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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훈님의 소설을 오랜만에 읽었습니다. 사실 저는 그 분의 작품을 모두 챙겨보는 사람은 못 됩니다. 다만 <인섹트 플라이트>의 팬일 뿐이에요. 저는 사랑 이야기를 좋아하고, 그 중에서도 감당할 수 없는 인연이었을 경우 관심이 기울어질 때가 있지요. 그런 상황이었습니다. 물론 그런 취향을 항상 유지할 수는 없는 법이지요. 말하자면 작품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높은 수준이었다고 봐야 합니다. 뭐, 기준은 주관적이니까요.

이러한 소설들은 기본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극대화/극단화한 작품에 가깝습니다. 현실과 충분히 오밀조밀한 관계도를 띠고 있으니 감정이입이 가능한 것이지요. 사랑이라는 주제, 그것도 짝사랑은 범인류적인 공통감각입니다. 나는 그것이 정치적 태도로 전환되었을 때 어떤 소설이 나오는지 <바이센테니얼 챈슬러>에서 조금 엿보았습니다. 사실 지난 대선이나 이번 총선은 무척 중요한 사건이었어요. 지지하던 후보가 압도적인 차이로 낙선하더라도 쉽게 “나, 죽을까?”라고 쉽게 말할 수도 없고 우울한 날이 계속되었지요. 망명의 색채를 띤 수백 년 동안의 동면은 개인에게 어떤 경험이 될까요. 지속되는 동면이 끝내 낙원 아닌 낙원에 도달한다는 발상은 누구에게라도 충분히 낭만적입니다. 말하자면 독재정권의 권력의지의 패배를 조금이나마 맛보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것은 어차피 주인공 남녀만의 것에 지나지 않고, 권력은 이주민을 따라 이동했을 뿐입니다. 감정이입의 대상을 어디다 두어야 옳은 것일까요. 저는 모르겠네요. 갸오뚱, 마오쩌뚱.

사족이지만, 삽화 속의 총통 얼굴은 분명 누군가와 닮았군요.

로버트 하인라인의 <너희 좀비들>은 개인적으로 제가 그동안 읽었던 그의 모든 단편들 중에서 가장 취향에 부합되는군요. 비록 입으로 중얼거리기는 해도 충분히 재미있는 상징이 사용되었습니다. 우로보로스. 영원히 자기 꼬리를 먹는 전설의 뱀. 예수가 태어나기 전의 크레타에서라면 충분히 널리 보급되어 있을 해묵은 상징 이미지에 지나지 않지요. 비록 스스로 자신을 잡아먹어야 하는 이유에 대한 언급은 나오지 않지만 이러한 패러독스가 구원이라는 점에서, 주인공 제인/미혼모만이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윽고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 부호에 도달했을 때 애잔한 감상주의에 빠져들고 말지요.

“난 당신이 끔찍이도 그립다.”

놀랍게도 이번 12호에 수록된 작품들은 매우 신화적이군요. 로버트 실버버그의 <황야의 길가메시>는 제목부터가 그렇습니다. 뭐, 그래도 원시와 신화에 천착하였던 두 작가가 로드무비의 주인공 같은 차림으로 나와 꼴사나운 환호성이나 지르는 것은 썩 유쾌하지 않습니다. 후편이 남아 있어서 별 다른 감상을 남길 수 없지만 여기서 나타나는 지옥의 광경만큼은 일품입니다. 겨우 텍사스라니, 지옥이! 그리고 대체 지옥으로 온 이들의 기준은 어떻게 가늠해야 하는 것인지 머릿속에서 실이 엉킵니다.

안타깝게도 <망고가 있는 자리>의 야심찬 만화 각색은 예상했던 결과를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이었지요. 몇 가지 지적을 해볼까요. 만화를 올 컬러로 그린다고 해서 공감각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정성에 대한 모독이 아닙니다. 화자의 존재가 무력해지는 연출된 만화 장르에서 나레이터가 남용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각색일까요. 일단, 한 권의 장편소설을 2회의 잡지 연재로 끝낼 수 있다는 것부터가 완성도를 잡아먹고 들어가는 발상입니다. 누가 먼저 원했던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작가분께서 이 기회에 연출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기를 바랍니다.

가령, 당장 권교정의 <제멋대로 함선 디오티마>를 참고해도 좋아요. 이 작품은 사실 감상을 딱히 정리할 수도 그럴 필요도 없는 훌륭한 만화입니다.

지난 호에 비해 실망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죠. <판타스틱>에서 장경섭의 만화를 볼 수 있었던 것을 단순한 행운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아깝습니다. 페이지 분량 문제가 있었을까요. 하긴, <망고가 있던 자리>는 너무 큰 지면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연재작 외에도 좋은 만화를 자주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번에도 기획이나 인터뷰에 대해서 별로 할 말을 못하게 되는군요. 물론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거울 합평회가 아닐까 싶네요. 저도 개인적으로 참석하고 싶었지만 별로 사교적이지도 못하고, 아무래도 합평회 성격이 제가 겪었던 것과 차이가 있지 않을까 싶어서 접었습니다. 좋은 합평회 계속 이어가길 기원합니다.

김성종 작가 인터뷰를 읽으니 생각나네요. 얼마 전에 구도소설 <만다라>의 작가 김성동이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1900~2000의 작가 설명에 실린 자신에 대한 설명이 틀렸다고 출판사측에 항의한 사건이 있지요. 김성종과 김성동을 동일인물로 착각해서 벌어진 해설가의 실수입니다. 물론 책 본문에서도 김성종 작가에 대한 설명은 상당히 평가 절하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김성동 작가는 자신이 그런 작가로 착각한 것에 대한 상당한 불쾌감을 표명한 것이지요. 그것은 실제 문학과지성사에 보낸 김성동 작가의 편지에 나타난 문체로 충분히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니까, 슬픕니다. 여전히 이쪽 동네는 한숨만 나올 뿐입니다. 츠츠이 야스타카의 문단을 향한 울분이 너무도 잘 이해가 돼요.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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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명훈 08.04.26 11:16 댓글 수정 삭제
    권력이 어디로 갔는지는 "초록연필"을 읽어 주세요. 무려 한 달간 메인화면에 있었습니다. 덩샤오핑. 후진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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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나긴 순간의 완결을 기나길게 기다려 본 호이기도 했지요. 결말이 섭섭했어요. 6개월간 엄청나게 많은 가능성들을 떠올리며 두근두근해던 것에 비해서는요. 그래도 그 순간에 도달하는 길은 정말 멋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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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울에서도 봤었지만 명훈님 소설도 즐겁게 읽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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