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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쉬포워드

로버트 J. 소여, 정윤희 옮김, 미래인,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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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영역으로 향하는 과학소설

1. 시간여행에 대한 SF의 태도

시간, 즉 과거와 미래를 다루는 SF의 시간에 대한 입장은 대부분 자신의 능력으로 바꿀 수 있다, 즉 시간여행을 통해 정해진 역사나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말하는 쪽이다.
이는 시간여행 장르의 시초라고 하는 H.G. 웰즈의 [타임머신]을 생각하면 오히려 의외라고 할 수도 있는 부분이다. 이미 시간여행물의 시초에서부터 시간여행의 모순과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데(과거로 보냈다면 왜 과거에 그 사실을 몰랐을까?), 주인공이 너무 먼 미래로 가버리는 바람에 패러독스가 생기는지 검증은 불가능하지는 주인공의 존재가 미래나 역사에 영향을 끼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반면 시간여행 장르에서 가장 인기작이라 할 수 있는 [타임 패트롤](폴 앤더슨, 행복한책읽기, 2008년 9월)은 시간여행으로 얼마든지 과거를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이를 저지하는 시간경찰의 활약을 다룬다. 애초에 시간여행이 가능할 정도의 과학력이라면 강력한 무기 등 다른 기술도 발달해 있을 거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기에 가능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겠다([타임머신]의 경우는 시간여행 이외에는 아무 능력이 없는 평범한 여행자이기에 관찰자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이렇게 시간여행으로 패러독스가 생기거나 역사를 바꾼다든가 하는 이야기가 가능한 것은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다 혹은 자신의 노력여하로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식의 오래된 믿음에 기초한 덕분이라 할 수 있다. 미래를 바꿀 수 있으니 과거로 갈 수만 있다면 과거도 바꿀 수 있다는 발상인데, 인간의 자유의지를 신봉하는 철학적 입장에서 해석할 수도 있지만 어렵게 이야기할 것 없이 픽션의 재미를 위해서는 기존관념이나 지식을 뒤흔들고 바꾸는 쪽이 흥미진진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역사를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결론적으로 역사가 원래 그대로 이루어졌더라는 식의 결말을 가진 작품도 있고, 바꾸려 노력해도 불가능하다는 내용의 작품도 있다. 하지만 이들 작품 역시 역사를 바꿀 수 있다는 대전제 아래에서 이루어진 일종의 반전이나 비꼼으로 쓰이고 읽혔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예외적으로 순수하게 과거나 미래를 바꿀 수 없다고 단정하는 경우도 있다. 그 대표적인 작가가 테드 창인데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에서는 누르기 전에 빛을 발하는 기기를 통해 자유의지의 존재를 의심하고,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을 통해 시간여행을 해도 과거는 바꿀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2. 미래에 대한 두 주인공의 태도

이제 본작 [플래시포워드]에서 ‘캐나다의 마이클 크라이튼’ 소여는 기존의 시간여행과는 다른 방법으로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우리가 미래는 정해져 있지 않다, 미래는 바꿀 수 있다고 흔히 말하는 근거는 과거와 달리 미래가 어떻게 펼쳐질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만약 미래를 알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것도 자기 혼자가 아니라 전 인류가 먼 미래의 어느 한 순간을 알게 된다면?
한때 블랙홀을 만들어서 지구가 멸망하는 게 아니냐는 억측을 일으켰던 CERN의 LHC를 배경으로 하드SF의 배경 설정을 깔긴 했으나 본작이 말하고자 하는 테마는 짧고 간단하지만 결코 답하기 쉽지 않은 의문이다.
만약 미래를 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까?
사건의 책임자라는 무거운 운명을 짊어진 과학자 로이드는 그 미래를 절대불변의 진리처럼 생각하고 그에 따르려 한다. 이는 과학자로서의 신념 때문이기도 하지만, 벌어진 비극의 책임에 대한 도피심리 때문이기도 하다. 전 인류가 의식을 잃고 미래의 환시를 보는 동안 자동차나 비행기에 타고 있던, 혹은 계단을 오르내리던 수많은 이들이 죽고 다쳤다.
이 사건이 자신의 실험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로이드는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죄를 저지른 셈이다. 하지만 실험을 포함한 모든 일은 어차피 벌어지게 되어 있는, 이미 정해진 운명과 같은 일이었다면 로이드의 죄책감과 책임도 덜 수 있다. 그래서 로이드는 뒷받침을 해줄 과학이론을 끌어 모으며 미래는 바꿀 수 없고 자유의지는 허상이라고 항변한다.
반면 로이드의 동료 테오는 정반대의 입장이다. 아무런 환시를 보지 못한 그는 사람들의 증언으로 자신이 미래에 총을 맞고 죽었다는 말을 듣고 미래를 바꾸고자 동분서주한다. 누가 자신을 죽였을까, 왜 죽어야만 했나 라는 의문을 추적하지만 쉽지가 않다. 무려 20년도 넘는 미래의 일이기 때문이다.
결국 마지막에는 마이클 크라이튼의 스릴러를 방불케 하는 숨 가쁜 활극까지 펼치며 운명을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
이러한 두 주인공의 대조적인 생각은 전술했던 시간여행에 대한 SF의 두 태도로 이어진다. 로이드가 자유의지를 믿는다면 실험과 사고는 자신의 의지로 일어난 거나 마찬가지가 되고, 테오가 자유의지를 부정하고 미래는 정해져 있다고 생각한다면 죽는 이유를 찾거나 이를 막기 위해 애쓸 필요도 없어진다. 따라서 두 주인공의 운명은 본작이 취하는 시간에 대한 관점에 의해 정해지는 셈이다.

3. 세카이계인가?

인류의 문제와 시간과 자유의지에 대한 관점을 두 주인공에게로 축소시켜 다루는 부분, 특히 그 주인공이 문제 발생의 원인 제공자이며(비록 본인들도 잘 모르는 사이에 벌어지긴 했으나) 이유를 알아낼 능력과 가능성을 가졌다는 점에서 본작은 일본에서 말하는 '세카이계'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다만 개인의 미시적 문제를 세계라는 거시적 문제와 연결시키는 것이 세카이계라고 한다면 이 작품은 세계의 문제가 개인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역 세카이계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물론 실제로 이 두 부류를 다 세카이계로 부르는 데에 무리는 없다).
오오츠카 에이지는 자기 주위의 작은 세계와 지구의 운명을 거는 거대한 세계, 이 두 가지의 세계밖에 인식하지 못하는 아동 및 청소년의 심리에서 세카이계가 태어났다고 말한다. 가령 저연령용 로봇 애니메이션은 나이가 어린 주인공이 지구를 지키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이러한 이야기에 감정이입을 하며 자라난 세대가 만들어낸 세카이계의 대표작 [신세계 에반게리온], [최종병기 그녀] 등을 보면 중고생인 주인공의 일상과 미지의 적에게서 세계를 지키는 존재를 그리지만 둘 사이는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되 그 중간 단계가 없다.
지구적 상황과 추이를 뉴스의 인용 등을 통해 디테일하게 그려내기는 하지만 이러한 주인공과 세계와의 밀접한 관계 때문에 본작을 세카이계와 연관하여 분석하는 것도 가능하리라 본다. 다만 사춘기적인 세계 인식에 기반한 세카이계의 기존 흐름과는 이질적이기 때문에 억지로 갖다 붙이는 식의 해석은 곤란할 듯 하여 여기서는 그렇게 읽는 것도 가능하다는 정도로만 적어둔다.

4. 철학의 영역으로 향하는 과학, 과학소설

미래가 어떻게 되는지를 테마로 한 작품이기 때문에, 반전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지만 결론을 밝히면 상당히 재미가 줄어드는 부류의 작품이다. 따라서 결말이나 결론이 드러나지 않도록 조심하는 범위 내에서 말하자면, 본작은 과학소설이 다루는 테마가 과학을 지나 철학의 영역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한 증거라고 말할 수 있겠다.
가령 본작에서도 이론적 근거로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양자역학은 과학이면서도 기존 과학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은 물론 철학에까지 통하고 있는 것이다. 가령 존재의 위치를 확률로밖에 알 수 없다든가, 관측하기 전에는 그 존재를 규정할 수 없다든가, 어디에 존재하는지는 관측의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알 수가 없다든가 하는 반직관적인 말을 들으면 얼핏 비과학적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렇듯 묵직한 테마를 던져주고는 있지만 본작의 결말은 사실 상당히 온건하다. 훨씬 도전적이고 도발적인 주장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작가는 좀 더 대중적이고 기성품 소설다운 안전함을 추구한 게 아닌가 싶다(그래서 블록버스터 드라마로 제작된 것일지도 모르지만).
결국 이래서는 고대를 무대로 한, 미래에 대한 예언을 소재로 한 작품과 큰 틀에서 볼 때 차이가 없다는 비판도 가능할 것 같다. 신이 존재하는 신화의 세계에서는 신탁이나 예언 같은 초인적 능력이 지금의 과학 이상으로 사람들의 신뢰를 얻고 있는 불변의 법칙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이 작품은 현대의 '오이디푸스 신화'라고 볼 수도 있겠다.
고대의 신화와 우화가 신학에 대해서 그랬듯이 미래의 과학소설이 철학에 대한 논의를 불러일으킬 것임은 분명하다. 인간과 세계와 미래, 이는 문학과 신학, 철학을 아우르는 인류의 오랜 고민거리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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