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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네크로포비아 _ 1

2014.05.22 02:2005.22

#_ 우는 아이.

아이는 천진하게 웃었다. 장난감을 집어 올렸다가, 내려놓았다가, 반복했다. 블록을 쌓고 있다. 네모진 것 위에 세모난 것을 얹었다. 그리고 그 위에 둥근 것을 올려놓았다가 그것이 여의치 않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는 배웠다. 똑똑한 아이였다. 방에 누군가가 들어섰다. 하얀 옷을 입은 간호사. 그녀가 유리 상자에 든 무엇인가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아이가 호기심을 보이며 상자에 다가섰다. 간호사는 마치 도망치는 것처럼 자리를 피했다. 아이가 입술을 꼼지락 거렸다.

‘무엇. 누구.’

입술이 움직였다. 아이가 유리벽에 손을 올렸다가 화들짝 놀라며 손을 때었다. 잔뜩 놀란 표정이 되었다가, 이내 어깨를 움찔거렸다. 울음을 터뜨렸다. 허나 누구 하나 다가오는 사람 없었다. 바닥을 구르고 아등바등 비벼대어도 어느 누구 구하러 오는 사람이 없다. 두려운 것 같았다. 미소는 사라지고 그 위를 공포가 뒤덮었다.

아이는 필사적으로 반대편 벽을 향해 기었다. 하얀 살결이 경련했다. 눈을 뒤집었다. 입가에는 거품기가 물렸다. 단순한 경련이 아니었다. 온몸에 힘줄이 곤두서고 있었다. 아이가 허리를 꺾었다. 이래서야 단순한 울음이 아니다. 방 밖에서 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이리저리 오가고 있었다. 위급한 상황이었다. 문이 벌컥 열리고 하얀 옷의 남자가 들어왔다. 그가 안경을 추켜올렸다. 손에는 주사기가 들려있었다. 새하얀 미등에 주삿바늘 끝이 반짝였다. 열린 문틈으로 경계 음이 들려왔다.

찌르르릉, 찌르르릉. 위급한 상황이었다.

찌르르르릉-

아이가 경련했다. 남자가 달려들었다.

1_ 새벽의 옥타브

찌르르르릉-

자명종이 시끄럽게 울어댔다. 저 시계를 구입한지 벌써 3년이 지났다. 몇 번이나 배터리를 갈아주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특별히 수리를 하거나 했던 기억은 없다. 애당초 수면에 목을 매는 몇몇 사람들과 달리 나는 깨어날 때 자명종에 거의 의지하지 않는다. 그렇게 푹 잠드는 일이 없는 머릿속에서 간밤에 꾼 정체불명의 꿈들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느릿느릿 환상을 걷어내 듯 손을 움직여 자명종의 머리를 두들겼다. 풍뎅이 모양의 자명종이 울음소리를 뚝 그쳤다. 녀석이 우는 것을 멈춤과 동시에 내 하루는 시작된다.

두꺼운 커튼을 걷었다. 이른 시간에 하늘은 아직 지난밤의 먹빛을 머금고 있었다. 머리는 사방으로 흩어져 있었다. 아침을 준비했다. 토스트기에서 빵이 튀어 오르고, 익숙한 손길은 계란 후라이를 뒤집었다. 누군가가 본다면 건전 성실하다고 칭찬할 만한 삶이겠지만, 나는 그저 할 일이 없을 뿐이다. 짧은 수면과 비어있는 아침. 먹고, 먹기 위해 일하는 것이 얼마나 무료한 삶을 채워주는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집을 나섰다. 머리는 단단히 묶었다. 높은 구두가 또각거린다. 자부심의 높이일까, 허영의 높이일까. 아무래도 좋았다. 오늘도 써야 할 글이 있으며 귀찮게 해야 할 누군가가 있다. 내가 하는 일은 마치 파리 같았다. 냄새가 나는 곳, 무언가 썩은 곳이 있으면 어떻게 서든지 꼬여 들어서 먹을거리를 찾아내야만 했다. 때로 생을 유지하는 것은 그런 것이다. 하루하루를 메워가면서 텅 비어있는 삶이라는 그릇에 오늘 치 식사를 채워 넣는 것이다. 익숙한 거리가 이어졌다. 아파트 단지를 지나서 버스 정류장. 아직도 구입하지 못한 마이카. 있으면 좋겠지만 없다고 모자라진 않다. 버스는 회사 앞까지 직통으로 간다. 둘러서 가는 일도 없고, 시간에 늦는 일도 없다. 첫 버스는 텅텅 비어 있다.

회사에 도착했다. 해가 조금 솟고 여름이 서서히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다. 매미가 노래한다. 귀가 먹먹할 정도로 시끄럽게 울어댄다. 하지만 나 들으라고 우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들에게 관심이 없고, 그들도 나에게 관심이 없다. 새벽이슬이 말라가고 있었다. 마른 몸을 이끌고 3층에 위치한 내 사무실로 향했다. 이제 막 청소를 끝낸 듯, 건물 전체가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의심할 여지없이 오늘의 최 조출 사원은 나다.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아, 예.”

대답을 머뭇거렸다. 회사에 저런 사람이 있었던가? 그것도 우리 사무실에. 그것도 떡 하니 내 데스크를 차지하고 앉아서 슬쩍 손을 드는 저 남자. 납득이 안가는 상황이었지만 일단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그보다, 거긴 제 자리인데요.”

“그런가요.”

남자는 슬쩍 몸을 들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해하는 기색은 없었다. 슬쩍 남자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창백할 만치 하얀 얼굴. 대조되는 괴이할 정도로 검은 머리칼. 마른 턱선에 건조한 눈빛. 미남이었지만 호감이 가지 않았다. 나는 슬며시 내 자리에 가서 앉았다. 다행히 내 물건들을 건드리지는 않은 것 같았다. 의심스럽다. 신입이 온다는 말도 없었고 신입이 저렇게까지 당당할리도 없었다. 관리인인가. 정장을 빼입은 관리인이라니 우습다. 청소하는 사람 일리도 없다. 신경이 쓰였다. 슬쩍 돌아보면 그는 팔짱을 끼고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

아무 말이 없다. 차라리 그가 아무런 말도 걸지 않기를 바라면서 랩탑을 펼쳤다. 부팅되는 동안은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참을 수 없을 만큼 신경이 쓰였다. 자기암시를 반복했다. 모르는 사이다. 모르는 사이일 뿐이다. 아무런 관계도 없다. 부팅이 끝났다. 이제 머리를 박고 일에 매진하면 그만이다. 써야할 칼럼이 있었다. 손가락을 키보드 위에 올렸다.

“그런데 말입니다.”

흠칫 어깨가 떨렸다. 그가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요컨대 말을 걸어오는 무엇인가는 그게 무엇이 되었건 간에 말을 걸어오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닌 당신에게만 들리는 말이라면 보다 중요한 이유가 있을 법도 한데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이해가 안 가네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어깨가 떨렸다. 한쪽 손으로 어깨를 감추었다.

“메시지는 항상 간단합니다. 두려움이라는 이름으로 그 모든 것들을 무시해 버리면 들리지 않는 것은 당연 하겠지만,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1분, 1분일뿐이지요. 1분만 참으면 모든 내용을 이해하실 수 있을 텐데.”

나는 고개를 돌렸다. 한 손은 핸드폰을 들고 있었다. 곧바로 경비실에 연락 할 생각이었다. 남자는 내려다보는 눈길로 나를 보고 있었다. 한쪽 입술이 웃었다. 등골이 섰다.

“어, 어서 나가지 않으면 경비를 부르겠어요.”

“일단 나가지요. 당신 머릿속에서 나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남자는 빙글 몸을 돌렸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충고를 드리자면, 누군가가 말을 걸었을 때 무시하는 것은 예의가 아닙니다. 특히 그것이 호의적이고 목숨이 걸려 있는 일일 때는 말입니다.”

말끝에 남자는 두 팔을 들어 올렸다. 툭, 툭, 옷단에서 무엇인가가 떨어져 내렸다. 지네와 비슷한 정체를 모를 생물. 개구리, 온갖 곤충들이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그들은 모두 불길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모두 죽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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