묶인 인형처럼 불빛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토끼는 푸른 등불이 완전히 꺼져 버림과 동시에 사라져 버렸다. 두 다리가 버둥거리고 있었다. 이제 나는 정말 인형이 누구인지 의심하기 시작했다. 거동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내려가고 싶지 않은데 정말로 내려가고 싶지 않은데. 하지만 불빛은 이미 꺼져버렸다. 의지할 곳은 저기 뿐이다. 저기만큼은 가고 싶지 않지만 두 다리는 내달리고 있었다. 계속해서 의심이 들었다. 이 몸을 움직이는 것은 누구?

나, 혹은 세계.

불빛이 다가왔다. 환하게 눈앞을 메우는 푸른색의 빛 덩어리와 한없이 비어있는 어두운 구멍. 그 아래 무엇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다가서서는 안 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안 돼.”

무심결에 입에서 말이 튀어나왔다. 안 된다. 저기로 뛰어드는 것은 안 될 일이다. 그림자가 가득 메워져있다. 저 곳의 어둠은 농도가 짙다. 느릿느릿하고 끈적끈적한 것들이 저 아래에서 피부로 호흡하고 있다. 역겨운 입자 같은 것이 공기 중에 퍼져 있을 것이다. 날카로운 날붙이들, 주삿바늘. 가득 메워진 시간들이 저 아래에 있다. 나는 간신히 다리를 멈췄다.

양 팔로 다리를 꽉 잡았다. 움직이지 않는다. 한 발자국만 더 가면 돌이킬 수 없다. 정말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마가 끈적하게 젖어 있었다. 이상한 곳이 되어버린 도시는 이제 정말로 바람한 점 불지 않는다. 있는 것은 나와 불빛과 알 수 없는 어두운 구멍 뿐. 택할 수 있는 것이 위험과 공포라면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텅 빈 것을 선택할 것이다.

“휴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눈이 어둠에 적응되어 가는 것이 느껴졌다.

째깍째깍

 

사방이 조금씩 보인다. 어슴푸레하게 건물들이 보이고 주변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불빛은 이 푸른 등불만이 아니었다. 조금 마음을 안정시키자 주변 풍경들에서 익숙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래, 여기는 내가 항상 왕복하던 출근길이야. 아무것도 이상하고 괴기할 것은 없어.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로 마음을 안심시켰다.

째깍째깍

그런데.

“바쁘다니까!!!”

몸을 홱 돌렸다. 아까의 죽은 토끼가 무서운 속도로 내달리는 것이 보였다. 그가 허공으로 폴짝 뛰어오를 때까지 나는 손 끝 하나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역한 냄새가 확 피어올랐다. 닿고 싶지 않았다. 저것에게 닿고 싶지 않았다. 나는 뒤로 한 걸음 물러섬과 동시에 그 행동을 후회했다.

발 뒷굽에 어둠이 묻었다. 종아리로 어둠이 타고 올라왔다. 기울어지는 몸, 시야에 하늘이 가득 들어왔다. 먹빛이었다. 불빛이 멀어짐을 느낌과 동시에 온 몸으로 추락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아아아아-!”

내 목소리가 어두운 통로를 울리는 것이 느껴졌다. 떨어진다. 어디까지? 째깍째깍 시계소리가 났다. 그 토끼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꼭 감은 두 눈이 억지로 떠졌다. 환한 불빛. 나는 환한 불빛 속에 있었다.

매미 때가 날아다니는 것을 보았다. 나는 것이 절반이라면 떨어져 죽는 것이 절반이었다. 죽은 것들은 모두 날개를 비비적거렸다. 슬픈 바이올린 같은 소리가 났다. 시계가 주변을 빙빙 돌고 있었다. 내 몸이 이상한 음악에 맞춰서 이상한 춤을 췄다. 언젠가 본 적이 있는 춤이다. 배운 적은 없는데. 모차르트의 음악에 맞춰 추는 것을 본 것 같은 기억이 난다. 으스스한 판당고. 어쩌면 나는 이미 죽어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콰당-!

끔찍한 고통이 착각 속에서 날 끄집어내었다.

“아야야...”

죽었다면 이런 고통을 느낄 수 있을 리 없다. 정신이 바짝 들었다. 현실감각에 등줄이 곤두섰다. 여기는 어디일까. 둘러보아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공포감 보다는 그 끔찍한 시계소리가 들려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오히려 안도감이 들었다. 두 손을 앞세우고 주변을 더듬어 보았다. 차가운 무엇인가가 닿았다. 흠칫 손을 들었다가, 다시 손을 대어보았다. 벽돌. 어둠에 익숙해진 눈에 흐릿하게 벽의 모습이 보였다. 더듬어 내려가 보니 스위치 같은 것에 손이 닿았다.

덜컹.

오래된 전구가 켜지는 것처럼, 주변이 환하게 밝아졌다.

좁은 방이었다. 퇴색한 벽돌로 된 벽이 둘러쳐져 있었고, 밖과 통하지 않는 허울뿐인 창문이 두어 개 달려 있었다. 이런 풍경을 전에 본 적이 있다. 구석구석을 살펴보자 길쭉한 다리를 가진 거미가 거미줄 뒤로 홱 숨는 것이 보였다. 여기는 아마도 묘지. 그것도 상당히 오래된 묘지일 것이다. 내 짐작에 확신을 줄 무엇인가가 방 한 가운데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직육면체에 아무런 장식도 달리지 않은 차가운 돌로 이루어진 그 무엇.

당연히 관이었다. 먼지가 두껍게도 쌓여 있었다. 위에는 아마도 사망 연도인 듯 한 숫자가 쓰여 있었다.

1497 ~ ####. 뒤의 숫자는 누군가가 일부러 지워 놓은 것처럼 긁어져 있었다.

탄생연도인가. 사망연도인가가 확실하지 않다. 아무렴 어떤가. 저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중요한 것은 도대체 여기가 어디이며 내가 왜 이런 곳에 있는가. 문득 위를 올려다보았다. 분명히 떨어져 내려왔으니 위로 나갈 길이 있을지도 모를...

무참히도 막혀있다.

허탈감에 상황에 의문을 품고 싶은 마음도 없어졌다. 이게 무슨 꼴인지 싶었다. 짜증이 솟구쳤다. 가장 가까운 문을 향해 걸어가 두들겨 보았지만 도무지 열려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아무도 없어요!!”

쾅, 쾅쾅!! 주먹이 아프도록 문을 두들겨 댔다. 순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주변의 누군가를 이렇게 애타게 불러 본 적이 있었던가?

“아무도 없나요!!!”

쾅쾅!

실제로 주먹이 아팠다. 한참을 문과 씨름하는데 기운을 다 빼버린 후에야 자리에 주저앉았다. 기분이 좋지 않았다. 버스한번 놓친 대가로 이건 너무 크다. 세상에 죽은 토끼에게 쫓기고 이상한 구멍을 통해 묘지 안으로 덜컥 떨어져 버리다니. 울음이 나올 것 같았다. 주먹으로 꾹 누르고 있는데도 자꾸만 눈물 같은 것이 새어나왔다.

덜컥덜컥.

관 뚜껑이 덜그럭거렸다. 저게 나랑 무슨 상관인가. 고개를 처박고 연신 눈물을 닦았다. 덜그럭 거리건 말건.

덜컥.

밀려 올라간 관 뚜껑 사이로 하얀 무엇인가가 슥 올라왔다. 이제야 좀 심각해졌다. 맙소사. 울음이 싹 그쳤다.

“누, 누구 있어요?”

반쯤 열린 관뚜껑을 향해 누구 있어요라니.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끼익, 끼익. 무거운 관뚜껑이 계속해서 옆으로 밀쳐졌다. 필사적으로 뒤로 물러섰지만 여태껏 안 열리던 돌문이 열려줄 리가 만무했다. 눈을 감고 싶은 마음과 무엇이 일어나는지 보고 싶은 마음이 격돌했다. 두 눈에 힘을 넣었다.

하얗고 앙상한 무엇인가가 관 뚜껑 사이로 삐져나와 있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거적때기가 매달려 있다.

“눈물을 닦으시오. 아가씨.”

뼈를 울리는 듯 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이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는 것은 다음순간 확연히 들어났다. 홱 하고 젖혀진 관뚜껑 아래에서 하얀 백골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턱뼈가 달그락거렸다. 달그락달그락. 하얗고 기다란, 뼈만 남은 손가락이 관을 짚고, 살점 하나 붙어있지 않은 뼈다귀가 일어섰다.

“꺄아아아악!!”

여성스런 비명을 질렀다. 아마 생에 처음이었다. 내가 이런 식의 비명을 지르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해 본적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뼈다귀였다. 생을 유지해줄 어떤 장치도 가지지 못한 뼈다귀가 달그락 거리고 일어서서는 심지어 말을 걸고 있는 것이었다.

“놀라게 했나 보군. 미안하오. 여기에 갖힌지 오래되어, 아마 추한 몰골이겠지. 그보다 아가씨. 당신이 나를 구하러 온 천사요? 아니면 나처럼 그저 이곳에 떨어져 버린 거요?”

“무... 머...”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해골은 손가락 끝에 걸친 거적때기를 슬며시 내밀었다.

“그보다 눈물부터 닦아요. 원. 이곳에 슬픈 일이나 무서운 일은 없소. 그저 묘지의 적적함만 가득 차 있을 뿐이지. 물론 그것도 한숨,눈물나는 일이긴 하나 눈물로 시작해버리면 그건 또 답답한 일이지.”

“꺄아악!! 저리 치워!!”

팔을 미친 듯 휘둘렀다. 뼈만 남은 저것의 눈구멍 또한 횅하게 비어있었다.

“상태가 안 좋긴 하지만 신사가 주는 손수건을 뿌리치다니. 숙녀답지 않군. 가만히 생각해보시오. 내가 비록 이렇게 뼈만 남았다 한들, 당신과 대화를 할 수 있고 당신을 구할 수도 있다고 한다면 그렇게나 비명을 질러댈 이유야 없지 않겠소? 언급할 필요도 없거니와, 나는 지금 당신을 해칠 생각이 없소. 그럴 능력도 없고요.”

“......”

황당함에 말도 나오지 않는다.

“뭐 그럼 됐소. 어차피 눈물은 그친 모양이니.”

달그락 달그락. 해골이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나는 발작적으로 소리쳤다.

“거, 거거거기서 나오지 말아요!”

“그렇게까지 경계할 필요 없소만.”

“... 그래도요. 아직 준비할 시간이 필요하다고요.”

달그락 달그락. 해골이 슬며시 관 아래로 다시 누웠다. 나는 두 눈을 꽉 감았다가 머리를 흔들었다가 하며 이 미친 환상에서 깨어나려고 노력했다. 이건 꿈이야. 두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고 볼을 꼬집고 하다보면 어느 순간 아침이 다가와 있을 거야. 전형적인 꿈 깨기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계속된 심호흡덕분에 마음만 조금 안정되었다.

“이제 됐소?”

 

“아직 멀었어요!!”

신경질적인 고함에 달그락거리며 다시 관 안으로 들어가는 해골. 한숨을 푹 내쉬었다. 모습을 볼 때 마다 등골이 곤두섰다. 간신히 돌아온 현실감각이 두들겨 맞는 것 같았다. 달그락 달그락. 손가락뼈를 달그락거리며 그가 또 올라왔다. 손끝에 아까 전보다는 훨씬 나은 거적때기가 들려있었다. 손수건이랍시고 내미는 것 같았다.

“눈물부터 좀 닦아요. 귀부인은 항상 자태에 신경을 쓰는 법이지. 젊은 아가씨가 하물며.”

머리를 불쑥 내민다. 이젠 비명 지를 기운조차 없었다. 맥 빠진 목소리로 답해주었다.

“이쪽으로 던져줘요.”

 

잠시 시간이 지난 후. 나는 여전히 문에 기대어, 그는 자신의 관에 몸을 반쯤 기댄 채로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아니, 그가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그가 던져준 손수건으로 식은땀을 닦아내고는 저만치 던져버렸다.

“어쨌거나 이 세계에서는 드문 생자동지 아니오. 통성명이라도 하면?”

맙소사. ‘생자동지’란다. 저게 어딜 봐서 살아있는 사람이란 말인가.

“제가보기엔 당신은 이미 죽은 지 한참은 된 것 같은데요.”

“죽어? 맙소사.”

달그락, 해골은 마치 우습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렇다면 물읍시다. 아가씨. 살아있다는 건 뭐요?”

“뭐라고요?”

“대답할 생각이 없구만. 아가씨. 내 생각에는 말이오. 살아있는 것이란 그런 각종 장기들이나 음식물에 의존해서 숨 쉬는 일을 반복하는 행위에는 없소. 끊임없는 사고와 회화, 그리고 위대한 발명들과 철학적 연구야말로 우리 생명들을 살아있게 만들어주지. 그런 의미에서 나는 당신을 몹시 높게 사고 있소. 뭐랄까 당신은... 저 바깥에 있는 미치광이들하곤 다르지.”

때 아닌 달변에 말문이 막혔다. 마른침을 집어삼키고 난 후 간신히 입을 열 수 있었다.

“그래서 당신이 살아있다는 건가요?”

“나의 기준에서는 그렇지.”

“숨도 안 쉬고 살점 하나 없는 당신이 살아있다고요?”

“당신의 기준에서는 죽어있을지도 모르오.”

버럭 짜증이 나려했다. 해골은 아래턱을 덜그럭거렸다. 마치 웃음을 터뜨리는 것과 비슷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곳 웃음을 터뜨렸다.

“겔겔겔겔... 생사를 논하기에는 딱 알맞은 장소지. 그렇지 않소? 어쨌거나 자신이 살아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어떤 ‘생명’ 이 있다면 그 주장과 의지를 전부 무시할 수 있지 않는 이상 그가 죽었다고 단정 지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그러니 난 살아있는게요.”

짜증이 솟구쳤다. 나는 그가 저만치 밀어버린 관뚜껑을 가리켰다.

“여길 보라구요! 당신이 죽은 년도가 뻔히 쓰여 있잖아요? 당신이 누워있는 곳이 바로 당신 관이라고요! 당신은 죽었어요! 당신도 알 거 아녜요!!”

버럭 고함을 지르자 해골은 관 속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이게 뭐하는 노릇이란 말인가. 어딘지 알지도 못하는 곳에서 해골과 논쟁을 벌이고 있다니. 저 짜증나는 화법은 또 뭐람. 꿈이라면 악몽이 따로 없고, 현실이라면 나보고 또 어쩌란 말인가. 벽을 두들길 힘도 없었다. 짜증 끝에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나왔다.

“... 내 사죄하지. 내가 죽었건 안 죽었건 사실 크게 관련 없는 일이오. 그보다 신사는 여인의 눈물을 목도하고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소. 무엇이 당신을 그렇게 슬프게 하는 것이오? 아름다운 아가씨.”

저 해골이 날 구슬리려고 하고 있다.

“아저씨가 상관할 일이 아니잖아요.”

퉁명스럽게 돌려주었다. 해골은 손가락을 모아 달그락 거리며 다시금 아래턱을 벌렸다.

“물론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그 턱 아래로 떨어지는 눈물은 신경이 쓰이는 걸. 혹시 원하는 거라도 있다면 내게 말해보시오. 무력하지만 이내가 도울 일이 있을지도 모르잖소?”

“난.. 그냥...”

설움이 복받쳤다. 저절로 언성이 높아지고 말았다.

“이 빌어먹을 곳에서 나가서 잠이나 푹 자고 싶을 뿐이라고요! 아저씨랑 뭐라고 이야기 하는 것도 다 짜증나요. 왜 내가 당신이랑 이야기 같은 걸해야 하죠? 당신은 죽었잖아요! 애당초 왜 이런 곳에 떨어져서...”

“......”

해골은 가만히 머리를 기울이고 있었다. 귀가 없으니 저런 식으로 잘 들으려고 하는 모양이었다. 생각해 보면 저 해골은 나한테 저런 말을 들을 이유가 없었다. 잘 쉬고 있는 무덤에 내가 쳐들어온 꼴이니...

“그러니까 요는 여기서 나가고 싶다는 것 아니오?”

“됐어요. 당신한테 화내려던 게 아니었...”

“좀 더 일찍 말하지 그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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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2024년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공고 mirror 2024.02.26 1
공지 단편 ★(필독) 독자단편우수작 심사방식 변경 공지★5 mirror 2015.12.18 1
공지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 (3기 심사단 선정)4 mirror 2009.07.01 3
537 장편 네크로포비아 _ 1 회색기사 2014.05.22 0
536 장편 빨간색 스포츠카를 따... 어느 지방 사서 2014.04.21 0
535 장편 천국의 계단 -2- 어서오세요 아시리아에! 이은 2014.02.25 0
534 장편 천국의 계단 -1- 죽은 자들의 세상 이은 2014.02.25 0
533 중편 린트 열전(1) ㅆㄱ 2014.01.23 0
532 장편 린트 열전(1) ㅆㄱ 2014.01.23 0
531 장편 (시크릿 오브 고스트) 제 5 장 이유3 하늘높이 2013.12.28 0
530 장편 (시크릿 오브 고스트) 제 5 장 이유2 하늘높이 2013.12.19 0
529 장편 (시크릿 오브 고스트) 제 5 장 이유1 하늘높이 2013.12.13 0
528 장편 ( 시크릿 오브 고스트) 제 4 장 유령빌라지 N115 하늘높이 2013.12.05 0
527 장편 (시크릿 오브 고스트) 제 3 장 예언3 하늘높이 2013.12.04 0
526 장편 (시크릿 오브 고스트) 제 3 장 예언2 하늘높이 2013.11.29 0
525 장편 (시크릿 오브 고스트) 제 3 장 예언1 하늘높이 2013.11.26 0
524 장편 (시크릿 오브 고스트) 제 2 장 소년2 하늘높이 2013.11.23 0
523 장편 (시크릿 오브 고스트) 제 2 장 소년1 하늘높이 2013.11.20 0
522 장편 (시크릿 오브 고스트) 제 1 장 보이지 않는 존재 하늘높이 2013.11.18 0
521 장편 (시크릿 오브 고스트) 프롤로그 - 나 아닌 나의 이야기 하늘높이 2013.11.16 0
520 장편 천국으로부터의 탈출 - 2 - 거품 2013.08.02 0
519 장편 천국으로부터의 탈출 -1 - 거품 2013.08.01 0
518 장편 모렐 박사의 환상 괴담 이야기 랜디 2013.07.03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