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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쥐보그의 손자들

이덕형,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02년 9월



hermod (german.banpo.or.kr shiderk@yahoo.co.kr)



[다쥐보그의 손자들]은 몇 가지 의미에서 즐거운 책이다.

우선 책 자체의 물리적 형태가 산뜻하고, 각주를 사각 박스에 넣어 본문 오른쪽 하단에 위치시킨다는 신선한 아이디어가 좋다. 내용면에서는 무엇보다도, 이제까지 한국에 소개된 적이 없던 러시아 신화 전설의 전체상을 역사적 사회적 맥락에서 차분하게 풀어내고 있는 점이 돋보이며, 한국어로 출간된 많은 인문서적이 충분한 학술적 의미를 지니면서 각주에 자리 잡고 있는 점 또한 한국 인문학의 발전성을 느끼게 했다. 외국어 서적으로만 주석을 달면서 인문서를 저술해나가지 않았다는 점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면서도 신선하다. 이것은 ‘번역’이라는 행위에 대한 저자의 민감함이라고 여겨지는데, 이는 저자가 미하일 바흐찐의 [프랑수아 라블레의 작품과 중세 및 르네상스의 민중문화]라는 중요하고도 방대한 책의 당당한 번역자인데서도 기인할 듯 하다. 덧붙여 이 책은, 나로 하여금 러시아어 학습의 뜻을 품게 한 점에서 개인적 의의가 있다.

그러나 이 책에도 불만이 없지는 않다. 이 책은 아마도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듯 하여, 주석이 있어야 할 많은 대목에서 주가 없다. 이는 저자의 배려라고 생각되지만(러시아어 전문서의 서지사항으로 가득한 책을 보는 건 고문(拷問)에 가까운 느낌을 주겠기에), 그래도 역시 어딘가 아쉽다. 이러한 아슬아슬한 줄타기적 일반서적을 낼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 한국 출판계의 현실임을 새삼 깨닫게 한다.

또 하나는 부록이 없다는 점이다. 저자의 말대로 슬라브족의 신화는 어떤 명확한 체계를 지니지 못한 채 크리스트교에 압도되었기 때문에 매우 혼란스럽다. 그렇기에 부록으로 주요한 신의 이름과 특성 같은 것을 간단하게라도 목록으로 만들어 주었다면 이해에 더욱 도움이 되었으리라 생각된다.

나는 이제까지 게르만 신화가 그리스 신화에 비해 체계나 유물 자료가 빈약하다는 것만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나마 게르만 신화 쪽이 슬라브 신화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인도 신화에 비하면 중국과 일본의 신화 자료가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나마 한국의 신화보다는 풍부하다는 현실과 비교된다고 할까. 한국의 신화야말로 슬라브 신화의 상태와 비슷해 보인다. 제주도 신화를 포함해도 말이다.





게르만 신화와 전설
저자: 라이너 테츠너
역자: 성금숙
서지사항: 범우사, 2002년

이 책은 이제까지 한국어로 출판된 게르만 신화 전설 관련 서적 중 가장 충실한 내용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된다. 아마도(이 부분은 뒤에서 지적하겠지만) 역자가 독일에서 구입한 일반인 대상의 게르만 신화 전설 서적을 번역한 듯한 이 책의 내용은 크게 3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 신화의 세계}와 {2부 시구르드/지그프리트 전설의 세계}도 물론 충실하지만, 3부에 실린 대장장이 뵐란트와 베른의 디트리히에 대한 이야기들은 한국에 거의 소개된 적이 없기에 무엇보다도 주목된다. 개인적으로도 디트리히 전설을 알고 싶었지만 독일어문장을 읽을 수 없기 때문에 곤란해 하고 있었던 차에, 이 책 덕분에 차분하게 독서할 수 있게 된 것은 고마운 일이다.

한편 이 책은 앞서 말했듯이 ‘아마도’ ‘일반인 대상’의 게르만 신화 전설 서적으로 생각된다. 범우사를 비롯하여 많은 일반인 대상 번역서에서도 발견되는 아쉬움이지만, 우선 원저자에 대한 소개가 없고, 다음으로 내용에 대한 각주가 없다. 원저자에 대한 소개는 저자의 저술의도 및 내용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이기 때문에, 다른 출판사에서도 번역서를 낼 때 이 점을 고려해주었으면 한다.

다음으로 주석의 문제. 이 번역서의 경우에는 책의 뒷부분에 일괄적으로 원서에 실린 참고문헌을 옮겨 놓아 주어서 다행이지만, 책의 본문에는 하나의 주석도 달려있지 않다. 이것은 일반인 상대의 책이기 때문에 그랬을 것이고, 아마도 원서에서부터 이런 형태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한국어를 사용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있어서 책의 본문 아래에 빼곡히 자리 잡은 외국어 참고문헌의 서지사항은 무의미하겠지만, 만약 이 책에 의해 게르만 신화와 전설에 대한 흥미를 느끼고 더욱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아쉬운 일이 될 것이다. 물론 거듭 말하지만 원서 자체가 이런 형태였을 것 같고, 학술서의 성격을 띤 책 중에는 이런 식의 전체적 윤곽을 잡아주는 책이 없었을 것 같기도 하지만, 아쉬워서 하는 소리다.

한편 이 책의 고유명사는 모두 독일어식으로 읽혀지고 있다. 그러나 1부와 2부 일부의 원천은 아이슬란드에서 중세기에 작성된 사본들이고, 따라서 아이슬란드어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한국 신화의 일부가 일본 책에 소개되어있다고 해서 그 이름들을 일본식으로 읽는 것이 부적합하듯이, 같은 이유에서 이 책에서 [니벨룽의 노래]와 디트리히 전설을 제외한 다른 내용은 원천을 따라서 아이슬란드어 식으로 읽혀야 할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예전에 하이텔 환타지 동호회에서 게르만 신화에 대해 소개할 때 어떤 분과 논쟁한 점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는 많은 삽화가 실려 있다. 원서에 수록되어 있었을 수도 있지만, 어쩌면 번역자가 수고해서 내용에 알맞은 삽화를 실어놓은 것 같기도 하다. 시각적 효과가 탁월하고 읽는 즐거움을 더하여 주지만, 역시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삽화의 출처가 전혀 적혀있지 않다는 것이다. 누가 그렸는가까지는 나와있지만, 그 화가 이름의 알파벳 표기라든지 삽화가 위치한 서적 또는 장소가 전혀 표기되어 있지 않아서 유감이다. 물론 이 점은, 아마 그림의 저작권 문제 때문이었을 것이지만.

이런 저런 불만을 토로했지만, 그래도 이 책은 이제까지 한국어로 나온 게르만 신화 전설 관련 서적 중에는 가장 훌륭한 책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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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아 04.03.12 17:39 댓글 수정 삭제
    러시아 신화는 아직 접해본 적이 없던지라.. 덕분에 재밌는 책을 알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