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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소설 희망의 밥상

2011.06.25 00:1406.25

희망의 밥상
제인 구달 외, 김은영 옮김, 사이언스북스, 2006년 2월



연심 (felias@naver.com)



0. 읽기 전에 : 그녀의 일상

        밤늦게 컴퓨터를 켜고 할 거 좀 하고 나면, 느긋하게 네이버 기사를 읽기 시작해. 요새 금융권 비리 때문에 사회가 들썩들썩하지. 나쁜 놈들. 롯데 자이언츠 이대호 선수는 올해 2년 연속 7관왕이라는 대기록을 향해 전진중이래. 드라마 최고의 사랑 모르면 간첩이지! 본방사수는 물론이고 주요 스틸컷을 정리해준 기사도 빠짐없이 읽어줘야 돼. ○○동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소식에 혀를 쯧쯧 차대다가, ‘삼겹살 가격 또 인상’ 같은 무시무시한 기사를 읽으니 엉뚱하게 내일 도시락 반찬은 뭘 할까 하는 생각이 나는 거 있지.

        냉장고 문을 열어봤어. 냉동고에는 100그램 들이 비엔나 소세지가 두 팩쯤 있고, 유통기한이 하루 남은 두부도 있어. 원 플러스 원으로. 생닭도 한 마리 있는데, 2890원밖에 안 해서 사왔던 거였어. 원래 요즘 닭이 이렇게 싼가? 싶으면서도 샀는데. 싸게 잘 산 것 같아. 계란이 열 개 쯤 있어서 저걸 언제 사왔나 생각해봤는데, 생각이 잘 안나. 계란에도 유통기한이 있긴 하다던데. 우유가 얼마 안 남았길래 이참에 내일 마트에 다녀오자 싶어서 야채칸도 열어봤어. 대파는 좀 남았고, 감자랑 당근도 아직 있고. 윽, 냄새. 쪽파가 다 상했다! 자주는 안 써도 음식하는 데 안 들어가면 아쉬워서 샀더니. 나름 열심히 먹어도 적게는 안 팔아서 늘 반은 버리게 된다니까. 쩝. 아, 자몽 있다. 미국산? 두 개. 저거 한 달 전 쯤 산 건데 아직도 멀쩡하네. 내일 과일은 사지 말까? 그래도 두 가진 있어야 골라먹는 재미가 있는데. 옥수수나 좀 사와서 삶아 먹어야겠다. 옥수수는 노랑옥수수에 뉴슈가 넣고 삶아줘야 제 맛이지. 쓰읍, 군침 돈다.

        슬슬 자려고 침대에 눕는데 책장에 꽂힌 책 한 권이 눈에 띄었어. [희망의 밥상], 제인 구달. 동물 연구한 학자 아니던가? 왠지 굉장히 유익한 말이 쓰여져 있을 것 같은데. 선뜻 손이 안 가네. 그냥 다음에 읽자…언젠가 읽겠지.

1. 세상에는 두 종류의 책이 있다 : 읽기 위한 책, 읽히지 않는 책-그런데 둘 다라면?

        몇 년 전, 이유도 까먹은 이유로 내 손에 들어온 이 책은 내 책장의 한 구석을 차지하며 나와 함께 빙빙 돌다가, 마침내 첫 장이 펼쳐졌다. 나는 그때까지도 이 책의 내용을 몰랐다. 제목으로 먹는 것에 대한 이야기겠구나, 그녀가 영장류-침팬지를 연구한-학자인 걸 감안하면 환경운동에 대한 이야기겠구나 하고 내용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다음 집으로 가져갈 책을 고르기 위한 수많은 저울질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아 지금까지 내 곁에 남은 것이다.
        오랫동안 곁에서 둔 것이 더 신기한 일일까, 오랫동안 곁에 두었음에도 한 번도 읽지 않은 것이 더 신기한 일일까. 사실 오래 전부터 읽으려고 했던 책이었는데, 이상하게 읽을 기회가 없었다. 책을 읽고 싶기는 하다. 책을 통해서 더 많이 알고, 더 잘 내 몸이나 환경을 위해서 좋은 음식을 고를 줄 알고 또 먹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기억나지 않는 어느 한 순간에, 이 책을 만났고 자신에게 딱 맞는 얼개를 찾은 듯이 책장에 책을 꽂아 넣었을 것이다. 읽기 위한 책이었다. 그러나 읽지 않는 책이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내 자신을 고치긴에는 게으르고-이 표현은 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 난 그냥 합리적 무지 속에 안주하는  평범한 사람이니까-, 현재에 충분히 만족하니까.
        그러나 그런 나도, 결국엔 이 책을 펼쳐 보고야 말았다. 현재의 생활로는 안 된다는 위기감, 혹은 평소에 쉽게 책임감을 느끼지 못했던 일말의 도덕심이 어느 순간 화학작용하여- 작가가 살아온 채식주의자로서의 여정과, 일년 삼백육십오일 중 삼백여일을 비행기와 낮선 숙소에 몸을 의지해가며 현재까지 지내오게 한 이유를 또박또박 적은 이 책을 일주일의 기간동안 정신없이 빠져들게끔 하고 만 것이다.
        독자로서 왜 이리 늦게 책을 읽게 됐는지, 또 얼마나 읽는 것을 피하고(?) 싶었는지 말하는데 이리 긴 시간을 할애한 것은, 현실 속에 안주하려는 그 많은 다수의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기어코 책을 읽게 하는 마법과도 같은 힘을 지닌 작가의 글에 무게를 더하기 위함이다. 남이 가기 어려운 길을 가는 어느 한 사람이 쓴 글이 그와 전혀 다르게 생활하고 있는 사람의 행동을 조금이라도 변화하게 할 정도로의 설득력을, 이 책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2. 어떤 한 사람 : 똑바로 앞을 보는 삶을 살아가는, 어떤 한 사람, 작가

        그 설득력을 설명하기 위해서 먼저 제인구달 박사를 소개해야 하겠다. 제인 구달 박사는 처음으로 침팬지가 도구를 ‘의식적으로’ 사용한다는 것을 발견한 학자이다. 당시의 과학자들은 오직 인간만이 도구를 만들고 사용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녀의 발표를 접한 학자는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인간에 대한 정의를 ‘도구를 새롭게 정의하는 인간’이라 해야겠군. 아니면 침팬지를 인간으로 받아들이든지!” 유일하게 ‘이성’을 가진 인간이 ‘신에게 선택받은 존재’로서 자연을 정복해 나가는 것이 당연시 되었던 신학의 시대에서 점차 과학의 시대로 전환해나가던 과도기에서, 인간이 원숭이와 같은 존재로 격하했던 다윈의 진화론, 인간에게 인간도 모르는 무의식이 존재한다는 이론을 만들었던 프로이트의 심리학과 함께 제인 구달 박사의 발견은 인간을 재정의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이런 놀라운 일을 한 그녀이지만, 세간에 그녀는 간단명료하게 ‘침팬지 엄마’, 혹은 ‘침팬지를 연구하는 여류학자’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면 뭐 어떤가. 그녀는 처음부터 계속 좋아하는 일을 했고, 연구하고 발표했다. 또한 여전히 침팬지를 사랑했다. 1986년의 한 학회에서도 그녀는 침팬지에 대한 연구를 위해 참석했다가, 침팬지에게 ‘밀렵’이 매우 심각한 문제임을 알았다. 침팬지는 멸종위기에 처해 있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침팬지가 처한 위험한 상황을 알리고 경각심을 일깨워야만 한다고 느낀 박사는 좀 더 부지런해졌다. 그녀의 침팬지가 접한 위기가 세계 곳곳에 있는 엘리트 사회의 수익구조와 또다른 한쪽의 기아-동물뿐만이 아니라 사람도 동물처럼 픽픽 죽어갔다-와도 연결되고 있다는 걸 알기까지는 그리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게 몇 십 년, 제인 구달 박사는 환경보호 운동을 주도하며 일 년 중 300여일이 넘는 시간을 강연을 하러 전 세계를 누빈다. 그녀의 나이가 올해 일흔 여덟의 노령인 것을 감안하면, 그녀의 넘치는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는지가 놀라울 뿐이다. 제인 구달 박사는 겸손하게 그녀의 힘의 원천이 채식과 소식에서 나왔음을 밝히면서, 자연스럽게 그녀가 채식을 하는 이유, 그녀 자신의 의지로 육식을 거부하는 이유를 경청하도록 유도한다.

4. 무엇을 경험하였는가, 알았는가, 그리하여 어떻게 행동하는가

        고기 1kg을 얻기 위해 써야 하는 물의 양을 그녀는 알고 있다. 육식 뿐만 아니라 우리의 식탁 위에 올라오는 계란, 가금류, 어류, 새우, 채소들이 어떻게 길러지고 가공되어 유통되는지를 그녀는 총명하게 빛나는 눈으로 속속들이 지켜보았다. 무작위로 살포되는 농약, 몸 한 번 돌리지 못하는 닭장에 갖힌 채로 알낳는 ‘기계’로 취급되는 닭들, 항생제로 범벅되어 길러진 연어와 새우, 그리고 ‘종자의 제왕’으로서 모든 곡물 위에 우뚝 선 몇몇 거대농업회사들의 존재까지. 보고, 듣고, 연구하며, 체험하여 기록했다.
        그러나 [희망의 밥상]은 단순한 체험기는 아니다. 음식의 문화부터 시작하여 식품과 관련한 현의 실태를 가감없이 드러내고 그에 대한 우리의 실천 방안 - 전 유기농 식품을 먹어야 하는 이유와 방법 등을 자세히 기술하는 등 어느 하나라도 소홀하지 않게 채식의 근거를 제공한다. 반어적이지만 그 매력적인 이야기에 고개를 박고 한참동안 읽어내려가다 보면, 내가 이 책을 기피했던 이유와도 딱 마주치게 된다. 나는 현재의 내 식습관을 바꾸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나는 잘 몰랐다, 몰라서 그랬다. 그렇게 회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책은 흘러가는 시간만큼이나 정확하게 피하고 싶었던 진실을 보여준다. -이 책의 주로 다뤄지는 비판의 대상은 미국의 거대 식품 업체나 유전자 변형에 관련한 다국적 기업들이다. 그들은 지구 반대편에 있지만 그곳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바로 내 식탁 위에, 내 입으로 들어가는 고기와 채소들에게도 똑같이 벌어지고 있는 일인 것이다. 마트의 두부가 왜 그렇게 쌀까? 우유는 어떻게 제공되고 있는 걸까? 마늘은? 양파는? 중국산이라서 ‘당연히’ 가격이 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사이의 모든 처리과정에서는 눈을 돌린다. ‘미국산 ‘네이블 오렌지’나 ‘칠레’산 청포도를 아무렇지도 않게 먹는다. 2천 킬로미터가 넘는 길을 달려온 ‘프레시한’ 과일을 한번이라도 먹어본 사람이라면, 제인 구달 박사가 얘기하는 이야기가 단순히 ‘환경보호’가 아니라 나의 건강과 직결된 문제임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불편한 진실, 그러나 꼭 알아야 할 진실에서 제인 구달 박사는 행동하라고 얘기한다. 행동하라. 비록 작은 움직임이라고 할지라도 꼭, 행동하라. 이 책을 읽고 잠시 무서워하고, 잊어버리는 일은 쉽다. 하지만 내가 먹기 때문에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동물들이 있고, 갖가지 항생제와 농약은 내가 먹은 만큼 계속 내 몸에 쌓여 나 뿐만 아니라 내 아이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잘 읽었다, 하고 다시 일상의 생활로 돌아가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 될 것이다. 하지만 아주 돌아가기보다, 조금의 전환점이라도 갖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큰 행동이 아니어도 괜찮으니까. 고기가 좋으니 고기를 버릴 수 없다는 사람이라면 고기의 종류나 양을 조절하는 것도 좋고, 가족의 건강을 생각하는 주부라면 음식물 쓰레기 만들지 않기, 1+1제품을 사서 절반을 버리는 대신 유기농으로 고르기 같은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 자신의 식생활을 돌아보는 것, 그것이 ‘희망의 밥상’의 희망이 아닐까.

댓글 2
  • No Profile
    as 11.06.30 11:21 댓글 수정 삭제
    정말 계속 생각해야 할 문제 같아요. 잘 읽었습니다~
  • No Profile
    가연 11.07.17 23:59 댓글 수정 삭제
    스파게티가 먹고 싶어서 가게에 토마토소스를 사러 갔다가, 문득 원재료가 뭔가 보니, 국산은 하나도 없어서, 슬퍼하며 내려놓고 토마토를 샀습니다. 내가 만든 건 파는 것만 못하지만...
    작년에 도살장을 읽고 진짜 심란했는데, 그걸 너무 빨리 잊는다 싶기도 하고, 다는 못해도 조금이라도 하면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as님 말대로 계속 생각해야 할 문제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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