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를 잊어버리셨나요?
최후의 무기(The Last Weapon)
DOSKHARAAS

~기묘한 A. E. Van Vogt와 성스러운 PKD를 추억하며.

1.
지금으로부터 천오백년 전.
인류는 이미 더 깊은 우주로 진출한 지 오래였고, 자신들처럼 게걸스레 우주를 정복하던 또 다른 종족 니우겔(Niugel)과 숙명적인 ‘퍼스트 콘택트’를 하게 되었다.
두 문명 간의 마찰이 있기에 우주는 넓었고 한 동안 평화가 지속되었으나, ‘퍼스트 콘택트’로부터 오백년이 흐르자 은하계를 개척하고 정복해 나간 두 종족은 각각 제국을 건설했다. 두 태양이 한 하늘에 있지 못한다는 낡은 속담대로 두 종족의 영토가 서로 겹치게 되자 마찰이 시작되었다. 우주는 넓었지만 그들의 욕심은 더 넓었다. 두 종족은 화해를 몰랐고 서로를 용서하지 못했다. 알파 센터우리 근처 소행성에서 일어난 수소폭발을 신호로 소위 ‘천년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지금, 은하를 넘나들며 벌어지는 두 종족 간 전쟁의 최전선인 행성 랫시태드(Ratshtaed)에서, 종말이 시작되고 있었다…….
* * *
니우겔 군의 생체 순찰함이 경고사격으로 내 뱉은 위액이 ‘스페이스라크(Spacelark) 호’의 좌현을 스치고 지나가자, 좌현의 외부장갑이 부식을 일으키고 선체 전체가 크게 뒤흔들렸다.
크씨득(Kcidk)의 연약한 두 다리가 이를 이기지 못하고 우주선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트고브나브(Tgovnav)는 크씨득이 허둥대며 자리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는 모습을 보며 입술을 비틀어 올렸다.
트고브나브가 고함을 쳤다. “상황은 어찌 되었나?”
놀란 승무원 중 한 명이 저도 모르게 대답을 했다. “니우겔 군 순찰대의 인헤(Inheh)급 생체 우주선 베무파라스타(Bemmuparastar) 3기가 레이더에 포착되었습니다.”
“상사!” 선장이 소리를 질렀다. “이 배의 선장은 나요. 쓸데없는 참견 하지 말고 가만히 앉아 있어요!”
“뭐요?” 트고브나브의 몸에 불길이 솟아올랐다. 이를 본 크씨득이 선장과 상사 사이에 끼어들어 손사래를 쳤다. “트고브나브 상사님! 파이로―사이코키네시스(Pyro-Psychokinesis, 念火力)를 그만 두십시오! 산소 부족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선내에 불이 나기라도 하면 임무 속행이 어려워집니다.”
임무라는 말을 들은 상사가 서둘러 에너지 레벨을 가라앉혀 불길을 사그라지게 하는 사이, 크씨득은 선장에게 말을 걸었다. “선장님, 작전 속행이 가능할까요?”
“우리 스페이스라크 호는 잠입임무를 수행하라고 명령을 받아 반격할 무기가 빈약하고 연료도 부족합니다. 속행은 아무래도 무리—”
이 말을 듣던 트고브나브 상사가 말을 자르고 끼어들었다. “안돼!” 트고브나브가 팔걸이를 내리치며 말했다. “이번 임무는 니우겔과 인류 간의 전쟁의 일대 전환점이 될 중요한 임무야! 선장, 당신 주제에 마음대로 작전을 중지하라 마라 할 수는 없어!”
“이 배의 안전을 책임지는 것이 내 의무고 나는 그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이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요! 내 배에 탄 이상 내 명령을 따르시오, 상사!”
“작전을 속행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행성 랫시태드로 가야해!”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소! 대기권 돌입은 무리—”
쾅, 굉음이 선체에 울려 퍼지고 강한 충격이 스페이스라크 호를 뒤흔들었다.
선내는 아비규환이었다. 알람 사이렌이 울리고 붉은 등이 켜져 공간은 온통 피범벅이 된 것처럼 보였고 환기계가 망가졌는지 스모크가 곳곳에서 뿜어져 나왔다.
크씨득에게는 스모크에 붉은 빛이 반사되어 뿜어져 나오는 모습이 마치 피가 쏟아지는 것 같이 보였고 알람 사이렌 소리가 배가 지르는 고통의 비명처럼 들려 오싹해졌다. 이대로 고향에서 멀고 먼 우주 공간의 먼지가 되는 것일까, 크씨득은 생각했다. 의자에 앉아있는데도 다리가 떨려왔다.
“트랄룩(Tralug)! 상황은?” 트고브나브가 소리쳤다.
1등 항해사 트랄룩은 선장의 눈치를 살피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하고는, 트고브나브가 아니라 선장에게 하는 보고처럼 건조한 말투로 보고를 했다. “구동계 78%의 에너지 손실, 장갑판 부식률 32%, 대부분 좌현에서 보고되었습니다. 에너지 레벨 하—중—중.”
“젠장—” 트고브나브가 또 다시 팔걸이를 내리쳤다. 내리친 두 주먹이 푸르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붉은 조명 아래 푸른 불꽃은 더욱 더 그로테스크하게 보였고 이를 혐오스럽게 바라보던 크씨득이 선장에게 말했다.
“선장님, 행성 랫시태드의 강하 포인트가 아니더라도 일단 강하를 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이대로는 대기권 돌입 자체가 무리요, 교수.” 선장은 고개를 숙이고 쓸쓸히 말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스페이스라크 호의 크루(Crew)들이 곳곳에서 피해상황을 보고하기 시작했다. 알람은 갓난아이의 울음처럼 신경을 거스르는 사이렌 소리를 계속해서 내뱉었고 선체의 진동은 미세진동이 되어 계속해서 남아있었다.
“선장님,” 크씨득이 침착하게 말했다. “ 일단은 위성인 스타파(Starfah)로 착륙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스타파는 자체 생태계와 대기도 갖추고 있는 준 행성 급 위성이니 거기에라도 착륙하는 게—”
“무리요. 투항해야 하오. 이대로는 모두 다 죽어요.
트고브나브가 말했다. “안돼! 비상착륙을 해야 해! 랫시태드에 못 가면 스타파에라도 가야 한다고!”
“스타파에는 니우겔 군이 주둔하고 있을 지도 몰라요! 고대 문명의 무기에 대한 정보를 얻을 때도 교전을 했다고 하지 않소! 트고브나브 상사, 더 이상의 월권행위는 용서 못합니다. 스타파의 대기권에 돌입하다가 배가 부서질 위험도 있고 설령 비상동체착륙을 하더라도 그곳에 적이 있다면 위험하오. 차라리 투항하는 게—”
푸른 불빛이 붉은 공간을 일직선으로 가르며 선장을 통과하고 지나갔다. 선장의 제복 가슴께에 자국이 생기더니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붉은 조명 아래에 스며들어가는 붉은 색을 확인하려는 듯 선장은 무감감한 눈으로 손으로 자국을 훔쳐 바라보더니 눈을 까뒤집고 쓰러졌다.
크씨득이 말했다. “트……트고나고브 상사!”
“닥쳐, 이 샌님아! 작전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속행한다. 불만 있는 놈은 내게 말해! 1등 항해사, 당장 위성 스파타로 비상착륙을 한다.” 트고브나브가 아직도 안광을 뿜는 눈을 부라리며 명령을 했지만 1등 항해사 트랄룩은 입술을 깨물며 몸을 떨고만 있었다. “내 말 안 들리나? 아니면 저기 널브러진 선장 따라 황천에 가고 싶은 가? 우릴 다 죽일 셈이야! 설령 우리가 다 뒈지더라도 작전을 진행시켜야만 해! 이번 작전에 우리 인류의 운명 5만년이 걸려있다! 천년을 끌어온 이 전쟁을 끝낼 수 있단 말이야!”
“크루.” 트랄룩이 말했다. “위성 스파타로 착륙 준비한다.”
승무원 전원이 침통한 표정으로 각자의 컨트롤 보드를 향했고 각자의 일을 했다. 이 모습을 바라보며 크씨득은 구역질이 올라오는 것을 참아야 했다.
그렇게 중요한가? 크씨득은 생각했다. 그까짓 게 그리 중요한가? 있는지도 모르는 보미사(Vomisa) 문명의 최종병기가 그리도 중요하단 말인가? 그런 병기가 있었는데 왜 보미사는 사라졌단 말인가?
크씨득은 주먹을 꼭 쥐며, 보미사의 사라진 문명이 남긴 문자를 공부하고 싶다고 순진하게 전공을 선택했던 과거의 자신을 저주하며 안전벨트를 단단히 조였다.
스페이스라크 호는 공격을 받으며 위성 스파타의 대기권으로 돌입했고 그 뒤를 니우겔의 우주선이
댓글 0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추천 수
공지 2024년 독자우수단편 심사위원 공고 mirror 2024.02.26 1
공지 단편 ★(필독) 독자단편우수작 심사방식 변경 공지★5 mirror 2015.12.18 1
공지 독자 우수 단편 선정 규정 (3기 심사단 선정)4 mirror 2009.07.01 3
417 단편 안심 위기백 2011.07.14 0
416 단편 [Machine] K.kun 2011.07.23 0
415 단편 노래하는 빵1 irlei 2011.07.18 0
414 단편 11시 이정도 2011.07.23 0
413 단편 [재업로드] 월세가 저렴한 방 헤르만 2011.07.27 0
412 단편 ATM 언어유희 2011.07.28 0
411 단편 무소식이 희소식 고요 2011.07.28 0
410 단편 드라마 각색 어린 왕자1 마뱀 2011.07.30 0
409 단편 요즘 따라 그녀가 마뱀 2011.07.30 0
408 단편 밤하늘에서 정말로 별을 보게 된다면 김진영 2011.07.29 0
407 단편 소울의 대부 천공의도너츠 2011.08.02 0
406 단편 가을의 Surprise 나경 2011.08.16 0
405 단편 복수 : 한양 성 살인방화사건의 전말과 현재 마뱀 2011.08.09 0
404 단편 우리들의 슬픈 오마주 김진영 2011.08.19 0
403 단편 세인트 프롤레타리아 천공의도너츠 2011.08.21 0
402 단편 돌산 2011.08.25 0
단편 최후의 무기(The Last Weapon) DOSKHARAAS 2011.08.25 0
400 단편 감옥과 동정에서의 탈출 Leia-Heron 2011.08.23 0
399 단편 [Agitpunkt] K.kun 2011.08.27 0
398 단편 모래 늪 조미선 2011.08.29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