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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경계문학 - 무엇과 무엇의 경계인가?

'경계문학 베스트 컬렉션'이라는 화려한 부제를 달고 나온 이 단편집이 말하는 경계문학이라는 것이 마케팅 용어에 지나지 않음은 무크지 [미래경]에 수록한 전작 [꿈을 걷다] 리뷰에서 이미 밝힌 바 있다.
그렇지만 무크지를 읽지 못한 이도 있을 것이고 그 서평은 지면 관계로 짧게 써야 했기에 빠진 내용도 있어 여기에 다시금 내용을 보충하여 싣고자 한다.

본작에 수록된 작품은 크게 SF, 판타지, 무협 장르에 속하며 기존에 선보인 외국 및 한국 작가들의 작품과 비교해도 딱히 다른 점도 차별점도 없다. 그럼에도 이 단편집 및 수록 작품을 경계문학이라고 자처하고 있는데 그 경계라는 것이 무엇과 무엇의 경계인지는 알 수가 없다. 심지어 저 문구를 붙인 사람이나 본 단편집의 편집자(동일인물일 가능성이 크지만)도 명확히 대답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노블레스 클럽이 말하는 경계문학의 경계가 SF나 판타지 같은 장르간의 경계인가, 아니면 장르와 장르가 아닌 것의 경계인가? 뉘앙스가 아무래도 후자를 의미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주류문학(본격문학)과 대중문학의 경계인가? 고급 예술로서의 소설과 저급한 하류 소설의 경계인가? 아니면 환상소설(SF, 판타지, 무협 등을 아우른 장르)과 환상소설이 아닌 소설(리얼리즘 소설)의 경계인가? 그도 아니면 재미와 오락을 추구하는 소설(엔터테인먼트 문학)과 문학성과 주제의식을 추구하는 소설(순문학 혹은 사회 참여/비판/풍자 소설)의 경계인가?

어느 것이 정답인지 [꿈을 걷다]와 [꿈을 걷다 2010]을 다 읽어봤지만 도저히 판단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경계문학과 유사한 의미를 가진 다른 용어들의 뜻을 살펴보고 이 단편집에 어디에 속할지 판단해보자.
미디어에 소개되어 유명한 용어로는 김상훈이 소개한 슬립스트림, 김성곤이 말하는 중간문학(중류문학), 오가와 타케시가 말하는 스프롤 픽션을 들 수 있다.

1-2. 슬립스트림, 중간문학, 스프롤 픽션

김상훈이 열린책들 경계소설선을 내면서 갖고 온 용어 슬립스트림(Slipstream)은 주류 소설과 장르 소설 양 진영의 작가들이 쓴 경계적이고 장르 융합적인 소설을 일컫는 말로 문화적인 크로스오버가 발흥하고 정보 기술의 발달이 가속화된 1980년대에 생겨난 흐름을 가리킨다.
이 용어를 만든 것이 브루스 스털링이라는 것에서 알 수 있듯 주로 SF 쪽에서 많이 쓰였으며 대표적인 작가로는 폴 오스터, 마거릿 애트우드, 카렌 조이 파울러, 무라카미 하루키, 크리스토퍼 프리스트, J.G.발라드가 거론된다.

중간문학(middle brow fiction)은 뉴웨이브 문학상 제정시 김성곤이 소개한 용어로 과거엔 중류 소설이라는 용어로 부른 바 있는데, "본격문학과 대중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라는 설명을 붙이고 있으나 실제로는 본격문학의 수준에 이른 대중문학 혹은 대중의 사랑을 받는 본격문학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이 용어는 미국의 평론가 레슬리 피들러가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의 의도부터가 고급 문학/순수 문학이 죽었음을 선언하고 대중문학을 수용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어 슬립스트림이 장르에 기준을 둔 분류임에 비하면 중간문학은 문단과 대중의 간극을 없애기(혹은 줄이기) 위한 의미로 만들어진 부류임을 알 수 있다.
김성곤 역시 장르 소설 중에서도 수준이 높다고 판단되는 글을 중간문학이라고 칭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가 예시로 든 작가나 작품을 보면 에드거 앨런 포, 찰스 디킨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스, H.G.웰스, 복거일의 [비명을 찾아서],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 등을 들고 있다.

스프롤 픽션(Sprawl Fiction)은 일본의 장르소설 번역가이자 비평가 오가와 타케시(小川 隆)가 만든 용어로 기본적인 의미는 슬립스트림과 대동소이하지만 스프롤(도시 주변부의 무분별한 확산을 가리키는 스프롤 현상에서 따왔다고 함)이라는 용어에서도 알 수 있듯 약간 부정적이며 비판적인 시각을 담고 있다.
슬립스트림이 글의 내용, 내적인 부분에서 붙여진 카테고리라면 스프롤 픽션은 외적인 부분에서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소설이 해리 포터로 대표되는 대중적인 인기작, 대작 위주로의 쏠림 현상이 일어나자 소외된 군소 작품들이 역시 소규모의 출판사를 통해 출판되는 틈새시장이 생겨나는데, 이러한 흐름이 주로 문학의 주변부라 할 수 있는 SF/판타지 쪽에서 일어나 주류문단과 섞이거나 양쪽을 넘나드는 경향이 생겨나고 있어 이를 도시의 스프롤 현상에 비유하여 스프롤 픽션이라 부르는 것이다.
슬립스트림에 비하면 장르 작가들의 탈 장르적인 작품을 가리키는 데에 주로 사용되지만, 막상 슬립스트림이란 용어를 가져온 열린책들의 경계소설 시리즈의 작품들도 거의 다 장르 작가들의 탈 장르적 소설이므로, 적어도 한국에서는 이 두 용어를 같은 의미로 써도 무방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가와 타케시가 스프롤 픽션의 예로 든 작품 중에서 우리나라에 번역 출간된 것은 다음과 같다. 조너선 캐롤의 [웃음의 나라], 닐 게이먼의 [네버웨어], 크리스토퍼 프리스트의 [매혹], 차이나 미에빌의 [쥐의 왕] 등. 특히 [매혹]이 열린책들의 경계소설로 나왔다는 것을 떠올린다면 두 용어 사이의 유사점이 두드러져 보일 것이다.

1-3. 그래서 경계문학이 뭐야?

그럼 이제 노블레스 클럽이 말하는 경계문학이 셋 중에 어디에 속하는지를 생각해보자. [꿈을 걷다]와 [꿈을 걷다 2010] 수록작 작가들은 거의 전원 장르 소설만을 써왔고, 장르 소설 팬덤과 커뮤니티에 속하거나 활동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보인다. 역사소설과 아동도서를 쓴 문영, 청소년 소설을 쓴 좌백, 멀티문학상을 받은 김이환 정도가 비교적 경계적인 위치에 있으나 예외라고 말할 정도는 아니다.
우선 신춘문예나 문예지 등을 통해 주류문단이 인정하는 등단 과정을 거친 작가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에 주류문단 작가가 장르적인 소설을 쓴 케이스는 없다. 장르소설 단편집에 작품을 실은 등단 작가라면 박민규, 송경아, 서진 등을 들 수 있겠는데 꿈을 걷다 시리즈에는 아직 참여하지 않고 있다.

그 다음으로 이번엔 수록작 중에서 탈 장르적이거나 경계적인 작품을 찾았으나 뽑아내기 힘들다. 대부분 장르의 형식과 소재를 벗어나지 않고 있어 굳이 거론하자면 [꿈을 걷다]에서는 {인카운터}, 진산의 시인 이야기 연작, {앵무새는 단지 배가 고팠을 뿐이다}, [꿈을 걷다 2010]에서는 {개학 날}, {페르마의 부탁}, {나를 위한 노래} 정도. 억지로 몇 편을 더 추가한다고 해도 수록작의 절반도 되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따라서 이 단편집이 슬립스트림이나 스프롤 픽션은 아니고, 중간문학과 비교적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중간문학은 소설의 내적인 면이 아닌 외적인 평가에 의해 분류되는 장르이므로 완전한 장르소설의 형식을 갖고 있다고 해도 대중의 폭넓은 사랑을 받거나 주류문단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경우 중간문학이라 불릴 수 있다. 그렇지만 이는 평단과 대중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지 작가와 출판사가 미리 선언(?)할 수는 없다. 더구나 경계문학이라는 용어 자체가 슬립스트림을 연상시키는 면이 강하므로, 결국 책에 이 문구를 붙인 이의 무지 혹은 허영심의 결과라고 보는 편이 타당하다. 슬립스트림이 장르소설의 상위 계급이거나 고급화된 개념이라고 착각한 것이 아닐까.
즉 "이 단편집은 기존의 대여점용 판타지·무협, 이른바 환협지와는 다르다, 더 고급스럽고 수준이 높다"라는 주장 혹은 선전을 뒷받침하기 위해 갖고 온 마케팅 용어가 경계문학인 것이다.

2. 좋아진 장정, 여전한 수록 순서

단편집의 외형적인 부분은 상당히 좋아졌다. 전편에 비해서도 그렇고, 국내 작가의 단편집을 통틀어서도 좋은 편이다.
종이질도 괜찮고, 2도 인쇄가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며, 작가의 짧은 서문을 넣어서 독자들의 관심도를 높인다. 표지는 일러스트 없이 글자로만 넣어서 무성의해 보이기도 하지만 광택이나 색채가 세련되어서 일러스트에 구애받지 않는다면 최소한 나쁘게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수록 순서는 여전히 전작에 이어서 아무런 고민도 기획력도 생각도 없는 작가 이름 순서지만 작품 배치가 전작보다는 좀 더 낫다(전작의 배치 순서가 너무 안 좋았기에 그렇게 느껴진 것이기도 하지만).
{개학 날}은 마나니 아티팩트니 하는 전문용어(?)가 없는 밝고 가벼운 환상소설이라 전편보다 훨씬 진입장벽이 낮고 무협(과 SF의 탈을 쓴 무협) 단편들이 중간에 함께 모여 있으며 마지막 수록작 {세상 끝으로}는 제목도 내용도 마지막에 어울린다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는 단순히 운이 좋았을 뿐. [다른 늑대도 있다] 리뷰에서 밝혔듯 단편집의 작품 수록 순서는 전체적 인상과 독서 후 감상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므로(음악 앨범에서 곡 수록 순서가 중요한 것과도 마찬가지다) 편집자의 노력과 실력, 정성과 성의가 요구되는 부분이다. 이를 작가 혹은 제목의 가나다순으로 싣는다는 것은 수록 순서를 짜기 귀찮거나 그럴 능력이 없거나 기라성 같은 작가님들의 눈치를 심하게 봤거나 셋 중의 하나이다.

3. 개별 작품 일부 소개

개학 날
상당히 안 좋다. 전편에 이어서 이번까지 이러니 꿈을 걷다 시리즈는 첫 번째 수록작에 대한 징크스라도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작가가 쓴 장편의 외전 혹은 속편에 해당하는 단편을, 작가의 개인 단편집도 아닌 공동 단편집에, 그 장편을 냈던 출판사도 아닌 다른 출판사에서 낸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좋게 해석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 공동 단편집을 읽는 독자 전부가 [양말 줍는 소년]을 읽었거나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사실 이런 만행(?)은 온다 리쿠도 곧잘 했었다. 자신의 장편의 외전이라며 아무런 소개도 묘사도 없는 인물들이 갑자기 나와서 맥락도 모를 대화를 나누다 끝나는 단편을 종종 썼는데, 그나마 온다 리쿠는 자신의 개인 단편집에 수록했기에 독자들 상당수가 그 장편을 알고 있을 것이며 단편 안에서 일어난 사건은 끝맺음을 냄으로써 나름대로 개별 단편의 완성도를 확보했다.
하지만 {개학 날}은 글 안에서 벌어진 사건조차 마무리를 짓지 않아서 읽던 사람을 멍하게 만든다. 마치 쓰다가 정해진 분량이 다 되자 손을 뗀 듯 갑작스레 끝이 나서 '본문은 속편에서'라는 식으로 느껴진다. 단편은 언젠가 쓸 장편의 예고편이 아니다(실은 온다 리쿠도 장편을 예고하는 단편을 썼지만 그것 역시 개인 단편집 수록작이었음을 첨언한다).

문지기
개인적으로 수록작 중에서 제일 재미있게 읽었다. 전작과의 큰 차이점을 들라면 전반적으로 무협 단편이 재미있어졌다는 점인데, 특히 이 작품은 어린 아이의 회상이 주된 내용이라 아이의 시점에서 사건을 다루어서 그런지 무협에 대한 지식과 흥미가 없는 나 같은 독자도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친절함이 느껴졌다. {일검쟁위}도 읽는 재미는 있었으나 무협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이해하기가 좀 힘들었다. 가령 '일검쟁위'라는 시합 형식이 원래 무협 장르에 있던 클리셰인지 작가가 만든 새로운 개념인지 몰라서 뭐라고 언급하기가 힘들었다.

미싱 링크
무협 작가가 SF를 썼다는 이유로 안 좋은 선입견을 가졌으나, [파운데이션]을 읽고 SF를 쓰고 싶어 졌다는 작가의 말을 보고선 그 생각을 거두고 기대를 품기도 했는데, 읽고 난 후에는 결국 최초의 선입견이 더 강해졌을 뿐이다.
설정을 줄줄이 늘어놓으며 열심히 설명을 하는 초반을 보니 'SF를 쓰고자 하는 초보자를 위한…' 어쩌고 하는 작법서나 게시판의 충고들이 떠올랐고, 내용면에서는 미국식 웨스턴 스페이스 오페라와 다를 바 없는 오리엔탈(?) 스페이스 오페라였다.
가령 외계 행성을 외딴 섬이나 험한 산으로, 우주선을 배나 마차로, 광선총을 장풍이나 도술 같은 걸로 바꿔도 무방한 내용이며(심지어 칼은 그대로 칼이다), 처음 만나는 사이인데 남자는 하대를 하고 여자는 존대를 하는 남존여비 사상이라든가, 여자를 지켜준답시고 좀 싸우니까(그건 임무일 뿐이었다) 금방 남자에게 반해서 매달리는 등 속 알맹이는 무협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안다미
작가는 서문을 통해 이 글이 연작의 일부기 때문에 네이버에 실린 연작을 함께 읽어야 이해가 빠르다고 추천했으나 독자가 전부 그래야 할 이유도 의무도 없으므로 이 작품만 읽었는데 너무 짧고 내용도 빈약해서 연작을 읽으라는 말이 이 작품의 허술함에 대한 변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간단히 말해 예수의 광야 에피소드를 판타지 풍으로 개작한 글인데 예수를 유혹했던 사탄이 성서에서는 그저 못된 악마에 불과한 것을 이 글에선 작가만의 해석과 세계관을 적용해 새로운 캐릭터로 바꾸었지만, 단지 그것뿐이다.

나를 위한 노래
이 단편집엔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한 단편이 두 편 실려 있는데, {아내를 위하여}는 타임 머신을 만들어 시간 여행을 하는 것이고, 이 작품은 기계 등의 도움 없이 꿈이나 환각처럼 이루어진다는 차이가 있으나, 양쪽 다 과거 혹은 미래로 가도 그곳에 또 다른 자신이 존재하는 평행 우주론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으며 시간 여행을 해도 과거나 미래를 결국은 바꿀 수 없다는 운명론적, 결정론적 시각을 취하고 있다.
완성도는 {아내를 위하여}가 높지만 반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측 가능한 이야기였고, {나를 위한 노래}는 갑작스러운 반전은 아니지만 결말을 예상하기 힘든 이야기였다. 밝고 희망적인 마무리를 기대하게 만드는 초반부 때문이 아닐까.

4. 결론

'경계문학 베스트 컬렉션'을 표방한 본 단편집. 하지만 경계문학은 폼나라고 붙인 선전 문구일 뿐이고, 작품간 편차가 크며 장편의 외전이나 연작의 일부를 싣는 등 베스트라 부르기에 모자라는 부분이 많아 부제가 무색해질 지경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나오는 다수의 장르 소설 단편집 중에서 나름의 역할은 하고 있다. 특히 거의 접하기 힘든 무협 단편을 꾸준히 싣고 있으며 장편만 선보이던 작가들의 단편을 읽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종이책이기도 하다. 다른 단편집들이 주로 단편을 쓰고 발표한 작가들(매드클럽과 웹진 거울 작가도 여기에 속할 것이다) 위주로 구성된 것과는 대조적인데, 이러한 장점을 살린다면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참고 문헌]
* 젤라즈니의 영광과 비극 / 김상훈 ([전도서에 바치는 장미] 수록)
* 위키백과 Slipstream 항목
http://en.wikipedia.org/wiki/Slipstream_(genre)
* 대한민국 뉴웨이브 문학상 (조선닷컴)
http://event.chosun.com/index.php?url=cc&title=대한민국+뉴웨이브+문학상
* 순수·대중 소설 사이 '중간 지대' 열리는가 (시사저널)
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34760
* 슬립스트림에서 스프롤 픽션으로 / 오가와 타케시 (SF매거진 2003년 6월호 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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