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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오덕후 김박사의 위업

2011.10.10 08:5410.10

이 글은 파워 블로거 안티프라그(http://blog.zombie.com/antimouse)의 포스트를 기본으로 했다. 안티프라그는 2011년 3월 11일부터 6월 31일까지 어느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던 한 네티즌의 행적에 대한 일련의 포스팅을 하였고, 그 글은 커뮤니티의 회원들에게 엄청난 호응을 받아 여러 가지 사건을 낳았다. 9월 30일 안티프라그는 다른 회원들의 글과 자료를 모아 ‘오덕후 김박사의 위업’이라는 제목의 글을 완성했다.
현재 안티프라그의 글은 출판을 위해 비공개로 전환되어있지만 관련된 동영상은 살아 있으며 출판사의 홈페이지를 비롯한 여러 커뮤니티에서 동영상 링크를 찾아 볼 수 있다. 포털 사이트에서 ‘김박사 동영상’으로 검색해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과격한 표현과 욕설도 필요시에는 그대로 남겨두었다. 기본적으로 당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느끼길 바라는 안티프라그의 의도를 반영했다.

오덕후 김박사의 위업

그러니까 안티프라그가 김박사(물론 본명이 아닌 인터넷 닉네임이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3월 13일 오전의 일이었다. 김박사는 어느 일본 연예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활동하는 꽤나 유명한 오덕후였다.
오덕후는 일본어 오타쿠オタク를 한글 식으로 발음한 인터넷 은어다. 좋은 의미로 풀이하면 프로는 아니지만 그에 못지않게 어떤 것에 빠져 있는 사람을, 나쁜 의미로 풀이하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할 정도로 쓸모없는 것에 빠져 지내는 사람을 의미한다.
김박사는 당시 생각으로는 후자에 해당했다. 중간에 군대를 이유로 2년을 쉰 것 외에는 20대 후반으로 짐작되는 그는 지난 십 여 년을 일본 연예 커뮤니티에서 일본 아이돌에 대해 열광하며 지내왔다.
김박사는 메이저 아이돌은 물론이거니와 일본에 사는 사람들조차도 들어본 적이 없어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로 마니악한 삼류 아이돌까지 응원했다. (인터넷 은어로 ‘핥는다.’고 표현한다.) 당연히 일본어는 자국민 수준이었고, 정기적으로 일본을 방문해 아이돌의 콘서트를 구경하고 악수회, 촬영회 등에 참가했다. 발매되는 CD와 DVD는 아이돌 별로 나누어 보관용과 배포용을 구분하여 여러 장을 구매했고, 옥션을 통해 구하기 힘든 레어 아이템을 확보하기도 했다. 아이돌이 출연하는 방송의 자막을 직접 만들어 인터넷에 배포하여 팬을 늘리려는 노력도 잊지 않았다.
김박사는 아이돌 오덕후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활동을 펼쳤다. 취미활동이라고 하기에는 돈이 엄청나게 들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기본적인 생활 외에는 모든 걸 아이돌에 퍼붓는 게 틀림없었다. (커뮤니티의 회원들은 그런 모습을 ‘냄새난다.’고 표현했다.)
그런 김박사가 호들갑을 떨며 여기저기 글을 남기기 시작한 것은 예의 사건이 터진 저녁이었다. 일본 동북아 지점에서 시작된 강진으로 동부 해안에 쓰나미가 밀려와 모든 것을 덮어버린 것이다. 엄청나게 높은 파도가 집도 삼키고, 다리도 삼키고, 건물마저 삼켜버렸다. 현실이 아닌 것 같은 영상에 모두는 충격을 받았다. 일본은 비상이 걸렸다. 동시에 김박사도 비상이 걸렸다.
김박사는 아이돌의 신변에 이상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려 했다. 트위터를 사용하는 아이돌에게 즉각 안부를 묻는 메시지를 보냈고, 그렇지 않은 아이돌은 블로그를 확인했다. 교류를 하는 일본 커뮤니티 회원들에게 안부 확인을 요청하고, 소속사에 확인메일을 보냈다. 패닉에 빠진 일본인들은 서로의 안부를 묻느라 정신이 없었고, 그래서 김박사의 질문에 답할 여유가 없었다. 시간이 걸렸지만 김박사는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얼마 후 트위터를 사용하는 아이돌이 각자의 사진과 함께 괜찮다는 내용을 올렸다. 연예인들이 트위터를 통해 서로의 안부를 알려주기 시작하면서 친분이 있는 이의 소식도 확인이 가능해졌다. 그러면서 몇몇 아이돌의 연애 사정이 드러나기도 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안전을 확인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러는 사이 일본은 더 큰 위험을 맞이하게 되었다. 원자력 발전소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전력 체계에 문제가 생겨 전기 공급이 중단되었다. 냉수로가 작동 되지 않아 내부 온도가 상승하자 외벽이 하나둘씩 녹아내리더니 결국 연료봉이 외부에 노출되고 말았다.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더구나 하나도 아니고 수십 개의 발전소가 동시에 문제를 드러냈다.
쓰나미 뉴스는 금세 원자력 뉴스로 바뀌었다. 24시간 전국의 원자력발전소를 비추며 언제 방사능이 쏟아져 나올지 전전긍긍했다. 얼마 되지 않아 전국의 원자력 발전소가 하나같이 방사능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수치가 엄청나서 발전소에 다가가기도 어렵다는 뉴스가 나왔다.
관동 지역은 도쿄를 제외하고는 정전이 되었다. 취재를 나간 기자들이 소식이 끊기기도 하는 와중에 발전소 주위 100km내에 생존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보고가 나왔다. 원자력 발전소를 관리하는 도쿄 발전은 관리를 포기하고 도망친 상태였다.
총리는 전 세계에 도움을 청했다. 눈물을 흘리며 도와 달라 외치는 총리의 모습은 전 세계에 생중계되었고, 각국의 구조대가 파견되기 시작했다. 특이하게도 한국에서는 모금 행사가 시작되었다. (이 부분에 대해 안티프라그는 자신의 블로그 ‘조금은 고까운 생각’ 카테고리에 ‘병신 새끼들이 지금 뭐하는 짓들이야?’라는 제목으로 의견을 피력했다)  
피난이 시작되었다. 원자력 발전소 근처의 사람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안전한 장소를 찾아 이동하기 시작했다. 끝도 보이지 않는 긴 행렬이 방송을 통해 비춰졌다. 일본의 모든 방송은 지역 별로 가장 안전한 장소에 대한 정보를 쏟아냈다. 기름 값이 치솟았고, 방사능 측정기가 미친 듯이 팔려나갔다.
그러던 중 SNS를 통해 이상한 소식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죽은 이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주인이 없는 편의점에 들어갔다가 피를 쏟으며 달려드는 시체를 보았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하고 애기를 씹어 먹는 노인네들에 대한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사람들은 도시전설 같은 이야기로 현재의 공포를 달래려는 심리로 이해했다. 하지만 영상이 올라오자 상황이 바뀌었다. 실제로 죽은 이가 움직이고 있었다. 사방을 돌아다니며 살아있는 사람을 공격하고 살을 뜯어 먹고 있었다. 좀비다! 소식을 전하던 아나운서의 공포에 찬 한 마디에 전 세계가 뒤집혔다.
좀비의 존재가 확인되자 구조 상황이 바뀌었다. 피난 행렬을 보호하고 안내하던 자위대는 순식간에 검열과 통제 체제로 바뀌었다. 행렬은 끊어졌고 검문소가 설치되었다. 여기저기서 피난민과 자위대의 충돌이 일어났고 그 영상은 SNS를 통해 속속 올라왔다. 일본 방송국은 좀비 분포도를 만들기 시작했다. 일본인다운 발상이었다. 포획한 좀비의 방사능 수치가 상대적으로 엄청 높다는 것이 파악되자 방사능 측정을 이용한 좀비 경보기가 만들어졌다.
혼란에 휩싸인 관동 지역과 달리 상대적으로 안전한 관서 지역은 다른 논의가 벌어졌다. 수도 도쿄를 포기하고 오사카를 거점으로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고 관동 지역 사람들의 유입을 막는 경계선을 설치하자는 것이었다. 이미 철도와 비행 편을 막아 유입을 막은 상태였고 남은 것은 도로 뿐이었다. 오사카로 이동한 국회는 만장일치로 안을 통과하였고 총리의 인준도 끝났다. 남은 것은 천왕의 허락과 발표뿐이었다.
한편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연합은 일본으로부터 지구를 보호하기 위한 움직임을 시작했다. 이미 일본에 파견된 자국의 정보원을 통해 현재 일본의 상태는 물론 사방에서 들끓고 있는 좀비의 위험에 대해 파악한 세계 연합은 일본을 고립 상태로 만들기로 결정했다.
주변국의 허락 없이 방사능이 가득한 냉각수를 바다에 퍼부은 것부터 문제가 시작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영토 문제로 짜증이 났던 중국, 러시아는 미국의 제의에 동의했고 세계 연합은 연합군을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연합군은 일본의 사면에서 함대를 움직여 모든 출입을 막기로 했다. 한때 일본해라고 불렸지만 곧 한국해로 변경될 한국과의 경계는 한국 해군이, 쿠릴 열도를 시작으로 훗카이도 주위는 러시아 해군이, 조어도를 시작으로 일본 남쪽 바다는 중국 해군이, 태평양 해안은 미군이 맡기로 했다. 그 와중에 한국은 인정을 호소하며 고립 완료 전까지 한일 간을 왕복하는 비행기를 운행하기로 했다. 물론 좀비에 대한 철저한 보안책을 전제로 말이다. (이 부분에 대해 안티프라그는 자신의 블로그 ‘조금은 고까운 생각’ 카테고리에 ‘망할 친일파 새끼들 좀비 후장이나 빨아라’ 라는 제목으로 의견을 피력했다.)
그러나 이런 결정은 김박사에게 너무나 고마웠다. 친일파는 아니었지만 일본의 아이돌이 무사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이 소식을 아이돌의 각각 소속사에 전달했고, 그들의 부모에게도 알리도록 했다. 김박사는 이미 ‘사생팬’ 이라고 불리는 (스토커로 불려도 할 말이 없는) 하드코어 팬들과의 교류를 통해 아이돌의 신상을 낱낱이 파악한 상태였다. 물론 이번 사태가 터지고 나서의 일이다. 라고 김박사는 자신의 블로그에 변명삼아 글을 올렸다.
일본이 세계로부터 완전히 고립되는 날은 8월 15일로 정해졌다. 그 전에 일본은, 그 중 관서 지역으로 이동한 정부는 (물론 그들은 안전을 주장하며 고립은 안 된다고 외쳤지만 여하튼) 세계와의 교역 없이도 살아남기 위한 준비를 해야 했고, 관동 지역을 차단하는 준비를 이어가야 했다.
한국을 통해 일본을 탈출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전 세계에 재산을 가지고 있는 재벌을 비롯한 상위층이 대부분이었지만 김박사의 바람대로 연예인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일본의 커뮤니티에 올라온 정보를 통해 김박사는 현재까지 7명의 아이돌이 한국을 거쳐 미국과 유럽으로 향한 것을 확인했다. 일본을 탈출하기 위해 상위층 남자의 첩 노릇을 한다는 루머도 있었지만 김박사는 개의치 않았다. 그들이 언제 입국하는지 파악해 공항에 입국해 갈아타기 위해 대기하는 동안 공항에 찾아가 사진을 찍고 사랑한다고 건강 하라며 소리쳐주었다. (이런 행위를 팬들은 ‘레이드’라고 불렀다)
그 밖에 일본을 탈출하지는 못했지만 메이저 소속사에 적을 둔 아이돌은 안전하게 관서 지역으로 이동해 그쪽의 방송국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언제까지나 좀비 영상만 틀어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잠시나마 현실을 잊고 한숨을 돌리기에는 아이돌의 수영복 영상이 최고였다.
김박사는 방송을 녹화하고 자막을 만들어 커뮤니티에 올렸다. 커뮤니티의 회원들은 김박사를 칭찬했다. 일부는 냄새가 난다고 (너무 심하게 활동한다고) 놀리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김박사의 행동에 경의를 표했다.
김박사는 커뮤니티에서 갤부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커뮤니티의 회원을 뜻하는 갤러리의 아버지라는 의미였다. 그렇게 갤부가 된 김박사였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바로 오오카와 카오루의 존재였다. (당시만 해도 오오카와 카오루는 한국은커녕 일본에서도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아이돌이었다.)
오오카와 카오루는 당시 일본에서 활동 중이던 극장형 아이돌 A18(에이틴이라고 발음한다. 제발 욕하지 말자)의 멤버였다. 극장형 아이돌은 전용극장을 가지고 공연을 하는 것을 말한다. A18은 오타쿠의 성지라고 불리는 도쿄 아키하바라의 한편에 있는 18극장(에이틴 극장이다. 제발…….)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매일 공연을 했다.
일본은 동서로 길게 늘어진 지형과 1억 3천만에 달하는 인구로 인해 메이저와 마이너의 구분이 명확했다. 대신에 마이너 연예인도 어느 정도 수준에 오르면 금전적 이익이 보장될 정도로 서브컬처가 발달된 곳이기도 하다. 한국처럼 무조건 방송에 내보내고 보자는 식과 달리 일본은 철저하게 바닥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고, 그런 예의 하나가 A18이었다.
열여덟 명의 아이돌로 구성된 A18은 6명씩 세 팀으로 나누어서 매일 공연을 했다. 매일 극장에서 공연을 하고 입소문이 나자 CD를 만들어 인디즈로 데뷔를 했다. 아키하바라에서 CD가 팔리고, 도쿄에서 CD가 팔리고 그렇게 인지도가 생기고 가능성을 인정받아 메이저 음반사를 통해 전국적으로 유통이 되는 메이저 데뷔가 성사되었다. A18은 당시 브레이크 직전이었다. 대형 음반사가 전폭적인 지원을 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그와 연계된 광고회사와 방송국의 측면 지원도 협의된 상태였다. 남은 것은 아키하바라의 조그마한 극장을 떠나 전국적으로 인기를 얻을 순간뿐이었다.  
김박사는 그가 핥아대던(좋아하던) 모든 아이돌의 안부를 확인했다. 오오카와 카오루만 제외하고 말이다. 데뷔 앨범의 뮤직 비디오를 찍고 멤버 개개인의 프로필과 그라비아 영상을 찍는 것이 당시의 스케줄이었다. 김박사는 나머지 멤버의 안녕을 확인했다. 인기 멤버는 트위터를 사용하도록 허락받았기 때문에 쉽게 확인이 가능했고, 친한 멤버들의 소식도 알 수 있었다. 나머지 멤버도 블로그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오카와 카오루 만은 소식을 알 수 없었다.
카오루는 트위터 사용이 가능한 멤버였다. 그런데도 트위터는 3월 11일 이후로 갱신되지 않았다. 소속사에 메일을 보내고 동료 멤버에게 연신 안부를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단지 해안가로 영상을 찍으러 간 스태프와 연락이 되지 않아 확인 중이라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점점 초조해졌다. 만약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겼으면 어떻게 하나? 초기에 다른 아이돌의 안부를 확인하면서도 김박사는 묘한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글의 마지막은 항상 ‘카오루는 오늘도 확인이 안 되네요. 걱정입니다.’ 였다. 쓰나미가 몰려온 다음날 해변에서 촬영 중이던 어느 AV배우와 스태프가 휩쓸려갔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김박사의 걱정은 더욱 커져갔다.
그렇게 수일이 지나고 좀비의 존재가 확인되고, 전 세계가 패닉에 빠지고, 일본 내에서 만의 감염이라는 게 확인이 되어 안심을 하고, 그래도 퍼져나갈까 걱정을 하고, 결국엔 일본을 고립시키자는 결론이 나올 쯤, 김박사가 마지막으로 안부를 확인한 아이돌의 코멘트에서 카오루의 정보가 발견되었다.
가족과 함께 피난소에 있었다던 어느 C급 아이돌인 그녀는 피난소의 식량 배급소에서 카오루와 만났다고 했다. 언젠가 아키하바라의 길거리에서 극장 홍보를 하던 그녀와 함께한 적이 있었다는 그녀는 카오루를 알아보고 인사를 나눴다. 카오루는 당시 혼자였다고 했다. 동부 해안에서 촬영을 마친 그녀와 스태프는 다행이도 쓰나미가 몰려오기 직전에 내륙으로 이동을 했지만 차량의 기름이 떨어져 걸어서 이동을 했다고 한다. 핸드폰의 배터리도 떨어져 연락이 되지 않았다가 겨우 편의점을 발견해 들어갔지만 거기서 그들을 맞이한 것은 좀비였다. 함께 했던 스태프들은 좀비에게 당했고 카오루는 살기 위해 미친 듯이 도망쳤다. 얼마를 도망쳤는지 몰랐다. 몇날 며칠을 헤매다 다행히 피난소를 발견해 목숨을 구하게 되었다. 그게 C급 아이돌이 들은 이야기였다.
김박사는 분노했다. C급 아이돌의 발언은 일주일 전의 것이었다. 그러니까 최소한 일주일 전에 소속사는 내용을 확인했다는 이야기다. 아니, 그전에도 충분히 피난소의 연락을 통해 알았을 것이 틀림없었다. C급 아이돌의 인터뷰는 여러 부분이 편집된 듯 보였고, 소속사의 대응은 모순이 가득했다.
일본 내의 커뮤니티에는 음모론이 가득했다. 소속사는 그녀가 당하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이다. 데뷔 직전에 일어난 이번 사태로 모든 것이 어긋나버린 상태였다. 소속사는 엄청난 빚을 지게 되었다. 어떻게 해서든 A18이 떠야만 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비극적으로 좀비에게 당해 버린 카오루의 이야기였다.
소속사로서는 해볼만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내부의 소식통에 따르면 편의점에서 좀비에게 당한 스태프 중에 살아남은 이가 있다고 했다. 그는 이미 구출이 되었고, 카오루의 소식도 알려졌다. 하지만 구조를 하러 가지는 않았다고 했다. 카오루는 무조건 좀비가 되거나 죽어줘야만 했다.
김박사는 미친 듯이 분노를 토했다. 커뮤니티의 게시판에는 흥분한 김박사의 글이 연거푸 올라왔다. 소속사를 비난하고 어서 그녀를 구하도록 구조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한국 게시판에 올려봤자 소용이 없다. 김박사는 일본 커뮤니티의 지인들에게 도움을 호소했다. 어찌되었든 그녀를 구출하자는 것이었다. 일본의 팬들도 동의했다. 하지만 길이 없었다. 현재 일본의 상황을 생각한다면 그들 자신들조차 위험한 상황이었으니까 말이다. 김박사는 너무도 속이 탔다.
그러던 어느 날 카오루의 트위터가 갱신되었다. 살려주세요! 그것이 첫 내용이었다. 피난소에까지 좀비가 들이닥쳤다고 했다. 사방에 비명이 난무하고 사람들을 흩어져 도망쳤다. 카오루는 자신과 함께 했던 이가 좀비에게 당하자 그의 핸드폰을 들고 도망쳤다. 소속사에 전화를 했지만 묵묵부답이었고 911은 통화조차 되지 않았다. 최후에 그녀가 떠올린 것은 트위터였다. 자신의 팬들이 봐줄 거라고 믿은 것이다.
처음에는 팬들도 믿지 못했다. 그동안의 상황이 상황이었기에 소속사의 조작일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트위터를 갱신하려면 그동안 기회가 많았을 텐데도 올라오지 않았으니 더욱 그러했다. 누군가 인증 사진을 올리라고 했다. 그러자 금세 카오루의 사진이 올라왔다. 초췌한 모습으로 겁에 질린 표정의 사진이 올라오자 모두는 흥분했다. 그녀가 틀림없었다.
그녀가 좀비에게 쫓기고 있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팬 커뮤니티는 폭발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신문사를 비롯해 각 언론들이 그녀의 행방에 관심을 보였고, 방송국에서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가 있을 곳을 짐작해 헬기를 띄우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구조대를 보내는 게 아니라 그녀가 도주하는 것을 찍을 헬기 말이다. 김박사는 분노했다. 그녀가 위험에 쳐했는데, 망할 놈의 일본 새끼들이 구출할 생각은 안하고 무슨 짓들이야! 안티프라그는 지난 십여 년 동안 그가 욕을 하는 것을 처음 봤다. 그 정도로 김박사의 분노는 대단했다.
그러던 중에 어느 팬이 들고 일어섰다. 김박사와도 친분이 있는 일본의 카오루 팬이었다. 카오루팬27804호라는 닉네임의 그는 김박사와 마찬가지로 소속사와 언론의 태도를 비난하고는 직접 그녀를 구출하기로 결정했다. 트위터를 통해 그녀에게 위치를 묻고 핸드폰의 GPS 추적을 하였다. 그녀가 센다이 근처의 어느 시골 산속 중학교 근처 창고에 숨어 있다는 것을 확인한 카오루팬27804호는 직접 자동차를 끌고 그녀를 구출하기 위해 출발했다. 팬들은 그를 응원했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구출하지 못했다. 그녀가 있는 곳에 도착도 하지 못한 채 도쿄를 막 벗어난 외곽 도로의 한편에서 갑자기 등장한 좀비에게 물어뜯기고 만 것이다. ‘제발 누가 그녀를 구해줘!’ 그는 그 말을 남기고 절명했다.  
‘빌어먹을! 망할! 씨발!’ 김박사는 미친 듯이 욕을 토했다. 규정 위반으로 경고를 받든 말든 김박사는 미친 듯이 게시판에 욕을 쏟아냈다. 안쓰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비록 오덕후라고 욕을 먹기는 하지만, 그의 행태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의 마음은 올바르고 정직했다.
커뮤니티의 모두는 안타까워했다. 안티프라그도 마찬가지였다. 어서 빨리 그녀가 구출되었으면 좋겠다고 그를 토닥였다. 김박사는 평소 마시지도 않는 술을 마신다고 글을 남긴 것을 마지막으로 커뮤니티에서 종적을 감췄다. 어찌된 일일까?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소식을 알 방법은 없었다. 십년이 넘게 왕성하게 활동을 한 그였지만 오프라인에서의 만남은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온라인을 통해 친한 사람들은 많았지만 실제로 그를 만난 이는 한명도 없었다. 20대 후반의 남자라는 사실 외에는 그에 대한 정보가 아무것도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도 연락할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제발 자살하지만 않았으면……. 지난 십년간 그의 열정을 아는 커뮤니티의 지인들은 그렇게 걱정했다. 아무 일 없이 돌아왔으면 좋겠다. 아니, 커뮤니티를 그만두더라도 괜찮다는 소식만 전해지면 좋겠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연합이 일본을 세계로부터 고립시키기로 결정한 날, 8월 15일까지 모든 것을 마무리하기로 매스컴을 통해 발표한 그날, 커뮤니티에 김박사가 돌아왔다.
그가 남긴 말은 ‘그녀를 구해야겠습니다.’ 였다. 그녀를 구하다니, 어떻게 구하겠다는 말인가? 돌아온 댓글에 그는 답했다. ‘모르겠습니다. 어찌되었든 일본에 가서 그녀를 구해서 돌아와야겠습니다. 그렇지만 카오루팬27804호처럼 아무 생각 없이 갔다가는 좀비들에게 당하고 말겠지요. 제대로 준비를 해서 가야 그녀를 구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가 필요할 것 같은데, 지금으로써는 무엇이 필요한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데, 갤러 여러분이 도움을 주시겠습니까?’
도와주고말고! 커뮤니티의 모두는 그렇게 답했다. 그녀를 구하겠다는 김박사의 결심에 커뮤니티는 활기에 가득했다. 일본 연예 커뮤니티뿐이 아니었다. 그의 소식을 전해들은 다른 커뮤니티의 회원들 역시 도움을 자청했다. 안티프라그가 그동안 올렸던 김박사에 대한 글이 위력을 발휘한 덕분이었다.
일단 여행 커뮤니티의 회원 중에서 일본의 지형에 관해 잘 아는 이가 카오루가 있는 곳에 대한 설명을 올렸다. 그러자 일본에 거주했던 유학생과 재일교포들의 모임에서 글이 올라왔다. 그녀가 있는 곳으로 짐작되는 곳의 주변 환경에 대한 것이 속속들이 정리되어 올라왔다. 정치, 사회 커뮤니티에서는 현재 일본의 상황과 주변의 정세에 대한 브리핑이 올라왔다. 모두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하는 것들이었다.
얼리 어댑터 커뮤니티에서도 글이 올라왔다. 전자제품 회사에 협찬을 요청해서 필요한 장비들을 지급해주겠다는 것이었다. 일본에 가더라도 실시간으로 커뮤니티의 갤러 들과 소통이 가능하도록 모든 장비를 체크하고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카메라 커뮤니티, 주변기기 커뮤니티에서 다양한 장비에 대한 조언이 올라왔고, 소프트웨어 커뮤니티에서는 음성 인식 프로그램과 갤러 들과의 소통을 위한 메신저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했다.
중요한 것은 일본으로 가는 방법이었는데 거기에 대한 해답도 커뮤니티에 올라왔다. 여행사를 운영하는 사장이 여행 커뮤니티를 통해 그에게 연락을 했다. 여행사 사장은 한일 간 운행하는 비행기를 타고 일본으로 가는 방법에 대한 설명을 해주었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는 가득했지만 한국에서 일본으로 가는 비행기는 1/3정도만 찰뿐이라고 했다.
곧 비행기 표가 준비 되었다. 또한 미국 드라마 커뮤니티의 열혈 회원 중에 공항 검색대에 일하는 직원이 자신의 권한으로 검문을 받지 않고 여러 장비와 함께 비행기에 탈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글을 올렸다. 좀비가 들어오지 않게 검색하는 게 중요하지 나가는 사람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추가 설명과 함께 말이다.
일본으로 가는 방법은 정해졌다. 그 다음은 일본에 도착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 였다.
여기서부터는 밀리터리 커뮤니티의 활약이 시작되었다. 우선 현재 일본의 상황에서 식량을 구하기는 어려울 것이라 판단했다. 전투 식량 쇼핑몰을 운영하는 회원이 최소의 무게로 최대의 섭취가 가능한 전투 식량을 지원하기로 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밀리터리 커뮤니티의 회원들은 김박사를 위해 그들이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던 전투 장비들을 빌려주기로 했다. 몇 십 만원, 몇 백 만원 하는 고가의 전투 장비, 법적인 제한이 있어 쉽게 구하지도 못하는 것들을 흔쾌히 그에게 양도한 것이다.
야간에도 주위를 살필 수 있는 야간 투시경을 비롯해 산악 행군에 필요한 장비를 시작으로 다양한 장비들이 그에게 전달될 예정이었다. 그리고 해병대 체험 훈련장을 운영하는 어떤 이는 그에게 훈련을 제의했다. 이제 와서 체력을 기르거나 전투 기술을 익히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최소한의 개념을 숙지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었다. 김박사는 흔쾌히 동의했다. 밀리터리 커뮤니티 회원들이 장비를 모으고 필요한 것들을 확인하는 동안 그는 훈련장에 가서 최소한의 기술을 익혔다. 그러면서 그의 얼굴이 공개되었다.
오덕후는 ‘안여돼’ 라는 편견이 있다. ‘안여돼’는 안경을 쓰고 여드름이 가득한 돼지의 줄임말이다. 집안에 틀어 박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모니터로 보며 먹을 것만 밝히는 존재. 그것이 세상이 가지는 오덕후에 대한 편견이다. 김박사는 ‘안여돼’가 아니었다. 여드름은 나지 않았던 것이다.
김박사의 훈련 사진이 올라오자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졌다. 100kg에 육박하는 지방질의 몸 덩어리로 헉헉대는 모습에 안타까움이 솟구쳤지만 어떤 훈련도 끝까지 이겨내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모두의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삼일간의 짧은 훈련을 마치고 머리까지 짧게 자른 김박사는 커뮤니티가 주최한 모임에 참석했다. 일본 연예 커뮤니티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 컴퓨터, 소프트웨어, 여행, 지리, 얼리어답터, 밀리터리 등등 김박사의 구출 작전에 도움이 되는 모든 분야의 커뮤니티의 회원들이 모여 그를 격려해주었다. ‘카오루를 구하자! 카오루를 구하자!’ 밤새 술을 마시며 그들은 소리쳤다. ‘카오루를 구하자!’
기본적인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그에게 전해졌다. 무기였다. 일본은 지금 좀비들이 가득한 무법지대였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진짜 무기가 필요했다. 비밀리에 밀리터리 커뮤니티의 어느 남자가 김박사에게 무기를 전해주기로 약속했다. 그것도 일본의 판매상을 통해서 말이다.
안티프라그는 나중에야 그 소식을 전해 들었다. 한때 러시아에서 이중 스파이로 활약했다고 하는 그 남자는 정보부에 버림받고 러시아에 쫓겨 부산의 어느 구석에서 숨어 살았다. 그에게 유일한 낙은 밀리터리 커뮤니티에서 이러저러한 잡담을 나누는 것이었는데, 우연히 김박사의 소식을 듣고는 자신의 인맥을 이용해 무기를 구해주기로 한 것이었다. (후에 출판사 취재진이 그와 인터뷰를 했는데, 금전적인 문제는 어떻게 해결했냐는 질문에 ‘씨발, 어차피 한번 사는 인생, 저런 병신 새끼도 뜻을 품고 세상을 뒤집어 보겠다고 하는데 그깟 돈이 문제야? 러시아 놈한테 엉덩이 대줬어. 됐냐?’ 라는 답이 돌아왔다.)
모든 준비는 완료되었다. 성대한 송별식을 한 다음날 김박사는 카오루를 구하기 위해 일본으로 떠났다.
일본에 도착하자 마구로30살이라는 닉네임의 일본인이 그를 마중 나왔다. 일본의 아이돌 커뮤니티를 통해 교류하던 사람이었다. 카오루팬27804호의 친구이기도 했던 마구로30살은 별명 그대로 30살의 동정남이었다. 전형적인 ‘안여돼’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마음은 그 누구보다 순수한 사람이었다. 세상의 편견에 상처를 받아 집에 틀어박혀 히키 코모리(은둔형 외톨이) 생활을 해오던 그는 김박사의 소식을 듣고 용기를 내어 집 밖으로 나온 것이다.
마구로30살은 김박사에게 현재 일본의 상황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마구로30살의 설명은 김박사의 몸에 장착된 수많은 마이크로 카메라와 마이크를 통해 실시간으로 한국의 스트림 영상 방송 사이트에서 재생이 되었다. 소프트웨어 커뮤니티에서 만든 프로그램을 하드웨어 커뮤니티에서 제공한 장치에 효과적으로 활용한 결과였다. 거기에 사기를 당해 한때 감방에 갔다 오기도 한 커뮤니티 사이트의 사장이 서버를 비롯한 여러 시스템을 제공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당시 녹화된 화면을 보면 순간 시청자 수가 5만 명을 훌쩍 넘기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포털 사이트에서 ‘김박사의 위업’이라는 제목으로 검색을 하면 일본에 도착한 순간부터 녹화된 영상을 30분 단위로 나눈 것을 찾아볼 수 있다. 아니면 실시간 스트림 방송 사이트 남아프리카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일본은 지금 충돌에 휩싸여 있었다. 관동과의 교류를 막기 위한 차단벽의 건설이 한창 진행되는 와중에 한 명이라도 더 넘어오려는 관동 사람들과 좀비를 철저하게 막기 위한 관서 사람들의 충돌이 매일 같이 벌어지고 있었다. 오사카에 새워진 정부는 내각제를 버리고 대통령제로 행정부를 구성하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뉴스를 통해 천왕이 사는 곳에서 좀비가 발생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천왕마저도 포기하려는 제스처를 취하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에 관동 지역에서는 자체적으로 자경단이 만들어져 집단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시발은 야쿠자였다. 오랫동안 지역에 뿌리내려 활동하던 야쿠자들이 고향을 버리고 도망치는 정치가들을 욕하며 주민을 지키기 위해 나선 것이다. 야쿠자의 입장에서는 이판사판의 행동이었지만 주민들은 환영했다. 언제 좀비들이 불쑥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고향에 남은 경찰과 소방대원들이 야쿠자에게 행동 요령을 숙지시켰고, 의견이 틀어진 자위대의 일부가 합류하면서 자경단은 거대한 조직으로 탈바꿈했다.
그리고 야마구치 구미라고 불리는 야쿠자의 최대 파벌이 관동을 버리고 간 정부를 대신해서 새로운 나라를 세우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정부는 좀비와 방사능으로 가득한 관동 지역을 포기하고 관서로 도망을 쳤지만 자신들은 좀비를 해치우고 모든 것을 안전하게 정리하겠다는 것이었다. 일단 좀비로 가득한 도쿄는 제쳐두고 원자력 발전소에서 가장 먼 거리에 있고 현재 가장 안전하다고 짐작되는 나가노를 중심으로 정부를 구성하기로 했다. 그들은 방송을 통해 살아남은 이들은 나가노로 모여 달라고 했다. 그러는 동안 자신들이 주변의 좀비들을 청소하며 안전한 장소를 늘려가겠다고 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지만 좀비를 모두 청소하고 관동 지역을 다시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겠다고 소리쳤다.
‘대단하군요.’ 김박사는 중얼거렸다. ‘대단하긴요. 좀비를 없애도 방사능이 가득한데 어떻게 삽니까? 최소한 30년은 기형아들이 쏟아질 텐데요.’ 라고 마구로30살이 답했다. (대화는 남아프리카 스트림 방송에 녹화된 둘의 일본어 대화를 번역한 것이다. 이후의 대화도 일본어 대화를 번역한 것이다.) 마구로30살의 말대로 관동 지역은 좀비를 없앤다고 하더라도 원자력 발전소에서 뿜어지는 방사능 때문에 애초에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야마구치 구미의 야쿠자들이 이렇게 하는 것은 그렇게 세력을 집결해서 관서 지역으로 쳐들어갈 생각임이 틀림없다고 했다.
오사카의 마구로30살의 집에 머물며 대강의 상황을 파악한 김박사는 출발준비를 했다. 일본에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관서 지역에서 관동 지역으로 가는데 큰 제한은 없었다. 좀비가 섞여 들어올까 검문하는 게 중요했지 빠져나가는 건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검문소에 도착하자 지옥이 펼쳐져 있었다. 관서로 넘어오려는 사람들의 행렬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이어져 있었다. 검문은 거리를 두고 3단계에 걸쳐 이루어지고 있었다. 좀비가 된 가족을 몰래 데리고 오려는 사람도 많았고, 좀비가 되지는 않더라도 방사능 수치가 높은 사람도 많았기 때문에 몇 번이고 검사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의외로 관동으로 넘어가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관동에 있는 가족을 구하러 가는 이들이었다.
빠져나가는 행렬의 틈에서 김박사와 마구로30살은 자위대의 군인을 만났다. 관동으로 넘어가면 좀비와 방사능의 위험이 있고 다시 돌아올 때는 철저한 검문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경고를 하러 온 것이었지만 사실은 그에게 무기를 전해주기 위해서였다. 엉덩이를 대주고 소개를 했다는 밀리터리 커뮤니티의 남자로부터의 연락을 받은 일본 내의 커넥션이었다.
무기는 M16과 콜트 권총이었다. ‘러시아에서 들어온 미군의 무기를 일본의 땅에서 한국 사람이 사용하다니. 재미있군요.’ 마구로30살이 중얼거렸다. ‘총은 다뤄본 적 있나요?’ 권총을 마구로30살에게 건네며 물었다. ‘그럼요. 저도 아이돌 오타쿠 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그러면서 마구로30살은 익숙하게 콜트 권총을 다루었다. ‘히키 코모리를 하기 전에는 여행도 다니곤 했죠. 한국에 있는 사격장에서 여러 번 사격도 해보았지요. 싼 가격에 합법적으로 사격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건 부러워요. 2008년 이후로는 환율이 낮아져서 한국에 가면 뭐든지 싸다고 하던데 못 가봐서 아쉬워요. 한국은 지금 음식도 싸고 옷도 싸고 여자도 싸다던데…….’ (이때 김박사가 한국말로 ‘난 일본에 갈 때마다 환율 때문에 피똥을 싸는데……. 문수 이 씨발 새끼.’ 라고 중얼거린 장면이 남아프리카 스트림 방송으로 퍼지면서 한때 남아프리카 회사에 검찰의 압수 수사가 벌어지기도 했다.)
검문소를 통과해 관동으로 넘어오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마치 군부대의 경계선을 기준으로 이쪽은 따뜻한데 저쪽만 넘어가면 추운 것 같아 라는 군대 농담이 실제 하는 기분이었다. 가족을 찾으러 넘어온 다른 차량들과 도로를 따라 한참을 달리는 와중에 그들은 수많은 피난민들을 만났다.
관동의 여기저기서 모인 이들은 다양한 소식을 가지고 있었다. 나가노를 중심으로 모인 야마구치 구미는 세력이 커지면서 안정적인 상태로 접어들었다고 했다. 주변의 좀비를 대부분 물리쳤고, 전기와 수도도 사용이 가능한 상태라고 했다. 문제는 방사능이었다. 상대적으로 안전한 지역이기는 했지만 거기로 피난 온 사람들의 방사능 수치가 너무 높았다. 또한 방사능과 좀비의 상관관계에 대한 조사가 이루어지는 상황인지라 민심이 갑자기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는 상태였다.
도쿄는 좀비로 가득하다고 했다. 9천만 명에 가까운 인구가 살던 곳이니 당연한 결과였다. 한때는 좀비를 없애기 위해 도쿄에 폭탄을 투하하자는 말이 나올 정도로 좀비가 들끓었다고 하는데, 결정이 바뀐 이유는 좀비의 수만큼 사람들도 살아남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빌딩에 모여들어 방어막을 치고 생존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도쿄의 빌딩은 지진에도 견딜 수 있는 정도였으니 좀비 떼거지쯤은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더구나 도쿄의 편의점 수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았다. 현재 도쿄에는 대략 300만 명에 가까운 ‘나는 전설이다’가 존재한다고 했다.
‘그런데도 도쿄를 포기하고 오사카로 가버리다니, 한심한 정부로군.’ 마구로30살이 중얼거렸다. ‘이래서 관료체제는 안된단 말이야. 한국은 어때요?’ ‘한국도 마찬가지에요. 한국에서 제일 썩어빠진 곳을 찾으려면 관공서에 가면 되지요. 물론 교회에 가도 좋구요.’ ‘어디나 마찬가지군요.’
고속도로는 차량으로 막혀 있었다. 예상했던 바였다. 김박사는 일본의 도로 상황을 내비게이션에 전송받았다. 내비게이션은 한국에서 가져온 것으로 당연히 소프트웨어 커뮤니티에서 만들어준 프로그램이 깔려 있었고, 하드웨어 커뮤니티에서 장착해준 위성송수신 장치가 연결되어 있었다. 김박사의 차량이 이동하는 와중에 한국에 있는 커뮤니티의 회원들은 여러 곳에서 정보를 수집했고, 정체를 밝히지 않은 몇몇 해커들은 일본은 물론 미국을 비롯한 연합군의 사이트를 해킹해 필요한 정보를 전송해주었다.
김박사의 차량은 막히지 않은 도로를 따라 이동했다. 소프트웨어 커뮤니티는 막히지 않는 도로를 연결하여 가장 단시간에 이동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비게이션에 업데이트 했다. 모든 것이 김박사가 깨닫기도 전에 저절로 이루어졌다. 남아프리카를 통한 시청자는 어느새 10만 명을 넘어선 상태였다.
카오루가 있는 센다이의 중학교로 가는 데는 4일이나 걸렸다. 도로를 돌아서 가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그 동안 카오루는 중학교 근처의 창고에 몸을 숨기고 버티고 있었다. 커뮤니티의 회원들은 그녀의 트위터에 끊임없이 메시지를 보냈다. 한국에서 당신의 팬이 당신을 구하러 간다. 힘을 내라. 조금만 더 기다려라. 지금 어디를 지나고 있다.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되는 메지시가 카오루에게 힘이 되었다. 그것은 정말 커다란 힘이었다. 고독과 공포에 둘러싸여 트위터의 메시지 하나만 붙잡고 버티는 사이 카오루는 김박사의 이야기에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김박사의 행동이 들려오고 김박사의 목소리가 전해오고 김박사의 사진이 전해오고. 어느 쪽이 팬이고 어느 쪽이 아이돌인지 모를 상황이 되고 말았다.
한편 김박사는 변해가고 있었다. 도로를 빙빙 도는 동안 여러 번 좀비와 마주쳤다. 처음에는 좀비를 직접 본 공포에 비명을 지르기도 했지만 금세 좀비의 존재에 적응했다. 초반에는 차로 치어 밟아버리는 쪽이었지만 그 다음에는 방망이를 들고 직접 머리를 박살내기도 했다. 총알은 아껴야 했기 때문에 위험한 상황이 아니면 방망이를 휘둘렀다. 그러면서 김박사는 살이 쪽 빠졌다. 처음 안티프라그가 김박사를 보았을 때와 비교하면 거의 20킬로가 빠진 상태였다. 그 전에 아이돌의 걱정에 빠진 것까지 계산하면 김박사는 평소의 무게보다 30킬로 가까이 살이 빠졌다. 살이 빠지자 외모에서 풍기는 분위기도 달라졌다. 여드름만 없었을 뿐 전형적인 ‘안여돼 오덕후’ (안경 쓴 여드름 돼지 오타쿠)였던 그는 지금은 깊은 눈매에 지적인 느낌의 안경을 쓴 75kg의 적당한 몸무게를 한 청년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커뮤니티 회원들은 발칵 뒤집혔다. 스트림 방송을 통해 얼핏 비치는 그의 모습은 마치 좀비 영화의 주인공처럼 멋졌다. 합성 커뮤니티는 미친 듯이 김박사의 합성 작품을 쏟아냈고, 모든 커뮤니티는 김박사를 찬양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김박사는 한국을 떠나기 전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유명인사가 되어 있었다. 단순히 커뮤니티 내에서 알려졌던 것과 달리 TV방송은 물론 신문, 잡지 등 모든 언론이 그에 대한 이야기를 보도하기 시작했다. 소식은 전 세계로 퍼졌고, 정치인들까지 나서서 그가 아이돌을 구해내기를 바라는 성명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김박사는 센다이에 도착했다. 목적지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지점이었다. 곧 카오루가 있는 중학교 근처에 도착할 예정이었지만 도로가 막혀 있었다. 더 이상 돌아갈 곳도 없었다. 김박사와 마구로30살은 도보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어디서 좀비가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상태였기에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김박사와 마구로30살의 모자와 어깨, 목걸이, 총구 아래에 설치된 마이크로 카메라를 통해 긴장된 영상이 전해지자 남아프리카 방송의 시청자 수는 천만 명을 훌쩍 넘겼다. 전 세계의 사람들이 김박사와 마구로30살을 주목했다.
해가 지기 시작했다. 온 몸에 붙인 led 라이트가 주변을 비추기는 했지만 (전기, 조명 커뮤니티에서 협찬을 해주었다.) 완전히 밝히기는 못했다. 멀리 중학교의 모습이 보였다. 카오루의 트위터에는 ‘김박사가 근처야!’ 라는 메시지가 쏟아졌다. 핸드폰의 GPS 추적으로 카오루의 정확한 위치와 거리가 실시간으로 김박사에게 전송되고 둘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모두는 흥분은 억누르며 만남의 시간을 기다렸다.
중학교에는 좀비가 가득했다. 피난소로 이용되던 곳이었기에 당연한 결과였다. 다행인 것은 마지막 생존자들이 도망을 치기 전에 피난소의 문을 잠가 두어 좀비들이 밖으로 나올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나마 외부에 있던 좀비들은 사람을 찾아 중학교를 떠난 후였다. 김박사와 마구로30살을 보고 밖으로 나오려 안간힘을 쓰는 좀비들을 뒤로 하고 중학교를 지나 뒷산의 창고에 숨은 카오루를 찾았다.
총 13032148명. 김박사와 카오루가 만나는 순간에 남아프리카 스트림 방송을 본 시청자의 수였다. ‘카오루 짱!’ 김박사의 외침에 반응하여 카오루가 ‘키무하카세?’ 라고 되묻는 순간 스트림 방송을 지켜보던 모두는 환호성을 질렀다. 저도 모르게 김박사의 품으로 파고든 카오루의 행동에 더 큰 환호성이 터졌다. 둘을 보며 마구로30살은 박수를 쳤고, 거기에 맞춰 13032148명의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기네스북에 동시에 박수를 친 사람 수를 정하는 부문이 있었다면 분명 신기록이었을 것이다.
남은 것을 돌아가는 것뿐이었다. 조심스레 창고를 빠져나와 차를 세워둔 곳으로 돌아가자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익 집단 금란회의 사람들이었다. 김박사의 활약이 전 세계로 퍼지면서 금란회 역시 소식을 들은 것이다. 일본의 아이돌을 한국의 남자가 구하다니! 용서할 수 없는 일이야! 라고 판단한 금란회에서 카오루를 되찾기 위해 나타난 것이다.
‘조센징! 카오루를 내놔!’ 김박사 일행은 금란회를 피해 도망쳤다. 중학교로 돌아가 잠가둔 문을 열어 좀비가 나오게 하고는 산으로 도망쳤다. 쫓아오던 금란회 사람들은 좀비와 마주치고는 추적을 포기했다.
차량을 잃었다. 오랫동안 숨어 지내느라 카오루는 지쳐 있었다. 걸어서 이동할 수는 없었다. 다시금 커뮤니티 회원들이 실력을 발휘했다. 위성사진을 바탕으로 가장 가까운 도로를 찾았다. 버려진 차량을 발견하자 자동차 커뮤니티의 회원들이 열쇠 없이도 시동을 거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김박사와 마구로 30살이 버려진 차량에서 기름을 뽑아 옮겨 담는 동안 카오루는 남아프리카 방송을 시청하는 이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소속사마저 버린 자신을 구하러 온 김박사에 대한 애정을 표시했고, 기꺼이 도움을 준 마구로30살에게도 감사를 표했다. 지금 이 순간 오오카와 카오루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연예인이 되었다.              
돌아가는 길은 순조로웠다. 내비게이션은 없어졌지만 방송을 시청하는 이들 모두가 네비가 되어 주었다. 가는 동안의 여정을 표시한 지도를 바탕으로 돌아오는 길을 확인했고, 안티프라그가 실시간으로 그것을 안내했다. 관동에서 관서로 넘어가는 검문소에 다다를 즈음 다시 한 번 시청자들의 환호성이 터졌다.
하지만 흥분은 오래 가지 않았다. 1차 검문소부터 문제가 생겼다. 카오루의 방사능 수치가 너무 높았다. 김박사와 마구로30살의 방사능 수치는 일반인 보다 조금 높은 정도였지만 카오루의 방사능 수치는 살아있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높은 수치였다. 검문관은 카오루의 출입을 허락하지 않았다. ‘말도 안 돼!’ 김박사는 소리쳤지만 방법이 없었다. 일단 검문소 근처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방송을 본 이들은 청원 운동을 시작했다. 여론이 형성되자 정치인들도 나섰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단호했다.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단 하나의 좀비라도 넘어오면 관서 지역도 엉망이 되어버릴 것이다. 살아있는 게 이상할 정도의 방사능 수치를 가진 인간은 당장은 아니더라도 좀비로 변할 가능성이 있다. 그 동안의 연구로 밝혀진 사실을 근거로 카오루는 출입이 금지되었다.
김박사는 낙담했다. 마구로30살은 일단 오사카로 돌아가기로 했다. 거기서 여론을 형성해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말에 김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고마웠어요.’ 김박사는 허리를 깊이 숙였다. ‘아니요. 내가 더 고마웠어요. 덕분에 집에서도 나올 수 있었고’ 마구로30살은 웃으며 답했다. ‘이제 남은 것은 동정을 떼고 마구로라는 별명을 없애는 것뿐이네요. 하하하하’
마구로30살이 떠나고 난후 김박사에게 카오루와 함께 나가노로 이동하자 이야기가 나왔다. 야마구치 구미의 야쿠자가 세력을 형성한 곳이다. 거기라면 방사능 수치가 높다고 해도 받아들여준다. 정치, 경제 커뮤니티의 회원들은 야마구치 구미의 세력이 현재 일본 정부에게 미치는 영향력과 현재 정세의 변화에 대한 연구를 거듭하며 토론을 시작했다. 김박사와 카오루의 영향력이라면 야마구치 구미도 구미가 당길 것이다. 관서로 쳐들어갈 기회를 노리는 야마구치 구미라면 김박사와 카오루의 명분을 세워 길을 트려고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역으로 그 점을 이용하면 김박사와 카오루가 일본에서 탈출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이었다.
관서 지역의 일본 정부는 관동 지역을 완전히 차단해 안전하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그래야 세계로부터 고립당하지 않는다. 현재 상태로서는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8월 15일까지 고립을 시키겠다는 발표가 나왔다. 그런 상태에서 관동 지역과 전쟁을 벌인다? 좀비가 가득한 상황에서? 말도 안 되는 짓이었다. 결국 일본 정부로서는 김박사와 카오루를 어서 빨리 일본에서 내보내는 것이 최선이다. 그게 정치, 사회 커뮤니티의 회원들이 내린 결론이었다.
김박사는 고개를 내저었다. 대신에 그는 더 이상 영상을 송신하지 않겠다는 말을 꺼냈다. ‘왜?’ 커뮤니티 회원들은 깜짝 놀랐다. ‘조금만 더 참으면 일본을 탈출 할 수 있는데, 왜 갑자기 연락을 끊겠다는 거야? 계속 거기에 있다가 좀비들에게 당하면 어떻게 하려고?’ 김박사는 말없이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연락을 끊더라도 야마구치 구미에 가서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해. 그러면 탈출 할 수 있을 거야.’ 그를 아끼는 사람들은 마지막까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그가 무사히 카오루와 함께 돌아오길 기도했다.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여러분 덕분에 저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 이렇게 카오루도 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제부터는 저와 카오루가 알아서 살아남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김박사는 연락을 끊었다. 남아프리카 방송은 노이즈만 남았다.
왜 연락을 끊은 것일까? 왜 더 도움을 받지 않고 포기한 걸까? 대답은 한참 뒤에야 알 수 있었다. 카오루가 좀비로 변해가고 있었다. 얼마 후 일본 정부에서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좀비로 변하게 된 것은 역시 방사능과 관계가 있었다. 지나치게 높은 수치에도 살아남았던 카오루는 곧 좀비로 변하게 될 상황이었던 것이다.
카오루는 그것을 느끼고 있었고, 김박사도 그걸 알아챘다. 둘은 마지막 순간을 함께 하기로 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자신을 구하러 온 한국의 팬. 모든 것을 버리고 구하고 싶었던 자신의 아이돌. 김박사와 카오루는 센다이의 바다로 이동했다. 애초에 카오루가 찍으려고 했던 그라비아 영상의 촬영지였다. 그곳에서 둘은 그라비아 영상을 찍었다. 카오루는 생애 최고의 미소를 지으며 카메라를 향해 말을 걸었고, 김박사는 터지는 웃음을 감추지 못하며 촬영을 했다. 즐거운, 너무도 행복한 하루가 지났다.
해가 지고 밤이 내려앉자 카오루의 상태가 변하기 시작했다. 김박사는 카오루를 품에 안고 지난 십 여 년 동안 그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이야기했다. 견디기 힘든 현실의 고통에 괴로워 할 때 아이돌의 미소가, 그녀의 미소가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이야기 했다. 존경하던 대통령이 연이어 세상을 떠났을 때, 너무나 슬퍼 너무도 화가나 미쳐버릴 것 같았을 때 그녀의 웃는 모습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이야기 했다. 그녀의 사진을 하나하나 모을 때, 라이브에서 그녀의 이름을 소리칠 때, 사인회에서 처음 그녀와 눈이 마주쳤을 때, 악수회에서 처음 그녀의 손을 잡았을 때 그가 얼마나 행복했었는지 이야기했다. 카오루가 좀비로 변해 목을 물어뜯을 때까지 김박사는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했다. 동맥이 끊기고 피가 솟구쳐 오르는 순간에도 김박사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행복했어. 김박사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권총의 방아쇠를 당겼다.

둘의 마지막을 담은 영상은 18년이 지난 후에 발견되었다. 그 동안 일본을 고립시키는 것으로 끝날 줄 알았던 좀비와의 전쟁은 태풍을 타고 한국으로, 중국으로, 러시아로 퍼졌고(당시 편서풍 때문에 안전하다고 말한 기상청 관계자는 좀비가 퍼진 직후 사람들에게 살해당했다), 전세계는 대재앙에 휩싸였다. 김박사에 대한 포스팅을 했던 안티프라그는 좀비와의 전쟁에서 살아남지 못했고, 여러 도움을 주었던 각 커뮤니티의 회원들도 다수 희생되었다. 좀비와의 전쟁에서 인류가 승기를 잡고 본래의 평화를 되찾은 것은 김박사가 카오루를 구출한 지 14년이 지난 2025년의 일이었다.
OMB-J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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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2024년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공고 mirror 2024.02.26 1
공지 단편 ★(필독) 독자단편우수작 심사방식 변경 공지★5 mirror 2015.12.18 1
공지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 (3기 심사단 선정)4 mirror 2009.07.01 3
397 단편 도마뱀 여인 김진 2011.09.02 0
396 단편 큐어 박재권 2011.09.02 0
395 단편 영원의 단면2 샤유 2011.09.03 0
394 단편 사희월도(思姬月刀) 이니 군 2011.09.04 0
393 단편 아몬-레2 먼지비 2011.09.04 0
392 단편 Spanish Guitar 김진 2011.09.05 0
391 단편 용 사냥1 이정도 2011.09.09 0
390 단편 마치 좀비처럼 2011.09.09 0
389 단편 폐허로 만들어진 성 Leia-Heron 2011.09.14 0
388 단편 황금빛 추억1 김진 2011.09.24 0
387 단편 리무버4 gozaus 2011.09.22 0
386 단편 글레바력 13세기 hallyeia 2011.09.26 0
385 단편 거미에게 나비를 모베 2011.10.01 0
384 단편 뼈의 발견자 Mothman 2011.10.03 0
383 단편 장미 행성 Mothman 2011.10.03 0
382 단편 화장터 목이긴기린그림 2011.10.03 0
381 단편 질식 김진 2011.10.04 0
단편 오덕후 김박사의 위업 OMB-J2 2011.10.10 0
379 단편 [엽편]피리 명인2 먼지비 2011.10.09 0
378 단편 괴 산 전광용 2011.10.06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