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단편 모래 늪

2011.08.29 10:3508.29

1.



어느 한적한 사막 한가운데엔 거대한 모래 늪이 있다. 한눈 팔고 길을 가다 살짝 발을 담군다면 그는 다신 당신의 발을 보지못하도록 할 것이다. 구지 사막의 늪을 연상치 않더라도, 우리들이 사는 이 도시 한가운데에도 거대한  늪은 있다. 사람들은 제각각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모래 늪을 가지고 있으니깐,



나도 그 늪을 경험했다.

그 늪은 끈덕지게도 내 다리를 놓아주지 않았고, 내 몸을 삼켜버릴듯이 숨가쁘게 날 빨아드렸다.

결과적으로 본다면야 나는 어쨋든 살아 돌아왔다.



실수로 놓쳤던 발에 남은 깊은 상처가 있긴하지만 , 어쨋든 나는 살았다.





2.



꿈틀.



무언가가 손이 닿은 이곳에서 움직거렸다. 내 오른손은 양쪽 가슴 중간에 올려져 있었고, 나는 그 무언가를 느꼈다.

살아있는 것 같기도 하고, 무생물 같기도 하고 무튼 그것을 내 안에 존재 했다. '아냐'라고 머리가 말했다. 그리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해야한다는 듯 큰 한숨은 배끝으로 부터 불러일으켜 입밖으로 내뱉었다. 그 한숨이 올라오는 중간 거슬리는 것이 없었으니, 무언가가 가슴에 얹혀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닐 것이었다. '설마-' 라는 말을 입가에서 맴돌게만 낮게 읖조린 후 다시 아무도 모르게 집어 넣었다.





작은 사무실 안의 공간은 늘 활기찬 공기로 가득찼다. 가끔 뾰족한 턱을 가진 김대리가 날 부르지만 않는다면.



' 은화씨 이 서류 좀 이따 오후까지 정리해서 갔다줘요' 부드러운 말투를 가진듯하지만 그는 갈치를 닮았다. 뾰족한 턱은 나도 갖고있지만, 그는 눈도 뾰족했고, 코도 뾰족했고, 입도 뾰족했다. 어떻게 그럴수가 있는지 모를 정도로 온 몸 전체가 뾰족뾰족 열매를 먹은 듯 날카로왔다. 저렇게 차분한 말투를 가장해서 쓴다해도 '이따 오후까지' 서류를 정리해서 그 갈치 앞에 드리민다면 분명, 물 속에서 빛을 내 활개치는 갈치처럼 온몸에서 발산하는 빛으로 내 눈을 잃게 할 것이 분명했다.



툭, 촤악-

'도대체 은화씨는 찰떡처럼 말하면 개떡처럼 알아들어? 이게 몇번째야- 왜 같은 말을 여러번 하게 하는거지?'

점심시간도 쪼개서 정리를 한 서류들이 바닥에 가로수길 낙엽처럼 아무렇게나 떨어져 내렸다. 서류를 주우려 갈치앞에서 몸을 숙였다. 내 머리 위로 개떡같은 말들이 쏟아져내렸다. 갈치나라 사전에선  개떡과 찰떡의 의미를 바꾸어 적어놨나보다.  

오늘은 조용히 넘어가나 했더니, 쯧 - 이라는 눈빛들이 화장실로 향하는 나를 쏘아대고 있었다.



쾅,찰칵-

오늘의 화장실 문도 어김없이 잠겼다. 잠길일 없는 화장실 문도 내덕분에 녹이 슬진 않겠단 생각이 들었다. 거울 앞에선 나는 눈앞에 비친 나를 쳐다보지 못했다. 세면대에 팔기둥을 세우고 추욱 쳐진 고개를 받치고 있었다. 세면대에 물을 틀지 않았는데, 그 위로 물이 고이고 있었다.

소리를 내고 싶진 않았다. 가슴안쪽에서부터 올라오는 울컥거림이 용트림을 하듯 나도 모르게 새어 나왔다.

하- 내가 꼭 이러면서까지 이곳에 있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때마다 대학 졸업 후 통틀어 20번에 가까운 이력서 제출과 10번 남짓한 면접을 거쳐온 머리가 나를 말린다 '아직 초짜라 그래, 원래 초짜들은 다 이런거잖아. 괜찮아 괜찮아..' 위로의 말은 나를 달래주진 않았지만,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볼 수 있게 해주었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입은 오물거리듯 그 말을 씹고 또 씹었다.



촉촉한 얼굴이 되어 터벅터벅 걷는 내게 그 선배는 자판기커피를 건냈다 '괜찮지?'라는 말을 하는 듯 그의 눈은 날 바라보고있었다. 받아든 컵은 뜨겁지 않고 따뜻했다. 아마도 커피를 들고 기다렸던 거겠지.. 아무도 없는 복도에 서서 잠시 멍-하게 바닥을 바라보다 벽에 몸을 기댔다. 온기만 남아있는 종이컵이 나에게 조금의 위로를 건냈다. '선배..' 이 작은 사무실 안에서 나를 유일하게 응원해주는 사람. 하얀 피부에 쌍커풀없는 날카로운 눈매는 내게만은 부드럽게 다가왔다. 워낙 말이 없어 내가 입사하고 첫 회식때서야 안면을 익혔다. 곱슬거리는 머리를 가진 O형 남자. 늘 이렇게 자판기커피를 전하는 그의 손은 언젠가 자세히 보게되었던 날, 내 손보다 곱다는 것을 알았다. 원체 하얀 피부를 가졌지만, 손은 하얗기만한 것이라니라 여자손보다 가느다랗고 긴 손가락이 내 뭉툭한 손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꿈틀- 하..

'아냐'

머리가 말했다.





3.



그날은 유난히 어둑한 밤이었다. 늦은 세미나를 마치고 함께한 여직원들을 대려다 주겠다며 그 선배가 차문을 열어주었다. 다른 남자직원들은 오랫만에 술한잔씩 기울이겠다며 모이는 가운데, 그는 가정을 핑계로 일찍 자리를 나섰다. '정말 유난은 유난이야 누구는 가정없나.' 또 김갈치가 뾰족한 말을 내뱉는다. 그는 태생이 뾰족한가부다. 그래서 모든 세상이 자기에게도 뾰족하겠지.. 차안에는 그와 나, 그리고 나와 한날 한시 입사한 이미소씨와 여자 선배가 탔다. 여자선배집부터 하나 둘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집근처 위치한 내가 마지막으로 차 문을 닫았다. '감사합니다. 내일 뵈요 선배' 인사를 하고 뒤를 돌아 아파트 공동현관에 비밀번호를 누르는 내 뒤로 그가 떠나지 않고 보고있다는 것을 알았다. 태연한 듯 문이 열림과 동시에 발을 돌리는 내 뒤에선 아득한 눈빛이 나를 불렀다. 엘레베이터 앞에서 꿈틀대를 내 가슴을 머리가 진정시켰다.'아냐.아냐... 아냐..'이번엔 한번으로는 끝나지 않았다. 날 비추던 노란 조명이 꺼지면서 나는 엘레베이터 버튼을 깜박한 것을 알았다.



계속 꿈틀 거리는 가슴을 냉수로 진정시키고 나는 씻지도 않고 침대에 누웠다. 천장을 한참 보고있었는데 어느샌가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주말저녁이 되었다. 오랫만에 만나기로한 대학동기가 약속을 취소하는 바람에 오늘 하루는 집에서 뒹글뒹글거리며 한가로움을 온몸으로 만끽했다. 혼자 있을 때 밥을 해먹는 것은 엄마 손맛에 길들여진 내게는 곤욕이었다.

겨우겨우 몸을 일으켜 쌀을 씻으러 부엌에 나오고야 밖이 어둑해진 것을 알았다.

'쉬는 날은 눈 깜빡하면 지나간다니깐 칫-' 혼자 중얼거릴 즈음 전화기가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기에 나는 모른척 받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상하게도 끈덕지게 전화기가 울려댔다. 받지 않으면 않은 만큼 더 울어댔다.

고개를 갸웃 거리다가 전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라는 말을 하고 정적이 흘렀다.

'여보세요'라고 두어번 대답없는 전화기에 흘려보냈는대도 메아리는 돌아오지않았다. 짜증이 솓구쳤다. 기껏받아줬더니 장난하는 것인지, 배가 꼬르륵거리기에 더욱 짜증이나 욕을 한바가지하려다가 그것도 귀찮았다. 말없이 그냥 끊어버리려 귀에서 전화기를 때어낼 찰나,

그 목소리가 들렸다. '저.. 잠깐 볼수 있을까요?'

부드러우면서 묵직한 목소리에 얼굴이 하얗고 따뜻한 커피를 건내주던 그 선배가 떠올랐다.

'누구..'라는 질문은 정답을 알면서 물은 질문이었다. 답은 필요없었다. 대답없는 그였지만 나는 알았다.

우리 집앞이라 했다. 저번 세미나에 대려다주던 길로 따라왔다 했다. 차안에서 기달리겠다고 했다.

꾀죄죄한 이 모습으로 달려나갈수는 없었으나, 내 가슴안 꿈틀거리는 무언가는 벌써 달려나가려 애를 썼다. 급하게 씻고 급하게 모자를 썻다. 급하게 누르는 엘레베이터버튼은 오히려 차분히 누를때보다 몇번 더 눌러야 눌린다는 물리학적 근거가 있는지 나는 궁금했다.



띵동-

1층입니다.



그래, 나도 알고있다. 이곳이 1층 공동현관 앞이란것을-

스읍, 후- 스읍, 후-

심호흡을 하면 나는 왜 더 머리가 어지러운 것일까. 오늘은 정말 이상한 날이다. 아주 사소한 것들이 큰것처럼 거슬리는 날. 그는 차안에 있었다. 검게 썬팅된 차안엔 그가 보이지 않았지만, 늘 먼저 떠나는 차를 바라봤던 나였기에, 번호를 보지않아도 알아봤다.

그러고 보니, 내가 무의식적으로 그를 계속 바라보고있었다는 것을 새록새록 알게되는것이 나는 조금 거슬렸다.



문을 열고 나온 그가 조수석자리의 차문을 열었고 나는 자연스레 그가 이끄는데로 순응했다.

'이 시각에 왠일이세요?'

라는 질문은 이 답답한 순간이 현실인지 인지해보려는 나의 술수였지만, 여전히 침묵은 이어졌다.

손을 만지작 거리는 내게 부드러운 목소리가 귀를 간지렀다.

그가 입을 열고 나서야 약간 알코올을 섭취했다는 것을 알았다.

'자꾸...'

평소 말이 없는것은 알고있었지만, 이렇게나 말이 느렸었나 약간은 답답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보다 긴장감이 더 내 목을 죄오는듯해서, 그의 다음말이 나오길 기다렸다.

'보고.. 싶어서..'

꿈틀.

이 아이는 왜 내 가슴에 들어와서는, 이렇듯 난감한 순간에 꿈틀대는 것인지.

나는 숙여 손가락꼼지락거리는 것에 집중하던 눈을 홱돌려 그의 숙인 옆모습에 고정시켰다.

나를 향해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그사람은, 자신도 아는 것인지 고개를 들지못했다.

한참 고정했던 눈은 이어지는 침묵에 다시 내 모아진 무릎쪽으로 탁하니 떨어졌다.

'이러면.. 안되요.'

아냐.라고 외치던 머리의 말을 나는 입으로 끄집어내어 이번엔 그를 향해 조심히 내밀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술때문인지 침묵때문인지 그의 눈은 빨갛게 혈관의 확장이 일어났다.

꿈틀거리는 가슴을 손으로 눌러대며 진정시키던 나는 이어지는 침묵에 더이상 참여하고 싶지 않아졌다.

차문을 열고 인사 없이 떠나려는 내게 목뒤에서 낮은 목소리가 간지럿다

'근데 왜 나온거죠..?'

나는 더이상 발을 뗄수 없었다.

그래, 사실 나도 알고 있었다. 고개를 들기 힘들어 졌다는 것을.. 피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의 이끌림에 이미 몸을 맡기고 있었다. 거짓말! 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의 몸은 이미 내 통제하에 있던 것이 아니였다. 나의 가슴도.

'이만 들어가 보셔야죠. 시간이 늦어서 집에서 걱정하세요.'

침묵을 깬 나의 말에 그는 고개만 끄덕이고는 천천히 서글픈 눈이 나를 향했다.

나는 그의 눈이 나를 어루만지는 것을 알았지만, 동참하진 않았다. 지금 그렇게 된다면 나는 인간에게 주어진 단하나의 특별한 힘인 이성을 잃을 것이 분명 하였기에..



그가 떠나고 한참이나 그의 차가 머물렀던 곳에 내가 머물렀다. 오늘따라 밤하늘에 별이 유난히 눈에 띄어, 이상하리만큼 기분이 상쾌했다. 집에 들어가 작은 방안에 유독 조금맣게보이는 내 매트리스가 오늘만은 낮선듯 나를 밀어내려했다. '이러지마, 벌써부터 네가 날 이렇게 밀쳐내면 내가 기댈곳이 없어질것같아..' 불투명한 창문에 어릿하게 비치는 달빛이 서글픔을 더하는 밤이었다.



4.



그날 밤 이후 그는 내게 찾아오는 횃수가 점차 늘어났고, 그에 따른 우리의 육체적 접촉도 피할 수 없었다. 처음에 외면하려하던 마음은 온데 간데 없고, 내 마음은 날이 갈수록 애달픔만 더해졌다.



사실, 나는 연애를 많이 해보진 못했다. 마음을 깊이 나눈 사람도 아직 없었다. 이렇게 애가달게 나를 자극시킨사람도 없었다.

키스는 많이 해보았지만, 그 이상은 없었다. 근데 그는 내게 많은 것을 바래왔다.

중간과정없는 다가옴은 나를 두렵게 했지만, 이미 나는 그에게 순응했음으로 애써 피하지 않았다. 이런 미련한 내가 누군가에 손가락질에 남아나지 못해도 그때 나는, 버텨낼수 있을 것같았다.





으읍 흐.. 하..



그의 키스는 근사하고 온몸을 자극 했다. 키스하며 다가오는 손은 달콤하기까지 했으며 나는 몸을 젖혀 받아들였다. 커다란 손으로 가슴을 감싸고 섬세한 엄지손으로 자극적인 부분을 살짝 터치하며 나를 흥분시켰다.



그날은 외곽에 나가 드라이브를 하던 중이었다.



오던 길에 편의점에 들러 사온 차가운 맥주를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때도 평상시처럼 부드럽게 날 향해오는 입술에 나는 내 몸을 맡기었다.

이상하게도 그날은 내가 좀더 그를 자극 시키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좀 더 다가가 그의 아랫 입술을 깨물고 그의 손을 내 가슴으로 인도했다. 흥분이 되었는지 그의 숨이 점점 거칠어지더니, 손이 활개를 치기 시작했다. 가슴을 부드럽게 터치하던 매일의 그가 아니라 거칠게 몰아치는 숨과 거칠게 몰아치는 온몸이 사실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그의 손은 나의 바지사이까지 파고들었다. 놀란 나는 손을 잡고 놔주지 않으려 힘을 줬지만, 그는 이미 이성을 잃은 후 였다. 누군가가 내 은밀한 곳을 자극 하는 일은 달가운 일은 아니였지만, 그이기 때문에 나는 힘주던 팔을 빼내었다. 나도 모르는 새 자극을 받던 은밀한 곳에 습기가 차올랐다.

점점 나도 주체 할 수 없이 자극에 익숙해졌고 좀 더 흥분되길 원했다.

그는 뒷좌석으로 인도했고 그의 손을 따라 좀 더 넓은 공간으로 자리를 옮겼다. 둘이 더는 가까울 수 없을 만큼 가까워진 우리. 그는 우리가 하나가 되길 원했다.



하지만 그것만은 두려웠다.



나도 그에 욕구를 충족시키고 싶었지만, 그것만은 쉽지 않았다. 내 살갖에 다른 이의 살갖이 마찰하며 느껴지는 극도의 흥분상태를 , 극도의 각성 상태를 나도 깨치고 싶었지만, 그 호기심보다는 역시 두려움이 컸다. 서로의 온기가 저항 없이 마주하고싶었던지 그는 걸리적거리는 옷가지들을 내던지기 시작했고, 우리는 금새 알몸이 되었다.

그는 내 두려움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나의 생살에 자신의 살갖을 들이 댔다.

생전 처음 내 조그만 몸의 틈으로 뜨겁고 단단한 그것이 들어왔다.

근육의 긴장탓인지 두려움 탓인지 그가 하나가 되려 더 힘껏 들어오면 들어올수록 통증이 그를 허락할 수 없다고 소리쳤다.

결국 나를 그를 밀쳐냈고, 둘의 욕구의 시간은 깨졌다.





그 후, 어색한 만남이 몇번 이어졌지만, 인간이 자신의 욕구를 모른척 할 수 없었다.

우리는 인간이라기 보단, 짐승에 가까워져갔다. 욕구에 길들여져 가는 짐승.

나의 발목을 감쌌던 모레 늪은 종아리를 타고 조용히, 아주 조용히 나를 스며들이고 있었다.

우리의 만남은 날이 갈수록 격해졌고, 그가 특별한 가정행사가 없는다면 나의 휑한 자취방에서 거사는 치뤄졌다.

몸을 섞은 뒤 그는 늘,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로 몸을 씻거냈다.

언젠가 한번 물었다.

왜 물로 씻는지. 솔직히 깨끗해 보이진 않았으니까-

그는 솔직했다.



' 우리집 비누랑 향기가 달라서 - '



아.. 그래 우리는 밀애를 나누고있었지.

숨기는 사랑을 하고있었지.

사실- 그것은 사랑이 아니였다는 것이 지금에 와선 더 합리적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육체적 에로스에 몸을 맡겼던, 타락한 '본능'이었다.

변질 되어갔다. 특히 그는 이제 내게 애틋한 눈빛을 던지는 일이 없었다.

그는 향기를 가지고 왔다. 향기 없이 돌아갔다.

하나가 되었다가 향기없는 물로 몸을 씻은 그는 한번도 내곁에서 잠들고 간적이 없었다.

아내가 기다리는 집으로 향했다. 그는 철저했다.

어쩌면.. 시작부터 철저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나는 아내를 속였지만,이성의 나도 속이고 있었다.

깨달음은 늦지 않게 나를 찾아왔다.



'나.. 사랑해요?'

'그런 말 들으면 무슨 소용이지?'



난 단지 그가 내게 진심이라는 것을 행하고 있다고, 그는 그냥 온몸으로 마음은 주는 것이라고 확인하고 싶었다.

미련한 '내연녀'의 집착이라 그는 느끼는것 같았다. 그는 나와 말을 섞기를 피했고, 오로지 몸만을 탐했다.

정말 탐스럽고 아름다웠던 나의 몸과 마음은, 속안 깊은 곳부터 썩어들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전화를 기다렸다. 그는 아내가 있을 땐, 전화하면 안된다고 했다. 어쩌다 내가 나의 설득에 못이겨 전화 버튼을 누를때면 그는 나를 자신의 동창인듯 대했다. 반갑다는 듯 안부인사를 전하며 다른 이름을 부르는 그에게 나는 점점 시들어 가는 내 자신의 모습을 가르쳐 주고싶었다.

나는 그때, 내 다리가 빠진 늪을 보고야 만것이다.

나는 빠져 나와야 했다.

하지만, 너무 힘들다..





5.



그녀를 본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홀로 마트에 장을 보러 갔을 때, 그근처 가장 큰 홈마트는 그곳 뿐이었고, 그와 나의 집은 멀지 않으곳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나는 그와 그녀가 함께 장을 보러 다닐수 있다는 것을 그때야 깨달았다.

나와는 차안에서만 머물려 했던 그였다, 차안, 나의 집 그외엔 어느 곳에서도 함께하지 못하는 그였다.



행사이동 중이던 카트가 날카로와진 나와 맞부딪혀 비이성적으로 변태 중인 날 자극시켰다. 카트를 나르던 아주머니는 내게 밝게 웃으며 사과를 하고 지나가려했지만, 나는 어쩌면 잘됐다는 생각을 했을지 모른다. 아무죄 없는 그 아주머니를 상대로 성을 내고있었다. 나 지금 힘들다며 우리 엄마에게 성을 낼순 없었으니까, 그를 기다리느라 친구들도 만날 약속을 만들기 아까워했었으니까, 나는 화풀이를 할 대상이 필요했었다. 한참을 성질을 내고보니 주변 사람들의 눈초리가 느껴지고, 그 행사를 담당하던 담당자까지 달려오는 사태가 벌어질때즈음 그는 다른사람들과 같은 시선을 보내며 내가 나인지 모르고 유유히 지나갈때즈음 나는 성질을 죽이려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처음에 놀란 눈빛을 보내던 그는 싸늘하게 식어버린 하얀 얼굴이 더욱 하얗게 변했다. 새파래질 정도로.

나는 새파래진 그를 피해 눈을 돌렸다.

그의 옆의 그녀를 보았다.

어렸다.

참으로 예뻣다.

그녀는 어쩌면 나보다 어린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카로운 나의 턱보다 둥그러며 단아한 얼굴 형, 동그란 눈에 살짝진 쌍커풀을 가진 그녀는 어쩌면 그렇게 코도 오똑한지몰랐다.

매주 관리를 받는 것인지 피부에선 윤기가 흘렀다.

웃으며 지나가는 그녀의 목소리는 참하고,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애교가 있었다. 그리고 향기가 있었다.

가슴이 쿵. 하고 내려 앉았다.

그의 곁에 있는 그녀가 너무 아름다웠다.

나는 이렇게 못나고 못되고 꼴사나운데..





그날이 지나고 그는 내게 연락이 점점 뜸해졌다.

나도 그에게 전화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나의 마음 속에선 그를 갈구 하고 있었다. 이것이 정신적인 갈구 인지, 육체적인 갈구인지 나는 알수 없었다.





그날 밤도 나는 그에게 전화 할 생각이 없었다.

혼자살기엔 조금은  휑하게 큰 집에서 홀로 불을 끄고 누워 있으려니 으슬으슬 몸이 오싹해서 잠을 못이루던 밤이었다.



그에게 오랫만에 전화를 걸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전화기를 들었다 놨다를 끝없이 반복했고, 새벽이 깊어 갈때 즈음

나는 이성을 놓았다.



따르르르릉

컬러링없는 단조로운 기다림은 나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딸깍, 띠-

그는 전화를 받았다가 이내 꺼버렸다.

나는 그가 필요했다. 이밤을 탁탁 털어 나를 잃어버린다해도 지금 이순간은 그가 필요했다.

나는 그를 갖기위해 많은 것을 희생했다. 가족과의 만남도 친구들과의 만남도 나의 시간도 모두 할애해서 그를 기다렸다.

그런데 그는 내가 자신을 필요로한다는 것을 너무 잘 알면서도

망설임 없는 끊어냄으로 나를 쳐내었다.

아름답게 웃던 그녀가 생각났다.

맑고 깨끗해보이던 어린 신부.

단아하게 묶은 긴 머리가 여성스러웠던 그녀를 그는 배신한 것이었다.

그는 그러면서도 아무렇지 않은듯 나를 지나쳤다. 마치 자신은 향기를 가진 사람처럼-

내앞에선 향기를 잃어버리는 주제에-

가소로웠다. 하지만 나는 그를 원했다.

그가 나는 필요했다.



아무도 없는 방안에서 얼굴을 기댄 배갯잇은 점점 척척하게 물들고 있었다.

창밖엔 검었던 조명이 조금씩 파랗게 변해가고 있었다.





6.



김갈치.

그는 이런 내 속내를 아닌지 모르는지, 그의 계속되는 달달볶음에 나는 지쳐갔다.

그리고 향기없는 그에게서도 도망 치고 싶었다.

나는 매일매일 혼을 빼놓고 거적때기만 움직이는 사람처럼 행동했고, 점점 일에서의 실수가 범람했다.

더는 민폐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는 버틸수 없을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는 휴식이 필요했다.

하루하루 목을 죄어오는 어린그녀에 대한 죄책감과, 향기없는 그에 대한 배신감과 추악한 나의 더러움을 씻고자 했다.

알맞게 터진 나의 실수로 김갈치는 그날도 내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면전에 대고 개떡같은 말을 던져대었다.

나는 이걸 명목으로 사표를 쓸수 있엇고, 사람들은 지금껏 버틴것도 용하다는 눈초리였기에 나는 내 속을 들킴없이 일이 진행됨에 안심했다.

나의 송별회가 열리던 날 밤, 김갈치는 어디가서도 자기가 했던 말을 잊지말라며, 잊지않고 행한다면 분명이 도움이 될것이라는 개떡같은 충고를 해주었고, 모든 직원들이 오랫만의 회식에 들떳는지 많이도 마셔댔다.

그도 마찬가지 였다.

흥건히 취했고, 나는 그가 몸을 가눌수 있는 상황인건지 아닌건지 가늠할수없었다.

그는 이상한 사람이다.

뜬금없는 사람이다.

원래 그랬나보다

나는 그날 알았다.

'남자는 말이지. 원래 생겨나길 하나로 만족못하게 태어났단 말야 그게 뭐든.. 특히 신체구조가 그렇게 생겨먹어서 육체적으론 절대! 하나로 만족을 못한단 말이지. 그래서 늘 바람을 피는거란 거야- 어? 알아들어?' 라며 내게 살짝 눈길을 던진다.



그런말을 내앞에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하면, 그래 나보고 어떡하라는거지?

아- 당신은 정상적인 남자로구나, 그 정상적인 남자의 육체적인 만족을 위해 지금껏 당신은 나를 만났다는 건가?

그것은 아주 '정상적인' 생체 활동의 일환으로 너무도 쉽고 쉬워보이는 나를 선택했구나 당신은.

육체적 회포를 풀기 위한 '밀랍인형'이었던 나를 일깨워주기위함인지, 그는 꼬인 혀로 꼬인말들을 뱉어냈다.



더이상 들을 가치도 없었을 뿐더러, 마주 할 수 없었다.

그가 어떤말을 할지 두려웠다.

나는 그제야 사람들의 눈초리가 두려웠다. 만약 이런 사실을 알게 된다면 마주하게 될 후 폭풍을 나는 당당히 맞닿뜨릴 수 있다 장담했것만, 코앞에 다가와서야 이것은 내가 감히 극복 할 수 있는것이 아니란 것이 뼈져리게 느껴졌다.

자리를 박차고 나온 나는 온몸이 떨렸다. 긴장때문인지 설움때문인지 집으로 걸어가는 길 내내 몸은 잔잔히 떨렸고 가슴은 주저없이 뛰어댔다.





떨리는 손으로 마주하는 모든 것들은 느리게 다가왔다.

내몸은 빨리 이 '거적때기'를 숨기려 바삐 움직였지만, 이 거적때기가 문제인건지, 내 꿈틀대던 마음이 고장난건지, 아니면

세상을 거슬러 역행하던 내가 이제서야 창밖을 보면서 이 뒤로가는 행렬을 눈치 채서인지..

알수 없었지만, 이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랬다.





내 몸 안에 있었던 뜨거웠던 액체들은 모두 메말라버렸다라는 확신이 섰다. 나는 더이상 눈물이 나지 않았다.

새벽을 반 쯤 지나왔을 때도 , 나는 눈물로 배갯잇을 적시지 않았다.

속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밖으로 내색하지 않았다. 혼자 누워 있는 내내 생각했다.

내일이면 밖으로 나가 마주치게 될 본적 없는 모든 사람들, 본적 있는 모든 사람들을 내가 마주할수 있을까.

어느샌가 낮설어진 매트리스가 날 밀어내고있었다.

난 어쩌면 그밤.. 침대 위 공중에 누워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밤 모든것이 날 밀어낸다란 생각이 내가 모든것을 밀어내 버리려했는지 모른다.

한참을 천장을 바라보며 두려움인지 모를 무언가에 휩싸여 있던 내게 전화가 왔다.

이 새벽에 울리는 전화는 한사람만을 떠올리게 했다.



'지금 집앞이야'



꼬인 혀가 아직도 안풀렸는지, 그는 우리나라말 비슷한 말을 뱉어냈다.

이제는 그가 어떤 생각을 머릿속에 품고 있는지 내가 알지 못한다는 것을 각인받았기에, 그를 만나기 두려웠다.

인간들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한치 앞 미래를 가장 두려워 하잖는가. 이 두려움도 그런것의 일종일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있었다. 이것이 내 온몸을 탐하며 잡아먹으려는 모레늪에게서 발을 뺄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것을-

그를 마주 하기로 했다. 그에게 말해 줄 것이다. 나는 더이상 밀랍인형이 아니라고,

더이상 쓰레기가 되고싶지않다고, 당신은 쓰레기라고-



긴 기럭지가 가슴선까지 오는 차체에 몸을 기대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 눈에 보인 그는 진짜'거적때기'가 되어 있었다.

새하얗던 얼굴에 취기가 올라 곳곳에 울긋불긋 홍조를 띠었다.

풀린 눈은 너덜너덜하게 달린 검정 단추처럼 그저 멍해 보였다.

나를 보자 자신보다 한참이나 작은 내게 몸을 기대려하던 '거적때기'를 나는 밀어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는 밀어내는 나를 더욱 세게 잡아 자신안에 가두려 했다. 여자가 술취한 남자를 상대로 힘겨루기하는 것보다 미련한 것은 없었지만, 내가 힘을 가득주어서인것인지, 그가 놓아 줄 생각이어서 그랬던 건지 잠시 낚아 채 강하게 압박하던 손목을 놔주고 그는 나 대신  차체에 기대어 섰다.



'이제 오지마요, 더이상 쓰레기되기 싫어요'



기댄 몸에 헛으로 달려있는 숙인 머리에 대고 말했다. 준비한 말을 이 한마디에 축약해서 던졌다. 여러 의미가 담긴 딱딱한 말을 술 취한 그가 받아 칠 수는 없었을거다. 뒤를 돌아 들어오려는 나에게 그는 아무 의미없는 협박을 했다.

'갈께. 그래 다신 안올께. 잘지내라..'



멈칫했지만, 그 순간의 나는 강했다.



아침이 밝아오기 전까지, 그의 난동 아닌 난동이 이어졌다. 그가 집에 가기 전까지 창밖으로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짖는 소리가 들렸다. '은화야!' 늪에 빠지기 전 온전한 나로 존재했을 적에 내 명찰표에 달린 그것이었다. 귀를 막고 침대에 이불없이 누워있었다.



그도, 나도 이젠 더이상 서롤 찾지 못할 것이란 확신이 날 잠들 수 있게 해줬다.



새벽의 짙은 검정색은 물러났고, 온전한 하늘색이 자신의 모습을 드리웠다.







이사를 준비했다. 월세 생활은 힘들다며 아빠가 마련해준 전세 아파트는 나 혼자 살기엔 너무 휑했다. 모래늪에서 곧 빠져나온 탓에 곳곳에 남겨진 모랫자국과 그 날의 시작부터 날 밀어내던 매트리스를 놔두고 떠나기로 했다.



있었던 일인지, 없었던 일인지 미담으로도 남지 않은 몇개월의 사건은 점점 묻혀가는 중이었다.

나는 새로운 직장에 다니기 시작했고, 사람들을 마주함에 따른 두려움도 점차 날 떠날 채비를 거의 마친 듯 했다.

마치 달리기를 위해 출발선상에서 몸을 숙이고 바람의 저항을 최대한 덜 받기 위한 움츠림을 연상시키는 지금의 내가 거울 앞에 서있었다.



새로운 집 근처에는 도심 한가운데 꽤나 큰 공원이 조성 되어 있었다. 도로와 공원의 회색/초록색의 대비는 부조화스러우면서도 맘을 쉬게 해주는 묘한 능력을 가진 것 같다고 말하는 나와 나는 한창 대화를 나눴다.



하늘은 맑게 높이 위치 해 있었다. 땅은 초록빛에 물들어 이 도시의 모든 것을 쉬게해주었다.

나 또한 발을 디딜때마다, 내안의 무언가가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투두둑..



산책을 하던 중 산들바람에 잠깐 삐져나온 모레늪의 흔적에 놀라

주변을 둘러보며 옷을 여며 잡았다.



발 아래 눈에 보이지않는 모래들이 나를 바라보고있었다.




===============================================================

안녕하세요. 소설작가를 꿈꾸는 직딩입니당^^
생전처음... 소설를 써봤어요
처음이기때문에 누군가에 비평을 듣고싶어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너무 뛰어나신분들이 많아 망설여졌지만
그래도, 여러 각도로 제 글을 평가해주실것이라 믿고
글을 올려봅니다^^

날이 많이 덥네요, 가을이 시작되어서 하늘은 높고 깊습니다
좋은 글 함께 공유하시는 거울웹진여러분들 모두 사랑합니다^^

메일:whaltjs16@naver.com

감사합니다.
[거침없는 채찍날려주세요♥]
댓글 0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수
공지 2024년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공고 mirror 2024.02.26 1
공지 단편 ★(필독) 독자단편우수작 심사방식 변경 공지★5 mirror 2015.12.18 1
공지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 (3기 심사단 선정)4 mirror 2009.07.01 3
417 단편 안심 위기백 2011.07.14 0
416 단편 [Machine] K.kun 2011.07.23 0
415 단편 노래하는 빵1 irlei 2011.07.18 0
414 단편 11시 이정도 2011.07.23 0
413 단편 [재업로드] 월세가 저렴한 방 헤르만 2011.07.27 0
412 단편 ATM 언어유희 2011.07.28 0
411 단편 무소식이 희소식 고요 2011.07.28 0
410 단편 드라마 각색 어린 왕자1 마뱀 2011.07.30 0
409 단편 요즘 따라 그녀가 마뱀 2011.07.30 0
408 단편 밤하늘에서 정말로 별을 보게 된다면 김진영 2011.07.29 0
407 단편 소울의 대부 천공의도너츠 2011.08.02 0
406 단편 가을의 Surprise 나경 2011.08.16 0
405 단편 복수 : 한양 성 살인방화사건의 전말과 현재 마뱀 2011.08.09 0
404 단편 우리들의 슬픈 오마주 김진영 2011.08.19 0
403 단편 세인트 프롤레타리아 천공의도너츠 2011.08.21 0
402 단편 돌산 2011.08.25 0
401 단편 최후의 무기(The Last Weapon) DOSKHARAAS 2011.08.25 0
400 단편 감옥과 동정에서의 탈출 Leia-Heron 2011.08.23 0
399 단편 [Agitpunkt] K.kun 2011.08.27 0
단편 모래 늪 조미선 2011.08.29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