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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고! 우울증 환자 구독불가
―――지나친 탐독은 우울증 및 기타 정신 질환의 원인이 됩니다. 1일 적정 구독량: 45쪽 이하

   본문을 읽기에 앞서 표지를 한번이라도 훑어본 독자는 이러한 경고 문구를 발견하고 쓴웃음을 지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본서에 실린 단편들을 한편씩 탐독해 나가면서 이 경고문의 의미를 체감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 이 단편집은 한마디로 우울하다. 지은이가 현대 문명과 인류에 대해 던지는 시선은 극히 부정적이다. 그의 눈으로 바라본 인류는 ‘가히 건망증의 천재라고 할 만한 족속들({바람에게 말하노니})’이며 ‘지구의 여러 생물들께 무척이나 미안한, 불필요한 존재({디오니소스})인 데다가, 그중에서도 한국인은 ‘무한한 우주가 그 종말까지 계속할 분자 조합에서 나올 수 있는 잔악함의 극점에 위치한 종족({달 밝은 밤})’이기까지 하다(!). 엄청나게 심하다 싶은, 전 인류에 대한 이런 가혹한 비난을 대하면―――본인도 그 어리석은 종에 속하는지라―――어깨가 절로 움츠러든다. 그러나 더욱 우울한 것은 이에 대해 쉽게 반박할 수가 없다는 점이다. 본서의 작품들을 읽고 받게 되는 섬뜩한 느낌은 단지 ‘정말로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는 추상적 리얼리티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등장인물들의 내적 독백과 심리 묘사를 읽으며 우리 모두는 느낄 수밖에 없다. ‘정말로 그렇다’는 것을.

   이 단편집 전체가 한없이 심각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엽기호러미쳐쇼}, {이박사 외계인 만나다}와 같은 작품에서는 ‘이박사’―――혹시나 해서 밝혀두지만, 두 작품에 등장하는 이박사는 서로 다른 사람이다―――라는 독특한 캐릭터가 등장해 독자를 한바탕 폭소케 한다. 특히 시간여행기를 발명한 자칭 천재 과학자 이박사가 등장하는 {엽기호러미쳐쇼}는 제목 그대로이다. 이 작품 앞에서만큼은 타임 패러독스 때문에 불가능한 일이라거나 정신이 없다거나 하는 딴지는 구석에 던져두기로 하자. 시니컬하면서도 잠재적인 폭발력이 있는 독특한 유머에서도  오늘날의 기술 문명에 대한 통찰력이 엿보인다. 자신이 처한 상황 하나 객관적으로 직시하지 못하고 위험한 기술을 함부로 사용해 결국은 엄청난 파국을 맞게 되는 이박사에게 시간여행기는 그야말로 ‘아이스-9’(커트 보네거트, [고양이 요람])이나 다름없었다. 사실 이박사는 위험한 물건들을 무책임하게 만들어 내고, 또 별 생각 없이 사용하는 우리 자신의 어리석음을 대변한다. 그에 비해 {이박사 외계인 만나다}는 조금 이념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데, 인물의 희화화가 탁월하여 풍자의 효과가 두드러지는, 유쾌하면서도 사람들의 편협한 사고방식에 제동을 거는 글이다.

   그러나 유머가 있건 없건 간에, 앞에서 언급했듯 본서에 제시된 인류의 실태나 전망은 우울하기 짝이 없다. 인간은 어리석고 탐욕스러우며, 자신을 위해 남을 희생하며 살아가는 생물이다. 그 때문에 그들은 세균까지 죽여 버리는 폭탄으로 전부 자멸하고({바람에게 말하노니}), 우주의 타 존재들을 학살하거나 착취하고({우주의 꽃}, {달 밝은 밤}), 급기야는 인간 생명의 가치마저 폐병아리의 미약하고 덧없는 그것으로 만들어 버린다({아기와 나}). 그러나 희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바람에게 말하노니}의 소년처럼, 지은이는 아직 희망을 붙든 채로 너무 늦지는 않았다고 말한다({디오니소스}). {드라곤의 숲}에서는 인간 역시 선한 존재이지만 무지와 타 존재에 대한 몰이해 때문에 탐욕과 이기심, 맹목을 드러낸다는 인간관을 보여주고 있다. 만약 그렇다면, {기억을 지워드립니다}에서 사랑의 아픔과 상처를 추억으로 삭여 앞으로의 성숙한 사랑을 기대할 수 있는 것처럼, 인간의 어두운 면 역시 우리의 것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우리 존재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보다 성숙할 수 있지는 않을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사실 이 작품들은 인류의 어리석음과 그들이 만들어낸 왜곡된 현실에 질려버린 이의 염세주의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추악한 세상의 모습에 실망하고 분노하면서도 지은이는 후기에서 자신의 ‘세상에 대한 커다란 사랑’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의식을 반영하는 것은 {우주의 꽃}, 앞서 언급한 {드라곤의 숲}, 그리고 {오리 날다}와 같은 작품들이 대표적인데, 앞의 두 작품은 주로 다른 존재에 대한 이해에서 나오는 용서와 공존, 뒤의 작품은 모든 생명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메시지가 표현 안에 그대로 드러나는 위의 작품들보다 지은이의 의도를 잘 담아낸 것은 오히려 이 단편집에서 조금 이질적이다 싶은 작품인 {Back-up}이다. 이 작품이 이질적이라 함은, 물론 ‘기억에 대한 기술적 컨트롤’이라는 과학적 소재를 사용한 것은 본서에 실린 여러 단편들({팔림세스트 혹은 러브스토리}, {기억을 지워드립니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지만, 다른 작품들처럼 통렬한 비판 의식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으며, 어찌 보면 창작에 임하는 지은이 자신의 마음가짐을 투사한 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이 그가 자신의 글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메시지를 가장 잘 담아내고 있는 지도 모른다. 굳이 전 인류에 대한 사랑과 연민을 부르짖지 않아도, ‘가닿을 수 없음을 분명히 알고 있지만 그래도 필사적으로 뻗쳐보는, 이해와 사랑을 갈구하는 손짓’과 같이 지은이 자신의 ‘슬픈 희망’을 드러내는 표현에는 분명 독자를 솔직하게 감동시키는 무엇인가가 있다.


   단편집이 출판되고 난 후 거울 기획란에 올라온 지은이와의 대담에서, 지은이는 앞으로는 자신의 작품들에서 드러나는 약점들을 수정이나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새로운 창작의 방향을 모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것이 어떤 종류의 변화가 되고, 그의 세계관에 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한 사람의 독자로서 그에게 계속해서 바라는 것이 있다면, 글과 사람을 사랑하는 일을 멈추지 말아달라는 것,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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