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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두 개의 심장], 김동석

2005.06.25 03:1306.25

lunaticsun@msn.com 이야기의 시작

 평범한 여자친구와 평범한 일상의 데이트를 즐기던 청년 단테 이스카리옷은 어느 날, 자신의 안에 잠재하고 있던 또 다른 ‘나’를 자각하게 된다. 결국 평범한 일상의 틀에서 뛰쳐나온 그가 뛰어든 세계는 싱싱한 살에 대한 갈망과 피비린내가 존재하는, 광포한 야수성이 지배하는 세계였다. 이제 그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닌 늑대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게 된 것이다. 그러나 단테의 기구한 운명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어쩌다 네이티브의 눈에 띄어 참여하게 된 회합의 밤에 라이칸스로프들을 쫓는 정체불명의 조직인 RHK(Red Hood Knights)의 습격을 받게 되고, 죽음의 위기에 처한 순간에 슈발츠발트라는 RHK 대원에 의해 네이티브 라이칸스로프의 심장을 이식받는다. 두 개의 심장을 지닌 괴물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방황, 그리고 성장
 
 한때는 인간이었지만 갑자기 자신이 라이칸스로프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으며, 이제는 그 이상의 다른 존재가 되어 버린 주인공은, 새로운 자신을 받아들이면서 나타난 야수성을 부인하고 싶어 하는 인간적인 나약함을 이기지 못하고 방황한다. 이 때 그를 구해주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인물이 바로 뱀파이어 혈족의 공주라고 할 수 있는 레아이다. 그러나 언제나 자신의 가슴 속에서 뛰고 있는 두 개의 심장을 의식하고 있는 단테로서는 자신의 존재 자체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는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인간의 심장과 라이칸스로프의 심장을 한 몸에 가지고 있으며, 뱀파이어의 피를 마셔 그 혈족이 된 그는 어찌 보면 가장 불합리한 생명체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신이 두 개의 심장을 지닌 기괴한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 RHK의 한 대원이 행한 계획의 일환임을 알고 그는 분노와 절망을 감추지 못한다. 인간성과 야수성 사이에서 방황해야 했던 자신의 존재론적 고뇌가 한갓 자신을 도구화하려는 계획에서 비롯하였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방황은 사건이 전개되면서 그가 점차 ‘인간 단테’, 혹은 ‘라이칸스로프 단테’가 아니라 ‘레아의 반려 단테’임을 강조하면서 끝을 보게 된다. 종족의 본성이나 외형이라는 잣대로 존재를 정의내리지 않고 관계 속에서 자신을 찾게 된 것이다.

 성장은 비단 단테에게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긴 생애를 살아온 레아는 그 세월 중 가장 행복했었던 추억에 집착하면서 살아가며, 때문에 그녀는 그 행복이 오래지 않아 파괴되어 버렸던 순간을 끊임없이 회상하며 괴로워한다. 비극적인 과거의 그림자 때문에 그녀는 현재를 피상적으로 살아가며, 그녀의 반려인 단테에게마저도 쉽사리 속마음을 내비치지 않는다. 그러던 레아에게 죽은 과거와 살아있는 현재를 그대로 받아들이게 한 결정적인 사건이 바로 그녀의 아버지이자 혈족의 지배자인 노스고트의 죽음이다. 한때 자신의 행복을 송두리째 파괴한 인물로 증오해 마지않았던 잔혹한 아버지가 비열한 간계에 빠져 눈앞에서 죽어가고 있는 것을 보고 과거로만 향하던 그녀의 시선은 제대로 방향을 잡는다. 이러한 의미에서 노스고트의 죽음은 그녀의 과거로의 맹목적인 집착과 증오를 함께 죽이기 위한 희생의 기능을 수행한다고 말할 수 있다. 아버지의 피를 마시고 난 그녀가 〈고치〉로 변하는 것도 성장의 상징적인 한 단계로 보인다.

 순간순간이 빛난다

 1인칭의 서술자에 의해 전개되는 이 작품은 첫 챕터부터 생생한 묘사로 독자들을 몰입하게 한다. 인간을 초월한 자들 사이의 혈투를 그려내는 작가의 솜씨는 놀라울 정도이다. 상황 그 자체를 포착하고 전달하는 능력은 장면 하나하나가 살아서 흐르게 한다. 또한 작가의 간결한 문체는 스피디한 액션 씬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빛나는 것을 알 수 있다. 전투 묘사에 몰입하고 있다보면 어느새 늑대 인간이 바람 소리를 내며 옆을 스쳐지나가는 것을 느끼고 그의 헐떡이는 숨소리를 듣고 있는 것만 같다. 주로 건액션 씬이 많아 비슷한 소재들이 등장하는 홍정훈의 《월야환담》 시리즈를 연상케 하는 면도 없지 않으나, 전문 지식을 설명하기보다는 급박한 상황을 그대로 살려내는 묘사와 한편으로 등장인물의 심층적인 심리 서술을 병행하는 전개 방식은 다른 작품들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긴장한 주인공의 심박수에 맞추어 총성이 울리고, 검이 허공을 가르고 있는데 독자에게는 그의 내면적 독백이 들려오는 듯하다. 마치 잘 만들어진 영화에서 현실감 넘치는 액션 씬 와중에 배우의 깊은 눈동자를 한동안 비추고 지나가는, 그런 느낌이다.

 아무리 장면 묘사가 뛰어나도 살아 움직이는 인물이 없다면 그것이 실감나게 느껴질 리가 없다. 그런 면에서 매력적이면서 생동감 있는 등장인물들은 이 작품의 재미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주인공 단테는 하루도 몸 성할 날 없이 싸우는데다가 거친 야수성을 간직한 캐릭터로, 그런 자신의 존재에 대해 회의를 품고 내적인 갈등을 겪고 있다. 그런 주제에 가끔 레아의 말에 놀랍도록 단순하게 반응하고 얼빠지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있자면 귀엽다(?)는 생각까지 들게 만드는 청년이다. 그런 단테의 반려이자 마스터인 레아는 뱀파이어라는 종족 자체의 신비하고 고고한 매력에 말 한마디로 늑대 인간을 쩔쩔매게 만드는 장난기 어린 소녀와 추억에 잠긴 노인의 성격을 동시에 갖추었다. 첫 챕터에서 강렬한 인상을 주며 등장한 슈발츠발트는 처음에는 음모의 냄새를 풍기다가 나중에는 삼각 관계를 지켜보는 재미까지 선사하는 흥미로운 인물이다. 이들은 작중에서 기뻐하고 상처받고 성장하며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전개해 나간다.

 그러나,

 빛나는 순간순간이 모여 빛나는 작품을 만들려면 작품 전체로 보았을 때 장면 하나하나가 유기적으로 한 몸을 이루어야 한다. 문제는 다소 산만하게 느껴지는 이야기의 구성이다. 작중에서 회상 장면을 자주 사용하다 보니 글이 마치 모자이크처럼 되어 버리고, 그러다 보면 아귀가 맞지 않거나 진행상 억지스럽게 느껴지는 것도 있다는 점이다. 정작 설명하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그냥 넘어가고 나중에 회상 장면으로 짤막하게 보여주는 등, 비중 조정이 되지 않은 점도 눈에 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작품을 통일성 있게 끌고 나가는 큰 줄기가 드러나 있지 않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이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자신의 존재에 대해 회의를 품고 인간성과 야수성 사이에서 갈등하던 단테의 방황과 그 성장이 중심이 되지만, 그것은 장면 하나하나에서 단편적으로 드러날 뿐, 주인공의 내적 갈등과 그가 직면하는 상황들의 전개는 별도의 개연성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보니 주인공의 갈등은 외부적 상황에 처했을 때 ‘단테의 폭주와 레아에 의한 안정’이라는 전개를 반복하다가 어느새 싱겁게 해결되는 것처럼 보인다. 작품의 전개에 따라 전면적으로 등장했던 다른 갈등 상황도, 다른 사건이 시작됨에 따라 의외로 맥빠지게 끝나거나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이야기는 작품 내에서 하나의 커다란 개연성을 따라서 진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여러 가지 갈등, 인물, 심지어 우발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사건 하나라도 그러한 개연성과 어떤 식으로든 연관을 맺고 있어야 작품 전체가 유기적으로 뭉쳐질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그 장면 하나로 뛰어난 완결성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작품의 큰 흐름에서 벗어난 외전에 불과하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이만한 작품이 하나의 커다란 줄기를 가지고 전체적인 통일성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는 것은 상당히 아쉬운 점이다.

 끝으로

 『두 개의 심장』은 소재의 선정, 장면의 묘사와 서술, 인물과 배경 기타 설정 등에서 나무랄 데 없는 면을 보여주는 수작임에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개연성이 약해진 나머지 그러한 장점이 제대로 살아나지 못한 것 같아서 다소 아쉬운 마음이 들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작품을 읽는 내내 너무나 생생한 장면 하나하나에 실제인 듯 몰입하였기에 그 아쉬움은 더 크다. 작가가 한창 연재하고 있는 『CYBR』이 『두 개의 심장』을 능가하는 멋진 작품으로 완성되기를 바라면서 약간의 부푼 기대와 함께 그 아쉬움을 달래본다.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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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석 05.06.29 07:04 댓글 수정 삭제
    충실하고 따끔한 비평 감사합니다.
    지적하신 점 고쳐나가는 글장이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