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지금 폴란드 약쟁이 작가의 책을 번역하고 있는데요.
왜 약쟁이냐면 이 사람이 화가 집안에서 태어나서 본인도 화가 겸 작가였는데 마약 먹고 그림 그린 다음에 여백에다가 자기가 먹은 마약의 화학식을 그려놓고 그랬어요... 진짜 약쟁이...
하여간 그 약쟁이 작가의 일생의 역작 520쪽짜리 장편소설을 번역하면서 많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세계적인 작가가 되어 본인의 작품이 막 25개국 30개국 언어로 번역되는 걸 원하신다면
1) 약 먹고 글 쓰지 않는다. 특히 소설에다가 "그는 마치 0.2그램의 코카인을 들이마신 듯이 머릿속이 맑아졌다" 이따위 문장 쓰지 않는다. (죽도록 번역했는데 출간 안 되면 어떡하지 아놔)
2) 한 문장을 세 줄 이상 쓰지 않는다.
- 이 약쟁이는 평균 5줄, 제가 최고 12줄짜리 문장도 봤습니다. 한 문장입니다. 12줄. 두 페이지에 걸쳐 이어지더군요. 제가 오죽 열받았으면 세어 봤겠어요.
3) 사전에 나오지 않는 단어는 웬만하면 쓰지 않는다. 특히 본인이 약먹고 만들어낸, 자기만 아는 단어는 제발 좀 쓰지 마 어떻게 번역하라는 거야!!!! 꽥
4) 본인만 아는 철학을 설파하고 싶으면 소설 말고 철학책을 쓰든지 아니면 좀 알아듣게 쓴다.
작품 자체는 러시아 공산혁명 이후에 세계 전체가 공산화되고 오로지 폴란드만 옛날의 체제를 유지하며 간신히 간신히 살아남아 있는 상황에서 주인공이 여러 사람과 돌아가면서 므흣한 관계를 맺고;;; 그 와중에 폴란드에는 공산혁명과 전쟁의 위협이 상존하고, 그래서 군부 지도자가 국가를 지배하고, 주인공은 모종의 세력에 회유되어 이 군부 지도자의 측근으로 들어가 스파이가 될 것 같고... 뭐 이런 아슬아슬한 대체역사SF(?)치정에로전쟁스파이성장소설인데요...
어떻게 이렇게 선정적이고 흥미진진한 줄거리를 이렇게까지 정신없고 뭔 소린지 모르게 쓸 수가 있지... ㅇ<--<
지금 190쪽 남았는데 저 이거 다 번역하면 기념파티 할 겁니다.
마약을 하지 말고 알아들을 수 있는 소설을 씁시다... ㅠㅠ
저도 아는 그분인 거 같은데 고생이 많으시겠습니다.... ㅠㅠ 가끔 저자를 만나러 지구 끝까지 혹은 저승 끝까지 날아가 나의 고생과 골병을 책임지라고 이판사판 맞짱뜨고 싶을 때가 있구요... 그럴 때마다 아 나는 이런 저자들처럼 업보를 쌓지 말고 훗날 내 작품을 번역할 번역가를 배려해서 글을 써야지 라고 다짐하게 되더라구요... 그 저자는 리얼 약쟁이이니 악질 중의 악질일 거 같아요 얼마나 힘드실지.... 그러나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너무 기대되네요 ㅠㅠㅠㅠ 기념파티하는 그날을 고대하겠습니다 힘내세요!!
사람 신경 혹은 센스, feel, 감에 따라 작품 수용능력이나 해석이 달라진다고 평소에 생각했습니다. 물론 창작도...
흔히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라는 말이 있잖아요.
약쟁이의 소울이라 왠지 한번 보고 싶네요.
한문장을 12줄이라니 무슨 판결문입니까(...) 아니 판결문도 그정도로는 안쓸거 같은데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