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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을 부수기 전에 부숴야 할 것들]. 제목부터가 파괴적이고 공격적인 책을 책상 위에 올려두고 오가는 동안, 직장동료들은 ‘우울증 환자 구독불가’라는 오만한 문구에 킬킬 웃으며 대체 무슨 책이냐고 자주 물어왔다. 묘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지만, 만약 그들의 관찰력이 조금만 더 뛰어났더라면 HOPE, 희망이라는 눈부신 단어가 피로 칠갑이 되어 있고, 기괴하게 뭉뚱그려진 인간들이 희망에 못 박혀 죽어 가며 희망을 모욕하고 있음을 발견했을 것이다. 친절하게도 책 표지 뒷장에 그려진 이 그림은 바로 이 책의 전반적 주제였다.

이 책은 제목부터도 그렇지만 표지의 그림자체도 심상치 않다. 솔직히 고백하건데, 나는 이 작가의 소설보다는 간혹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그의 그림에 더 관심이 많다. 그림은 사실과 상징이라는 이중적인 모순을 가지고 있는 매력적인 예술이다. 그림은 문자보다 훨씬 더 감각적이며 적나라하게 어떤 모습을 드러냄과 동시에 사실적으로 보이는 그 모습의 구석구석에 다양하게 해석 될 수 있는 상징을 담는다. 이러한 모순을 꽤나 능숙하게 구사하며 때로 서늘한 이중성을 그려내는 작가의 그림을 보면서 나는 종종 탄복해 마지않았다.

그래서인지 나는 책을 처음 봤을 때도, 책을 다 읽고 난 뒤에도 이 책 속에 담긴 모든 글보다 오히려 표지에 놓인 삽화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했고, 소설가인 작가에게는 대단히 모욕적이게도 이 책은 오직 이 삽화 한 장을 그리는 것만으로 끝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표지에 놓인, 인간인지 외계인인지 아니면 괴물일지 모를 인물은 구부정한 자세로 서서 불안정하며, 강박적이고 억압된 느낌을 준다. DAP(Draw-A-person Test)의 상징을 따라서 보자면, 자아개념을 비대한 머리는 공격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외부와의 의사소통을 상징하는 눈은 아예 흔적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표현되어 현실을 보려 들지 않는다. 이빨을 드러낸 입은 물론이거니와 이 인물에서 가장 강조되어 크게 그려진 손은 반쯤 주먹을 쥔 채 인물의 모든 무게를 지탱하고 있다. 들기조차 힘겨워 보이는 이 손은 현실을 향해 뻗을 수 없을 정도로 무겁고 그 무거운 무게 덕분에 세상을 향해 휘두르면 충분히 흉기가 될 법한 주먹을 억제한다. 그리고 그 공격성의 무게 때문에, 나아가고자 하는 인물의 발걸음은 그대로 정지해 있다. 만약 이 인물이 앞으로 나아가고자 한다면, 무한한 공격성을 담고 있는 비대한 주먹으로 전진해 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책을 읽기 전에 그렇게 표지의 삽화를 읽은 나는, 책을 다 읽고 난 뒤 인간에게인지 작가에게인지 모를 불쾌감과 그에 상반되는 묘한 기분을 곰씹으며 다시 삽화를 다시 한 번 꼼꼼히 읽었고 이 삽화는 바로 이 책을 인물화 했다는 결론에 다다랐다.(혹은 주인공 중 하나) 물론, 삽화에 대한 처음 느낌과 나중 느낌은 차이가 있었는데, 그건 마지막에 이야기하도록 하자.

책에 실린 총 13편의 단편들은 1999년부터 2004년까지 작가의 글을 모아놓은 글이다. 쓴 날짜와 상관없이, 실린 순서대로 글을 다 읽은 다음, 나는 다시 한 번 작가의 글을 순서대로 정리해 보았는데 이는 1999년부터 2004년까지 작가의 작업 경향과 철학의 변화를 알기 위한 작업이었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주제나 소재의 측면에서 비슷한 글들을 조금씩 모아 말하고자 한다.

{달 밝은 밤}(1999), {우주의 꽃}(2003), {이박사 외계인을 만나다}(2002), {Another Brick in the Wall pt.4}(2000)은 체제에 대한 참을 수 없는 구역질을 표현한 글이다. 체제나 이데올로기에 대해 비판적이고 풍자적인 단편을 쓰는 SF작가로는 필립 K 딕을 빼놓을 수 없는데, 그의 글이 대체로 은유적이며 완곡한 상징으로 체제에 비판을 가하며 현재를 허구의 무대 위로 올려놓는데 반해, 이 글들 속의 사회는 현실과 혼동될 만큼 우리의 현재와 닮아 있다. 작가는 거기에 대고 직설적이고 맹렬한 비판과―――때때로 절규로 느껴지기까지 하는―――욕설을 퍼붓는다.

책에 실린 단편 중 가장 오래된 {달 밝은 밤}(1999)은 평화롭게 살아오던 외계인들이 지구인들에게서 자본주의를 배우면서 지구인들 중에서도 악랄한 한국인을 욕하며 결국 아득한 우주로 사라져 버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명절 광경 중에서도 혐오스럽고 구태의연한 한국인들의 모습을 마지막 장면에 집어넣어서 스스로가 지구인에다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부끄럽게 느끼게까지 하는 이 글은 자본주의의 미덕 아래 사라지는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애수 어린 진혼곡이다.

욕심으로 인해 전 우주적인 화해의 순간을 자폭으로 장렬하게 장식하는 {우주의 꽃}(2003)은 언제나 너무 늦게 모든 것을 깨닫는 지적 존재들에 대한 냉소다. 지적인 존재들이 구축하는 체제의 갈등에서는 전쟁이 피어나고 남는 건 대립과 자멸 뿐.

{이박사 외계인을 만나다}(2002)는 허구이면서 허구가 아닌 신랄한 풍자이다. 이글은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이데올로기의 대립을 우스꽝스럽고 바보 같은 희극으로 바꾸어 버린다. 그들은 우리에게, 우리는 그들에게 외계인이며 같은 단어는 다른 뜻으로 번역되어 버린다. 체제를 고수하는 이데올로기에는 의사소통 가능 구역이 없으며 오로지 바보놀음만이 남는다.

다른 방식으로 진화하는 외계존재와의 조우를 소재로 한 {Another Brick in the Wall pt.4}(2000)는 마이클 스윈윅의 {슬로 라이프}(Slow Life)를 연상시키는데, {슬로 라이프}가 교신의 형태로 소설을 이끌어 나갔다면 {Another……}는 편지 형식으로 소설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 자아를 상실하고 개체가 하나의 단일체가 되는 하나의 유리탑으로 진화해 가는 외계 존재에 동화를 결심하는 이혜란 박사의 독백은 광범위한 네트워크망의 확산과 함께 아무 의식 없이 몰개성화를 강요하는 체제에 대한 통렬한 비난인 동시에 비명이다.



{디오니소스}(2001), {아기와 나}(2002), {드라곤의 숲}(2001)은 인간의 비극을 정면에서 다룬 글들이다. {디오니소스}(2001)는 독특하게도 쓰레기 분리라는 소재를 끌어와서 결국 우리가 쓰레기가 아니라고 가정하는 모든 사물이 사실은 쓰레기로 분리될 수 있는 모든 것이며, 궁극적으로 인간 역시 세상을 채우고 파괴해 가는 초궁극의 오염 물질이라는 결론에 다다른다. 항상 체제를 파괴하면서 자신이 바라는 이상향을 끊임없이 갈구하는 작가는 이 글에서 오로지 자연만이 남아있는 아름다운 이상향의 도래를 완성시키고 있다.

{아기와 나}(2002)는 GN 연구소에서 애완용 아기를 사게 된 청년의 이야기이다. 몇 작품에서 보았듯이 꽤나 혐오스럽게 다루어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규칙에 따라 이 물건, 저 물건으로 아기용품을 사재던 청년은 애완용 아기에게서 자신을 발견한다. 자라갈 수록 타락해 가는 인간의 순수한 본질은 자기혐오인 동시에 덧없는 인생을 지닌 인간의 비극에 맞닿아 있다.

{드라곤의 숲}(2001)은 지나칠 정도로 습작 느낌이 많이 나는 글인데, 작가가 심심풀이 삼아 쓴 글이라고 여기기로 했다. 간혹 보이는 작가의 소년적인 감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이 글에는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희생하게 된 드라곤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어떻게 보면 결국 인간은 무엇인가를 파괴하거나 희생시키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는 비극적인 존재일 지도 모른다.



{팔람세스트 혹은 러브스토리}(2003), {기억을 지워드립니다: 팔림세스트2}(2003), {Back-up}(2000)은 모두 ‘기억’을 소재로 한 단편들이다. ‘기억’이란 영혼의 지문과도 같아서 한 인간을 다른 인간과 구별지어주는 개인의 역사인 동시에 자아 개념의 핵이라고 할 수 있다. 때로 잊고 싶고, 때로는 지우고 싶으며, 동시에 결코 타인과 공유할 수 없는 유일한 기억은 그래서 대단히 매력적인 소재이다.

{팔람세스트……}(2003)와 {기억을 지워드립니다}(2003)는 모두 기억을 지우는 이야기이다. 다만 {팔람세스트……}(2003)가 임무를 띤 요원이 필요에 의해 기억을 지우고 새로운 기억을 이식 받는 이야기라면 {기억을 지워드립니다}(2003)는 기억을 지워주는 일을 하는 남자가 짝사랑하게 된 여자의 기억을 이식 받아 아픈 기억을 삭인 다음 다시 돌려주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다르다. 전자가 반전을 지니는 차갑고 냉소적인 사랑 이야기라면 후자는 감성적이고 따뜻한 사랑의 이야기이다. 특히나 기억을 삭여서 돌려주는 후자의 이야기는 바늘처럼 뾰족한 비판의 날만큼이나 날카롭고 위태한 감성을 지닌 작가의 조심스러운 감성을 잘 드러내고 있는데, 수줍게 이야기하는 어떤 희망이 짠하다.

{Back-up}(2000)은 같은 기억을 가지게 된 두 인간이 누가 진짜인지 혼란해 하다가, 가짜가 자신의 기억을 가지고 훨씬 더 나은 예술 작품을 만들어 낸 것을 질투하는 진짜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최초 살인을 더듬어 간다. 그리고 역시 기존 체제에 대한 삐딱한 뒤집기 한 판. ‘카인이 아벨을 죽이는 대신 자살해 버렸다면 성서는 어떻게 씌여졌을까?’



{엽기호러미쳐쑈}(2001)는 말 그대로 읽다가 미쳐버릴 것 같은 글이다. 수학적인 차원 속에서 시간여행이라는 소재로 주인공은 무한히 증식되다가 세계를 가득 메울 정도가 되어 버린다. 처음 읽는 순간 징글맞은(...) 루디 러커를 떠올렸는데, 오히려 유쾌한 분위기는 호치 신이치의 글을 연상시켰다. 사소하게 벌린 각은 점차 뻗어 나가면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벌어져 버린다. 사소한 사건에서 시작해서 거대한 비극 아닌 비극으로 끝나는 이 글은 아이디어가 재미있다.



{바람에게 말하노니}(2004), {오리 날다}(2004)는 이 책 속에 실린 단편 중에서는 가장 근작이다. 그래서 앞으로 작가의 현재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글이 아닐까 한다. {바람에게 말하노니}(2004)는 나노 머신 덕분에 죽을 수 없이 계속 재생되는 한 소년의 이야기다. 그의 이야기는 자살로 끝나지만, 그가 바라는 아름다운 이상향은 소년의 희생을 출발지로 삼고 멀리 뻗어 나간다.

{오리 날다}(2004)는 인간의 이기심 덕분에 완전히 초토화 된 땅 위를 날아다니는 ‘천사’라는 존재와 핵 방사능 때문에 태어난 ‘꼽추’를 대비시키면서 결국 천사로 화해 날아오르는 미운 오리 ‘꼽추’에 대해 쓰고 있다. 나는 그 어떤 글보다 이 글이 작가가 고수하는 철학을 제일 잘 상징적으로 그린 글이라고 꼽고 싶다. 이 글에는 작가가 혐오해 마지않는 체제와 그것들이 이끌어낸 전쟁과, 파괴된 지구와, 혐오스러운 인간들의 폭력 그리고 이상향에 대한 희망이 모두 잘 녹아 들어있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에 씌여진 이 두 단편은, 가슴이 터질 정도로 애절하게 이 사회와 현실을 가엾게 여기던 작가가 개선의 여지가 전혀 없기에 혐오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어떤 희망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1999년에 썼던 <달 밝은 밤>에서 그토록 절규하며 세상을 경멸하던 작가가 2003년에서 2004년 사이에 어떤 경험을 했는지 나는 모른다. 그러나 [전직 흡혈귀의 회고]에 실린 단편들에서 기 작가가 부끄럽게 드러내는 감수성을 갑각류 안에 숨은 부드러운 살을 다루듯이 조심스럽게 느껴왔던 나는 어쩐지 근작에 담긴 그런 희망이 못내 즐거웠다. 아마 그건 내가 대체 구제불능인 인간을 혐오하면서도 그 안에 내재된 극렬한 모순을 사랑하기 때문이고, 양날의 검처럼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휘두르는 인간들을 눈물이 날 정도로 좋아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책을 덮으면서 나는 몹시 공격적이고 괴상하게 느껴졌던 표지 삽화를 다시 보며 공격과 파괴 신랄한 비난의 끝에 서 있는 작가의 이상향을 생각했다. 표제를 보자면 우리의 삶을 부수기 전에 부숴야 할 것들을 부수고 나면, 우리는 우리의 삶을 부숴야 할 것만 같다. 그러나 우주는 언제나 꼬리를 물고 순환하기 마련이고, 엘리엇의 말마따나 끝은 또 다른 시작이며, 죽음의 카드는 새로운 시작의 상징이다. ‘그는 계속 달려 나갔고’(오리 날다), ‘소년은 파도 속에서 다시 복구 될지 모른다. 어쩌면, 어쩌면 말이다.’(바람에게 묻노니)

삽화 속의 꼽추는 여전히 땅 위를 걸으며 앞으로 전진 해 나아가고 있다. 문법의 파괴와 문자 나열 방식의 과감한 변형, 때로는 거북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기호의 삽입 등 기존의 것을 파괴하고자 하는 실험정신으로 무장하고 험난한 고난을 넘어 천사의 길을 향해 앞으로 나아가는  듯이 보이는 작가의 건투를 빈다. 그러면서 완전히 책을 치우고 나자, 부수고 싶은 세상이 썩을 대로 다 썩고 나면 그 냄새나는 거름 밑에서 연두 빛 싹이라도 하나 나 주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명멸하다가 사라졌다. 어쩌면, 어쩌면 말이다. 終 (200512270051REDf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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