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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계단

2편 어서오세요. 아시리아에!


파티다!”


어느덧 이것저것 하다 보니 저녁이 되었다. 내가 상상한 천국이랑은 많이 다르지만, 아시리아는 내가 상상한 천국만큼이나 풍경이 좋았다. 창 밖으로 점점 해가 지면서 주황빛이 사라지고 은은한 어둠이 깔리고 있었다.


내가 앞으로 살 집은 광장 주변을 둘러싼 건물 중 2번째로 높은 건물이었다.


“자 파티다 파티.”


테이블 위에서 장발의 남자가 소리쳤다, 그러자 다은이 남자의 머리를 잡아당겼다. 장발의 남자는 아프다며 악을 지르고 있었고, 눈에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그와 대조적으로 다은누나는 씨익 웃으며 그를 잡아당겼다.


“내 파티에서 난동부리지 말라고 했는데?”


“아! 아 지금 기억났다! 잠깐만 머리 좀 놔줘!”


장발의 남자는 테이블에서 순순히 내려와서는 바닥에 웅크리고 당겨졌던 머리를 쥐어 잡았다.


이 장발의 남자는 송혁준이다. 고등학생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 어려보이는 외모에다가 피부도 새하얘서 처음에는 고등학생인줄만 알았는데, 나이가 26이라고 한다. 나보다 4살이나 많은 형이다. 머리를 기른 이유는 자신이 락을 사랑해서라고 하긴 하는데, 목소리가 앳되고 가늘어서 아무리 봐도 저 사람이 락이라는 장르를 소화하기는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키도 작고 체구도 작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여장을 시켜도 될 것 같다는 오묘한 생각이 들었다.


“다들 모여주세요.”


거실에서 루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방 구석에서 아는 사람도 없이 혼자 쓸쓸하게 있던 나에게는 그만큼 반가운 목소리가 없었다. 나는 쏜살같이 거실로 달려가 앉았고 다른 4명은 느긋느긋하게 걸어나왔다. 다행히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게 위안거리였다.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을 찬찬히 훝어 보았다. 여자2명 남자2명 그리고 나와 루라까지 해서, 이곳에는 3명의 남자와 3명의 여자가 있다. 루라 말로는 다른 사람이 한 명 더 있다는 것 같은데 웬만해서는 방에서 나오지 않는 타입이라서 이런 파티에는 한 번도 낀 적이 없다고 한다.


루라와 다은누나 (이곳에 누님 같은 존재라고들 하신단다.) 그리고 혁준이형 처음 보는 얼굴의 여자 한명과 안경 쓴 키큰 남자. 이게 루라의 패밀리같다. 패밀리라는게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가족을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 다들 너희들을 오늘 여기에 부른 것은 다들 알다시피 우리의 패밀리 멤버가 한 명 더 늘었기 때문이다.”


다은누나가 폼을 잡으며 연설을 했지만 다들 그다지 주의 깊게 듣는 눈치는 아니었다. 파티를 얼마나 많이 하면 다들 파티라는데 이런 싸한 반응을 보이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일단 다들 자기소개들 해봐.”


먼저 일어난 것은 루라였다.


“저는 루라 라고 해요. 이루라. 이 이름은 원래 본명은 아니고, 천국으로 올 때 기억을 잃어서 다은누나가 지어 준 이름이에요. 말투가 조금 느린 건 이해해주시면 고마울 것 같아요. 그리고 이 복장이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 했을 수도 있는데 저는 섬유 알레르기가 있어서 이 옷 아니면 못 입고 다니거든요. 처음에 볼 때 이상한 사람 보듯이 쳐다본 것 같아서요. 아, 취미는 드라이브 그리고 잠자는 거에요.”


다은누나가 옆에서 거들었다.


“잠자는 건 취미가 아니라 특기 아닌가?”


“잠이 많은 게 죄는 아니에요.”


루라는 토라진 표정을 지었다. 그 다음으로는 혁준이 형이 일어났다.


“내 이름은 송혁준이야. 26살이고 지금은 작은 밴드에서 보컬로 활동하고 있지”


“어제 막 결성된거 아니였어?”


옆에 있던 안경 쓴 남자가 거들었다. 그러나 혁준이형은 신경 쓰지 않고 다시 소개를 이어갔다.


“이 머리카락은 나의 남성적인 매력과 락에 대한 열정을 나타내는 나의 상징이야.”


남성적인 매력이 어디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굳이 말해도 인정하지 않을 것 같았다.


“가끔씩은 광장 앞에서 연주도 하니까 심심하면 구경이라도 와.”


다은 누나가 일어나서 자신을 소개했다. 다은 누나는 예상 외로 나와 공통점이 많았다. 누나는 천국에 오기 전에는 화가였다고 한다. 나도 한때는 일러스트레이터를 꿈꾸고 있었으니까 많이 배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활발하고 붙임성이 좋으니까 부담가지지 말라는 당부도 해 주셨다.


이제부터는 전혀 모르는 사람들뿐이었다.


아까 안경을 썼던 남자가 일어났다. 갈색으로 빛나는 곱슬머리가 특징적이었다. 키가 상당히 컸다. 뭔가 인상을 직업 하나로 표현하라는 문제를 낸다면 이 사람은 딱 과학자였다. 심지어는 입은 복장도 하얀 가운이었다.


“내 이름은 지형준이야. 26살이고 뭐 딱히 소개할 거리는 없는 것 같은데. 다은이가 눈치를 심하게 주네 하하.. 나는 일단 이 근방에서 경찰로 일하고 있어 광장에서 나가면 그 옷집 옆 골목 알지? 그쪽으로 가다보면 경찰서가 나오는데, 심심하면 들러. 어차피 업무도 별로 없어서 심심하거든.”


“으이그 너는 경찰이라는 놈이.”


다은 누나가 혀를 쯧쯧 차자 형준이 형이 익살스럽게 웃으며 혀를 내빼보였다.


“아 그리고 난 경찰이라서 이 근방에 대해서 잘 아니까 궁금하면 물어보러 와.”


“네.”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투가 조금 가볍고 장난스럽기는 하지만, 그 목소리가 부드러워서 죽기 전에 알고 지내던 친한 형 같았다.


“마지막으로 서현이만 남았나?”


형준이형이 안경을 고쳐 쓰며 고개를 뒤쪽으로 돌렸다. 그 곳에는 쪼그려 앉아서 핸드폰을 만지작대는 여자가 있었다. 특징 있게 생기지는 않았다. 그래도 어디 가서 얼굴 들이밀면 예쁘다는 말은 들을만한 얼굴이었다.


“나? 나는 강서현. 22살이야 원래 죽기 전에는... 내가 뭘 했더라?”


“대학생이었지”


“그래, 대학생이었어. 가수가 꿈이었는데, 잘 되지는 않더라고. 그래도 여기 와서는 어느 정도 실력도 늘어서 보컬트레이닝을 하고 있어. 특기는 물구나무서기 잘하고 좋아하는 건 카레랑 마늘빵이랑 짜장면. 싫어하는 건 배고플 때 말거는 거. 아직 여기 온지 얼마 안 되서 적응도 안 될 것 같은데 말이야. 그럴 때는 물구나무서기를 해봐, 정신이 맑아질 거야.”


뭐지? 이 사람은? 평범하다고 생각했는데 제일 이상한 사람이었다. 동갑내기인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는 게 그나마 안심이었는데. 그런 생각들로 머리가 혼란에 휩싸여 있는데,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다은 누나가 내 팔을 잡아들고 일으켜 세웠다.


“자 이제 소개해봐. 오늘의 주인공 납시었습니다!”


다은 누나는 사회자처럼 나를 소개하고는 다시 다른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 수달처럼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나는 소개라는 것을 별로 해 본적이 없어서 아무런 말도 없이 쭈뼛대며 서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다들 엄청나게 기대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부담된다. 이렇게 앞에 나서는 것도 부담되는데 소개를 하라니.. 나는 그래도 뭐라도 말해야 될 것 같아서 생각을 했다.


내 자신에 대한 소개라... 되뇌어보면 나는 소개할 만한 게 정말 별로 없었다, 세상에서 나만큼 평범한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고 특별히 좋아한다거나 잘하는 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그림 그리는데 약간의 재능이 있었고, 어릴 적부터 그림을 배워왔기 때문에 일러스트레이터라는 직업에 대해서 꿈을 꾸게 되었고 결국은 그것을 이루지도 못하였다.

내 인생은 20대에서 끝나버렸다. 이제 시작한 22세에서, 조용하고 붙임성 없는 성격 때문에 연애라는 것은 해보지도 못했고 친구들이 많이 있긴 했지만, 솔직하지 못해서 진정한 친구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다.

정말 솔직히 말하면 내 인생에서 진정한 친구는 사진과 그림뿐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만족하려 했지만, 그 정도로 만족되는 것이 아니었나보다 내 욕구는


“좋은 자기소개야!”


다은 누나가 빙긋 미소를 지으며 허리에 두 손을 올렸다. 앗차,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었나 보다. 생각을 너무 깊게 하다보면 일어나는 버릇인데.


그런데 다들 반응이 나쁘지가 않았다. 내 보잘것없는 삶에 대해서 이만큼이나 관심을 가져 준다는 것이 단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진정한 친구를 만든 적이 없다고 했지?”


혁준이형이 나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키가 작아서 그런지 팔이 나의 어깨 위까지 닿지는 않았다. 그때 다은 누나가 샴페인 병의 코르크를 따서 거품을 터뜨렸다.


“이제 진정한 친구를 만들 시간이야. 어서와 아시리아에!”


그리고는 축배가 이리저리 오갔다. 다들 파티가 지루하다고 하더니 어느 순간 다들 진심으로 이 파티를 즐기기 시작했다. 진정한 친구. 천국이라고 불리는 이곳에서 특히 이 작고 아담한 광장이 있는 아시리아에서


왠지 모를 벅찬 감정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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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일어나!”


자석처럼 붙은 눈꺼풀을 들어 올리니 내 앞에 있는 사람은 서현이였다. 창 밖에서 강렬한 햇빛이 내리쬐는 걸 보니 아마 아침인 듯 했다.

 근데 왜 나만 이 방에서 혼자 누워서 자고 있지? 내방도 아닌데. 주변을 둘러보니 주변은 완전 난장판이었다. 책상은 언제 멀쩡했냐는 듯이 다리 한 쪽이 나가있었고 이곳저곳에 비닐봉투들과 종이, 휴지들이 널브러져있었다.

관자놀이가 쿡쿡 쑤셨다.


“뭐야? 왜 내가 여기서 이러고 있지?”


서현은 질렸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너 술 못 마시지?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기억 못하고?”


“왜?”


“다음부터는 절대 술 마시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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