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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요즘 따라 그녀가

2011.07.30 17:2107.30

소설 제목 : 요즘 따라 그녀가


작가 : 마뱀

장르 : 연애

주제 : 여러 시련들을 겪으며 인간이 마주하는 선과 악의 갈림길

소설 본문 :







요즘 따라 그녀가 문자를 해도 답장하는 일이 없고 만나자고 해도 바쁘다며 계속 피해댔다. 다른 남자를 만나는 건지 아니면 그냥 밀고 당기기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가운데 그녀의 집 앞에서 그녀가 회사에서 퇴근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녀가 다른 남자의 차를 타고 집 앞에서 내렸다. 어께가 무너져 내리는 듯 모든 긴장이 일시에 몰려왔다가 추락하며 사라졌다.



-그런 거였네.



그녀는 그 남자와 집 앞에서 키스를 나누었고 오랫동안 서로의 입술을 떼지 않더니 떼자마자 둘은 함께 집으로 들어갔다. 어안이 벙벙하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예상했던 일이라 그런 건지는 몰라도 화가 나진 않았다. 그녀가 나를 배신했듯이 나도 그녀를 차갑게 잊어버릴까, 하고 생각했을 뿐. 잠시 멍 때리며 그녀의 집 창문을 보았다.



어둠 속에서 한 쌍이 서로의 옷을 벗기고 있는 모습. 불 끄고 한다고 안심했던 건지 보여 져도 상관없는 건지 모르겠으나 둘은 그렇게 뒹굴어 댔다. 강렬한 충격이었다. 어떻게 된 거지, 나.



많은 고민들을 해보다 그녀의 집을 뒤로 하고 내 집을 향해 갔다. 토 나와, 어떡하지. 왜인지 눈물이 흐르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무덤덤한 놈이었나? 나는 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그랬구나. 딴 남자랑 저렇게 뒹구느라 나는 안중에도 없었구나. 내가 능력이 부족했나? 돈이 문제일까? 외모? 아휴, 됐어. 잘 먹고 잘 살라 그래. 아, 그래도 찝찝한 이 기분은 도저히 나아지질 않겠는데. 저 여자가 딴 남자랑 뒹구는 건 그렇다 치자. 문제는 내게 결함이 많았던 가야. 사랑이란 것도 이기적으로 하는 거니까, 뒹구는 맛에 하든, 돈 맛에 하든, 외모 맛에 하든, 성격이 좋아서 하든,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문제는 내가 그렇게나 모자란 놈이었는가, 그거야.



문제라....... 외모? 성격? 뭘까? 내가 덜 떨어지는 이유. 내가 싫증난 이유. 아휴, 연애란 거 나한테는 가당치도 않은 건가? 좀 더 열심히 해서 연봉을 높여 볼까? 세상이 더럽고 이기적인 거야, 뻔하지만,...... 그냥 친구랑 술 마시면서 빨리 털어버리는 건 어때? 글쎄, 그런다고 나아질 것 같지 않은데.



친구는 의리가 있으니 배신이 없어서 좋다만 애인은 너무 쉽게 배신해버린단 말이야. 그렇다고 화내면서 여자 겁줘봤자, 그렇게 해서 다시 사귀게 되어봤자, 여자가 쫄면서 나한테 빌빌 기어봤자, 그건 내가 원하는 연애가 아니고 사랑이 아니고, 애초에 사랑이란 거 있는 지도 의문이지마는 어쨌든 그런 건 취미에 없으니까 할 수 없는 거고 가서 울면서 불면서 좋아한다고 사랑한다고 술 취해 노래 부르고 소리 지르고 하는 건 추해서 싫고 어찌해야 하는 건지 나보고 어떡하란 건지, 모르겠다, 모르겠어.



그래, 그냥, 인생 혼자서 가자. 원래 태어날 때 혼자고, 물론 쌍둥이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어차피 몸이 붙은 게 아닌 이상 인생은 혼자인 거니까, 혼자 가는 거니까, 시원하게 멋지게 독신으로 사는 게 차라리 낫지! 독신으로 살면서 어디 갈 때마다 여자 꼬시고 자면서 갈아 치워 가면서 그렇게 즐거이 사는 게 낫지!



에? 하이고? 주접이셔. 그냥저냥, 이렇게 저렇게, 어찌 살든 그게 그거이겠지마는, 정말 어찌 됐든 상관없는 거겠지마는! 난 그렇게 사는 거, 인간 같지 않아서 싫고, 더러워서 싫고, 정말 지저분하고 어지러워서 싫고, 진심으로 싫고 밉고 짜증나서 그냥 이렇게 혼자 살래! 퉤! 내가 유치한 놈이든 소심한 놈이든 착해빠진 멍청한 놈이든 말든, 그런 거 신경 쓰기 귀찮고 움직이기 귀찮고 화내기 귀찮고 울기 귀찮아서 그냥 내가 관둔다, 내가 관둬! 더 멋진 여자, 더 예쁜 여자, 더 잘난 여자, 찾기는 힘들겠지마는, 어떻게든 열심히, 최선을 정말로 다해, 찾아내고야 말아서, 내 옆에 두고, 나를 찬 그 이기적인 여자보다, 더 잘 먹고 더 잘 살 거야! 두고 보자, 나쁜 년!



그리고 나는 다시 그년이 나를 한번 씹고 뱉는 껌 마냥 여기고 그 수다쟁이 된장 년들끼리 내 단점들을 요모조모 씹고 있지 않을까하는, 그런 영상이 흐르자, 생각을 고쳐먹었다.



아니지. 인간 같든 말든, 원래 사람이 이기적인 동물, 아니, 짐승인 거니까, 좀 삐뚤어져도, 더러워져도, 나빠져도, 악해져도, 그리 문제될 건 없는 거 아닌가? 그게 인생을 즐기는 거 아니야? 답답하게 나 혼자 착한 척 순한 척 해봤자 나만 손해잖아! 화도 좀 내고 비리도 좀 저지르고 배신도 하고 이용도 하고 욕도 좀 하고 그래야 사는 게 사는 거 아니겠어?! 내가 지금까지 피해보고 손해보고 그게 다 얼만데?! 내 거는 내가 챙겨야지! 세상사는 데 제일 중요한 건, 그런 거 아니겠어? 돈! 멋! 그런 게 인생을 값지게 해주는 거 아니겠어?! 아, 나 왜 이리 생각이 많은 거야?! 뭔 생각을 그렇게 해대는 건데?! 그냥 하면 되잖아, 하면!!



즉시 나는 주먹만한 돌을 하나 주워 아무렇게나 공중을 향해, 내 마음의 폭풍을 담아서, 그리 던졌다. 창문 깨지는 소리와, ‘누구야!’ 하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웃으면서 밤의 주택가를 내달렸다. 달릴 수 있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그 상쾌한 바람을 만끽하면서 범죄의 낭만이 주는 쾌락에 온 마음을 풍덩 담그며 다시금 많은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거야! 완전 시원한데?! 더러운 세상이라기보다, 이건, 시원한 세상이라 말해야 옳지! 어른이 되려, 성숙해지려, 기 쓰고 애쓰고 노력해봤자, 손해 보는 건 자기들이 나이 좀 먹은 체 하는 그 노인네들 아니겠어? 좋아! 짓밟고 뺏고 무시하고 깔보자! 지금껏 순하게 산  거면 됐어! 이제 내가 손해 본 거 모두 보상받을 거야!!



가슴이 벅차오르자 나는 멈춰 서서 숨을 헐떡였다. 나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며 내가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년의 집 주변 주택가 어디 즈음인 듯했다. 열심히 달리다보니 주변 풍경도 신경 쓰지 않아 어디에 있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내가 주위를 둘러보며 다시 그녀의 집 쪽으로 돌아가려 할 때, 험상궂게 생긴 두 사내놈이 나처럼 열심히 달렸던 모양인지 숨을 헐떡이며 정면으로 걸어왔다. 나는 잔뜩 겁을 먹으며 눈길 돌리지 않고 모른 체 지나가려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두 놈이 나를 향해 점점 가까이 오더니 주머니에서 몽둥이를 꺼내곤 내 머리를 갑자기 내리쳤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악!
-토끼면 못 잡을 줄 알았냐?!



나는 쓰러졌고, 두 사내를 올려다보았다. 설마, 이놈들이 그 깨진 유리창 집에 사는 놈들? 하필이면 이런 놈들이 사는 집이었다니!



-유리창을 왜 깨?! 술 취했냐!!



두 놈이 엄청 화가 치밀어 오르는 모양이었다. 나를 죽일 듯이, 몽둥이가 내 머리를 향해 날아왔고, 나는 가까스로 몽둥이를 피한 후, 급히 가방에서 무기가 될만한 것을 찾았다. 가방 안에 사시미 칼이 들어 있었다. 사시미?!, 하는 생각을 할 새가 없이 당장 칼을 들어서 나를 향해 달려오는 그 몽둥이를 든 놈의 목옆을 푹 찔러 넣었다. 이런 젠장! 왜 이리 쉽게 박혀! 난 망했다! 이제 감옥 가서 인생 썩겠지?! 내가 이런 식으로 내 인생을 망칠 줄이야?! 그리고 이어서 다른 놈이 도망치려 하기에 달려가서 뒷목 척추에 칼을 또 박아 넣었다. 왜 갑자기 이렇게 된 거지?! 나 어떡해! 적어도 10년은 썩을 거고, 나와서도 사회에 재기는 힘들 거야!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고 목격자는 없었다. 옷은 모두 들키지 않게 버리면 되고 칼도 적당히 처리하면 된다. 시체에 내 흔적은 없고 지금껏 얌전히 살아왔었으니 난 모르겠다고 시치미 떼면 믿어줄 거다. 내 물건 흘린 것이 있는지 둘러본다. 나, 너무 차분한 거 아닌가?! 아, 모르겠다. 일단 흘린 건 없어. 그럼 냅다 튀자! 피는 겉에만 묻었으니, 양복 상의는 벗고 바지는 어두운 색이니 괜찮고 이대로 조용히 집에 가면 된다.  



집에 도착한 나는 옷을 벗어 검은 봉지 안에 넣고 침대에 누워 충격과 고민에 휩싸이며 묵직한 피로에 의해 서서히 잠들어 갔다. 아, 사람을 죽였다니?! 내가 사람을.......



다음날. 일어나 보니, 이게 어떻게 된 거지? 그녀의 집안이 아닌가. 여기에서 잠들었던 건가?



-일어났어?

생생한 그녀의 목소리. 그녀의 무늬 없는 분홍색 잠옷차림. 어떻게 된 거지? 어제 밤에 여기로 돌아와서 잤다? 그건 있을 수 없어. 뭐지? 아, 그런가? 내가 그녀의 집 앞에서 잠들었었고, 어제 일은 다 꿈이었으며 그녀가 잠든 나를 깨우려 했으나 내가 일어나지 않았고 그래서 나를 집 안으로 그녀가 데리고 들어왔다. 이건가?



-어.



나는 그녀의 물음에 뒤늦게 답했다. 그녀는 이어서 물었다.



-이제 정신이 드니? 집 앞에서는 왜 자고 있었어?
-.......
-뭔 생각해?
-아니, 그냥.
-그냥이라니......?
-있잖아.
-응?
-너, 다른 남자 생겼냐?
-아니?
-그래.......
-뭐야, 그런 거 때문에 집 앞에서 자기까지 한 거야?
-나 이제 그만 갈란다.
-어? 벌써? 오늘 주말인데?
-어, 안녕.



나는 그녀의 집을 나오며 생각했다.



-그게 다 꿈이었구나. 다행이다. 내가 요즘 많이 불안했었나봐, 그런 꿈까지 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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