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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 은림님과의 대담

2005.05.28 01:3805.28

2003년부터 거울에서 '시간의 잔상' 작가로 좋은 작품을 보여 주신 은림 님께서 이번에 개인 단편집을 내셨습니다. (자세한 안내는 여기서 해주세요.) 제 2회 황금드래곤 문학상 중편 부문 수상작인 '할티노'를 표제작으로 삼은 이 단편집의 출간에 기해, 작품 밖에서의 은림 님을 만나보았습니다.

1. 은림님이 생각하는 환상문학의 정의는 무엇인가요? 또, 환상문학이란 무엇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지금까지 딱히 생각해 본적이 없었는데 이번 인터뷰와 드림워커 춘계 단편제를 진행하면서 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환상문학, 혹은 환타지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이라고 주장이나 논거를 펼치기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지만 최근에 정리해 본 것을 적습니다.

있을 법한 이야기를 거짓으로 꾸며낸 게 소설이라면, 절대로 실존하지 않을 이야기를 마치 진짜 있는 일인 양 꾸며내어 기왕이면 거기에 과거의 신화적 이미지와 상징이나, 혹은 지금까지 전혀 존재한 적이 없던 무언가를 감미하여 새롭게 펼쳐 보이는 것이 환상 문학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환상은 꿈이고, 꿈은 무의식적 상징입니다. 그리고 환상문학이야말로 어떤 다른 문학보다도 그 모든 터무니없기까지 한 무의식의 상징과 상상을 솔직하게 기술해 낼 수 있는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2. 창작을 시작하시게 된 계기는?
제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아무도 해주지 않더라구요.
처음에는 만화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때는 환타지라는 게 없어서 제 머릿속에 흘러 다니는 이야기들을 표현할 수 있는 매체가 만화였거든요. 그 다음에 일본 환타지 소설이라는 게 나오기 시작해서 ‘이거다!’ 를 외치며 열심히 써댔지요. 그때만 해도 머릿속에서는 아름다운 옷과 현란한 장신구를 한 공주님들과 날렵한 칼과 매혹적인 풍모를 지닌 여전사들이 뛰어다니고 있었으니까요. (물론 지금도 기반이야 별다를 바 없습니다만.)

3. 표지 그림 작업을 직접 하셨는데, 글과 그림 중 어느 것을 먼저 시작하셨는지요?
시작을 언제로 잡느냐가 가장 민감한데요, 어렸을 때 교과서 귀퉁이나 노트에 낙서질 하던 것을 시작으로 보면 그림이 먼저고, 백일장에서 상을 받아 왔던 걸 생각하면 글이 먼저 일듯. 아니, 지금 부모님이 기억하시는데 제가 유치원 때 대한 일보에서 어린이 부문 그림 수상을 했다네요. 집에 굴러다니는 메달이 기념품인줄 알았더니 진짜라는 사실을 근래야 알게됐어요. 그럼, 그림이 먼저죠.

4. 그리고, 둘 중 어느 쪽에 무게중심을 두시나요?
하는 도중에 힘든 줄 모르고 미친 듯이 집중하는 건 그림 쪽입니다. 직관적으로 생각하는 바를 표현할 수 있으니까요. 현재 생계를 잇게 하는 쪽도 그림입니다. 하지만 좀 더 배워 보고 오랫동안 배우게 되리라 예감하는 것은 글입니다. 아직 이렇다하게 아는 것이 하나도 없으니까 아직 무궁무진한 미지의 세계죠. 물론 그림이라고 썩 굉장히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요.

5. 특히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작가와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궁금합니다.
특히 영향을 받았다는 작가는 없습니다. 감수성을 배운 작품이라면 여러 만화가를 꼽겠습니다만. 제가 좀 꾸준하지 않은 편이라 작가가 아니라 작품별로 잠깐씩 좋아하다 말고 다른 작품으로 옮겨가고 하는 식이라서요. 내면적 영향이라면 정은지님. 데뷔하지 않은 분이지만 제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기셨죠.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기 보단, 재미있는 글을 읽으면 그 순간에 그 작가를 가장 좋아한다고 착각을 합니다. 그래서 현재 빠져 있는 건 가르시아 마르케스입니다.  

6. 좋아하시는 책, 그림, 작가, 노래에 대해 자세히 듣고 싶어요.
사담이 많은 인문학 책을 좋아합니다. 소설책도 나름 읽기는 하지만 어쩐지 틀안에 갖힌거 같거든요. 작가가 보여주는 상상력의 틀안이요. 그래서 여기저기 빈틈 많고 마음대로 상상할 여지가 많은 설명조의 인문학 책들이 즐겁더라구요.

그림은 빅토리아 풍의 그림과 정교한 그림동화책들을 좋아합니다. 빅토리아 풍의 그림들은 굉장히 세밀해서 그 안의 인물들뿐 아니라 그 시대의 배경까지 짐작하게 해주거든요. 보여주는 이야기들같아서요.

작가는 소설가로는 현재 마르케스. 감수성에 최대한의 영향을 미친 것은 만화가 강경옥씨. 제가 80년대 사람인지라, 그 맘 때의 만화들이 많은 영향을 미쳤죠.

음악은 롤러코스터, 쓸쓸하고 부르기 편한 뭔가 허술하면서도 나름의 규칙을 갖고 있는 노래들이 좋아요. 박혜경은 천사처럼 투명한 목소리가 머리 아플 때 너무 좋구요, 반젤리스는 웅장함과 삼께 음악임에도 시각적인 반사반응을 일으킨다는 점이 특이해서 좋아요. 듣고 있으면 그림이 보이거든요. 김광석은 쓸쓸하고 따뜻한 목소리와 사람 정곡을 찌르는 가사들이 참 좋죠.

7. '할머니 나무'의 후기에서 일상과의 연계에 대해 언급하셨는데, 평소 글을 쓰실 떄 일상적인 경험을 글에 많이 반영하는/하려고 하시는 편인가요?
일부러 노력하는 건 아닌데, 제가 좀 침소봉대하는 경향이 있어서요. 넓게 많이 알지 못하니까 좁게 가장 잘 아는 것들에서 복작댈 수 밖에요. 다른 방향으로도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 지는 아직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저보다 많이 알고 계신 주변 지인들이나 프로 작가들께 여타 권장 부교재(?)를 권장 받았습니다만, 역시 난해도가 높더군요.

8. 이번 단편집에 실린 작품 중 가장 '개인적인' 소설을 고른다면?
이상한 무도회입니다.
유치한 허영심을 기반으로 한 처절한 다이어트와 짝사랑과 착각에 대한 이야기죠.

9. 단편집의 작품 중 가장 애착이 가는(좋아하는) 글은요?
낙오자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힘들고 혼란한 시기에 튀어나온 저로서도 혼란한 글입니다. 대신에 여러 분들이 등을 떠밀어 주셔서 조금 위안을 얻은 글이기도 하지요.

10. '이상한 무도회'나 '얼음 공주' 같은 작품은 동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느낌을 줍니다. 실제로 동화를 많이 읽으시는 편인가요?
네. 무척 좋아하고 많이 읽었습니다. (과거형이군요.) 독서량이 많지는 않은 편인데 그 절반 이상이 옛날 동화책이었습니다. 동화 속의 독특한 상상력이랑 묘하게 어설픈 기교, 적나라한 상징성,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말이 안 되는 듯 하면서도 이야기가 맺어지는 모호함이 좋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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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글을 쓸 때 무엇부터 시작하시나요?
첫 장면이요.

12. 글을 쓸 때 참고자료를 많이 필요로 하시는 편인가요? 주로 어디에서 참고 자료를 구하시는지?
제 글에는 참고자료를 쓸만한 게...... 없죠, 거의? 음, 생각해 보면 주변인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것 같아요. 그걸 글에 쓰는 건 아니지만, 많은 부분의 이미지를 만들어내죠.

13. 개인지를 만들고 코믹 등 행사에 참여하시는 등, 언더그라운드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시는 편인데, 장기적으로 전업작가의 길을 생각하고 있으신가요?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지향하는 바나 장기적인 계획 같은 것도 궁금합니다.
언더그라운드에 적극적이기보다는 직접 몸을 움직이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만들어 보고 싶었던 걸 제 손으로 만든다는 것을 즐기는 거죠. 전업 작가는 아직까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냥 일상에 글이 있는 쪽이 삶이 풍부해진다는 점이 아직 가장 좋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지향하는 바나 장기적인 계획은, 솔직히 없습니다. 아직 많은 부담을 느끼지 않고 있고, 느끼면 아예 때려 치고 튈 거 같아서 그냥 다독다독 하고 있죠. 다만 한 가지, 언제든 그만둘 수는 있지만, 그래도 끝까지 써보겠다는 거죠. 이길 수야 없지만 항복하지는 않겠다......랄까요?

14. 언제가 되든 꼭 써 보고 싶은 소재나 주제가 있다면 어떤 건가요?
가면활극 여전사물.(쾌걸조로+세일러문 상상하시면 될 듯 합니다. 진심이에요;;)

덧붙이는 인사로, 인터뷰 질문을 만들어 주신 Jay님, 제 글에 관심을 가져 주시고 정성껏 비평해 주신 거울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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