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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망재 뺑덕어멈 수난기

2016.03.01 00:2003.01

뺑덕어멈 수난기





“명절휴가비야 늘 받던 대로지, 거기에 뭐가 더 있어.”


계장은 전화를 붙들고 정색을 했다. 인덕은 파티션 너머로 계장을 넘겨다 보았다. 안 봐도 뻔했다. 명절휴가비 정도야 다들 딴 통장 하나씩 차고, 쓸 만큼 남겨놓고 월급통장에 넣고 있으니 상관없지만, 올해 계장은 명절휴가비 말고도 챙기는 게 더 있었다. 


하나는 거래하는 유지보수 업체에서 따로 챙겨받은 떡값이었고, 또 하나는 이런 인간이 뭐가 예쁘다고, 반쯤은 순번 돌아가듯이 준 모범직원 상이었다. 인덕은 얼른 일어나 계장 자리로 다가갔다. 


“어, 그래. 지금 회의 있어. 끊어.”


계장은 얼른 전화를 끊고, 무슨 일인지 생글생글 웃는 인덕을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인덕은 별 말 없이, 폰에서 계장 부인의 전화번호를 보여주었다. 


“......어쩌라고.”


인덕이 동그라미를 하나 그려 보이자, 계장은 늘어져라 한숨을 쉬었다.


“나도 좀 살자.”


“몇 년 전에 이것저것 걸려서 이혼 당할 뻔 하시지 않았어요?”


“아, 그건.”


“삥땅을 쳐서 예쁘게 모아놓은 것도 아니고.”


인덕은 짐짓 뒷말을 웅얼거렸다. 계장의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가, 다시 노랗게 떴다.


“......얼마?”


“반띵.”


“야, 이.......”


“요새 박마담이랑 수시로 만나는 거, 아직 사모님이 모르죠.”


계장은 한숨을 쉬다가 인덕에게 바로 떡값 절반을 넣어 주었다. 인덕은 입금 확인 문자를 들여다보며 좋아서 웃다가, 파티션 너머에서 이쪽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고 바로 크리넥스 상자를 집어들었다. 


“야, 이 미친년아.”


인덕은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우고 성큼성큼 걸어가, 크리넥스 상자를 휘둘렀다. 뺨이 돌아가고 안경이 날아갔지만, ‘미친년’은 벗겨진 안경을 주워 다시 쓰며 인덕을 흘끔 바라볼 뿐이었다.


“뭘 잘했다고 쳐다보고 지랄이야?”


“......”


“벙어리야?”


“역시 애가 중고등학교 갈 나이가 되면 돈이 필요하구나 싶어서요.”


“내가 돈이 필요한지 어떤지 네가 알게 뭐야? 거지같은 년이.”


인덕은 이번에는, 그 년의 뒤통수를 잡아 그대로 얼굴을 키보드에 처박았다. 처음에는 놀라거나 훌쩍거리는 맛이라도 있었는데, 이젠 다 포기한 듯, 울지도 반항하지도 않았다. 그저 경멸하듯, 눈을 굴려 인덕과 계장을 훑듯이 바라볼 뿐이었다.


인덕은 그런 그녀가 재수없어 견딜 수가 없었다. 간만에 통장에 꽂힌 목돈으로도 그 분을 지울 수 없을 것 같았다. 


누가 문 열고 들어오지만 않았어도, 그 재수 없는 계집애를 울면서 잘못했다고 매달릴 때 까지 두들겨 팼을 것이다. 










배인덕은 올해로 마흔 셋이었다. 집에서 놀면 뭐하냐고, 요즘은 여자가 돈도 벌고 그래야 시집도 잘 간다며 아버지 손에 이끌려 얼렁뚱땅 취직해 버린 이래로 올해가 근속 22년째였다. 


바깥에서야 날고 기는 스펙을 갖추고도 젊은 애들이 취직을 못 해서 난리라지만, 안에서는 아래아 한글만 어떻게 칠 줄 알아도 정년까지 니나노 할 수 있으니 문자 그대로 태평천하였다. 작은 사업소였고, 애초에 연줄로 들어와서 사무 보다가 슬금슬금 기능직으로 전환해서는 눌러 앉아 지금까지 온 것이었으니 높이높이 승진해서 여 보란 듯 영감님 소리 들으며 사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고는 해도, 요즘같은 세상에 여자 직업으로 이만한 게 없었다. 


기능직으로 전환한 뒤에는 근속승진이라는 게 있었다. 놀며 놀며 쉬엄쉬엄 일해도 근속승진이라는 게 있었다. 서열로 줄을 세운다면야 원칙적으로야 일반직 공채 보고 들어온 새파란 것들 뒤에 서야 했지만, 그런 것도 서울 같은 데나 그럴 일이지. 지금은 은퇴했지만 인덕의 아버지는 여기서 정년퇴직을 한 계장님이었고, 인덕은 나이에 비해 근속기간도 길어 터주대감 노릇을 하고 있었다. 누가 감히 여기다 대고 기능직이니 뭘 해라 마라, 잔소리를 퍼부으랴. 소대장이 주임원사에게 개기다가 피 보는 것처럼, 서른 줄 넘겨 공채로 들어와 건방지게 구는 것들도 금세 정신을 차리고 싹싹 빌며 이것저것 간식거리라도 사다 안겼으니 나쁘지 않았다. 


바지런한 인간들이야 일반직 전환시험을 봐서 9급부터 다시 기어 올라오기 시작하긴 했는데, 그런 짓도 관운이 받쳐줘야 할 일이지. 열몇 해 만에 기능 7급을 달았더니만, 그 해에 바로 기능직이 없어지며 그대로 7급이 되어버렸다. 아등바등 기를 쓰며 전환시험을 보던 치들은 아연실색했지만, 그런 것도 다 저 타고난 복인 것을. 그렇게 인덕은, 경기도 구석에 있는 사업소에서 한량같이 빈둥거리며 아래로는 좋은 학교 나와 힘들게 공채 보고 들어온 젊은 애들을 굽어보고, 한편으로는 때가 되면 계장에게 이것저것 싸다 바치는 거래처들에게서 떡값들 부스러기를 주워 먹고 있었다. 승진 욕심만 없다면, 대한민국에 인덕처럼 팔자가 늘어진 직장인도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인덕이 언제부터인가 회사에 갈 맛이 나지 않기 시작했다.


뒤늦게 승진 욕심이 난 것도 아니었다.


이제와서 회사에 회의를 느낀 것도 아니었다. 


그저 사무실에 꼴보기 싫은 년이 하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사가 짜증이 나는 것이었다. 그게 벌써 2년 반, 3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그전에도 사무실에 막내는 있었다. 하나하나, 계약직으로 들어왔다가 결혼을 하거나 임신을 하면서 슬그머니 전출들을 가서 탈이었지. 계약직으로 들어온 애들은 고분고분했다. 2년 넘게 붙어있는 애는 거의 없었지만, 머무르는 동안 살살 비위도 잘 맞추었다. 특히 요 전까지 여기서 지내다가, 결혼한다며 사표 내고 나간 애는 참, 인간이 된 아이였지. 여기 터주대감이 저 계장이 아닌 인덕이라는 사실을 바로 알아본 그 애는, 수시로 술이며 밥이며 제 돈으로 사 바쳤고 여행 한 번 다녀올 때 마다 면세점 립스틱을 잊지 않는, 싸가지가 된 아이였다. 아빠가 뽑아주었다는 차가 계약직 막내가 끌고다니기에는 좀 분수에 맞지 않아 보이길래 몇 번 불편하다는 티를 냈더니, 인덕에게 작은 성의표시를 할 만큼의 센스도 있었다. 마음도 예쁘고, 구찌 키링도 마음에 들어서 그냥 넘어가 주기는 했지. 


여튼 그때 그 애는 사무실 구석의 꽃같은 막내로는 더할 나위 없는 애였다. 커피도 맛있게 탔고, 입안의 혀처럼 살살거리며 비위를 맞출 줄도 알았다. 게다가 웬만큼 잘 사는 집 아이라서 그런지 씀씀이도 나쁘지 않았다. 역시 돈 좀 있는 집에서 난 애들이 구김살도 없어서 그런지 어른 비위 맞출 줄도 알고, 둥글둥글 뭐든 유하게 넘어갈 줄 아는 애라서 업무시간에도 같이 나가 커피도 마시고 드라이브도 하며, 참 좋게 지냈다. 


그랬는데. 좋은 날도 한 철이라고 그 다음에 들어온 게 하필 저런 애라니.










“엑셀파일 수정 끝냈습니다.”


새로 들어온 막내는, 일은 잘 했다. 시키는 것 치고 못 하는 것은 없었다. 엑셀 1급 자격증도 있다더니, 다른 부서에서 부탁하는 데이터도 다 와꾸 맞춰서 채워 돌려보내곤 했다. 그렇게 하나하나 다 해주면 다른 부서들 버릇 나빠진다고 잔소리를 해 댔지만, 자기 말로는 DB에서 뽑아낼 때 한두 줄만 더 써주면 되는데 왜 사람이 손으로 하느냐고 헛소리를 하곤 했다. 뭐라는 것인지. 하도 엑셀을 잘 갖고 놀아서 어디 여상을 나왔느냐고 물어봤는데, 그건 아니라고 했다. 데이터베이스 같은 것을 아는 걸 보니 어디 공고를 나왔나 싶어 다시 물어보는데, 뭔가 기막히다는 듯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대체 가정교육을 어떻게 시킨 거야.


제일 뜻밖인 것은 어느 집 애인지 아무도 모르더라는 점이었다. 이 좁은 군에서, 어지간하면 한두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집일 텐데. 가족이 있기는 한 건지, 어디 고아원에서 살다 나왔는지, 알 수가 있어야지.


여튼 진짜 문제는, 그렇게 쓸데없는 일까지 끌어다 순순히 해 줄 만큼 부지런한 애가 하나 있으니, 상대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일을 못 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데 있었다. 번거로운데 누구 하나 다녀오긴 해야 하는 출장이 있어서, 들어온 지 한 달도 안 된 신참이었지만 거기라도 다녀오라고 쫓아 보냈더니, 그 이틀 사이에 웬 전화가 그렇게 많이 오는지. 엑셀 파일 같은 건 알아서 해라, 우린 바빠서 오늘 못 해주니 좀 기다리라고 호통을 쳤더니, 그 막내 년은 군소리 없이 알아서 다 해 준다는 거였다. 그것도 전화 끊고 한 시간도 지나기 전에. 


“함께 사는 사회라는 생각이 대가리에 안 들어 있는 년이지, 뭐.”


그렇다고 인덕이 어딘가 모가 나서 이렇게 심술을 부리는 것은 아니었다. 혼자서만 못마땅해 하는 거라면 모르겠는데, 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강용수도 막내 년이라면 치를 떠는 것을 보면, 이건 그 계집애가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된 년인게지.


“얼마 전에 총무과에서 전화한 거 알아?”


엑셀 파일같은 소리 한다고 호통을 치고 전화를 끊고, 인덕은 강용수를 데리고 1층에 자판기 커피를 마시러 나왔다. 강용수는 담배를 맛있게 피우더니 종이컵에 가래침을 뱉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미친년이 세상에, 날 총무과에 꼰질러 바쳤더라고.”


“맨날 사무실에서 처 잔다고?”


강용수는 무기계약직 직원이었다. 이 동네 유지의 외아들이었는데, 결혼 실패하고 회사도 그만둔 채 집에서 빈둥거리다가, 남우세스러워 죽겠으니 여기라도 다니라는 아버님 성화로 밀고 들어와 이 사무실에 눌러앉았다. 하지만 타고난 한량이라, 낮에는 사무실 구석에서 잠을 자거나 온라인 맞고로 세월을 보냈고, 유지보수 업체 직원이나 공익근무요원을 턱짓으로 부리며 공무원 행세를 했다. 


“아니, 내가 지 엉덩이 좀 만졌다고.”


“하이고오.”


뭐 그게 꼴불견인 건 아니었다. 어차피 회사 밖에 나가면 한다 하는 집안 자제라서, 군수나 국회의원과도 아는 사이인 녀석인걸. 말하자면 이런 시골에서는 회사의 실세라고 해도 무방할만한 남자였다. 강용수와 친하게 지내는 것은 아무리 따져봐도 나쁠 게 없는 일이라서, 인덕은 오피스 와이니 오피스 허즈번드니 하며 강용수와 친근하게 지냈다. 


그런데 그런 강용수를 총무과에 일러바치다니.


뭘 몰라도 한참 모르든가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년임에 틀림없었다.


“그거 만진다고 좀 닳는대? 어디서 엉덩이 두드려 줄 남자 하나 없게 생긴 게.”


“그렇지? 그런데 그 지랄을 하는 거야.”


“전에 있던 여자애들은 아무 소리 안 하더니, 대체 걘 왜 그런대? 아니, 세상 좋아졌다? 계약직이 그러고 다녀도 총무과에서 걜 그냥 둬? 안 잘라?”


“못 잘라.”


강용수가 한숨을 쉬었다. 


“공채란다.”


“뭐?”


“원래 여기가 계약직 자리가 아니잖아. 그래서 이번에 공채 출신이 들어온 거라던데.”


그 말에 두드러기가 쫙 돋았다. 공채라니.


“시험을 봐서 여길 들어왔다고?”


“그렇다던데.”


“이 동네 사람이긴 해?”


“서울 애랜다.”


강용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것도 이름만 대면 알만한 대학 나왔어. 아, 돈 많나, 무슨 집구석이 기집애를 공부를 시키고 지랄이야.”


“그래서?”


“그래서는 뭘 그래서야. 총무과에서 적당히 타이른 모양인데, 하도 난리를 쳐서 시말서 한 장 적어서 냈지. 하, 씨발년. 상판도 넙데데한 게 서던 것도 식게 생긴 년이 무슨 뒤통수를.”


“지랄맞은 년이네.”


인덕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게 철밥통이나 밝히고 있고. 나라 꼴이 어찌 되려고.”


“아니, 어릴 때 들어와도 나쁘진 않지. 그런데...... 그렇게 소시적에 공부를 잘 하셨던 분이 왜 이런 촌구석에는 들어와서 말야.”


“그 년 들어오고 나서, 일거리 늘어난 거 알아?”


“난 그냥 떠넘겼는데?”


아뿔싸. 역시 강용수는 난 놈이었다.


“지가 뻗대봐야 한두 달이지. 꺾이고 나면 오히려 저런 애들이 더 고분고분한 거 알잖아?”


“그거야 그렇지.”


“일은 잘 하더라. 그냥 일 시켜. 뭐, 지가 우리랑 인간적으로 교류하기 싫다는데. 응? 술도 마시고, 엉덩이도 좀 투닥거리고, 그러면서 정 드는 거지. 지가 싫다는데 어쩔 거야. 일이나 시켜. 뭐, 자격증도 많다고 그러고, 제법 할 줄 아는 건 많으니까 다 시키면 그만이지.”


옳은 말이긴 했다. 인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이후 배인덕은, 자기 몫의 일을 하나하나, 그 계집애에게 떠넘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엑셀 파일, 좀 더 말하면 각종 시스템에서 데이터를 뽑아 엑셀로 정리하는 일들이었다. 다행히도 그 멍청한 계집애는, 술을 먹자거나 스크린 골프장에라도 가자거나 넌 새로 들어온 애가 눈치도 없이 비싼 밥 한번 안 사느냐고 눈치를 줄 때는 반발했지만, 시키는 일 하나는 기막히게 잘 했다. 일을 못 해 죽은 귀신이라도 붙었는지 조금 지나서는 사무실 구석, 평소에는 사람이 드나들 일 없는 창고방에 덩그러니 혼자 놓인 서버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서버 비밀번호를 묻기에 모른다고 했더니 사람 무시하는 표정을 짓더니만, 어느새 한 달에 한 번 서버가 죽었나 살았나 보러 오는 업체 직원과 친해졌다. 혼자서 서버를 들여다 본다며 수시로 창고방에 드나들기 시작하는 바람에, 인덕과 강용수는 회사에서의 소소한 즐거움 하나를 잃었다. 짜증나는 노릇이었다. 


“서버야 전원만 꺼지지 않으면 되는 거지. 전원 꺼져도 그 뭐야, 그거 있고.”


“UPS요.”


“그래. 야, 대체 공무원이 왜 유지보수 업체를 쓰는데? 서버 같은 거 잘못 되었을 때 그냥 생으로 책임 질 거야? 문제 생기면 유지보수 견책으로 떠넘기면 되니까 업체를 쓰지.”


“그래도 할 줄은 알아야죠. 여기 시골인데, 사소한 걸로 사람 오라가라 하기도 그렇고.”


바로 그래서 돈을 쓰는 거다, 이 미친년아. 


그 말 대신, 손이 먼저 올라갔다. 


안경이 벗겨져 구석까지 날아갔다. 두 번 다시 말 할 필요는 없을 줄 알았다. 


그리고 이 미친년은, 이번에도 총무과로 쪼르르 달려가고 말았다.


학습능력이 없는 계집애였다. 










물론, 여기가 서울이나 도청 소재지였다면, 하다못해 시라도 되었다면, 총무과에서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여기고 징계 수위를 결정하고 있었겠지만. 


여긴 그냥 시골이었다. 여기 회사 공무원이라고 들어와 있는 이들도 다, 예로부터 이 근처에서 제 땅에 농사 짓고 살던 이들이었다. 여전히 집에는 땅뙈기도 있고 그날그날 찬거리 할 채소밭도 있다 보니 딱히 승진이나 출세에 목을 매는 것도 아니고, 새로 누가 들어오더라도 한 다리 건너면 다들 서로서로 알다 보니 다들 가족같이 지내는 곳. 그렇다보니, 제 주제도 모르고 건방지게 구는 신입에게 직장에서의 예의가 뭔지 가르치는 것을 두고 징계니 뭐니, 시끄러운 소리 같은 것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그 눈치 없는 막내년만 미운 털이 하나 더 박힐 뿐이지. 


그, 강용수가 엉덩이를 더듬었다는 것도 그랬다. 어린애가 귀여워서 일 열심히 하라고 엉덩이 몇 번 툭툭 친 것 갖고 그 난리를 치다니, 두 번만 더듬었다간 누가 잡아먹으려 든 줄 알겠네. 생각해 보니, 예전 우리 막내가 참 괜찮은 애였다. 누가 왼뺨을 내밀면 오른뺨도 내밀라고 했다는 성경 말씀을 본받아서인지, 강용수가 엉덩이를 더듬으면 배시시 웃기나 했지, 그런 식으로 호들갑스럽게 지랄을 하고 다니는 일은 꿈도 꾸지 못했다. 


이래서 계집애는 배워봤자 소용이 없지. 좋은 학교 나와서 가방끈 좀 길다고, 아주 제 잘난 척이 하늘을 찌르는 게 아닌가. 총무과는 물론 여직원회에서까지 전화를 받고, 인덕은 약이 잔뜩 올랐다. 


“야, 이 썅년아.”


화장실로 끌고가 청소도구함에 밀어넣었다. 무릎 바로 밑을 걷어차고, 도구함에서 잡히는 대로 걸레를 집어 따귀를 때렸다. 


“어디, 더 가서 일러 보시지? 응?”


“......!”


“이 미친년아. 여긴 다 아는 사람들이거든? 총무계장은 우리 아버지랑 형님 동생 하시던 분이고, 여직원회 회장은 내가 유치원때부터 알던 애다. 알겠냐? 내가 걔 약점을 어디 한두 개 잡고 있는 줄 알아?”


소리를 지르려고 하길래, 입에 걸레를 처넣었다. 막내 년의 얼굴은 당장이라도 먹은 것을 전부 토할 듯 새빨개졌다. 


“어디, 하고 싶으면 더 해봐. 여기 경찰? 야, 경찰에는 아는 사람 없는 줄 알아? 이 동네, 다 아는 사람들이야. 너 빼곤 다 한 다리 건너 일가친척같은 사이라고. 너같이 타지 계집애 하나, 어디 죽여서 파묻어버려도 흔적도 못 찾아. 알겠냐?”


인덕은 주먹을 휘둘렀다. 그렇게 세게 친 것도 아닌데, 명치에 주먹이 꽂히자마자 막내 년은 입에 틀어막은 걸레 사이로 더럽게도 먹은 것을 줄줄 흘리기 시작했다. 그 꼴을 보니, 인덕은 조금 기분이 좋아졌다. 저 년이 온 이후로 계속 기분이 나빴는데 처음으로 조금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넌 여기서 아무 것도 못 해.”


“......우웁.”


“넌 여기서 죽으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해야 할 걸? 여기서 본 것, 들은 것, 밖에 나가 입 놀려봤자 아무 소용도 없어. 네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으니까, 그냥 닥치고 시키는 일만 해. 어디서 잘난 척 하려 들지 말고.”










학습능력이라는 게 있다면, 이쯤해서 닥치고 슬슬 기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이 멍청한 년은 정말로 학습능력이라는 게 없는지, 총무과에 몇 번이나 호소했다. 과장에게도 일러바쳤다. 반복적인 구타, 상습적인 성희롱이라고. 과장이야 이쪽 동네 사람이 아니니 불러서 물어보기는 했다. 번거로운 작자같으니. 고작 1, 2년 있다가 갈 사람이, 여기 식구들 일에 쓸데없이 관심만 많았다. 그런 일 없어요. 인덕은 코웃음을 쳤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우리 계 여직원인데. 그런 일이 있으면 내가 그냥 놔뒀겠어요?”


성희롱 좋아하네. 그런 게 성희롱이면 지금까지 여기 있던 애들 전부 다 성희롱이게. 


“과장님께 이런 말씀 드리긴 좀 그렇지만....... 애가, 좀 약간 이상해요.”


그렇다니까. 귀여워서 어깨 좀 쓰다듬은 것 갖고 성희롱이래. 쟨 엉덩이도 가슴도 다 어깨에 가서 붙었나봐요. 그 말들은 과장 앞에서는 입을 딱 다문 채, 총무과 직원과만 낄낄거렸다. 


그렇지, 서울에선 어떤지 몰라도, 이건 건 성희롱 축에도 못 드는 일이었다. 


몇 년 전엔가, 옆 군 출신의 계약직 직원 하나가 들어온 지 두 달만에 그만두고 도망친 적이 있었다. 그때 후임자를 빨리 받지 못해서 쩔쩔 맸더니, 계장이 거래하는 업체에다 여직원 하나만 빌려달라고 요구를 했다. 거래업체야 도청소재지 근처에 있다 보니, 갓 스물 서너살 난 어린 여직원이 이리 출퇴근을 하는 게 어렵지 않겠느냐, 운전면허 있는 남자직원을 보내겠다, 아니, 사장이 직접 오겠다는 말도 했는데, 전화받고 커피 타고 시다바리 일 하는데 시커먼 남자는 영 아니라서 강경히 우겼다. 정 출퇴근하기 어려우면 강용수네 집에 빈 방도 있고 밥도 줄 수 있으니 와서 일 하라고 했다. 먹여주고 재워주고, 얼마나 좋은 일자리야. 


그리고 석 달, 새 직원이 들어올 무렵 그 거래처 여직원은 임신을 했다. 


강용수가 저 혼자 갖고 놀았으면 덜미를 잡히든 발목을 잡히든 위자료라도 주었을 텐데, 이 놈 저 놈 다 방에 밀어넣어 같이 갖고 놀았던 터라 더러운 년이라고 욕만 하다가, 아는 의사에게 끌고가서 애만 떼어서 쫓아보냈다. 뭔 사달이 나도 증거가 있어야 어떻게 해 볼 텐데, 증거인 애를 떼어버렸으니 뒷일도 걱정할 게 없었다. 그래도 그때만은, 인덕도 적당히 좀 하라고 잔소리를 하긴 하였다. 


아니, 그런 일을 당하고도 아무 말 못하는데, 어디서 헛짓거리야. 미친년이. 


한번은 그 년이 112에 신고한 적도 있었다. 마침 제대로 때려 얼굴이 터진 날이었다. 


“어디서 같은 사무실 사람을 경찰에 고발을 해, 어!”


정말로 형사 둘이 쫓아와서 잠시 겁먹었는데, 그 형사가 계장하고 학교 선후배였다. 적당히 돈 찔러주고 무마했다. 하긴, 아는 사람 아니었어도 큰 일 날 게 없는 것이, 거기 형사과 계장하고 이쪽 계장은 친구였다. 같이 노름을 하고, 같이 오입질 하러 다니는 친구. 남자들이라는 게, 그렇게 같이 도박이며 오입이며 하고 다니는 사이끼리는 또 공범자같은 묘한 동지의식이 생기는 법이라, 계장이 그동안 술 먹고 다니며 싸움질을 하고 다녀도 어떻게 다 무마가 된 것도 그렇게 경찰서에 친구를 잘 둔 덕이었다. 


“너 그러다가, 어! 공무원 못하게 쫓아내 버리는 수가 있어. 어!”


계장은, 형사들을 앞에 두고 짐짓 목소리를 높였다. 그 서슬에, 형사에게 쥐어준 돈 같은 것이 보이지 않기라도 한 듯이. 


“상관없어요.”


하지만 그 년은 경찰 앞에서 똑바로 말했다.


“형사님들이며 위엣분들이며 감사실까지 다 한통속이어서 아무 소용 없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112에 신고한 기록은 남을 거잖아요?”


“저기, 이봐요. 우리가 지금, 한통속이라서 그냥 가는 게 아니에요. 심각한 일도 아니고, 이 동네는 다들 한 가족처럼 지내는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어서 가는 거예요. 응?”


“형사님은 가족을 더듬고 때리고 화장실 걸레도 입에 넣고 그러나봐요,”


미친년은, 잔뜩 풀이 죽은 채 중얼거렸다. 아마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거라고, 형사들은 그 년에게 하는 말인 듯 인덕에게 말을 건네고 돌아갔다. 


“야야, 걔 오늘은 그만 건드려라.”


형사들이 문을 닫고 나가자, 계장이 짜증스레 중얼거렸다. 


“시킬 일 있어요? 없으면 혼 좀 내 주고.”


“야, 경찰까지 부를 정도로 맛이 간 년이야. 더 건드렸다간 무슨 사고를 칠지 모르는데.”


“그런 년이니까 지금 제대로 본때를 보여 줘야죠.”


“아니, 그러다가 큰 일 내겠어서 그래.”


“제가 큰일을 뭘 어떻게 내겠어요?”


“......알아서 해.”


소심한 새끼.


인덕은 속으로 계장을 욕하며 그 년을 복도로 끌고 나왔다. 계장은 평소에는 호기로운 척은 혼자 다 하고 다녔지만, 이렇게 누가 목소리를 높이면 금세 꼬리를 내리고 깨갱하곤 했다. 그러니 그 쥐새끼같이 생긴 마누라에게 백날 쥐어 사는 것도 모자라, 인덕에게까지 삥을 뜯기고 다니지. 


“어디서 경찰에 신고를 해, 겁대가리 없이. 이 씨발년아. 어디서 제 직장상사를.”


멱살을 잡고 화장실로 질질 끌고갔다. 미친년은 화장실 앞에서 잠시 버텼다. 뒤따라 온 강용수가 그 년의 등허리를 걷어차자, 미친년은 화장실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야, 그냥 너 하던 대로 해 버릴래?”


“어이, 됐어. 나도 눈이 있는데.”


강용수는 낄낄거리며 물러났다. 밸도 없는 새끼라고 속으로 욕하며, 인덕은 그년을 청소도구함에 밀어넣었다. 


“이 썅년의 기집애가 봐줬더니 어디서 분수를 모르고 기어올라서는.”


“제가 주사님이라면 안 그러겠어요.”


“뭐?”


인덕은 미친년의 멱살을 쥐고 흔들며 물었다. 


혹시나 싶어서, 얘네 부모님 뭐 하시는지, 총무과 인사담당자에게 알아보기도 했다. 이쪽에 선을 대거나 해코지를 할 만한 위인도 아니었다. 그냥 평범한 집안 출신의, 대학 잘 간 것 말고는 뭐 하나 여기서 고개 빳빳이 들고 있을 만한 구석이라고는 없는 애였다. 그러니까 여기서 아무리 나대봤자 제 손해였다. 그걸 가르쳐 주는 것이, 인생 선배로서의 도리였다. 이 년이 아무리 재수없다 한들. 


그런데 이 계집애는 뭐가 그리 잘났는지, 금간 안경 너머로 인덕을 빤히 쳐다보는 것이었다. 


“주사님 아드님, 지금 고등학교 다니던가요? 중학교였나? 걔는, 엄마가 이러고 다니는 거 알아요? 사람 때리는 거, 그리고 강 주사님이랑 그렇고 그런 사이인 거.”


“이게......!”


“걔가 알든 말든 상관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를 존경한다고 해도 제 알 바는 아니지만. 걔 몇 년 있으면 입시 볼 거잖아요. 좋은 일 바른 생각만 해도 운이 받쳐줄까 말까인데, 저같으면 하늘 무서워서라도 애 입시 보기 전에는 좀 조심하고 살겠어요.”


인덕은 화가 치밀었다. 보자보자하니까 이게, 이젠 남의 곱게 자란 자식을 두고 협박을 하고 있었다. 인덕은 오냐, 오늘 너 한번 죽어 봐라 하는 심정으로, 대걸레를 휘둘렀다. 먹은 것을 토하고 노란 물까지 쏟아내도록, 미친년은 두들겨 맞았다. 때리다 지친 인덕은 주저앉은 그 년의 머리채를 잡아 화장실 변기에 처박고, 물을 내렸다. 


진작에 이렇게 본때를 보여 줬어야 했다.


그날 이후로 미친년은 더 이상, 신고 같은 것을 하지 않게 되었다. 











학습능력이 없는 것 치고 미친년은 일은 잘 했다. 다른 부서에서 뭘 요청해도 순식간에 자료를 만들어내는 바람에, 인덕은 더 이상 엑셀을 붙들고 쩔쩔 맬 필요가 없었다. 군청에서 높으신 분이 온다고 해서 호들갑스럽게 준비를 할 때도 순식간에, 군청이 아니라 서울에서도 통한다는 스타일로 파워포인트도 만들고, 동영상도 만들어냈다. 계장은 높으신 분들은 그런 것 안 좋아한다고 투덜대며 미친년의 조인트를 깠지만, 높으신 분들의 취향이란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서울에서 내려온, 고시 출신의 고위 공무원이 동영상을 칭찬하자, 계장은 어깨가 으쓱해져서 돌아와서 술을 샀다. 미친년은 같이 가지 않았고, 계장과 강용수와 인덕은 읍내 하나밖에 없는 룸싸롱에 가서 술을 마셨다. 술값은 업체에 달아 놓았다. 아무 문제도 없었다. 계마다 하나씩 캐치프레이즈를 만들어 내라고 해도 어디서 뚝딱 만들어 냈다. 그 캐치프레이즈는 개인이 아니라 계의 이름으로 나가는 것이었으므로, 계장은 그걸로 포상까지 받아 왔다. 


“아, 배 아파 죽겠네.”


인덕은 이를 갈았다. 


“저 미친년 일 시키고 사람 만들어 놓은 게 누군데, 단 물은 계장 혼자 다 빨아먹고.”


“출세 해서 뭐 해.”


강용수는 맞고를 하며 건성으로 대꾸했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면 되지. 주말에 스크린 골프나 치러 갈까?”


인덕은 강용수의 말에 얼른 반색을 했다. 


“스크린 골프는 무슨. 상금 받은 거 뜯어다가 머리 얹으러 가야지?”


“아이고, 아줌마가 아주 골프에 맛이 들렸어. 응.”


“누구 때문에 옆구리가 아파서 밤에 잠이 안 오거든?”


낄낄 웃으며, 인덕은 문득 파티션 너머로 미친년을 쳐다보았다. 


미친년은 미친 듯이, 뚫어져라 모니터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인터넷 쇼핑 하냐?”


미친년은 대답하지 않았다. 


“내비 둬, 내가 뭐 좀 시켰어.”


“뭘 시켰는데?”


“개인정보 동의서 가라로 만들 게 있어서 그거 시켰어. 한 1200명 되더라고.”


“그걸 어쩌려고?”


“본문은 출력하고, 사인은 공익들 불러서 가라로 100장씩 하게 해야지.”


“그럼 1200명을 치고 있는 거야?”


그때 프린터가 예열되는 소리가 났다. 미친년은 프린터에 종이를 가득 채워넣고, 종이를 더 받으려 경리계 창고에 내려갔다. 인덕은 슬그머니 미친년의 자리에 다가가 모니터를 들여다보았다. 


“거, 손대서 망쳐 놓지 마. 내 거라고.”


“누가 망친다고 그래.”


강용수에게 쏘아부치며 인덕은 모니터를 들여다보았다. 수상한 것은 없었다. 아래아 한글 파일에도 별다른 건 없었다. 대체 이걸로 뭘 어떻게 출력을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잠시 후, 프린터는 가짜 개인정보 동의서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문제 없겠어?”


어딜 그렇게 돌아다녔는지, 점심시간 한참 지나서 술냄새를 풍기며 돌아온 계장은 미친년에게 심부름을 보내 놓고 강용수를 돌아보았다. 


“문제가 왜 있어요.”


“있으면 어떡해.”


“그거야 실제로 한 녀석이 책임져야지.”


“그 실제로 한 녀석 말인데.”


계장이 헛기침을 했다. 


“쟤, 보내버릴라고.”


인덕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딜 보내요?”


“지가 갈 데를 찾았나봐. 나라일터에다가 올려서, 어디 맞교환으로 갈 데를 찾은 모양이야. 교육청에서 연락이 왔어.”


“교육청에 간다고요?”


강용수가 깜짝 놀라 되물었다. 


아, 그랬지. 강용수가 예전에 교육청 들어가려고 시험을 몇 번을 보다가 떨어진 적이 있었다. 저 미친년이 인사교류랍시고 교육청에 무임승차 하듯 들어가 버리면, 강용수도 며칠은 밤 잠을 제대로 못 잘 것이었다. 


“어딜 가겠다는 거야, 지가. 멍청하고 무능한게 어디 가서 누구 속을 긁으려고.”


“그래, 어차피 다들 재수없어하고 같이 못 있겠다고 하는 앤데, 끼고 있어봤자 뭐 해. 그냥 폭탄돌리기 하는 거지. 보내버리자.”


“지금 뭐라는 거예요?”


인덕은 언성을 높였다. 


“쟤를 보내버리면, 일은 누가 하고?”


“응?”


“계장님도 쟤한테 이것저것 많이 시키면서. 아니, 말이야 바른 말이지. 저게 그렇게 재수없고 멍청하고 주제 파악도 못 하는데다 위아래도 모르는데도 우리가 안 쫓아내고 그냥 두는 게 왜겠어요. 시키는 건 잘 하니까 그냥 두는 거지.”


“아니, 언젠 멍청해서 데리고 일 못 하겠다며.”


계장은 곤란하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거, 나라일터로 들어오는 거면 결재를 장까지 받아야 해. 어쩔거야?”


“못 가게 해야죠!”


“어떻게?”


“서류가 완전히 넘어 온 거예요?”


“아니, 저쪽 기관에서 전화가 왔대. 우리 쪽이랑 인사교류 할 거니까 잘 부탁한다고.”


“그럼 아직 저쪽에 결재 안 난거네.”


인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야, 애가 영 품행이 엉망이라고 해 버리면 그만이죠.”


“그걸로 돼?”


“되지 않겠어요? 딴 데도 아니고 교육청인데.”


“아니, 근데 그렇게 싫다면서 왜 그렇게 애를 못 보내서 안달이야?”


“그러게요, 호호호.”


인덕이 웃었다. 아직 서류가 넘어온 게 아니라면, 이것도 다 사람 사는 일인데 안 될 리가 없었다. 


삼성 회장인가 누가 그랬다. 미꾸라지가 메기랑 같이 있으면 미꾸라지가 더 활발해진다고. 그런데 그 상황에서 진짜 좋은 건, 미꾸라지가 아니라 메기지. 얼마나 좋아, 출근을 했더니 회사에 밥이 하나 있고. 그 밥은 시키지 않아도 문서 수발부터 온갖 기안에, 쏟아지는 전화업무 처리까지 혼자 다 하고 있는데. 인덕은 그제야 미친년의 진가를 깨닫고 깔깔 웃었다. 


일도 하고 스트레스 처리도 해 주는 고마운 인적자원을, 그 가치도 모르는 교육청에 빼앗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꿈도 꾸지 마, 이 미친년아.”


인덕은, 계장이 어디 나가자마자 크리넥스 상자를 집어들고 미친년의 따귀를 때리기 시작했다. 


“커피 타는 것 보다 복잡한 건 하지도 못하는 년이 어딜 가서 우릴 욕 먹이려고 그래? 넌 어디 가 봤자, 우리가 제대로 못 가르쳤다고 두고두고 욕 먹게 만들 테니까 그냥 여기 붙어 있어. 너 같은 거라도 받아주는 우리한테 고맙게 생각하란 말이야.”


미친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맞기만 했다. 그 시선에 분노가 담긴 것을 보고, 인덕은 미친년의 머리카락을 휘어잡고 끌고 나가려 했다. “아......”


그때 업체 사장이 문을 열고 들어오다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재수 옴 붙은 날이었다. 인덕은 미친년의 머리카락을 놓으며 웃었다,


“계장님 잠깐 외출하셨는데.”


“오실 때 까지 기다리죠. 그리고 실무적인 이야기도 있어서.”


사장은 유지보수 직원과 함께 밀고 들어오며 안쓰러운 듯 미친년을 바라보았다. 인덕은 얼른 옷차림을 가다듬고, 회의 테이블의 상석에 제 업무수첩을 내려놓았다. 유지보수 직원이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미친년을 돌아보았다. 


“주사님도 이쪽으로 오시죠.”


“쟤가 아는 게 뭐가 있다고 불러요. 얘, 커피나 타 와.”


미친년은 탕비실에서 커피를 탔다. 인덕은 그녀가 커피를 들고 다가오자, 공연히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가 든 쟁반을 뒤집어 엎었다. 


뜨거운 커피에 데었는지, 미친년이 희미한 비명을 질렀다. 


“바닥에 이게 뭐야? 걸레 가져와서 닦아. 커피는 강용수씨가 타다 줘. 커피 갖고 이리 와 앉아.”


“예쓰.”


강용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친년은 묵묵히 빈 종이컵들을 수습했다. 그녀가 대걸레를 가지러 화장길로 가려는데, 인덕은 창가에 널어 놓은 손걸레를 가리켰다. 


“손걸레로 닦아.”


미친년은 아주 잠시, 머뭇거렸다. 그녀의 눈이 번들거렸다. 울어라, 여기서 울어버려. 그러면 재미있을 텐데. 인덕은 그런 생각을 하며 소리없이 웃었지만, 미친년은 울지 않았다. 대신 손걸레를 집어들고 쪼그려 앉았다. 마치, 며칠만 있으면 바라는 대로 교육청에 갈 수 있을 거라고, 그러니까 조금만 더 참으면 된다고 착각이라고 하는 듯이. 인덕은 그녀가 울지 않는 것이 영 시시했지만, 며칠만 기다리면 진짜 즐거운 일을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프로다운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무슨 일인가요?”










미친년의 인사교류 이야기는 끝내 나오지 않았다. 인덕은 계장이 수를 쓰는 것과는 별도로, 교육청 쪽으로 알음알음 아는 사람을 통해, 얘가 얼마나 미친년인지, 품행이 얼마나 나쁜지, 아무에게나 다리를 벌리는 꽃뱀같은 계집애라 여기서도 큰 골치라는 식으로 수군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채 출신이라 함부로 자르지도 못하니, 상전 모시는 거나 다름없다고 신세한탄까지 했다. 동네는 좁고 소문은 빨랐으며, 공무원이라는 자들은 만사가 지루해서 그런지, 남의 집 숟가락 개수까지 좔좔 읊어댈 만큼 뒷담화에 도가 튼 이들이었다. 소문이 돌고 돌아, 미친년이 살고 있는 집 집주인이 그년에게 추근거리다가 경찰이 출동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하지만 경찰이, 이 동네에서 몇 대를 살아온 집주인을 두고 외지인의 편을 들어 줄 리도 없었다. 


점점 멍한 표정을 짓는 시간이 늘어났다. 미친년은 갑자기 살이 찌기 시작했다. 인덕은 그 년이 혼자 살더니 임신을 한 게 틀림없다며, 역시 여자애는 타지에 혼자 내돌리는 게 아니라고 앞장서서 소문을 내고 다녔다. 뚱뚱해진데다 입던 옷이 찡기는 게 사무실이 돼지우리가 된 기분이었지만, 상관없었다. 아침에 출근하면 일거리를 그년의 책상에 쌓아놓고, 인덕은 강용수와 손 잡고 스크린 골프장에도 가고, 아예 군 경계를 넘어가 드라이브도 했다. 분위기 좋게 데이트를 하다 말고도, 그들은 미친년의 이야기를 안주삼아 씹으며 낄낄거렸다. 


“서지도 않을 상판인데다 뒤룩뒤룩 살까지 찌니 정말 못 봐주긴 한데, 그래도 좋은 점도 있어.”


“어쩌면, 그렇게 남의 장점을 찾아내느라 열심이야. 걔한테 관심 있어?”


“미쳤냐.”


강용수는 낄낄 웃었다. 


“뚱뚱해지니까, 놀리는 데 미안할 게 없어요.”


“언제는 미안해 했다고.”


“하긴 그렇지?”


그러면서도 아주 가끔, 인덕은 그 년이 한 헛소리를 떠올렸다.


- 걔 몇 년 있으면 입시 볼 거잖아요. 


신경쓰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만, 머릿속에 떠올랐다. 얼마 전 그녀는 남편과 별거를 시작했다. 표면적으로는 남편이 부산 사무소로 발령이 났기 때문이었지만, 실제로는 그녀는 강용수와, 남편은 남편대로 각각 바람을 피우다가 벌어진 일이었다. 


별거를 하면서부터, 아들아이의 성적이 뚝뚝 떨어지는 것도 신경쓰였다. 


- 저 같으면 하늘 무서워서라도 애 입시 보기 전에는 좀 조심하고 살겠어요.


하지만 그 말에 신경 쓰면 지는 것이다. 그 말에 신경쓰고, 이제부터라도 미친년에게 좀 잘해줘야겠다고 생각한다면, 그동안 미친년에게 해 온 일들이 모두 부당한 일이 되어버린다.


그럴 수는 없었다.


그 년은 그런 취급을 당해 마땅한 년이었다. 불쾌하고 무능하며, 아무 짝에도 쓸모도 없는데다, 사회생활의 기본이 안 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그년에게 한 일들은 모두 정당했다. 


그래야 했다. 











그리고 계절이 두 번 더 바뀌고, 덤으로 과장도 바뀐 어느 날. 


“인사이동 있을 거예요.”


총무과 직원이 아침부터 전화를 걸어왔다. 


“무슨 인사이동?”


“검찰청에서 남자직원이 하나 올 거예요.”


“검찰청?”


귀신이 곡 할 노릇이었다. 


“그 서울쪽 검찰 직원이 요 근처 출신이라서, 거기 막내 주사랑 인사교류 맞교환 한다던데?”


“그게 돼?”


“돼요. 막내 주사가 면접도 보고 왔다던데?”


듣도보도 못한 일이었다. 


“남잔데, 강용수씨랑 나이도 비슷해요. 남자고. 7급이네......”


“나랑 급수가 같다고?”


“호봉은 더 높아요. 어머, 거기 차석 달겠네.”


속이 뒤집혔다. 


갑자기 듣도보도 못한 놈이, 차석이랍시고 제 위에 앉을 것을 생각하니 분노가 치솟았다. 


“말도 안 돼, 대체 누구 마음대로!”


“그쪽 남자직원도 벌써 면접 본 모양이던데요?”


“계장도 모르는 일인데, 대체 누가?”


“거기 과장님이.”


과장이라고 하니, 모든 게 아귀가 맞아들어갔다. 


고시 출신이다보니 나이는 계장은 물론 인덕보다도 어리고, 연고지는 서울이라고 했으니 이쪽 일은 상관치 말고 1, 2년 그냥 편안하게 쉬다가 꺼져주면 좋을텐데, 공연히 사서 부지런을 떠는 종류의 인간이었다. 한마디로 미친년과 비슷한 부류였다. 


대체 이 년이 언제 과장에게 비비고 들어간 거야. 


인덕은 조바심이 났다. 이 미친년을 놓칠 수는 없었다. 계장이 될 거라고 기대하진 않았지만, 자기보다 윗서열의 남자직원이 들어오다니. 참을 수 없었다. 그런데다 미친년을 볼 때마다, 그녀는 안심이 되었다. 일을 하지 않아도 저게 알아서 해 주겠거니, 성질을 부려도 곱게 받아주겠거니. 무엇보다도, 아침에 거울 속에서 늙고 피로해진 얼굴을 보다가, 사무실에 와서 멧돼지처럼 뒤룩뒤룩 살쪄버린 미친년을 보면 그래도 자신이 아직은 예쁘다는 생각이 들어 기뻤다. 그 모든 것을 한번에 빼앗기다니. 그년이 엿을 먹이기로 작정을 한 모양이라는 생각에 약이 올랐다. 


인덕은 발을 동동 구르다 미친년의 책상을 뒤집어 엎어 버렸다. 어디서 심부름을 하다 왔는지, 서류뭉치를 잔뜩 손에 든 미친년이 문을 열고 들어오다가 그 모습을 보고, 웃었다. 눈에 빛이 돌아와 있었다. 마치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이. 


“너......!!!!!!!”


“주사님께서 절 너무 싫어하셔서요. 여기 계속 있는 게 민폐인 것 같아서 바꾸기로 했어요.”


“누구 마음대로!”


“그럼 좋아하셨어요?”


미친년은 태연히, 회의 테이블에 서류뭉치를 내려놓았다. 


“저 일 못한다고 늘 말씀하셔서, 정말 유능한 분으로 찾느라 고생했어요. 검찰 쪽은 일이 많고 빡세기도 하다니까, 아마 여기 일 정도는 식은 죽 먹기일 거예요. 뭐, 주사님 일까지 순순히 해 줄 지는 모르겠지만요.”


“야!!!!!!”


“아, 일부러 남자 분으로 골랐어요. 설마 강용수 ‘실무원님’이 남자 엉덩이도 더듬으시진 않겠죠? 그럼 큰일인데. 검찰에서 몇 년을 계신 분인데, 가만히 계시겠어요?”


“너 지금 뭐랬어. 실무원?”


“예. 실무원.”


미친년이 뭘 잘못 먹은 듯, 턱을 치어들고 눈을 내리깐 채 말했다. 


“멀쩡히 공채 붙어 들어온 제가 8급이 되고도 한참을 지나도록 계약직이니 알바생이니 그렇게 말씀하시고 다니시던데, 진짜로 무기계약직인 분을 실무원님이라고 부르는게 왜요?”


“야!!!!!!”


혈압이 올랐다. 


“뭐, 때리거나, 성희롱을 하거나, 무슨 일이 있더라도 알아서 잘 하실 거예요. 연세도 있고, 검찰에 두루두루 아는 분도 많을 텐데, 뭐.”


미친년은 웃었다. 


“계장님이나 주사님이나, 방해하면 제가 못 갈줄 아시는 것 같던데요. 근데 사실 이건 과장님이 동의하시면 갈 수 있는 거더라고요. 계장님까지 번거롭게 할 필요도 없는 일이어서.”


그 웃는 얼굴에 똥물을 끼얹고 싶었다. 


걸레로 입을 틀어막고, 제발 살려달라고 빌 때 까지 하이힐로 두들겨 패고 싶었다. 


경우도 없고, 윗사람을 존중할 줄도 모르는 쓰레기같은 년이, 저렇게 사람 업신여기는 듯한 교만한 태도로 감히. 


저렇게 신나서 도망가겠다고 말하는 저 년의 발목을 잘라서, 영영 여기서 못 벗어나게 만들고 싶었다. 그러고 싶어서 속이 달아오르고 머리가 어지러울 만큼. 


토할 것 같았다. 











“음, 이건 내 생각인데.”


강용수는 시무룩한 얼굴로 담배를 문 채 말했다.


“그냥 가라고 두자. 뭐 그런 씨발년 하나.”


“야.”


인덕은 약이 올라 강용수의 뺨을 손으로 툭툭 쳤다. 


“넌 분하지도 않아? 졸지에, 어디서 굴러먹었는지도 모를 놈이 와서 차석이라고 딱 차지하고 앉고, 넌 그 나이에 막내 노릇 하게 생긴게?”


“물론 기분 안 좋지.”


강용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과장이 도장 다 찍었다잖아. 지금 와서 못 바꿔. 그렇다고 자기가 서울의 검찰청에다가 얘 미친년이라고 소문을 내고 올 거야? 교육청이면 몰라도, 저쪽은 그럴 줄이 없다고. 차라리 새로 오는 새끼 잘 길들여서, 우리랑 한 패로 만드는 게 낫지.”


“그럼 내 일은 누가 하고!”


“나도 그게 문제긴 한데...... 오기 전에 업무분장을 바꿔 버리면 어때?”


팔자 좋은 소리 하고 있네. 


인덕은 강용수를 두고 씩씩거리며 방호실로 향했다. 노크도 없이 문을 열어보니, 방호실에서는 쥐새끼같은 공익 두세 명이 공무원들의 눈을 피해 빈둥거리고 있었다. 인덕은 공익들에게 손짓했다. 


“야. 너희 이리 좀 와 봐.”











언제부터 준비한 것인지, 일은 일사천리로 돌아갔다. 인덕이 총무과 직원에게 소식을 들었을 때는, 이미 저쪽에서 보내 온 공문이 총무과에 접수가 된 뒤의 일이었다. 과장은 몸소 인사교류 서류를 챙겼고, 동의 공문이 날아갔다. 그리고 바로 다음 주 월요일로 미친년은 이 곳을 떠나게 되었다. 


금요일이 되자, 미친년은 마치 이곳에 처음 왔을 때처럼 화장을 곱게 하고, 수트를 입고, 가방이며 네일까지 신경을 쓴 듯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처음처럼 그 미친년은, 사무실마다 돌아다니며 인사를 하고, 마지막으로 서버실까지 들여다 보고 왔다. 그 와중에 업체 담당자와 사장에게까지 전화를 했다. 혹시 업체 쪽에서 쟤 도와준 거 아냐. 강용수가 메신저를 날렸다. 설마,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게 아닌 이상 그랬을까. 하지만 어쩐지 그러고도 남을 것 같아 짜증이 났다. 다음 달에 유지보수 하러 들어오면 조져놓는 수 밖에. 


미친년은 자기 개인정보를 삭제하고, 계장에게 보고를 하고는, 마지막으로 짐을 정리하기 위해 캐비닛을 열었다. 


“어......”


인덕은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꾹 참으며 파티션 너머로 미친년을 바라보았다. 


죽어, 반쯤 썩어 통통하고 하얀 구더기가 득실거리는 닭 한 마리가, 캐비닛 안, 그녀의 서류들 위에 놓여 있었다. 


“와.”


미친년은 스마트폰을 들었다. 찰칵, 찰칵, 찰칵. 사진을 찍는 소리에, 계장이 자리에서 튀어오르듯 달려와 미친년의 손목을 비틀었다. 미친년은 캐비닛 문을 활짝 열었다. 


“대박이네요.”


미친년은 자기가 우는 줄도 모르고 울고 있었다.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그년은 필사적으로 웃었다. 


“당신들 전부 다, 역겨워. 시궁창이야, 여긴.”


미친년은 계장에게 잡힌 손목을 비틀어 빼내며 스마트폰을 두 손으로 꼭 쥐었다. 


“백날 이대로들 살아요. 이 시궁창에서 한 걸음도 기어나오지 말고.”


그리고 미친년은, 그대로 문을 열고 달려나갔다. 


가방도, 서류도, 머그컵도, 그녀가 쓰던 물건들을 모두 남겨둔채로. 


미친년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그 뒤로는 한참, 수라장이었다. 


“물론 배인덕 주사가 죽은 닭을 넣었다는 증거는 없어요. 하지만 말이야, 강용수씨가 그러던데.”


과장은 인덕과 계장을 불러 몇 시간씩, 따로따로, 집요하게도 물어보았다. 사무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대체 저 죽은 닭은 어떻게 된 것인지. 


“강용수씨 말로는, 윤리아 주사의 이 메일이 거의 다 사실이라던데.”


“그렇지 않아요.”


“아니, 내 말좀 들어봐요. 강용수씨가, 자기가 윤 주사를 더듬은 건 사실인데, 그걸 배인덕 주사가 시켰다고 했어. 그리고 윤 주사가 총무과에 직장 내 폭력을 호소했다고 하는데......”


“그런 기록 없거든요?”


“아니, 그게, 있더라고.”


사방에 적 뿐이었다. 


믿었던 강용수부터, 그렇게 친하게 지내던 총무과 직원들까지. 세상에 믿을 놈 하나 없었다. 


인덕은 문득, 이제 내후년이면 입시를 볼, 아들 녀석 얼굴을 떠올렸다. 이런 일로 회사에서 잘릴 것 같진 않았지만, 여긴 좁은 동네다. 남의 불행, 남의 몰락이라면 개떼같이 덤벼들어 물어뜯고 소문을 낼 인간들은, 이 건물 안에만 최소 80명은 더 있을 것이다. 그러니 여기서 밀려버리면, 불과 이삼 일도 지나지 않아 아들 귀에, 이 이야기가 들어가고 말 것이다. 


“실은 그런 일이 있긴 있었어요.”


그러니 살아남아야 했다. 여기서 밀려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 찢어죽여도 시원치 않을 년이 뭐라고 메일을 써놓고 갔는지, 과장도 모자라 기관장에게 뭐라고 씨부리고 갔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지금은, 누군가 피를 봐야 끝날 성 싶었다. 과장은 좋게 넘어갈 생각이라고는 없다는 듯, 딱딱한 태도로 그녀를 취조했다. 


닭을 괜히 넣었어.


구더기까지 끓는 건 심했던 것 같기도 하고.


인덕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뭔가 할 줄 알았으면서도 말리지 않았던 강용수가 나빴다. 아니, 사실은 강용수도 그 미친년과 그렇고 그런 사이였는지도 모른다. 마음같아서는 갈아버려도 시원치 않았지만, 지금 강용수를 공격한들, 과장이 믿을 리 없었다. 


“계장님이 처음에 윤 주사를 건드리려고 했는데 그게 잘 안 되는 바람에.”


“계장이 뭘 어쨌다고요?”


“뜻대로 안되니까, 그런데 윤 주사는 계약직이 아니라서 제 발로 나가지 않으면 못 내보낼 노릇이니까, 우리보고 괴롭히라고 계속 강요했어요. 저희 뜻이 아니라고요.”


인덕은 필사적으로, 딱하고 대책없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저도 강용수씨도 이 일을 몇 년을 하는데, 이런 걸 이유없이 신입에게 맡길 리가 없잖아요. 그러고 있으면 계장님이 그걸 그냥 두셨겠어요? 계장님이 시켰으니까 그렇게 한 거죠.”


“정말입니까?”


“정말이라고요.”


인덕은 짐짓 한숨을 쉬었다. 


“지금은 결혼해서 그만두었지만, 윤 주사 오기 전에 있던 계약직들과 얼마나 사이좋게 지냈는데요. 분위기도 좋았고...... 그게 다, 술이 웬수죠. 계장님이 술을 마시고 실수로 윤 주사를 끌고 가려고 한 바람에.”


“......”


“저희도, 모처럼 공채로 들어온 직원이고, 우리랑 오래 같이 일할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잘 해주려고 했어요. 하지만 계장님이 그렇게 강요하는데, 짐작하시겠지만 여긴 인사이동도 거의 없잖아요. 저만 해도 들어와서 지금까지 줄곧 저 사무실에서 일했고. 강용수씨는 같이 일한 지 10년은 되었고, 계장님도 13년째 같은 분인데. 거역하면 사무실 분위기가 어떨지, 짐작 가시잖아요. 안 그러세요?”


“그럼 계장이, 그 전에는 계약직들에게 안 그랬습니까?”


“계약직은 아니지만.”


인덕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정말 안타깝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예전에 계약직 하나가 그만두고 후임을 빨리 못 구해서, 두세 달 쯤 저희 유지보수업체 직원이 와서 근무한 적이 있었어요.”


“그게 언젭니까?”


“한 7. 8년 되었을 거예요. 그때 과장님 결재까지 받았고요. 여튼, 집도 멀고 해서 강용수씨네 집 빈 방에서 지냈는데, 그때도 계장님이 걔한테 손을 대서 그만 임신을 했지 뭐예요.”


“......”


“저도 여잔데, 설마 여직원들에게 나쁜 일을 제가 시키고 다녔겠어요?”


“계장이 대체 왜 그러고 다닌답니까?”


“승진이 거의 안 되니까...... 승진을 포기하면서부터 좀 막 나가시게 된 것 같아요.”


인덕은 과장의 눈치를 살폈다. 조금만, 아주 조금만 더 들쑤시면 될 것이다. 과장같은 부류를, 그녀는 나름대로 잘 알고 있었다. 머리도 좋고 공부는 열심히 한 것 같지만 이런 곳의 생리를 모르는, 그저 일만 열심히 하고 공무원의 품위만 지키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멍청이. 어떤 면에서는, 그 미친년과 똑같은 종자들. 그런 순진한 작자들은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충격을 받는 법이다. 


똑같이 잘못을 했어도 “위력에 의해 복종한” 쪽보다는, 그걸 시킨 쪽이 더 나쁜 법이다. 많은 경우 시킨 놈은 모르는 체 하고, 말을 따른 쪽만 엿을 먹긴 하지만, 이런 반듯하고 올바른 척 하는 작자라면, 배인덕이 아니라 계장이 잘못했다고 판단할 것이 분명했다. 


과장은, 그녀를 앞에 두고 공직 윤리에 대해 설교 비슷한 것을 시작했다. 인덕이 처음 이 회사에 들어왔을 때는 아직 학교는커녕 군대도 제대하지 못했을, 인사기록카드에 잉크도 덜 말랐을 놈의 말을 건성으로 흘려 들으며, 인덕은 곰곰 생각했다. 


계장이야 날아갈 게 틀림없고. 그렇다면 설마 새로 들어올 신입 직원이 계장 자리를 꿰어차진 않을 테니, 누가 새 계장으로 올 것인지. 


신입 직원을 어떻게 구슬러야, 힘을 합쳐 강용수에게 엿을 먹일 수 있을 것인지. 


이 모든 사달을 두고 혼자만 도망간 그 씨발년은 또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도.


일단은 닭을 구해 온 공익들을 불러다가, 미친년의 책상을 통째로 치워버리고, 입을 막기 위해 모두 데리고 나가 술을 사 먹이는 게 먼저였다. 한참 잘 먹을 나이의 장정들이니 목돈 깨지게 생겼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모든 것은 그 미친 년 때문이었다. 그 년이 여기 온 이후로, 단 하루도 마음 편한 날이 없었다. 

댓글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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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도경 16.03.02 19:56 댓글

    역에서 지하철 기다리면서 읽기 시작했는데, 계속 읽어서, 지하철을 몇 대나 보냈는지 모르겠지만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습니다. 우와...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근데 배인덕씨가 홀랑 깨지는 결말의 묘사가 없어서 아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배인덕씨가 이 난관(?)을 어떻게든 헤쳐나가는 무시무시한 꼼수를 목격하고 싶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결론: 2편 써쥬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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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로냥 16.03.03 05:00 댓글

    저도 2편이 궁금합니다. 2편 써주세여 222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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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재식 16.03.03 08:39 댓글

    폭력묘사로 깜짝깜짝 놀라면서도 계속 보게 됩니다. 인물들도 다들 선명하고요. 저도 단숨에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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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림 16.03.05 10:00 댓글

    2부. 2부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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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길윤 16.12.11 09:22 댓글

    우와 너무 재밌습니다! 심리 묘사가 탁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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