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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버스정류장에서

2023.09.06 16:4609.06

  1. 두 시체

 

 “도대체 누가 이런 끔찍한 짓을 한 거죠?” 최 경관은 인적 드문 산 속에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사람이 죽은 것이 의아했다. 그것도 한 번에 두 명이나.

 “두 사람이 싸운 건 아닐까?” 오 형사는 떠오르는 살해 동기가 없어 확신 없이 말했다.

 “한 명은 노인 인걸요. 노인이랑 건장한 청년… 뭐 나이가 좀 있어 보이긴 하지만 청년 축에 속하는 사람 같은데요. 적어도 이 마을 근처에선 청년이죠. 노인이 이 풍채 좋은 사람의 허리에 팔다리까지 꺾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요. 신체도 훼손되어 있고…”

 “그건 그렇지. 그럼 외부인이란 소리네. 이 주변 마을엔 온통 허리 굽어진 노인들만 사니까…” 오 형사는 한숨을 쉬며 담배에 불을 붙였다. 오 형사가 인근 파출소장과 통화하는 동안 최 경관은 주변 상황을 둘러보며 기록할 것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수첩을 꺼냈지만 적지는 않았다. ‘사방에 온통 나무와 풀 밖에 없다.’ 최 경관은 적는 것은 단념하고 수첩을 가슴팍에 있는 주머니에 집어넣고 주위를 보기 시작했다.

 버스정류장은 산 속 한 가운데의 내리막길에 있었다. 한 겨울에 눈이 많이 오면 버스가 다닐 수 없을 정도로 꽤나 가파른 오르막길이었다. 산 속 마을과 읍내를 연결하는 유일한 이차선 도로의 한 가운데, 기묘할 정도로 주변에 아무것도 없는 위치에 버스정류장이 하나 있었다. 최 경관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여기에 정류장이 있어서 버스가 멈출 필요가 전혀 없어 보였다. 자신의 방광을 과대평가한 노인들이 기사양반에게 일이 급하니 잠깐 멈춰달라고 요청하는 단골 구간이어서 여기에 정류장을 설치했나? 그렇다고 보기에는 주변에 간이 화장실도 없었다. 뭐 급한 사람에게는 풀밭만 있으면 오케이겠지만. 주변에는 몰래 들어가 일을 보고 나올 풀숲은 많았다. 아니, 거의 그게 이 정류장 주변 풍경의 전부였다. 산 한 가운데에 도로를 깔아 놓아서 주변엔 온통 높은 나무들과 풀숲 밖에 없었고, 나무들의 틈 사이로 겨우 보이는 읍내의 풍경을 제외하면 빽빽하게 들어선 나무들 때문에 대낮에도 조금 어둡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아무튼, 정류장은 오르막길에 있어서 사람이 앉으면 내리막 쪽으로 자연스럽게 몸이 기울어지도록 이상하게 설치된 이곳에서 사람이 죽은 것이다. 두 명이나. 한 명은 산 속 마을의 주민이고, 다른 한 명은 읍내에서 마을에 들어오려는 사람이다. 마을의 노인들에게 수소문한 결과 죽은 노인 쪽은 마을의 공동 식수원 옆에 사는 허 노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허 노인은 삼계탕을 끓일 토종 닭을 사기 위해 읍내로 나가려고 버스를 탔다가 변을 당한 것이라고 했다. 사망한 다른 사람은 읍내 주변에 사는 김씨로, 산 속 마을에 사는 모친의 집에 방문하려다 변을 당했다고 마을 주민들은 진술했다.

 허 노인과 김씨는 거의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김씨의 모친과 허 노인이 같은 마을에 살기는 했지만 그저 지나다니면서 인사하고 안부정도 묻는 사이일 뿐 어떤 원한관계 같은 것이 생길 정도로 가깝지 않았다. 더구나 김씨 본인과 허 노인은 이전에는 만나본 적도 없는 사이였다.

 현장의 장면은 끔찍했다. 정류장 바닥에는 두 사람의 피가 섞여 기울어진 내리막을 따라 10 미터를 넘게 흘러있었다. 두 사람의 시신은 필요를 다한 자동차를 압축하는 폐차기 같은 것에 빨려 들어가다 기계가 멈춘 듯 기괴한 자세로 온 몸의 관절이 꺾여 있었다. 신체 일부가 사라져 있는 것 때문에 두 사람의 모습은 더욱 그렇게 보였다. 허 노인은 왼쪽 팔이 잘려 있었고, 김씨는 오른쪽 다리 전체와 오른쪽 허리 아랫부분까지 통째로 잘려 있었다. 그것의 단면은 흡사 거대한 짐승이 두 사람의 팔다리를 씹어 먹은 듯 울퉁불퉁하게 잘려 있었다.

 “그런데 이 정류장 왜 반대쪽 정류장은 없죠?” 최 경관은 오 형사에게 물었다.

 “그러네? 왜 정류장이 한 방향으로 밖에 없지?” 오 형사도 의아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버스정류장은 도로의 양 방향에 있어야 하는데 그 정류장은 한쪽, 읍내에서 마을로 들어오는 방향으로만 설치되어 있었다. 최 경관은 관할 구청에 전화했다.

“구청이죠? 저는 청연파출소 소속 경관인데요, 여기 구견마을에서 읍내까지 나가는 구간 있죠? 거기 중간에 버스정류장이 하나 있잖아요, 왜 반대쪽은 정류장이 없죠?”

“잠시만요…” 타자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예 거기 정류장은 2011년에 폐쇄됐어요. 사람이 몇 번 죽었거든요. 그 때 철거됐다고 나오는데요?” 구청 직원은 의아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아뇨, 여기 정류장이 있어요. 읍내에서 마을로 들어가는 쪽에만 정류장이 있고 반대쪽은 없어요. 철거가 안 된 거 아닌가요? 그리고… 사람이 전에 죽었다고요?”

“어… 한 쪽만 철거를 했나? 그럴리가 없는데… 살인사건이 있긴 했어요. 미제사건이라 사고인지 살인인지는 모르겠지만. 1987년, 1999년, 2011년에 세 번 있었어요.”

“세 번이나요?” 최 경관과 오 형사는 등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두 사람은 전화를 끊고 곧장 사건기록을 확인하기 위해 파출소로 향하려다 시신 두 구를 어떻게 둘지에 대해 논의했다.

“현장보존선은 그렸고… 폴리스라인도 쳤으니까 업체 전화할게요.” 최 경관은 범죄현장 청소업체에 전화했다.

“오늘 안에는 못 온다고요?” 시신을 어떻게 둡니까 그러면. 부패하기 시작할텐데… 예 알겠습니다. 오늘 못 온다는데요? 와도 내일 새벽에나 도착한답니다.”

“뭐? 하도 시골이라 그런가… 어쩔 수 없지. 그냥 천으로 덮어놓고 내일 오면 옮기라고 하자고.”

그렇게 허 노인과 김씨의 시신은 버스정류장 의자에 걸쳐진 채로 천에 덮여 있게 되었다. 오 형사와 최 경관이 떠난 자리에는 두 사람의 시체와 버스정류장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오르막길의 경사에 의해 기울어진 채로. 오후 3시 밖에 되지 않았지만 산 속은 해가 저물고 있었고 산 속의 버스정류장은 곧 어두워졌다. 주변이 완전히 어두워졌을 무렵, 정류장에는 이상하리 만치 밝은 불빛이 켜져 두 사람의 시신 주위를 밝혔다. 두 시신은 마치 정류장 의자에 엎드려 버스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정류장의 이름과 노선도가 써진 표지판에는 정류장 이름은 닳아 없어져 있었고 오직 전 정류장과 다음 정류장만 써 있었다. 바람이 나무들을 스산하게 스치며 나뭇잎 부딪히는 소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정류장은 차도 버스도 사람도 지나가지 않는 도로 위에 가만히 서서 밝은 빛으로 두 사람의 시신을 내려다보는 듯했다.

 

 

 

  1. 허 노인

 

 허 노인은 새벽 일찍 버스를 타기 위해 집을 나섰다. 읍내로 나가는 유일한 노인들의 교통수단인 144번 버스는 하루에 단 세 번만 운행한다. 아침 8시에 한 대, 오후 1시에 한 대, 그리고 저녁 7시에 한 대. 마을 외곽에 있는 버스정류장까지 약 한 시간 정도를 걸어야 하니 허 노인은 부지런히 새벽 6시 반에 집을 나서야 했던 것이다. 허 노인이 읍내로 나가는 이유는 토종 닭을 사기 위해서다. 정육점에서 비싸고 말라 비틀어진 닭으로 살코기도 얼마 없는 삼계탕을 해먹지 않으려면 점심에 5일장이 열리는 읍내로 나가 알이 실한 토종 닭을 사야 했다.

 허 노인은 마을 밖으로 나가는 것을 영 내켜 하지 않았다. 그리 큰 읍내는 아니지만 온통 복잡하고, 시끄럽고, 사람들에게 이리저리 치이고 다니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나이가 80이 넘어서부터 허 노인은 집에서조차 잘 나오지 않았다. 오직 집 앞에 있는 마당을 쓸고 텃밭을 가꾸고 하는 것이 그의 유일한 낙이었다. 허 노인은 홀몸이 된 지 10년째가 되면서 요리도 곧잘 했다. 직접 키운 작물로 반찬을 만들고 젊을 때부터 쌓아 둔 공무원 연금을 받아 산 쌀로 밥을 지어먹었다. 읍내 5일장에서 토종 닭을 사오면 그걸로 삼계탕을 끓일 것이다. 특별한 날이어서 삼계탕을 끓이는 것은 아니다. 망할 김 노인과의 고스톱 내기에서 졌기 때문이다.

 허 노인은 분명히 김 노인 그 자식이 양말 밑에 광을 숨겼으리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봐도 거기서 정확히 나올 광이 아니었다. 김 노인 그 자식은 허 노인 자신보다 나이도 5살이나 어린데 영 잔꾀가 많고 장난기가 심했다. 허 노인이 두 번 고를 하고 피 개수에서 앞서고 있었지만 허 노인은 결정적인 마지막 순간에 비를 싸고 말았다. 그 때 절묘하게 등장한 것이 김 노인의 비광이었던 것이다. 비광은 김 노인의 손 끝에서 나왔다. 그렇지만 허 노인은 자신이 잠깐 한눈을 판 사이 가부좌를 한 오른쪽 다리 밑 양말과 장판 사이에서 김 노인이 그 비광을 꺼낸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절묘하게 비삼광으로 2점을 추가할 수 있는 기회가 김 노인에게 올 리 없었다. 그 자식이 분명히 삼계탕을 얻어먹기 위해 장난질을 친 것이라고 허 노인은 생각하며 144번 버스에 올랐다.

 144번 버스는 항상 그대로였다. 몇 십년간 같은 버스에 같은 기사였다. 그래서인지 정말 끔찍할 정도로 덜컹거리고 흔들려 멀미가 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분명히 그것도 허 노인이 마을 밖으로 나가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였을 것이다. 버스는 그날따라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흔들렸다. 허 노인은 버스를 타며 반갑게 인사했던 버스기사 최씨에게 말했다.

 “어이 최씨, 제발 이 망할 버스 좀 새것으로 바꿔달라고 회사에 얘기 좀 해봐. 이거 멀미가 나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잖아. 자네 버스 몬 경력도 벌써 40년이 넘어가는데 회사에 압력 좀 넣을 수 있는 거 아니야? 젠장, 힘들게 키운 채소로 반찬 해먹은 거 다 도로 나오게 생겼어. 그래 안 그래!”

 “아이구, 허 영감님 저도 어쩔 수가 없어요. 버스회사도 시 보조금 받으면서 겨우겨우 운영되는 거라 저도 눈치 보여서 버스 바꿔달라는 말을 할 수가 있어야죠. 허허. 그러게 앞쪽 자리 앉으시라니까요. 왜 맨날 뒷자리 앉으셔서는 멀미 난다고 하세요. 평소에는 원체 안 나가시더니 오늘은 또 무슨 일로 읍내 나가세요?”

 “김 노인 그 자식이랑 내기 고스톱 쳤는데 내가 져버렸지 뭐야. 삼계탕 내기였는데 져버려서 토종 닭이나 두어 마리 사 오려고 나가는 거지 뭐. 내가 보기에는 필시 그 약아빠진 놈이 비광을 숨겨놓고 있었던 것 같다 이 말이야. 영 꾀가 많은 놈이라 승복하고 믿을 수가 있어야지 원…”

 “허허 그래서 읍내 나가시는구나. 돌아올 때도 제 버스 타고 오시겠네요?”

 “그래야지 뭐. 여기 마을 돌아오는 버스가 이 버스 말고 또 있나.”

버스기사 최씨는 백미러를 통해 허 노인을 힐끗 훔쳐보며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어느덧 버스는 산길을 통과해 읍내로 나왔다.

“허씨 어르신 다 왔습니다. 여기서 내리시죠?” 버스기사 최씨는 멀미에 지쳐 잠든 허 노인을 깨우기 위해 일부러 큰 소리로 허 노인에게 물었다. 허 노인은 최씨가 부르는 소리에 겨우 잠에서 깨어나 내릴 준비를 했다.

“어 고마워. 집 갈 때 또 봄세.” 허 노인은 채 잠이 깨지 않아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로 버스에서 내리며 최씨에게 인사했다.

허 노인은 버스에서 내려 금테를 두른 낡은 시계로 시각을 확인했다. 오전 10시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는 오후 3시에 읍내 정류장에 다시 도착한다. 그 버스를 놓치면 다음 버스가 오는 시각은 저녁 9시였으므로 시각을 잘 맞춰야겠다고 생각하며 허 노인은 5일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5일장은 한참 시끌벅적했다. 온갖 상인들이 생선이니 나물이니 하는 것들을 가지고 나와 팔고 있었다. 대부분의 상인들은 허 노인과 동년배이거나 허 노인보다 조금 어린 축에 속하는 노인들이었다. 허 노인은 다른 반찬거리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곧바로 토종 닭을 파는 가게로 향했다. 자신이 직접 키운 채소만 반찬으로 먹는다는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토종 닭은 직접 키울 수 없었다. 허 노인이 닭 파는 가게에서 값을 흥정하고 있을 동안 거리 한복판에서는 상인들과 시장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모여 무엇에 대해 열띠게 토론하고 있는 소리가 들려왔다. 허 노인은 무슨 일인지 궁금해져 밖으로 나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생선을 파는 가게 상인이 앞치마에 고무장갑도 벗지 않은 채로 신문지를 들고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있었다.

“아니 글쎄, 올해가 또 그 해잖아요. 12년마다 돌아오는. 또 어떤 미친놈이 이 근처를 돌아다닌다고 생각하니까 무서워 죽겠어 글쎄.”

“미친놈은 맞어? 사람 짓인지 짐승들 짓인지도 모르잖어. 이번엔 아니겄지… 12년마다 돌아온다는 거는 미신이여. 우연의 일치 뭐 그런거겄지.”

“그래도 무섭긴 하잖아요. 지난 세 번을 연달아 그랬으니… 경찰에서도 어떤 몹쓸 인간 짓인지, 들짐승 짓인지 감도 못 잡고 있다잖아 글쎄.”

“그건 그렇지… 그래서 여기 경찰들 매년 갈려나가잖어. 올해도 형사랑 경관들 싹 다 바뀌어서 새로 왔다는디… 경찰이 해결을 못하니 이 동네가 경찰들 유배지처럼 돼 버렸어. 여기만 거쳐가면 죄다 사건 해결 못했다는 딱지 달고 다른 데로 발령나버리니…”

“내 생각엔 아무리 봐도 동네에 호랑이가 사는 거여. 범 말이여. 12년마다 먹을 것이 떨어져서 사람을 잡아먹은 거 아니겄어?”

“에이… 요즘 세상에 우리나라에 범이 어딨어…”

허 노인은 가만히 사람들이 대화하는 것을 듣고 있었다. 그 사건은 허 노인도 아는 것이었다. 1987년부터 1999년, 2011년에 허 노인이 아침에 지나쳐 온 버스정류장에서 사람이 죽은 사건이었다. 마을과 읍내 사람들은 어떤 미친 연쇄살인마가 12년 주기로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지, 어떤 포악한 짐승이 사람을 잡아먹는 것인지 감조차 못 잡고 있었다. 그건 경찰도 마찬가지였다. 1987년이 기록 상으로는 첫 번째 사건이었고, 버스 정류장 앞에 사람의 손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두 번째 사건이 발생한 1999년에는 어떤 남자의 것인지 모를 하반신만이 남겨져 있었다고 했다. 2011년에는 그나마 온전히 사람의 손만 없어진 채 피해자는 생존할 수 있었다. 피해자는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고 잠깐 정신을 차린 채 증언할 수 있었으나 영 터무니없는 얘기여서 수사에 별 도움이 되지는 못했고, 그나마 과다출혈로 곧 세상을 떠난 것이다. 2011년 사건 피해자의 증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버스정류장에 앉아있었는데 뒤에서 어떤 커다란 사람이 자신을 넘어뜨리고 팔을 짓눌러 뜯어갔다’는 것이었다. 사람이라고는 했지만 진술이 이래서야 사람인지 짐승인지 알 수 없다고 판단한 경찰 측은 무기한 미제사건으로 남겨놓고 애먼 담당 경찰관과 형사들만 몇 년마다 교체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 올해는 2023년이었고, 사람들은 또 다시 찾아온 12번째 해에 이번에도 사람이 죽지는 않을지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허 노인은 그 모든 연쇄살인마니 뭐니 하는 말들이 터무니없다고 생각하는 쪽이었다. 허 노인은 당연히 들짐승 짓이라고 생각했다.

‘당췌 쓸데없는 소리들만 하는구만. 산에 살면서 산짐승 조심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거지 무슨 연쇄살인마니 뭐니… 우리 마을이랑 이 읍내에는 힘 없는 노인들 밖에 없는데 외지인이 굳이 여기와서 연쇄살인을 할 것은 또 뭣이며, 내지인들은 노인 밖에 없는데 사람 죽일 힘이나 있겠나… 쯧쯧’ 허 노인은 다 쓸데없는 소리라고 생각하며 점심을 먹으러 갔다.

 

점심을 다 먹은 뒤 허 노인은 토종 닭을 두 마리 샀다. 허 노인은 쟁반 위에 닭들을 올려놓고 보자기로 싸 들었다. 시계를 보니 오후 2시 40분이었다. 허 노인은 집으로 가는 버스를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서둘러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아까 들었던 연쇄살인사건인지 모를 사건에 관한 정보가 머리속에 스쳤다. 집에 가면서 탈 버스가 사람이 죽은 그 정류장을 지난다고 생각하니 느낌이 이상하고 속이 메스꺼웠다. 12년 마다 발생하는 사건. 올해가 지난 사건이 발생한 지 12년이 되는 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던 허 노인은 그만 앞에 있던 사람을 닭이 든 쟁반으로 치고 말았다.

“아이고, 미안합니다. 내가 딴생각을 하다 보니까 그만…”

“아뇨. 괜찮습니다.” 건장한 체격의 남자가 대답했다. 검은 옷을 입은 그 남자는 왼손에는 검은 공구상자를 들고 있었고 오른손에는 망치를 들고 있었다. 허 노인은 남자의 오른손에 들린 망치를 보고 침을 삼켰다. 소문에 대한 얘기를 떠올리고 망치를 든 남자를 보자 짐짓 두려워졌다. 허 노인은 침을 삼키며 ‘그냥 공구상자와 망치를 든 사람일 뿐이다’라고 생각하며 버스정류장의 위치를 확인했다. 허 노인이 타야 할 버스를 검은 옷의 남자도 기다리고 있었다.

 

 

 

  1. 김씨

 

 김씨는 읍내 외곽에 살고 있었다. 자전거 수리점을 운영하며 돈이 많지는 않아도 그럭저럭 생활은 되는 수준이었다. 큰 도시에 가서 수리점을 운영하면 돈 사정이 더 나을 터였지만 김씨가 여기 읍내에 사는 이유는 노모 때문이었다. 이제 막 일흔을 넘긴 노모를 모시려면 노모가 살고 있는 산 속 마을에서 그나마 가까운 읍내에 수리점을 열어야 했던 것이다. 반대로 어머니의 입장에서도 나이가 마흔이 넘도록 장가를 가지 않은 김씨가 걱정되어 가까이 있는 것이 좋기는 서로 마찬가지였다. 김씨는 출장을 나갔다가 털털 거리는 자신의 차를 운전하며 자신의 자전거 수리점으로 향하고 있었다.

 김씨는 시끄럽게 울리는 전화를 받아 들었다.

 “네 자전거 수리점입니다.”

 “민석아 엄마다”

 “어 엄마. 왜 또 무슨 일 있으셔?”

 “어 아니 별 건 아니고, 안방 문짝이 또 말썽이야.”

 “전에 고친 거기가 또? 열고 닫고 여러 번 해보시라니까. 해 봤어?”

 “어 해봤지. 그런데 전에 니가 와서 고쳐주고 난 뒤로 한동안은 잘 닫히더니, 또 말썽이다 글쎄. 아예 뜯어서 바꿔야 되나 봐. 어떻게 오늘 시간 좀 되냐?”

 “어 되지. 오늘 오후에 수리점 문 닫고나서 갈 테니까 기다리고 있으셔. 알겠지?”

 “그래. 민석아 그 소문 들었냐? 미친놈 돌아다니는데 올해가 그 해잖아.”

 “아 그 정류장에서 12년마다 그거? 엄마, 그런 거 다 사람들이 그냥 짐작해서 하는 말이야. 너무 신경 쓰지 마셔. 그리고 나 차 타고 가잖아. 그 정류장이야 뭐 지나가면서 보기만 하겠지.” 김씨는 별 일 아니라는 듯 넘겼다.

 “그래도 조심해서 나쁠 거 하나도 없어. 버스 타지 말고 꼭 니 차로 와라. 너무 어두워지면 그냥 오지 말고. 알겠지?”

 “아유, 알았어 엄마. 저녁 먹을쯤에 도착할 것 같으니까 저녁이나 차려줘.”

 “그래. 조심해라.”

 “예.” 김씨는 어머니와의 전화를 끊고 시계를 봤다. 2시 30분이었다.

 김씨는 자전거 수리점의 문을 닫으려다 창고에서 공구상자를 꺼냈다. 공구상자를 열어보니 있어야 할 망치가 없었다.

 ‘또 쓰고 어디다 놔뒀나 보네. 어차피 사야 했는데 그냥 가면서 하나 사야겠다.’ 김씨는 나머지 공구를 공구상자에 챙겨서 나와 차에 시동을 걸었다. 그러나 김씨의 자동차는 쇠 긁히는 소리만 들릴 뿐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아, 이거 또 왜 이래. 고친 지 얼마만큼 되지도 않았는데. 짜증나네.’ 김씨는 차에 시동이 걸리지 않자 공업사 사장 최씨를 불렀다. 공업사 최씨는 상황이 좋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거 오늘 안에는 안 되겠는데. 시동 거는 부분이 완전히 나갔어. 너 오늘은 버스로 가야겠다.”

 “하… 이거 고친 지 얼마되지도 않았는데 또 이러네… 요즘 왜 이리 다 고장 나는 거야? 버스로 가야 하나?” 김씨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야 맞다. 너 그 얘기 들었지? 12년 마다 나타난다는 연쇄살인마인지 뭔지 그거. 너 절대 그 정류장에서 내리지 마라. 폐쇄된 곳이라 버스기사가 멈추지도 않겠지만, 무슨 일 생길지 누가 알아.”

 “그거 별거 아니라니까 그러네. 그냥 우연이야. 누가 그렇게 정성스럽게 12년마다 살인을 해. 내가 보기엔 들짐승 짓이야. 뭐 살쾡이 같은 게 배고파서 사람을 덮쳤나 보지. 그게 우연히 12년에 한 번씩 일어난 것뿐이야.” 김씨는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그래도… 택시를 타고 가던지.” 최씨는 끝까지 걱정하며 말했다.

 “여기서 택시 잡으려면 버스보다 더 기다려야 되는 거 알잖아. 3시 버스가 있으니까 타고 가면 돼. 아 나 망치 하나만 빌려줘.”

 “망치? 망치는 왜?”

 “내가 망치 쓰고 어디다 놨는지 보이질 않더라고. 엄마 집 문짝 고쳐주러 가는 건데 지금 망치가 없어.”

 “그래 저기 있는 거 하나 가져가.” 최씨는 자신의 공구상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김씨는 왼손에 자신의 공구상자를 들고 오른손에 망치를 들고 버스정류장에서 세 시에 오는 버스를 기다렸다. 김씨는 검은색 옷을 입고 있었다. 그 때 닭이 두 마리 든 쟁반을 든 노인이 자신의 어깨 쪽을 치는 것을 느꼈다.

“아이고, 미안합니다. 내가 딴생각을 하다 보니까 그만…” 노인이 사과한다는 손짓을 하며 말했다.

“아뇨. 괜찮습니다.” 김씨는 대답했다. 김씨가 보기에 그 노인은 뭔가를 두려워하는 듯 긴장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김씨는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노인에게 위압감을 주었다고 생각해 일부러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구견마을 가시나봐요?”

“예. 구견마을 갑니다. 그쪽은 마을 주민은 아닌 것 같은데… 왜 마을에 가는 겁니까?” 노인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물었다.

“저희 어머니가 거기 사셔서요. 방문이 고장 났다고 하셔서 고쳐드리러 갑니다.”

“아, 그 빨간 벽돌집 할매 아드님이구만!” 노인은 비로소 의심하는 눈빛을 풀고 친근하게 말했다.

“예 같은 마을 주민이시니까 저희 어머니를 아시겠네요? 말씀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저는 김민석입니다. 그냥 김씨라고 부르세요.”

“친하진 않아도 알지. 같은 마을 사람들끼리는 지나가면서 다들 인사라도 하고 사니까. 나는 허씨요. 허 노인이라고 부르쇼, 젊은이.”

두 사람이 대화하는 사이 어느새 144번 버스가 도착했다. 몇 명의 사람들이 내리고 버스에는 버스기사 최씨를 제외하고 아무도 없었다. 허 노인과 김씨는 텅 빈 버스에 올라타 현금으로 버스비를 지불하고 자리에 앉았다. 고장을 수리해가며 한참의 세월을 운행한 버스는 바깥만큼이나 안도 낡을 대로 낡아 있었다. 좌석 뒷면에는 지금은 운영하고 있을 것 같지 않은 부동산과 나이트클럽 광고 딱지들이 잔뜩 붙어있었다. 버스의 뒷문 옆에는 대걸레 자루와 깨끗한 물이 채워진 양동이가 놓여 있었다. 버스를 청소하기 위해 있는 것 같았다.

“기사양반, 버스 청소는 종점에서 청소업체가 와서 다 해줄 텐데 양동이랑 대걸레는 왜 갖다놨어?” 허 노인이 마을에서 나올 때는 없었던 대걸레를 보고 물었다.

“아, 오늘 어떤 술 많이 자신 승객 한 명이 읍내로 들어오는 구간에서 버스에 토를 했지 뭡니까. 그래서 급하게 대걸레랑 양동이 빌려서 청소했죠.” 버스기사 최씨가 대답했다. 김씨는 토사물을 청소한 것 치고는 양동이에 물이 깨끗하다고 생각했지만 별 일 아니라고 생각하고 허 노인과 대화했다.

“허 씨 어르신, 요즘 그 얘기 들으셨습니까? 올해가 그 살인사건 난지 또 12년째 되는 해라잖아요. 연쇄살인마니 뭐니 하는게 돌아다니는 해가 다시 돌아온거라고 뭐라뭐라 하던데요.”

“어 들었지. 시장에서도 사람들 다 그 얘기하고 있더구만. 근데 뭐, 다 터무니없는 소리지. 난 분명히 들짐승 짓이라고 생각해. 버스도 안 서는 정류장에 괜히 앉아있다가 재수없게 당했겠지 뭐.”

“그렇죠.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설마 살인이 재밌어서 이런 산골짜기까지 와서 그런 짓을 할 놈이 어디 있겠어요. 분명히 들짐승 짓이겠죠. 사람은 말도 안 되죠.”

“나는 처음에 망치를 들고 있길래 자네가 혹시 그 놈인가 했지 뭐야. 허허허”

“하하하. 그럴 수도 있겠네요. 빌린 망치라서 들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묵묵히 들으며 운전하던 버스기사 최씨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버스는 어느덧 읍내를 빠져나와 드문드문 있던 건물마저 보이지 않는 산 속으로 들어갔다. 시각은 오후 4시였음에도 불구하고 햇빛을 가린 울창한 나무들로 인해 산 속 이 차선 도로는 어둑어둑했다.

 

 

  1. 버스기사

 

 버스기사 최씨는 40년이 넘도록 이 144번 버스를 운전해왔다. 항상 같은 시간, 같은 노선을 운행하다 보니 소위 눈을 감고도 운전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다. 해당 노선을 이용하는 구견마을 주민들과는 거의 대부분 아는 사이가 되었다. 최씨가 이 노선을 운행하기 시작한 것은 1982년이었다. 그 때 이후로 매일 구견마을과 읍내 사이를 3번씩 왕복했다. 그러면서 매일 지나치는 그 정류장(사람이 죽었던 그 정류장)에 그는 왠지 모를 애착이 있는 듯했다. 동료들은 그가 비번일 때면 굳이 그 정류장에 찾아가 먹을 것을 놓고 온다던지 향을 피우고 온다던지 하는 것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 정류장에서 사람이 죽기 전부터 그는 그곳에 향을 피우고 제사를 지내는 것과 비슷한 행동들을 했다. 동료들은 폐기된 버스정류장에 향을 피워줄 정도로 그를 단지 낭만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묘지도 아닌 곳에 제사를 지낸다니 뭔가 소름끼치는 구석도 있었으므로 그에게 굳이 더 캐묻지는 않았다.

 그 정류장에서 사람이 죽을 때마다 항상 가장 먼저 의심받은 사람은 당연하게도 버스기사 최씨였다. 최씨는 12년에 한 번씩 경찰서를 들락날락거리며 갖은 조사를 다 받아야 했다. 지역 경찰서의 형사들이 교체되어 올 때마다 최씨는 가장 먼저 의심받았지만 몇 십년이 넘는 성실한 근무태도와 버스기사 동료들, 구견마을 주민들과의 원만한 관계 덕분에 그는 항상 의심을 피해갈 수 있었다. 2011년 세 번째 정류장에서의 사망사건이 발생했을 때 경찰 측은 이번에야말로 버스기사 최씨를 용의선상에 올려서 수사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사건 직후 잠시 생존한 피해자의 ‘버스기사는 그저 운전만 했을 뿐 자신을 덮친 것은 다른 것이었다’는 증언에 따라 그는 이번에도 경찰서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의심스러운 것은 그가 구견마을과 읍내를 연결하는 노선의 버스기사로 취직하기 전의 행적에 대해 잘 알려진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왜 최씨가 그 노선을 운행하기를 몇 십년째 고집하고 있는지, 왜 그 정류장에 향을 피우고 제사를 지내는 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었다. 동료들이 들은 것은 그 정류장 근처에서 최씨의 12살짜리 아들이 교통사고로 사망해서 그러는 것이라는 근거가 그리 탄탄하지는 않은 소문뿐이었다. 본인에게 확인을 하려고 해도 그 문제에 대해서는 묵묵 부답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12년째 해가 돌아왔고 최씨는 약간 긴장한 듯한 상태로 하루하루를 지냈다. 그는 올해부터 매일 버스에 타는 인원 수를 확인했다. 특히 읍내에서 구견마을로 들어갈 때 몇 명이 탔는지, 그것을 확인했다. 거의 대부분은 사람이 타지 않았다. 구견마을에 사는 노인들은 좀처럼 읍내로 나가는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읍내에서 5일장이 열리는 날이면 나가는 노인들이 있었다. 오늘은 허 노인이 읍내에 닭을 사러 나간다며 아침 버스를 탔다. 아마 오후 3시에 읍내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돌아올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 명이다. 최씨는 두 명이 타야 한다고 생각했다. 허 노인 혼자도 아니고, 세 명도 아니고 두 명이어야 했다.

 최씨는 읍내 정류장으로 버스를 몰고 들어섰다. 토종 닭 두 마리를 얹은 쟁반을 이고 있는 허 노인과 검은 옷을 입은 처음보는 건장한 남자가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남자는 오른손에 망치를 들고 있었다. 최씨는 남자의 손에 들린 망치를 보고 조금 긴장한 상태로 정류장 앞에 버스를 멈추고 문을 열었다.

 “아이고, 최씨 시간 딱 맞춰서 왔네. 시간은 정말 칼같이 지키네.” 허 노인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요. 몇 년을 했는데요. 어서 오세요. 처음 보는 분이네요?” 최씨가 김씨를 보며 물었다.

 “어 이 사람은 김씨여. 어머니가 구견마을 산다고 하더구만. 문짝 고쳐주러 간대.”

 “안녕하세요. 평소에는 차를 타고 다니는데 오늘은 차가 고장나서 버스로 가려고요. 처음 뵙겠습니다.” 김씨가 대답을 얹었다.

 “예 안녕하세요. 그럼 이 구간 버스는 처음 타시겠네. 망치는 왜 들고 계셔?” 최씨는 문을 닫고 버스를 출발하며 말했다.

“빌린 거라서요. 상자가 더러워서 들고 있을려고요.” 김씨가 대답했다.

승객이 두 명이다. 최씨는 약간 긴장했지만 콧노래를 부르며 버스를 운전했다. 버스는 읍내를 빠져나와 산길로 들어섰다.

 

 산 속은 스산했다. 늦여름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서늘한 바람이 불고 어두웠다. 다람쥐, 청설모 같은 산짐승도 보이지 않았고 새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허 노인과 김씨를 태운 버스는 그 정류장을 앞두고 있었다. 끼익. 버스가 멈춰섰다. 바로 그 정류장 앞에 멈췄다.

 “뭐야, 최씨. 왜 재수없게 여기 이 정류장 앞에 차를 세우는가? 여기가 그 사람 죽은 거기 아니던가?” 허 노인이 불안한 기색을 보이며 말했다.

 “아유, 차가 또 고장 났어요. 털털거리는 게 시동이 곧 꺼질 것 같아서 잠깐 세웠습니다. 내리막길이라 버스에 앉아있기는 불편하실 텐데 잠깐 정류장에 앉아 계시죠. 빨리 임시로라도 고쳐 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승객 여러분.” 최씨는 별 일 아니라는 듯이 말하며 버스 맨 뒷자리에서 공구상자를 꺼냈다.

 “저도 자전거 만지면서 공구는 다룰 줄 아는데… 뭐 도와드릴 거 있을까요? 김씨가 내리막길에 정차해 기울어져 있는 버스에서 겨우 일어서며 말했다.

 “아뇨. 아뇨. 괜찮습니다. 정류장에 앉아서 잠깐 쉬고 계세요. 제가 빨리 정비해서 운행해드리겠습니다.” 최씨는 도움을 주려는 김씨를 한사코 만류하며 말했다.

두 사람은 최씨가 차를 정비하는 동안 폐쇄된 버스정류장 의자에 앉았다. 등 뒤에서 뭔가 꾸물거리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허 노인은 자꾸만 뒤를 돌아봤다. 뒤에는 버스정류장의 유리벽을 통과한 어두운 나무숲의 풍경만 보였다. 언제라도 늑대 같은 것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아까는 들짐승 짓이라고 했지만 막상 여기 앉아있으니까 좀 무섭구만 그래. 김씨는 안 그려?” 허 노인은 조금 떨면서 김씨에게 물었다.

“네 그렇기는 하네요. 어두워서 그런 거겠죠 뭐. 다 미신이라고 생각하세요. 기사님이 금방 고치시겠죠.” 김씨는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허 노인은 김씨가 망치를 들고 있어서 그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두 사람은 뒤에서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느꼈다. 얇게 진동하는 소리와 피냄새가 났다. 버스정류장의 바닥이 조금 흔들리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두 사람은 놀라 뒤를 돌아봤다. 허 노인은 정류장 의자에 앉은 상태에서 뒤를 돌아봐서 의자에 왼손을 대고 있었다. 김씨는 뭔가 다가오면 행동을 취해야겠다는 생각에 오른발을 정류장 의자에 올려 신발끈을 고쳐 매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숲 속에서 어떤 괴물이 튀어나올 것 같은 분위기였다.

 버스기사 최씨가 버스에서 나와 두 사람 앞으로 걸어 나왔다. 두 사람은 다시 앞쪽을 보고 최씨에게 빨리 고칠 수 없겠냐고 말을 걸려다 최씨의 행동을 보고 어이가 없어 말을 잃었다. 최씨는 두 사람 앞에 향을 피우고 있었다.

 “어이 최씨, 지금 뭐하는 거야? 여기 분위기가 으스스한데 빨리 차 고치고 가면 안 돼?” 허 노인이 다급한 목소리로 최씨에게 말했다.

 “이번엔 두 명이다. 지난 번에 얼마 못 먹었지? 맛있게 먹어라.” 최씨는 절을 하며 말했다.

 “어이 기사양반 지금 그게 무슨 소리…” 김씨가 말하는 사이 버스정류장의 의자가 움푹 들어가며 두 사람을 끌어당겼다.

 

 

 

 “끄아악!” 허 노인과 김씨의 비명이 적막한 산에 울려 퍼졌다. 두 사람의 선혈이 사방에 튀었다. 정류장 내벽에 묻은 피는 아래로 흐르다가 곧 흡수되어 사라졌다. 정류장은 의자를 위아래로 강하게 움직이며 두 사람을 천천히, 완전하게 삼키려는 듯 허 노인의 왼팔과 김씨의 오른쪽 다리를 씹어 먹고 있었다. 두 사람에게서 터져 나온 진한 피가 도로의 내리막길을 따라 천천히 흘러내려갔다. 최씨가 첫 번째 절을 끝내고 두 번째 절을 하려는 순간, 정신을 차린 김씨가 떨어뜨린 망치를 들어 쥐고 최씨를 가격하려 했다. 그러나 오른쪽 다리가 끌려가고 있는 상태에서 고통을 참아가며 망치를 강하게 휘두르기 어려웠다. 망치는 절을 하고 있는 최씨의 머리 조금 앞의 아스팔트를 맞고 튕겨 나갔다.

 “큰일날 뻔 했구만.” 최씨는 얼른 절을 마치고 일어나 합장까지 한 뒤 망치를 쥐어 들고 김씨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허 노인은 이미 고통과 출혈로 정신을 거의 잃은 상태였다.

 “자네가 체격이 건장하고 망치도 들고 있어서 읍내 정류장에서 봤을 때부터 조금 걱정됐었는데…그래도 일이 잘 풀려서 다행이야. 빨리 좋은 데로 가게나. 우리 아들 식사해야 하니.” 최씨는 망치를 고쳐 잡고 김씨의 등을 강하게 때렸다. 김씨는 거의 정신을 잃어버려 힘을 잃고 바닥에 엎드린 상태가 되었다. 정류장은 두 사람의 팔다리를 우적우적 씹어 먹고 있었다.

 “귀신 밥 먹을 때는 뒤를 돌아야지.” 최씨는 정류장이 식사를 하는 동안 뒤를 돌아보지 않고 있었다.

 식사가 끝날 무렵 최씨가 피웠던 향은 거의 다 타 들어가고 뿌리부분만 남았다. 정류장은 식사를 하는 동안 서서히 오그라들다가 가로로 길쭉한 돔 형태가 되었다. 쓰러진 허 노인의 팔과 김씨의 다리는 돔 내부로 들어가 있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자 돔은 한순간에 펴져 다시 일반적인 버스정류장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정류장의 기둥과 의자는 잘 먹었다는 듯 미세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향이 다 꺼지고 최씨는 버스 안으로 들어가 대걸레와 양동이를 꺼냈다. 버스 옆면에는 허 노인과 김씨의 피가 무수하게 튀어 있었다.

 “맛있게 먹었냐? 12년 뒤에는 내가 없을지도 몰라.” 최씨의 말에 정류장은 슬픈 듯 의자를 일그러뜨렸다가 다시 폈다.

 ‘나도 이제 늙었는데… 앞으로는 누가 저 아이를 챙겨줘야 할지…’ 버스 옆면의 피를 대걸레로 닦아내면서 최씨는 생각했다. 피를 다 닦아낸 뒤 최씨는 아무렇지 않게 버스의 시동을 걸고 다음 정류장을 향해 버스를 운행했다.

 

감동란

ㅇㅇ

댓글 2
  • hummchi 23.09.07 17:44 댓글

    와, 재미있어요. 아들 사연 마저 올려주세요.

  • hummchi님께
    No Profile
    글쓴이 감동란 23.09.08 00:22 댓글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들 사연은 기회가 되면 써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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