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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lza2.compilza2@gmail.com   1. 주목받는 작가 사토 유야
   메피스토 상(賞)은 좀 특이한 위치에 놓인 상이다. 일본 유수의 출판사 코단샤에서 발간하는, 미스터리를 중심으로 한 대중문학 문예지인 [메피스토]의 이름을 건 신인상으로, 모집 기간없이 응모된 원고를 대상으로 상에 걸맞다 싶으면 그때그때 수상을 한다. 그래서인지 10년 정도 되는 기간에 20회가 넘게 수상을 하여 다수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이렇게 상을 남발하고 별도의 심사위원도 없이 코단샤 편집부에서 심사한다는 점에서도 상의 인지도와 권위는 떨어지는 편이지만 상 자체보다는 신인에게 화려한 데뷔 무대를 마련해준다는 쪽에 의미가 있는 듯 하다.

   덕분에 메피스토 상은 개성 있고 걸출한 신인을 다수 배출하는 데 기여했으며 특히 초기에 모리 히로시, 세이료인 류스이 등 현재 미스터리 분야의 선두를 달리는 작가를 선보였고 최근엔 마이조 오타로, 니시오 이신, 사토 유야 등 추리 분야를 넘어서 문학계 전체에서 폭넓게 인정받는 작가군을 배출하기도 했다.

   19회 수상자인 사토 유야 역시 추리물을 바탕으로 라이트 노블의 감수성을 지닌 작품을 주로 쓰고 있으며, 기존 문학에서 벗어나 대중과의 소통과 새로운 실험을 추구하는 [파우스트], [신현실] 같은 문예지를 통해 작품을 선보이며 장르를 넘어선 좋은 평가를 얻고 있다.



   2. 그들에게 걸맞는 살인
   괴팍하지만 특이한 능력을 저마다 가진 카가미 가문의 남매. 그중 삼남인 키미히코는 스스로 평범하다고 생각하며 막내 여동생 사나를 끔찍이 예뻐하는 대학생이다.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사나가 자살했다는 비보를 듣게 되고, 그와 함께 찾아온 낯선 남자는 사나가 남자들에게 강간당하는 모습을 찍은 비디오를 보여준 후 분노를 가누지 못한 키미히코에게 무언가를 건네주고 사라진다. 그것은 사나를 범한 남자들의 딸과 손녀의 신상 및 스케줄 명단이었다.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하나밖에 없었다……!

   한편 키미히코의 친구 아스미는 얼마전부터 이상한 경험을 하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다른 이의 시야가 보이게 된 것. 그것은 다름아닌 누군가가 칼로 소녀를 죽이는 장면으로, 그가 일본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연쇄살인범 나이프 잭임을 알게 된 아스미는 그를 만나려 애쓰는데…….



   3. 불꽃처럼 명멸하는 젊음의 분노와 광기
   우선 장르소설 팬의 오랜 습관이 되어버린 부질없는(?) 장르 구분을 하자면, 표면적으로 이 소설은 두 개의 이야기가 순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여동생을 잃고 복수를 진행하는 키미히코와, 연쇄살인자를 쫓는 아스미의 이야기. 전자는 작중인물의 말 그대로 ‘하드보일드’한 범죄소설이며 후자는 초현실적(판타지적)인 장치를 활용한 추리 스릴러. 연관이 없을 듯한 두 이야기는 종막에 와서 합쳐지며 감춰진 비밀이 드러나고 여기에도 초현실적이고 오컬트적인 요소가 혼재되어 있다. 본격 추리물도 사회파 범죄소설도 아니지만 메피스토 상의 성격상 그게 수상선정의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되려 수상작의 면면을 보면 개성적이고 독특한 작품을 선호하는 듯 하니 환영받았으리라 짐작된다.

   내용면에서 이 작품은 일본 젊은층의 감수성을 반영하고 있다. 아무렇지도 않게 인용되는 만화나 게임의 캐릭터라든가, 현실적이기보다는 만화적인 느낌이 드는 등장인물들의 면면을 봐도 그렇고, 인물들의 심리와 행동을 봐도 그렇다. 분노와 충동에 몸을 맡기는 키미히코, 자신의 방식으로 ‘최선’을 선택하고 주저없이 실행에 옮기는 나이프 잭(그 독선적인 정의감은 [데스노트]의 야가미 라이토를 연상시킨다). 이 모두가 체제순응과 이성적 사고를 신뢰하는 현대사회의 상식과는 동떨어져 있다. 그보다는 피해나 위험을 잊고 쾌락에 몰두하는 심야의 폭주족에 더 가깝다.

   소재 면에서도 강간과 몰카, 연쇄살인과 감금 등 엽기적이고 잔혹하며 여기에 휘말린 인물들은 충동과 호기심, 광기와 분노로 폭주하고 파멸을 맞고 만다. 그러나 결말은 명쾌하지 않고, 의혹 역시 후련하게 해소되지 않으며, 끝까지 독자의 마음을 후련하고 개운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 독서를 작가와 독자의 싸움에 비유한다면 이 작품은 진흙탕에서 서로 껴안고 뒹구는 형국이다. 그리고 종내 작가는 처음 왔을 때처럼 전력질주로 사라져버린다. 독자를 끈적거리고 찝찝한 진탕 속에 남겨둔 채로.

   이런 작품의 성향 덕분에 이 작품은 꽤나 극단적인 평을 받고 있는 것 같다. 온라인 서점 서평을 훑어보니 우리나라에서는 안 좋은 쪽이 많긴 하지만, 이 작품은 그저 엽기물 정도로만 치부하기엔 아까운 부분이 적지 않다. 니시오 이신이 트릭을 중심으로 한 본격물에 가까운 추리소설의 구조를 갖춘 작품을 다수 선보여 추리 팬덤에서도 주목받는 것에 비하면 사토 유아는 장르쪽에서는 상당히 소외된 듯 하지만 탄탄한 장르적 기본기와 잘 계산된 복선, 극단적인 상황설정과 광기에 사로잡힌 인물들을 끈질기게 붙잡고 그려내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일본 젊은 작가의 힘을 보여준 하나의 예시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4. 키미히코에게 걸맞는 살인이란?
   마지막으로 제목에 대해 생각해보자면, 키미히코가 죽인 것은 누구일까? 정말 그는 살인을 한 걸까? 라는 커다란 의문만 남게 된다. 후반부에 키미히코가 ‘그(스포일러를 피하고자 하니 양해바람)’를 죽였다는 게 밝혀지고, 이런 위선적이고 추잡한 살인이야말로 그에게 어울리는 짓이 아니겠냐는 것이 작가의 의도에 가장 가깝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키미히코의 살인에 대한 진상은 마지막의 반전으로 큰 의문에 휩싸이게 되고 만다. 그의 행동은 무엇 하나 의미있는 행위로 남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하다못해 살인마저도.

   이렇듯 명색이 주인공이라고 하지만 사실 그는 이 이야기의 가장 큰 피해자이다. 아마도 소설 사상 이 정도로 소외되고 파멸당하는 주인공도 없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H.P. 러브크래프트 작품의 주인공들과 비교해도 될 정도다)로, 그는 거대한 음모와 비극의 조연이자 부속품일 따름이다. 그 대신 누군가 지적했듯 이 이야기의 진짜 주역은 카가미 가문 전체이다. 이 작품은 카가미 남매 시리즈의 프롤로그에 불과하다는 말도 있을 정도이니까. 그렇다면 이 남매들 중에서 가장 평범(?)하고 무력한 키미히코에게 어울리는 살인이라는 것은 결국 제대로 된 살인 조차도 저지르지 못하는 걸 가리키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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